부편집장 곽경은
편집위원 윤성빈
2013년 12월 5일 목요일
살이 에는 12월의 날씨. 우리더러 야외 청소를 하란다. 며칠 전에 근로조건 개선 교섭 때문에 학교와 면담을 했다. 용역회사에 우리 명단을 넘겼다고 하던데 설마.. 이게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용역회사는 이 날씨에 우리를 밖으로 내모는 것으로 복수를 하는구나. 손이 다 튼다. 교섭 좀 하자고 장소를 요청했더니 우리에게 시설이용권한이 없단다. 우리는 무슨 기계인가? 청소만 하는?
2013년 12월 13일 금요일
파업하는 중이다. 모두 밖으로 나왔다. 남편은 파업하고 시위하면 나더러 경찰서에 가는 거 아니냐며 걱정했다. 사실 나도 걱정되고, 무섭다. 하지만 혼자는 아니니까. 우리 권리는 우리가 찾아야 한다. 우리는 사람이니까. 올 겨울이 너무 춥다. 몸도, 마음도.
2013년 12월 17일 수요일
총장실을 점거했다. 원래는 이렇게까지 올 생각이 없었는데, 우리 대행업체 사장이랑 총장이랑 무슨 이야기를 하나 싶어서 따라가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추운 날씨이고, 휴일이고, 종강이 코앞인 시험기간인데 많은 학생들이 곁에 있다. 아주 든든하다. 미리 내려온 크리스마스 선물일까.
2013년 12월 23일 화요일
학교가 대자보 한 장에 100만원이라는 벌금을 내야한다고 하더라. 당신네들은 우리가 대자보를 붙이기 전까지 관심도 없었으면서 벌금은 무슨 벌금. 우리 노조원들은 겁이 난다고 한다. 나간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사실 무섭다. 파업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겁나지 않았던 순간이 없다. 그렇지만 나는 분회장이고, 내가 겁내면 더 무서워 할테니 꾹 참아야 한다. 학생들이 대자보 위에 종이돈을 붙여주었다. 우리 곁을 지키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2014년 1월 2일 목요일
새해가 밝았다. 우리가 요구한 청소노동자의 처우 개선.곧 결론이 날 것 같다.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다. 다만 지금보다는 낫기를 바랄 뿐. 우리는 여전히 여기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9년 후, 2023년 9월 25일 월요일, 수업이 모두 끝난 늦은 오후 한 강의실.
매일 같이 얼굴을 마주하는 이들이 지난 하루를 정겹게 나누고, 오랜만에 만난 이들은 그간의 회포를 푼다. 첫 만남에 간식을 건네받으며 쭈뼛쭈뼛 수줍은 인사를 건네는 이들도 있다. 청소노동자의 투쟁 한가운데에서 당신들의 권리를 외치던 10년 차 조합원들, 노조의 성립 이후 합류한 청소노동자들과 시설 노동자들, 당시 투쟁에 함께하다 졸업 후 다시 찾아온 학생들은 물론, 모르는 것이 많지만 배우고 연대하겠다며 찾아온 재학생들과 함께 온 교수님들까지. 많은 이들이 민주노조의 출범 10주년을 한 마음으로 축하하기 위해 모였다.
학생들은 약속된 시간이 지나면 학교를 떠난다. 10년 전에 있었던 일을 지금 경험으로 기억할 수 있는 학부생은 없다. 하지만 노조원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이곳은 그들의 일터였고, 일터니까. 권리를 찾아가던 그날의 땀과 눈물을 미래의 우리가 기억하고 연대하게 하기 위한 기록이다.
사람들로 따뜻하게 데워진 ‘비와 당신, 함께 한 10년’의 자리. 하지만 그 시작은 꽁꽁 언 추운 겨울이었다.
2013년 중앙대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열악하기로 유명했다. 청소노동자는 계약상 10시간 그 이상을 일하고는7시간 정도의 임금을 받았다. 실내의 청소담당자가 외곽까지 나가 꽃잎과 낙엽, 눈을 청소했다. 정해진 쉬는 시간이 없어 일하면서 눈치를 봐야 했다. 시설 노동자의 사정도 비슷했다. 실제 노동시간 대비 제대로 계산되지 않은 임금을 받았고, 타 학교에 비해 적은 수의 노동자가 더 넓은 공간을 담당했다. 적은 임금에 과도한 노동시간, 보장되지 않는 휴식까지. 열악한 환경에 문제를 제기했다. 노동자 스스로의 권리를 위해 나섰지만 두려웠다. 직장인 학교에서 밉보이는 행동을 하면 해고될지도 모른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불안감을 누르고 ‘노동조합'을 설립한 후 투쟁을 이어 나갔다. 그 중심에는 연대가 있었다.
“비와 당신”
추운 겨울 학내 청소노동자와 함께 민주노조의 출범을 이끈 학생들의 단체이다. 코로나19 이후 입학한 재학생들은 처음 들을 것이다. 2013년 10월 공식적으로 창설된 비와 당신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하는 당신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학생들의 자발적인 모임이었다. 학내 노동조합이 없었을 때부터 노동자와 연대했고, 탄생 이후에는 노조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었다. 다시 말해 ‘비와 당신’은 중앙대학교에서 학생과 노동자를 이은 연대의 주체이자, 함께 만들어낸 연대의 산물이다.
10주년 행사 이후 ‘비와 당신, 함께 한 10년’의 사회를 맡은 이재정(정치국제학과 13)씨와 곽진경(정치국제학과 13)씨를 만나 민주노조의 설립 당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재정 씨는 새내기 시절 민주노조의 권리 투쟁 최전선에서 함께 했고, 곽진경 씨는 2017년 ‘비와 당신’의 재결성에 힘을 실었다.
10년 전, 노조 설립을 처음 제안한 건 학생들이었다. 비정규직 청소노동자의 처우를 위해서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힘을 보태는 것이라고 학생들은 생각했다. 곧 관련된 움직임이 일어났다. ‘노조를 하면 경찰에 잡혀간다더라’ ‘노조 설립의 총대를 멘 사람은 잘릴 거다’라는 낭설과 두려움을 뒤로하고 2013년 9월 27일 중앙대학교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중앙대분회(이하 민주노조)’가 출범했다. 이후 본격적인 투쟁이 시작됐다.
마침 2013년은 학내외로 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였다. 중앙대학교에 불어닥친 구조조정의 바람에 학생들이 학교의 행동에 촉각을 곤두세웠고, 각종 학내 단위가 결집해 있었다. 당시 고려대학교에서 시작해 전국적으로 퍼진 ‘안녕들하십니까’ 운동 1도 우리 대학에 영향을 미쳤다. 학교 곳곳에 (특히 청소노동자가) 안녕하지 못함을 이야기하는 대자보가 붙었다. 학교는 ‘미관을 해친다’며 일방적으로 철거공지를 했고, 미관을 관리하는 청소노동자들의 대자보는 ‘미관을 위해’ 하루 만에 버려졌다. 학교는 대자보 하나에 100만 원의 벌금을 물리는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학생들은 청소노동자와의 연대를 표하며 ‘백만 원’이라 쓰인 종이들을 붙이며 대항했다. 2
그해 12월부터 이듬해 설까지는 45일에 걸친 파업 및 농성 투쟁이 이어졌다. 민주노조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활동이다. 총장실도 점거했다. 윤화자 분회장은 “(교섭하러 온) 사람들이 무슨 얘기 하나 싶어 슬슬 따라가다 보니 총장님을 가두고 말았지 뭐야”라며 총장실 점거와 파업 투쟁을 회상했다. 차디찬 겨울, 추위가 뼈를 에는 날들이었지만 나름 재미있는 일화들도 있다. 분회장은 “(총장실 점거 때) 청국장도 해 먹고 그랬어.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냄새로 알리려고”라 말하며 총장실 점거 때 학생들과 음식을 나누어 먹은 경험을 공유했다. 행사 이후 만난 이재정 씨는 “학생회관 앞에서 농성할 때 천막에서 자고 일어났는데 너무 추웠다. 알고 보니 나 혼자만 전기장판 사이에서 잤던 것”이라며 웃픈 추억을 떠올렸다. 방학 중이었음에도 많은 학생들이 농성에 참여했다. 밥도 함께 먹고, 크리스마스도 보냈다. 투쟁 속에서도 웃음은 났다. 서로가 서로를 지키고 있으니까.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나누니까. 연대의 경험은 누군가에게 미래가 되기도 했다. 재정 씨는 활동가가 된 현재의 삶을 이야기하며 “(사회) 운동을 처음 시작한 초기 단계에서 지지받은 경험이 활동가로서 운동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행사 날 누군가 “(우리는) 절망 속에서 찾은 희망”이라 말했다. 낯간지러운 말이라 생각했는지 와하하~ 웃음이 터졌다. 민주노조의 권리 투쟁과 그 산물은 그야말로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 모두가 포기하지 않고 나섰기에 가능했다. 학생과 교직원, 그리고 노동자는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이 되었다. 그리고 그 희망은 아주 질겨서, ‘비와 당신’과 함께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노조의 설립과 운동, 그리고 그 이후의 ‘비와 당신’이 한 활동은 2016년을 기준으로 성격을 달리한다. 우선 짚고 갈 점 하나, 노동조합의 활동은 크게 투쟁 활동과 일상 활동으로 나눌 수 있다. 투쟁 활동은 말 그대로 투쟁. 권리를 찾아가는 활동이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이어진 파업과 농성 활동, 구체적인 교섭 행위 등이 투쟁 활동에 속한다. 일상 활동은 투쟁이 불필요한 시기에도 청소노동자와 연대의 끈을 놓지 말자는 의미에서 비롯된 활동이다. 언제 또 조끼를 입고 권리를 외치며 싸워야 할 날이 올지 모르니까.
“노동조합이라고 해서 매일 조끼를 입고 투쟁하는 건 아니에요”
무슨 활동이든 지속이 시작보다 어렵다고 했던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손을 모아 만든 ‘비와 당신’이지만 활동을 꾸준히 지속하기는 쉽지 않았다.
긴 투쟁으로 얻어낸 권리로 노동조합은 이후 큰 투쟁 사항 없이 안정기를 찾았다. 햇수로 3년간 학교를 상대로 치열하게 대항했던 2013년의 학생들은 하나둘 졸업했고, ‘비와 당신’은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 2017년, ‘비와 당신’은 다시 학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4학년 때 문득 생각이 들었어요. 다시 학내 노동자분들, 조합원과 함께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죠.”
다시 모인 ‘비와 당신’에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노동자와 일상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다시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17년도 ‘비와 당신’에는 노동 운동에 관심이 있었던 학부생뿐만 아니라 노조를 몰랐던 사람들도 함께했다. 10명 남짓의 사람들이 모여 이번에는 노동자의 일상에 동행했다. 2017년 5월 ‘비와 당신’, ‘사회과학대학 학생회RIBBON’이 함께 연대의 날을 기획해 청소 노동자의 하루를 함께 보냈다. 새벽 6시부터 3시간 동안 청소 노동자와 함께 학내를 청소하며 그들이 느끼는 어려움을 몸소 체험했다. 먼발치에서 그저 청소노동자에 대해 ‘감사’하는 것을 넘어 이해하고 연대하기 위해서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에 오고, 학내 곳곳을 청소하며 근로 환경의 문제점을 보았다. 노동자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진솔한 대화도 나누었다. 직접 활동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들도 교정에서 이들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건네거나 응원의 목소리를 더했다. 곽진경 씨는 “학내 노동에 관심이 있었던 학생뿐 아니라 노동에 관심을 두지 않던 학생들의 지지를 받은 경험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일상에서 형성한 공감대는 참여의 폭을 넓혔다.
이후 학생들은 청소 노동자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점심시간과 공강을 활용해 인터넷이 익숙하지 않은 청소 노동자를 대상으로 컴퓨터 교실을 운영했다. 청소가 끝난 시간,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짬을 낸 노동자들은 처음에는 컴퓨터를 어떻게 켜는지도 몰랐지만, 차근차근 다음 단계를 밟아 나갔다. 타자 연습을 하고, 인터넷 포털 검색창 활용법을 배우고, 메일 전송법을 배웠다. 자투리 시간에 이루어지는 활동이었지만 학생과 노동자의 참여 열기는 뜨거웠다. 코로나 이전까지는 청소노동자들과 ‘비와 당신’이 등산 등의 여가 생활, 야유회, 체육대회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함께하기도 했다. 각자의 시간을 기꺼이 서로에게 내어줬다.
시간을 내어준다는 것은 함께 싸우는 것만큼 중요하다. 서로를 노동자, 학생 그 이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의 일상 활동에 참여하면서 학생들은 노동자를 ‘학교 청소를 하며 고생하시는 분’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된다.
과거의 치열하고 몸 부대끼는 격한 활동은 아니었지만, 소소한 일상 활동은 학생들과 노동자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혹여 다시 투쟁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함께했던 기억이 있기에 예전처럼 두려움에 떨지 않을 수 있다. 자연스럽게 노조원이 이탈하는 일도 줄었다. 노동자의 일상에 함께하는‘비와 당신'의 존재는 더 소중해진다.
“포기하지 말자고 손 잡아 준 것이 바로 학생들이었어요”
행사 막바지, ‘우리 학교에서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무엇이 더 필요하냐?’는 질문에 윤 분회장은 “10년 전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웃음과 함께 농담으로 말했지만, 수 년간 치열했던 투쟁의 역사를 두 눈으로 보니 그 말속에 얼마나 많은 눈물이 담겼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바랄 것이 없다고 지금 이대로 괜찮다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2013년의 노동 투쟁을 지금에 와서도 그대로 행할 필요는 없다. 그럼,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현재 중앙대학교에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조합으로 복수노조를 이루고 있다. 복수노조는 하나의 조직에 두 개 이상의 노동조합이 결성된 것을 의미한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조 두 단체 중 현재 노동자의 전반적인 처우 개선이나 노동 환경 개선을 이뤄낸 것은 2013년 직접적 투쟁을 진행했던 민주노조이다. 이전에 비해 노동자의 권리가 많이 증진된 지금도 노동환경에 문제가 생기면 한국노조 조합원들까지 민주노조에 크게 의지한다고 한다. 2013년 밤을 새우고 총장실을 점거하며 실질적인 투쟁을 통해 권리를 쟁취한 경험은 민주노조의 대응력을 높였다. 학교도 더 이상 노조를 힘없는 노동자의 모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권리를 행사할 수 있고 부당한 처우에 목소리 내어 환경을 자신의 힘으로 개선할 수 있는, ‘영향력 있는’ 단체로 인식한다.
문제는 민주노조가 이렇게 학교와 타 노조, 양측으로부터 인정받는 단체임에도 ‘교섭대표 노동조합’으로 단체교섭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교섭권이 없는 노조는 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을 논하는 자리에 직접 참여할 수 없고,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 자체를 제재당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중앙대에 민주노조가 없었을 때는 노조 자체가 없었다. 즉 노조의 시작이 ‘민주노조’이다. 하지만 교섭대표 노조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조합원의 수와 관련이 있다. 현재 교내 두 노동조합(청소, 시설, 경비 노동자)에 속한 조합원의 수는 200명이 넘는다. 하지만 그 중 민주노조의 조합원은 53명에 불과하다. 2014년 두 노조가 단일 창구화에 실패하면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의해 전체 노조원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한국노총을 교섭대표 노조로 지정했다. 교섭대표 노조가 아닌 민주노조는 요구안을 직접 제출할 수 없다. 3
복수 노조 내에서 개별 교섭권을 확보할 수도 있지만 현재 중앙대학교는 이를 막아놓은 상태이다. 두 노조가 각각 교섭권을 가지기 위해서는 중앙대학교가 교섭대표 노동조합을 선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즉 단일화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 하지만 학교 본부는 이를 동의하지 않았다.
개별교섭권을 확보하기 위한 또 다른 방법은 두 노조에 가입된 노조원의 근로 환경(근로 조건, 임금 등)에 확연한 차이가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앙대의 경우, 큰 차이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 또한 불가능하다. ‘그냥 한국노총에 맡기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스친다. 하지만 10년 전의 투쟁이 언제 다시 필요해질지 모른다. 노동자 스스로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제약 없이 말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 민주노조가 직접 교섭 테이블에 앉을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민주노조의 조합원에게는 학생의 도움이 절실하다. 학교와 노동자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상하 관계가 존재한다. 직원이 상사 눈치를 보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편 학생은 학교를 구성하는 대표적인 주체이자 학교의 수입원이다. 이 관계에서는 반대로 학교가 학생의 눈치를 본다. 학생이 말하면 학교는 ‘듣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윤화자 분회장은 학생들이 함께 연대한다는 사실을 알고만 있어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과거에 춥고 어두운 계단 밑 공간에서 나와 제대로 된 휴게실을 가지고, 근로계약서와 다르게 새벽녘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데는 학생이 옆에 있었기 때분이었다. 행사장에서 청소노동자 A 씨는 “처음에는 천막 농성이고 총장실 점거고 무서워서 다들 못하겠다고 했어요. 집에 가서 밥이나 할 걸. 그때 “포기하지 말자고 손잡아 준 것이 바로 학생들이었어요”라고 말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묵묵히 참고만 있던 부당한 일들을 밖으로 꺼내준 것은 다름 아닌 학생들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본교에 민주노조를 아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비와 당신’을 이끌고 활동하던 2013~2017년의 재학생들은 학교를 떠났다. (물론 아직 학교에 남아 있는 사람도, 사회에서 다시 학교로 돌아온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학교 밖 세상으로 새로운 발걸음을 옮겼다.) 더 이상 ‘비와 당신’은 학교에 남아있지 않다. 현재는 졸업생들이 가끔 시간을 내어 조합원들과 함께 모임을 가지곤 하지만 이를 지속적인 활동으로 발전시키기엔 각자의 삶이 바쁘다. 행사에 참석한 졸업생 B 씨는 “몇 해 전 ‘비와 당신’을 다시 결성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상황상 잘 추진되지 못해서 아쉽다”고 말하며 어렵게 모인 10주년 행사에 감사를 표하고 재결성 실패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곁
- [명사] 어떤 대상의 옆. 또는 공간적ㆍ심리적으로 가까운 데
- [명사 ] 가까이에서 보살펴 주거나 도와줄 만한 사람
2023년, 민주노총 서울지부의 분회 수는 300개에 달한다. 모두 하나로 연결된다. 다른 분회에서 문제가 생기면, 우리 학교의 분회가 돕는다. 만약 우리 분회에 도움이 필요하다면, 다른 분회에서 힘을 보탠다. 매년 이루어지는 임금 협상은 언제나 고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연대의 힘으로 노동자들은 버틴다. 투쟁이 필요할 때는 여기저기서 힘을 모은다. 2008년 70만원도 되지 않던 월급은 꾸준한 투쟁 끝에 시급 1만 원을 넘겼다. 정년도 65세에서 71세까지 연장됐다. 아플 때는 쉴 수 있고, 휴게실에는 에어컨이 생겼다. 안전한 일자리가 보장됐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는 서로가 있다. 학내 구성원이지만 우리는 이들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교정에 떨어진 낙엽은 어느샌가 치워져 있고, 화장실은 물기 하나 없이 깔끔하며 그 많은 쓰레기통도 하루가 지나면 말끔히 비어 있다. 깨끗한 건 당연하지만 어쩌다 더럽혀진 모습을 보면 불쾌한 감정이 든다. 누가 그 많은 일을 하는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학생’으로 캠퍼스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에 타인의 희생과 돌봄이 뒷받침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학교에는 학생과 교직원만 있는 곳이 아니다. 학내 전반을 돌보는 모든 청소, 기계 설비, 경비 노동자의 노력과 돌봄이 있어야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을 영위할 수 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들 한다. 하지만 대학이라는 공간은 나와 다른 사람의 삶에 들어가고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곳이기도 하지 않은가. 많은 학생이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전선으로 뛰어든다. ‘노무사 합격, 로스쿨 변호사 시험 전원 합격, 세무사 합격’이 줄지어 달린 플래카드를 보고 은연중에 “나는 ‘화이트칼라’ 직종에 종사할 거니까 청소 노동자의 상황은 알 필요 없어” 또는 “학내 노동조합이 굳이 필요하나”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지는 않은가? 기억할 것이 하나 더 있다. 소위 말하는 화이트칼라 직종도 노동자이다. 우리는 모두 노동자이고, 노동자가 된다. 삶을 사는 과정에서 누구나 부당한 일을 겪을 수 있고, 이에 연대해야 하는 상황은 발생한다. 그저 당장 나의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는 것은 너무나도 근시안적인 위험한 사고이다.
이재정 씨는 학부 졸업식 날 조합원들이 꽃다발과 선물을 준비해 졸업을 축하해 준 것이 잊지 못할 기억이라고 말한다. 학교 어느 공간을 가더라도 아는 얼굴이 있다는 것. 친구들과 동기들이 모두 졸업해도 그들은 그 자리에서 학교를 돌보고 있다는 사실은 학교라는 공간에 더욱 큰 애정을 가지게 한다.
중앙대학교에 민주노조가 결성된 지 10년, 우리에게는 여전히 ‘함께’가 필요하다. 일시적인 활동과 행사는 잊히기 쉽다. 한 번의 외침은 사라지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메아리를 남길 수 있다. 지금까지 ‘결성’이라는 큰 산을 넘었다. 이제‘지속’이라는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헤엄칠 차례다. 우리가 사용하는 강의실, 화장실, 학식당, 빼빼로광장, 운동장 모두 노동자의 손을 거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메아리 속 또 하나의 울림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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