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위원 김서현
당신은 대학을 왜 다니는가?
당신은 이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있는가? 필자가 스스로 이 질문을 처음 던진 건 작년 가을, 독일에서 교환학생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코로나 학번이었기에 첫 대면 대학 생활을 독일에서 맞이했다. 기존에 하지 못했고 또 안 했던 새로운 경험들과 다양한 나이, 성별, 전공, 출신의 친구들을 만나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갔다.
나의 목소리를 내는 곳
‘멘자(Mensa)’라고 불리는 독일의 학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소책자 하나를 받았다. 당시 국제 이슈였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토론회에 오라는 홍보 책자였다. 그날 이후로도 강연회, 토론회, 심지어는 ‘시위합니다’라는 제목의 홍보물을 거의 매일 받았다. 그 당시 쟁점이 되는 키워드를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듣고, 다른 사람과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행사가 자주 열렸다. 그 주제는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카페테리아(Cafeteria)에서도 받았다. 올해 여름에 가장 많이 언급되었던 키워드인 ‘기후 위기’와 관련한 강연회 및 시위를 홍보하는 것이었다. 오래전부터 독일에서 환경은 늘 중요하며 핵심적인 논의 주제였다.열대야부터 초가을 쌀쌀함까지 변동이 컸던 올해는 특히 자주 언급될만큼 중요도가 높았다. 1
▲(좌) 예나대학교 멘자, (중) 카페테리아, (우) 홍보물 부착 게시판
한 번은 독일 친구에게 물어봤다. 학생들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자기의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는 사람이 없느냐고. 그리고 반대하는 사람이 없느냐고 말이다. 그러자 그 친구가 “오히려 반대로 물을게. 학생들이 대학교에서 자기 의견을 내세우고 함께 토론하는 게 왜 문제이고 의문을 가져야 해?”라고 되물었다. 부끄럽게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질문을 처음 생각해 봤다. 정말 왜 그럴까?
한국에서는 개인의 의견을 ‘색’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에 괜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그리고 강하게 밝히는 일이 많이 없다. 토론회는 그럴 수 있어도 한국에서 시위는 말도 안 된다. 내 할 일 하나 하기도 바쁜 이 시기에 어디에 또 관심을 둬야 한다니. 학점 챙기기 바쁜 우리에게는 너무나 피곤하고 터무니없는 소리일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독일 대학생은 사회 문제가 뉴스와 글로만 남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목소리를 아주 자유롭게 낼 수 있는 곳, 그 대표적인 공간이 ‘멘자’였다. 서로 다른 전공의 학생들이 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각의 ‘다양성’을 배우고 나눈다. 자신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 수 있는 장소이다. 더 나아가 한국에서 입시 때마다 등장하는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다짐을 독일은 이미 ‘실현’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전공 관련해 가장 많이 묻는 말이 “그 학과 졸업하면 보통 어떤 일 해?”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대학에서 학생에게 특정 학문, 학과를 강요하기 전 고등학생 때부터 우리 머릿속에는 ‘인기 직종’, ‘인기 학과’가 각인되어 있다. 물론 학과를 결정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중요한 사항인 건 인정한다. 하지만 진로를 결정할 때 우리는 대학에서 몇 갈래로 정해놓은 길들 중 하나를 선택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등교할 때 본교 캠퍼스에 걸린 현수막들만 봐도 알 수 있다.“CPA”, “최다 합격”을 말하는 플랜카드들이 즐비하다. 내 관심사는 크게 중요하지 않고, 한국 사회의 최신 유행 반열에 오른 특정 직업군(예를 들어 회계사 등)으로의 진출을 준비하는 것이 대학생들에게는 당연한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동아시아학 석사 과정 중 한국으로 한 학기 교환학생 파견을 나온 학생 A 씨(26세, 프랑크푸르트 출신)는 “만 18~19세의 나이에 학사를 시작해서 진로를 뚜렷하게 정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한국계 독일인인 A씨는 “대학 입학 당시에는 부모님의 입김에 못 이겨 경영학 학사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녀는 관심이 없는 수업을 듣고, 시험에 통과하기 위하여 공부하고, 졸업 요건을 맞추기 위해 여러 프로그램을 참여해야 했던 수동적인 학부 시절 묘사했다. 어느 순간 그저 시험을 위한 암기와 수업은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고 설명했다. 이후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 직업군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는 다양한 가치를 공부하고자 현재 석사 과목인 동아시아학 공부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독일 학생들도 대학에 입학할 당시에는 타의가 개입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이후에 본인이 현재 소속된 학과에 국한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더욱 집중한다. 자신이 어떤 일에 흥미가 있으며, 앞으로 무얼 하고 싶어 하는지에 끊임없이 고민한다. 실제로 많은 독일 친구들은 필자에게 소속된 학과보다는 대학교 졸업 후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더 많이 했다.
이는 개인의 주체성을 넘어 학업과 진로 선택 내에서 주체성을 갖고 사는 것 같다는 차이점으로 다가왔다. 더 나아가 그들에게는 흥미로운 분야,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분야와 같이 진로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있어 나름의 확신이 있었다. 어떤 학교나 지역의 출신이 진로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전공 공부를 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정한다. 주변 환경이 그들에게 꿈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환경을 만들어가는 주체성이 강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입시라는 인생의 커다란 첫 관문을 통과해 대학에 입학했지만 아무도 왜?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질문조차 받아본 적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대학 졸업장은 ‘진정한’ 성인의 시작이자 청춘의 결과로 규정짓는 잣대로 사용된다. 누군가는 학교 이름과 학위가 적힌 졸업장이 스펙의 그 이상인지 아닌지 확신이 서지 않을 수 있으며 오히려 한참이 지난 후에 허무한 질문을 하게 될 때도 있다.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힘들게 다녔는데도 졸업 후에 “나는 대학을 왜 다녔지?”라는 말이 내 입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왜 대학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보지 못한 것일까? 더 나아가 왜 주체성에서 차이가 나는 것일까?
대학 구성 요소의 차이
일단 ‘대학’이라는 단어의 어원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고등교육법」 인격을 도야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학술의 심오한 이론과 그 응용 방법을 교수·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공헌함’을 목적을 둔 기관 2 |
한국어로 “대학(大學)”은 大 큰 대, 學 배울 학으로 구성되어 있어 직역하면 ‘큰 학교’이다. 역사적으로 한자 및 동아시아 문화권의 전통 교육 시스템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 한자를 사용하여 종합적인 고등 교육 기관의 개념을 지칭한다.
반면 영어 ‘유니버시티(university)’의 어원이라고 할 수 있는 우니벨시타스(universitas)는 라틴어로 ‘하나’를 뜻하는 우눔(unum)과 ‘방향’을 뜻하는 베르토(verto)가 합쳐져서 생긴 말로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공동체’를 뜻한다. 3대학의 공동체적 성격은 이미 어원에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즉 대학은 원래 순수한 학문의 자치 기구인 하나의 공간으로서 지적인 호기심과 열정을 지닌 교수와 학생이 모여 학문을 논하고, 연구·교수·교육이 이루어지는 지적 공동체로서 출발했다. 4여기서 핵심은 교수와 학생이 ‘함께 논한다’는 것이다.
차이점 1. '왜?'를 묻는 곳
이러한 어원은 수업 형태로 이어진다.
독일 예나대학교의 224번 강의실, 모두가 독일인인 강의실에 한국인이 한 명 앉아 있었다. 세미나 명(名)은 미국의 민주주의 사상(Demokratische Ideen in den USA: Democratic ideas in the USA.)이었다. 첫 시간 오리엔테이션 후 준비해야 할 교재를 알려주시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시대 흐름 상 중요하게 여겨지는 대표적인 리딩 자료를 제외하고는 수업 내용 교재는 애초에 없었다. 만약 한국에서 수업이 이러했다면 반응은 안 봐도 뻔하다. 학내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어 교수의 수업 준비 태도 논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교수는 강의실에 들어오자마자 ‘왜 수업에서 미국을 다뤄야 하는지’ 물었다. 민주주의를 공부하는 데 있어서 미국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이유와 미국이 갖는 중요성에 관한 질문이었다. 학생이 수업을 선택할 때 대체로 수업 주제보다는 ‘시간’을 더 많이 고려하기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갈피를 전혀 잡지 못했다.
그때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꽤 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반소매 옷을 입어 이미 이목을 끌었던 학생의 대답이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너무 쉬워요. 현재 미국이 전 세계의 중심이지만 그 국가의 역사는 짧으므로 현재 체제의 형성과 발전 등의 과정을 세세하게 알기 쉽기 때문이에요.”
언뜻 듣기엔 그저 당연한 답변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수는 진지하게 들으며 “그것도 중요한 관점에서 나온 좋은 대답이다. 너는 왜, 무슨 근거로 그렇게 생각했니?”라는 질문이었다.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나누는 대화가 수업의 방향이며 주된 내용이 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신기한 풍경이었다. 이론수업임에도 왜? 라는 질문을 이어나가면서 이 수업을 들어야 하는 이유, 그 필요성과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학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한 건 없었다. 한명 한명의 답변 모두 소중한 개인의 의견이었다. 적어도 이 강의실에서는 모두의 의견이 수렴될 수 있으며 다양한 관점의 근거를 배울 수 있는 곳이겠구나 싶었다.
이렇듯 독일 대학은 수업을 대부분 토론 형식으로 진행한다. 일반적으로 ‘강의’와 ‘세미나’를 모두 수강해야 해당 수업의 학점을 취득할 수 있는 구조이다. ‘강의’는 한국에서 흔한 일방적인 지식 전달 형태의 수업이다. 반면 ‘세미나’는 해당 강의의 하위 수업으로, 비슷한 주제의 세미나 주제를 선택하여 한 학기 동안 발표, 토론을 진행하며 소논문을 작성을 한다. 강의와 세미나 모두 수강해야 완전한 학점을 얻을 수 있다.
독일 대학의 커리큘럼 설계에 대한 자율성은 독일 교육 시스템의 오랜 전통이다. 이 원칙은 학문의 자유라는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토론 수업의 실시를 규정하는 구체적인 법률은 없지만, 비판적 사고, 의사소통 능력, 논증에 대한 강조는 상당 기간 동안 독일 교육의 다양한 측면에 통합되어 왔다. 대학은 역사적으로 학생들에게 이러한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해 왔다.
A 씨는 “수업을 통해 진로 선택의 동기부여를 찾기도 하고, 그 동기를 배우기 위해 수업을 듣기도 한다”고 말했다. 교수의 질문을 듣고, 다른 학우들과 함께 하는 토론을 통해 나의 의견을 정리해서 표현함으로써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도 늘어나는 것이다. 이는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흥미와 목표를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된다. 더 나아가 “교수와의, 수업을 함께 듣는 학생들과의 다양한 교류를 통해서 하고자 하는 방향이 명확해지기도 하며 그 길이 확장되는 장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원칙이 처음 확립된 시기의 구체적인 내용은 하나의 법률이나 법령에 의해 규정된 것이 아니라 독일 고등교육의 문화와 철학에 깊이 내재되어 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는 사회와 교육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발전해 왔다. 비판적 사고와 의사소통 능력에 대한 강조는 오랜 세월 동안 독일 대학의 정신의 일부로 자리 잡았으며, 이론적 지식과 함께 균형 잡힌 사고와 실용적인 기술을 중시하는 폭넓은 교육 접근 방식을 가능하게 했다.
차이점 2. '함께'를 실천하는 곳
3월 첫째 주 금요일(2023.03.03), 뮌헨의 시내 중심부인 오데온 광장(Odeonplatz)에 가까워지니 북소리를 포함한 여러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Wir alle für 1,5 Grad (우리 모두 1,5도를 위해)!”
▲ (좌) 오데온 광장에 설치된 무대에서 연설을 하는 한 학생, (우)길바닥에 기후 위기 시위에 함께하자는 문구가 쓰여있는 예나의 한 길거리
“우리와 그 다음 세대가 살아갈 환경에 관심을 쏟고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들의 역할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프라이데이 포 퓨처스(미래를 위한 금요일 행진, #Fridays for future)는 2018년 8월, 15세 스웨덴 출신 소녀 그레타 툰베리와 다른 청소년 활동가들이 3주 동안 매일 스웨덴 의회 앞에서 기후 위기에 대한 조치가 없는 것에 항의하며 시작한 청소년 주도 및 조직 운동이다. 5
이 시위는 대학생이 주도하지만 그 구성원은 매우 다양하다. 같은 메시지를 어린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대학생, 지역 주민 그리고 필자와 같은 외지인(혹은 외국인)이 함께 공유하며 외친다.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시청에게, 국가에게 소리친다.
우리는 흑석에 있는 대학을 다니지만 사실 ‘흑석동’또는 ‘상도동’ 주민들과 무언가를 함께해본 적은 거의 없을 것이다. 독일은 대학교의 이름에서부터 해당 지역명이 붙기도 하고, 해당 대학 출신의 유명 학자의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헤센주에 있는 독일의 국제도시 프랑크푸르트암마인(Frankfurt am Main)은 유명 작가이자 학자인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이름을 결합해서 ‘요한 볼프강 괴테 프랑크푸르트암마인 대학교 (Johann Wolfgang Goethe-Universität)’로 칭한다. 튀링겐주에 위치한 예나의 대학교는 ‘프리드리히 실러 예나대학교 (Friedrich-Schiller Universität)’ 가 정식 명칭이다. 이렇게 지역 사회와의 연결성이 높으면 대학은 학생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지역 주민이 함께 사회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된다.
또 학교(예나대학교) 축제가 곧 그 지역(예나시) 축제가 되고, 지역 행사를 학교 캠퍼스에서 진행하기도 한다. 여름 학기 중에 지역 축제인 Sommerfest (Summer festival)가 예나에서 열렸는데, 일부 프로그램이 학교 캠퍼스 내에 자리 잡았다. 나는 용기내어 처음 보는 예나 주민에게 주말에 캠퍼스가 붐비는 모습이 어색하다고 운을 띄우며 대화를 걸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회 소외 계층이 되기 쉬운 어린아이들, 노인들의 행복해하는 얼굴들이 보였다. 대학이 학문적인 것을 넘어 지역 사회의 중요한 공간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새로웠다. 이렇게 내 머릿속 대학의 의미가 하나 더 추가됐다.
독일은 약 60%의 대학이 주 정부와 연방정부에서 자금을 지원받는 주 정부가 운영하는 공립대학이다. 대부분 학생이 이러한 대학에 재학 중이며 대부분 수업료를 내지 않는다. 6따라서 독일 학생들은 굳이 멀리 있는 수도 베를린과 그 주변 지역에 있는 대학까지 올 이유가 없다. 한국의 ‘인서울’처럼 독일에서 베를린에 있는 대학교를 나온 건 엄청난 자랑거리가 아니다. 어떤 학과를 전공했는지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재학생 대부분이 해당 지역 주민이기에 지역과 주민과의 유대 관계도 좋은 편이다. 이렇게 대학교는 지역 주민들과도 의견을 공유하며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쉽게 모일 수 있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 메인 건물이 있는 곳, 가장 많은 행사, 축제, 시위 등이 열리는 캠퍼스
오로지 대학만을 위해 대부분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그림이다. 학생들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도 바쁜 상황에서 주변을 살필 여유가 없다. 또 잠시 머무는 곳이라고 생각해 그 도시에 흠뻑 빠져 어울리기 어렵다. 그래서 최근에 본교 차원에서 시도하고 있다. 지난 10월에 열린 “쓰담 달리기” (2023.10.05 진행) 행사는 중앙대가 학교 밖 동작구 주민들과 함께한 유일한 행사이다. “쓰레기를 주우며 조깅을 하는 환경 운동인 플로깅”의 우리말로, 중앙대 개교 107주년 기념 마라톤 행사인 '달려'가 끝난 뒤 진행됐다.
본인이 머무는 지역 사회에 대한 소속감과 이해도가 상승하면 더욱 발전적인 문화 교류로 이어질 수 있다. 그 교류의 확장은 대학생으로서 또 다른 경험의 장이 될 수 있으며 관점의 확장과 장벽을 허물 기회가 된다. 지역 주민들과의 교류는 학생들이 다양한 관점에 노출되고, 선입견에 도전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서로는 공감과 소통 기술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개인적 성장을 향상할 수 있는 또 다른 창구로 연결할 수 있게 만든다. 즉 대학생들은 자신의 환경과 이용 가능한 기회에 대한 깊은 이해를 이룬다. 이를 바탕으로 정보에 입각한 결정을 가능하게 하며 주체성을 높인다.
목소리가 모일 수 있는 곳의 중심에 대학생과 대학이 있다. 대학의 넓은 공간이 학생들과 주민들의 통합을 이루어낸 곳이 된다. 사람이 모이고 뜻이 모이는 곳에서 하고자 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대학교는 통합의 자리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차이점 3. '기회'를 제공하는 곳
하루는 날씨가 좋아 하교 후 시내로 발걸음을 돌려 예나 시내 박물관(Stadtmuseum Jena)을 방문했다. 결제 카드를 내밀었으나 학생증을 달라는 요구를 받았고, 바로 무료입장이 가능했다. 낮은 학비로 유명한 독일에서 학생증은 말그대로 ‘만능’이다. 학생증 카드로 그 주의 모든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독일을 벗어나 유럽 내에 있는 박물관, 미술관에서 할인도 받을 수 있다. 덕분에 프랑스 파리 오랑주리 박물관도 프리패스로 다녀왔다.
덕분에 교환학생 생활 중 여러 박물관들을 다녀왔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Romantikerhaus(로만티커하우스, Romantic House) 7이다. 철학자 요한 고틀립 피히테의 옛 집에 있는 박물관으로, 예나 초기 낭만주의의 발전과 중요성에 대해 소개하는 역사박물관이다. 이 전시를 보고 독문학의 낭만주의에 흠뻑 빠졌다. 수업 시간에 잠시 배웠던 초기 낭만주의 문학 사조의 시초지인 예나에서 당시 흔적을 지금 보고 느낄 수 있다니. 당시 길거리에 학자들, 피히테, 노발리스 등이 앉아 대화를 나누고 글을 쓰는 모습이 그려졌다. 현대적인 관점으로 다양하게 해석하여 전시해놓은 여러 설치 미술과 작품들까지 체험할 수 있었다. 즉 시대와 공간을 넘어 당대 작품과 작가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인간의 내면, 자연과의 조화 등을 주제로 삼아 독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왔다. 이것이 연결되어 본 전공 공부에도, 사회와 다양한 학문 간의 커다란 유기적 관계에도 큰 흥미를 느꼈다. 학문이 정신적 탐구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내면세계를 탐구할 수 있는 매개로서 이해됐을 때의 벅참이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다.
“새로운 지식을 아는 것은 세상이 (사람과 관련하여) 어떤 구조로 돌아가고,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것들은 대학생으로서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은 그것을 대학에서 할 수 있다.”
한국계 독일인 A씨의 말이다. 예술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준다. 박물관에서 역사를 경험하고 미술관에서 예술의 현장에 참여하는 행위 자체가 나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이 된다. 자기 삶, 앞으로 걸어가야 할 미래, 즉 진로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할 여유를 바쁜 일상에서 잠시 내어주기 때문이다. 역사 박물관을 방문하면 약 400년 전 사람과도 소통하고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현재 볼 수 있는 것들이 그 당시에는 없었고, 그 당시에는 있는 것들이 지금 없는 것을 비교할 때 시간의 당연한 순리가 신비롭게 느껴진다. 시간은 흐르고 장소와 사람은 변한다. 더 나아가 혼자 사는 사회가 아니다. 이는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으며 인문학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데 충분한 요소이다.
한국에서 예술 활동은 스스로 동아리에 가입하지 않는 이상 꾸준히 하기 어렵다. 동아리도 가입비 부담은 결국 본인이 해야 한다. 흔히들 말하는 대학생의 ‘소중한 기회’는 무엇인가. 단순히 공부할 공간을 제공한다, 학식을 저렴하게 먹는다에서 그치면 안된다. 사회, 문화, 철학, 기술 등 다양한 세상을 배우며 깨우치고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는 시기를 마음껏 누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경제활동을 제대로 시작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돈’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계속해서 치솟는 물가, 식비, 거주비.. 편하게 마음 놓고 학교생활을 하기는 어렵다.
대학생 중 자신의 전공에 만족도를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 또한 대학의 기능 중 중요한 요소이다. 독일의 대학생으로서 누렸던 문화생활들이 지금의 높은 전공 만족도에 기여했다.
차이점 4. '다음'을 위한 곳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독일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들과 나는 어떤 게 달랐을까? 대화를 나누며 가장 크게 느낀 차이는 ‘입시’였다. 독일에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아비투어(Abitur)’라는 시험을 응시한다. 이는 각 대학의 ‘입학’을 위한 시험이기보다는 고등학교 ‘졸업’ 시험에 가깝다. 이 시험을 통과해야 졸업 자격이 부여되며, 독일 연방 주에 있는 모든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즉 연간 약 90% 이상이 통과하는 아비투어 후에는 어느 대학이든 지원할 수 있다 8. 대신 불합격하면 해당 연도에는 대학에 지원할 수 없다.
만약 대학 입학 정원에 비해 더 많은 지원자가 지원하는 경우, 대학은 자체 기준에 따라 선발 기준이나 선발 절차를 결정하기도 한다. 대부분 학교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면접을 시행한다. 9한국의 수시 면접과 비슷하다.
큰 차이는 시험 형식에서 보인다. 전부 객관식인 수능과 달리 아비투어는 필기시험과 구술시험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위 ‘특별 과목’이라고 불리는 두 과목 은 필기시험으로 치러진다 10.
요건 영역 I은 학습한 맥락에서 사실과 지식을 재현하고, 이해를 보장하며, 연습한 작업 기술 및 절차를 적용하고 설명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문학 작품을 재분석하는 과제가 예시이다. 요건 영역 II는 실무에서 익숙한 맥락에서 주어진 관점에서 알려진 사실을 독립적으로 선택, 배열, 처리, 설명 및 제시하는 문제들이다. 학습한 내용을 유사한 새로운 맥락과 사실에 독립적으로 이전 및 적용하는 것으로 구성되는 비문학 논술형 문제이다. 마지막 요구사항 영역 III은 문학 텍스트를 참조하여 사실적 텍스트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주 목적이다. 독립적인 해결책, 설계 또는 해석, 결론, 일반화, 정당화 및 평가에 도달하기 위한 복잡한 사실의 처리로 구성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과제를 마스터하기 위해 적절한 작업 기술과 절차를 독립적으로 선택하고, 새로운 문제에 적용하고, 자신의 접근 방식을 확인한다. 11 특정 주제와 분야(학문)에 대해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하고 논리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능력을 대학 입학 전부터 요구한다. 학교를 다니고 아비투어 준비하며 길러진 능력은 학생들이 단순히 정보를 기억하고 전달하는 것을 넘어선다. 다양한 의견과 이론을 분석하고 해석하여 스스로의 의견을 형성하는 것을 돕는다. 반면 한국 교육과정에서는 지식 습득과 시험 성적 중심으로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학생들은 주어진 정보를 단순히 받아들이고 외우는데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는 자유로운 사고와 의견 형성에 있어서 부족한 결과를 이끌 수밖에 없는 원인이다.
수능은 대학 입학 전 치르는 마지막 시험이다. 다섯개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시험은 어쩌면 대학에 고스란히 넘어오는 듯하다. 반면 아비투어에서는 반드시 자신의 정립된 생각을 수기로 작성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교육체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학생)의 내면에도 영향을 준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에 대해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을 ‘졸업 요건’으로 정하는 것이다.
자기자신을 더욱 잘 아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대학을 당연히 가야 하는 곳으로 여기기 보단 그 의미를 생각하고 내 삶이 주체적이길 원한다. 중앙대학교 내 독일 교환학생 6명을 만나 그들이 대학에 진학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그 중 4명은 목적 의식을 분명히 한 채로 대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생각을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놀랍게도 막상 대학에 들어올 때는 특별한 목적이 없었다고 답한 사람도 있었다. 동아시아학 석사 과정의 A씨는 “자신은 처음에 그냥 대학에 들어왔기 때문에 하고자 하는 게 확고한 친구들이 부러웠다” 고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정치학 전공의 B씨(21세, 베를린 출신)에게 대학교는 초등, 중등,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경험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형태의 교육기관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의 의미를 “학업뿐만 아니라 다음 직업을 위해서도 중요한 단계”라고 답했다.
대학은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에 첫 발걸음을 내딛는 기회의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학이 우리 삶의 최종 목표여서도, 인생의 우선순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삶에 있어서 대학은 중요한 수단일 뿐, 대학교라는 단계에 우리를 멈춰 세우면 위험하다. 이 시점에서 대학을 왜 다니는지, 내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생각하는 것은 우리들의 주체성을 자극하는 하나의 요소가 된다.
내게 주어진 빈 답안지를 채울 시간
서두에 던진 질문, “대학의 의미”에 대한 답변을 생각해 보았는가. 취업, 스펙, 졸업장, 친구, 수업, 당연한 과정, 경험 등 모두 좋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의미를 스스로 ‘고민’하는 과정이다.
글을 쓸 때도, 기획을 새롭게 진행할 때도, 무슨 일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나와야 하는 질문이 있다. 바로 '왜? why'이다. 무엇이든 목적이 분명해야 다음으로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는 것처럼 대학교에 다니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그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당연하게 따라야 하는 '다음 순서’가 아니라 대학 생활이 인생의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명확한 ‘이해와 동기’가 필요하다. 남들이 좋다고 해서, 취업이 잘 된다고 해서 무조건 선택하는 ‘학과’가 아니라 적어도 내가 정말 배우고 싶은 내용을 품고 있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의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특성상 우리는 나 자신에 집중할 시간을 미성년 시기에 가지기 힘들다. 학생들 스스로가 ‘인서울 대학 못가면 죽음뿐…’ 으로 생각하는 현실은 압박하는 주체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희미해짐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는 이 체계를 바꾸는 건 지금 당장 하기 어렵다는 걸 너무나 잘 안다. 그렇기에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스스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경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압박하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보이지 않는 압박에 저항하는 매개로서 지속적인 물음이 첫걸음이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사람이 제외될 수는 없다. 세상을 살아가는 주체는 우리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대학을 왜 다니는지,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기는 무엇이며 그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는 것이 지금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이다. 사람들에게 돈을 버는 것 이외에도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인도적인 차원에서의 공생, 삶의 의미와 목적, 교육, 건강 등 다양한 개념이 예시이다.
물론 대학의 의미를 고민할 때 주변의 영향을 받는 것이 절대 잘못된 일이 아니다. 더욱이 당신에게 대학에 다니는 이유가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서, 좋은 스펙을 쌓기 위한 것이라 해도 오답이 아니다.
다만 학교 캠퍼스를 누비다 보면 곳곳의 ‘회계사 합격’, ‘CPA 최다 합격’ 등이 적힌 플랜카드가 자연스레 눈에 들어온다. 이 문구에 내가 마냥 흔들리지 않았는지, ‘00학과 나오면 당연히 00자격증 따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여러 말들에 내 생각과 손이 그저 따라 움직이고 있진 않았는지 돌아보자. 과연 내 가슴을 뛰게 하는지, 내 눈을 반짝이게 하는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유행, 순서, 이치라는 단어들이 나의 자유로운 생각을 가로막을 순 없다. 그게 우리가 다니는 대학의 순기능이자 의미이다.
대학의 의미에는 정답도, 오답도 없다. 우리가 각자 살아온 배경, 환경이 모두 다르기에 각자가 생각하는 대학의 의미가 다 다른 것은 당연하다. 비슷해져 갈 필요가 전혀 없다.
우리에게는 그저 빈 답안지만 있을 뿐이다. 어떤 경험들로, 생각들로 채우는지는 철저하게 개인에게 달려 있다. 내가 걸어가는 길이 곧 내 목소리를 담은 답안지이다. 그것을 스스로 채울 수 있는 시간을 갖고자 필자의 교환학생 일기를 공유해봤다.
가던 발걸음 잠깐 멈추고 생각해 보자. “나 대학 왜 다니지?”
- Deutscher Wetterdienst, “Wetter und Klima - Deutscher Wetterdienst - Presse - Deutschlandwetter im Sommer 2023”, 2023.12.09. [본문으로]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학(大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3.12.09.
[본문으로] -
한국대학신문, “유니버시티와 칼리지”, 2019.04.24,백형찬, [대학의 歷史③] 유니버시티와 칼리지 < 에세이 < 칼럼 < 지성의 전당 < 기사본문, 2023.12.09. [본문으로]
- 손승남 (2013), 「대학설립 초기의 교양교육 전통과 그 창조적 재생」, 교양교육연구, 제7권 2호, 6. [본문으로]
- Fridaysforfutur, “Fridays for Future”, 2023.12.09. [본문으로]
- DAAD, “Die richtige Hochschule - DAAD”, 2023.12.09. [본문으로]
- Jena Kultur,”Städtische Museen Jena”, 2023.12.09. [본문으로]
- Tagesschau, “Trend zur Hochschulreife: Immer mehr Schüler machen Abitur | tagesschau.de”, 2023.12.09. [본문으로]
- Studis Online, “Auswahlgespräche an Hochschulen - Studis Online”, 2023.12.09. [본문으로]
- 여기서 선택되는 두 과목은 독일어, 수학, 외국어(늦어도 8학년부터 시작한 외국어) 또는 자연과학 중 하나인데, 이 과목들은 이미 2~3년간의 학교 교육 과정에서 핵심을 형성하며 시험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과목 조합에 관해서는 제한이 없으며 온전히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본문으로]
- QUA-LIS-NRW Schulentwicklung, “Schulentwicklung NRW - Lehrplannavigator S II - Gymnasiale Oberstufe - Deutsch - Deutsch KLP - 4 Abiturprüfung”, 2023.12.0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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