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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호 <르네상스: 붕괴와 재건>/사회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

by 중앙문화 2023. 7. 9.

2023 봄여름 84호 <르네상스: 붕괴와 재건>

수습위원 손수민

 

 꿈틀. 꿈틀. 스르륵.

 

 쉿. 지금 막 알에서 올챙이가 나왔다. 얼핏 보면 투명한 몸통을 가지고 긴 꼬리를 흔들며 물 속을 유영한다. 다리도 없는 작은 올챙이. 아가미로 호흡을 이어간다. 올챙이에게는 곧 뒷다리가 나올 예정이다. 뒷다리가 생기면 앞다리도 나올 거다. 완연한 성체가 될 자신의 모습을 고대하는 올챙이는 누구보다 힘차게 헤엄친다. 

 

 개굴- 개굴- 

 

 저기서 개구리가 등장한다. 개구리는 울지도 않는다. 조용히 기다린다. 그때, 개구리의 시야에 올챙이가 들어온다. 일초의 정적이 흐른다. 개구리는 한 번에 뛰어올라 입을 크게 벌린다. 

 

 꿀꺽-

 

 그리곤 빠른 속도로 올챙이를 삼킨다. 녹색개구리는 유유히 사라진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각주:1] .”

 

 모든 개구리가 올챙이를 먹진 않는다[각주:2].  오직 소수의 종만이 올챙이를 삼켜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먹는 모습이 기이하게도 느껴진다. 이런 야만적인 개구리는 강가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당장 우리의 곁에서 개구리의 모습이 아닌 인간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를테면 아동의 출입을 금지하는 '노키즈존(No Kids Zone)' 가게를 이용하면서 말이다. 

 

 

‘노키즈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2살4살맘 중앙씨의 일상 퀘스트

 

>>중앙씨와 아이들이 카페에 가는 중이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에 중앙씨와 아이들은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다. 그럼 지금부터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카페에 입장하시겠습니까?

  A) 예

  B) 아니오

 

>>잠깐! 돌발상황! 2살 아기를 태운 유모차가 카페 문턱에 걸렸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A) 집에 돌아간다.

  B) 유모차를 있는 힘껏 든다. 중앙 씨의 진이 다 빠진다.

 

>>중앙씨와 아이들이 카페에 입장했습니다.  잠깐! 돌발상황! 메뉴판이 전부 영어로 쓰여 있다! 아직 영어를 읽지 못하는 4살 아이를 위해 중앙씨가 메뉴 설명을 하고 있다. 중앙씨 뒤에 다른 손님이 줄을 서기 시작해 마음이 급해진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A) 그냥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음료 아무거나 주문한다

  B) 뒤로 빠져 아이한테 메뉴 설명을 해준다

 

>>이제 주문도 마쳤고 자리에 무사히 앉았다. 잠깐! 돌발상황! 2살 아기가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중앙씨가 가방에서 빠르게 아기 과자를 꺼냈지만, 카페 주인에게 바로 제지당한다. 다른 손님들도 따가운 눈초리를 보낸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A) 눈칫밥 먹으며 앉아있는다

  B) 카페를 나간다


 공공장소에서는 물론이고, 가까운 식당과 카페만 가도 어린아이를 곱게 보는 눈빛이 많지 않다. 이러한 시류에 힘입어 2014년, 아동의 출입을 금지하는 노키즈존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소란스러운 아동과 방치하는 부모를 지탄하는 여론이 물리적인 공간까지 바꿔놓은 것이다. 노키즈존의 등장으로부터 시간이 흐른 지금, 이제 노키즈존은 일상에서 흔한 개념이 됐다. 이를 문제 삼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아동 출입 제한을 지지한다. 이들은 ‘노키즈존 지도’를 활용하여 노키즈존 가게를 골라가기도 한다[각주:3].

 

 

노키즈존 운영 찬반 설문조사. 한국리서치.

 2021년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노키즈존 여론조사에 따르면 71%의 응답자가 노키즈존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부모 중 70%도 찬성했다. 

 

 

중앙문화 축제 부스 사진(왼쪽)과 노키즈존 찬반 여부 스티커 설문(오른쪽).

 중앙대학교 학생들은 노키즈존을 어떻게 생각할까. 본지는 중앙대생을 대상으로 ‘노키즈존 찬반 여부’에 대해 이틀간(2023.05.22.~23) 간단한 스티커 설문을 진행했다. 그 결과 전체 응답자 100명 중 44명(44%)이 찬성을, 56명(56%)이 반대를 했다. 매우 근소한 차이로 반대 표가 조금 더 많았다. 두 설문에 비춰 봤을 때 지금 한국 사회는 노키즈존 찬성으로 여론이 기울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노키즈존은 단언코 아동 인권 침해이며 차별이다. 또한 노키즈존의 확산과 수용은 현재의 한국 사회가 양육자를 달갑게 바라보지 않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 한때는 아기였고 유아였고 아동이었다

 애가 없어서 곧 무너질 위기라는 대한민국,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당장 눈앞에 있는 애조차 싫어한다.

 

 보통 아기들은 먹고, 싸고, 운다. 울음만이 유일한 감정 표현 수단이다. 배고프고 짜증 날 때 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조금 더 자라면 어떨까. 소근육이 발달하기 시작한 5세 유아는 대개 활발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주의력이나 판단력 등 인지능력이 미성숙하기도 하다. 신체 발달은 연령에 맞춰 서서히 진화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어린이들에게 더 빠르고 많은 것을 기대한다. 우리 사회는 울지 않는 아기, 얌전하고 성숙한 유아만을 원한다.

 

 “애인 게 무슨 상관”이 아니라, 애니까 봐줘야 하는 부분이 더 많다. 19~24개월 아동은 어른을 모방하며 배운다[각주:4]. 아기가 부모의 발음과 억양을 따라 하는 것은 사회적 행동을 학습하는 인간의 본능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아기가 조금만 시끄럽게 굴어도 불편해한다. 식당에서 주문 중인 부모의 말을 따라 하는 아기의 목소리만 들어도 얼굴을 찌푸린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겪는 과정을 그저 소음공해로 치부하는 것은 누군가의 사회화를 방해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YTN 뉴스Q.

 또 유아는 잘 넘어진다. 왜일까? 산만해서? 미성숙해서? 이유가 될 수는 있지만 이것들만이 전부는 아니다. 유아의 신체조건을 생각해 보자. 5등신 전후인 유아는 머리 부분의 비율이 높다. 따라서 성인보다 몸의 균형을 잃기가 쉽다[각주:5]. 성인이라면 발을 헛디딜 수 있지만, 유아는 헛디딜 틈도 없이 넘어진다. 또한 유아는 근력과 민첩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재빨리 대응하는 능력도 부족하다[각주:6]. 성인이라면 타인과 부딪히기 직전 순간적으로 몸을 멈출 수 있지만, 유아는 타인과 부딪히기 ‘직전’이란 없다는 말이다. 여차하면 부딪히기 십상이다. 그러니까 식당이든 카페든 넘어져서 우는 아동에게 따가운 눈초리를 주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어린아이라 한들 넘어지고 싶어서 넘어지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식당에 유아용 놀이방이 같이 있다. 픽사베이.

 우리는 모두 아기 때 응애 응애 울었다. 면박은커녕 주위 어른들에게 “고 녀석 우렁차게도 우네~”라며 칭찬을 받았을 수도 있다. 덕분에 유아 시절 넘치는 에너지를 마음껏 표출할 수 있었다. 또한 나는 아직 동네 고깃집에 설치되어 있던 어린이 전용 놀이방들을 기억한다. 그때의 어른들은 이해했던 것이다. 식당에서 얌전히 앉아 밥을 먹기에 아이들은 너무 어린 것을. 

 

 우리 모두는 어린 시절 환대 받던 존재였다. 환대까지는 아니라고? 정정하겠다. 우리 모두는 어린 시절 적어도 대놓고 혐오의 눈빛을 받지는 않았다. 이쯤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뒷다리와 앞다리가 쏙쏙 자라 개구리가 된 지금, 아직 한창인 올챙이들을 미워하고 있진 않은지 말이다.

 

 

한국에서 애엄마로 살아남기

 노키즈존 식당 앞에서 애를 두고 양육자만 가게에 들어가는 사례를 들어본 적 있는가? 기억을 더듬어도 떠올리기 힘들 것이다. 아이를 바깥에 방치한 채 식사하는 부모라니. 이 얼마나 가혹한 '아동 학대'인가? 노키즈존은 아이의 출입만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 보통 어린아이는 보호자와 동행하기 때문에 양육자도 가게에 들어가지 못한다. 아이가 있는 일행은 가게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잠재적 사고유발자로 낙인찍힌 것이다. 즉, 노키즈존의 차별 범주는 아동뿐만 아니라 아이를 기르는 사람까지 포함된다.

 

 2020년 ‘노 배드 패런츠 존(No Bad Parents zone)’이 등장했다. ‘나쁜 부모들’의 출입을 불허하는 노 배드 패런츠 존은 아동이 아닌 부모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노키즈존과 다르다. 원래는 가게에 들어가지도 못했던 아이와 양육자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참 다양한 유형의 손님이 있다. 여러 아르바이트 경험에 비춰봤을 때 술을 거하게 마신 취객과 저급한 막말로 무례하게 구는 진상이야말로 출입 금지 대상 1호다. 그러나 현실 속 진짜 출입 금지 대상은 아이와 양육자뿐이다.

 

 아프리카 속담 중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아이들이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그 아이의 가정 하나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아프리카 속담은 가당치도 않다. 양보와 배려를 하지는 못할망정 아이와 양육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가져선 안 되지 않는가. 도무지 양육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저출생 해소를 기대하는 것은 손 안 대고 코 풀려는 격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시간과 비용을 들이기보단 아이와 양육자를 가게에서 내쫓는 쉬운 방법을 택했다. 아이와 양육자를 제외하고 일부의 평화만을 지키는 방향으로 잘못 가고 있는 것이다. 방향이 잘못됐으면 다시 돌아가면 된다. 물론 돌아가는 길이 쉽지는 않을 거다. 이미 사회에선 양육자를 ‘맘충’이라 부르며 끊임없이 화살을 쏘아대고 있으니.

 

 

'맘충' 검색 결과. 네이버.

 “저 오늘 맘충같았을까요…”

 

 당장 포털사이트에 ‘맘충’을 검색하면 나오는 글이다. 오늘도 애엄마는 스스로에게 맘충적인 요소가 있었는지 되돌아본다. 가게를 잘못 골랐는지, 길가에서 애를 안고 있던 게 잘못이었는지. 무엇이 애엄마를 끊임없는 자기검열 속으로 빠뜨렸을까.

 

 맘충의 정확한  Mom(엄마)과 蟲(벌레 충)을 합친 것으로 자녀가 있는 여성들을 벌레에 빗대어 비꼬는 용어이다. 무시무시한 어원과 달리 우리에게 맘충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일상적인 단어가 돼버렸다. 자녀가 있는 여성으로 인해 조금만 불쾌해도 “맘충”이라며 쉽게 비난하고 눈치 준다. 이는 애엄마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당연시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이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시던 어머니의 은혜를 노래하던 것은 옛일이 됐다. 오늘날 엄마들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소리소문없이 훌륭한 자식을 키워내는 능력까지 요구받는다.

 

 사람들은 일부 비상식적 애엄마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맘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덜 말한다. 나는 카페에서 아기의 똥 기저귀를 갈고, 식당 좌식 테이블 위에 유모차를 올려놓고, 아동이 온 사방을 뛰어다녀 위험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말리지 않는 그러니까 ‘비상식적인 양육자’를 옹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을 여성 혐오적인 멸칭으로 욕보이는 것은 결코 정당하지 않다. 따라서 ‘맘충’이 아닌 ‘몰상식한 양육자’ 혹은 ‘비매너 양육자’라고 칭하는 것이 정당한 비판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한들 육아를 도맡아 하고 있는 여성의 비중은 남성보다 높다. 2021년 기준 832만 3천 명의 기혼 여성 중 144만 8천 명이 ▲결혼 ▲임신 ▲출산 ▲육아 ▲자녀교육을 이유로 경력이 단절됐다. 이에 더해 전체 육아휴직자 중 70%가 여성이라는 통계가 여성들이 처한 불균형한 현실을 보여준다[각주:7]. 그저 ‘요즘 엄마’들이 ‘벌레’인 것이 아니라, 주요 양육자가 여성인 것이다. 고로 일부 무개념 양육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모든 양육자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

 

 

아아~ 됐고, 노키즈존 그거 법대로 합시다!

 "법대로 합시다."

 

 사람들이 참 좋아하는 말이다. 살면서 생기는 모든 갈등과 문제를 법 하나로 해결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에선 법이 만병통치약이 되어주지 않는다. 한 가지 사안을 두고도 법적 해석이 분분하다. 논쟁의 당사자들은 서로 다른 법률을 근거로 들며 자신의 입장이 옳음을 증명하려 노력한다. 노키즈존 역시 법적 논쟁의 중심지에 있다.

 

 

 노키즈존 찬성론자는 이야기한다. 헌법 제15조에서 영업의 자유를 보장하기 때문에 업주는 자유롭게 노키즈존으로 설정할 수 있다고. 차별 이전에 업주의 자유라고. 반대로 노키즈존 반대론자들은 이야기한다. 헌법 제10조에서 행복추구권을, 헌법 제11조에서 평등권을 보장하기 때문에 노키즈존은 명백한 아동의 권리 침해와 차별이라고.

 

 헌법만을 가지고 노키즈존을 다루면 찬반 양측의 입장이 상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노키즈존 찬성의 근거로 "영업의 자유"를 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헌법에선 누구나 원하는 직종에 종사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지, 타인의 권리를 차별하고 침해하는 직업 활동을 장려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 로고.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노키즈존 식당이 아동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13세 이하의 매장 이용을 일률적으로 제한한 사업주에게 아동을 배제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보통 국가 기관에서는 권고 외에도 시정명령, 조서, 판결 등을 내릴 수 있다. 그중 권고는 법적인 효력은 없지만 조언이나 가이드라인으로써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권고는 권고일 뿐이라고, 의무가 아니라고 넘겨서는 안 된다. 인권 분야에서 국가 최고 권위를 가진 기관이 영업의 자유는 무제한 인정되지 않으며, 노키즈존으로 특정 집단을 배제한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판결한 것이다. 법대로 하자던 사람들이 국가인권위원회의 판결에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참으로 궁금하다.

 

 

그래서 노키즈존이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

무디어-지다
[동사] 느끼고 깨닫는 힘이나 표현하는 힘이 부족하고 둔하게 되다[각주:8].

 나는 사람들이 노키즈존에 무뎌지는 게 무섭다. “노키즈존 결사 찬성!”을 외치는 사람들만큼이나 무섭다.

 

 노키즈존이 처음 등장했던 2014년으로 돌아가 보자. 그땐 노키즈존 가게를 보면 아동 차별이라는 생각이 꼬리표처럼 따라왔다. 적어도 자라나는 애들한테 세상이 참 각박하다는 생각 정도는 했다는 거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노키즈존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눈앞의 가게가 노키즈존인 것은 성인인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냥 노키즈존 가게에 들어간다.

 

 우리는 더 이상 무뎌지면 안 된다. 노키즈존 가게를 이용한다는 것은 아동 인권 문제에 아무런 관심이 없으며, 아동 인권을 추락시키는 데 일조했음을 증명하는 행위다. 노키즈존에 경고를 던지는 것은 인권운동가나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들만의 역할이 아니다. 소비자 개인으로서도 주체성을 가져야 한다. 지금은 노키즈존 불매와 미닝아웃(소비를 통해 신념을 표현하는 것)의 형태로 본인의 권리를 행사해 대의를 실현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어렸을 때 누렸던 것을 지금의 아동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각주:9]. 하지만 이제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태도로 일관하는 성인도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해 한국 사회가 집단주의보단 개인주의 성향이 더 강해졌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대신 한국 사회에 이기주의가 만연하게 퍼지진 않았는지 고민할 순간이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명백히 다른 개념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미 한국 사회에는 이기주의 경보가 내려졌을지도 모른다.

 

 올 5월 한 카페가 ‘노시니어존(No Senior Zone, 노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공간)’을 선언해 화제가 됐다[각주:10]. 찬반 여론이 팽팽했던 노키즈존과 달리 반대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아동이 출입을 제한당했을 때는 남 일처럼 여기던 사람들도 노시니어존 앞에서는 자신의 부모가, 또는 언젠가 나이가 들 자신이 겹쳐 보였을 것이다. 이제서야 “노00존은 차별”이라고 얘기하는 상황마저 지독한 이기주의로 느껴져 씁쓸하고 조금은 우습기까지 했다.

 

 노시니어존의 등장은 또 다른 ‘노00존’ 등장 가능성에 대한 경고다. 차별은 또 다른 차별을 낳는다. 동시에 차별의 대가는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온다. 차별을 합리화하고 혐오를 방관한다면 결국 돌아오는 건 차별받는 나다. 노아재존, 노외국인존, 노교수존, 노퀴어존 등이 생겨나 어떤 형태로든 차별을 받게 될 것이다. 인간관계는 결코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떤 차별이든 정당화해선 안 된다.

 

 

그래도 나는 아직 사회를 믿는다

제주도 한 레스토랑의 맘퍼니존(왼쪽)과 맥도날드의 예스키즈존(오른쪽). 직접 촬영.

 노시니어존이 등장했던 5월, 한편에서는 유의미한 진전이 있었다. 송창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주도 아동 출입제한업소(노키즈존) 지정 금지 조례안'을 발의한 것이다. 도민 차별과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아동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이 조례안의 취지이다.  하지만 해당 조례안은 심의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보류됐다. 법률유보의 원칙 위배와 영업 자유 침해 논란 등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노키즈존을 둘러싼 법적 논쟁이 끊이지 않는 지금, 정치권이 나서 아동 인권에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낸 것은 아동 차별 근절을 향하는 점차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달, 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맘퍼니존’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맘퍼니존은 제주도에서 시행하고 있는 어린이 친화업소의 명칭이다. 최근에는 학교 정문 맥도날드에 갔다가 ‘YES KIDS ZONE(온 세상 어린이 대환영!)’ 문구를 봤다. 각각 이름은 달라도 의미하는 바는 같다. 이곳에서만큼은 아이와 양육자가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임을 드러내며 그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한다는 것. 양육 친화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자신도 한때 올챙이였음을 망각한 개구리들 사이에서 씁쓸함을 느꼈던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세상은 조금씩 변화의 싹을 틔우고 있다. 국내 제일의 관광 도시 제주특별자치도는 어린이 친화업소를 만들었고 글로벌 프랜차이즈 식당 맥도날드는 창문에 대문짝만하게 예스키즈존이라고 써놓지 않았는가. 심지어 맥도날드 매장에 방문하면 어린이 환영 멘트가 담긴 음악도 들을 수 있다[각주:11]. 열에 일곱이 아동의 식당 출입을 꺼리는 현 상황에서는 한 줄기의 빛처럼도 느껴진다.

 

 아이가 열심히 블록 쌓기를 하고 있다고 해보자. 진정한 어른은 아이가 블록을 떨어뜨렸을 때 다시 주워 아이의 작은 손에 쥐여줘야 한다. 블록들이 무너지려 하면, 그것도 못 하냐며 핀잔줄 게 아니라 무너져도 괜찮다고 따뜻한 말을 건네 줘야 한다.

 

 지금의 아이는 언젠가 어른이 되고 우리도 영원히 젊을 수 없다. 차별 없는 세상에서 자란 아이만이 차별하지 않는 어른이 된다. 지금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과도기일 뿐이다. 과도기가 지나면 분명 더 괜찮은 세상이 올 거다.

 

 그래서 나는 아직 사회를 믿고 싶고, 믿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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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구리가 올챙이를 잡아먹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네이버 어린이백과, "국어 교과서도 탐내는 맛있는 속담 -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  [본문으로]
  2. 서술했듯이 모든 개구리가 올챙이를 잡아먹는 것은 아니다. 올챙이를 잡아먹는 대표적인 개구리 종으로는 황소개구리가 있다. kbs news, "‘토종의 반격’…사라지는 황소개구리", 2018.09.09., 황정환.  [본문으로]
  3. 반대로 양육자가 노키즈존 지도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들의 사용 용도는 노키즈존을 사전에 안내하지 않은 가게에 방문했다가 문전박대 당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본문으로]
  4. 아동교육연구지원센터, "1세 발달 특성", 2023.05.29.  [본문으로]
  5. 성인은 보통 7~8등신으로 유아에 비에 신체 중 머리의 비율이 낮다.  [본문으로]
  6. 에스이엘안전기술원(구 한국놀이시설안전기술원), 「이용자 안전사고 예방가이드」, 2021, 안전지침 시리즈, 제6권, 8쪽.  [본문으로]
  7.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22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 2022, 30-35쪽.  [본문으로]
  8.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본문으로]
  9. 아동이 가게로 자유로이 출입하는 것을 당연히 누려야 함을 말한다.  [본문으로]
  10. 이 카페의 노시니어존 선언 같은 경우 여성 가게 주인이 성희롱으로 인한 고충을 겪고 그에 대해 조치한 것이다. 따라서 본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와 맥락이 다르다. 하지만 이와 유사한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어 앞으로의 노시니어존 출몰 가능성에 대한 경각심의 차원에서 언급한다.  [본문으로]
  11. 동아일보, "‘예스키즈존’ 맥도날드, 어린이 고객 언제나 대환영… 패밀리 캠페인 전개", 2023.05.04., 김민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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