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노치원 | 수습위원 홍용택
제주 강정마을, 삼척 핵발전소 건설현장, 밀양 송전탑 등, 문제적 현장이라면 전국 어디라도 카메라를 챙겨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다. 전문 사진작가들이 아니다. 중앙대 사진학과 내 동아리인 <소셜 다큐멘터리 사진집단 현장>이다. 민주화운동이 활발하던 85년도부터 시작된 유서 깊은 이 동아리는, 그동안 문제적인 사회 현장들에서 소외받는 약자들과 연대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사진으로 알려왔다. 그 이름처럼 현장에 있어 아름다운 동아리 <소셜 다큐멘터리 사진집단 현장>을 만났다.
중앙문화 | 안녕하세요! 다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정빈 | 안녕하세요. 공연영상창작학부 사진전공 이정빈입니다. <소셜 다큐멘터리 사진집단 현장(이하 <현장>)>에서 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동아리 구성원이 35명이나 되는 관계로, 저 희 넷이 대표로 인터뷰에 나오게 된 점 양해바랍니다.
정지원 | 안녕하세요. 공연영상창작학부 사진전공 이정빈입니다. <현장>에서 부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전가은 | 공연영상창작학부 사진전공 전가은입니다. 영상부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이재윤 | 공연영상창작학부 사진전공 이재윤입니다. 총무직을 맡고 있습니다.
중앙문화 | <현장>은 어떤 동아리인가요?
이정빈 | 저희 동아리의 이름이 <소셜 다큐멘터리 사진집단 현장>이잖아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소외받는 약자들의 목소리를 사진으로 알리는 동아리입니다.
중앙문화 | ‘다큐멘터리 사진집단’이라고 <현장>을 소개하셨는데, 우리가 언론사를 통해 주로 보는 보도사진과 <현장>이 찍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차이는 뭔가요?
이정빈 | 보도사진은 최대한 빨리 찍고 전송하는 걸 목적으로 해요. 그래서 기자들은 1~2시간 찍고 현장을 떠나죠. 보도사진은 일종의 현장 스케치와 비슷해요. 물론 훌륭한 기자들은 짧 은 순간에서도 맥락을 잘 짚는데, 대부분은 그렇게 하기가 힘들죠. 게다가 언론사가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그에 맞는 사진을 찍기도 하구요. 저희가 찍는 다큐멘터리 사진은 보도사진과 는 조금 다르죠. 사회에서 소외받는 약자들과 연대하고 느끼면서 기자들이 찍지 못하는 사진을 찍는 게 <현장>의 목표에요. 기자들은 피사체로 찍히는 분들과 항상 같이 있을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저희는 그분들과 함께 지내고 연대하면서, 그 분들의 생생한 생활을 담아낼 수가 있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기자들의 보도사진과는 다른 사진을 추구하죠.
중앙문화 | <현장>이 찍은 사진들을 보면 뚜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일을 하는 듯합니다. 현장이 추구하는 기조나 목표가 있나요?
이정빈 | 현장에서 직접 진실을 목격하는 것이 목표죠. 언론의 보도가 실제 현장과 어떤 차이가 있고, 여기서 우리가 들어야 하는 목소리는 무엇인지, 희생되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 가장 중요해요. 저희는 사진을 통해서 그분들을 대변하는 거죠. 그렇게 찍은 저희 사진이 누군가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중앙문화 | 실제 현장에 나가지 않을 때는 보통 무엇을 하나요?
이정빈 | 학기 중에는 매주 화요일에 모여서 총회를 해요. 사회 문제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철학이나 서양미술사 등에 대해 공부하기도 하고, 관련 영상들을 보기도 해요. 사진 동아리니 사진작가를 선정해서 함께 사진을 보기도 하죠. 이렇게 주제를 정해 관련 공부를 매주 해요. 학기 말 쯤에는 방학 때 어떤 사진을 찍을지 토론하고, 결정되면 직접 현장에 가서 사진을 찍어요.
전가은 | 사진 작업하기 직전에는 일주일 간 합숙을 해요. 합숙하면서 어떻게 찍을지에 대해 매일 공부를 하죠. 해당 현장에 이런 일들이 있고, 사건의 배경이 무엇이며, 어떻게 접근할지에 대해 의논을 하죠. 현장에 가기 전에 사전 준비 역시 중요하기에, 철저히 하는 편입니다.
중앙문화 | 이제 실제 현장의 얘기를 듣고 싶네요. 용산참사, 제주해군기지, 밀양송전탑 등 여러 현장에서 사진을 찍으셨는데, 힘든 상황이라든가 느낀 바가 많을 듯해요.
전가은 | 개인적으로 사진을 찍는 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저는 작년에 밀양을 다녀왔는데, 오히려 밀양에 계신 할머니들과 어울리고 함께 지내는 시간이 정말 행복했어요. 다만 할머니들이 자기 몸 사리지 않고 반대 쪽 사람에게 “쳐봐라! 어디 한번 쳐봐라! 맞아보자!” 이렇게 적극적으로 저항하시는데,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자기 몸을 상하게 하면서 절실히 저항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너무 안타깝고 슬펐던 기억이 나요.
정지원 | 올해 처음으로 세월호 집회를 갔었는데, 사실 저는 그런 시위에 참여하는 게 처음이었어요. 현장에 직접 와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게 확실히 다르다는 걸 알았어요. 작년에 시위에 참여해본 친구들 역시 똑같은 얘기를 저한테 했었거든요. 사실 부끄러운 마음도 많이 들었어요.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참여를 안 한 거잖아요. 현장에서 제가 느낀 참여와 연대의 경험을 사 진으로 담아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전가은 | 저도 최근 광화문에 세월호 집회를 다녀왔어요. 그곳에서 유가족 분들이 경복궁 앞 근처에 갇혀서 못 나오고 있는 광경을 눈앞에서 봤어요. 말로 표현이 안 될 만큼 상황이 굉 장히 심각했습니다. 그 중에는 심지어 저보다 더 어린 학생들도 많았는데, 최루탄을 비롯해서 살수차와 함께 캡사이신까지 뿌려졌어요. 사진을 찍는데 솔직히 조금 무서웠어요. 경찰들에게 채증을 당했는데, 괜히 제가 뭘 잘못한 거 같고 나중에 이걸로 뭔가 큰 문제가 생길까 걱정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있던 시민들은 유가족들을 도와주겠다는 일념으로, 캡사이신과 최 루탄을 맞고 울어가면서 자기 몸을 희생했어요. 이런 점들이 현장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 아닐까싶어요.
중앙문화 | 그렇게 사진을 찍다보면, 현장 속의 고통 받는 피사체와 거리감을 유지하는 게 힘들지 않나요?
이재윤 | 솔직히 말하면 사진을 찍으면서 괴리감을 많이 느껴요. 밀양 주민들끼리 주먹다짐에 가까운 상황이 있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할머니들은 다치시는데, 우리는 뒤에서 지켜보고 찍기만 할 때 너무 힘들었어요. ‘우리는 찍고 떠나면 그만일까’에 대한 고민을 항상 하면서 카메라를 들어요.
이정빈 | 저 같은 경우, 작년에 동아리 처음 들어와서 사회적인 사진을 찍는 게 처음이었어요. 현장에서 사진을 찍은 첫 느낌은 평소 언론이나 SNS 등에서 접하는 모습과 완전 다르다는 점이 에요. 보통 기자들은 현장을 사진으로 스케치하고 전송하면 끝이지만, 저희는 보도사진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사진을 하는 동아리잖아요. 그래서 작년에 밀양을 2주간 갔었는데, 첫 1주일은 말씀하신 것처럼 카메라 들기가 어려웠어요. 이 친구도 이야기 했지만, 할머니들은 싸우고 계신데 뒤에서 사진만 찍는 내가 과연 올바른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이런 괴리감이 많이 들었죠. 하지만 주민들과 함께 지내면서 우리의 목표에 대해 다시 한 번 상기할 수 있었어요.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은 직접 연대를 하면서 이분들의 상황을 최대한 정확하게 담아내고 알리는 거에요. 이건 보도사진을 주로 다루는 언론들이 하기 힘든 지점이죠. 물론 저희 사진이 무조건 올바르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가 본 것을 그대로 사진으로 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중앙문화 | 문제적인 현장을 열심히 찍으러 다녀도, 바뀌지 않는 현실에 대해 무기력감을 느낄 때가 있나요?
이정빈 | 무기력감은 딱히 느끼지 않아요. 가령 저 같은 경우 SNS를 많이 활용하는데, 작년에 밀양을 찍은 사진 역시 SNS에 많이 올렸거든요. 이렇게 SNS를 통해 사람들이 밀양이 어떤 상황인지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뿌듯함을 느껴요. 방학때는 길거리 전시도 하면서, 밀양의 상황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었어요. 크게 바뀌는 걸 기대하지는 않아요. 이 사회 구 성원 중 한 명이라도 ‘저게 뭐지?’라는 화두를 저희 사진을 통해 받았다면 충분해요. 그렇게 한 명씩, 한 명씩 하다보면, 언젠가 모두 눈을 뜨게 되는 시점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정지원 | 저는 조금 달라요. 솔직히 대학에 오면서 냉소적인 시각을 많이 갖게 되었어요. 실제 현장에 다니면서도 무력감은 항상 있는 듯해요. 하지만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이런 무력함을 상쇄해 나가는 거죠. 매주 총회를 하고, 정세를 얘기하면서 문제들에 대해 계속 생각을 해요. 여전히 냉소적인 저에게 <현장>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그런 것이에요.
중앙문화 | 두 분 모두의 말씀 동의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태도라 생각해요. 언젠가 바뀔 거라는 태도로 하다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제 긍정적인 얘기를 하려고 해요. 연대를 하면서 이뤄낸 성취라든가, 기분 좋았던 일화가 있을까요?
전가은 | 세월호때도 그렇고 밀양에서도 마찬가지로 느꼈는데, 언론에서 당사자들의 모습은 항상 불쌍하고 힘든 사람들로 그려지잖아요. 하지만 직접 가서 보니까 달랐어요. 힘들어도 농담도 재밌게 하시고, 되게 밝은 분들이에요. 저번 밀양에 갔을 때는 그곳 주민들이 저희를 친조카처럼 대해 주시고 되게 예뻐해 주셨어요. 농담 삼아 시아버지라고 부르던 할아버지도 있었어요. 갑자기 보고 싶네요. (일동 웃음) 솔직히 말해서 저희는 2주 있다 가는 사람들인데, 저희 모두를 진심으로 대해주셨어요. 이렇게 사람과 사람 간의 연대를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받아요.
이재윤 | 밀양에서 대치 상황이 몇 번 있었어요. 경찰들과 한전 직원들의 강압적인 태도에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숙소 돌아가서 우는 사람도 많았고... 밤늦게 까지 대치상황이 벌어지는 바람에, 뒷정리를 하고 할머니 한 분을 댁에 모셔다 드렸거든요. 할머니께서 너무 고맙다면서 저희 손을 꼭 잡아주셨어요. 저 역시 많은 무력감을 느끼지만, 이렇게 고맙다고 해주시는 분들 때문에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정빈 | 그런 추억들 덕분에 이후에도 따로 시간을 내서 밀양을 가곤해요.
중앙문화 | 좀 더 가벼운 얘기를 해볼까요. 다들 어떤 계기로 <현장>에 들어왔나요?
정지원 | 처음 OT를 갔을 때 <현장> 선배들이 홍보를 하러 오셨어요. 당시 회장이셨던 언니가 홍보를 정말 잘하셨어요. (일동 웃음) 그 선배 덕분에 <현장>에 흥미가 생겨 첫 총회를 오게 됐는데, 분위기가 정말 좋은 거예요. 특히 작년에는 학번이 다양했거든요. 새내기부터 고학번 선배들까지 있어서 그런지, 주제 하나로도 의견이 정말 다양하게 나오곤 했어요. 사실 입학을 하면 새내기로서 기대를 많이 하잖아요. 하지만 정작 기대했던 수업에서는 별 게 없었고, 오히려 <현장>에서 더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현장>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죠.
전가은 | 원래 저는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어요. 그러다 한창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유행했을 때, 당시 고3이었던 저보다 어린 학생들도 학교에서 징계 먹어가면서 안녕들 대자보를 쓰는 걸 봤어요. 너무 부끄러웠어요. 그 이후에 시사에 점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대학에 가면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동아리를 들어가자고 결심했거든요. 그래서 <현장>을 들어갔는데, 너무 만족했어요. 처음에 왔을 때 다양한 학번이 있었는데, 선후배 관계를 신경쓰지 않고 치열한 토론 분위기가 되게 멋있는 거예요. 이렇게 사회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좋아서 들어오게 된 것 같아요.
이재윤 | 다큐멘터리 사진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사진학과 세부전공에 다큐멘터리가 없어져서, <현장>에 들어가게 됐어요. 사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어요. 제 성격이 워낙 내성적 이고 해서 과연 친해질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현장>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좋은 사람들도 많았고, 사안에 대해 진지하게 말할 수 있는 동아리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이렇게 <현 장>에 들어왔네요.
이정빈 | 저 역시 학창시절에 사회 문제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었어요. 항상 정치는 나랑 다른 세계 같았고, 대학입시에 치어 살다 보니 사회문제 역시 제 피부로 크게 와닿지 않았죠. 그러 던 중 고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스티븐 맥커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스티븐 맥커리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데, 아프가니스탄 소녀를 찍은 사진으로 유명해요. 당시 그 소녀는 내 전으로 가족을 여읜 상태였고, 외부인에 대한 불신이 깊은 상태였죠. 그 소녀의 사진은 아프가니스탄 내전의 아픔을 잘 보여줬어요. 그 사진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아프가니스탄 내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여러 구호 물품이나 지원금도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뿐만 아니라 빈민촌에 있는 아이들을 위한 학교 설립까지 이뤄졌죠. 사진의 힘이 이렇게 굉장하구나,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죠. 그 때부터 사회적 문제에 대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게 만드는 사진을 찍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가지게 됐어요. 그렇게 중앙대 사진학과 입시를 준비하던 중 다큐멘터리 전공이 없어졌다는 소리를 듣고 실망했지만, 사진학과에 사회문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사진 동아리가 있다는 얘길 들었어요. 그게 <현장>이었죠.
중앙문화 | 나름의 각오로 <현장>에 들어오셨는데, 막상 동아리를 운영하는데 어려움도 있을 듯싶어요.
이정빈 | 원래 학교에서 동아리 지원금을 주는데, 올해 지원금이 절반도 안 되게 깎여버렸어요. 지금 당장은 문제가 없는데, 2학기 되면 교내 사진전시를 할 때 돈이 많이 들어요. 게다가 방학 때 현장을 다녀올 때도 돈이 꽤나 들 수밖에 없어요.
이재윤 | 동아리 연합회에서 대의원을 선출해서, 자체적으로 심사를 해서 지원금을 차등지급을 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학교 측에서 그 심사를 신뢰할 수 없다며 학교 교원들이 심사권 을 가져갔어요. 지원금 분배와 관련해 학생들에 대한 불신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겠는데, 학교가 이에 대해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힘이 드네요.
전가은 | 저희는 지원금을 활동 이외의 용도에 일절 사용하지 않아요. 다른 동아리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정말로 열심히 활동한다고 생각하는데 지원금이 확 줄어드니 안타깝죠.
이정빈 | 예산 이외의 힘든 점이 있다면, <현장>의 기조에 구성원들을 맞추는 일이 있겠네요. 그냥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고 싶어 오는 몇몇 사람들도 있어요. 저희는 그냥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소셜 다큐멘터리를 추구하거든요. 또한 시위와 같은 현장을 구성원 모두가 나가고 싶어 하지는 않죠. 모두에게 같은 생각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한 집단으로서 각자의 가치관을 얼마만큼 존중해줘야 하나. 그런 고민을 많이 해요.
전가은 | 저희 <현장>이 작년까지만 해도 많은 학번이 있었어요. 지금은 많은 선배들이 휴학하고 졸업하고 해서, 1년밖에 하지 않은 저희가 주축이 돼서 꾸려나가는데 생각 외로 힘드네요.
중앙문화 | 본질적인 질문을 하려고 해요. 현장에 나가면 많은 사람들이 있잖아요. 글 쓰는 기자, 영상 취재하는 카메라 맨, 혹은 직접 시위를 하는 사람도 있고요. 그 중에서 현장 은 다큐멘터리 사진을 맡고 있는데, 하필 왜 ‘사진’일까요?
이정빈 | 사회적인 문제를 판화로 그리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건 그분들 나름의 언어라고 생각을 해요. 시위하시는 분들 역시 마찬가지에요. 목소리를 높여서 시위하는 게 그들의 언어죠. 저희는 카메라를 저희 언어로 쓰는 거죠. 그래서 언어의 차이이지, 전하고자 하는 바는 다 같다고 생각해요.
전가은 | 물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같지만, 나름 사진만이 줄 수 있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요. 가령 길거리 전시를 할 때 사진과 관련해 글을 쓰거든요. 보통 긴 글만 있으면 잘 안 보잖아요. 그런데 사진이 있으면, 뭐지 궁금해 하면서 사람들이 글을 자세히 읽어요. 그만큼 사진이 사람들의 이목을 확 끌어당기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정빈 | 저 역시 동의해요. 사진은 달랑 한 장으로 상황을 한 번에 보여줄 수 있는 매력적인 매체죠. 어떻게 보면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매체에요.
정지원 | 가볍지만 가볍지 않다는 말이 정말 맞아요. 요즘은 SNS가 떠오르면서, 사진이 핫한 콘텐츠잖아요. 페이스북도 그렇고 트위터도 그렇고, 특히 인스타그램은 아예 메인 콘텐츠로 내세우는 것이 사진이죠. 이렇게 보면 사진은 정말 가벼운 매체지만, 거기에 어떤 메시지를 담느냐에 따라 한없이 무거울 수 있죠. 가장 효과적인 매체임에는 분명한 것 같아요. 글은 각 잡고 읽어야 하지만, 사진은 바로 보이잖아요. 바로 느껴지고.
중앙문화 | 다들 참 많은 활동을 하신 것 같아요. <현장> 활동을 통해 개인적으로 무엇을 얻었는지 궁금합니다.
정지원 | 사진을 떠나 대화할 수 있는 좋은 공간. 저에겐 이 공간 자체가 가장 큰 얻음이에요. 전에도 말했지만 사진 활동 전에는 사안들에 대해 토론하고 공부를 하거든요. 이를 위해 여러 사람들이 주제를 가지고 와요. 저 역시 학교생활을 하고 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생각들을 <현장>에 와서 풀어놓을 수 있는 거죠. 사실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정말 흔치 않아요. 확실히 생각을 확장시키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끌고 나가는데 <현장>이 큰 도움이 됐어요.
전가은 | 저는 학과생활을 정말 안 하는 애거든요. 공부도 안 하는 학생이에요. 사실 일학년 때 학고를 맞은 경험도 있어요. (일동 웃음) 하지만 전혀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저는 대학에 대 한 로망이 많았어요. ‘대학에서는 좋아하는 과목을 심화해서 배우니까, 나는 정말 꿈에 그리던 일들을 배울 수 있을 거야’ 하고 꿈꿨는데 막상 들어오니까, 영어나 회계를 배워야했고, 생각지도 못했던 무용 수업까지 들어야 했죠. 그런 와중에 <현장>은 제 대학생활의 숨구멍 같은 존재에요. 학과생활은 안 하고 수업은 안 들어도, <현장>은 정말 열심히 해요. 힘들긴 한데 재밌고 제가 관심이 있기 때문에 나오는 거니까요.
이재윤 | 저 역시 심도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얻었다는 점이에요. 대학 오기 전에 지성인의 상아탑과 같이 대학에 대한 이상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어요. <현장>은 그런 이상적인 대학생활을 충족시켜줘요. 한편으로는 현실 참여적인 지점도 있죠.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면 몰랐을 문제들을 <현장>을 통해 알게 되요. 가끔 내가 기록하고 싶은 사진을 찍었는데, 정치적 의도가 담겨있다는 이유로 냉소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게 냉소하면서 졸업하면 그만이죠. 하지만 언젠가는 현실에 부딪히게 되고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이 온다고 믿어요.
이정빈 | <현장>은 정말로 대학생이어서 할 수 있는 동아리에요. 취업을 하면 자유로울 수 없잖아요. 다 같이 사진 찍으면서, 술 마시며 솔직하게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털어놓는 모든 순간들 이 소중해요. 그리고 어떤 사건에 대해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길러준 것 같아요. 예전 같았으면 머리 아파서 쳐다보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에요. 의혹, 수사, 검거 이런 용어들 어렵고 복잡하잖아요. 그런데 <현장>에서 많은 얘기들을 나누고 활동을 하면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어요. 이제 저희 학과는 다큐멘터리 전공이 없잖아요. 사실 이렇게라도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에 대단히 감사해요. 저희 입장에서는 이런 활동들의 흔적들이 나름 포트폴리오인 거잖아요. 현장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현장>이 사진 공부를 하는 데도 저에게 큰 도움을 주는 셈이죠.
중앙문화 | 다들 말씀 들어봤는데, 현장은 사진 동아리 그 이상인 거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이정빈 | 선배들이 항상 하는 얘기가 있어요. “현장에 있어서 아름다운 현장이다.” 예전에는 <현장>이 소수 동아리였어요. 다 모여 봤자 5명, 6명밖에 안 되던 시절이 있었어요. 소수 정예로 작업에 충실히 집중하는 동아리였죠. 요즘 <현장>은 굉장히 인원이 많아요. 말 그대로 ‘동아리’의 특성이 좀 더 강해진 거죠. 하지만 저희는 선배들로부터 이어온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앞으로도 끊임없이 노력할 겁니다. 그 정신은 당연히 현장에 있겠죠. 그래서 이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 짓고 싶어요.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현장에 있어서 아름다운 <현장>입니다.
'지난호보기 > 2015 봄여름, 68호 <그들만의 비지니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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