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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보기/2022 봄여름, 82호 <공간; 존재가 서는 자리>

이곳; 중앙대 서울캠의 공간을 다시 생각하다

by 중앙문화 2022. 7. 3.

이곳;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의 공간을 다시 생각하다

- 마스터플랜 너머의 이야기 -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정문. 뒤로는 영신관(101관)과 자연과학대학(104관)이 보인다.

부편집장 김민지

 

2년 만에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의 문이 열린다.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만나 밥을 먹고, 공강 시간에 캠퍼스 곳곳을 누비며 놀 생각에 한껏 마음이 들뜬다. 하지만 역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학교 가는 길은 험난하다.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는 그 이름답게 흑석역과 상도역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어느 역에서 내려도 최소 15분은 걸어야 한다. 여느 대학 입구 역과 같이, 절대 캠퍼스 정문과 가까울 리 없다.

 

운 좋게도 오늘은 버스가 도착해 있어 버스를 탔다. 정문 정류장에서 내리면 앞에 보이는 건 도로와 사람, 건물 뿐이다. 푸른 중앙광장을 바라보며 저기 앉아 친구들과 피크닉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그 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건 중앙대학교 학생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중앙도서관 쪽으로 향한다. 힘겹게 자연과학대학 옆 계단을 오른 뒤, 잠시 멈춰 차가 오는지 살핀다. 차가 안 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마음 편히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또다시 오르막길이 나온다. 한 걸음 한 걸음을 힘겹게 오르며 누군가 여기 무빙워크를 설치해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때론 개똥벌레가 되어 언덕을 굴러 올라가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긴장을 놓기엔 이르다, 건물에 들어서더라도 엘리베이터를 운 좋게 탈 수 있을지 미지수다. 모든 층에 멈춰서는 엘리베이터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하며 아침부터 속이 바짝 타들어 간다.

 

가까스로 강의실에 들어서면 누군가의 팔과 부딪치지 않고 자리를 사수하는 데 열중해야 한다. 대학 강의실은 넓고 쾌적하며 계단식일 거란 환상을 가지지만, 현실은 고등학교 교실과 비슷한 풍경이다. 강의가 끝난 뒤엔 수업을 듣느라 쌓인 피로도 풀고 친구와 수다도 떨며 과제를 마무리하려 했지만 눈에 불을 켜고 찾아봐도 편히 앉아 쉬거나 작업할 공간이 없다. 310관의 소파나 청룡 연못의 벤치는 이미 누군가 앉아 있거나, 너무 비좁거나, 유동 인구가 많아 눈치가 보이거나 셋 중 하나다. 중앙도서관에서 자리를 잡기란 하늘의 별 따기고, 비대면 수업 전용 강의실은 인터넷 연결이 느려 수업을 따라가기 벅차다. 그나마 대안으로 학교 주변의 카페를 찾았으나, 사람이 많고 시끄럽기는 마찬가지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가?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에 다니는 한 학생이 매일 거치는 일련의 생각들이다. 대면 강의가 재개되며 수업을 듣는 학생들, 칠판 앞에서 강의하는 교수님들, 바빠진 교직원과 학교를 쾌적한 곳으로 만들어주시는 청소 노동자 및 방호원 분들까지, 지난 2년간 텅 비었던 곳곳에 활기가 돌았다. 학교의 공간에 사람들이 모이며 한껏 분위기가 고조되었으나, 유독 그들을 힘들게 하는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학교의 공간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학내 공간 부족과 현존하는 공간의 불편함이었다.

 

중앙대학교 공간의 역사

 

 

중앙대학교 홈페이지에 기재된 캠퍼스맵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때는 두산기업이 중앙대학교를 인수한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산에 인수된 후 중앙대학교에는 10년간 5개의 신축 건물이 들어섰는데, 그 시공사는 모두 두산건설이었다. 20115월 약학대학 및 R&D센터(102)가 준공되었으며 영신관(101) 앞 중앙잔디광장도 이때 생겼다. 2012년에는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퓨처하우스가, 2015년에는 블루미르홀(308, 309)이 완공됐다. 그리고 20139월부터 시작된 100주년 기념관(경영경제관, 310)의 공사는 3년 뒤인 20168월 마무리됐다.

 

이 건물들을 사용하는 우리는 이제 이곳이 익숙하지만 이 당연한 공간이 생기기까지 수많은 소음, 마찰과 갈등이 있었다. 지금 서울캠퍼스에서 가장 큰 건물인 310관은 국내 단일대학 건물 중 최대 연면적을 자랑[각주:1]한다. 하지만 새로운 건물이 지어지기 위해서는 그 공간에 있었던 다른 건물을 헐어야 하는 법. 310관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대운동장, 학생회관, 학생문화관이 철거됐어야 했다.[각주:2]

 

철거되기 전 대운동장은 중앙대학교의 전교생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학생총회를 소집해 학생들만의 자치 활동과 의결을 진행했다. 축제를 열거나 새내기 새로배움터와 같은 행사가 있을 때도 이곳을 가장 먼저 찾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 커다란 건물이 들어서며, 이제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의 학생들은 한데 모이지 못하게 됐다. 중앙대학교 재학생 전체를 회원으로 하는 학생총회는 중앙대학교에서의 학생 자치 활동에 최고 의결기구이며, 재적생 1/8 이상의 참석으로 개회한다.[각주:3] 2021510, 8년 만에 열린 학생총회가 개회되기 위해선 3,159명의 학생이 모여야 했다. 하지만 예상할 수 있듯,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에는 더 이상 큰 규모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310관은 신설됐으나 중앙대학교 학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학생자치의 영역은 한없이 줄었다.

 

대운동장과 함께 철거되었던 학생회관(당시 205)과 학생문화관(당시 206) 역시 학생들의 전용 자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학생회관에는 중앙동아리와 학생처, 총학생회가 있었으며 학생문화관에는 학내 언론들이 자리했다. 두 건물이 철거되며 중앙동아리와 학생처, 총학생회는 당시 교양학관(현재 학생회관)107관으로 이동했다. 학생문화관에 있던 언론사 중 미디어센터에 소속되기로 한 중대신문, UBS, 중앙헤럴드는 310관의 공간을 확보했다. 반면 독립적인 편집권을 가지겠다고 한 중앙문화와 녹지는 이동하게 될 공간에 대한 어떠한 답변도 받지 못했다.[각주:4]

 

공간 부족의 문제는 중앙대학교의 고질병이다. 학교의 면적 자체가 넓지 않다는 사실은 중앙대학교를 한 번이라도 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 것이다. 대학은 학생 교육 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교지를 보유해야 하는데, 법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교지를 기준으로 대학이 교지를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비율이 교지 확보율[각주:5]이다. 대학 중에서도 캠퍼스가 작기로 유명한 중앙대학교의 2021년 교지 확보율23.2%이다. 같은 해 서울 소재 대학교의 평균 교지 확보율은 133.6%[각주:6]이었다.

 

신축이라는 해결책?

 

캠퍼스의 공간 문제에 학교 본부가 늘 가져 온 해답은 신축이었다. 310관이 공사되던 당시 윤종선 건설 사업단장은 “310관만 완공되면 서울캠퍼스의 고질적인 공간 문제는 모두 해결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과연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을까? 여전히 많은 학생들은 편히 쉬거나 공부할 공간을 찾지 못해 근처 카페에 가 돈 주고 공간을 산다. 310관에 비어 있는 강의실은 많지만 이용하는 방법이 까다롭거나 문이 잠겨 사용하지 못한다. 동아리들은 여전히 107관의 작은 건물에서 치열한 공간 배정 싸움을 하고 있다.

 
 

대학 본부가 2012년 발표한 마스터플랜 조감도

 

역시나, 본부는 지금도 신축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일명 마스터플랜이라 불리는 이 계획은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의 공간이 크게 변화하는 대규모 재건축 사업이다. 2012년 처음 공개된 마스터플랜은 수정을 거쳐 2020923일 열린 리더스포럼[각주:7]에서 다시 발표됐다. 이날 박상규 총장은 서울캠퍼스는 310관 준공 이후 꾸준히 마스터플랜을 진행 중이라고 말하며 도서관과 공과대학 사이에 205관 신축계획이 잡혀있고, 본관과 서라벌홀 쪽으로 201관을 신축할 예정이라 밝혔다. 이산호 행정부총장은 “203, 202, 201, 104, 107관이 전체적으로 건물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렇게 된다면 203관을 유지하고 인문대와 사범대가 그 건물에 계속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건물을 해체하고 그 자리에 건물이 들어선다고 덧붙였다.

 

지금의 마스터플랜 진행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중앙문화>는 리더스포럼에서 마스터플랜 관련 내용을 담당한 이산호 행정부총장께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2020년 당시 진행된 리더스포럼에서 마스터플랜의 목표 시기가 언제냐는 사회과학대학 비상대책위원장의 질문에 이산호 행정부총장은 변수가 많으니 시작을 해도 그게 몇 년도에 어떻게 끝난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덧붙여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내년이 2021년이잖아요? 내년에 시작한다면 5년 정도 소요될 것이라고 계획하고 있다는 거죠.”라 언급한 바 있다. 언제까지 마스터플랜만 바라보고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지, 학생들은 알 방법이 없다.

 

지금 우리 학교는

 

내년에 마스터플랜을 시작한다던 리더스포럼으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캠퍼스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파이퍼홀(103) 뒤편에 108관이 신축되고 있으나 학생들이 자주 사용하지 않는 공간에 위치하고 산학협력과 캠퍼스타운으로 건물 용도가 정해져 있어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끼치는 영향이 적다. 대학 본부는 2022년 열린 리더스포럼에 마스터플랜 관련 내용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 직접적으로 마스터플랜이 언급된 것은 신축건물 공간 배정 관련 협의체 신설 및 학생참여, 그리고 신축건물 진행 과정의 정기적 공개를 요구한 인문대학 비상대책위원장의 질의응답에서 뿐이었다. 이산호 행정부총장은 이에 대해 제가 인문대학 교수이기 때문에 학생들 마음을 잘 안다그런데 건물이라는 것이, 현재 도시계획평가가 완료되었지만 환경영향평가에 들어가면 1, 그 다음 교통영향평가를 받는 데 1년이 소요돼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은 아무리 빨라야 2024년에 시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학교의 정보에 대해 학생은 늘 대학 본부로부터 전달받은 것 외엔 알 수가 없다. 대학 본부와 학생의 수직적 관계에서 학교의 변화하는 상황에 학생들은 늘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한다.

 

2년간의 비대면 학사 동안 쓰이지 않았던 학교의 공간에 다시금 학생들이 들어섰다. 대면 강의가 시작되어 시끌벅적한 학교 공간을 학생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중앙도서관 앞 에스컬레이터 .  길을 건너기 전 주위를 살피는 사람들의 모습 ( 왼쪽 ) 과 이 차선 도로를 지나는 학교 버스 ( 오른쪽 ).  도로 반사경은 하나 뿐이다 .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3학년에 재학 중인 A씨는 중앙도서관 앞 에스컬레이터가 생겨 이동이 편리해졌다고 말했다. “에스컬레이터가 새로 설치되어 삶의 질이 많이 올라가긴 했어요라며 운을 뗀 A씨는 그런데 그 바로 앞에 도로가 있어서 마음 편히 오고갈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중앙도서관을 등지고 정문을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면 그 앞에는 도로반사경이 하나뿐인 2차선의 도로가 가로지른다. 심지어 도로반사경은 에스컬레이터를 향하고 있지 않아 주위를 살피는 데 무용지물이다. 자칫 잘못했다간 운전자에게도, 보행자에게도 위험한 공간이다. “다 내렸을 때 바로 걸으면 안 되고 꼭 멈춰서 주위를 살펴야한다던 A씨는 매번 긴장하고 캠퍼스를 걸어야 하는 게 불편하다고 말했다.

 

A씨는 대면 수업과 함께 많아진 팀플을 감당할 공간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중앙대학교 중앙도서관에는 13개의 스터디룸과 3개의 팀플룸이 있다. 일반 스터디룸의 수용 인원은 2, 창의문화 스터디룸은 2~3, 팀플룸 역시 2~4명 정도이기 때문에 웬만한 소규모 팀플이 아니고서야 사용이 어렵다. 사용 신청은 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가능한데, 이마저도 희망 이용일 일주일 전에 예약해야 원하는 시간대에 이용할 수 있다.

 

팀플룸이 너무 적고 예약제라 제 주변에서 이용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라고 A씨는 말했다. 이어 팀플을 할 때 학교 안에 있는 팀플룸들은 고려 대상이 아니라며 아깝고 비싸더라도 카페에 가기 일쑤라 덧붙였다. 학생들은 학교의 강의에서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학내의 공간이 부족해, 학교 밖의 곳으로 나가 인당 5천 원의 돈을 주고 공간을 사야 하는 실정이다.

 
중앙대학교 건물 모습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1학년에 재학 중인 B씨는 310관의 빈 강의실에서 실시간 수업을 듣던 중 겪은 어려움을 토로했다. 건물의 다른 공간에는 앉아서 수업을 들을 만한 책상과 의자가 마땅히 없을뿐더러 1층에 마련된 소파들에선 와이파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B씨는 수업이 없는 빈 강의실을 찾아 들어갔다. 그렇게 며칠간 빈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었는데, 어느 날 조교가 찾아와 해당 공간을 사용하려면 신청서를 미리 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부턴 온라인 세미나를 위한 목적으로 강의실 대여 신청서를 작성하고 강의실을 사용했는데, 이번엔 같은 조교가 찾아오더니 그곳을 온라인 세미나 용도로도 쓰지 못하니 당장 나가라고 통보했다. B씨는 온라인 수업 도중 컴퓨터를 들고 수업을 들을 만한 곳을 찾아 이리저리 이동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B씨는 에스컬레이터의 이용 시간이 짧아 불편하다고도 이야기했다. “밤늦게 통학하는 사람들은 서둘러 집으로 향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에스컬레이터를 사용할 수 없어 힘들다제가 생각했을 땐 비용적인 문제일 것 같은데 학생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서라면 비용을 들여서라도 허용해야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다시, 공간은 태도다

 

310관이라는 거대한 건물이 지어졌는데도 학생들은 공부할 공간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대면 학사가 시작되며 캠퍼스 곳곳의 공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학생들은 온전히 자신의 할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고 생각했다.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었음에도 마음 편히 사용할 수 없었다. 분명 대학 본부는 310관이 지어지면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의 고질적인 공간 문제가 모두 사라질 것이라 자신했는데, 여전히 학생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108관이 신축되고 있고, 빠른 시일 내에 마스터플랜이 실시될 예정인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는 문제의 근본을 따져보아야 한다.

 

우선 사람에게 공간이란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보자. ‘한 사람의 성격을 파악하고 싶거든 그 사람의 방을 보아라라는 말이 있다. 나의 방엔 나의 가치관과 성격, 특징, 태도가 녹아들어 있다. 대학교도 마찬가지다. 캠퍼스의 구성, 강의실의 배치, 연구실의 전경, 이동의 경로에는 그 학교의 교육 이념과 학생 및 구성원을 대하는 태도가 담겨있다. 공간은 성격이자 태도다.

 

지금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라는 공간의 태도는 어떠한가? 어떠한 가치관으로 그 공간을 사용하는 학생, 교직원, 교수, 방호 노동자, 청소 노동자, 외부인 등을 대하고 있는가? 주위를 둘러보면 서울캠퍼스 전경의 대부분은 커다란 건물들이 차지하고 있다. 정문에서 캠퍼스를 바라보고 서 있으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영신관(101), 멀리서도 큰 존재감을 내뿜는 310(100주년 기념관), 왼편에 위치한 R&D센터(102)와 오른편의 학생회관(107) 정도다. 그나마 푸릇함을 더해주는 중앙광장은 눈으로만 바라볼 수 있을 뿐 돗자리를 깔고 앉기는커녕 들어가지도 못 한다. 건물 안에도 굳게 닫힌 강의실과 연구실의 철문들이 어둡고 습한 복도를 한가득 채운다.

 

학교를 조금만 돌아봐도 이 공간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파악할 수 있다. 서울캠퍼스 내 학생 수가 많아지니 대학 본부는 학생들의 자치 공간인 학생회관과 대운동장을 허물고 310관이라는 거대 건물을 지었다. 그마저도 그 안의 수많은 강의실과 공간은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문을 굳게 닫아 버렸다. 중앙도서관 앞 계단을 오르기 힘들다는 불평이 많으니 그곳에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했다. 그마저도 바로 앞엔 도로반사경조차 하나뿐인 이 차선 도로가 있으며, 밤이 되면 작동을 멈추도록 설정했다. 이 학교는 누구에 의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대학 본부라는 거대한 이익 집단에 의해, 그들이 돈을 덜 들이고 관리하기 쉬우며, 사람들의 불평불만을 최소화할만한 방식으로 굴러가고 있진 않은지 고민하게 된다. 사람보다 효율을 중시한 곳, 그게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의 실정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공간은

 

다시, 중요한 질문을 던져보자. 학교의 주인은 누구인가? 대학은 교직원, 노동자, 학생, 교수 등 여러 구성원이 모이는 공간임이 틀림 없지만 결국,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정말 좋아하고 원하는 공간은 어디일까. 우린 어디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장 많은 추억을 쌓는가? 그 공간을 늘리고 관리한다면 사람이, 학생이 중심인 학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캠퍼스에서 생활하며 가장 대학답다고 생각되는 공간들이 어디인지 학생들에게 물었다. 학생 A씨는 “310관 지하 3층 외부의, 축구장 건너편에 있는 잔디 공간을 가장 좋아한다우리 학교는 어딜 가든 차도가 많아 매번 학교 안을 돌아다닐 때마다 주위를 살피고 긴장하며 돌아다니는데 차도보다 녹지 공간이 훨씬 많아져야한다고 말했다. 학생 B씨는 밤에 중앙마루(빼빼로 광장)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게 가장 좋다편히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 외에도 실질적으로 앉아서 수업을 듣거나 공부할 수 있는 책상과 의자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교의 공간이 어떤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하는지도 물었다. A씨는 학교가 단지 공부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대면 수업을 듣고, 밥을 먹는 등 학교는 생활 공간이자 추억을 만드는 공간이라 답했다. B씨는 대학 하면 자유라는 가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에 부합하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공간이었으면 좋겠다예를 들어 잔디밭에 못 들어가도록 막기보다 개방해서 사람들이 눕고 앉아서 편히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축구장 건너편의 잔디 공간. 사람들은 종종 이곳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할 일을 한다

 

학생들은 편히 앉아 쉴 수 있는 , 간단히 허기를 채우며 꽃피울 수 있는 이야기의 , 수업을 듣고 책을 읽으며 공부할 수 있는 를 원했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꼭 기존의 건물을 허물고 다시 세우는, 길고도 피로한 작업이 필수적이진 않아 보인다. 3101층에 널브러진 소파의 위치를 조금 바꾸는 것만으로, 닫혀 있는 강의실을 열어두는 선택으로, 차도를 줄이고 그곳에 녹지공간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손쉽게 이룰 수 있는 목표들 같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목표를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실천한 사례가 있다.

 

당장 만들 수 있는 터

 

이정형 교수가 파악한 캠퍼스 유휴공간. 자료: 이정형 교수 제공
 

건축학부 학과장 이정형 교수는 2019‘208호관 주차장 Campus Terrace Project’를 구상했다. 현재 캠퍼스 내에서 학생들이 쓸 수 있는 버려져 있는 땅이 많다는 분석을 바탕으로 캠퍼스에서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는 공간들을 학생들에게 돌려주자’, ‘학내 주차 공간이 많고 비효율적으로 설계되어 있으니 이를 활용해보자고 생각했다.

 

가장 먼저 실시한 것은 학생과 교직원 대상의 설문조사였다. 그 결과 학생들이 머무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 다양한 활동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어 중앙광장과 중앙마루(빼빼로 광장)가 있는 정문과 달리 후문의 공간에 정체성이 없는 것 같다는 의견을 듣고 후문의 유휴공간을 파악했다. 후문에 들어서면서부터 310관에 이르기까지의 도보와 208관 앞 주차 공간이 변화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이정형 교수가 제시한 ‘Campus Terrace Project’의 구상도. 자료: 이정형 교수 제공

 

다음으론 해외 대학의 사례를 참고하여 어떤 공간을 조성할 수 있을지 구상했다. 하버드, 샌디에고 대학교 등은 야외 공간에 의자와 테이블을 설치하여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거나 학생들이 편히 앉아 쉬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했다. 이와 같은 시도가 축구장 옆 잔디 공간과 208관 앞 주차공간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 이정형 교수는 해당 공간에 테라스를 설치할 경우 예상되는 비용과 견적을 정리하여 학과장 회의에서 제안했다. 파라솔과 테이블, 의자가 합쳐진 세트를 10개 구입할 경우 드는 비용은 215만 원에 불과했다.

 
이정형 교수가 사비로 마련한 테이블과 의자의 모습.

 

하지만 대학 본부와 교수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대학 본부는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테라스 설치를 허가하지 않았다. 교수들은 자신의 주차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이 불편하다며 반대했다. 이정형 교수는 결국 사비를 들여 축구장 앞 잔디 공간 옆에 두 개의 파라솔, 테이블, 의자 세트를 구비해 두었다. 이내 대학 본부가 관리가 어렵다며 파라솔을 치우도록 했지만, 테이블과 의자는 여전히 남아 있다. 학생들은 그곳에서 실시간 수업을 듣기도, 음료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이건 마음만 먹으면 여름 오기 전에 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이런 이야기를 학생들이 해야 한다고 이정형 교수는 말했다.

 

건축학과 윤승현 교수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학교는 건물로만 형성되지 않는다외부 공간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캠퍼스라는 건 외부 공간과 건축물 사이, 그 관계 속에서 학교가 숨 쉬는 것이라며 외부 공간에 주차를 어떻게 할지가 아닌, 학교를 거니는 학생과 교수와 지역 주민이 이 공간을 어떻게 누릴 수 있는지 심사숙고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열어야 할 생각의 장

 

먼 길을 돌아왔지만, 이제야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됐다. 사람에게 공간은 어떤 의미인가?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고 필요로 하는 공간은 어떠한 곳인가? 그에 따라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윤승현 교수는 이에 대해 공간은 삶을 담는 그릇이라 말했다. 이어 학문하는 공간으로서의 대학은 학생과 교수가 서로 갖고 있는 정보와 지식을 교류하는 관계 속에서 기회를 양산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교수의 연구실이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는 상황에서, 이곳이 교류의 공간인지 감옥의 공간인지 의문이라며 이러는 순간 교수와 학생은 괴리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중요한 건 캠퍼스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윤승현 교수가 현재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의 공간을 평가하며 한 말이다. 앞서 공간은 성격이자 태도라고 설명했다. 근본적으로 공간을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따라 그 공간이 구성원을 대하는 태도도, 그 공간이 지향하는 가치관도 바뀐다. 지금은 중앙대학교의 근본적인 공간 설정에 문제를 제기해야 할 때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므로 효율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람을 존중하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윤승현 교수는 제언했다.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310관 신설 당시 모습. 출처: 간삼건축

 

그렇다면 마스터플랜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지금까지 마스터플랜은 더 새로운 공간, 더 큰 건물, 더 많은 강의실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신축’, ‘효율’, ‘양적 팽창이 마스터플랜이 추구한 키워드였다. 하지만 정말 이것들이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줄까? 우리가 흔히 캠퍼스 공간에 갖는 세 가지 오해와 그에 관한 진실을 파헤쳐 보았다.

 

첫째, ‘양적 팽창이 좋다는 생각이다. 큰 건물이 세워질수록, 학교의 부지가 넓어질수록 좋다는 것이다. 지나가는 학생들이 학교 근처의 부지를 두고 학교가 저 땅을 사면 우리 학교도 좀 더 멋있어질 텐데라 하소연하는 것을 심심찮게 들어볼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윤승현 교수는 중앙대가 양적 팽창으로 다른 학교와 경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꼬집는다. “그런데 마스터플랜에서는 계속 양적인 얘기만 한다공간을 양적 팽창이 아닌 질적 훌륭함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둘째, ‘새로운 건물이 좋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중앙대학교의 많은 학생이 최근 지어진 310관을 사용한다. 이곳의 시설과 공간이 다른 건물에 비해 좋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윤승현 교수는 영신관을 예시로 들며 캠퍼스엔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도 있지만 간직해야 할 것도 있다고 말한다. “영신관을 보존하자는 건 그곳이 중앙대의 시작이기 때문도 있지만 지금까지 자신만의 독특한 분위기로 유효한 현재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런 것이 쌓여 소중히 간직될 때 의의가 있다고 설명한다. 학생 B씨도 학생들이 서라벌홀이 낙후되어 안 좋아하곤 하는데 나는 오히려 그곳이 좋았다고 말한다. “서라벌홀을 고시생분들이 자주 사용한다고 들었다며 운을 뗀 B씨는 시험을 준비하는 입장에선 바쁘고 시끄러운 310관보다 서라벌홀과 같이 고등학교 분위기가 나는 곳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셋째, ‘오래된 건물은 허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서라벌홀과 자연과학대학 건물을 사용하는 학생들에게서 자주 엿볼 수 있는 불만이다. 대학 캠퍼스뿐 아니라 아파트, 상가와 같은 건물에 대해 흔히 갖는 생각이기도 하다. 이에 윤승현 교수는 건물이 오래되면 무너지는 건 맞다고 말하면서도 하지만 지금 짓는 건물들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건물이 아니라고 했다. “대신 건물이 수십 년 사용되면 사람과 같이 병도 나고 더러워지기도 한다그럴 때 주기적으로 건물 내부를 보수하고 다듬어주는 것으로, 이 공간을 애지중지하며 다루는 것으로 건물을 더욱더 오래 쓸 수 있다고 말한다.

 

윤승현 교수는 양적인 문제를 요구하는 것에 집착하지 말라며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마스터플랜만 바라보기엔 지금 학교에 오는 학생들의 4년 청춘은 소중하다고 지적했다. “학교 공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큰 비전을 가지고, 그 비전에 의해 학교와 캠퍼스를 어떻게 다룰지 전략을 세울때 비로소 좋은 공간이 탄생한다.

 

다함께 상상력을 길러야 할 때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를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

 

우리가 비전을 갖고 학교 공간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따라가다 보면, 그 답이 꼭 마스터플랜이 아닐 수 있다. 대학 본부가 재원을 모으려 끙끙대지 않아도, 여러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짓는 동안 먼지를 들이마시는 대학 생활에 불평하지 않아도, 우리는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건 그리 크거나 비싼 게 아닐지도 모른다. 역사와 추억이 담긴 , 사람이 중심이 되는 소통의 , 내가 존중받는다고 느껴지는 삶의 . 그만으로 충분하다. 우리가 무얼 원하는지는, 우리가 고민해야 한다. 그러한 우리의 생각을, 우리가 말해야 한다. 캠퍼스 공간에 대해 고민하는 건 대학 본부의 일이 아니다. 학생의 일이다. 결국,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우리가 상상력을 발휘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 그제야 우리는 이곳을 우리 학교라 부를 수 있다.

 

 
  1. 대대적인 교육 인프라 구축과 100주년을 준비하여 새로운 중앙의 New-Vision을 설계하다”, 중앙대학교홈페이지중앙대학교의 역사,https://www.cau.ac.kr/cms/FR_CON/index.do?MENU_ID=200. [본문으로]
  2. 310관이 차지하는 면적에는 본래 대운동장만이 있었으나, 310관이 건립되며 부족해지는 법정 생태면적률을 확보하기 위해 학생회관(205)과 학생문화관(206)은 철거 대상이 되었다. [건물은 세워지는데, 왜 우리의 공간은 부족할까요? 중앙문화 71<방빼!>] [본문으로]
  3. 중앙대학교 총학생회 회칙. [본문으로]
  4. 우리는 왜 빨간벽돌에 남았나, <중앙문화> 71, https://cauculture.net/45?category=772691. [본문으로]
  5. 우리는 왜 빨간벽돌에 남았나, <중앙문화> 71, https://cauculture.net/45?category=772691. [본문으로]
  6. 대학별 교지 확보율, 21.11.08., 한국사학진흥재단. [본문으로]
  7. 학생 대표자와 대학 본부 관계자가 직접 소통하는 자리이다. 각 단과대학 학생회장과 대학 총장, 기능형 부총장이 참여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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