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문민기
“윤석열 후보, 제 20대 대통령으로 당선”
불과 0.73%p, 24만 7077표의 차이였다. 역대 최소 표차로 정권을 잡은 윤석열, 살아있는 권력에 저항하는 검사에서 정권의 총애를 받는 검찰총장으로, 다시 보수야권의 대표주자로 둔갑하는 데에는 채 몇 년이 걸리지 않았다. 놀라운 정치 드라마의 주인공 윤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온갖 논란에 휩싸였다. 으레 정권교체시기에 등장하는 통합과 미래를 향한 메시지는 간데없고 갈등의 언어가 헤드라인을 채웠다. 당선자 본인은 “이토록 별 탈 없는 인수위(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있었냐”며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 특히 그에게 표를 주지 않은 절반가량의 유권자는 불안해 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 윤석열의 탄생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보수정치의 화려한 부활인가, 권위주의로의 회귀인가. 많은 외신은 헤드라인에 ‘보수주의자’, ‘여성혐오자’, ‘안티페미니스트’ 등의 칭호를 붙이며 윤석열의 당선 소식을 전했다. 특히 국제사회는 여성가족부 폐지와 이대남 담론에 높은 관심을 보였는데, 앞으로 한국이 국제사회에 어떻게 비춰질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프리퀄일지 모르겠다.
어찌 됐든 윤석열 정부의 탄생은 시민의 뜻이다. 그렇다면 지난해부터 몇 달간 지속됐던 대선 정국도 과연 시민의 열망과 닮아있었을까. 지난 81호에서 <중앙문화>는 한창 달아오르던 대통령 선거판을 조망하며 20대 대선은 어떤 선거가 돼야 하는지, 후보들에게 어떤 공약이 필요한지 짚어본 바 있다. 20대 대선만큼은 반드시 기후 선거이자 평등을 위한 선거가 되어야한다는 것이 포인트였다. 극단으로 치닫는 기후위기와 불평등, 차별과 혐오 속에서 대통령 선거만큼은 이를 극복해낼 정책의 장으로 기능했어야 했다. 과연, ‘당신들을 위한 제언’ 1이 먹혀들었을까? 그리고 어느 때보다 청년이 적극적으로 호명된 선거에서 과연 청년이 설 자리는 있었을까? 당선자가 가려진 지 몇 개월이 흐른 현시점에서 되돌아봤을 때,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 뻔하다.
무엇이 잘못됐을까? 후보자들이 기후문제를 대놓고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저마다 나름의 공약을 내면서 스스로를 어필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정말 ‘어필’하기에만 바빴다. 여러 차례 열렸던 대선후보 토론회를 떠올려보자. 어떤 기후 정책 공방이 있었는가? 아마 많은 이들이 ‘알이백(RE100)’ 2 논쟁밖에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이마저도 정책 내용과 실현 가능성을 두고 오간 논의가 아니었다. ‘알이백’을 알고 있는지, 용어의 정확한 발음이 ‘알이백’인지 ‘리백’인지, 그리고 이를 바르게 발음하지 못하는 상대 후보는 얼마나 모자란 지, 서로 비난하기 바빴다. 거대양당의 스피커들과 지도부는 각자 후보의 주장을 엄호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야말로 전파 낭비, 정치력의 낭비였다.
어디 그뿐이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지하철 시위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투쟁이 촉발한 우리 사회 불평등에 대한 논의는 후보들의 공론장에 제대로 투사되지 못했다. 취지에 동의하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둥, ‘시기상조’라는 둥, 거대양당 후보들은 어영부영 말을 돌리기 바빴다. 이 모두 동료 시민들의 생존을 가르는 문제인데도 말이다. 결국 20대 대선은 기후 선거도, 평등 선거도 아니게 되었다.
“제8회 지방선거, 무투표 당선자 508명”
대선이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길게 늘여져 온 느낌이라면, 지선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많은 평론가들은 8회 지선이 정치적으로나 시기적으로나 대선의 연장전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들 말대로 어쩔 수 없이 대선 라운드 2가 돼버린 지방선거가 과연 지방의 목소리, 지역민의 의사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었을까? 이번 선거로 상당수의 시·도지사와 기초자치단체장, 광역·기초의회 원내 구성이 4년 전과 정반대로 뒤집혔다. 모두가 약속한 듯이 개표방송에 출연한 전문가들은 ‘윤심(尹心)’이냐 ‘민심(民心)’이냐 하는 분석을 내놓으며 중앙정치의 문법을 지방선거에 대입시켰다. 틀린 분석이 아니다. 정권 견제론과 정권 호위론은 모든 선거에서 유효하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 강력했던 대선 후유증은 지방선거에서 ‘지방’을 지워냈다.
이렇게 된 데에는 현행 정치 제도의 탓이 크다. <중앙문화> 81호에서는 지방정치의 민주성과 효능을 담보하기 위해 지방자치권 고도화와 의회 자치를 제언한 바 있다. 3 현재 지방자치를 관장하는 법령들이 제한적이므로 지방정부가 지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최대한 담을 수 있도록 자율을 보장해야 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월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기초의회 중대선거구제 시범실시를 합의했다. 중대선거구제는 지역구 당 당선될 수 있는 의원을 3명에서 5명까지로 정한다. 기존 2인 선거구에 비해 늘어난 정수에 따라 군소정당의 원내 진입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 취지다. 동시에 광역·기초의원 정수도 늘어났다. 다당제 지방의회로 나아가는 의미 있는 진전이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실제 확정된 중대선거구는 원안보다 대폭 적은 수에 그쳤다. 많은 지역에서는 2인 선거구가 오히려 늘어나기도 했다. 일례로 충청남도 서산시의회는 “각각 1곳·2곳·1곳이었던 2인·3인·4인 선거구가 도의회 논의 과정에서 모조리 2인 선거구로 바뀌어버렸”다. 4 그 이유로 기초의회 선거구를 획정하는 도의회에서 의결권을 독점하다시피 한 거대양당이 유불리에 따라 자신들의 정치개혁 약속은 잊은 채 말 바꾸기를 시전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거대양당의 ‘선거구 난도질’로 광역·기초의회 선거에서 투표 없이 당선된 후보들이 속출함과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군소정당 후보들의 좌절이 이어졌다. 8회 지선에서 지역구 광역의원 108명, 지역구 기초의원 294명, 비례 기초의원 99명이 일체의 선거운동 없이 의사당에 무혈입성했다. 7회 지선과 비교해 5배가량 증가했다. 5 만일 2인 선거구에 후보 등록 마감일까지 양당 후보 한 명씩만 출마한다면 이들은 선거를 치를 필요도 없이 자동 당선된다. 그들만의 눈치 게임에 성공하는 것이다. 혹여나 제3지대의 군소 후보가 출사표를 던진다고 하더라도, 최후에 누가 당선될지는 ‘답정너’에 가깝다. 이런 실상에서 당연히 유권자의 선택권은 존중받을 수 없다. 역시나 8회 지선에도 주민을 닮은 지방정치의 출현은 요원했다.
“이 나라를 떠야하나”
정치 진영을 막론하고 선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다. 누구는 벌써 이민 갈 나라와 집까지 알아봤다는 둥, 이런저런 농담을 나누기도 하지만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다.
그나마 실망스러운 대선과 지선 이후로 주목할 만한 지점은 있었다(정확히 말해 있는 것만 같았다). 청년은 진보, 중장년층은 보수라는 오래된 도식이 깨지며 정치권은 청년표 구애에 나섰다. 선거법 개정으로 피선거권 연령이 만 18세로 인하되며 청소년·청년 세대의 정치 도전도 활발해졌다. 한편 대선 참패 후 민주당 쇄신의 중심에 서 있던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한국 정치사에 고무적인 예시로 남을 것이다. 박지현은 N번방 사건을 최초로 공론화한 ‘추적단 불꽃’ 활동가 출신으로, 이재명 선거대책위원회에 영입되었다 대선 이후 비대위에 올랐다. 박지현의 적극적인 유세 활동은 선거 막판 20대 여성의 민주당 결집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6 사실 수권정당이 자신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 인사를 외부로부터 영입하는 건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7 그럼에도 박지현은 586세대 중년 남성으로 가득 찬 민주당 지도부와 느슨해진 여의도 정치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인물이었음이 명확했다. 애초에 우리가 20대 여성이 (사실상의) 기성정당 당수를 지내는 모습을 언제 본 적이 있던가.
하지만 이 역시 찰나에 그칠 뿐이었다. 박지현 위원장의 연이은 소신 발언은 민주당 코어 지지층으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샀다. 당론으로 채택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대한 부정적 견해와 지방선거를 앞둔 ‘586 용퇴론’은 당권을 잡은 이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으며, 지도부 투톱(박지현·윤호중) 간 불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윽고 지방선거 참패 이후 비대위가 총사퇴하며 박지현의 정치 행보 역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의 재난 상황에서조차 대선과 지선은 ‘그저 그런대로’ 흘러갔다. 다음 선거인 총선까지 2년 남은 시점에서 다시금 외쳐본다. 이제 어떡할 것인가? 대선과 지선을 힘겹게 견뎌낸 유권자들이 다름 아닌 한국 정치에 묻는 질문이다.
- <중앙문화>, “당신들을 위한 진심 어린 제언 - 20대 대선, 8회 지선에 부쳐”, 2021년 81호. [본문으로]
- 신재생 에너지(renewable energy) 또는 신재생 전기(renewable electricity)의 영어 앞글자 ‘RE’와 100%의 ‘100’을 따서 만든 말이다. 세계 주요국과 기업이 2050년까지 태양광ㆍ풍력 같은 신재생 에너지로 전력 수요의 100%를 충당하는 걸 목표로 하는 캠페인이다. (출처: 중앙일보) [본문으로]
- <중앙문화>, “당신들을 위한 진심 어린 제언 - 20대 대선, 8회 지선에 부쳐”, 2021년 81호. [본문으로]
- <한겨레>, “거대 양당 2인 쪼개기에…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 또 뒷걸음”, 22.04.29. [본문으로]
- <YTN>, “무투표 당선 '역대 최다' 508명...4년 전보다 5배↑”, 22.06.01. [본문으로]
- 이와 관련해 대선 이후 주목받은 청년 여성 민주당 강경 지지파 ‘개혁의 딸(개딸)’ 역시 흥미로운 정치적 현상이다. 박지현 위원장과 ‘개딸’을 동일선상에 두고 분석하려는 시도가 많았으나, 뒤에 언급할 검수완박 등의 사안에서 박지현은 당내 주류 의견과 배치되는 입장을 내자 ‘개딸’은 박지현과 선을 긋거나 거리를 두고자 했다. 종합해봤을 때, ‘개딸’은 박지현으로 대표되는 민주당 쇄신 노선보다는 검찰개혁·언론개혁·사법개혁으로 대변되는 민주당 주류의견과 정서를 같이 한다. [본문으로]
- <중앙문화>, “청년 정치, 찰나에 그치지 않으려면”, 2020년 79호. [본문으로]
'지난호보기 > 2022 봄여름, 82호 <공간; 존재가 서는 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곳; 모두의 이름을 찾아서(with 메타버스) (0) | 2022.07.02 |
---|---|
중앙대학교에서 퀴어로 살아남기 -지워진 이들이 서 있는 곳, 우리의 터전 (1) | 2022.07.02 |
반중(反中), 똑바로 바라보기 (1) | 2022.07.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