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김현경
일상에서 노인혐오를 체감한 적 있나?
A: 나는 일상생활에서 노인혐오를 느낀 적이 없다. B: 존재한다. C: 대중교통, 모바일 및 웹 환경에서 노인혐오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D: 노인혐오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E: 없어야 하지만 있다. |
중앙대학교 학생 다섯 명에게 노인혐오를 느끼고 있는지 물었다. 노인혐오를 체감하지 않는다는 이도 존재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틀X’, ‘연금충’과 같은 표현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여기서 ‘혐오’란 ‘성, 신체, 지역, 국적, 인종, 직업 등에서 상대적 약자로 분류되는 대상에게 차별적 인식을 드러내는 것’ 또는 ‘비하와 폄하를 드러내는 언어적 표현’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주로 여성이나 노인 등 약자와 소수자 집단을 멸시, 위협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노인인권 침해와 그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에 따르면 19~39세의 청년층 80.4%가 ‘우리 사회가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있고 이 때문에 노인인권이 침해된다’고 답했다. 1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선고받은 우리는 어떤 상황을 마주한 걸까. 머릿속에 노인을 떠올려보자. 나와는 접점이 없는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지, 거부감과 동시에 ‘그럴 만한 이유’가 함께 떠오르는지. 문제의 시작점을 알아야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에, 노인혐오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사회경제적 측면’의 혐오 배경
노년층과 청년층의 세대갈등, 혹은 청년층의 노인혐오가 기인한 데엔 다음 중 어떤 요인이 크다고 생각하시나요?
사람들은 어떤 요인을 첫 번째로 떠올릴까. 물론 혐오를 정당화할 수 있는 원인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혐오가 출발한 측면을 제대로 마주할 필요가 있다. 노인혐오의 시작에는 어떤 것이 존재하는지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노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이에 맞춰 언론은 청장년층의 부양 의무 증가와 노령화로 인한 청년 일자리 감소를 다룬다. ‘20년 뒤엔 인구 절반만 일한다... 성인 10명이 아이 2명·노인 6명 부양‘ 2, ‘노인부양 부담, 50년 뒤 세계 평균의 3배 전망’이라는 식의 헤드라인은 너무도 익숙하다 3. 일각에서는 노인혐오의 시작을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바라본다.
늘어가는 부양 부담
국민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한 노인인권보고서는 경제적 부양 부담이 노인혐오를 촉발한다고 분석했다. 4통계청에 따르면 노년부양비는 52019년 기준 20.4명에서 2067년엔 102.4명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청년들에게 미래는 ‘부양 대상이 많은 부담스러운 곳‘이 되었고, 노년층은 ‘비용이 드는 사람’이자 ‘부담을 떠안기는 사람‘으로 전락했다. 청년들의 시선에서 노인은 사회에서 아무런 생산성이 없고, 타인의 지원이 필요한 주체가 되고 만다.
최근엔 국민연금도 이슈다. 국민연금은 만 18세 이상에서 60세 미만의 노동자가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사회보험제도다. 보험료를 내면 60세부터 연금 형태로 보험료를 다시 지급받는다. 청장년층이 노년층의 노후 재원을, 그 다음 세대가 청장년층의 노후 재원을 마련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그러나 노인 인구가 빠르게 증가해 젊은 세대는 국민연금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실제 일부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에 대한 젊은 세대 부담(률)과 노인세대 수혜(율)사이의 갈등이 가장 심각한 세대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6고령 인구 때문에 ‘손해 본다’는 인식이 심어지고, 여기서 노인혐오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일자리 경쟁 상대
이 시대 청년들의 최대 관심사는 일자리다. 취업난이라는 고질병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청년들은 노년층을 ‘일자리 경쟁 상대‘로 여기고 있다. 사회 고령화와 기대 수명 연장에 따라 노년층이 직장 생활을 오래 유지하려 하니, 청년들의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일자리에 따른 노인혐오는 정부 정책에 대한 반응에서 느낄 수 있다. 2019년 정부가 노인 일자리를 74만 개까지 늘린다는 고용정책을 발표하자 온라인에서는 "노인 일자리 반대", "성실히 일하지 않는 노인에게만 쏟아붓는 세금, 참으로 아깝다"는 반응이 잇따랐다. 2018 7년에 발행된 국가인권위원회의 '노인인권 종합보고서'에서도 청장년(19~64세) 500명 중 56.6%는 노인 때문에 청년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란 우려를 표했다. 8
은퇴한 노년층의 재취업과 청년들의 취업 사이에서도 갈등이 존재한다. 취업이 상대적으로 쉬운 임시·일용직 일자리를 두고 노년층과 청년층이 경쟁하는 것이다. 9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공공일자리도 마찬가지다. 박철 KB국민은행 인재개발부 본부장은 ‘60대 이상 취업자 수는 2007년에서 2018년 사이 10년간 60%나 증가했고, 같은 기간 20대 취업자 수는 406만 명에서 366만 명으로 훌쩍 줄었다‘며 20대의 일자리를 60대이상이 잠식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10
그러나 노인혐오를 부추기는 이런 인식의 틀은, 조금만 고민하더라도 허상임을 알 수 있다. 누군가를 탓하는 일은 명쾌한 해결책을 찾는 것보다 쉽다. 그 대상이 약자라면 더욱 그렇다. 국민연금과 노년부양비 같은 노년층 부양 부담 증가의 기원은 ‘인구 구조의 기이한 변형‘일 뿐 ‘노년층 자체’가 아니다. 인구 구조 변화로 인한 부담스러운 미래가 필연적이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누군가를 향한 문책이 아닌 대안 모색이다.
일자리에선 노년층이 정말 청년의 경쟁 상대가 된 것일까. 고령자가 노동시장을 떠나야 청년층에게 일자리가 돌아간다는 생각은 한 사회의 일자리 총량이 ‘고정‘된 것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일자리 총량은 노동수요에 의해 정해진다. 하지만 노동수요는 산업수요, 임금, 노동생산성, 경기변동, 산업구조, 근로시간이나 해고에 대한 규제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변화한다.
노년층의 일자리 증가가 청년층의 일자리 감소를 불러일으켰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청년층의 일자리가 노년층의 일자리로 ‘대체’된다는 가정이 필요하다. 시대마다 요구하는 능력이 다르고 청년과 노년층은 자고 나란 시대와 체화한 지식이 다르다. 따라서 짧은 노동 지속시간에 업무 숙련도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임시·일용직 외 다른 일자리에선 청년과 노년층이 경쟁 상대라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 따르면 동등한 수준의 정규학력을 갖춘 집단을 대상으로 했을 때, 고령자 집단과 청년집단의 노동숙련도가 같다고 보기는 어려워 대체효과가 큰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한다. 이처럼 세대 간 경쟁이 유효한 일자리는 한정적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모든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것처럼 부풀려진 것이다.
노인에 대한 부양 부담과 일자리 경쟁 상대라는 인식은 상충한다. 노인경제인구의 증가는 곧 노인들의 수입 증가와 일상생활 유지를 뜻한다. 노인들이 수입이 생기고, 이를 통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면 노인에 대한 부양 비용은 줄어들 것이다. 즉, 노년층이 일자리 경쟁에서 지지 않아야만 청년의 노인 부양 비용이 줄어들 수 있는 셈이다. 노인혐오의 ‘원인’으로 거론되는 논리는 어딘가 모순적이다.
‘가치관 측면’의 혐오 배경
혐오는 사회경제적 배경만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사회경제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기존에 편견이 있던 집단을 불안의 원인으로 치부하고, 이 생각은 확대되어 공론장에 등장한다. 11주로 그 편견은 나와는 다른, 적법한 기준에 ‘틀린’ 특성이 있다고 믿으며 시작된다.
노년층과 청년층의 세대갈등, 혹은 청년층의 노인혐오가 기인한 데엔 다음 중 어떤 요인이 크다고 생각하시나요?
A: 성평등 의식의 간극이 가장 큰 것 같다. 남녀가 따로 해야 하는 역할이 정해져 있다고 대부분의 노인분은 생각하시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릴 때 갈등이 생기는 것 같다. B: 가치관 차이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노년층과 청년층은 살아온 시대와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가치관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서로 이해를 못하는 것이 세대갈등이나 노인혐오를 야기했다고 생각한다. C: 세대 간 공유하는 시대적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생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한국 사회가 급변해왔기 때문에 차이와 간극이 더 커지는 것 같다. D: 가치관 차이가 제일 크다고 생각한다. 살아온 환경이 너무 달라 이전에는 억척스럽게 살고 강하게 목소리를 내는 게 손해를 안 본다는 가치관이 청년층에겐 교양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고, 결혼이나 출산, 직업에 대한 어떤 선택을 강요하는 것도 청년층들의 자유로운 사고방식과는 달라 노인혐오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E: (가치관 차이, 성평등 의식의 간극, 청년들의 늘어나는 부양 의무, 일자리 경쟁자 증가, 정치 성향 등) 모두 노인혐오 문제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이 들지만, 가장 큰 차이는 가치관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
응답자들은 노인혐오 체감 여부와는 관계없이 노년층과 청년층 간 ‘가치관 차이‘를 느끼고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에서는 청장년의 87.6%가 “노인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세계일보에 따르면 청년들이 노인에게 불쾌감을 느끼는 이유로 ‘연장자라는 이유로 훈계하고 대접받으려고 한다’(65.8%)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아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53.8%), ‘대중교통에서 자리 양보를 강요하는 등 이기적이고 뻔뻔하다’(52.4%) 등의 이유를 고르기도 했다. 12쉽게 말해 노인들이 청년층이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은 우선으로 지향하는 가치와 신념에서 비롯된다. 앞선 답변들의 내용 역시 가치관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가치관 간극엔 어떤 것이 있고, 이들은 어떻게 형성된 걸까.
급속한 산업 발전에 따른 가치관 변화
모든 인생엔 과도기가 존재한다. 우리가 흔히 듣던 말이 있다. 현재 노년층은 한국전쟁으로 시작해 정말 파란만장한 사회 변화를 겪어왔다는 것이다. 그들이 지나온 고된 삶과 많은 과도기를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 정보 사회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의 한 가운데를 지나는 고령사회까지. 사회의 변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으며 이에 따른 세대 간 가치관 차이 역시 크게 벌어지고 있다. 청년들의 삶엔 핵가족화, 전통적 노부모 부양체계의 붕괴 현상 13, 권위주의 해체와 개인주의가 퍼져 나갔다. 노년층의 ‘관심’과 청년들의 ‘오지랖’은 한 끗 차이며, 노년층이 상식으로 여겼던 효를 기반으로 한 부양 의무는 청년들에겐 선택이 되었다.
하지만 세대 간 차이를 항상 ‘다름’으로 인지하기는 쉽지 않고, 각자의 눈엔 ‘다름’보다는 옳고 그름의 문제로 보인다. 게다가 이 차이엔 시대가 지남에 따라 함양된 인권 의식과 시민의식이 존재한다. 노년층의 언행이 청년들의 눈엔 규범에 어긋나거나 타인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로 보일 때가 있다. 이로 인해 청년들은 노년층과의 접점을 불쾌하게 받아들이고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성평등 의식의 간극
세대 간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단연 ‘성평등 의식‘을 꼽을 수 있다. 현재 노년층이 사회를 운영하던 정신적 기반 중 하나는 ‘가부장제 성문화’였다. 세계일보와 오픈서베이가 청장년층 각각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청년들이 노인에게 불쾌감을 느끼는 이유로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이다’라는 답변이 52.6%에 달했다. 14
노인인권증진을 위한 토론회에서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살롱 대표는 “20대 여성들은 ‘두려움’을 노년 남성에게 느끼고 있다“며 그 원인을 노인 남성들에게 당하는 차별적 경험 등으로 지목했다. 그에 따르면 40대 초중반 여성들의 경우 “의무적으로 가사노동을 떠맡는 현실이 노인들을 향한 부정적인 감정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15노년층을 향한 부정적인 감정은 가부장제 성문화와도 밀접하게 연결된 것이다. 김대표는 "결국 이들이 보인 노인혐오는 노인 개개인보단 가부장제를 향한 저항의 성격을 가졌다"고 노인혐오의 또 다른 배경을 설명했다. 16
‘노인’을 향한 이미지, 어디서 시작된 걸까
그렇다면 응답자가 이야기한 ‘청년들과 가치관이 다른 노인’은 어떤 노인일까? 청년들이 말하는 노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그들을 주로 어디서 마주하는지 물었다.
‘노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혹은 단어를 말씀해주세요.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A: ‘노인’ 하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컸다. 그런데 최근에 윤여정 배우나 밀라논나 할머니, 박막례 할머니를 유튜브로 접하면서, 이미지가 바뀌었다. 오히려 제가 노인들에게 배울 점이 많은 것 같다. B: ‘노인’ 하면 흰 머리에 주름진 얼굴을 하고 허리를 구부려 지팡이를 짚고 걷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게 지금까지 봐왔던 노인의 모습이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그런 모습을 한 사람이 노인이라고 배워왔던 것 같다. C: ‘약함‘, ‘느림’, ‘죽음‘이 떠오른다. 노인이 되면 운동능력이 떨어져 움직임이 둔해지고, 노화로 인한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D: 사회적 약자. 교통 약자석이나 지하철에서 보이는 노인 전용 좌석을 보면서 배려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E: 노인이라는 단어를 봤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회적 약자다. 쇠약한 신체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솔직하게 답변하자면 합리적인 이미지보다는 소통하기 어렵고, 최대한 잘 맞춰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떠오른다. |
노인을 주로 언제, 어디서 마주치나요?
A: 주로 지하철에서 출퇴근 시간에 마주친다. B: 주로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안에서 노인을 자주 마주친다. 혹은 시장 근처나, 지하철역 앞에서 무언가를 팔고 있는 노인들을 자주 본 적이 있다. C: 길이나 대중교통에서 마주치는 게 대부분이다. D: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나 길거리에서 마주친다. E: 일상생활에서 대중교통이나 대부분의 공공장소에서 마주치는 것 같다. |
평소에 마주하는 노인은 어떤 모습인가요? (외적 혹은 성격적인 측면 모두 상관없습니다)
A: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노인은 항상 피곤해 보였다. 사람들이 많아서 그래 보이는 것도 있고, 노인석이 따로 있다 보니까 사회적 약자라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B: 평소에 마주하는 노인은 대부분 약자의 모습이다. 걷기도, 물건을 들기도 힘들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C: 주변을 신경 쓰지 않는 듯하고 거동을 힘들어하거나 언행이 거칠다. D: 조용한 분들이 대부분이다. 길을 물어보시거나 무언가 구매할 때를 제외하고는 다들 어디론가 가시는 분들이 많다. E: 사실 모든 개인이 다르듯이 노인분들의 모습도 매우 다양하다고 생각한다. 소소한 일상생활을 즐기시면서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으로 보인다. |
답변들이 어딘가 비슷하고 특정한 이미지에 갇혀 있는 듯하다. 노인들을 만나는 장소 역시 지나치게 한정적이다. 우리는 노인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는 걸까? 모든 노인을 바라본 적이 있긴 한 걸까?
청년들이 바라본 노인은 어떤 노인일까
이들이 바라본 노년층은 대개 ‘약자’나 ‘어떠한 행동을 스스로 취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획일적인 경향을 보인다. 노인과의 한정된 접점이 원인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에서의 직접적인 만남 이외에도 이들의 다른 삶을 상상한다. 바로 미디어에서 말이다. 노년층의 이미지는 미디어에서 노출되는 노인의 모습과, 미디어가 재생산하는 사회적 지위와 역할에 따라 변할 수 있다. 젊은 세대의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나 편견은 직접적 경험보다 미디어 콘텐츠 등을 통한 간접 접촉에 근거한다고 한다. 즉, 미디어에서 비추는 노인의 모습이 청년들의 인식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디어에서 노인들은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일단 노인이 주인공으로 나온 콘텐츠를 떠올려보면 그 수가 많지 않다. 드라마 속 노인 배역은 실제 노인 인구 비율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다. 국내외 미디어의 노인 재현에 관한 연구들은 미디어가 노인을 다루는 데 양적으로 인색하다고 보고했다.
미디어 속 노년층의 모습 역시 응답자들의 답변처럼 어느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다.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노인들의 모습은 그 수를 몇 개 세기도 전에 금세 바닥이 난다. 청장년층인 주인공의 부모 역할로 등장해 자녀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만 묘사될 뿐, 그들만의 서사는 찾기 어렵다. 이를테면 자녀와의 가치관 차이로 갈등하거나, 자녀의 연애를 반대하거나, 불치병에 걸려 가족들의 시련이 되는 식이다. 특히 남성 노인은 가정의 최고 지위자로 나오며 가부장적 문화를 재생산하기도 한다. 여성 노인은 주로 가족에 헌신하거나, 혹은 여성의 사회 활동이 어렵던 배경에도 불구하고 억척스럽게 가정을 일궈낸 어머니로 표상된다.
신문 속에서는 노인이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오마이뉴스 기사를 분석했을 때, ‘초라하다’, ‘인지능력이 떨어진다’와 같이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93.5%)를 담고 있는 인터넷 기사가 긍정적인 이미지(44.2%)를 담고 있는 신문 기사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뉴스에서는 무능, 빈곤, 범죄의 희생양이나 도움의 손길이 요구되는 나약한 존재로 다뤄진다.
물론 시대가 변하며 영화 <인턴>, 예능 <꽃보다 할배>와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눈이 부시게>, <나빌레라>와 같이 노인을 앞세운 콘텐츠가 등장하기도 했다. 뉴미디어에서도 유튜브 채널 <박막례 할머니>, <할담비 지병수> 등 노인 콘텐츠의 새로운 모델이 속속이 나타났다. 이들은 노인을 조명하는 콘텐츠가 늘어나고 다양한 노인상을 제시하는 데서 의미가 크다. 인터뷰에서도 노인 중심 콘텐츠를 보고 새로운 노인상을 접한 학생의 답변이 있었다. 그럼에도 노인 중심 콘텐츠를 기억해내는 건 쉽지 않다. 여전히 노인 중심 콘텐츠의 수는 절대적으로 적으며, 사회 고령화 속도에 비하면 미디어 시장의 변화는 터무니없이 느리다. 이렇게 노년층의 보편적이자 색다른 모습을 제시한 콘텐츠에서도 간혹 이런 댓글이 달린다. ‘요즘 노인들과 달라서 좋다’, ‘세상 모든 어르신이 이랬으면 좋겠다’는 내용이다. '요즘 노인들'이라는 말에는 청년들이 갖고 있는 노인에 대한 편견이 담겨있다. '이랬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은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노인을 재단하려는 청년들의 본심이 드러난다.
“우리는 노인을 개별적인 존재로 보지 않고 세대 전체로 뭉뚱그려서 본다. 으레 노인이라면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힘이 빠진 존재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노인, 저런 노인, 사람마다 다 다른데 개별적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나이 드는 데도 예의가 필요하다』, 고광애
혐오는 ‘혐오할 만한’ 이유를 찾는 데서 시작된다. 사람들은 그 ‘혐오할 만한’ 이유를 집단 전체에 적용한다. 집단에 획일적인 이미지를 씌워 다양한 인간 군상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타인에 의해 수동적이고 자의적인 대표성을 갖게 된 혐오 대상은 더욱 심각한 혐오를 맞이한다. ‘노인혐오’라는 단어는 공공장소에서 마주하는 시민의식이 부재한 노인만을 담을 뿐, 사회 지도층이나 부유한 노인을 연상케 하지 않는다. 17가치관 차이를 보인다던, 약하고 돌봄이 필요한 것 같은 노인들은 정말 모든 노인을 포괄할 수 있을까? 청년들은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대면한 노인만으로 노인 집단 전체의 이미지를 정해버린 건 아닐까. 아무런 왜곡 없이 노인을 바라보고 있는지, 여러 모습의 노인이 존재한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세대 간 접점은 어디에
물론 노인혐오가 일부 노인만을 보고 시작됐다는 말이 공허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부유한 노인’처럼 청년들이 자주 접하지 않는 노인에게도 혐오가 존재하며, 청년들이 바라본 노인이 한정적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더라도 노년층과의 가치관 간극은 분명히 벌어져 있다.
그렇다면 하필 왜 노년층과의 격차가 눈에 띄게 큰 것이며, 어쩌다 이것이 혐오로까지 번진 걸까. 단순히 ‘세대 차가 커서’라고 말하는 것은 노인혐오가 절정에 치달은 이 상황에서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태도다. 우리는 차이가 있다면 그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만약 그 차이가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든다면 합의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왔다. 그러나 노년층과 청년들은 이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유교 질서와 노인 공경 문화를 효율적인 도구로 삼아 청년들이 이 간극을 감내하는 방식으로 손쉽게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탓에 노년층도 잃은 게 많다. 다른 세대와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새로운 문화나 패러다임을 접할 기회를 상실했고, 청년들의 인식과 미디어에 다양한 노인상이 반영되지 못해 더욱 주변부로 떠밀렸다. 결국 노인은 청년들에게 ‘불편한 대상’으로 낙인찍히며 서로 간의 접점은 사라져갔다. 소통의 부재는 고령화 사회 속 청년들의 늘어가는 사회경제적 부담과 세대 간 가치관 차이와 결부돼 극단적인 혐오로 치달았다.
실존하는 ‘가치관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세대 간 대화가 필요하다. 세대 간 교류와 소통 부족은 세대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시니어 전문 미디어가 주최한 조사에 따르면 50∙60세대의 44%, 20∙30세대의 50%가 소통 부족이 세대 간 갈등의 큰 원인이라고 답했다. 18하지만 우리나라는 여러 세대가 ‘공유’하는 공간이 별로 없다.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하면 지불이 필요한 카페나 식당이 전부다. 물론 이런 공간에서도 세대 간 소통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최근엔 이마저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형태가 되어 노년층의 접근성을 저해한다. 거의 유일한 만남의 공간조차 노인을 배제하는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온라인 공간은 어떨까? 온라인 공간에서는 나이, 직업, 관심사 등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소통할 수 있다. 사용자들은 온라인 공간을 공유하며 의견을 주고받고, 때로는 조명이 필요한 사건을 공론화하거나 요구를 관철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세대 간 연결 지점이 되지 못하고 있다. 청년들은 온라인 공간을 공론장으로 사용하지만, 노인은 온라인 공간에 발을 들이기 어렵다. 온라인 공간을 이용하더라도 정보 기기 접근과 활용 능력의 차이로 노년층의 발언권과 무대는 적다. 오히려 가짜뉴스 전파와 범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노년층이 집단으로서 그들의 의사를 직접적으로 드러낸 사례는 정치적 집회밖에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세대 간 만남이 거의 불가능한 환경은 소통의 단절을 야기하고, 몇몇 집회를 노인 집단 전체의 의견인 양 과대표화 한다. 어느새 노년층은 ‘맹목적이고 극단적인 정치 집단’이 되어 있었다.
최근엔 노년층이 온라인 공간을 활용하는 경우가 증가했으나, 이들이 다른 세대와 소통하는 모습은 생소하다. 같은 온라인 공간에서도 청년과 노년층은 각기 다른 곳을 점유한다. 이용자들은 다른 세대가 이용하는 콘텐츠를 보고서 ‘이곳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고 여기며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결과적으로 여러 세대가 섞이기보다는 특정 세대의 이용자들끼리 한곳에 모이게 된다. 접점 부족이 불러온 세대 간 거리감이 온라인 공간에까지 연장된 것이다. 노년층을 만났을 때 우린 어떤 대화를 할까. 일부는 대화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제 청년과 노인 사이엔 적막만이 가득하다.
인간은 누구나 노인이 된다?
노인 차별로 전세계의 순위를 매기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5개 국가 중 2위에 달한다. 19세계가치관조사에 따르면 사회의 고령화율이 높을수록 노인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나 존경이 줄어든다고 한다. 20미래가 정해진 것처럼 노인혐오가 짙어지는 요즘, 노인혐오가 사회문제로 언급될 때마다 듣는 한 문장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노인이 된다.
‘인간은 누구나 노인이 된다’ 이 문장을 보고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인가요? 해당 문장이 노인혐오 해소에 효과적이라고 느끼시나요?
A: 이 문장으로 노인혐오가 해소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생각은 조금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저 사람이 될 수 있다’ 보다는 ‘저 사람이 존중받을 만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더 중요할 것 같다. B: 해당 문장을 봤을 때 노인에 대한 혐오나 편견을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일회적인 것 같다. 나도 노인이 되겠지만 내가 싫어하는 노인의 모습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C: 두렵다는 생각이 든다. 한 문장만으로는 ‘우리는 다 노인이 되니까 노인혐오를 멈추자’라는 메시지로 느껴지지는 않는 것 같다. D: ‘인간은 누구나 노인이 된다’라는 문장은 자격 없는 사람이 자신이 응당 대접을 받아도 된다는 의식을 가지게 할 것이다. 또한 노인혐오를 가진 사람이 이 문장을 봤을 때 ‘스스로를 약자로 가장해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이익을 얻고자 한다’라고 생각하며 혐오가 강화될 여지도 있다고 생각한다. E: 인간은 모두 노인이 되기 때문에 젊은이는 노인을 배려하는 문화가 있어야만 사회의 선순환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당 문장은 노인혐오에 있어서 효과가 분명히 있다고도 생각된다. 노인에 대한 시선을 바꿀 수 있는 명제이기 때문이다. |
세상은 ‘인간은 누구나 노인이 된다’는 문장으로 노인에 대한 인식 개선과 공경을 장려하지만, 예견된 당사자성을 빌리기엔 청년에게 노년의 삶은 아득하다. 응답자 A가 말했듯 존중의 근거를 ‘당사자가 될 가능성’ 만에 기대는 것은 위험하다. ‘당사자가 될 가능성이 없다면 동등한 인격체로의 대우가 필요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D처럼 해당 문장을 ‘자격이 없는 사람도 노인이라는 이유로 대접받는’ 특권으로 받아들이는 이도 있다. 물론 인권에 필요한 자격은 없다. 인권은 ‘살아있음’에서 시작되는 절대적인 권리지만, 노인혐오가 만연한 사회는 이를 잠시 잊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배려와 양심에 노인혐오 문제를 맡기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그럴 만한’ 이유는 없다
의심이 필요하다. 당연한 것에 대한 의심과 질문은 부조리함을 들춰내고 뜯어고치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노인혐오는 ‘그럴 만하다’는 이유로 행해진다. ‘그럴 만하다’를 의심하고 샅샅이 파헤치는 것이 문제 해결에 다가서는 과정이다.
혐오를 체감하지 못했더라도 노인의 배제와 노인과의 소통 부족은 부인하기 어렵다. 사회에서 마주할 노인들이 늘어난다는 것 또한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대 구조의 변화는 우리에게 고민을 던졌다. 노년층과 청년층 사이에 그어진 선은 그럴듯한 혐오 원인을 뜻하는 게 아니다. 우리에게는 이 선을 지워 서로 가까워질 기회가 남아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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