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김지우
수습위원 김민지
알고 읽으면 좋은 비거니즘 & 채식주의 용어 사전 비거니즘 다양한 이유로 동물성 제품을 섭취하지 않고 가죽 제품, 양모, 오리털, 동물 화학 실험을 하는 제품 등 동물성 제품 사용과 소비를 피하는 철학을 뜻한다. 비거니즘에 동의해 동물성 제품 섭취 또는 사용을 피하는 사람을 비건(vegan)이라 한다. 동물계에 인간이 가하는 모든 형태의 착취와 학대를 배제하고자 하는 생명 윤리적 의미를 포함한다.[1] 채식주의 동물성 음식을 먹는 것을 피하고, 식물성 음식만을 먹는 것을 뜻한다. 엄밀히 따지면 비거니즘과는 구분된다. 예컨대 종교나 건강 등을 이유로 채식을 한다면 채식주의자이지만 비건은 아닐 수 있다. 플렉시테리언 거의 대부분 채식을 하지만 때때로 육식을 하는 경우. 일부는 공장식 농장에서 생산되는 고기(동물)를 거부하고 자연 상태에서 자란 동물 고기(동물)만을 먹는 경우도 있다. 보통 비건으로 이행하는 중간 단계로 거쳐간다. 닭알 계란 혹은 달걀을 지칭하는 말. 소젖 우유를 지칭하는 말. 비건들은 동물성 식품을 지양하기 위해 대신 각종 대체유를 선택한다. 물살이 물고기를 포함한 바다 생물을 지칭하는 말. |
비거니즘은 의식주뿐만 아니라 인식이나 언어 습관에서의 변화 역시 꾀한다. 인간 중심의 언어 사용을 지양하고 육식 중심의 문화에 의문을 던지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위의 단어들이 통용된다. 정확히 ‘무엇’인지 불분명한 언어는 우리가 무엇을 먹고 소비하는지 그 본질을 흐리기 때문이다. |
“역사상 최악의 범죄 중 하나” ―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긴급한 시정을 요함” ―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지구가 ‘개가 벼룩을 털어내듯’ 털어낼 것” ―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
“현대 문명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 ― 작가 제레미 리프킨
모두 축산업을 가리키는 말이다. 현대의 공장식 축산업은 그 방식과 영향에 있어 꾸준히 비판되어 왔지만 여전히 건재하다. 축산업은 생태계를 파괴하고, 탄소 배출과 분뇨로 심각한 오염을 일으키고, 동물 학대의 온상이며 심지어는 노동 인권 문제[2]와도 얽혀 있다. 구제역은 반복되고, 살충제 달걀 파동은 아직 생생하다.
그래서 작년에 새로 만들어진 교내 비거니즘 동아리 <야채가 좋아>는 저마다의 이유로 축산업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기를 선언했다. <야채가 좋아>는 ‘비거니즘’이 우리의 새로운 생활 방식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대한민국에서, 그리고 중앙대학교에서 비건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질문의 답을 듣기 위해 <야채가 좋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소현(정치국제 16) 씨, 홍지혜(경영 18) 씨를 만났다.
채식에 대한 오해들 1. 채식을 하면 필요한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한다. (O/X) 정답: X 소현: 대부분 광고로 인해 과장되거나 왜곡되어 상업화된 지식이에요. 예를 들면 브로콜리 100g과 육류 100g을 비교했을 때 브로콜리에 단백질이 훨씬 많아요. 그리고 육류는 한 끼 식사가 되지만, 브로콜리는 한 끼보다 많은 양이에요. 같은 양으로 더 많은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거죠. 지혜: 저는 고기(동물)를 안 먹으면 단백질이 부족하지 않다는 등의 말을 종종 들었어요. 영양학적인 교육의 한계 때문인지 영양소와 특정 음식을 대응시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단백질은 소고기나 닭가슴살, 탄수화물은 밥이나 빵. 이런 식으로요. 근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식물에는 흔히 생각하는 식이섬유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양소가 많아요. 그리고 현대인의 식단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단백질 섭취가 과할 정도[3]예요. 2. 고기(동물)를 안 먹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않다. (O/X) 정답: X 소현: 육류는 외국산이 많잖아요. 근데 가축에 대한 규제가 나라마다 달라요. 미국에서 금지된 약물이 남미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요. 과도한 약물이 투입될 수도, 비위생적일 수도, 먼 거리를 이동해서 온 ‘죽은 동물’이 건강에 좋을 수 있을까요?[4] 지혜: 저도 주변에서 종종 “(채식을) 해 보니까 어지럽더라, 건강에 별로더라.” 같은 말들을 들어요. 그건 제대로 된 식단을 섭취하지 않아서인 것 같아요. 채식이라고 샐러드만 먹는 건 아니기 때문이에요. (웃음) 3. 채식 식단이면 풀 위주일 것이다. (O/X) 정답: X 소현: 전 맨날 고기(동물)를 먹는 것보다, 채소로 만들 수 있는 식단이 더 많다고 느껴요. 사실 고기(동물)는 굽고, 볶고…. 조리 방법과 맛이 다양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지혜: 맛있는 거 못 먹어서 어떡하냐는 걱정 아닌 걱정도 듣곤 하는데, 저는 채식을 하면서 오히려 다양한 식단과 식재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음식을 자세히 이해하게 됐고, 맛을 더 깊게 음미하게 됐어요. 4. 비건들은 식물의 고통은 신경 쓰지 않는다. (O/X) 정답: X 지혜: 저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식물을 안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아마 채식주의자들이 가장 먼저 안 먹을 것이라고 얘기하고는 해요. 그런 사람들은 저희가 동물을 안 먹는다는 이유로 (도덕적으로) 더 완벽하길 바라는 것 같아요. 사실 문제를 인식하고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소현: 저는 그런 말들이 되게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물도 식물도 아무렇지 않게 먹으면서 왜 식물의 고통을 말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우선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소현: 안녕하세요. 가지를 가장 좋아하는 정치국제학과 16학번 박소현입니다. 지난해 10월, 동아리 <야채가 좋아>를 만들었습니다.
지혜: 버섯을 가장 좋아하는 경영학과 18학번 홍지혜입니다. 원래 비거니즘에 관심이 있었는데, 관련 교내 동아리가 없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대신 국내 대학 비거니즘 동아리 연합인 <비온대>에서 개인으로 활동하던 와중에 소현 씨를 만났고, 소현 씨를 통해 <야채가 좋아>를 알게 되어 들어가게 되었어요.
동아리 이름이 흥미로운데요. 간단히 <야채가 좋아>를 소개해 주세요.
소현: 우선, 동아리 이름을 빌려 소개하자면 <야채가 좋아>는 이름 그대로, 야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입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동아리이지만 당장 비거니즘을 실천하고 있지 않아도 야채가 좋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채식은 매끼마다 식탁에서 하는 ‘선택’인 것 같아요. 저 역시 야채가 좋아서 채식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동아리 이름도 이런 의미에서 짓게 되었어요.
앞서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동아리이긴 하지만 비거니즘을 실천하고 있지 않아도 채식을 하는, 야채가 좋은 사람들에겐 열려 있다고 이야기해 주셨어요. 사실 비거니즘과 채식주의는 엄밀히 말하면 구분되는 영역이잖아요. 활동의 초점이 어디에 있다고 봐야 할까요?
소현: 비거니즘이 생소한 사람이라면 가장 접근이 쉽고, 첫 시작이 될 수 있는 것이 채식이라 생각했어요. 비거니즘이란 게 결국 동물로부터 소비하는 모든 것에 대한 생각 방식이나 관념의 전환이잖아요. 당장은 관심이 없더라도 채식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비거니즘에도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일단은 접근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사람들에게 보다 익숙한 채식에 집중하고 있어요.
비거니즘이 좋아!
채식과 비거니즘에 관심을 가지게 된, 혹은 실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소현: 저는 처음에 기후 변화로 인해 시작하게 되었어요. 제가 기후 변화 교육을 받는데 기후와 음식에 관해 발표할 기회가 있었어요. 발표를 준비하면서 기후 변화와 우리의 식탁, 우리가 먹는 음식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고요. 기후 변화와 비거니즘의 철학, 생활 방식은 서로 많이 닮아 있어요. 기후 변화가 인간의 소비에서 시작되었고, 인간의 소비가 대부분 축산업인 게 사실이니까요.
‘기후 위기’와 ‘음식’은 얼핏 들으면 관련 없는 단어들처럼 들려요.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소현: 우선, 축산업이 항공 운송보다도 탄소 배출량이 많아요. 우리가 축산업에서 배출하는 탄소는 20.4%인데 항공운송 2%거든요. 게다가 작년 UN의 IPCC[5] ‘기후변화와 토지 특별 보고서’를 보면, 지구 상의 인간이 조금이라도 채식을 실천하면, 심지어 완전 채식이 아닌 플렉시테리언 정도라도, 탄소 배출을 엄청나게 줄일 수 있어요. 그래서 채식이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다른 노력들만큼이나 유의미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제가 지금 가장 쉽게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채식이라고 생각되어 실천하고 있습니다. 채식 추천해요. (웃음)
그럼 지혜 씨는 어떻게 채식과 비거니즘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지혜: 제가 처음 관심 가지게 된 건 6년 전인데요. 저는 원래 고기(동물)를 안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거니즘과 채식에도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던 중 오랜 기간 채식을 실천한 분을 만나게 됐고, 처음엔 건강을 위해 채식을 해 보자고 결심했었어요. 그때 6개월 정도 비건식을 실천하다가 다시 원래 식단으로 돌아왔고, 최근에 다시 비거니즘을 실천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일반식으로 돌아오셨다가 다시 비거니즘을 결심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지혜: 최근에 다시 비건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게 계기는 동물권 때문이었어요. 제가 개는 먹지 않으면서 돼지나 소는 먹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은 가축이 좋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기도 하고, 내가 소비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채식을 실천하고 있어요. 저는 채식이 일종의 투표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직접 채식 식당에 가서 소비하는 것 같은 한 사람의 선택에도 엄청난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당장 육류를 안 먹는 게 오늘의 작은 실천처럼 보여도 그게 쌓여서 일 년이 되면 분명 눈에 보이는 차이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또, 인간을 위해서도 할 짓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동물을 도축하는 과정을 직접 보면 누가 먹을 수 있을까 해요. 그 과정이 굉장히 인위적인 것 같았어요. 개인적으로는 음식에 있어서 사람들의 욕망이 지나치다고 봐요. 굳이 이렇게까지 소비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듣다 보니 정말 사람들이 음식을 과하게 섭취하는 것 같아요. 먹방도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하나의 방송 분야로 자리잡고 있잖아요.
지혜: 결국 과잉이 문제인 것 같아요. 한 지역에서 하나의 작물만을 재배하는 대량 생산도 그렇고요. 이런 식의 생산 방식은 생태 다양성도 저하시키니까요. 사람들이 조금씩만이라도 절제하는 삶을 추구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소현: 최근 읽은 책에서는 축산업의 컨베이어 벨트를 자본주의의 시작이라 보고 있더라고요. 원래는 축산업 노동자가 고임금인 편에 속했는데 대량 생산 체제로 바뀌면서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했잖아요. 저도 일단 소비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기후변화에서 중요시하는 게 지역공동체거든요. 이동거리가 멀어질수록 탄소배출량 많아지니까 지역에서 생산한 걸 소비하면 환경적으로도 도움이 돼요. 그동안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기계처럼 바쁘게 생활했지만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게 잠시 멈추었잖아요. 이를 계기로 개인이 이 기계적인 사회를 합리적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두 분 모두 채식뿐 아니라 이를 둘러싼 사회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게 느껴져요. 알게 된 내용을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기도 하시나요? 평소 채식이나 비거니즘을 알리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 위한 본인의 방법이 있다면요?
소현: 특히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해요. 관련 기사, 블로그 글을 많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관련 정보에 노출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기존의 매체를 많이 활용하려 하고 있어요.
지혜: 저도 같은 노력들을 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채식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많아요. 저는 SNS에 방문한 채식 식당 사진을 올리기도 해요. 채식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채식 요리가 다양하다는 걸 알리고자 하는 목적에서요. 또 채식을 하는 이유 중 하나가 환경이다 보니 카페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지 않는다든가 일회용 컵홀더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엘리베이터를 가급적 덜 이용하려고 하기도 해요. 자원을 절약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생각해 보면 야채가 많이 들어간 음식은 쉽게 떠오르지만 그 중에서도 동물성 제품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은 찾기 어려운 것 같아요. 독자분들 중에서도 채식에 관심이 있지만 실천하기 어렵다고 느껴서 망설이는 분들이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두 분은 일상에서 어떻게 채식을 실천하고 계신가요?
지혜: 채식 전문 식당도 가지만 사실 그런 건 특별한 날이에요. 일반식을 어떻게 해결하는지가 가장 큰 관건인데, 비빔밥을 주문한 다음에 닭알을 빼달라고 요청하는 등 최대한 비건에 가깝게 먹으려고 노력해요.
소현: 채식 식단이라고 하면 보통 ‘풀’을 떠올리시는데 피자, 버섯탕수, 채식해장국, 군만두처럼 종류가 많이 있어요.
지혜: 전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을 채식으로 대체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우유도 굳이 소젖이 아니더라도 대체유가 정말 많아요.
소현: 맞아요. 오트밀, 아몬드, 캐슈넛 등 대체유가 다양해요. 전 오히려 “우유만 마시면 질리지 않나? 우유는 한 종류밖에 없는데?”라는 생각도 들어요.
두 분 다 가족들과 함께 생활한다고 들었어요. 사실 동거인이 있으면 타인과 식단을 공유하는 일이 잦다 보니 채식을 실천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아요. 혹시 집에서 채식을 실천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소현: 처음에 반발이 심했어요. 예를 들어, 어머니가 소고기미역국 같은 걸 해 주셔도 제가 먹지 않겠다고 했었거든요. 아무래도 직접 요리를 하시니까 서운하셨는지 성의를 생각해서 먹어 보라고 하셨어요. (웃음) 건강을 생각해서 요거트 같은 간식들을 사오시기도 하셨고요. 요즘은 오히려 제가 비건 음식을 사서 먼저 보내 드려요. 먹다 보면 은근 맛있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일단 비건 식품을 가족들에게 자주 노출시키려고 합니다.
지혜: 사실 저희 집안은 아버지도 고기(동물)를 안 좋아하셔서 생각보단 어렵지 않았어요. (근데 어머니랑은 사소한 신경전이 있었어요. 어머니는 제가 고기(동물)를 안 먹는 것을 걱정하셔서 동물성 식품을 먹으라고 권유하셨는데, 요즘에는 어머니도 저랑 같이 비건 음식을 만들어서 드세요. 게다가 함께 식사하다보니 (채식을 하는 방향으로) 서로의 식단이 비슷해지고 있습니다. 아직 종종 계란(닭알)을 먹으라는 이야기는 하시지만, 그래도 변화는 확실히 눈에 보여요. 어머니가 요즘은 우유 대신 두유를 드시고 계세요.
야채가 좋아!
소현 씨는 이미 졸업하셨지만 아무래도 대부분의 동아리원들이 학생이다 보니 학교 생활 이야기도 안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중앙대학교 학생으로서 비거니즘을 실천하거나 채식을 선택하기에 학교 인근 환경이 괜찮은 편인가요?
소현: 우선 식당이 많이 없어요.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은 상도역 근처의 ‘우부래도’라는 베이커리가 유일해요. 보통은 일반 식당에 가서 따로 이야기를 해야 해요. 어떤 것들은 빼고 달라고 하는 식으로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물권뿐만 아니라 종교나 건강 등을 이유로 채식을 선택한다고 알고 있어요. 중앙대학교의 경우, 교환학생이나 유학생 비율 타 대학에 비해 높은 편이잖아요. 교내 학생 식당도 사정은 비슷한가요?
소현: 저희가 법학관 학생 식단의 한 달치 식단을 조사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비건이 먹을 수 있는 식단이 단 한 가지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교내 모든 학생 식당의 식단을 확인해 봤더니 영양학적 불균형도 심각했고, 채식은 사실상 아예 불가능하더라고요. 다양한 식단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문제 의식을 느낀 뒤에는 어떻게 하셨나요?
소현: 교내 150명 정도를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어요. 결과를 보니까 응답자 중 74.1%가 채식을 지향하고 있었고, 채식을 지향하든 지향하지 않든 46.9%가 ‘교내 채식 환경이 갖춰지지 않았음’에 동의하고 있더라고요. 게다가 비거니즘이 아닌 다른 이유로 인해 학식을 먹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 비율이 25.9%나 됐어요. 응답자 4분의 1이 넘는 숫자잖아요.
와, 상당히 높은 비율인데요!
소현: 채식을 실천하든 그렇지 않든 학생 식당에 영양소 정보가 공시되어 있지 않은 건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학생들이 스스로 어떤 음식 제공받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까요. 혹시 알레르기가 있더라도 관련 정보가 안내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개인이 책임을 져야 하는 구조였어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굉장히 많은 학우들이 ‘먹고 싶은’ 음식을 못먹고 있잖아요.. 그런데 내가 제공받는 음식에 어떤 게 포함되어 있는지 알 수 있는, 그런 최소한의 정보도 없다는 게 불합리한 것 같더라고요. 적어도 그게 누구든 ‘오늘 나는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겠다’고 했을 때 그 선택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중앙대학교에 채식 선택권이 보장되는 식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최근 총학생회 산하 인권복지위원회에서 비건 학식 마련을 위한 수요 조사를 진행하는 등 다양한 요구를 포용하려는 시도들이 보여요.
소현: 저도 당장 별도의 식당을 만드는 건 어렵더라도 학교가 학생들에게 여러 ‘선택권’을 보장하려는 노력은 해야 하다고 봐요. 누군가의 문화일 수도 있고, 선택일 수도 있으니까요. 서울대학교의 경우에는 채식 식당이 아예 따로 마련되어 있더라고요. 교내 카페도 두유나 대체유를 사용하는 등 비건 옵션이 의무화되어 있어요. 저희도 그렇게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학교 차원의 변화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학생들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있었는지도 궁금해요.
소현: 예전에 각자 다른 단과대의 학생들이 채식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모여서 포틀락을 한 적이 있어요. 아무래도 여러 학생들이 모이다 보니 새로운 생각들을 하게 되는데, 아직 간식 사업에서 채식 메뉴가 없는 단과대들이 많다는 문제 의식이 공유되어 행동까지 이어지게 되었죠.
지혜: 확실히 학교 간식 사업에 채식주의와 비거니즘에 대한 의견들이 많이 반영된 것 같아요. 축제 부스에서 학생회가 판매하는 음식들도 동물성 식품을 지양하기 위해 노력한 게 보이더라고요.
동아리 활동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설문 조사 이외에도 서울 캠퍼스 인근의 채식 가능한 식당들을 서로 공유하고 아카이빙하는 등 여러 시도들을 하고 있다고 들었거든요.
소현: 네, 작년에는 학기 중에 서로 돌아가면서 간단히 원하는 주제에 대해서 세미나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기후 위기와 채식, 동물권, 육식주의와 제국주의처럼 다양한 내용을 함께 공부했어요. 올해는 아쉽게도 코로나19와 개학 연기 등으로 인해 여건상 만나기 힘들게 되어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기에는 아쉬움이 있는데요. 그래도 방학 때 다함께 축산업, 영양학 등 다양한 주제의 도서를 읽고 소감 나누는 시간을 가졌어요.
지혜: 저 같은 경우는 독서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요. 독서 모임에서는 채식뿐만 아니라 환경, 동물권 등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요. 다양한 주제의 책을 읽고 함께 생각을 넓혀 가는 중입니다. 특히 여러 책을 접할 수 있다는 게 독서 모임의 장점이에요. 공통된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지만, 각자 읽은 책을 공유할 때도 있거든요. 각자 채식을 하는, 혹은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이유가 다르잖아요. 이런 활동으로 여러 분야와의 연결고리를 알 수 있어 유익했어요.
앞으로도 좋아?!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소현: 동아리를 처음 만들었을 때 어떤 분이 해 주신 말이 기억나요. 중앙대에 채식을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줄 처음 아셨다고, 힘을 많이 얻었다고 하셨거든요. 확실히 비거니즘이 절대 다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동아리가 존재하므로써 교내에도 채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걸 알릴 수 있어서 좋아요.
앞으로의 <야채가 좋아> 행보가 궁금해져요. 어떤 활동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소현: 처음 동아리를 시작했을 때 계획했던 활동은 채식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었어요. 처음에 동아리를 만들 때 원래 채식을 하는 사람만 받을 생각도 없었고,누구든 채식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통로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거든요. 오픈세미나를 통해 공론화를 하고 싶었어요. 중앙대학교 자유인문캠프에서 야채가 좋아를 비거니즘을 대표하는 단위로 초대했었는데, 코로나로 취소돼서 너무 아쉬워요. 지금 사태가 마무리되면 미완된 활동들도 마무리하고 싶어요.
지혜: 은근히 채식에 관심 가지는 사람 많아요. 하지만 막상 그 실천 방법이 어렵다고 생각해서 못하시는 분이 많은 것 같아요. 친구들과 뭘 먹어도 고기(동물)가 들어있을 때가 많으니까요. 채식으로 한 끼 먹을 수 있는 법 알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 특히 비거니즘이 새로운 생활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잖아요. 오늘 두 분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야채가 좋아>를 앞으로 더 많이, 다양한 활동으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생겨요. <야채가 좋아>가 중앙대학교에서 어떤 역할을 하길 바라세요?
소현: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대학 구성원들이 비거니즘을 알게 되고, 직접 실천하지는 않더라도 문제 의식 정도는 가졌으면 좋겠어요. <야채가 좋아>가 어렵지 않게 채식을 접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되었으면 해요.
지혜: 비슷한 맥락이에요. <야채가 좋아>를 통해 채식과 비거니즘에 대한 인식만 생겨도 좋을 것 같아요. 관련된 여러 오해도 풀고 싶어요. 덧붙이자면 주변 식당 사장님들이 채식에 대한 수요를 알게 되셨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전해 주세요.
소현: 채식을 더 알리고 싶어요. 채식을 일주일만이라도 일단 실천해 보면 생각보다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거든요. 환경, 정치, 사회, 경제, 자본주의 등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내 인식의 변화가 행동의 변화를 이끈다는 느낌을 받으면 스스로가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을 가지게 돼요. 저도 채식을 함으로써 내 건강과, 동물과, 환경, 사회 등 식단 변화 하나로 다양한 것들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거든요.
지혜: 채식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마음 자체가 더 중요한 거잖아요. 일단 마음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완벽한 채식을 하기는 정말 힘들잖아요. 우리가 먹는 음식의 유통 과정을 전부 알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조금씩 차근차근 실천했으면 좋겠어요.
소현: 확실히 채식을 결심하고 나서 스트레스받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채식을 하려고 노력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완벽한 채식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지나친 죄의식을 가지거나 자기 자신을 비난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누구나 채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진 것도 아니고, 환경이 여의치 않을 수 있는 거잖아요. 노력하고 있다는 그 자체에 박수쳐 주고 싶어요. 중요한 건 모두가 자유롭게 채식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를 같이 만들어 나가는 것 아닐까요?
[1] 위키백과.
[2] 축산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분뇨 처리 과정에서 사망하는 일이 잦으며, 도살장 노동자의 정신적 문제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인권저널, 『인권 운동 2호』, 출판사 클, 2020.05.)
[3] 한국 질병관리본부의 2018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19세 이상 한국인의 단백질 1일 권장 섭취량(또는 영양 권장량)에 대한 섭취 비율은 무려 132.7%에 달한다. (표준화, 표준 오차 1.4%)
[4] 2015년 10월 26일,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ICRC)는 대장암 발병 위험을 근거로 가공육을 담배, 석면과 같은 1군 발암 물질로 분류했다. 이어서 ‘붉은 고기’ 역시 같은 이유로 제초제와 같은 분류군인 2군(2A) 발암 물질로 규정했다.
[5]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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