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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보기/2016 가을겨울, 71호 <방빼!>

[포토에세이] 광장의 기억

by 중앙문화 2020. 4. 11.

나는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자랐다. 집회는 뉴스로만 알았다. 100만이 모였다던 2008년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아빠는 시내에서 치킨집을 하셨다. 아빠가게에 가는 길 시내에서 시위대를 만났다. 50명이 조금 넘어보였다. 그들은 조악한 확성기와 앰프로 연설을 하고 구호를 외쳤다. 듣는 사람은 없었다. 초라하고 볼품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고향만큼이나.

대학생이 된 후 몇 번 더 시위대를 만났다. 가끔 같이하기도 했다. 수가 많을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같이했지만, 그러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다만 나는 더 이상 그들을 초라하거나 볼품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 말을 목이 터져라 외치는 일을 좋아서 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에게는 지켜야할 무언가가 있었다. 그건 당장의 생계이기도 했고, 신념이기도 했다. 생계나 신념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무겁다. 그래서 그들은 각각의 무게에 절박했다.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집회는 처음이었다. 광화문에만 100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그 다음 집회에서는 60만이 모였다. 그러자 누군가 국민들의 분노가 식어가고 있다고 외쳤다. 그 다음 집회에는 150만이 모였다. 누군가 다시 국민들의 분노는 멈추지 않았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두 달 전 백남기농민의 부고소식이 들려왔었다. 그 주말 광화문에는 3만명이 모였다. 그로부터 한 달쯤 전엔 장애인 권리보장 집회가 있었다. 집중투쟁 기간이었다.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광화문에 모였다. 그들은 2012년 광화문에 농성장을 차렸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을 지켜냈다. 그래서 그들은 3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모을 수 있다.

30명도 채 안되는 인원들로 이루어진 집회를 나는 수도 없이 댈 수 있다. 각자의 무게에 짓눌려버리지 않으려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는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이제 광화문에는 150만이 모인다. 좋은 일이다. 모두가 변화를 원하고, 모두가 저항을 노래한다.

국민들은 변화를 원한다. 그래서 광장에 모인다. 그리고 모두 대통령의 퇴진을 외친다. 그래서 그들은 대통령이 퇴진하면 승리하게 된다. 승리하면 투쟁은 끝이 난다. 그러면 다시 광장에 150만이 모일 일은 없다.

150만을 모아 보이는 것이 분노라면, 광장에는 분노가 사라진다.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회에 퇴진결정을 넘기기로 했다. 150만은 결국 어떻게든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해 보인 셈이다. 같은 날 한남운수 차고지에는 3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부당하게 해고당한 동료의 복직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그 전날 현대제철에서는 한 노동자가 압착기계에 끼인 채 숨졌다. 언론에 크게 보도되진 않았다.

나는 광장의 다음 모습을 모른다. 아직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도 변곡점은 존재한다. 내가 두려운 것은, 분노가 식어버릴 날이다. 분노가 사라진 자리에는 회의가 남는다. 그러면 광장에는 다시 어둠이 찾아올 것이다.

조악한 외침만이 계속될 것이다. 누군가에겐 볼품없고 초라해 보일.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그들이 외면당하지 않는 일이다. 그들의 절박함이 잊혀지지 않는 일이다. 그들의 분노가 부정당하지 않는 일이다. 이 빛이 사라진 이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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