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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보기/2016 가을겨울, 71호 <방빼!>

운동권 A를 만나다

by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 2020. 4. 11.

 

인터뷰 진행 편집장 지산하

정리 객원편집위원 고경주

 

학생운동이 당연하던 어느 때가 있었다. 대학생은 운동의 중심이었고, 대학가엔 온갖 정치적 구호들이 내걸렸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오늘날 대학에서 운동권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그들의 모습은 기사가 아니고선 좀처럼 만나보기 힘들다. 운동권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동안 그들에 대한 시선도 바뀌었다. 일부는 정치적 이슈를 학내로 끌어온다며 그들을 비판하고, 또 일부는 운동권 스펙을 쌓기 위해 학우를 이용한다며 그들을 비난한다. 더 이상 대학생의 운동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학생운동을 지속하는 이들이 있다. 대학에서 정치적 구호를 외치고, 학우들과 함께 거리로 나서려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왜 운동하는가. 이야기를 듣기 위해 중앙대 운동권 A씨를 만났다.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중앙대에 재학 중인 A라고 합니다. 3년째 학생운동조직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Q. ‘운동권이라고 하면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이 들어요. 분명 학내에 존재해왔고, 또 지금도 존재할거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구체적인 그들의 모습은 잘 떠오르지 않거든요. 운동권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을 운동권이라고 부르는지 같은 의문들이 있는 것 같아요.

A. 사실 처음 인터뷰 질문지를 받고,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몬스터처럼 비춰지나보다 하고 생각했어요(웃음). 굳이 지금 인터뷰가 아니더라도, 운동을 하다보면 꽤 자주 저를 향한 낯선 시선들을 마주해요. 그만큼 운동권이 학생사회에서 낯선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겠죠. 하지만 사실 저는 일반 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낮은 학점문제로 고민하고, 애인과 다툰 후 친구들에게 연애상담을 하기도 하구요(웃음). 제가 운동권이 된 과정도 딱히 특별하진 않아요. 고등학생 땐 다큐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피디가 꿈이었어요. 그런데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것만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뭔가 다른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학생운동을 시작하게 됐고, 앞으로도 계속 운동하기 위해 활동가로서의 삶을 선택했을 뿐이에요.

Q. 쉽지 않은 결심이라고 생각해요. 활동가로서의 삶은 개인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많이 힘들다고 알고 있는데, 결심하기까지 고민은 없었나요?

A. 뭔가 이렇게 살아야만 할 것 같았어요. 많은 노동자들을 만나고, 현실을 알게 된 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순 없을 것 같았죠. 제가 가장 처음 간 집회는 건국대 주차관리노동자 집회였어요. 새로운 경비 업체가 기존 노동자들을 일방적으로 해고하는 상황이었고, 고용 승계 보장이 주된 요구였죠. 노동자들은 사측에 면담을 요구했는데, 경찰은 이들을 무력으로 막아섰어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광경이었죠. 누가 봐도 강자와 약자로 나뉘는 상황인데 공권력은 강자의 편을 들고 있는 거예요. 약자는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었어요. 그 이후의 어떤 집회에서도 약자는 있었어요. 그들의 편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죠.

Q.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대학생활동가로서의 운동은 힘든 점이 많을 것 같아요.

A. 현실적인 이유들로 같이 활동하던 동지들이 떠나는 경우도 많아요. 집안사정이 안 좋아지거나, 체력이 바닥나거나. 미래에 대한 걱정도 분명 큰 문제일거고요. 평범한 사람들이 운동권을 욕하는 건 사실 크게 상처 받지 않아요. 그만큼 우리가 열심히 운동하지 않았다는 의미니까요. 오히려 반성하죠. 그러나 바로 옆의 동지가 떠나는 걸 보는 일은 힘들어요.

Q. 그렇군요. 대학에서 A씨와 A씨의 동지들이 하시는 활동들에 대해서도 듣고 싶어요. 주로 어떤 활동들을 하고 계신가요?

일상적으로는 학회와 실천단*을 운영하고 있어요. 중요한건 단발적이지 않은 지속가능한 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학회나 실천단을 통해 일상적으로 학우대중을 만나고, 자본주의 혹은 현안에 관련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어요. 자본주의, 빈곤, 불평등, 페미니즘 등을 공부하며 공부한 내용을 토대로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 논의하죠. 발언이나 행진* 등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형태의 행사를 하기도 해요. 민중총궐기 네트워크 등을 만들어서 학우들과 함께 집회참여도 하고요.

Q. 백남기 농민 사망 당시에도 분향소 설치를 추진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A. 백남기 농민은 중앙대 선배이기도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국가폭력에 의한 개인의 희생이기도 하잖아요. 분명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했고, 학우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학내에 추모공간이 필요하다고 역시 생각했고요.

Q. 그런데 학내 추모공간을 두고 너무 정치적이라는 비판도 있더라구요.

A. 작년 민중총궐기 때 백남기 농민은 박근혜 정권이 약속했던 쌀값 인상에 대한 공약이행을 요구하기 위해 시위에 참가하셨어요. 생존권의 문제였고, 이를 요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죠. 학내에서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는 것은 당연히 정치적이에요. 선배님이 사망하신 이유 자체가 국가폭력이라는 정치적 사건이니까요. 하지만 이를 추모하지 말자고 하는 것 또한 정치적이에요.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은 사건이 정치적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왜 추모공간이 필요한가라고 생각해요.

Q. 운동권은 학내사안보다는 학외사안에 치중한다는 비판도 결국 정치적인 것에 대한 혐오의 한 맥락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A. 그렇죠. 그런데 사실 학내사안 중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없어요. 구조조정조차도 굉장히 정치적인 문제죠. 결국 교육부의 정책, 나아가서는 산업구조 전반의 문제와 연결되어있으니까요.

Q. 하지만 과거에는 분명 대학생이 운동의 중심이 되던 시기가 있었잖아요.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정치적이던, 노동자해방을 외치던 그런 시기요. 단순히 시대의 변화라고 말하기엔 그 간극이 너무 커져버린 것 같아요. A씨는 왜 이런 변화가 생겼다고 생각하시나요?

A. 자본주의 체제가 발전하면서 계급 장벽이 너무 두터워졌고, 학생과 노동자 간의 괴리가 심해졌어요. 어쨌든 학생 운동은 이념을 기반으로 하는데,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민주 정부가 들어섬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변하지 않는 걸 느낀 후 운동에 대한 회의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 같아요. 많은 학생들이 운동을 떠났고, 지반이 약해짐에 따라 노동자와의 연대 고리도 끊어질 수밖에 없었고요. 대학생이 많아짐에 따라 대학생이 가진 지식인의 가치가 소멸됐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 때를 부러워하진 않아요. 지금은 운동이 침체기인 만큼 더 많은 고민을 하고, 노력을 하게 되거든요.

Q. 그런데 최순실게이트 이후 사회분위기가 꽤 많이 바뀌고 있어요. 학내분위기도 그렇고요. 거의 모든 학생 단위에서 자보를 붙였고, 총학이 주최한 시국선언에도 천 명 정도의 학우들이 모였잖아요. 매일 같이 활동을 주도했던 입장에서 A씨는 이런 변화를 어떻게 보셨나요? 운동에 대해 냉소적인 분위기였는데, 운동이 넘실거리는 분위기로 바뀌었잖아요.

A. 좋죠. 사람들이 이렇게 문제의식을 가질 만한 현안이 터졌고, 모두 분노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분의기를 끌어갈 역량이 저희에게 없는 것 같아 슬퍼요. 함께 할만 한 사람들이 적거든요. 운동 자체의 역량이 부족하다면 사회 분위기의 변화만으로는 현실을 바꿀 수 없다고 느꼈어요. 그럴수록 민중총궐기 이슈들을 끌어내고, 최순실 게이트 문제를 어떻게 이끌어나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좋지만 힘들죠(웃음).

Q. 사회분위기가 많이 변화했음에도 아직까지 폭력시위에 대한 거부감이 많은 것 같기도 해요.

A. 하지만 집회에 직접 가서 다른 참가자들의 발언을 듣고, 그분들의 상황을 알게 된다면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못할 거예요. 저도 집회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투쟁가를 부르거나 차벽을 끌어내려는 모습들이 낯설었어요. 그런데 그분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은 후, 이렇게 싸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느끼게 됐어요. 이번 민중총궐기는 정말 많은 시민들이 모였고, 폭력이라는 수단이 아니어도 사회의 관심을 얻을 수 있었지만 보통의 집회는 그렇지 않거든요. 당장의 생존권을 위협받는 사람들이 모이지만, 그 수는 많지 않죠. 정말 절박하지만 사람들에게 문제를 알리기는커녕 언론에 보도되는 것조차 힘들어요. 시위의 본질은 저항이잖아요. 왜 사람들이 저항하는지, 왜 이런 식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그런데 운동의 목적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면, 집회와 같은 운동 이외의 수단들도 존재할 것 같아요. 정당정치 등의 활동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지금은 기저의 운동을 할 때이지 정당 정치를 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가 돼야하는지를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런 지향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발전해야하는 거잖아요. 물론 법안이 통과되고 규제가 생기면 보다 가시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결국 법이 바뀌기 위해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야 해요.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우선되어야죠. 노동자는 왜 중요한지, 그들의 논리는 뭔지, 왜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지 등의 논의는 정당운동의 형태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Q. 왜 그렇다고 생각하시나요?

A. 노동당이나 정의당이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해요. 많은 의제를 다루는 당이잖아요. 가령 노동 문제에는 공감하지만 페미니즘은 공감하지 않더라도 당원이 될 수 있는데, 정당은 이들을 설득하지 않아요. 가령 올해 정의당의 메갈리아 사태에 대해 얘기하자면, 페미니즘에 대한 정당의 명확한 당론이나 지향조차 없었죠. 당의 입장이나 지향조차 부재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중을 상대로 논의를 펼쳐나갈 수 있겠어요.

Q. 그렇군요. 그럼 A씨는 어떨 때 세상을 바꾸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A. 저 하나로 인해 세상이 뒤집힐 거라 생각하지 않지만, 제가 만드는 파동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 친구들만 하더라도 저의 이야기를 듣고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이나 집회에 대한 생각들이 바뀌는 걸 종종 보곤 하거든요. 작은 변화들이 모이고 모여서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해요. 집회현장에 가서 발언을 할 때도, 투쟁하는 사람들에게 연대하는 것은 큰 힘이 된다고 믿어요. 그들이 잊힌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게 되니까요.

Q.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A. 세상을 바꾸는 건 생각보다 작은 힘들이라고 생각해요. 중요한건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일이죠.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져야 해요.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가야죠. 평범한 우리 모두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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