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위원 고지훈
서문: 계엄을 지나오며
2024년 12월 3일, 대통령 윤석열은 한밤중 기습적인 계엄을 선포하여 국회를 봉쇄하고 모든 정치 행위를 금지했다. 명백한 내란 행위다. 국회의 신속한 대처가 없었더라면 불법적인 계엄 아래 국가공동체가 민주화 이전의 암흑기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계엄이 다시 발생하기까지의 45년이라는 시간이다. 그 시간의 의미는 말 그대로 이번 계엄이 우리 사회를 1979년으로 퇴행시켰다는 데 있다. 마치 권위주의 정권의 끝자락처럼, 모든 의지와 자원은 위기를 해결하는 데 투여되었고 그렇게 치른 사회적 비용은 사회의 가장 밑바닥부터 무너뜨렸다.
상황을 수습하는 데 헌법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을 파면하면서, 우리 사회는 공동체의 밑바탕에 깔린 가치를 재확인했다. 정치∙경제∙법조 엘리트의 비겁한 민낯이 만천하에 공개되었고 공론장은 오늘날 사회 문제의 기원을 묻기 시작했다. 탄핵의 의미가 헌법적 가치로 설명되면서 전반적인 사회 대개혁의 장이 마련된 것이다. 이에 호응하여 정치는 공동체 회복을 위해 다양한 입장을 포섭하는 ‘정치 통합’을 내세웠다.
‘통합’이라는 가치 앞에서 공화共和의 가치가 다시 부상했다. 헌법 1조 1항에 나와 있듯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공화국의 참뜻은 ‘서로 다른 입장이 뭉쳐 국난을 극복하고 공동체적 가치를 추구하는 국가’다. 지금 상황에 딱 알맞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공화주의 자체는 비교적 생소한 개념이다. 여러 이유가 있을진대, 아무래도 ‘공화국’이라는 어감이 다소 이념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민주공화국의 시민인 우리는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공화주의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글은 공화주의의 의미를 소개하고, 지난 역사를 통해 지금 공화주의가 이야기되어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 나아가 다가올 시대에 공화주의가 요구하는 몇 가지 과제를 함께 살펴본다.
공화주의의 이념적 계보
“민주공화국을 지켜야 합니다.” 탄핵 정국에서 헌법이 주목받으면서 민주주의만큼이나 ‘민주공화국’이라는 말도 자주 등장했다. ‘민주’는 알겠는데, ‘공화’란 정확히 무슨 의미일까. 공화주의의 역사를 통해 이해해보자.
‘공화국’이란 무엇일까?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의 계층 집단이 독점적 권력을 가질 때 그 국가는 쇠락한다고 보았다. 대안으로서 그가 제시한 ‘혼합정’은 다양한 계층 집단이 혼재된 체제로 로마 공화국에서 더욱 발전되어 나타났다. 로마 철학자 키케로는 군주와 귀족, 평민 계층의 열망과 능력에 따라 상응하는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로마 혼합정의 구체적인 형태를 설명한다. 그리고 로마에서 나타난 이러한 혼합정 국가를 ‘공화국res publica’라고 명명했다. 공화국의 모든 권력 행위는 공동체의 법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었고, 그러한 기반 위에서 구성원들은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공공의 이익(공공선)에 헌신할 수 있었다.
공화국 개념은 르네상스기 피렌체 공화국의 철학자 마키아벨리에 의해 다시 등장하였다. 내우외환의 국가 위기 앞에서 그는 공화국이 구성원 간 조화가 아닌 갈등으로써 유지됨을 발견했다. 특히, 마키아벨리는 고대 로마 공화국의 ‘자유’ 개념에 주목하면서 자유로운 인민의 참여가 중심이 된 공화국만이 생존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1그리고 이러한 사조는 현대 공화주의자들에게 계승되었다. 그들은 현대 사회를 다원주의적 사회로 상정하며‘공화주의적 자유’를 강조하였다. 공화주의적 자유에 따르면 어떠한 사적 개인이나 집단에 예속되지 않을 자유가 진정한 자유이며, 이러한 자유 위에서 구성원들은 법률에 헌신하는 공화국 시민이 될 수 있다. 2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공화국을 정의하는 몇 가지 구성요소를 확인할 수 있다. 혼합정과 법치, 공공선과 시민적 덕성,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공화주의적 자유가 바로 그것이다. 현대의 언어로 풀어 설명해 보면, 공화국은 ‘① 다수로 분립된 권력이 ② 보편적인 법의 지배하에 ③ 공적 이익을 추구하며, ④ 공동체 의식을 가진 시민에게 ⑤ 정치 참여를 위한 자유를 보장하는 체제’를 채택한 국가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민주주의의 향기가 난다. 그러나 어떠한 형태의 민주주의라도 공화주의라는 사상적 토대는 필수적이다.
공동체를 잃어버린 우리 사회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어느샌가 공동체, 공공의 영역이라고 할만한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 발전과 산업화로 인해 재산권과 같은 시장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가 자유의 이름을 차지하고, 민주주의 국가의 역할은 개인의 사적 권리를 보호하는 수준으로 축소되었다. 더불어 개인주의가 심화하면서 이상형의 진단처럼 ‘정치와 시민의 삶이 엄격히 분리됨으로써 온건한 독재가 발생할 조건이 형성’되었다. 3직업정치인이 난립하여 정치는 견제의 기능을 상실하였고, 민주주의는 가끔 이루어지는 선거 때 겪는 체험으로 전락했다. 사회적으로는 시장이 발달하며 공적 공간이 사라지고, 개인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자신과 가족의 영달에 매진하게 되었다.
이러한 형식적 민주주의와 12.3 계엄 사이에서 과거에 합의된 공화주의적 ‘공공선’의 의미가 퇴색되고 잊히고 있다. 해방 전후 한반도에는 ‘자주독립’과 ‘분단 해소’라는 공적인 목표가 있었다. 그러나 일제의 무조건 항복부터 한국 전쟁 이후 국가 재건까지의 역사를 보면 한반도에 존재했던 공공선이라고 할 것은 달성되지 못한 채 여러 현실적 모순을 낳았다.
자주독립은 어떠한 외세의 간섭 없이 민족 혹은 국가공동체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일제 침략 이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주적 독립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인 조선의 의지가 무색하게 우리는 1945년 8월 일본의 무조건 항복에 의해 해방을 맞이하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의 이념 각축장이 되어 각 군정이 지배하는 영역으로 분단되고, 이 과정에서 미군은 비어 있는 공직을 채우기 위해 일제 치하 부역자들을 대거 재신임했다. 곧이어 북한군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미국이 참전하며 국내에는 미국에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된다. 이 무렵부터 한국은 미국의 동맹인 일본과 불편한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격변하는 역사 속에서 한국은 자주독립을 위한 제반은 물론 미·일과의 전략적 동맹으로 그 동력마저 잃어버린 것이다.
그 대가는 작지 않았다. 친일파들이 잔존하여 대대로 부와 권세를 누리게 되었고, 열강의 이념 대립에 휩쓸려 민족을 규합할 영토가 분할됐다. 여기에 미국발 자본주의가 유입되어 국가의 이념을 둘러싼 논쟁이 강제 종료되고, 북한과 대륙의 국가들을 사상적으로 적대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 말까지의 군부독재를 정당화하고, 이후 등장한 신자유주의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로 작용했다. 나아가 현대에 들어서도 역사적 문제를 주변화하거나 왜곡하는 행위의 배경이 되어 뉴라이트 역사관 4을 탄생시키고, 반공주의적 행위 양식을 고착하는 근거가 되었다.
그 사이 정치에서는 특정 정치집단이 총풍사건 5 등 분단 이데올로기를 통해 일방적 이익을 도모하였고, 권위주의 정권이 여러 차례 탄생하는 데 충실한 하수인으로서 수행했다. 1980년대 민주화 이후에도 엘리트 계층에 스며든 기회주의는 잔존하여 정권과 재계의 입맛에 맞는 경찰, 검찰, 법원의 모습으로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외부적으로는 냉전적 질서를 뒤집어쓴 동맹 관계가 2020년대 ‘가치외교’ 6라는 이름으로 부활하여 경제 영역에까지 이념적 기준을 적용하게 하였고, 이 과정에서 국익을 위한 토론이 불가능했다.
시작은 모두 독립을 염원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열강들의 진영 다툼 사이에서 우리 사회는 국가 이념에 대한 자주적인 토론 대신 한쪽의 이념을 무비판적으로 수입했다. 공적 영역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채 국가 정체성이 외부의 힘에 의해 결정되어 버린 것이다. 왜곡된 공공선의 요구는 사회문제의 근본 원인이 되었고, 이러한 구조 속에서 분단 해소라는 또 다른 목표는 달성이 만무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는 안보 불안에 따른 군비 확대, 자본시장 상시적 위축, 이산가족 문제 등을 품고 살아가게 되었다. 또한, 공적 영역에서 차이를 존중하기 보다는 대화를 거부하거나 이념 공격, 사상 검증 등이 빈번하여 사람들 사이 불신이 만연하게 되었다. 이렇듯 우리 사회의 ‘갈등’은 해결되지 않은 역사적 과제의 후과로서 존재한다. 오늘날 윤석열 정권과 여당의 이념주의 구호도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모순된 보수주의의 한 단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윤석열 정권의 공화정 파괴
윤석열 정권은 공동체 상실에 따른 귀결로써 등장했다. 그리고 계엄을 통해서 기존의 공화국 체제마저 파괴하고 사라졌다. 오늘날 한국의 공화주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정권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공화국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공화국을 이루는 요소들 중 그들이 무엇을 파괴했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첫째, 권력분립의 의무를 저버렸다. 2024년 9월부터 제기된 ‘명태균 게이트’ 7 수사 중 대통령 부부의 총선 공천 개입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발언이 보도되었다. 대통령과 영부인 모두 여당의 당대표와 공천관리위원장을 압박해 온 정황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윤석열은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하고 삼권분립의 원리를 침해했다.
둘째,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아닌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를 자행했다.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은 자신의 검사 시절 동료들을 포함한 다수 검찰 인사를 국정 요직에 배치했다. 8이러한 친분 중심 인사에는 항상 ‘그 분야 수사 경험이 있다’라는 궁색한 변명이 따라붙었다. 이렇게 특권 의식을 가진 검찰이 국정에 포진하면서 정부는 ‘법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닌 ‘법에 의한 지배’를 십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대통령 자신도 법적 위계를 무시한 채 시행령 통치를 남발하며 국회의 결정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더불어 정적으로 치부되는 야당 인사들을 무더기 기소하고, 재판 절차를 좌지우지하는 등 집권 내내 자신이 무소불위의 ‘검찰 정권’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셋째, 윤석열 정권은 공적 이익 추구가 아닌 공동체 해체를 주도했다. 계엄 포고령 내용을 살펴보자. 포고령에는 ‘반국가 세력’, ‘체제전복 세력’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는 국가를 공격해 주권을 찬탈하려는 세력을 의미한다. 여러 진술과 물증에 의해 그 대상이 다름 아닌 야당 인사를 비롯한 정권 비판적 인물들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정권의 음모론적 사고방식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당선 초기부터 극우 유튜버의 가족을 대통령실 행정관에 등용하고, 평소 ‘극우 유튜브 채널’을 주변에 추천하는 등 윤석열은 국론을 수렴해야 할 대통령 역할에 정반대되는 극단주의적 정치관을 숨기지 않았다. 9 10 이러한 경도된 이념주의적 발상이 계엄을 불렀고, 그 계엄이 대통령의 자멸을 부른 것이다.
넷째, 시민의 정치 참여를 방해했다. 집권 초기 실시하였던 ‘도어스테핑’은 반년 여 만에 중단했고, 메이저 방송사를 비롯한 정권 비판적 언론에 대대적인 압박을 가하면서 시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침해했다. 이 밖에도 퀴어페스티벌 개최 불허,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시위 저지, 동덕여대 시위 고소·고발 대응, 그리고 여러 차례 이뤄진 ‘입틀막’ 등 직간접적으로 시민의 정치 참여를 방해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 대응 미비,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건 외압, 그리고 각종 무속 신앙에 관한 논란 등 안정과 통합을 중시하는 공화정의 명령을 무시한 독단적인 정권의 결과는 참담했다. 이에 시민은 국회의 여러 정당을 중심으로 결집하여 헌법적 절차에 따라 대통령을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그러나 벌써 두 번째 탄핵 정국을 맞이하면서 우리 사회는 우리 민주주의의 근본적 한계를 절감했다.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탄핵한 대통령 역시 우리 민주주의 절차가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지금, 공화주의의 이유
그럼 민주주의가 틀렸다는 것일까. 아니다. 다만, 민주주의 발전이 절차적 정의를 강화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됐다는 얘기다. 주권자인 국민의 입장을 다양하게 담겠다는 것이 민주주의인데, 실제 정치 공간에서는 민주주의의 취지에 맞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정치 안팎의 공적 영역은 혐오와 차별, 왜곡이 만연했다. 동료 시민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조차 찾아보기 힘들게 된 것이다. 민주주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정치와 사회에 시민을 중심으로 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이런 민주적 논의가 가능한 공동체 자체가 부재한다는 사실이다. 자연스럽게 요구되는 것은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이다. 여기서 ‘공화주의’라는 말은 어떠한 실익을 주는가?
공화주의는 ‘(모든 구성원은) 공공선을 추구해야 한다’는 지상명령을 내포하고 있다. 절차적 정의 보장에 더하여 실질적인 목적 지향까지 국가의 의무로서 규정해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공화주의는 민주주의보다 단언적이다. ‘공화주의적 국가’는 공동의 원칙 아래 개혁적 과제를 이행함으로써 필연적으로 ‘공동체의 회복’을 이룰 수 있다. 모두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지향할 때 자연스럽게 협력하는 공동체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전사회적 혼란이 지속되는 지금, 내란을 획책하고 동조한 세력을 청산하고 정치와 사회를 안정화하겠다는 큰 목표는 최우선적 과제가 되었다. 이는 모든 시민을 대화할 수 있는 공간으로 모으고, 협심하는 사회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로도 읽을 수 있다. 이때 공화주의적 운영 원리를 이해하고 있어야 기회를 현실로 만들 수 있다.
파편화된 시민을 공적 영역으로 불러들이는 역할은 단연 정치다. 하지만 ‘정치 불신’이 심각한 상황에, 시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정치는 정당성을 얻기 힘들다. 신뢰받는 정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 진영마다 가져야 할 문제의식과 잇따른 과제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보수의 입장에서 지금의 문제는 국가 공동체의 역사적 정의가 왜곡된 상황 자체다. 보수는 일반적으로 공동체의 전통적인 가치를 수호하는 정치적 입장이다. 전통적 공동체란 오늘날의 사회공동체를 설명할 수 있는 상징적인 역사를 기원한다. 우리나라의 상징적 사건이라 함은 해방과 민주화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해방은 임시정부로부터 시작된 한국의 자주국 지위가 확보된 사건이었고, 민주화는 지금의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만든 역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상적인 보수라면 민족 해방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보호하는 세력으로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보수’를 자임하는 기성세력은 이러한 보수적 가치를 거부하고 있다. 중앙대 교수 김누리는 우리의 정치공동체가 과거 냉전적 질서를 사수하려는 세력과 민주화 이후 평화를 이야기하는 세력으로 나뉘어져 왔다고 말한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지금의 보수는 이미 종식되었다시피 한 냉전 시대 이데올로기를 통해 연명하는 ‘유령 집단’이다. 11 그로부터 구성된 정당은 보수 가치를 수호하는 공당이 아니라 민익民益을 퇴보시키는 이익집단에 불과하다. 따라서 보수의 과제는 세력을 ‘재건’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역사적 정의에 맞는 보수적 가치를 ‘수용’해 내는 일이다.
보수가 전통과 제도를 중시하며 점진적 변화를 선호한다면, 진보는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고 근본적 개혁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으로 노동과 환경, 소수자성 등이 진보의 의제로 다뤄지는 것들이다. 이러한 논의가 현실화하려면 권력 지형이 고루 배분되어야 하는데, 진보 의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의 크기와 관계없이 진보 진영의 현실은 군소정당에 머물러 있다. 이는 보수의 과제와 맞닿아 있다. 구태 세력의 보수 ‘참칭’에 의해 반권위주의 세력 전반이 진보 진영으로 묶여버린 것이다. 따라서 종종 진보적 가치와 거리가 먼 주제가 진보의 이름으로 제시되는 반면, 진정한 진보 의제는 세력의 크기에 의존하여 공론장에서 주변화되거나 사라져 버리기 일쑤다. 그 과정에서 개혁 대상인 기득권은 세력을 키우고 진보의 대상은 이익은커녕 그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고 있다. 합리적 진보는 합리적 보수가 존재할 때 가능하다. 균형적인 정치 지형과 공동체의 공유된 규범이 부재한 상황에 개혁 과제에 대한 토론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진보의 가치를 바로 세우는 일은 현재의 정치 지형을 정상화하려는 노력과 동반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민주주의 정착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흔들리는 이유는 단순히 ‘다른’ 주장이 아닌 ‘틀린’ 말을 하는 세력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동체 회복을 위해서 우선 시민의 삶을 공적인 것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구태 정치의 청산이 필요하다. 그로부터 정치 담론의 하한선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러한 일에는 국가의 적극적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국가가 어떠한 세력을 몰아낸다는 말은 자칫 위험해 보일 수도 있다. 장은주는 그러한 우려에 대해 공화국 권력은 견제와 저항이 필요하다고 답한다. 12 구체적으로 공화주의는 모두에게 공유되는 규범 속에서만 권력이 행동할 수 있도록 분권화와 법치의 원리를 강조한다. 적절한 권력의 분립과 헌법에 의한 공공선의 정치, 이것이 공동체 회복을 위한 방법이 공화주의에서 강구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민주공화정 만들기
그렇다면 공화주의는 지금 한국 사회에 무엇을 요구하고 있을까. 공화주의는 권력의 장을 조율하는 일과 더불어 그것을 지탱하는 시민의 역량 역시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이것들은 한국의 오래된 과제인 권력구조 개혁과 사회 개혁으로 치환될 수 있다. 차례대로 그 개별적인 의미와 효과를 진단해 보자.
권력구조 개혁의 과제를 살펴보기 전에 그 대상이 되는 한국 엘리트 계층의 역사를 톺아본다. 권력의 자리에는 항상 엘리트가 있었고, 개혁의 이유를 제공한 것도 그들이기 때문이다. 엘리트란 근현대사회에서 부와 권력, 지식을 독점한 특권 계층을 의미한다. 한국 엘리트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 군부 독재와 권위주의 정권에서 지식을 바탕으로 지배층의 부정을 정당화하며 성장한 기회주의 세력에서 출발했다. 1980년대 민주화와 1998년 평화적 정권교체로 위기를 맞은 그들은 이념 공격과 지역감정 조성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우리 사회가 민주시민 공동체로 뭉칠 수 없도록 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2022년 기어이 그들만의 정권을 세우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후 밝혀진 정권 내부의 비리가 구체적인 모양을 갖추자, 일부 군인 집단과 공모하여 계엄을 일으키기에 이른다.
한국의 엘리트 계층은 공동체 분열을 통해 자신의 수명을 연장해 왔다. 따라서 권력구조 개혁이라는 과제는 기성 기회주의적 엘리트 계층의 해체와 더불어 공동체 회복에도 맞닿아 있다. 공화주의적 관점에서 권력구조 개혁은 곧 권력분립 정상화를 의미한다. 또한 공화주의는 권력의 분립과 유지를 위해서 ‘법의 지배(Rule of Law)’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법의 지배는 공동의 법의 명령에 따라 통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권력분립은 법의 지배를 공고히 하는 일로 얘기될 수 있다. 즉, 법의 지배를 되찾는 것이 한국의 기울어진 권력 지형에서 발생한 공동체 분열에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기관은 역시 검찰이다.
‘검찰 권력’은 부정한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했던 경찰이 민주화 이후 위축되며 그 반사이익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물이 고이면 썩기 마련이듯, 고여있던 권력은 부패하기 시작했다. 국민 세금(특수활동비)을 명절 보너스로 챙기거나 기업 스폰서를 얻는 일부터, 조직 보호를 위한 무리한 수사, 영장청구권 남용까지 검찰 권력의 부정부패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다뤄질 정도로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그 첫번째 원인으로 가장 문제시되는 것은 검찰이 기소와 수사를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검찰권’은 사건 선정과 수사 개시, 수사 방법 선택, 기소 여부 결정, 기소 후 공소 유지, 재판 관여, 상소, 재판 집행, 영장 청구, 경찰 수사 지휘 등 수사부터 형사재판에 이르는 전 과정을 포괄한다. 매우 독점적인 권한임에도 어떠한 검수 절차도 없다. 이 말인 즉, 수사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예단이나 결정론적 사고가 기소 단계에서 객관적으로 파악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수사가 부실하다는 평가를 공연히 할 수 있는 검사가 얼마나 있을까? 이러한 원리 아래서 수사는 기소를 위한 형식적 절차로 형해화된다. 특히 이러한 구조 속에서 검찰 내 ‘특수통’ 검사 14들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표적 수사’, ‘표적 기소’를 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은 물론, 일본에서조차 기소와 수사는 분리되어 수사권한은 대부분 경찰에 일임되어 있다. 검찰의 이러한 공권력 독점은 당연하지 않다.
둘째로, 검찰은 자정작용이 불가능한 조직 체계를 가지고 있다. 형사소송법에 수록된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르면 검사는 부하 검사에게 자기 일을 떠넘길 수 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사 주체를 다른 부하 검사에게 재배정할 수 있다. ‘검사동일체’는 철저한 상명하복 조직 체제를 지탱하는 근간으로 작용하여 검찰 내부의 반론 가능성을 질식시킨다.
검찰청법 제7조(검찰사무에 관한 지휘 • 감독) ①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소속 상급자의 지휘 • 감독에 따른다. ② 검사는 구체적 사건과 관련된 제1항의 지휘 • 감독의 적법성 또는 정당성에 대하여 이견이 있을 때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제7조의2(검사 직무의 위임 • 이전 및 승계) ① 검찰총장, 각급 검찰청의 검사장(檢事長) 및 지청장은 소속 검사로 하여금 그 권한에 속하는 직무의 일부를 처리하게 할 수 있다. ② 검찰총장, 각급 검찰청의 검사장 및 지청장은 소속 검사의 직무를 자신이 처리하거나 다른 검사로 하여금 처리하게 할 수 있다. |
▲ 검찰청법 내 관련 조항. 제7조 2항과 3항이 ‘검사동일체 원칙’의 뿌리가 된다.
마지막으로 검찰 자체가 강한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의 특권의식은 모순적인 직급과 조직 체계에 기인한다. 검찰은 행정기관 분류상 산림청, 통계청 같은 행정부 외청 중 하나에 불과하나 스스로를 ‘준사법기관’이라 칭하며 조직의 위상을 두둔하고 있다. 권한은 수사와 기소에 한정되지만, 조직은 지방검찰청, 고등검찰청, 대검찰청으로 마치 3심제를 위해 구성된 법원 조직에 버금가는 규모를 가지고 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검사로 입직하는 초임 검사의 직급은 판사와 같은 3급이다. 151급 공무원 숫자도 2023년 기준 동급에 해당하는 경찰 치안정감이 6명인 데 비해 검찰은 49명으로 그 수가 8배가 넘는다. 검찰총장은 대한민국 공직 체계상 청장급 기관장 중에 유일하게 장관급 인사로 분류되어 있다. 이러한 급수 체계의 모순은 공직사회 안팎으로 검사가 ‘특별한 공무원’이라는 인식을 낳았다. 그리고 이 특권의식은 검찰이 초래한 모든 문제의 심리적 배경이 되어왔다.
이렇듯 대한민국 권력 지형상 검찰 권력이 가지는 비중은 상당하다.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을 틀어쥐고 있다는 점에서도 검찰은 법의 지배 대상이 아닌 법 위에서 ‘법을 이용한 지배’가 가능한 권력이다. 그리고 이 권력은 조직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남용되어 왔다. 공화국의 관점에서 검찰은 일방적 지배를 자행하는 이익집단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진보 정권의 숙원이었던 탓에 개혁 방안은 이미 잘 마련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검찰을 공소청과 수사청으로 나누어 기소권과 수사권을 분리하는 방안, 지방검찰청장을 직접 선출하는 방안 등이 있다. 실효적 권력이 가장 크고 자율적인 검찰을 해체, 개혁하는 일은 우리나라의 공화적 원리를 재정립하는 효시가 될 수 있다.
(2) 국회와 대통령 권력관계 재편
계엄 정국을 지나오며 민주주의 회복과 함께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비판이 광장에서 울려 퍼졌다. 상황의 원인을 ‘대통령의 권한 남용’으로 보는 관점이 일부 있는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통치 양상에서 비롯된 말로, 민주화 이후에도 그 기조가 거의 바뀌지 않았다. 광장의 목소리는 이러한 권력 비대칭에 대한 저항으로, 민주공화국을 채택한 우리나라는 이러한 시민적 요구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제왕적 대통령제’는 여전히 유효할까? 김준석이 실시한 실증적 연구에 따르면, 타국과 비교하였을 때 국회와 대통령 사이에 법 제도적 권한이 특별히 불균등하지 않았다. 16대통령제를 채택한 선진국과 비교해 보더라도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지수로 보았을 때 오히려 우위에 있다고도 평가된다.
진짜 문제는 이러한 대통령 권력의 비대칭성을 체감하게 하는 대표자의 권한 사용 실태에 있다. 계엄 사태에 대처하는 국회의 모습이 그것을 더욱 대조적으로 보여주었다. 계엄 당일 국회에 모인 국회의원들은 급박한 상황에도 계엄 해제를 위한 절차적 정당성을 지켰다. 이후 탄핵 소추와 가결까지 법제사법위원회를 필두로 적법 절차에 따라 탄핵안을 헌법재판소로 견인했다. 이에 반해 윤석열 정권은 임기 내내 국회와 대화를 단절하고, 주요 안건들에 수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윽고 자신을 둘러싼 비판이 쏟아지자, 정권은 타협이 아닌 내란 기도를 택했다. 국회를 중심으로 한 권력구조 개헌 논의는 이러한 정권의 판단과 국회의 침착한 대응이 맞물려 촉발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공화국은 시민을 중심으로 꾸려져야 한다. 일인 통치에 의존하는 대통령제는 통치자의 역량에 국가의 존망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래서 대통령제 개편은 늘 대두되는 이야기지만, 때로는 문제의 초점을 구조가 아닌 개별에 맞추어야 할 때가 있다. 문단 서두에서 밝혔듯이 계엄 사태는 한국 엘리트가 위기를 타개하는 방식에서 촉발된 일이기 때문에 대통령제 개헌의 오랜 토론을 전면에 내세울 명분이 될 수 없다. 또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개헌은 ‘내란 종식’이라는 공론을 주변화할 가능성 역시 있다. 공화주의는 서로 다른 집단의 협력체이자 공공의 것을 추구하는 공동체로서 국가라는 목적이 있다. 지금의 공화주의는 어렵게 만들어진 공론을 유지해 그것을 우선적으로 현실화하라는 명령으로서 존재한다. 공화주의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공화주의가 수단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추구할 목적 그 자체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공화주의적 시민 되기
줄곧 정치가 주도적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공화주의는 결국 시민이 하는 것이다. 시민이 공동체를 열망하지 않으면 공화주의는 물론 민주주의조차 바람 앞의 촛불이 된다. 민주주의가 형해화되어 있을지라도 광장에서 그 실체를 드러내는 것처럼, 시민의 결집된 의지는 관념에만 존재하는 이상들을 현실에 구현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다. 정치는 그렇게 시민이 일군 일반의지 17를 결코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한나 아렌트까지 고전적 공화주의자들은 늘 사적인 삶 바깥의 정치적 삶을 강조했다. 그들에게 정치 참여는 그 자체로 공적인 것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된다. 페팃과 비롤리 같은 현대 마키아벨리주의자들은 정치 참여를 위해 누구든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을 자유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입장을 거칠게 종합해 보면, 민주공화정은 모든 종류의 사사로운 지배에서 시민을 자유롭게 하고, 자유로운 시민은 정치 영역에서 공익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순서를 매겨본다면 자유가 먼저, 참여가 다음이 되어야 한다.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진정한 참여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1) 자유: 역사 정의와 시민성 교육
그렇다면 시민은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는가? 현대 다원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계급이 아닌 계층에, 관념이 아닌 현실에 얽매여 있다. 우리 사회 엘리트 계층은 자신의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현실 속에 관념을 숨긴 채 다른 계층을 지배하고자 한다. 자본주의라는 관념은 마치 임금과 노동을 일대일 교환하는 듯 보이지만 노동자를 더한 착취 구조에 예속시킨다. 그리고 이 자본주의를 상찬하기 위해 분단 상황의 두려움을 이용하고, 반공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한 역사 왜곡을 서슴지 않는다. ‘보수’ 정권 아래에서 반복적으로 시행되었던 역사 과목 교육과정 개정 시도들은 그들이 숨기고자 하는 구조적 모순의 실마리가 역사에 있음을 방증한다.
다양성이 심화하는 사회에서는 차별 역시 다양한 모습을 띤다. 이제 한쪽이 다른 쪽을 지배할 수 있는 기준에 계층을 넘어 젠더와 장애 여부, 절대적 빈곤과 아주 미시적 차원의 다름까지 포함되고 있다. 그리고 그 기준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만들어내는 다층적 차별 구조는 논의의 초점을 집단이 아닌 개인의 맥락과 정체성으로 이동시킨다. 지배의 구체적인 형태는 그러한 맥락과 정체성을 자의적으로 규정하는 ‘혐오’로서 나타나며, 이러한 경향은 구성원의 자유에 관한 논의를 표현의 자유에 관한 갈등으로 왜곡한다.
이러한 세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경로로 접근해야 한다. 하나는 오랜 세월 동안 이식된 잘못된 역사 인식을 해소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자신을 정의하고 타인과 관계 맺는 방법을 학습하는 일이다. 우선 전자를 위해서 정부 차원의 역사 왜곡 심의기구를 창설해야 한다. 공직 사회와 교육 현장에 만연한 왜곡된 역사관을 청산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한편으로 올바른 역사관을 형성하기 위해 정치인, 학자, 교사 등 전문 인력과 노인, 여성, 노동자 등 다양한 성분의 시민으로 구성된 논의체가 마련되어야 한다. 논의체의 주요한 과제는 근현대사를 다시금 교육 과정에 포함하는 일이 될 것인데, 이때 교사의 정치적 시민성을 보장하는 법 개정이 중요하다.
후자의 경우 공교육과 학교 밖 교육, 지역사회가 조화롭게 교류할 수 있는 폭 넓은 교육 현장을 제공해야 한다. 청소년의 관계 맺음이 또래집단에 의존하지 않고 세대와 계층을 아우를 수 있는 공식적인 기회가 마련되어야 한다. 소외된 청소년이 다시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 또한 필요하다. 이렇게 마련된 교육 공동체는 공동체의 과제를 함께 해결해 보면서 민주적 절차를 체득하고, 상대방을 동료 시민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경험을 얻을 수 있다. 역사 정의 바로잡기와 시민성 교육은 민주공화정의 시민이 진정한 자유를 깨닫고 서로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공동체에 헌신하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2) 참여: 공간을 넓히고 문턱을 낮추다
마지막으로 참여의 공간을 창출하여야 한다. 현대 정치의 기초가 되는 모든 정치사상은 공적 공간에서 잉태되었다. 공화주의 역시 권력 견제의 원천을 공적 공간에 성실히 참여하는 시민들의 의지로 보았다. 12.3 계엄 이후 광화문 광장은 태극기 세력에 빼앗긴 공적 공간의 지위를 되찾았다. 수많은 시민이 한데 모여 권력의 부정을 비판했다. 그 과정에서 빛났던 것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로를 돌보는 모습이었다. 특히 ‘선결제 문화’ 18는 정치 영역에 연예인을 비롯하여 참여하는 시민의 범주를 크게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눈발에도 자리를 지킨 ‘키세스 시위대' 19는 헌신적 시민의 표상처럼 다루어졌고, 이후 남태령 고개에서 벌어진 투쟁에 함께하며 연대하는 시민이라는 가능성을 또 한 번 보여주었다. 계엄이라는 국난에 맞서 탄핵이라는 공동체의 목표 앞에 시민이 주권자로서 확고한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이렇듯 우리 사회의 시민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결집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민주공화적 정의를 부정하는 세력 역시 민주적 절차에 따라 공적 공간을 점유하는 양상이 발견되고 있다. 이것은 앞서 설명한 형해화된 민주주의의 허점을 파고드는 시도이다. 국가는 이러한 시도를 저지하고 시민 다수가 공유하는 의제가 울려 퍼질 수 있는 공적 공간을 보장하여야 한다. 그러나 공공의 공간을 국가가 선별적으로 제공한다는 것은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민주주의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다. 유사한 토론을 공화주의의 필요성을 확인하는 문단에서 이미 진행한 바 있다. 20 그 관점에 따르면 공간 제공의 주체를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대안이 된다.
시민사회에서도 참여가 활발해야 한다. 정부주도 시민단체 가입 지원 제도가 고려해 볼만하다. 시민들이 시민운동에 활발히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해 위축된 시민사회단체의 재도약 발판이 되어줄 수 있다.
참여의 논의에는 물리적 제약뿐만 아니라 경제적, 정서적, 사회적 제약 역시 포함되어야 한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미숙련 노동자와, 정신 질환을 앓는다는 이유로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과, 학교 밖 청소년, 페미니스트, 그리고 성소수자 등 우리 곁엔 다양한 동료 시민이 있다. 진정한 참여는 동료 시민의 존재 부정을 극복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공론장 형성에는 논의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일과 시민의 범주를 최대한 넓히는 것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탈리아의 정치가 주세페 마치니는 19세기 미국 시민들에 보내는 서한에서 “진정한 공화국은 빈자와 여자들, 흑인들을 배제하면 안 되며, 그들이 투쟁으로 얻어낸 평등을 성스러운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21다양한 형태의 참여로서 얻어낸 모든 가치는 공동체적인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참여하는 공동체의 실현에 있어 경제적 기반이 부족한 이들에게는 기본소득과 같은 보편적 대안이 22, 정서적 기반이 불안한 이들에게는 트리거(trigger) 23가 최소화된 공론장 형성이 필요하다. 같은 흐름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도 법 앞의 평등이라는 공화국의 기본 원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이처럼 참여의 공간을 넓히고 문턱을 낮추는 시도는 공화주의 사회의 시민 영역을 활성화하고, 이 시민들이 공동선을 확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
맺으며
결국 토양을 제대로 갖추자는 것이다. 평화와 민주주의라는 씨앗을 심기 위해서는 비옥한 땅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래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는 정의로운 정치 지형과 평등한 사회를 계속해서 미뤄왔다. 그 결과 기회주의 풍조와 생존주의적 경쟁이 주류 문화로 떠올랐고, 그 위에서 윤석열 정권이 탄생했다. 기어코 최소한의 민주공화정마저 부정당한 상황에서, 해답 역시 민주공화정에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되물어야 한다.
법치, 권력분립, 시민의 참여 등 공화주의적 원리를 따르는 일은 기회주의 세력을 청산하고 정의로운 정치사회 지형을 조성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검찰에게서 권력을 되찾고 정치개혁을 통해 정치를 바로잡아야 한다. 또한 시민 교육으로 올바른 역사 정의를 세우고, 주권자인 그들의 참여를 촉진해야 한다.
공화주의 국가의 최종 목표는 공동체의 이익, 즉 공동선의 추구이다. 그것은 다원적인 정치와 정치를 견제하는 시민의 참여가 유기적으로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우리는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민이, 시민적 합의를 무시하는 세력을 걷어내고, 시민을 위한 공동체의 가치를 쟁취할 때다.
- 김경희, 『공화주의』, 2009, p.59-67 [본문으로]
- 모리치오 비롤리, 『공화주의』, 2006, p.45-46 [본문으로]
- 이상형, 「공화주의의 현실성: 법과 삶의 길항」, 2015, 대한철학회 철학연구 제134집, p.76 [본문으로]
- 2000년대 초 우파 지식인을 중심으로 발전한 신자유주의적 역사관. 극단적 시장주의를 표방하며, 일제의 수탈이 한반도 경제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사상적 근간에 둔다. 연이은 대선 패배에 우파진영이 그 원인을 기존의 반공사상이 효력을 다 했다는 데 있다고 보고 새롭게 창출한 정치적 사관이다. [본문으로]
- 1997년 제15대 대선 당시 여당 후보였던 한나라당 이회창의 지지율 상승을 위해 청와대 행정관 3명이 북한과 접촉해 휴전선 인근에서 무력 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 밝혀져 파문이 되었던 사건. 이 일로 행정관 3명이 기소돼 유죄 확정 되었다. [본문으로]
- 국익만이 아니라 민주주의, 자유, 인권, 법치주의 등 보편적 가치를 기준으로 외교 관계를 형성하거나 조정하려는 외교 전략. 2020년대 미국의 바이든 정부는 신흥패권국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이러한 외교적 명분을 통하여 한국과 일본에 중국과의 단절을 유도했다. [본문으로]
- 2024년 9월 보도를 통해 밝혀진 대통령 부부의 여당 선거 공천개입을 둘러싼 정치 스캔들. 그 명칭은 대통령 부부와 여당 공천관리위원회를 알선한 브로커 명태균의 이름을 따왔다. [본문으로]
- 김규원(2023)에 따르면, 2023년 3월 기준 윤석열 정부에 “전∙현직 검찰공무원이 136명이나 들어가 활동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현직 검사는 117명, 전∙현직 검찰공무원은 19명이다.” [본문으로]
- 한국일보, ‘극우 유튜버 가족 대통령실 근무에 민주당 "혐오시위 독려 의심"’, 2022.07.13. 이윤주 [본문으로]
- 동아일보, ‘[오늘과 내일/윤완준]신문 보지 말고 극우 유튜브 보라 한 尹’, 2025.01.10. 윤완준 논설위원 [본문으로]
- 유튜브 채널 ‘삼프로TV’, 대통령 선거보다 훨씬 중요한 것 | 김누리 중앙대학교 교수 [더 피플], 2025.05.17. [본문으로]
- 장은주, 「왜 지금 ‘공화’인가?: 한국 민주주의의 ‘공화화’라는 과제와 민주적 공화주의」, 2023, 민주주의와 인권, 제23권 제1호, p.15 [본문으로]
- 이 문단의 내용은 ‘인권연대, 「검사특권 이대로 좋은가」, 2023, 검사특권 폐지 촉구를 위한 토론회’를 참고했다. [본문으로]
- 과거 검찰 내에서 기획 수사를 담당했던 특별수사부 소속 검사. 2019년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현재는 ‘반부패수사부’로 개칭되었다. 정치, 경제 분야 내 각종 거물급 사건을 담당하고 있어 검찰 내 엘리트코스로 꼽힌다. [본문으로]
- 이밖에도 검사는 독립기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탄핵으로만 파면이 가능한 유일한 공무원이다. [본문으로]
- 김준석, 「한국국회는 얼마나 강한가? 비교의회 시각에서 본 한국국회 권한의 상대적 크기」, 2018, 『사회과학연구』 제25권 제4호, p.234 [본문으로]
-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정의한 개념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공유되는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의지를 말한다. [본문으로]
-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을 위해 주변 상가에 커피나 간식 등을 미리 결제해 놓는 행위들에서 탄생한 집회 문화. 집회에 참여하지 못한 누군가가 집회 주변 카페에 미리 결제를 통해 연대를 표현하면서 연예인들을 포함한 다수 시민의 문화로 확산되었다. [본문으로]
- 광화문과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청년 여성을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농성하는 시민들을 칭하는 말. 눈 내리는 날씨에 체온 유지를 위해 은박 담요를 뒤집어 쓴 모습이 특정 초콜릿의 포장과 유사하다고 하여 생겨난 표현이다. [본문으로]
- ‘지금, 공화주의의 이유’ 4번째 단락 참조. [본문으로]
- 모리치오 비롤리, 『공화주의』, 2006, p.86-87 [본문으로]
- 조승래, 「공화주의와 기본소득론」, 2018,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제130권, p.18-21 [본문으로]
- ‘방아쇠’라는 뜻의 단어로, 누군가에게 과거의 특정 경험을 상기시켜 우울과 불안 등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말이나 장면 일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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