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라는 이름의 로켓
편집위원 강시현
물과 맞바꾼 것
지난 3월 학교 앞으로 자취방을 옮겼다. 학교에서 한 시간 거리인 8평 가량 오피스텔에서 학교 중문의 다세대주택으로 이사오니 많은 게 달라졌다. 일단 비슷한 값에 집이 절반으로 줄어 4평이 되었고, 연달아 언덕과 언덕을 오르고서도 계단을 타야했고, 당연했던 엘레베이터와 경비실도 사라졌다. 내 생에 접하지 못했던 온갖 벌레가 방에 드나들었고, 심지어는 말벌이 환기시키는 찰나에 들어와서 경악했던 적도 있었다. 그 말벌이 내 현관문 위에 집을 짓고 있었으니 더 말해봤자 입만 아픈 그런 집이 내 집이 된 것이다.
그래도 언덕과 계단은 운동 삼아 오를 만했고, 줄어든 집도 억지로 적응하니 괜찮았고, 엘리베이터와 경비실도 그립긴 했지만 나름대로 적응됐다. 벌레도 내가 베어 그릴스 1에게 빙의하니 이제는 귀여워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를 곤란하게 하는 것들은 예상외의 부분에서 불쑥불쑥 등장했는데, ‘물’이 바로 그것이었다. 하루에 물을 최소 2L 먹는 내게 생수 배달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극한의 위치에 있는 집에 일주일에 두어 번이나 생수 2L 6개입 한 묶음을 두세 개씩이나 배달시키자니 걸리는 게 많았다. 나 하나 편히 물 먹자고 누군가 물을 양손에 들고 언덕의 언덕과 계단을 오르게 해도 되나? 그게 맞나? 내가 그 배달 기사님이라면 계단을 오르는 한 걸음마다 나를 저주할 것 같았다. 그래서 처음 한 달 정도는 물을 내가 직접 사거나, 이런저런 방법으로 제일 ‘편한 길’을 놔두고 돌고 돌아서 물을 사먹었다.
그것도 잠시, 한 달도 채 안 되어 그 편한 길을 외면하기 싫어졌다. 브리타 정수기도 사서 써보고, 저 멀리 있는 마트에서 물을 낑낑대며 들고 와보기도 했지만 이미 문 앞에 누군가 대신 물을 가져다주는 편안함에 익숙해진 나에게 처음의 의지는 흐려지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편한 길’ 말고 다른 걸 외면하기로 했다. 한나절 안에 물을 배달하기 위해 새벽에 일해야 할 누군가라거나, 양손에 물을 들고 언덕과 계단을 올라야 하는 누군가라거나, 그게 가능해진 이상한 사회라거나.
제일 편한 길. 한나절만에, 정기배송으로, 우리 집 앞까지. 그 무거운 물을. 돈만 내면.
두 글자로 줄여서 쿠팡.
결국 4월 초였나, 다시 쿠팡 앱을 다운받았고, 바로 물을 주문했다. 문 앞에 ‘로켓’처럼 배송된 물을 먹으니 외면해도 될까 싶었던 그것들의 잔상까지 싹 사라졌다. 배송 시간 즈음에 외출할 땐 쿠팡맨과 마주칠까 눈치를 보기는 했지만.
물건을 드는 바른 자세
온갖 장애물을 피해 2L 생수 12개를 바른 자세로 드는 법
1. 2L 생수의 무게는 2kg. 12개면 24kg. 다리를 넓게 벌리고 물건을 다리 사이에 위치시킨다.
2. 등을 곧게 편 상태로 고관절을 구부립니다. 3. 물건 손잡이나 아랫면을 잘 잡은 뒤 무릎을 펴면서 물건을 몸 쪽으로 밀착시킵니다. 4. 그 자세를 유지하며 24kg 생수를 들고서 계단을 오른다. 5. 실패! |
나는 안다. 계단뿐만 아니라 현관문까지 수많은 장애물을 건너며 그 자세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남을 시키기 싫어 내가 직접 해봤던 적 있으니 더 잘 안다. 마리오도 그건 못한다. 낑낑거리며 생수에 삶의 무게까지 더해진 사람처럼 거북이걸음으로 옮긴 나도 불가능한데, 시간에 쫓기며 ‘로켓’이 되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로켓이 고관절과 무릎의 위치와 허벅지 힘을 신경 쓰면서 나는가. 로켓은 빨라서 로켓인 것인데.
로켓, 사람, 개

▲ 쿠팡 배송전문 자회사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와 고 정슬기 노동자의 메시지 내용 3 4(대체 텍스트 각주4 확인)
개처럼 뛰면 된다. ‘개’처럼 뛴다는 표현은 무엇을 함축하고 있는가. 어떤 인간이 비인간동물로 비유될 때, 그 인간은 인격을 상실하게 된다. 윤리적 대상으로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권리 보장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못한다. 그는 ‘개’처럼 뛰었다. 그러나 개는 평균 시속 30km지만, 로켓은 ‘초’속 10km가 넘는다. 로켓의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개가 되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개’처럼 달렸던 고 정슬기 노동자는 지난 5월 사망했다. 사인은 대표적인 과로사 질환 중 하나인 ‘심실세동 및 심근경색 의증’이었다. 현재 과로사 산업재해 인정 기준은 주당 64시간이다. 주 6일 저녁 8시 반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근무한 그는 주당 63시간 일했다. 1시간 모자란다고 볼 수 있겠으나 야간 근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야간 근무의 경우 업무상 질병 판정 기준에 따라 22시부터 06시에는 야간 할증 30%가 붙어 주당 77시간이 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이에 대해 쿠팡은 “쿠팡 퀵플렉서는 개인사업자기에 업무시간과 업무량은 전문배송업체(대리점)와 택배기사의 협의에 따라 결정된다”는 입장이다. 지난 23년 10월 배송 노동자 사망 사고와 관련하여 “쿠팡 직원이 아닌 근무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개인사업자임에도 민주노총 등이 회사 강요에 의한 과로사로 몰아가고 있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을 고려하면 산재와 관련하여 한결같은 태도라 볼 수 있다. 쿠팡은 어떻게 이런 입장 표명이 가능할 것일까. 바로 꼼꼼하게 설계해서 쪼개둔 쿠팡의 고용구조 덕분이다.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서울 구로을)이 23년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 5에 따르면 23년 1월부터 8월까지 쿠팡 계열사의 산업재해 (이하 산재) 승인 건수는 1,087건, 유족 급여 1건으로 나타났다. 산재 신청 및 승인 건수 2위인 현대중공업(주)가 승인 521건, 유족 3건임을 고려하면 압도적인 차이로 1위라고 할 수 있겠으나, 모순되게도 1위는 ‘쿠팡’이 아니다. 주식회사 우아한청년들 6이 산재 승인 1,273건, 유족 급여 5건으로 진짜 1위를 거머쥐었다. 그렇다면 그다음인 쿠팡이 2위여야 하지 않는가. 어째서 현대중공업(주)가 2위인 것일까. 쿠팡이 2위가 아닐 수 있는 이유, 쿠팡의 고용구조를 언급하다 갑작스레 산재 기업 순위에 관해 이야기한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바로 쿠팡이 쪼개져서 받는 이득들. 이게 핵심이다. 쿠팡은 왜 스스로를 쪼갰고, 또 무엇을 쪼갰는가.

▲ 쿠팡의 고용구조
흩어지면 산다
우리에게 쿠팡이란 그저 쿠팡이다. 우리에게 보이는 건 하나의 쿠팡 홈페이지, 애플리케이션, 멤버십이다. 소비자에게 쿠팡은 쿠팡 하나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위에서 산재 승인 건수를 말할 때 ‘쿠팡 계열사’라 칭했다. 이 쿠팡 ‘계열사’는 쿠팡이 법의 사각지대로 숨게 해주는데, 그와 동시에 노동자는 세상의 상식 밖으로 내몰리게 만든다.
위에서 언급된 쿠팡 계열사는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 대구센터, 쿠팡 주식회사,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유한회사, 쿠팡이츠서비스 유한회사로 4곳이다. 앞에서부터 위 자료에서 7위, 8위, 14위, 19위를 차지했다. 그러니까, 2위인데, 7~19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대체 뭔 소리인가 싶겠지만, 소설 해리포터를 떠올리면 된다. 해리포터의 악역 볼드모트는 하나인 영혼을 쪼개고 쪼개서 여덟 조각으로 만들어 자신의 목숨을 여덟 개로 만든다. 목숨이 하나인데, 여덟 개인 것이다. 쿠팡도 볼드모트와 같은 방법을 썼다. 쿠팡 자신을 쪼개고 쪼개서 자회사를 만들어 ‘쿠팡 조각’을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해 다 쿠팡이긴 하지만 떨어져 나왔으니 쿠팡로지스틱서비스(CLS) 유한회사와 그 외는 쿠팡이 아닌 것이다. 볼드모트를 볼드모트라 부르지 못한 것처럼 10, 쿠팡을 쿠팡이라 부르지 못하는 것이다.
쿠팡은 볼드모트조차도 가지 않은 곳까지 더 갔다. 여기서 쿠팡이 쪼개진 효과가 절정에 달한다. 위의 쿠팡 고용구조 사진을 다시 살펴보면 쪼개진 것이 쿠팡만이 아니다. ‘노동자’도 쪼개진다. 쿠팡카플렉스, 쿠팡친구(구 쿠팡맨), 쿠팡퀵플렉스, 캠프 헬퍼, 캠프 헬퍼, 서브허브 헬퍼까지. 여기서 들어본 것이 몇이나 되는가. 아마 이제는 사라진 이름인 쿠팡맨 하나일 것이다. 쿠팡의 고용구조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볼 때가 됐다.
쿠팡(주)는 정말 우리가 아는 그 쿠팡이다. 쿠팡(주)가 고용하는 배송노동자는 두 가지로 나뉜다. 그나마 익숙한 쿠팡친구(구 쿠팡맨)와 쿠팡카플렉스. 이 둘을 나누는 기준은 ‘고용의 형태’이다. 쿠팡친구의 경우 직접고용 형태의 배송 노동자이다. 최초 2년은 1년 단위 계약직이며 이후 정직원 전환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비율은 10% 11 남짓이라고 ‘알려져있다.’ 쿠팡이 정규직 비율을 공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10명 중 1명만 정규직밖에 안 되지만 쿠팡에 따르면 쿠팡친구는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 사진3 쿠팡의 과거 쿠팡친구 모집 광고 12 13 (대체 텍스트는 각주 13 참고)
하나, 누구나 가능하다! 단, 다치거나 군대에 가지만 않는다면!
2016년 9월 배송 차량 화물칸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30대 노동자 A씨가 있다. 14그는 4주 입원 후 회복에 6개월이 소요되었고, 17년 3월 즈음 복직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복직 9일 전 재계약이 불발되었다. 쿠팡 측은 “‘쿠팡맨’으로서 배송을 안 나가서 계약이 종료된 것이다.”라고 사유를 설명했다. 차량 오염 방지를 위해 화물칸에 신발을 벗고 탑승하라는 규정을 지키다 비 오는 날 미끄러져 바닥에 추락해 다친 A씨는 그렇게 해고되었다. 이에 중앙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며 복직 판정을 내렸으나 쿠팡은 부당해고 처분 취소 취지의 소송을 걸었지만 패소했다. 이에 불복해 김앤장, 율촌, 태평양 등 대형 로펌과 함께 고등법원에 항소하였으나 후에 소송을 취소하며 A씨의 복직을 추진했다. 2018년 하반기에서야 복직이 결정되었고, 쿠팡은 4년 전인 14년 3월 쿠팡맨의 6개월 근무 뒤 정규직 전환 심사와 60% 수준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한 바 있다. 15
지난 2월, 쿠팡의 블랙리스트가 세상에 드러났다. 16쿠팡의 물류 계열사인 쿠팡풀필먼트서비스(유)가 제작한 ‘PNG(외교 용어의 일종으로 기피 인물을 뜻하는 Persona Non Frata의 준말)리스트’에는 노동자 1만 6,450명의 이름과 전화번호, 생년월일과 같은 개인정보가 들어있었고, 근무 경험이 없는 언론인 수십 명과 정치인, 유튜버까지도 그 안에 있었다. 이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가는 순간 쿠팡에 발을 들일 수 없도록 만든, 말 그대로 채용 블랙리스트였다. 이 블랙리스트에 있는 이가 전국 그 어떤 물류센터든 근무 신청을 하면 채용 마감 등의 거짓 핑계로 탈락 통보를 받게 된다. 그 블랙리스트 안에는 확인 절차가 없었다는 공익 제보자의 진술이 있으나 명목상으로는 정당한 도난, 성희롱, 폭행 등의 사유도 극히 일부 존재했으나 다음의 정당하지 않은 사유로 인한 퇴사자도 포함됐다. 입대로 인한 퇴사(11명), 육아나 가족 돌봄(105명), 일과 삶의 균형(128명), 자기 개발(116명). 쿠팡은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퇴사하면 그 순간 LMS(쿠팡 노무관리시스템)에서 자동 분류되어 쿠팡 물류센터에서 영구 또는 일정 기간 채용될 수 없는 기업이니 입사 전 미리 군대를 다녀오도록 하자.
또한, 퇴사만이 핵심 요점이 아니다. 근무 의사가 있으며, 노동 중인 노동자도 블랙리스트에 올라갈 수 있다. 정성용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장의 경우 쿠팡이 근로시간면제제도(time-off) 17를 불허하기에 조퇴 후 노동조합 활동을 하였는데, 이를 쿠팡 측은 ‘근태 불량’으로 규정하며 예정된 무기계약직 전환을 거부하고 블랙리스트에 정성용 씨의 이름을 올렸다. 또한, 쿠팡은 블랙리스트 공익 제보자 A씨와 이를 전달받아 언론에 알린 김준호 씨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영업비밀 유출),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이에 A씨와 김준호 씨는 모두 자택과 휴대전화, 컴퓨터 등이 압수수색 대상이 됐다. 이에 쿠팡은 블랙리스트를“사법당국으로부터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받았다”는 입장과 함께 고소에 대해서는 수십 종의 회사 기술·영업기밀 자료 유출 정황을 확인했다는 고소 사유만 밝히며 “구체적인 질의에 답변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둘, 즉시 일할 수 있다! 일할 수만 있다면!
기상청의 2024년 여름철(6~8월) 기후 분석 결과 18에 따르면 올해 여름철 전국 평균 기온은 25.6°C로 평년(23.7°C)보다 1.9°C가 높았고, 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래 가장 더웠다. 열대야 일수 또한 20.2일로 평년(6.5일) 대비 3.1배를 기록해 역대 1위였다. 올해는장마철에 비가 집중적으로 내렸는데, 이 역시 73년 이래 가장 큰 비율인78.8%의 여름철 강수량이다. 그리고 「건축법 시행령 [별표1] 제18호 19에 따라 물류센터는 ‘창고시설’로 분류되어 있어 환기와 냉난방 등에 관한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쿠팡뿐만 아니라 모든 물류센터는 에어컨이나 난방시설 설치가 의무가 아니라는 뜻이다.
5월 쿠팡 남양주 2 캠프 배송노동자 정슬기 씨 야간노동 후 자택에서 사망
7월 쿠팡 경산 퀵플렉스 택배 노동자 G씨 폭우에 휩쓸려 사망 7월 쿠팡 제주 택배소분장 택배 분류노동자 H씨 분류작업 중 쓰러져 사망 7월 쿠팡 화성 동탄 택배 노동자 I씨 야간노동 후 사망 8월 쿠팡 로켓설치 대리점 주 J씨 캠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음 8월 쿠팡 시흥택배소분장 택배 분류노동자 김아무개씨 근무 중 사망 8월 쿠팡 시흥2캠프에서 야간분류작업 중 사망 |
지난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방청에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 쿠팡 동탄물류센터에서 올해 9월까지 동탄물류센터 하나에서만 22번의 구급출동이 있었다고 한다. 구급출동이란 질병, 부상 등으로 응급상황 신고로 119구급대원이 출동하는 것을 말한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의 관계자는 “한 물류센터서 한 달에 2~3번 꼴로 응급환자가 발생했다는 건데, 이례적으로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21
22년 6월 23일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이하 쿠팡 노조)가 쿠팡 본사 앞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공개한 현장 온도 기록지 22 에 따르면, 22년 6월 20일 고양센터의 오후 5시 55분 기준 작업 ‘전’ 온도는 33.4°C, 습도는 45%였으며, 밤 10시 40분 실내 온도는 33.6°C였다. 22년 6월 20일 평균 기온은 25.2°C이었다. 그리고 쿠팡은 다음과 같이 홍보하고 있다.

▲ 쿠팡 뉴스룸 홈페이지 ‘여름에도 시원한 쿠팡 물류센터의 비밀’ 캡쳐 23 24 (대체 텍스트는 각주 24 참고)
쿠팡의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쿠팡 물류센터는 에어컨이 솔솔 나오고, 냉매조끼와 얼음물 등 냉방용품부터 푹신한 의자까지. 더할 나위 없이 시원하고 아늑해 보인다. 이는 사실일까. 확인을 위해 교내 쿠팡 노동자 A씨, B씨와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돌아온 답변은 ‘솔솔 산뜻한 바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Q. ”쿠팡에서 일할 때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이었나?”
A.
(A씨) “여름밖에 안 해봤지만 이제는 안 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너무 덥다. 팬은 돌아가는데 먼지바람만 돈다. 밀폐된 창고가 아니라 개방되어 있어서 에어컨을 틀지 못한다. 그래서 카페 같은 곳에서 트는 에어컨이 아니라 그냥 기계에서 바람만 천장에서 나온다. 그래서 딱 그 아래에서만 시원하고 공기가 순환되질 않는다. 엄청 큰 선풍기 몇 대가 있어서 일하다 눈치보면서 잠깐 거기 서있는 게 전부다. 정말 너무 덥다.”
(B씨)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 특히 심야에는 너무 춥다. 센터에 먼지가 너무 많기도 하고 방한도 돼서 마스크를 끼고 한다. 잠깐 나갔다 들어오면 땀과 마스크 사이 물기 때문에 앞머리가 얼 정도다. 그런데 이걸 녹여봤자 또 금방 언다. 만졌다가 부러질 것 같을 정도로. 또 여름에는 인센티브를 준다고 주간 9시부터 6시까지 간 적이 있는데 현기증이 나서 조퇴 생각을 10번은 한 것 같다. 바쁜 센터의 경우 에어컨이나 히터를 틀어주는데, 그곳은 새로 지어진 센터라 바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에어컨을 안 틀어줬다. 결국 똑같이 먼지바람만 맞으면서 현기증이 계속 일었다.”
인터뷰의 응답은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의 물류센터의 지난 1월 기자회견 발표 내용과 일치했다 25. 쿠팡 물류센터 435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 83%(363명)이 더위를, 80%(348명)는 먼지를. 73%(319명)는 추위를 작업 중에 심각하게 느꼈다는 것이다. A씨의 경우 한 센터에서만 근무하였으나 B씨는 여러 센터에서 근무 경험이 있다고 진술했다. 한 센터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두 노동자 모두 여러 번의 노동 경험이 있으나 ‘쿨존’이나 ‘쿨쿨쿨’ 개별 냉방용품과 ‘찬 바람이 솔솔’은 경험하지 못했다. 예외적으로 얼음물과 아이스크림을 무제한으로 제공했으나, 조금만 날씨가 시원해지면 바로 끊겼다고 진술했다.
물류센터는 왜 이리 덥고, 쿠팡은 냉방에 소홀한 것일까. 답은 쿠팡의 특기, ‘쪼개기’에서 나온다. 쿠팡 물류센터는 한 층을 세 개의 층으로 나눈 ‘메자닌’ 구조로 형성되어 있다. 메자닌 구조란 하나의 층을 쪼개서 기존의 층과 층 사이에 별도의 구조물을 만들어 보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설계구조이다. 복층을 상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쿠팡이 쪼갠 게 건물인지 양심인지 모르겠지만 상상해 보자. 하나의 층을 둘도 아닌 셋으로 나눈 물류창고 안이다. 온갖 물류가 쌓여있다. 사람이 적게는 몇백 명에서 몇천 명이 돌아다닌다. 먼지와 더위가 고일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그런 공간이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물류센터는「건축법」시행령 [별표1] 상 그저 물건이나 자재를 저장하거나 보관하는 시설인 창고이다. 다시 말해 사람의 존재는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시설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쿠팡은 그 무엇도 할 필요가 없고, 이름도 시원한 ‘쿨존’은 정말 말 그대로 이름만 있어도 문제 될 것 없는 곳이다.
셋, 쿠팡의 일원입니다! 7시 전에만 도착하기만 하면!
‘쿠팡 소속 1년 계약직, 계약 연장 및 정규직 전환 가능’하다는 쿠팡의 홍보 문구이다. 잊지 말자. 우리는 지금 쿠팡친구 입사의 장점에 관해 살펴보는 중이다. 11개월 20일 근무가 비일비재한 한국에서 계약직 연장 및 정규직 전환이라니. 이런 장점이 어디 있는가. 이러니 쿠팡에 사람이 모이는 것이다. 하긴 그 누가 30°C가 넘는데 에어컨도 안 나오고, 잊을 만하면 옆에서 누가 실려 가고, 삐끗하면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회사에 입사하겠는가. 쿠팡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는 딱 하나, 그저 딱 하나의 관문만 넘으면 된다. 아주 간단하고, 유일하며, 절대적인.
택배 영업점 계약서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 유한회사(이하 “CLS”)와 (이하 "영업점)는 택배 영업 점 개설 및 운영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계약(이하 "본 계약”)을 체결한다. 제1조 【영업점 명칭】 영업점의 명칭은 영업점으로 한다. 제2조 【계약기간】 ① 본 계약의 계약기간은 한다.
영업점으로 한다. ② 본 조에도 불구하고, CLS 또는 영업점은 계약기간 만료 전이라도 본 계약 제28조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본 계약을 해제·해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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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팡CLS의 원청-대리점 계약서 일부 26 27 를 재가공한 것 (대체 텍스트는 각주 27 참고)
구역과 물량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3조의 내용은 ‘계약해지 부속합의서’라는 계약에 필수적인 합의서에서 더욱 자세히 제시된다.
계약해지에 관한 부속합의서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 유한회사(이하 “CLS”)와 __ (이하 “영업점”)는 __ 일자로 체결한 택배 영업점 계약서(이하 “원 계약(서)” 제28조 제2항 제5호에 따른 계약해지 사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서(이하 “본 합의서”)를 체결한다. 본 합의서에 정의되지 아니한 용어는 원 계약서에서 정하는 바에 의한다. 제1조 계약의 즉시해지 ① CLS는 영업점에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가 발생하는 경우 영업점에 대한 서면 통지로써 원 계약을 즉시 해지하거나 영업점에 위탁하는 물량을 조정할 수 있다. 본 항에서 명시된 직원 또는 영업점이 배송업무를 위탁한 자의 위반은 영업점의 위반으로 본다. 1. 영업점의 폐업, 영업취소, 영업정지, 기타 사업상 중대한 변화로 인하여 CLS가 더 이상 영업점에게 배송업무를 위탁할 수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해진 경우
2. 영업점이 원 계약에 의해 수령해야 할 업무를 이유 없이 거부하였을 경우 3. 영업점이 원 계약에 따른 비밀유지의무, 개인정보보호의무 또는 정보보안의무를 위반한 경우 4. 영업점이 다음의 서비스 수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경우 5. 영업점이 배송업무 수행 중 주거침입, 폭행, 모욕, 재물손괴, 절도 등의으 범죄를 저지를 경우
6. 영업점의 귀책사유로 인하여 물품의 훼손, 분실, 도난 등이 발생한 경우 7. 영업점이 물품을 무단으로 열람 또는 개봉한 경우 8. 영업점이 배송업무 수행 중 합리적인 사유 없이 고객 또는 제3자와 몸싸움, 언쟁을 벌인 경우 9. 영업점이 CLS가 지정한 수화인 또는 장소에 물품을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배송하지 않은 경우 10. 영업점이 원 계약 10조 제5항에 따른 조치나 교육을 미이행한 경우 11. 기타 영업점에게 원 계약을 지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
‘택배 영업점 계약서’ 본안에는 “원 계약을 즉시 해지하거나 영업점에 위탁하는 물량을 조정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구역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비보장성을,‘계약해지에 관한 부속합의서’는 그 계약 해지와 위탁구역 조정 기준이 명시되어 있다. 이러한 위탁구역 조정 기준을 ‘클렌징 기준’이라 부르는데, 이것이 앞에서 말한 바로 그 절대적이며, 유일한 기준이다. 만약 이 클렌징 기준에 못 미치게 되면, 쿠팡CLS는 관련 규정에 따라 대리점의 구역을 회수(클렌징)가 가능하며, ‘클렌징’ 될 시, 택배 노동자는 대리점과의 위탁계약을 체결한 택배 노동자의 배송 구역과 물량은 ‘사실상의 해고 상태’에 놓이게 된다. 합의된 사항이니 순응해야 한다고 볼 수 있겠으나, 계약서가 적법할 때나 그러하다. 쿠팡CLS의 위수탁계약서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이하 「생활물류서비스법」)에 반하는 계약 규정이다. 29
「생활물류서비스법」이란 2021년 1월 제정되어 택배 및 배달 산업이 성장하면서 기존의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이 적용되지 않는 영역의 생활물류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소비자들의 권익 증진을 목표로 하는 동시에 종사자 보호 서항을 담고 있는 법률이다. 쿠팡CLS의 경우 같은 년도 12월 물류 자회사 택배사업자 등록을 마쳤다. 공포 후 6개월이 경과되고도 훨씬 지나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루어지고도 남을 시간적 거리가 있었음에도 왜 쿠팡CLS는 「생활물류서비스법」과 충돌하는 계약 조건을 내세웠으며, 어떻게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쿠팡CLS의 위수탁계약서 3조와 계약해지에 관한 부속합의서가 어긴 「생활물류서비스법」 조항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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