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위원 조세령
❖ 아래 글에는 영화 <미키 17>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죽은 사람을 영원히 살릴 수 있다면 어떨까. 올해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은 바로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한다. 영화 <미키 17>은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에드워드 애스턴의 SF 소설 <미키 7>을 원작으로 한다. 주인공 ‘미키’는 지구에서 친구와 함께 시작한 마카롱 가게가 쫄딱 망하게 된다. 이후 돈을 갚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사채업자를 피해 정치인 ‘마샬’의 얼음행성 개척단에 ‘익스펜더블’, 즉 위험한 일을 도맡고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일을 맡기로 결심한다. 미키는 영원히 죽고 다시 살아나는 일을 4년간 계속하고 그의 곁에는 여자친구 ‘나샤’ 도 있다. 평소와 같이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다 외계 생명 ‘크리퍼’를 만나 겨우 죽을 고비에서 벗어난 미키. 다시 본부로 돌아와 보니 이미 미키의 다음 복제인간인 미키 18이 프린트되어 있다. 미키가 두 명인 상황. 영화는 미키가 이 위기에서 벗어나 또다시 죽고 살아날 수 있을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미키 17> 속 미키도 수많은 선택을 한다. 친구와 마카롱 가게를 차릴 선택, 돈을 갚을 능력이 없으니 외계 행성으로 도망갈 선택, 특별한 기술 없이도 살아남기 위해 익스펜더블에 지원하는 선택, 즉 끊임없이 죽고 다시 태어나겠다는 선택. 미키는 왜 삶을 영원히 중단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을 선택했을까? 미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죽음이란 무엇일까?
Chapter 1. 미키는 선택했다. 영원히 죽고 다시 살아나기로
사실 미키에게는 그럴싸한 선택지가 없었다. 첫째, 미키는 지구에서 마카롱 가게 사업을 하려다 제대로 망했고, 둘째,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렸지만 번듯한 직장이나 모아둔 돈도 없어 갚을 능력이 전혀 갖춰지지 않았으며, 셋째, 외계 행성으로 떠날 때 다른 직업에 지원하고 싶었지만 그렇다 할 능력이 없었다. 결국 미키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이란 영원히 죽고 다시 태어나는 ‘익스펜더블’이 되는 것뿐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이후 사람과 사람 간의 연결이 끊어지면서 점차 사회적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취약계층의 생존기반이 붕괴되고 있다. 팬데믹은 공평하게 모두를 급습했지만 그 피해의 크기는 사람마다 달랐다. 고금리, 고물가, 고실업의 경제 불황으로 인해 우리 사회 속 누군가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가장 먼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 세대 청년들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취업을 하지 못하고 동시에 사회와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고독생 孤獨生 과 고독사 孤獨死 가 조금씩 당연해지기 시작했다.
무기력한 청년들에게 사회는 너무나 차갑다. 청년들은 계속해서 사회의 바깥으로 밀려나고 있다. 특히 청년의 고독사는 다른 연령대와 비교하면 자발적으로 고립을 선택한 고립사의 경향성이 높다고 한다. 그들의 가난함이 복구될 수 없는 빈곤으로 확고하게 여겨질 때, 구직 실패가 사회적인 거부로 여겨질 때, 그리고 삶에 희망이라는 것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 청년들은 스스로 고립되기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은 실존하는 인간에게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자신이 현재 살아있음을 자각하고 동시에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유일한 존재는 인간이다. 죽음을 인식한다는 특징은 그것 그대로 인간에게 고통을 유발하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의 원천적인 심리적 상태다. [footnote] 김현옥•김소형•박해선,「청년의 고독생과 고독사: 언론보도와 학술연구에 관한 비정형 빅데이터 분석 중심」비판사회정책 제 85호, 2024.11 [footnote/] 우리에게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죽음이 익숙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보건복지부(2024)에 의하면, 고독사의 청년 비중은 5.8% 정도이며, 연령대가 낮을수록 자살과 유사한 죽음이거나 자살일 가능성이 높다. 고독사 사망자 중 자살 사망이 차지하는 비율은 2021년 16.9%에서 2023년 14.1%로 다소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지만, 청년 고독사 사망자 중 자살 사망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0대 고독사 인구의 59.5%, 30대는 43.4%로 집계되어 연령대가 낮을수록 자살로 인한 고독사 비중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연령대별 고독사 사망자 중 자살 사망자 수 ©보건복지부
고독사 위험 청년 추산 인구의 규모가 적지 않다는 점도 문제이지만, 큰 규모의 청년 인구가 지속적으로 경험해가는 고립이나 불안정한 삶이 사회적으로 공개되어 있지 않거나 개인현상으로 간주된 점도 유의해야 한다. 청년의 고독생과 고독사라는 사회현상은 청년에게도 성찰을 요청하는 자기 현상이며, 격차와 박탈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를 구가하는 기성세대에게도 성찰을 요청하는 것이다. 동시에 보다 복합적이며, 비가시적이며, 예방도 해결도 복잡할 가능성을 제기하는 사회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 개인의 문제로 귀속될 때에는 불안정한 청년기의 개별적 발달 실패로 제한된다(이진숙•정희선, 「고독사 담론의 변화추이에 대한 분석: 청년 고독사 관련 정책을 중심으로, 사회적경제와 정책연구, 13(1), 2023). |
청년들에게 죽고 싶다는 말은 살고 싶다는 말보다 훨씬 쉽다. 살기 위해서는 발악을 해야 하지만 죽는 일은 어쩐지 딱 한 번 아프기만 하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고독사 현장을 청소하는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청년 고독사 현장에서는 말 그대로 살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달려온 것의 흔적들이 보인다고 한다. 책상 한편을 가득 채운 토익 문제집이나 ‘나는 할 수 있다’ 라고 적힌 반듯한 포스트잇,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한 문제집과 빳빳하게 다림질된 정장 같은 것들. 미키라는 청년이 죽음을 선택했듯, 우리나라 사회에서 죽음을 선택하고 말하는 청년들도 사실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왜? 살아남는 것은 죽도록 힘이 들기 때문에.
▲중앙일보, “[월간중앙] 늘어나는 청년 고독사. ‘고독생’부터 돌봐야”, 2021.08.28, 손준영 기자. ©중앙일보
Chapter 2. 미키는 익스펜더블하니까!
어딘가 고장난 미키의 몸을 처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주선 시체처리반이 용해로에 던져 넣으면 끝.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수많은 사체와 오염물들과 함께 불태워지며 “저는 괜찮아요.” 라고 말하는 미키의 표정은 전혀 괜찮지 않고, 애써 ‘엄지 척’을 해 보이는 것을 시체 처리반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미키를 그저 하나의 시체 그 이하의 것으로 생각할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생각해보면 이건 당연한 처사일지도 모른다. 미키는 익스펜더블, 즉 소모품이니까. 영화 속에서 미키는 도구화된다. 하나의 인격체를 가진 인간이 아니라 도구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미키는 우주선에 탑승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다. 그러나 미키는 노동자로서 존중이나 그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한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미키도 노동자가 맞는가? 죽고 다시 태어나는 일에서 ‘노동’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에서는 근로자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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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중요한 점은 미키를 근로자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미키가 ‘죽는 것’을 노동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와 같이 노동에 대한 정의, 그리고 우리가 노동이라고 칭할 수 있는 행위들에 대한 범위는 일부 축소되고 새로운 방식으로 확장되기를 반복하고 있다. 1997년 IMF 사태 이후 불안정노동, 즉 비정규직 노동자나 청년 등 노동시장 취약계층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노동’ 과는 다른 방식의 노동을 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콜센터에서 일하거나 재택 근무를 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경제체제가 지구화 정보기술의 발달과 함께 여러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는 작업장 환경의 변화를 수반했다. 일의 작동방식, 즉 일을 하는 방식 자체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전통적 산업사회를 지탱해왔던 표준적인 고용관계의 해체 이후 비정규직의 증가, 하청노동의 증가, 프리랜서와 가짜 자영업자의 증가에 더하여 최근에는 플랫폼 노동 또한 생겨났다. 일과 쉼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비생산적인 시간과 생산적인 시간이 명확하지 않으며, 작업장소와 사적 공간 등의 경계가 무너지게 되었다. 이것을 ‘액화노동(Melting labor)’ 이라고 한다.[footnote] 이승윤,「불안정노동의 일상성과 복지제도의 허구성」, 중앙대학교,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 2020.6[footnote/] 이에 따르면 미키 또한 액화노동자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또 다른 노동의 형태이기에 미키는 열심히 죽는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액화노동의 단점이 있다면 노동과 사적 시간의 범위를 구분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 속 미키는 자신이 죽는 일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키 스스로가 선택한 직업이기 때문에. 독소가 가득 든 통 안에 들어가 홀로 죽어갈 때도 미키는 살려 달라는 말 한 마디 하지 않는다. 그런 미키에게 의문을 던지는 사람이 하나 있다. 미키의 여자친구 '나샤’다. 나샤는 미키가 독소를 마시며 죽어갈 때 유일하게 미키의 곁을 지킨 사람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이거 너무 잔인하지 않니?’ 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다. 영화관에서 <미키 17>을 본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내용 중 하나는 시체가 된 미키를 불구덩이에 집어넣는 장면을 보며 사람들이 웃는다는 것이다.
이런 삶의 주체가 되는 사람들은 주로 사회적 약자들이다. 서비스 부문 일자리가 주로 저숙련, 비정규직 위주로 확장되면서 여성, 노인, 이주자, 청년 등 노동시장 취약계층들이 노동 수요를 충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노동 시장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고 사회는 이제 막 디지털자본주의에 들어섰다. 전통적 산업사회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복지제도가 더 이상 변화한 노동의 형태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불균형은 ‘복지정책의 제도적 지체’ 그리고 이로 인한 ‘새로운 배제’를 유발한다. 서비스 부문의 낮은 생산성에 대응해 노동비용을 줄이고자 하는 기업의 고용전략을 막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태 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사회의 바깥에 있는 약자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외면하려고 한다.
영화 속에서 미키는 마샬과 그의 부인과 함께하는 저녁식사 자리에 초대받는다. 마샬 부부는 식사 내내 미키를 인간으로서 존중하기보다는, 익스펜더블이라는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그 자리가 얼마나 가치있는지, 그리고 그 자리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자리라는 것을 상기시키며 미키에게 ‘너는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미키는 어색하게 웃으며 음식을 한 입 먹는다. 그리고 거품을 물고 쓰러진다. 음식에 촉진제가 과도하게 섞인 탓이다. 마샬 부부가 거품을 물고 쓰러진 미키를 보며 ‘당장 이것을 치우라’ 고 이야기할 때 나샤는 미키를 기꺼이 끌어안는다. 미키, 너 괜찮은 거 맞아? 나샤가 가장 먼저 한 말은 바로 그것이었다. 이러한 행동은 나샤가 미키를 정말 사랑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키를 사람으로서 존중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미키를 유일하게 소모품이 아닌 사람으로 존중해주는 존재. 모두가 노동자를 외면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샤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우리는 기꺼이 나샤가 되어야 한다고.
▲<미키 17> 속 마샬 부부와 식사를 하는 미키 17. ©IMDB
Chapter 3. 사실은 너도 죽는 게 두려운 거야, 그렇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미키 18과 마샬이 몸싸움을 벌일 때, 마샬은 미키 18의 몸에 붙은 폭탄을 발화시키는 버튼을 누르려고 한다. 그러자 미키 18의 눈빛이 흔들린다. 이때 마샬은 미키 18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실은 너도 죽는 게 두려운 거야, 그렇지?” 미키는 그것이 자신의 직업이라는 것을, 나는 죽음 노동자라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죽는 것을 두렵게 느낀다. 우리에게 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왜 죽음은 쉽게 발화되는가. 누군가는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더 쉽다고 이야기한다. 정말 그럴까? 우리에게 죽음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청년들에게 고독사나 고독생의 위험이 도사리는 것은 사회가 가지는 전반적인 문제적 세태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죽음에 대한 인식의 문제 때문이기도 하다.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는 말. 우리는 줄곧 그 말을 그냥 넘기곤 한다. 너만 죽도록 힘드니? 나도 죽도록 힘이 든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몸뚱이만큼의 힘듦을 쥐고 산다는 사실을 위로 삼아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은 때로 사람을 아주 우울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 모두가 힘들게 살아가는 거라고. 그것이 삶이라고. 하지만 그런 삶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넘친다. 매번 힘든 일이 일어날 때면 버릇처럼 붙이는 ‘죽고 싶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어쩌면 ‘살고 싶다’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죽도록 힘이 드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내가 원하는 건 죽음이 아니라 이런 고통스러운 삶의 끝일 뿐이라는 뜻이었을지도 모른다.
청년이 고독생, 심지어 고독사를 버텨내고 있다는 사실이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언론은 청년이 사회적으로 단절되어 갔던 이유와 또한 그 단절되었던 삶이 은폐된 이유 등을 구체적으로 보도한다. 이를 통해 언론은 애도를 넘어서 우리 사회가 왜 청년이 고독사하도록 방치하였는가를 되짚는 담론을 발생시킨다. 시민들은 이를 통해 낯선 사람의 고독한 죽음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되고 본인 역시 고독하게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거나, 사회적 돌봄체계나 사회보장제도가 단절된 삶과 고독한 죽음을 방지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족감이나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자살 시도를 한 사람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왜 죽고 싶은지 그 이유를 백지 가득 쓴다고 한다. 그러면 왠지 그것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고. 막상 적어두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나를 괴롭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우리에게 죽음이란 때로는 아주 쉬워지고 때로는 아주 어려워지며 때로는 아주 복잡해지고 때로는 아주 간단해진다.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모두 어렵다. 죽고 싶다고 해서 죽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사실은 죽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다.
죽음에 대한 가장 큰 아이러니는 가장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죽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미키의 경우도 그렇다. 미키는 살기 위해 영원히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선택한다. 그 선택에서 중요한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미키가 수백 번 죽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미키는 살기 위해서 처절하게 죽었다. 처절하게 죽음에, 그리고 새로운 탄생에 목숨을 걸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영화 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위험하고, 가장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들에 우리는 목숨을 건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내면의 자신을 죽이기도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고, 하기 싫은 일을 기꺼이 해내고, 상처받으면서도 친절하게 행동하고, 곪아가는 마음을 숨긴다. 이건 삶이 아니다. 살아감이다.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각자의 방식으로. 왜냐하면 그것이 죽음보다 나은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청년들이 기꺼이 고독한 생生을 버텨내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기계가 폭파되는 순간 박수를 받는 미키. ©IMDB
영화의 결말에서 미키는 자신을 영원히 죽고 다시 살아나게 만든 기계가 폭파되는 순간에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미키는 이제 영원히 이 세상에서 한 명뿐이다. 더 이상 죽지 않아도 되고,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된다. 미키의 삶은 이전보다 나아질 것이다. 나샤와 죽지 않고 영원히 행복할 수도 있고, 그토록 바라던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미키는 생각이 많아진다. 미키에게는 죽지 않아도 되는 삶, 무언가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삶이 주어질 여유가 없었다. 그토록 바라던 삶 앞에서 미키는 두려워진다. 내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를 두렵게 만든다. 때로는 그 두려움이 커져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죽고 말겠다고. 하지만 우리는 죽고 싶다는 말은 가장 명확한 잘 살고 싶다는 말이라는 것을 안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때로 우리를 아주 슬프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는 마음을 잘 보듬는다. 앎과 삶과 살아감. 언젠가 도착할 밝은 날을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 마음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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