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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보기/2014 가을겨울, 67호 <모범대학>

당신을 위한 교양은 없다

by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 2021. 1. 27.

편집위원 이상

순위는 뛰는데 교양은 제자리

  "교양강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묻는다 .'‘별로 들 을 강의가 없어요:라는 대답이 메아리처럼 돌아온다. 중앙대학 교는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오며 올해 단 독 8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어째 순위는 뛰는데 교양수업은 제자 리걸음이다. 학생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결정되는 공통교양 다 양성도 깊이도 부족한 핵심교양. 의견 수렴 창구와 학생 참여제 도의 미비. 몇 년째 교양강의 전반에 대해 학생들이 많은 불편을 言앙 호소하고 있지만, 개선의 노력은 잘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강의에 관련한 대부분의 변화가 학 생들이 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뤄졌다는 것이다. 1~2년마다 교양과정이 개편되는데 학생들은 수강 신청 기간이 돼서야 정보 를 접하게 된다. 정작 수업을 듣는 학생은 교양강의가 어떻게 변 하는지, 왜 변하는지, 학생의 요구가 반영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이번 2015년 교양과정개편도 마찬가지다. 이에 관해서는 뒤에서 좀 더 자세하게 다루겠다 지금부터는 교양강의 문제에 대해 하 나씩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교양의 의미

  우리는 대학에서 크게 두 유형의 강의를 듣는다. 전공강의 와 교양강의다. 전공강의가 해당 전공에 관한 지식을 다룬다면 교양강의는 대학생으로서 기본적으로 배워야 할 소양(공통교양) 과 소속 전공 이외의 다른 학문에 대해 탐구할 기회(핵심교양, 선택교양)를 제공한다.

  대학은 대학생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소양을 규정하고, 이 에 근거해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강의를 공통교양으로 선정 한다 이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시공간적인 맥락의 차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대학생으로서 갖춰야 할 소양’이라는 것은 분명 존재한다. 국사, 국어에 대한 이해나 토론 능력 등이 그 예 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핵심교양, 선택교양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전공 외의 다양한 학문에 대해 공부할 기회를 제공한다. 학과제의 특성상 자신의 전공에 대해서 공부할 기회는 많으나, 다른 학문을 접하기는 상 대적으로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교양과목을 통해 다 른 학문에 대해 공부할 수 있게 된다.

  중요한 것은 교양의 취지와 목적에 대해 학생들이 충분히 공 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그 필요성이 명확해야 한다.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충분히 논의되고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목표로 하는 소양의 성취 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교양이 취지에 맞게 제 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교양과정에서 무엇이 개선되어야 하는지 학생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이런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 하는 교양은 ‘별로 들을 게 없는 것’이 되거나 졸업을 위해 억지 로 수강해야 하는 애물단지가 될 뿐이다.

만족을 모르는 교양강의

  중앙대학교 교양강의는 공통교양, 핵심교양, 선택교양의 세 영역으로 구성된다 2013년 기준으로 선택교양은 의무 이수 기 준이 없지만, 공통교양은 14학점(7과목), 핵심교양은 12학점(4과 목)을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한다. 졸업을 위해서는 모든 학생이 교양과목을 최소 11개 이상 수강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서 교양 강의의 질은 학생들에게 강의 환경 문제로 직접 와 닿 을 수밖에 없다.

  학생들은 교양강의에 대해 만족하고 있을까. 최근 6년의 교 양수업 만족도 조사에서 교양수업에 만족하는 학생은 25%도 되지 않았다.1 중앙대 학생 4명 중 3명은 교양강의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교양수업에 만족하지 않는 가장 주요한 이유는 ‘별 로 들을만한 과목이 없어서’다 학생들의 의견은 명확하다 중앙 대학교의 교양강의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며, 가장 주된 이유는 들을만한 과목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몇 년째 응답에 거의 변화가 없는 것은 문제가 개선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대학본 부는 교양수업 만족도가 낮고, 수강과목의 질에 주된 문제가 있 음을 인지하고 있지만, 문제를 제대로 개선하지 못한 것이다. 또 한, 대학본부에서 시행한 일련의 교양과정개편이 학생들이 만족 하는 강의과정을 구성해내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울며 공통교양 듣기

  〈글쓰기〉, 〈논리와 사고〉,〈독서와 토론〉, 〈한국사〉, 〈회계와 사 회〉, (E n g lish l),〈English2〉학교에 처움 와서 1년 동안 맞닥뜨 리게 되는 강의들이다. 이들 강의는 중앙대학교 학생이라면 반드 시 수강해야 하는 강의들이다 학생들은 공통교양의 존재나 필 요성 자체에는 크게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대학생으로서 배워 야 할 것들이 있고, 공통교양이 그것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글쓰기〉, 〈English〉, 〈한국사〉, 〈독서와토론〉이 대학생으로서 갖 춰야 할 작문과 독해, 외국아 국사, 독서와 토 론 능력 등의 성취 를 목표로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일부 공통교양이 학생들에게 필요성을 인정받지만 그렇지 못 한 경우도 있 다 〈회계와 사회〉는 ‘중앙대 학생이라면 회계능력 을 갖춰야 한다’는 재단의 가치관 아래 형성된 과목이다. 생활에 서의 회계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비판여론도 많다. 학과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강제되는 것은 물론, 수 강의 필요성도 명확하지 않다 .〈회계와 사회〉개설 당시 교양학 부는 “연세대는 채플, 성균관대는 유교가 특성화된 것처럼 중앙 대의 경우 회계과목을 통해 실용적인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고 밝힌 바 있다. 실용적 특성의 지향이라는 전제는 제쳐놓더라 도 과연 회계과목이 교양학부에서 밝힌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학생들이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강의들에도 문제는 있다. 〈논리와 사고〉는 논리적 사고의 함양을 지향하지만 강의가 제 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많고 만족도도 낮다 . 〈글쓰기〉와 〈English〉는 강의의 목표를 실현하기에는 수강인원이 지 나치게 많다. 글쓰기 능력 향상을 위해서는 첨삭이 필수적인데 교사 한 명이 4~50명의 학생을 첨삭 지도해준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영어 수업도 마찬가지다. 소규모 수업으로도 어려운 회화 를 20명이 넘는 학생이 수강하는 수업을 통해 향상시킨다는 것 은 무리에 가깝다.

  입학하자마자 시간표가 이미 결정되어 나온다는 것도 학생 들의 훙미를 감소시킨다. 학생 본인의 의사나 선택의 여지가 전 혀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듣고 싶던 과목을 미루 고 수강해야 하는 ‘억지로 듣는 과목’이 되어버리니 만족도가 떨 어질 수밖에 없다. 입학 첫해에 공통교양을 들어야 하는 학생들 중앙 은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기도 전에 먼저 강의를 수강하게 된 문화 고28 다 수강한 후에는 공통교양을 다시 듣지 않기 때문에 피드백의 동기도 약해진다. 현재 공통교양과정 자체가 학생들의 의견을 반 영하는데 부적합한 체계를 가진 것이다.

 

작아지는 교양

  핵심교양과 선택교양의 상황도 낫지 않다. 교양수업 불만족 이유에서 약 절반을 차지하는 이유인 ‘별로 들을만한 과목이 없 어서’는 핵심교양과 선택교양의 주요한 문제다. 교양과목 확충 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문제 제기 되어왔지만 크게 개선되지 않 았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악화되었다. 2010년 12월 대학본부에서는 교양과정개편을 이유로 교양과목을 통폐합했다. 유사과 목 통폐합, ‘전공기초’ 혹은 ‘전공’의 성격을 띠는 교양강의의 폐 강을 목표로 했다. •방만하고 학생보다는 교수의 취향이 반영된 과목들이 많아’ 이를 정리하겠다고 했다. 구분이 모호한 유사과 목과 들쭉날쭉 개설되었던 강의들을 정리하겠다는 의도는 일 면 합당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교양강의는 다양성을 크게 상실했다. 특 정한 주제에 관해 세분화되어 존재했던 과목들이 단순히 대주제 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통폐합됐다. 〈문화와 젠더〉, 〈섹슈얼리티와 문화〉,〈여성과 노동〉,〈여성과 법〉,〈독일여성문화와 페미니즘〉 이 〈젠더와 문학〉으로 통폐합된 것이나 프랑스, 러시아 독일, 일본,중국 등 각 국가의 문학, 예술, 사회 등 다양한 측면을 다루는 강의들이 국가단위로 통폐합된 것이 그렇다. 〈라틴아메리카 역사 와 문화〉, 〈수화의 이해〉와 같은 강의는 유사성이 거의 없는〈프랑스문학과 예술〉,〈생명과학의 이해〉로 통폐합됐다. 통폐합 과정을 보면 대학본부의 목적이 불필요한 강의를 줄이는 것이었는지, 강의 자체를 줄이려는 것이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이후에도 몇 차례 개편이 계속됐다. 2012년 대학본부는 등 록금 2.3% 인하에 맞춰 교양과목을 축소했다. 2011년 개설된 227과목 중 약 25%인 57과목이 감축된 170과목이 개설됐다. 감축은 지속적으로 이뤄졌고, 2014년 2학기에는 147과목으로 축소됐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교양강의는 이 일련의 개편 과 정의 결과물이다. 이제 교양강의 목록은 형식적이고 추상적인 강 의로 채워졌다 전공 전공기초와는 다른 성격의 강의를 만들겠다는 원칙은 교양과목을 여러 전공 영역을 포함하되, 그 수준을 낮추는 의 이해’식 강의들로 만들어버렸다. 이러한 원칙은 유사 과목 통폐합의 원칙과 함께 교양의 다양성과 깊이를 악화시켰다.

  〈중앙문화〉와의 인터뷰에서 황장선 교양학부 부학장은 “핵 심교양은 그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구성 과목들이 다양한 역량을 계발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핵심적 교과목들인지의 여 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교양의 수를 무조건 확 대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교양과목이 다양한 역량 을 개발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일정 정도의 다 양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현재 중앙대학교의 교양과목은 기본적 인 다양성 자체가 부족한 상황이다. 교양과정 자체에 다양성이 부족한데 이러한 교양과정에서 학생들이 어떻게 다양한 역량을 개발할 수 있을까. 전공 및 전공기초의 성격을 띠는 과목을 개설하지 않는 원칙 도 여전히 고수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전공 및 전공기초의 성격 에 해당하지 않는 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교양학부가 그 모순 을 버리지 못한다면 의 이해’식의 형식적인 강의는 계속 늘어 날 것이다. 이러한 강의들은 교양학부에서 목표하는 다양한 역 량을 개발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핵심적 교과목이 될 수 없다.

끝나지 않은 교양 개편

  11월 9일 〈중대신문〉에 2015년 교양교육과정 개편에 관한 기 사가 보도됐다 2012년 개편 이후 2년간 대규모 조정 없이 운영 되던 교양과정이 또다시 개편되는 것이다. 교양과목 세부영역은 기존 6개 영역에서 유네스코 4대 교육목표에 따른 ‘토대기반’, ‘ 존재구축’, ‘소통융합’, ‘실천’ 4개 영역으로 변경된다 공통교양 에도 변화가 있다 기존에 있었던〈논리와 사고〉, 〈독서와 토론〉 은 〈창의와 소통〉으로 통합된다 연극과 뮤지컬 실습 등을 중심 으로 하 는 〈ACT〉가 신설된다〈E nglishl〉은 〈Com m unication in English〉로, 〈English2>는 〈English Skills for Career Developm ent〉로 대체된다〈한국사〉와 〈ACT〉는 2학년이, 〈English Skills for Career Developm ent〉는 3학년이 수강하는 것을 권 장하는 등 공통교양을 여러 학년에 걸쳐 수강하는 방식으로 변 할 것으로 보인다.

  공통으로 교양 변동도 눈에 띄지만,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교양과목 세부영역 개편이다. 교양학부대학 오창은 교수는 ‘학 과, 단과대 중심으로 묶여 있던 교양이 가치 중심으로 재편되었 다. 전 학년에 걸쳐서 교양을 습득한다는 측면에서도 으ᅵ미가 있 중앙 다 기존 방식보다 진일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 문화 표5 다 교양학부 황장선 부학장은 기존의 ‘교과목들을 생산자 중심 이 아닌 수용자 중심으로 전환한 것’이라고 밝혔다.

  교양교육과정을 가치를 중점으로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과 정으로 구상하는 것은 보다 진보한 형태의 변화가 될 수 있다 중 요한 것은 어떤 가치를 중점으로 교양과정이 구성되는가다. 가치는 추상적이기 때문에 같은 가치 개념이라고 하더라도 누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교양 과정의 핵심이 되는 가치의 결정과 해석은 오로지 학교에 의해서 만 독점됐다. 유네스코 4대 교육목표가 왜 중앙대학교 교양교육 과정의 핵심 가치가 되어야 하는지 학생들은 알 수 없다. 짧은 시 간에 이뤄진 교양과정개편은 학생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장기적 인 전망을 가지고 충분히 연구되고 논의된 것인지 의심케 한다.

  가치의 해석도 학교가 원하는 방식대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교양학부 황장선 부학장은 인터뷰에서 ‘〈회계와사회〉 를 교양교육의 주요 축인 실천 역량을 강화하는 데에 필요한 교과목’이라고 했다. 학교에서 실천이라는 가치를 어떻게 해 석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학교의 해석 방식은 다 른 가치영역에 대해서도 유사하게 적용될 것이다. 교양과정 의 가치 결정과 해석에 학생의 자리는 없다. 이번 교양교육과정 개편은 이전 개편들과 마찬가지로 민주적 인 논의의 노력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교양학부대학에서는 ‘비교적 제한된 시간 안에도 설문지 조사를 했으며 그 내용의 상당 부분이 개편안에 반영되었다’고 주장했다 9월 27일 학교는 교양 교육과정 개편을 소개하고, 교양학부대학 교수들로부터 평가받는 교양교육과정 개편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는 교양학부대학 교수로 참여가 한정되어 학생들은 참여할 방법조차 없었다. 10 월 17일 교양심의위원회가 개최되기 전에 총학생회에서 학생들 에게 교양과목 만족도에 대해 설문조사했다 하지만 설문조사는 짧은 기간과 부족한 홍보로 1,337명밖에 참여하지 못했고, 질문 도 제한적이었다. 이미 초안은 결정되었고, 학생들은 그 전제 위 에서 설문조사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설문조사가 절차 적 민주성을 얼마나 담보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설문조사는 최소한의 절차다 설문조사만으로는 학생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할 수 없다 설문조사 결과가 개편안에 어떻 게 반영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개편과정에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거나, 적어도 개편과정이 구성된 후 학생들이 이를 검토하고 평가할 수 있는 창구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 교양과정개편에는 설문조사 외에는 아무런 방법도 존재하 지 않는다 교양과정이 가치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은 분명 긍 정적인 변화다. 하지만 학생과 함께하지 않는 일방적인 변화가 학 생들에게 얼마나 공감을 얻고,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마스터키 총학생회가 교육환경개선운동에서 요구한 '교양과 목 확대와 다양화’에 대해 대학본부는 “교양운영의 틀을 바꾸어 과목 수를 확대한다", ''ACE 사업이 선정될 시 교양과목 수를 대 폭 확대한다”고 답했다. 교양과정개편의 뼈대는 결정되었지만 속 을 채우는 것은 이제부터다. 학교가 약속한 사항들을 제대로 이 행하는지 계속해서 감시하고, 비판해야 한다 또한, 이번 교양과 정개편이 이전 개편들처럼 학생들의 요구와 만족과는 동떨어진 실패한 개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대학본부에서도 개편과정에 서 학생과 함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듣는 교양은 우리를 듣지 않는다

  교양과정의 문제들, 그리고 그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주요한 이유는 교양 전반에 학생이 참여해서 의견을 제시할 방법이 거 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교양과정은 교양학부대학의 교 양심의위원회, 교양운영위원회에 의해 결정된다. 교양과목을 신 설하거나 개편하는 과정에 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학생들의 의견을 받는 과정이라고는 설문조사뿐이다. 조연 주(광:a홍보 1)씨는 '학교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노 력하지 않는 것 같다. 강의평가는 있지만, 강의 구성 자체에 대한 평가도 없다ᄌ고말한다 많은 학생들이 학기마다 있는 강의 평가가 실질적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강의 평가도 해당 강의에 대한 평가이고, 강의 구성방식에 대해 서는 의견을 제시할 방법도 없다. 하지만 학생회와 같은 집단적 인 차원에서의 문제 제기는 잘 이뤄지지 않는다 A(사회복지 2) 씨는 ᄌ학생회 차원에서 설문조사를 해도 개선되는 걸 잘 못 느 끼겠다7고 이야기한다.

  2014년 마스터키 총학생회는 교육환경개선운동의 요구 중 하나로 ᅳ교양운영위원회 학생대표자 참여 보장ᅳ을 요구했다. 학교 측에서는 이에 대해 '‘교양과목심의위원회 개회 시 학생대표 자가 배석하여 교양과목에 관한 학생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이를 적극 반영한다"고 답했다. 학생대표자가 교양과목심의위원 회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은 긍정적인 변화다. 하지만 실질적인 권한 없이 단순히 회의에 참여하고,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것은 반쪽짜리 참여일 수밖에 없다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이를 적극 반영한다’는 것은 추상적인 약속이다 대학본부에서 원하는 방향은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그렇지 않은 방향은 배제할 수도 있 다 그럴 때 학생대표자는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학생이 참여한다고 반드시 교양강의가 좋은 방향으로 개선 된다고 할 수는 없다 단순히 학생의 참여를 보장해달라는 요구 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어떻게 참여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라는 전략이 없는 참여는 변화를 만들 수 없 다. 학생사회의 입장에서 교양강의가 어떤 지향성을 가져야 하 는지, 무엇이 좋은 교양인지 끊임없는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교양과목이 개설, 개편되고 피드백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요구와 입장을 실질적으로 관철할 수 있는 다양한 제 도와 장치를 마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방법은 있다

  여기서 우리가 참고해볼 수 있는 학생 참여의 모델이 경희대 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생위원회(이하 대학생위원회)다. 대 학생 위원회는 쉽게 이야기하면 ‘후마니타스 칼리지’로 일컬어지 는 교양대학의 ‘학생회’라고 할 수 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교 양강의 운영 전반에 대한 학생의 참여 보장을 위해 활동하는 제 도적으로 인정된 학생 기구다. 대학생위원회는 대학본부가 구성 한 교양과목을 검토하고, 배움학점제 과목을 직접 관리한다 배움학점제 과목은 대학생위원회에서 학생의 요구를 모아 배움학 점제운영위원회를 통해 학생과 교직원의 자문과 협의 과정을 거 쳐 다양한 방식으로 선정한다. 이렇게 선정된 과목은 노동 인권, 여성. 통일, 환경 등 넓은 스펙트럼의 주제들을 가진다. 경희대학교의 인문학’ 지향은 대학의 기조이기도 하지만 대학교육의본 질과 지향에 대한 학생들의 끊임없는 문제 제기와 참여가 있었 기에 가능했다.

  대학생위원회 제도는 정착된 지 오래되지 않아 개선되어야 할 사항들도 있지만, 교양과목 개설과 수정에 학생들이 직접 참 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중앙대학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앙대학교에도 '다빈치 아카데미’라는 제 도가 존재한다. 다빈치 아카데미의 교양과정은 매 학기 소규모 단위 학생들의 신청을 받아 개설된다 배움학점제처럼 학생들이 참여해서 원하는 강의를 수강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다. 학교 홈페이지 공지사항 외 에는 홍보가 없어 제도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학생이 많 다 졸업까지 2과목만 수강할 수 있다는 것, 각종 고시반 등에 속해있는 학생은 참여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수료자 학점이 계절학기 자유선택 1학점으로 인정되는 것도 학생들의 참여 동 기를 약화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도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는 대 학생위원회라는 학생의 의견을 수렴하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는 것에 반해 다빈치 아카데미는 소규모 그 룹의 개별신청으로만 이뤄져 있다는 한계를 가진다. 다빈치 아카데미를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인 학생 기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전체 학생들의 입장을 모으고, 이를 공식적으로 전달할 방법이 없다.

  교양학부대학에서 다빈치 아카데미가 확대되면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배움학점제처럼 학생들의 참여로 강의가 개설되는 제 도가 구상될 수 있다. 단번에 교양강의 전반에 학생이 참여하기 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다빈치 아카데미와 같은 영역에서 제도적 학생기구가 형성되면 시간이 흐르면서 학생기구 내부에 전문성과 숙련도, 학생의 요구와 의견이 축적된다 이를 바탕으 로 학생들은 교양심의위원회나 운영위원회에 단순히 참여만 하 는 것만이 아니라 축적되어온 학생들의 요구와 의견, 교양에 대 한 지향성에 대해 함께 논의할 수 있다. 교양학부대학 황장선 부 학장은 다빈치 아카데미 확대에 대한 질문에 “다빈치 아카데미 의 확대 실시에 대해서는 이미 확대 방안에 대해서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는 중인데 가장 관건은 역시 학생들의 참여 의지다.”라 1우리1의교양을 위하여 고 답했다. 교양학부대학에서 검토하고 있는 확대방안이 학생과 함께 하는 방향이 되기 위해서는 총학생회를 비롯한 다양한 학 생단위의 적극적인 참여와 의견 제시가 필요하다.

  학생들의 요구를 수렴해 건의되는 강좌들을 대학본부-교수학생이 협의체를 구성해서 논의한 다음 시범과목으로 개설하고, 수강생의 평가와 협의체의 논의를 통해 선택교양으로 선정하고, 이것이 핵심교양으로까지 자리 잡을 수 있는 교양과정의 프로 세스를 구축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학생이 교양과정에 참여하 면 단순히 학생에게 만족적이고 편리한 강의만 만들어질 것이라 고 우려한다. 하지만 경희대학교 배움학점제의 사례는 교양과정 에 학생이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교양과목의 질을 낮추 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냈다. 학생들이 전권을 갖고 강의 를 구성하고, 교.강사까지 섭외했지만〈자본주의 똑바로 알기〉, 〈인권-꿈과 현실 사•이에서〉와 같이 주제의 스펙트럼이 넓을 뿐 만 아니라 깊이 있는 강의를 만들어냈다. 매년 강의만족도는 만 점에 가까울 정도로 높다. 학생 참여에 회의적인 시선을 내보이 며 반대하기보다는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과 정에서 교양과정이 더욱 풍부해지고 학생의 공감과 만족을 얻 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교양을 위하여

대학본부에서 교양강의 문제 개선을 위해 학생 참여를 보장하 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학생사회의 역할은 더 중요하다. 우리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결정됐지만, 졸업을 위해 들어야만 하는 공통 교양. 지속적으로 감축되는 강의 수. 다양성과 깊이가 떨어지는 핵 심교양. 학기마다 적은 강의를 두고 벌어지는 수강전쟁. 변화를 느 낄 수 없는 강의평가. 교양과정에 대한 학생 참여의 배제. 이 문제 들은 강의를 들으며 푸념하거나, 학기마다 돌아오는 강의평가를 통 해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결국 우리가 듣는 강의의 문제다. 학생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목소리를 내야만 지금의 교 양강의는 우리’의 교양강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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