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자산하
삐걱대기 시작했다.
2015년 대학본부가 내건 모집인원 전면 광역화의 실패가 시작이었다. “학부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이라 불린 광역모 집안은 단과대학별 광역모집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단과 대학”은 “계열”로, “학과”는 “전공”이라는 이름으로 바꾼다. 그리고 선택받지 못하는 전공은 융·복합시킨다는 내용이 요체였다. 대학본부는 광역화의 근거로 교육부 지침을 들었다. 교육부가 2014년부터 시행한 대학구조개혁 추진계획은 전국 대학을 5등급으로 구분하고, 등급별 차등 인원감축을 강제한다. 중앙대 역시 교육부 평가를 비껴나갈 수 없기에 탄력적인 학부 구조를 만들어 평가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 는 게 본부 입장이었다.
모집인원 광역화는 2013년 비교민속·아동복지·가족복 지·청소년전공 폐지 이후 2년만의 구조조정 시도였다. 중 앙대 구조조정을 도맡아온 경영 컨설팅 업체 엑센츄어의 김 재훈 이사가 2014년 1월 미래전략실 실장으로 영입되고 처 음으로 내놓은 작품이기도 했다. 두산이 재단을 인수한 이후 지금까지 벌인 불도저식 구조조정과는 조금 달랐다. 교육부 지시라는 보다 명확한 근거를 제시했고, 당장 폐과시키는 게 아니라는 변명도 가능했다. 그러나 광역모집, 곧 학부제는 한국 대학 역사에서 이미 실패한 전례가 뚜렷했다. 특정 전 공으로 학생들이 편중되는 문제는 학부제를 도입한 어느 대학에서나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리고 본부는 선택율과 융· 복합을 명목을 통한 구조조정 의도를 명백히 드러냈다. 반대 물결이 일고 비리 문제가 불거지자 본부는 처음으로 물러섰다. “학사구조 개편 대표자 회의(대표자회의)”가 결성돼 정시 인원에 한정한 광역모집으로 타협안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대표자회의 출범부터 교수대표로 참여한 모 교수는 2015년 11월 인터뷰에서 “광역 모집 학생을 관리하는 주체가 없는 상태이고, 프라임사업에 논의가 집중되어 있다. 본부는 프라임사업만을 위해서 논의 한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타협안이 마련됐다지만 정시 광역모집 학생들이 겪을 문제점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바로 몇 개월 뒤면 16학번 신입생이 입학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본부는 광역모집 학생을 맞을 준비를 하지 않았다. 프라임사업에 몰두할 뿐이었다.
눈 가리고 달린 결과는
프라임사업 역시 교육부 발 구조조정 요구였다. 이번 교육부 지시는 보다 노골적이었다. 황우여 당시 교육부장관은 “대학교육과 산업 수요가 맞지 않은 점이 문제다. (중략) 이 공계 인력은 30만명이 더 필요하다”[4]며 프라임사업의 추진 배경을 밝혔다. 결국 프라임사업은 지원금을 줄 테니 나머지 정원을 줄여 이공계열 정원을 늘리라는 주문이었다. 한 해 150억씩 총 3년간 450억에 달하는 지원금은 대학 입장에서 그냥 지나치기 힘든 액수였다. 중앙대도 다르지 않았다.
본부는 박용성 전 이사장 주도 하에 프라임사업을 준비했다. <머니투데이>가 공개한 메일에 따르면 2015년 3월부터 박 전 이사장은 구체적인 정원이동 방안까지 언급하며 사업 계획을 총지휘했다. 교육부가 구체적인 사업 계획안을 발표 하기도 전부터 준비를 시작한 셈이다. 그러나 본부가 오랜 기간 준비한 프라임사업은 끝내 좌절됐다. 학내 구성원과의 합의 미비나 전 이사장의 비리로 인한 감점이 탈락 요인으로 먼저 거론됐다. 그러나 백성기 프라임사업 평가위원장은 “중앙대는 감점이 없었어도 점수가 저조했었다”라고 사업 탈락 이유를 설명했다. 당장 입학할 광역모집 학생들의 관 리방안을 제쳐두고 몰두한 1년의 결과였다.
3월 18일 본부는 서울캠퍼스 프라임사업 설명회에서 프라 임사업 지원에 따른 정원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안에는 서울캠 209명과 안성캠 323명을 합해 총 532명의 정원이동 이 예고되어 있었다. 서울캠에서는 ▲경경제대 114명 ▲인문대 33명 ▲사회 과학대 50명 ▲사범대 10명 ▲예술대(공연상창작학부) 2 명을 신설 ‘창의공과대학’으로 이전할 계획이었다. 창의공과대 학은 2년 전 분리된 공과대학과 창의ICT공과대학을 다시 단 일화한 공과대학으로, '플랜트 엔지니어링 공학과', '로봇 공학과', '데이터공학과', 'EHS(사회안전망 확보)'전공이 신 설될 예정이었다. 한편 안성캠에서는 ▲예술대 205명 ▲생명공학대 104명 ▲체육대 14명을 신설 '휴먼문화기술대학'과 ‘바이오식품공학 대학’으로 이전시킬 계획이었다. 휴먼문화기술대학에는 '예술 공학', '미디어공학', '스마트 IoT' 전공이 신설될 예정이었다. |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한 프라임사업 설명회는 계획안 제 출 마감일이 2주밖에 남지 않은 3월 중순 이후에야 열렸다. 대규모 정원조정이 예고된 상황임에도 설명회에서는 단과대 학별로 줄어들 정원 수와, 새로 만들어질 전공의 이름 정도만 공개되었다. 3월 18일 서울캠 프라임사업 설명회에서 김병 기 기획처장은 프라임사업 계획안 제출이 끝난 후 자세한 계 획안이 공개될 것이라고 발표했다.그러나 기획처장의 공언과 는 달리 계획안은 열람을 요청한 일부 대표자들에게만 제한 적으로 공개되었다. |
프라임사업을 계획하며 본부는 “광역화와 프라임사업은 별개[5]”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둘 사이의 연계성을 부정 하기엔 미심쩍은 부분이 적지 않다. 광역 모집안이 발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육부가 프라임사업 시행을 확정했다. 광역 모집안은 “정부 중장기 인력수급 계획에 따른 공학계열 인력 수요 증가 예상”, “미래유망 학문단위 신설”, “학생 중 심” 등 교육부의 프라입사업 시행안에 담긴 것과 매우 유사 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프라임사업 주요 평가기준 중 하나가 “(프라임사업 계획안과) 학교의 중장기 발전계획과의 부 합성”이었음을 미루어 봤을 때, 광역모집안이 프라임사업을 염두에 두고 계획되었다고 볼 가능성은 충분하다. 프라임사업 계획안에 신설 단과대학을 전면 광역모집하겠다는 계획이 실렸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은 보다 뚜렷해진다.
본부는 4월 말이 되어서야 16학번 광역 입학생들 앞에 나타났다. 광역모집으로 입학한 학생들은 자신의 전공이 어떻 게 결정될지조차 제대로 듣지 못한 채,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학교를 다녀야 했다. 김창일 교무처장은 사회과학대와 총학생회가 주최한 토론회 등[6]에서 “프라임사 업에 전교의 행정력이 동원되다보니 여러분들의 아픔을 빨리 해결하지 못해 책임자로서 죄송하다”며 연거푸 사과했다. 강태중 교학부총장도 5월 17일에 열린 학사관리방안 설 명회에 참석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김창일 교무처장과 강태중 교학부총장은 올해 2월 임명되었다. 학사 운영을 도맡아야 할 직책을 가진 이들이 광역모집 학생 대상 학사관리 방안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것은 분명 문제다. 하지만 임명 시기를 미루어본다면 책임의 원천적인 소지가 이들에게 있다고 보긴 힘들다.
조삼모사?
대신 책임져야 할 다른 이들은 다시 착실하게 그들의 일 을 벌이고 있다. 프라임사업 수주 실패가 확정된 날 발표된 입장문은 “학교의 발전을 위해 협조와 성원을 아끼지 않으신 교수와 학생, 교직원, 동문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로 시작했다. 그리고 “프라임사업과 연계하여 진행하려고 했던 계획은 이러한 원칙과 방향에서 구성원들과 논의하여 실행의 범위와 시기를 결정한 후 실행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2주가 채 지나지 않아 교무위원회 의결사항이 공지됐다. 먼저 광역모집으로 입학한 16학번 학생들의 전공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단과대학별 기준을 존중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표자회의에서 정한 본전공 진입 상한비율 원칙[7]이 있지만, 단과대학에서 다른 기준을 만들 경우 이를 허가하겠다는 이야기다. 언뜻 해결책으로 보이기도 한다. 5월 17일 설명회에서 이 안은 전공 선택을 보장해야 한다는 총학과 단대 학장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결코 본질적인 문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본부는 단대별 기준을 존중하고 또 이를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원하겠다는 말만 했을 뿐, 어떻게 무엇을 지원할 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단대별 기준에 따라 모든 학생이 원하는 전공에 배치된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인원 쏠림과 그에 따른 문제들은 당장 얼마 후면 닥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전체적인 해결을 방기한 채 책임을 단과대학에 떠맡긴 셈이나 다름없다. 이번 조치는 광역모집 입학생들에게 쌓 인 반감을 풀기 위한 임시적인 방편에 그칠 뿐이다. 교무위원회 의결사항에는 17년도 입시에서 공학계열(공 과대학, 창의ICT공과대학) 입학정원의 약 20%을 광역모집 하고, 나머지 단과대학에서는 광역모집을 중단한다는 내용 도 담겼다. 17년도 광역모집 중단 의결 발표에 사회과학대 학 회장단은 계획했던 광역모집 반대 행진시위을 취소했다. 그러나 광역모집은 끝나지 않았다. 발표된 의결사항의 마지 막엔 18년도부터 광역모집 재개가 실려 있었다.
“2016학년도~2017학년도 2개년에 걸쳐 제도적 보완을 통해 2018학년도부터는 학생의 전공탐색 기회를 확대 하는 모집단위 광역화 방안 실시를 결의하였습니다.”[8]
학부제의 재림: 2018 광역모집 재개
전공탐색 기회 확대. 작년 광역모집안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와 같은 이야기다. 2015년 광역모집 추진의 결과물은 16 학번이 겪은바 그대로다. 전공 진입 기준과 가전공 선발 기 준 등 기초적인 수준에서조차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다. 전공탐색의 기회는커녕 제대로 된 기준도 없이 학점 경쟁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본부는 프라임사업에 몰두하느라 관리 방안 마련이 미흡했다며 사과했다. 그리곤 “2018학년도부 터는 2016학년도 광역모집제도를 기준 삼아 전공탐색 기회 의 확대를 위한 입학전형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5년 광역모집안을 처음 내걸 때 본부는 실패한 학부 제의 역사를 의식한 기색이 역력했다. “레인보우 시스템”, “Liberal Art Education”, “Academic Adivisory System” 등의 도입을 강조하며 학부제와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단과대학(계열)별로 선발하고 일정 기간이 흐른 다음 전 공을 확정한다는 점에서 모집인원 광역화는 학부제와 본질 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2018년 광역모집 재개를 예고한 발표문 어디에도 학부제는 언급되지 않았다. 대신 “전공탐 색 기회 확대”라는 말을 지겹게 반복했다. 그리고 2018년까 지 광역모집에 필요한 제도를 마련하겠다는 당찬 계획이 이 어졌다. 단과대학별로 교육과정을 표준화하고, 가전공 대신 모집전형에 관계없는 ‘반’을 편성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전공탐색 기회 확대를 위한 설명회, 가이드북, 교육과정 이 꾸려질 계획이다. 하지만 어떤 제도를 마련하든 “광역모집=학부제”라는 등식은 바뀌지 않는다.
학부제는 문민정부 시절 고등교육법 시행령을 통해 전면 도 입되었다. 전공 선택의 기회를 폭넓게 보장한다는 취지로 학부 제를 강제했다. 하지만 전공 쏠림과 전공 전문성 결여 등의 문 제가 심각하게 두드러졌고, 2003년과 2009년 규정 개정으로 학부제 의무화 조항이 폐지되었다. 이후 대부분의 대학에서 학 부제는 폐지되거나 일부만 남겨놓은 상태다. |
광역모집과 정원이동, 결국엔 구조조정
한 차례 물렀고, 발생할 문제가 뚜렷함에도 본부는 광역 모집-학부제-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본부의 집착은 지금껏 중앙대에서 벌어진 구조조정의 맥락을 통해 서만 이해할 수 있다. 프라임사업 선정결과가 발표되기 전 본부는 “(프라임사업을) 수주하지 않게 된다면 원점에서 논 의를 시작[9]”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프라임사업 탈락 후 얼 마 지나지 않아 입장을 바꿨다. “프라임사업에서 추진하려 던 기본골격은 그대로 가져갈 것”이며, “정원이동은 프라임 사업에서 계획한 수준을 기본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것”[10]이 라는 말과 함께였다. 프라임사업을 진행하며 가장 문제가 됐던 지점은 역시 정 원 감축이었다. 수차례 일방적인 폐과로 구조조정이 자행됐 던 중앙대다. 정원 감축은 구조조정의 악몽을 떠오르게 만들 기에 충분하다. 한편으론 본부 또한 지금껏 벌인 구조조정마 다 일었던 반대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할 리 없다. 폐과는 언 뜻 편리하기도 했으나 만만찮은 각오가 필요했다. 이 지점 에서 광역모집은 묘안으로 등장한다. 이제 구조조정이 아니라 정원이동이다. 약간의 인원이 빠진다고 해도 당장 “우리” 학과는 사라지지 않는다. 학과에서 기초적인 유대관계를 맺는 1학년 시절이 사라지면 “우리” 학과도 점차 옅어진다. 옅어진 만큼 정원이동은 손쉬워진다. 그 이상도 상상하지 못할 법은 없다. 광역모집안은 지난 구조조정을 통해 만들어낸 가장 깔끔한 구조조정인 방식인 셈이다. 광역모집이 확대된 이 후엔, 모든 학과가 상시적인 구조조정 대상이다.
“중앙대는 학사운영·교원연구·산학협력 등 모든 분야 에서 혁신을 꾸준히 추진해온 대학구조개혁의 모범”
2014년 당시 교육부 장관은 중앙대를 찾아와 “모범대학” 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1년이 채 지나지 않 아 “비리 대학”이 되었다. 모범과 비리는 따로 태어나지 않았다. 이번학기 광역모집으로 입학한 16학번이 겪은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름 빼고 다 바꿀 것”이라고 공언한 박용성 전 이사장의 그림자는 여전히 드리워져 있다. 단지 숨을 고르고 있을 뿐이다.
[1] 산업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대학. 2015년 1월 교육부가 처음 사업을 추진할 때 명칭은 “산업수요 중심 정원조정 선도대학”이었으나, 구조조정 논란이 일자 현재와 같은 명칭으로 변경했다
[2] 총장단, “프라임 사업 선정 결과에 따른 총장단 입장”, 중앙인 청룡광장, 2016.05.03.
[3] 2013년 비교민속전공, 아동복지전공, 가족복지전공, 청소년전공 폐과 당시 인문사회계열 부총장의 발언. 조동욱, 인문사회계열 부총장 “후퇴는 없다. 구조조정 이루어질 것”, 중대신문, 2013.04.13.
[4] 이선정, "대학, 산업수요 맞춰 인력 양성해야", 국제신문, 2015.03.26.
[5] 3월 18일 서울캠퍼스 프라임사업 설명회 김병기 기획처장
[6] 4월 28일 사회과학대학 학우 의견 수렴회, 4월 29일 총학생회 주최 16학번 대상 광역화 1차 대토론회, 5월 17일 광역화 모집 학생에 대한 학사관리방안 설명회 (총학생회 주최 2 차 대토론회)
[7] 100명 미만 110%, 100명 이상 105%
[8] 교무위원 일동, “2016학년도 제8차 교무위원회 의결사항 안내”, 중앙인 청룡광장, 2016.05.17.
[9] 3월 18일 서울캠퍼스 프라임사업 설명회 김병기 기획처장
[10] 김석철, “공학계열의 확대와 광역화는 계속된다”, 중대신문, 2016.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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