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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보기/2017 봄여름, 72호 <변한 것 변하지 않은 것>

사표는 사표가 아니다

by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 2020. 4. 11.

72호, 2017년 봄여름

수습위원 신동우

심상정의 ‘약’진

 이변은 없었다. 2017년 5월 9일, 전직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한 조기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었다.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4월 첫 주에 각 당의 대선 후보가 결정된 이후부터 꾸준하게 40%가량의 지지율을 유지한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된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다만 놀랍지 않은 선거에서 놀랄만한 점은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대선 막판에 11%를 웃도는 지지율[각주:1]을 기록한 일이다. 헌재 탄핵이 인용되고 주요 대선 후보가 확정되었을 때도 심 후보의 지지율은 가시권에 들지 못했다. 심 후보에 투표한 사람들 중 대부분 역시 그가 정말로 당선될 것이라 판단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심상정을 뽑은 것일까?

지지율의 변화

 분명히 높지는 않았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될 때만 해도 심상정 후보의 지지율은 3% 언저리였다. 그러나 다섯 번의 대선 후보 토론회를 거치면서 심 후보의 지지율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지지율은 8%가량, 특히 5월 2일 EBS와 한국리서치 여론조사에 따르면 11.4%로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를 오차범위 내로 추격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약진 뒤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던 것으로 풀이된다.

 첫째로 TV토론이다. 심상정 후보는 5차례 열린 TV토론의 가장 큰 수혜자다. 개인 능력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지지층의 범위가 명확해 고려해야 할 사항이 적고, 낮은 지지율로 다른 후보의 견제를 받지 않는 것도 잘 이용했다.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다양한 지지층을 고려하여 모호한 태도를 보일 때 심상정 후보의 지지율은 상승했다.

 둘째로 기존 정치인들과의 차이점이다. 심 후보 역시 기성 정치인이지만 거대양당체제로 지속되었던 한국의 정치지형 하에서 진보 정당의 위원인 심 후보는 유권자들에게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왔다. 또한 참여정부에 대한 그의 비판은 기성정치와 차별되는 심 후보만의 정치를 기대케 했다.

 셋째로 새누리-더민주의 양당 구조가 국민의당의 등장, 보수정당의 분열 등에 의해 다자대결로 재편되었다. 이전의 거대정당 간의 대결에서 군소정당의 후보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면, 이번 대선에서는 5명의 주요정당 후보가 지지율을 나누어 가지면서 정의당을 비롯한 군소정당의 후보들이 유의미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심상정은 다음에 뽑아도 된다?

 “정의당에 대한 지지는 다음 선거에 하셔도 괜찮다. 이번에는 정권 교체에 집중해주는 게 시대정신에 맞지 않나 호소드린다. 문재인 후보에게 절대적 지지를 보내달라”.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의 발언이다. 이에 심상정 후보는 “왜 작은 가게 손님들을 못 가게 막는 것인가. 대표적인 갑질이다.”라고 응수했다. 이는 최근 불거진 ‘사표 논란’을 대변한다. 전자의 핵심은 ‘어차피 뽑아도 당선되지 못할 후보보다는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를 밀어주자. 여당의 재집권만은 막자’다. 반면 후자는 ‘심 후보의 지지율 상승과 문 후보의 지지율은 관계없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후보를 지지할 권리가 있다’로 요약가능하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제 득표율은 지지율과 달랐다. 여론조사에서 11%를 기록하며 선거비용 전액 보전 가능한 15%까지 바라보던 심 후보는 9일 치러진 대선에서 6.2%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지지율과 득표율이 다른 원인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홍준표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진보 유권자의 표가 문재인 후보 쪽으로 쏠렸을 수 있다. 우상호 의원의 말처럼, 확실한 정권교체를 위해 심상정 후보를 지지하던 사람도 투표장에선 문재인 후보에게 표를 주었다는 뜻이다.

 다음으로 지지율은 득표율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득표는 지지에 기반을 두지만, 모든 지지가 득표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심 후보의 성 소수자, 여성 문제 등에 대한 명확한 입장과 적폐청산, 노동자 권리 우선에 대한 주장은 진보성향의 유권자들을 사로잡는 데 크게 일조했다. 심 후보의 명확하고 일관된 스탠스는 많은 유권자들에게 호감을 심어주었고 이는 지지율 상승으로 나타났지만, 실제 투표를 할 때는 군소정당 집권에 따른 한계나 강한 변혁적 태도 등에 부담을 느꼈을 수 있다. 다르게 말해서, 응원하지만 여러 현실적 이유로 아직 대통령이 되기엔 부적절하다고 느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유권자의 6.2%는 심상정 후보를 뽑았다. ‘사표방지심리’[각주:2]와 위의 여러 이유에 의하면, 유권자는 당선 가능성이 없는 후보를 무작정 뽑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저마다의 기준을 세워 후보를 평가한다. 어떤 기준이 우선이 될지는 제각기 다르다. 그것은 경제가 될 수도 있고, 안보가 될 수도 있고, 혹은 청렴이 될 수도 있다.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유권자의 6.2%는 어떠한 이유에서 심 후보를 뽑았을까? 청년 사회상속제 등을 비롯한 ‘노동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그의 정책들은 기득권의 이익이 아닌, 일반 시민의 입장을 대변한다. 또한 형법상의 낙태죄 폐지와 차별금지법 제정, 살찐 고양이법[각주:3]의 제정 등을 말한 심 후보는 ‘평등’을 갈망하던 유권자들의 표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심상정 후보에 대한 지지는 비단 유권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심 후보는 YMCA 주관의 청소년 대선 모의투표[각주:4]에서 문재인 후보(39%)에 이은 36.02%로 2위를 차지했다. 아직 투표권이 없기에 이들의 표는 유효하지 않지만, 이들 또한 국가의 구성원이고 미래의 유권자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그 중요성은 상당하다.

사표는 사표가 아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받은 진보정당 역대 최다 득표율인 6.2%는 사실 당선과는 거리가 멀다. 선거비용에 대한 보전도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들의 도전과 이들을 향한 표를 단순히 실패나 무용지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진보정당이 권력을 잡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각주:5] 언젠가부터 정부는 보수의 상징으로 인식되어왔다. 이는 17대, 18대 대통령을 거치면서 한층 심화되었다. 그렇지만 보수정당의 집권 와중에도 진보적 가치와 사고는 우리 사회 내로 더 널리 퍼지고, 일상의 행위 양식 속으로 녹아 들어갔다. 가장 근본적 문제인 부의 재분배를 비롯하여 여성 문제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에서 그렇다. 18대 대선 당시 보수 성향의 박근혜 후보의 공약은 비록 이행 되지는 않았지만, 진보정당의 공약보다도 더 진보적이었다. 이는 보수진영 스스로의 성찰로 나타난 결과가 아닌, 진보진영에 맞서 그리고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받아들여 정권을 획득하려는 방안이었다.

 사표는, 사표가 아니다. 우리가 행사하는 표는 단순히 후보의 당락만을 결정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행사된 표는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정치인들은 어떤 가치를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시민사회의 여론을 정치권에 전달한다. 문재인 정부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국정을 운영하게 되었지만, 앞으로도 심 후보를 뽑은 200만이 넘는 유권자와 그 이상의 지지자들을 고려해야 한다. 정치는 움직인다. 그것은 한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인식과 더 나은 삶을 향한 노력에, 그럼으로써 변화하는 일상에 맞추어 느리지만 조금씩 변해왔다. 그들의 도전은 실패하지 않았다. 낙숫물이 언젠가 바위를 뚫는 것처럼, 대한민국의 역사에는 또 하나의 작은 흔적이 남았다. 그리고 그 작은 흔적들이 모여 언젠가 세상은 변화한다.

 

  1. 5월 2일 E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 [본문으로]
  2. 유권자는 자신이 행사한 표가 사표가 되지 않기를 바라서 당선가능성이 높은 후보에게 표를 준다는 뜻이다. 일종의 ‘대세론’을 형성함으로써 정치적 프로파간다 전파에 기여한다. 전문용어는 아니다. [본문으로]
  3. 임금의 상한을 법정(法定) 최저임금과 연계하는 ‘최고임금제’를 의미한다. ‘살찐 고양이’는 과도한 임금을 받는 부유층·자본가를 의미한다. [본문으로]
  4. 한국 YMCA 전국연맹이 주관한 청소년이 직접 뽑은 제19대 대통령 모의투표 [본문으로]
  5.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는 리버럴계 정당으로 진보정당과는 구분하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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