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호보기/2017 봄여름, 72호 <변한 것 변하지 않은 것>

누가 개헌을 말하는가

by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 2020. 4. 6.

72호, 2017년 봄여름

지난 10월 29일부터 올 4월 29일까지, 매주 토요일의 광화문에는 촛불을 든 시민들이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이후에도, 특검이 꾸려진 이후에도,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된 이후에도 사람들은 토요일마다 광화문으로 향했다.

시작은 분노였다. 선출되지 않은 자가 공권력을 사유화 하고, 그의 만행을 아무도 제재하지 못한 것에 시민들은 분노했다. 그러나 문제는 단지 비선의 존재가 아니었다. 그의 존재를 알고 있던 대부분의 보수인사들은 그를 묵인했고, 재벌은 거래를 통해 국가권력을 사익화했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에도, 탄핵이 인용된 이후에도 촛불은 계속됐다. 매주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은 대통령의 퇴진 이외의 것들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사건에 연루된 ‘적폐’세력들을 청산할 것, 공범인 재벌들을 처벌할 것. ‘박근혜 퇴진’이라는 구호는 곧 ‘나라다운 나라’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바뀌었다.

그러나 ‘촛불민심’을 이어받겠다며 시작된 개헌논의는 권력구조 재편으로만 흘러갔다. 앞으로 진행될 개헌논의가 정말 민주적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그 과정에서 배제된 목소리는 없는지, 우리는 개헌을 통해 보다 ‘나라다운 나라’에서 살 수 있게 되는 건지. 물음에 답하기 위해 지금부터 개헌논의의 진행과정과 주요 쟁점들을 살펴보려 한다.

개헌논의는 어떻게 진행되었나?

 

시작은 박근혜 정부였다. 지난 1024, 최순실게이트와 함께 역대 최저 지지율을 기록한 박근혜 정부는 갑작스레 개헌의지를 표명했다. 구체적 개헌방향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정책의 연속성의 부족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4년중임제로의 전환을 제시하는 듯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그동안 개헌에 부정적이었던 박근혜정부의 갑작스런 태도전환을 지적하며 비리게이트의 위기국면전환을 위해 개헌을 도구로 사용해선 안된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같은 날, jtbc는 문제의 태블릿pc에 대해 보도했다.

박근혜정부의 국면전환시도는 실패한 듯 보였다. 그러나 보수세력은 개헌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선 개헌 후 탄핵을 주장하며 4년중임제 개헌을 통한 새 정권의 창출을 이야기했다가, 내각제 개헌을 통한 대통령권한의 분권을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분권형대통령제를 통한 반기문 대통령-TK출신 총리의 차기정부를 구상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선불출마와 함께 내각제개헌을 주장했던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개헌 이후의 총리직도 불출마하실 계획이 있냐는 손석희의 질문에 동공지진을 일으킨 사건은 이미 유명하다. 권력다툼을 위한 방편으로만 여겨지던 개헌에 대한 여론은 촛불정국의 장기화와 함께 국면전환을 맞이한다. ‘촛불혁명’을 제도화해야한다는 목소리는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충분했다.

 JTBC

‘권력유지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개헌

 “국가 대개혁은 만악의 근원인 제왕적 대통령제의 청산 없이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이 우리 현대사에서 입증되었습니다. 따라서 개헌은 우리 사회 모순과 적폐에 대한 근본적 해법일 뿐만 아니라 촛불 민심을 정치적으로 완결 짓는 시대적 과제라고 하겠습니다. ... ... 국민의 70% 가까이 개헌에 찬성하는 그 뜻은 이 같은 적폐를 청산하고 대화와 타협의 협치를 하라는 요구라고 생각합니다.” -헌법개정특별위원회 회의 중, 김동철 국민의당 의원

 그렇게 개헌논의는 진행됐다. 지난 12월 29일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의 구성결의안은 재적인원 99%의 찬성[각주:1] 그들은 박근혜정부의 부패원인을 권력집중형 대통령제에서 찾았다. 개헌특위를 지배한 것은 ‘분권’과 ‘협치’라는 키워드였다. 정치권은 분권을 통한 대통령권한의 축소방안과 정부형태에 대한 논의에 몰두했다.

 흥미로운 점은 더불어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가 사실상 명백해 보이던 상황에서, 의회로의 권력이양을 골자로하는 개헌특위를 주도한 것은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의 3당이었다는 점이다. 3개월여의 활동기간동안 개헌특위는 정부형태를 포함한 개헌의 구체적 안에 대해 합의를 이루어내지 못했으나[각주:2] 탄핵과 함께 조기대선이 확정되자 3당은 이원집정부제를 기반으로 하는 3당공동개헌안을 발표한다.

여론수렴은 커녕 정치권의 합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단행된 졸속적 진행은 ‘차기정권획득이 불가능해 보이니 의회로의 분권을 주장해 권력유지를 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웠다. “어떻게든 속도를 내고 합의할 수 있는 것만 합의해서 일단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기라도 하는 것이 저는 우리 개헌특위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개헌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기를 바라는 국민적 열망을 담아서 정부형태 위주로 그리고 기본권과 지방분권은 합의된 수준에서 하자고 했습니다”는 국민의당소속 김동철의원의 발언[각주:3]은 개헌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권력 구조의 재편으로만 흘러가는 논의 속에서 ‘촛불민심’의 운운은 명분 세우기에 불과했다.

개헌의 주요 쟁점들

결국 3당의 대선전 개헌추진은 실패로 돌아갔고, 문재인대통령이 당선됐다. 그는 3당의 정략적 개헌시도를 비판했었지만 촛불의 목소리를 제도화하는 것을 ‘시대적 과업’으로 삼았다. 분권과 협치가 이번 개헌정국의 기본방향이었던 만큼 그는 대통령권한의 축소, 지방분권, 선거제도 개선과 기본권강화 등을 개헌의 주요쟁점으로 제시했다.

제왕적 대통령제

현행 헌법상 정부형태는 내각제적 요소를 일부 가미한 변형적 대통령제다.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 후 임명되며 주요 국정사안은 국무회의의 심의 후 결정된다. 이러한 절차적 통제제도에도 불구하고 오랜 권위주의 체계와 관행화된 대통령중심의 국정운영은 내각제적 견제를 불가능하게 했다. 또한 대통령의 ‘법집행권, 인사권과 정부의 예산편성권 등’의 권한이 국회의 견제를 무력화하는 한편 여당과 야당의 대립 관계는 국회가 대통령의 인사권이 나 정부 권한을 효과적으로 통제·개혁하지 못하게 했다.[각주:4]

개헌특위의 정부형태분과위원회[각주:5]는 현행 정부형태의 문제점을 위와 같이 분석했다. 대통령의 포괄적인 인사권은 사법부와 정부기관에 직접적인 통제권을 행사 가능케 했고, 검찰이나 감사원, 국세
청 등의 핵심기관의 동원은 입법부의 견제를 무력화할 수 있었다. 입법부의 견제가 무력화 될 때 행정부는 과대대표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관련법안의 개선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개헌특위 스스로의 분석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문제의 근원을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단언하고 정부형태의 변화로만 해결을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정부형태의 변화와 대통령권한의 분권은 결국 의회로의 권력이양을 의미하지만, 지난 박근혜정부의 실책들에서 의회는 책임을 회피하기 힘들다. 20대총선 이전까지 의회의 과반을 차지하던 여당은 박근혜정부의 임기동안 행정부를 견제하기는커녕 그 수족이 되어왔다. 거대양당이 의회를 독식하다 시피 해온 한국에서, 여당이 의
회의 과반을 넘는다면 의회의 견제기능은 사실상 무력화된다. 집권당이 의회의 절반 가까이를 독점하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문제해결은 난망하다.

거대양당과 선거제도

87년 이전까지의 군부정권 독재와 민주-반민주라는 사회적 균열은 이념을 기반으로 한 정당간 경쟁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87년 이후, 상대적으로 약해진 민주-반민주라는 균열은 민주화진영의 정치엘리트들로 하여금 지역을 기반으로 한 선거연합을 결성하게 했다.[각주:6] 이후 영남-호남의 두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거대양당은 한국정치를 지배해왔다. 

▲ C현재호(2006), 민주화 이후 정당간 경쟁의 성격, 아세아연구49(2)

 두 개의 정당이 의회의석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문제는 의회가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대의제 하에서 민주주의는 정당을 매개로 한다. 정당이 매개하는 정치가 국민을 대변할 수 있으려면 정당은 당원 혹은 유권자의 이념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뚜렷한 당의 이념이나 지향이 부
재한 상황에서 거대양당이 채택하는 이슈는 대동소이하다. 87년 이후 양당은 모두 경제민주화와 복지정책의 확대를 주장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양당의 경쟁을 견인하는 것은 반공이데올로기라는 이슈와 지역주의뿐이다. 차이가 없는 거대양당이 유권자 혹은 당원을 제대로 대변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거대양당의 고착화에는 역사적 맥락 의외의 제도적 맥락 역시 존재한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영남 지역에서 새누리당이 얻은 지역구 득표율은 54.7%였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영남에 배분된 67석 중 63석을 차지하며 94%의 의석을 독점했다. 나머지 45.3% 시민들의 의사는 고작 6%로 좁혀진 셈이다. 한 선거구에 한 명의 승자만이 독식하는 소선거구제 비교다수대표제의 한계다. 비교다수대표제는 다수정당을 과대대표하고, 소수정당을 과소대표한다. 이는 곧 전체득표율이 낮은 소수정당의 의회진입을 어렵게 했고 결과적으로 거대양당체제의 유지에 기여했다. 정당 지지율과 실제 의석 배분율 사이의 불비례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정치권은 연동형비례대표제의 도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당선된 문재인대통령 역시 권역별 비례대표제[각주:7]의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연동형비례 대표제의 도입에 대한 논의는 매 선거시즌마다 반복되어왔으나 매번 좌절됐다.[각주:8] 현행 선거제도로 수혜를 누리는 기성정당에게 의결권이 주어져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정치에서 보기 힘들었던 현재의 다당제국면은 논의를 촉진시키고 있다. 국민의당은 중도를 표방하고, 바른정당은 신 보수를 표방하며 기성정당에서 스스로를 분리해 나갔다. 그러나 바른정당의 유승민 후보는 지난 대선 내내 단일화의 압박에 시달렸으며 보수의 정상화를 결의했던 바른정당의 열 네 의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또한 정당의 지지 기반이었던 호남과 우클릭 행보 사이에서의 배회 끝에 추락한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은 국민의당 역시 새로운 당론이나 정책의 개진에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기성정당에서 분리된 결과라는 점, 소속 의원 중 다수가 기성정당 출신 정치인이라는 점은 국민의당-바른정당이 기성정치의 연장이라는 판단을 가능케 한다. 그렇기에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과 국민의당-바른정당의 의석 수 증가로 당장의 정치지형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제도의 개선은 필요하다. 비례성의 원칙을 헌법에 명문화 해 정당지지율과 의석점유율 사이의 불비례성을 개선해야 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이념을 제시하는 소수정당이 유권자의 지지만큼 의석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놓아야 한다.

지방분권과 지방토호세력

 이번 개헌의 기본방향이 분권인 만큼 정치권에서는 중앙정부의 권력을 지방정부로 이양하자는 지방분권에 대한 논의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지방정부로의 ▲입법권 배분 ▲재정권 배분 ▲지방 정부와 기관사이의 관계 등의 방안들이 논의되었다. 중앙정부에 집중된 권한들을 지방자치기구로 이양해야한다는 합의가 공통적이었다. 기초자치단체의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절반이넘는 응답자가 지방자치의 가장 큰 걸림돌로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재정’을 지목하기도 했다는 점[각주:9]에서 지방자치의 발전을 위해 실질적 권한이 지방정부로 이양되어야 함은 일면 타당하다. 유럽자치지방 헌장은 ‘공적책무는 원칙적으로 주민에게 가장 가까운 공공단체가 우선적으로 처리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높은 접근성을 바탕으로 주민들의 삶과 직결된 의제들을 다룰 수 있는 지방자치기구의 성격을 고려할 때 위와 같은 지방분권 논의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양된 권력이 지역주민이 아닌 지방토호세력으로 유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소규모 기초자치단체의 경우 단체장 1인이 인사권과 인허가권, 예산권을 독점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민선5기까지 형사처분으로 물러난 단체장은 102명으로 전체의 8.3%에 달하는데, 이들이 구속된 이유 중 대다수는 인사부패 혹은 관급공사의 입찰 및 업체선정 등에서 벌어지는 정경유착이었다.[각주:10]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관급공사에서 공무원과 기업을 알선하고 그 댓가로 이익을 취하는 ‘관급공사 수주 브로커’까지 등장하는 실정이다. 감사-견제기구조차 미흡한 상황[각주:11]에서 소규모 기초자치단체는 토호세력과의 유착관계를 통한 이익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지방의회역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방의회는 입법과 의결 이외에도 집행기관에 대한 견제와 주민대표기관으로서 주민의 의사를 대변할 의무를 지닌다. 그러나 지방의회의 낮은 전문성, 집행기구와의 유착관계는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했다. 지방분권의 목적이 ‘아래로부터의 권력’이라면, 그 달성을 위해서 는 실질적인 주민참여방안의 마련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이양될 권력이 단순한 지방자치단체장-지방의회의 대표기능 확대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기본권의 강화

 지금까지는 정부형태에 관한 제도적 쟁점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선거제도와 지방분권에 대한 제도의 개선은 개헌이 아닌 하위법률 조항의 개정으로도 가능하지만 이번 개헌정국에서 주요하게 논의되는 이유는 헌법이 가지는 선언적 의미 때문이다. 헌법의 법률적 의미 이외의 상징적 의미를 고려할 때 더욱 중요해지는 주제가 또 하나 있다. 기본권의 강화다.

 개헌특위와 주요 대선후보들은 현행헌법이 제정된 87년과 비교해 변경된 사회경제적 지형을 반영하여 기본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헌법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 후보시절 개헌특위를 찾은 문재인대통령은 ▲천부인권적 성격의 권리를 ‘국민의 권리’에서 ‘모든 사람의 권리’로 표현을 바꾸어 그 범위를 확장할 것 ▲‘신체장애자’를 ‘장애인’으로, ‘여자’를 ‘여성’으로, ‘근로자’를 ‘노동자’로 바꾸는 등 호칭에 내재된 편견을 걷어낼 것 ▲생명권, 안전권, 성평등권을 제대로 보장할 것 ▲차별 금지의 사유를 확대할 것 ▲국가인권위원회를 헌법기관으로 만들 것 등을 주장했다. 전반적인 인권의식을 강화하고 평등권을 확대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방향이다.

사라진 ‘재벌개혁’의 목소리

“새 정부는 5.18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의 정신을 받들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할 것입니다. ... 광주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 시대를 열겠습니다.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아 개헌을 완료할 수 있도록 이 자리를 빌어서 국회의 협력과 국민 여러분의 동의를 정중히 요청 드립니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문재인대통령의 발언 중

 문재인정부는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헌법 전문에 명시할 것을 주장했다. 5월 18일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의 그의 발언은 이번 개헌의 기본방향이 촛불의 계승에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한다. 촛불의 열망을 등에 업고 당선된 만큼 그는 세월호-국정농단 재조사를 수사지시하고, 국정교과서를 폐지하는 등 그동안 촛불이 요구했던 사항들 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다.

 그러나 이쯤에서 우리는 다시 촛불의 요구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촛불은 적폐로 분류되는 부패한 보수세력의 청산과 공범인 재벌의 처벌을 요구했었다. 그 적합성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살펴보았듯 전자에 대한 논의는 어느정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후자에 대한 논의는 어디로 갔나?

 박근혜-최순실게이트는 독점대자본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 국가를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노동개‘악’으로 비판받았던 노동개혁정책은 미르재단 출연금에 대한 댓가성 추진이었으며,[각주:12] 삼성은 박근혜정부와의 거래를 통해 공
적자금인 국민연금을 이용하여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도모했다.[각주:13]

▲ 국내 주요기업 중 대부분은 박근혜정부와의 댓가성거래 의혹을 제기받았다. ⓒ더불어민주당

①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②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현행헌법 119조 의 1항은 기업의 시장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는 반면 2항은 적정한 소득의 분배와 그에 따른 국가의 개입가능성을 보장한다. 상충되는 두 가치로 이루어진 현행헌법은 2항의 해석을 두고 차질을 빚어왔다. 가장 소극적으로 해석할 경우, 시장 실패시에만 국가의 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해석까지도 가능하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경제성장률과 실질임금간의 격차는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기업소득대비 가계소득배율은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위해 국가의 역할이 절실한 상황에서 모순적 119조에 대한 적극적 논의의 부재는 문제를 방관하는 태도다. 그런 맥락에서 후보시절 개헌특위를 방문했던 심상정후보의 ‘이익균점권 부활’주장은 의의가 크다. 노동자로서의 국민은 노동의 결과인 기업의 이익을 균점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또한 개헌논의에서의 국민참여보장을 위해 설치되었던 개헌특위 자문위원회에서 합의된 ▲고용안정 ▲노동자 경영참여 ▲토지 공개념 등에 대한 규정 역시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기본권의 강화 역시 인권, 평등권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사회보장-사회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신설해 복지 국가의 기능을 확대할 것을 명시하는 방안이나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노사대등 공동결정원칙, 상시업무의 정규직-직접고용 원칙을 명시해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권리를 강화하는 방안 역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의당 정책위원회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87년 10월 27일, 제 9차 개헌안이 통과됐었다. 긴 투쟁 끝에 이루어낸 군부독재의 종식과 제6공화국의 헌법은 기념비적 의미를 갖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헌법개정안은 이전체제의 의원들에 의해 쓰였다. 여야의 의원들이 4명씩 모인 ‘8인 정치회담’을 통해 개헌협상이 이루어진 것이다. 당시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의 공동대표 65명중 정치 인들은 단지 8명에 불과하였다. 혁명을 주도한 것은 기존의 정치인들이 아니라 대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새로운 체제의 건설과정에 배제당했다.

 87년헌법은 형식적 민주주의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유주의의 시작이기도 하다. 경제민주화를 명시했지만 동시에 그를 위한 ‘조정자’로 국가의 역할을 정의했고, 경제주체로 기업을 추가했다. 기존권력과 자본의 합의는 ‘반독재민주화, 반외세자주와, 반재벌민주화’를 내걸었던 6월항쟁의 요구들을 모두 담아내지 못했다. 긴 군부독재와 명백한 반민주주의적 정치의 종식-선거를 통한 대의제의 시행-을 일차적 목표로 삼았을 뿐이었다.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촛불이 성공한 ‘혁명’이 될 수 있기 위해 이번 개헌논의는 촛불의 요구를 담아내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제도의 개혁이 정치의 개혁을 담보하진 못한다는 점이다. 87년의 직선제 개헌 이후 사그라진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야기한 지역정당이 고착화와 정치권의 후퇴를 다시 떠올리자. 대의제체제 하에서 답은 우리의 지속적 관심과 비판일 수밖에 없다.

 

  1. 재석의원 219명 중 217명 찬성 2명 기권으로 가결됐다. [본문으로]
  2. 당시 개헌특위는 주요 쟁점별로 1소위원회와 2소위원회를 구성해 각 쟁점별 기본개정방안에 대해 논의하던 중이었고, 개진된 의견들을 수합해 몇 가지의 안을 제시하는 기초적 단계였다. 개헌 특위에서 가장 주요하게 논의된 정부형태에 관해서 역시 3가지의 안(대통령제적 분권형, 의회의 견제권을 강화하는 4년 중임 대통령제, 총리 중심 분권형)을 제시했을 뿐 공통적인 합의가 진행되진 않았다. 3당의 갑작스런 공동개헌안 발표 이후 개헌특위는 사실상 중단됐다. [본문으로]
  3. 3월 20일, 제 12차 헌법개정특별위원회 회의 중 3당의 합의를 비판하는 의견에 대한 답변 중 [본문으로]
  4. 3월15일, 제6차 헌법개정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진행된 정부형태분과위원회의 보고 중 현행헌법상 정부형태의 문제점에 대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본문으로]
  5. 정부형태분과위원회는 개헌특위에서 정부형태, 입법부 및 집행부에 관한 헌법개헌 쟁점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검토하는 역할을 맡았다. [본문으로]
  6. 민주화 이전까지 정당들은 전국화지수가 높게는 0.96(공화당)에서 낮게는 0.74(민주통일당)까지 나타나는 전국정당의 형태였지만, 88년의 선거부터 정당들은 지역정당의 형태를 띄게된다. 87년 김대중후보의 전국화지수는 0.42, 김종필후보는 0.45였다. 강명세, 지역주의 정치와 한국정당체제의 재편?(2005)참조 [본문으로]
  7.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전국 혹은 권역별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각 정당의 의석을 할당하고, 이후 정당별 총 의석수에서 지역구 의석수를 뺀 것만큼 비례대표 의석으로 할당하는 방식이다. 이 때
    권역별 정당득표율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권역별 비례대표제, 전국적 정당득표율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전국단위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소수정당의 경우 후자를, 다수당의 경우 전자를 선호한다. [본문으로]
  8. 특히 지난 20대총선을 앞둔 2015년 활발하게 전개됐던 선거구 재획정 논의에서 야당은 입을 모아 연동형비례대표제의 도입을 주장했지만 결국 무산되었고, 비례대표 배당의석은 54석에서 47석으로 오히려 축소되었다. [본문으로]
  9. 연합뉴스, 견제받지 않는 지방권력...단체장 비리 ‘우후죽순’, 2016.10.02 [본문으로]
  10. 코리아TV, 철의 삼각으로 운영되는 지방행정, 2014.06.14 [본문으로]
  11. 기초자치기구의 자체감사기구 설치비율은 2014년기준 단 28.8%에 불과했다. 중앙행정기관의 경우 77.8%였다. [본문으로]
  12. 박근혜 전 대통령은 15년 7월 4일 기업총수 17명을 만나 미르와 케이스포츠재단의 설립을 요구했고, 그로부터 2주 후 대국민담화를 통해 노동개혁 추진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이후 노사정합의에서 합의되지 않은 노동5법이 발의되자 미르재단에는 기업출연금 486억원이 입금 완료됐다. 그 이후 고용노동부 장관은 취업규칙 불이익 요건 완하와 저성과자 해고도입을 골자로 하는 2대지침을 발표한다. [본문으로]
  13.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당시 국민연금은 5900여억의 손해를 보며 합병을 찬성했다. 국민연금 의결권 성사 전문위원회 소속위원은 청와대가 지속적으로 전화를 걸어 합병을 찬성하기를 종용했다고 증언했다. [본문으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