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굴
수습위원 강시현
개미
어느 날 자취방에 개미가 들어왔다. 처음엔 한두 마리가 배회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대여섯 마리는 족히 하루에도 몇 번씩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 집을 깨끗하게 치우고, 살충제를 뿌리면서 개미약을 설치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학교 중문 언저리 언덕에 있는 자취방은 오피스텔이 아니라 마당이 있는 어정쩡한 이 층 건물이었고, 벌레가 우글우글했다. 마당에 비료를 가득 뿌려가며 텃밭을 기르는 집주인 덕분이었다. 개미를 한동안 잡다가 이럴 거면 너네도 월세를 내라는 무의미한 말을 내뱉기도 했다. 잡고 잡다 지쳐 나의 문제가 아니라 집의 문제란 결론을 낸 뒤 샅샅이 살펴보니 현관 안으로 이어지는 파이프 주변에 구멍이 나 있었다. 그 구멍을 통해 집에 들어온 것이었다. 그 구멍만이 아니었다. 창문을 관통하는 전선을 둘러싼 구멍에 틈이 생겨 그곳도 개미의 통로가 됐다. 파이프를 통해 들어온 개미들은 바닥을 기어다녔지만 전선 구멍으로 들어온 개미들은 침대를 기어다녔다. 내 안온한 쉼터의 너무 끔찍한 불청객이었다. 허락하지 않은 공간에 쳐들어온 불청객들. 내 공간을 침범한 침입자들. 그러나 따지고 본다면 이 개미들은 나보다 먼저 이 공간에 존재하고 있었다. 건물이 세워질 적, 건물을 세우기 위해 땅을 개간할 적, 아니면 이 부지가 산이었을 때부터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미들은 불청객이 됐다. 왜냐하면 깔끔히 치워둔 내 자취방에 들어오기에는 너무 더러우니까.
파주시의 개미
김경일 파주시장은 2023년 1월 신년사에서 여성친화 도시 건설 계획을 발표하며 용주골 철폐를 선언했다. 1월 2일 ‘성매매 집결지 정비계획’을 2023년 1호 공식문서로 결재하며 용주골 폐쇄를 위한 전담TF팀을 결성했다. 아주 빠르고 신속한 여성친화도시로의 한 걸음이었다. ‘용주골’이 대체 무엇이길래 없어지기만 한다면 파주시가 여성친화 도시로 탈바꿈하는 것일까.
용주골.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연풍리에 위치한 성매매 집결지. 그 역사는 길다. 정확한 지명은 ‘대추벌’이나 이곳을 배경으로 한 ‘용주골’이라는 제목의 성인만화의 영향으로 ‘용주골’로 굳어졌다는 용주골은 6.25전쟁 이후 1960-80년대 국내 최대 규모 중 하나인 미군 기지촌이자 성매매 집결지였다. 당시 주한미군을 통해 미국에서도 회자될 정도였다고 한다. 미군 철수 이후에도 한국인을 상대하며 그 유명세를 이어갔다. 용주골이 한창 발길이 끊이지 않던 그 즈음, 당시 정부는 「윤락행위 등 방지법」을 통해 성매매 행위를 불법화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해인 1962년 104개 성매매 지역을 ‘특정지역’으로 선정하여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성매매는 허용, 또는 묵인했다. 용주골 역시 그 지역 중 하나였다. 이중적 잣대를 보이는 제도는 대체 왜 생겨났으며, 어떻게 유지되었는가.
최초의 성매매 관리 제도는 1916년부터 1948년까지 일본제국주의 정부에 의해 실시된 공창제(公娼制)이다. 이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일본에 존재하던 것을 식민지였던 조선에 옮겨온 제도인데, 쉽게 말해 국가가 성매매를 합법화하고 관리했다. 유곽 영업과 창기가업의 허용되었고, 성매매 종사자 등록 및 강제 성병 검진이 이루어졌다. 일본제국주의의 주도 하에 성매매 산업은 전국 대부분으로 확산됐다. 일본이 패망한 후, 미군정은 1946년 5월 「부녀자 매매 또는 그 매매계약의 금지령」을 발표하였으나 유명무실하여 공창제 자체는 폐지되지 않았다. 이에 1947년 8월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이 「공창제 등 폐지령」을 입법의원에서 통과시킨 후 인준을 받아냈다 1. 이 법률이 1948년 2월에 효력이 발생하면서 공창제는 공식적으로 폐지됐다. 그러나 법률이 실상에서 적용되지 못하고, 정부가 묵인을 넘어 국군 등을 위한 위안소를 운영하기까지 하면서 성매매는 계속됐다. 이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박정희 정권이다. 5.16 군사정변에서 선포한 ‘혁명공약’의 일환으로 성매매 단속의 필요에 대해 이야기했다. 의지를 증명하듯 1961년 「윤락행위 등 방지법」을 제정했으나, 결과는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다. ‘특정지역’을 선정하여 성매매를 허용했다. 1961년 교통부 기획조정관실은 공문을 통해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용이하게 유치할 수 있는 관광객은 주한 유엔군”이며 “외국인 상대 접대부”를 교육하고 “우리나라에 보다 많은 외화를 떨어뜨리게 한다는 견지에서”라고 밝혔다. 실제로 104개 지역이 대부분 미군기지 인근이었다.
이후 1996년에서야 다시 「윤락행위 등 방지법」의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처벌이 강화되고 본 목적이 유지되는 법안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맞으며 성매매 산업은 다시 수면 아래로 사라진다. 시간이 지나 2004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다. 일명 「성매매특별법」으로 통칭되는 두 법률은 2000년 군산시 대명동의 유흥업소에서 감금되어 화재에서 탈출하지 못해 여성 5명이 사망한 사건과 2002년 군산시 개복동에서 마찬가지로 감금되어 화재로 여성 14명이 사망한 사건이 그 배경이다. 대명동 화재의 경우 건물 출입문 밖에 잠금장치가 있었으며, 2층과 3층 창문 모두에 쇠창살이 달려 있었다. 개복동은 24분 만에 화재가 진압되었음에도, 유일한 출입구는 특수 잠금장치로 잠겨있었으며, 2층 철문 또한 잠겨 있었다. 이 사건들이 발생하고나서야 기존의 법안을 대체할 새로운 성매매규제법안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확산되어 새로운 법률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와 무엇이 다른가. 이번은 ‘진짜’라는 것일까. 「성매매특별법」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두 법률은 무엇이 다르고, 어떤 영향력을 가지는가. 이는 법률의 이름에서 드러난다. 먼저, 기존 법안에서 사용되었던 성을 파는 여성의 행위에 초점을 두고 있는 ‘윤락’이라는 용어가 사라지고 ’성매매’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성매매처벌법」 제2조 1항 제1호의 성매매의 정의를 살펴보면 “불특정인을 상대로 금품이나 그 밖의 재산상의 이익을 수수(收受)하거나 수수하기로 약속하고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거나 그 상대방이 되는 것”이다. 성을 팔고 사는 행위에 초점을 둔 용어를 사용하여 법률을 보다 구체화하고 알선 및 중간매개체와 공급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한 것이다. 성매매 종사자를 처벌대상으로만 규정하던 과거와 달리 화재 사건 등과 같은 사례의 피해자, 혹은 성매매 공급 및 매개자 등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게 한다는 의도 또한 담겨있다. ‘성매매피해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성매매피해자’를 「성매매처벌법」 제2조 제1항 제4호에 따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성매매피해자 요건 | 성매매강요행위의 구성요건 |
위계, 위력, 그밖에 이에 준하는 방법으로 성매매를 강요당한 사람 | ・폭행, 협박으로 성을 파는 행위를 하게 한 자 ( ・위계 등의 방법으로 성을 파는 자를 곤경에 빠뜨려 성을 파는 행위를 하게 한 자(10년이하 징역) ∙친족․고용 등의 관계로 타인을 보호․감독하는 것을 이용하 여 성을 파는 행위를 하게 한 자 ・범죄단체나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성매매를 강요한 자 ・타인을 감금하거나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는 방법으 로 성매매를 강요한 자 |
업무관계, 고용관계, 그 밖의 관계로 인하여 보호 또는 감독하는 자에 의하여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제2조에 따른 마약ㆍ향정신성의약품 또는 대마(이하 “마약등”이라 한다)에 중독되어 성매매를 한 사람 | ・업무ㆍ고용 그 밖의 관계로 인하여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자 에게 마약 등을 사용하여 성을 파는 행위를 하게 한 자 |
미성년자,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거나 미약한 사람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대한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서 성매매를 하도록 알선ㆍ유인된 사람 | ・위계, 위력으로 청소년, 심신미약, 중대한 장애자로 하여금 성을 파는 행위를 하게 한 자 |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를 당한 사람 |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를 한 자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성매매처벌법 2조1항 제3호)
가. 성을 파는 행위 또는 「형법」 제245조에 따른 음란행위를 하게 하거나, 성교행위 등 음란한 내용을 표현하는 사진ㆍ영상물 등의 촬영 대상으로 삼을 목적으로 위계(僞計), 위력(威力), 그 밖에 이에 준하는 방법으로 대상자를 지배ㆍ관리하면서 제3자에게 인계하는 행위 나. 가목과 같은 목적으로 미성년자,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거나 미약한 사람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대한 장애가 있는 사람이나 그를 보호ㆍ감독하는 사람에게 선불금 등 금품이나 그 밖의 재산상의 이익을 제공하거나 제공하기로 약속하고 대상자를 지배ㆍ관리하면서 제3자에게 인계하는 행위 다. 가목 및 나목의 행위가 행하여지는 것을 알면서 가목과 같은 목적이나 전매를 위하여 대상자를 인계받는 행위 라. 가목부터 다목까지의 행위를 위하여 대상자를 모집ㆍ이동ㆍ은닉하는 행위 |
헌법재판소는 「성매매처벌법」이 형법상의 범죄피해자의 개념에서 벗어나 넓은 범위의 피해자 개념을 인정함으로써 성매매피해자를 보호하고 있다고 본다. 2그렇지만 심판대상조항 3은 성구매자뿐만 아니라 성판매자도 동일한 법정형으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성구매자를 처벌하여 성매매에 대한 수요를 억제한다 하더라도 성매매에 대한 공급이 합법적으로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성매매 근절의 실효성을 달성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기초한다. 4 즉, 성매매 근절을 목적으로 성매매에 관련된 모든 이는 처벌하되, ‘성매매피해자’는 보호한다는 것이다.
과연 법 시행 이후 성과는 어땠을까. 경찰청의 법 시행 1년(2004.09.23~2005.09.15) 성매매 단속 실적에 의하면, 이 기간에 검거된 성매매사범은 16,260명이다. 이 중 업주 및 성매수남성은 11,474명(70.6%)이고, ‘성판매 여성’은 4,786명(29.4%)이다. 여기서 ‘성매매피해여성’은 987명으로 불입건되고, 처별면제됐다. 3,799명은 ‘자발적’인 성판매여성이라는 것일까. 적어도 「성매매피해자보호법」은 그렇게 보았다.
더러운 개미들
‘자발적’인 성매매. 몸을 원해서 ‘팔았다’는 말인가. 여성들은 ‘창녀’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금까지 발버둥 쳐왔다. 헤프고, 더러우며, 가볍다는. ‘창녀’로 불림으로써 여성들은 오직 성적인 존재로서 존재하며 남성보다 사회적으로 열등하다고 여겨져 왔다. 여성혐오 사회와 그 안에서 파생된 성매매 산업. 성매매 산업은 다시 여성혐오를 재생산해 왔고, 여성들은 고통받아 왔다. 그런데 그 어떤 여성이 ‘자발적’으로 몸을 판단 말인가.
“명품을 사기 위해, 사치를 부리기 위해 온전하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보다 돈이 없어 식당 알바를 하고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지원 금액이 필요로 합니다.
성매매로 돈을 버는 여성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조금 더 남들보다 편해지고자, 사치를 부리고자 등등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매매 여성들에게 이렇게나 많은 지원금을 준다는 것은 정상적으로 돈을 버는 여성들을 모욕하고 무시하는 것입니다.”
2018년 인천시 미추홀구는 ‘옐로우하우스’ 집결지 철거를 진행하며 ‘성매매 피해자 등의 자활지원 조례 시행규칙’을 시행했다. 성매매 종사자가 탈성매매 확약서와 자활계획서 를 제출하면 생계비 월 9 100만 원, 주거지원비 700만 원, 직원훈련비 월 30만 원 등 1년간 최대 2,260만 원까지 지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10이 지원을 두고 위 청원이 올라온 것이다. 자발적으로 ‘몸을 파는’ 여성들은 정말 명품을 사고자 하는, 사치를 부리고자 하는 사람들일까? 몸을 파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이들은 ‘비정상’적으로 돈을 벌며 대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일까. 이 사람들이 모여있는 용주골은 대체 어떤 공간일까.
개미의 정체
저서 『순수와 위험』에서 인류학자 메리 더글라스는 “더럽다는 것은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쓰레기가 쓰레기통이 아닌 식탁 위에 올라와 있는 것, 음식이 냉장고가 아니라 침대 위에 있는 것, 메리 더글라스는 그런 것들이 더러운 것이라 말했다. 그렇다면 시야를 넓혀보자. 우리 사회에서 더러운 것들. 다시 말해 제자리에 있지 않은 것들. 무엇이 떠오르는가? 길가에서 노상방뇨를 하는 사람, 차도에서 만취해 누워있는 취객, 의도적으로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는 남성들. 이들은 사회의 ‘개미’일 것이다. 없어야 하고, 치워버려야 하고, 지워버려야 하는. 그렇다면 이들을 없애고, 치우고, 지우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주의를 준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여기는 그런 거 하는 데 아니에요.” 이와 마찬가지로 파주시도 주의를 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기요. 파주시에서 성매매하시면 안 돼요. 파주시는 성매매 같은 거 하는 데 아니에요.”
용주골 폐쇄 선언 이후 파주시는 용주골 입구에 컨테이너를 설치했다. ‘시민중심’ 더 큰 파주시 로고와 함께 파주시 성매매집결지정비TF팀의 전화번호가 적혀있는 이 컨테이너는 파주시가 종사자들과 소통을 목적을 위해 설치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통은커녕 사진과 같은 현수막을 걸어 압박의 수단으로 활용했고, 시청에서 나온 공무원들은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자율방범대로서 용주골의 사진을 찍어가거나 종사자 인원을 세어 보고 했다. 이에 종사자들이 항의하자 공무원 대신 TF팀 측에서 고용한 용역들이 사진을 찍어가거나 용주골 종사자 주거지 근접 지역에 최소 7번의 CCTV 설치를 시도했다. 13이에 용주골 측에서 행정법 위반임을 지적하자 “고소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용주골 종사자들은 자작나무회 성노동자 모임을 조직하여 청원서 제출, 시의원과의 접촉 및 소통 시도, 자체 해산 논의 등 파주시와의 소통을 위해 노력했으나, 컨테이너, 용역의 감시, 불법 CCTV 설치 시도와 면담 신청 거부만이 되돌아왔다.
이어서 파주시는 ‘성매매피해자 자활지원 조례’를 발표했다. 타 자활지원보다 기간과 지원금이 훨씬 크다며 선전했다. 그러나 전부 빛 좋은 살구라고 용주골 종사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문제점은 세 가지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파주시가 종사자를 200여 명으로 추산하였음에도 그 수의 절반인 100명만 지원자로 상정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전부가 아닌 절반만 지원하고자 하는 것이 과연 온전한 지원이라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두, 세 번째 문제는 중앙문화 측과 인터뷰를 진행한 용주골 성노동자 14D씨의 답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용주골에 계신 분 중에 기초생활수급자나 한부모가정이 많아요. 그런데 파주시 자활지원은 기초생활수급자 급여나 한부모가정 지원과 양립이 불가능해요. 애초에 받을 수가 없는 돈인 거예요. 그리고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본인이 성매매 피해자라고 인정해야 해요. 업주에게 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업주분들이 처벌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줘야 해요. 실상은 아닌데. 심지어 파주시의 지원을 받은 이후에는 파주시의 명령에 따라 행동해야 해요. 파주시에서 지정한 곳에서 살아야 하고 더는 탈성매매를 증명하기 위해 지자체에 개인정보 열람을 허용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다양한 사연을 안고 있는 우리가 탈성매매가 쉬울까요? 심지어 파주시의 자활 지원을 받으면 직업 훈련을 받아야 해서 낮에 제대로 된 일도 하기도 어려운데요. 금액이 적다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받을 수가 없는 돈이란 거예요. 그리고 심지어 우리는 이런 자활 지원에 대해 제대로 설명받지 못했어요. 동네 이장님께서 알려주셨고, 지원 내용도 기사로 접했어요. 자활 지원을 받는 당사자의 의견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거예요. 이에 대해 항의하자 파주시는 파주시 홈페이지에 게시하였고, 전국의 다른 지원 사례를 파악하여 만든 것이라고 응답할 뿐이었고요.”
성매매 여성들의 서사는 항상 그들이 피해자였고, 구원받았음에 감사하는, 전형적인 피해자로 만들어진 가상의 ‘파괴된 영혼’으로서만 존재한다. 피해 여성이 될 것을 요구받을 때, 이 여성들은 피해자에 머무르게 된다. 그들이 피해자로서만 존재할 때 지워지는 것은 생존권을 주장하는 목소리다. 15절반만 지원하고, 실질적으로 받을 수 없는 지원. 심지어는 당사자와 논의조차 되지 않은 지원. 이것이 과연 파주시의 주장처럼 ‘파격적인’ 지원일까. 용주골은 궁금해할 필요도 없는, 그저 치워버리면 되는 공간일까.
다음은 자작나무회의 탄원서 일부이다.
파주시장님! 자작나무회의 목소리를 들어주십시오!!
1. 파주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강제 폐쇄가 아니라 유예기간을 주십시오! 대책 없는 강제 철거에 반대합니다. 행정대집행 이후에 집과 가게를 잃으면 저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용주골 성노동자들과 함께 충분한 소통을 거치고 대책이 마련된 뒤 철거가 집행되어야 합니다. 저희가 스스로 하던 일을 정리하고 다음 일을 준비하면서 떠날 시간을 주십시오. 1년 만에 성매매 집결지를 강제 폐쇄하겠다는건 어디서도 보지 못한 일입니다. 2023년 2월 13~14일 파주시의회가 방문하여 도시재생 정책 우수 사례로 확인했던 전주시 선미촌의 경우, 2014년 선미촌 정비 민관 협의회가 출범한 이후 오랜 준비를 거쳐 2017년에 자활지원조례가 시의회에서 통과되었고, 2021년에 완전 폐쇄되었습니다. 파주시는 이런 긴 과정에서 만들어진 타 지자체의 조례를 1년 만에 폐쇄를 강행하겠다는 이유로 당사자들과의 소통 없이, 파주시 집결지의 특성을 따로 고려하지 않고 그저 지원 기간을 늘리는 등의 변화를 주고 기계적으로 시행하면서 '더 나온 지원을 한다'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도 파주 시민입니다. "여기(연풍리 성매매집결지)를 정비하지 않고 어떻게 균형발전을 얘기할 수 있습니까? 파주 시민들이 거기(성매매집결지) 이용하는 사람 있습니까? 거기 종사하는 사람들 파주 사람 있습니까? 거기 포주가 파주 사람 있습니까? 전적으로 파주가 피해를 엄청나게 보고 있습니다." 김경일 시장이 7월 14일 오전 11시 문산 프리마루체에서 개최된 파주시축산단체협의회장 이취임식에서 했다고 보도된 말입니다. 앞에서는 여성인권을 위한다면서, 뒤로는 이곳 여성들이 파주시에 피해를 끼치는 존재라고 매도하다니요. 이곳 사람들도 파주 시민인데, 시민에 의해서 선출된 시장이 사실도 아닌 말로 여성들에게 모욕감을 주고 있습니다. |
용주골 자작나무회(용주골 성노동자 모임)에서는 폐쇄 반대를 주장하지 않았다. 충분한 시간과 소통을 기반으로 한 폐쇄를 진행하고, 파주시 시민으로 대우해달라는 아주 당연한 요청을 했을 뿐이다. 오히려 자진 폐쇄 방안을 먼저 제시했다. 파주시와 소통하며 용주골 내에서 스스로 종사자들을 줄여나가며 자발적 폐쇄를 진행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파주시장 김경일은 이에 “몇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51만 파주 시민들의 요구이기에 유예기간 없이 폐쇄를 진행할 것”이라 답했다, 51만 파주 시민들 속에 그 몇 사람은, 용주골 사람들은 시민에 포함되지 않는가? 용주골은 파주시에 자리 잡고 있고, 용주골 사람들은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용주골에 영원히 존재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저 안전히 용주골을 떠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을 뿐이다. 사회에 그러나 용주골 종사자들은 파주시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라져야만 하는 존재가 됐다. 용주골은 사라져야 할, 없어져야 할, 지워져야 할 개미가 됐다.
개미 키우기
초등학교 때 개미 키우기 키트를 받은 기억이 있다. 그때 집 앞에서 개미 몇 마리를 주워 와 작은 키트에 두고 키우며 두고두고 구경했다. 키트가 투명해서 개미가 움직이는 게 잘 보였다. 좁은 키트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개미를 구경하는 일은 재미있었으나 곧 그만두어야 했다. 개미가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좁은 키트에 비해 개미도 너무 많기도 해서 뭔가 불안하긴 했었다. 개미가 쌓아둔 것들만 남고 개미들은 사라졌지만 그다지 상관없었다. 궁금했던 건 다 해결된 지 오래였다. 개미가 움직이는 모습이라거나, 먹이를 먹는 방법 같은 건 몇 번이고 봤으니까.
개미가 죽지 않았더라면 나는 개미를 계속 키웠을까. 여왕개미가 없으니 개미가 늘어나지는 않았겠지만, 짧아도 몇 개월을 산다는데 키트를 받았을 때 딸려 온 먹이가 다 떨어지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얻을 건 다 얻었는데. 그래, 얻을 건 다 얻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전체 생산활동 인구의 4% 수준인 100만여 명의 성매매 직간접 관련자 수입의 25%만 하락해도 GDP가 1% 하락한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로 한국의 성매매 산업 규모는 거대하다 16.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조직범죄단체의 불법적 지하경제 운영실태와 정책대안 연구(2015)’에 따르면 국내 성매매 시장 규모는 약 30조 원에서 약 37조 원으로 추산된다. 판결문과 범죄 통계 등을 분석하여 성매매 시장 연간 매출액을 1조 5,070억 원으로 파악했고, 4~5%에 불과한 성매매 단속률을 고려해 20~25를 곱한 수치다. 단속률이 4%라고 가정하면 36조 6700억 원, 5%일 때는 30조 1400억 원이다. 또한, 여성가족부의 2010년 ‘성매매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성매매 거래액은 6조 636367억 원에 이른다. 성매매 알선업체가 5조 4030억원으로 압도적이었고, 성매매 집결지는 5765억 원으로 2위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파주시는 돈을 벌었을까? 파주시는 대규모 미군병력이 주둔했던 지역으로서, 농업을 경제기반으로 삼고 있던 이곳에 미군이 주둔함에 따라 농민은 다른 구역이나 외지로 이주했고, 미군을 상대로 하는 업종 종사자의 업종 종사자의 비율이 높아졌으며 새로운 형태의 촌락이 형성됐다. 171950년대 후반부터 용주골은 기지 문화의 총아로 간주되었으며, 1960년대 파주군 내 관광업소 74곳 중 20개가 용주골에 위치했던 것을 보면 그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18 용주골은 1953년 파주읍 연풍리에 생성되어 6·25전쟁에 참전한 외국군인을 상대로 성매매가 이루어지던 공간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성매매가 허용되던 예외 지역으로서 외화벌이는 물론이고 국가의 성장동력이자 주요한 생활공간으로 작용했다. 용주골은 단순히 성매매 집결지가 아니었다. 정책적·전략적·군사적 필요성에 의해 주둔하는 병영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발달되며 서비스업 중심의 생활권을 형성하는 군사 취락이었다. 19
대로변을 중심으로 미군을 상대하였던 각종 상업과 서비스 업소가 자리했고, 골목 안쪽으로는 주로 한국 사람을 상대했던 작은 업소들과 주거 공간이 있었다. 기지촌 사람들은 보초, PX 판매자, 하우스보이 등으로 미군 부대 내에서 근무하거나 기지촌의 상권에서 생계를 꾸렸다. 업종별로 분류하면 ▲식료/잡화점(17%) ▲양품점(8%)▲양복점(8%) ▲클럽(7%) ▲ 선술집(6%) 순으로, 대부분의 업종이 서비스업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위안부의 성매매를 중심으로 한 유흥업은 기지촌경제의 축이었다. 특히 ‘홀’은 기지촌에서 돈이 가장 많이 돌았던 곳으로, 당시 국가 외화벌이의 핵심 공간이었다. 홀에서 팔려나간 버드와이저 등의 수입 맥주, 소위 ‘관광 맥주’ 판매는 국가사업으로서 한 병당 2달러씩 세금이 부과되었으며, 24미군 전용 홀을 통해 국가가 벌어들인 금액은 1964년 기준 970만 달러 이상으로 이는 당시 한국이 벌어들인 총외화의 10% 수준이었다. 25
이를 살펴보면 파주시는 확실히 용주골의 덕을 보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나 파주시는 그런 적 없다는 듯 그간 묵인해 왔던 행태는 뒤로 하고 그저 용주골을 지워야 할 곳으로 여기고 있다. 용주골은 개미가 되어 사라져야만 하는 존재가 됐다.
성노동자 활동가 마고 제임스Margo St. James는 “창녀를 정치화하는 데는 2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28고 말했다. 국가에는 외화벌이수단으로 존재했고, 문학 속 재가공된 여성상으로서는 ‘판틴’(레미제라블), ‘소냐’(죄와 벌), ‘영자’(영자의 전성시대) 등 가난한 가족을 부양하고, 상처 입은 외로운 (남자) 영혼들을 위로하는 구원자로 등장하며, 현실에서는 온갖 사회적 맥락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고 심각한 폭력의 위험에 시달리면서도 자신들의 곤경을 호소하기가 어려운 범죄자들이고, 사회적으로 얼굴이 보이지 않고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다. 29
당신은 이들을 존재하는 사람으로 여긴 적 있는가.
파주시는 용주골 사람들을 파주시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컨테이너에서 시작된 선전포고는 ‘여행길(여성과 시민이 행복한 길-용주골 폐쇄에 찬성하는 시민들이 성매매는 범죄라 적혀있는 조끼를 입고 용주골을 횡단한다-)’, CCTV 설치 시도로 이어졌다. 필자는 용주골에 방문하여 ‘여행길’을 직접 목격했다. ‘여행길’의 기억은 아직 생생하다. 우리도 인권이 있다는 말에, 구경거리로 만들지 말라는 항의를 듣자마자 지어지던 그 비웃음이, 같잖다는 그 표정이 뇌리에 박혀있다. 심지어 일부 ‘여행길’ 참여 시민은 불법촬영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여행길에 동행하던 경찰 또한 ‘여행길’ 출발 전 대기 중에 불법촬영하는 것이 목격되었으나 시민단체의 항의에 사진을 빠르게 지우며 부정했다. 여행길이 용주골을 침범했을 때, 침범당한 이들은 그 순간 사람으로 존재할 수 없었다. 여행길이라는 이름 아래 존재하는 이들만이 사람으로서 당당히 개미를 밟으며 용주골을 횡단할 수 있었다.
개미가 있을 수 있는 공간
나는 지금도 내 방에 들어온 개미들을 보자마자 휴지로 꾹 눌러 휴지통에 넣어버린다. 죄책감은 없다. 왜냐하면 내 자취방은 개미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자취방의 어느 틈도 개미에게는 내줄 수 없다. 내 집은 깨끗해야 하고, 개미가 어떻게, 어디서 살아가든 내 알 바 아니니 나는 당연히 개미를 죽인다고 떳떳하게 말한다.
용주골은 성매매 종사자가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인터뷰어 A씨, B씨, C씨, D씨에게 용주골이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그들은 각각 이렇게 응답했다.
“여기가 아니면 갈 곳이 없는 공간.”
“생계 수단. 단속이 없어서 일하기 편했던 곳.”
“빚을 갚을 수 있는 곳.”
‘집. 본가에 가면 편하다. 그렇지만 본가에서 용주골로 돌아오면 집에 돌아왔구나, 싶다.“
용주골은 이들에게 유일한 공간이자, 일자리이며, 집이다. 이런 답이 나올 것을 예상하였는가? 일부의 대답이기에 용주골 종사자 모두를 대변할 수는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필자가 궁금했던 것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남의 입으로 나오는 그들은 ‘이렇다더라’가 아닌 그들의 입으로 나오는 ‘나는 이렇다’는 말. 우리는 지금까지 ‘토끼의 간’을 상상한 자라였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용주골을 비롯한 ‘성매매 산업’은 여성의 착취를 기반으로 남성 지배가 이루어지는 사회의 산물로서 비추어져 왔다. 물론 사실이다.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바가 성매매 산업이나 용주골이 마냥 실은 안전하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에게 좋은 선택지라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저 ‘토끼의 간’에 대해 ‘토끼’에게 직접 듣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매매 산업 속 종사자들을 단순히 피해자 혹은 자발적 성판매자라는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멈추고 더 입체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이 이분법에서 벗어난 ‘간’을 살펴볼 텐데, 지금까지의 시각에서 벗어나야만 용주골에서 투쟁하는 종사자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 절대 성매매를 미화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편협적이고 일방적인 시선으로만 비쳐졌던 성매매 종사자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들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개미가 아니라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준 D씨는 자작나무회의 수장이다. 용주골 성노동자 모임 ‘자작나무회’는 용주골 자작나무회의 카카오톡 채팅방에 정체 모를 파주시 측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들어와 훼방을 놓거나 도움을 주겠다며 다가온 인권단체가 시청 측의 지원을 받도록 유도하기도 하며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뿐만 아니라 그의 고충은 의외의 곳에서도 존재했다.
“단체들에 연락을 했어요. 계속해서 문을 두들겼어요. 시위나 농성을 해본 경험이 없으니 단체들의 도움이 필요했죠. 여성단체는 물론이고 닿는 단체에 모두 연락했어요. 심지어는 신남성연대에까지 연락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단체들은 저희 편이 아니었어요. 저희의 요청을 무시하거나 무시하지 않더라도 폐쇄에 응하게끔 유도했죠”
성매매 종사자들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단체에조차도 도움을 받지 못했을까. 왜 아무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을까. 이유는 뻔하다. 용주골 사람들은 사라져야 할, 없어져야 할, 지워져야 할 ‘창녀’니까.사회의 악, 음지의 존재, 더러운 몸. 여성의 수치.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것. 이 모든 부정적 수식어에도 하나 확실한 것은 “사회는 그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며, 그들의 존재를 되돌릴 순 없다” 30
사회에서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인류학자 김현정의 저서 「사람, 장소, 환대」의 문구가 이를 설명한다.”
”우리를 사람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 사회란 다름 아닌 이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뒤이어 저자는 같은 저서에서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 혹은 사회 안에 있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이다. 자리를 준다/인정한다는 것은 그 자리에 딸린 권리들을 준다/인정한다는 뜻이다. 또는 권리를 주장할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환대받음에 의해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권리들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창녀’는 사람이 아니고, 환대받지 못하며, 자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권리가 없는 존재이다. 아니, 정정한다. 우리 사회는 ‘창녀’를 사람이 아니고, 환대받지 못하며, 자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권리가 없는 존재로 만드는 공간이다. 그런데 왜 창녀는 사람이면 안 되는가? 성매매가 불법이라서? 그렇다면 불법이 아니게 되면 없던 사람으로서의 인정이 생겨날 것인가? 성(性)을 재화로 사용하여서? 모든 노동은 개인의 몸을 재화로 사용하지 않는가. 그럼 찾아보자. 창녀를 사람으로 대우하여야 할 이유를.
개미를 둘러싼 사람들
성매매는 무엇인가. 페이강간, 영혼을 파괴하는 행위, 일상화된 성폭력의 산물.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국가 차원의 성매매 산업 통제는 새로운 막을 열었다. 「성매매특별법」을 통해 처벌과 통제가 이루어지고, 성매매 산업을 폭력으로 규정하며 철폐를 지향하는 반성매매론이 성매매 담론에서 절대적인 방향성이 되면서 대부분의 여성단체, 공권력, 사회적 담론 등 모두가 성매매 ‘철폐’를 외치기 시작했다. 모두가 성매매 산업이 사라지는 것이 여성이 ‘영혼을 파괴당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여겼다. 그리고 ‘이미 영혼이 파괴당한’ 이들은 ‘피해자’로 명명될 기회를 얻었다. 국가가 정한 규범에 속하기만 하면, 그들은 처벌을 피할 수 있는 ‘피해자’로 그 수많은 낙인과 혐오를 피하고, 동정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들의 영혼은 국가에 달린 것이다.
정말이지 아이러니하다. 국가의 구제를 받을 수 있는 ‘피해자’가 되기 위해서는 ‘피해자’로서 인정받아야만 하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증명하고, 순종해야 했다. 「성매매특별법」은 성매매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실상은 불쌍하고, 억지로 더럽혀진, 가련한 ‘피해자’가 맞는지 재단하고, 탈락한 이들은 처벌하는 또 다른 억압으로 작동하고 있다. 보호라는 이름의 ‘피해자’를 향한 동정은 개인만을 대상으로 한다. ‘어쩔 수 없이’ 성매매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들으면 동정하며 시혜적인 태도의 이해를 보여주지만, 성매매 종사자라는 집단은 도덕성 없는, 허영심 많은, 세금을 내지 않는, 더러운, 없애야 하는 사회의 악이 된다. 성매매 종사자에게 달라붙는 수식어는 다양하기도 하다. 다름 아닌 우리 사회로부터 나온 것들이다.
개미의 존재감
사회가 성매매 종사자에게 자신도 모르게 붙인 양가적 수식어는 사회가 외면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성매매 산업은 젠더, 계급, 노동, 빈곤, 자본 등 무수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사회의 가장 복잡한 실타래이며, 사회의 핵심을 관통하는 판도라 31다. “성매매는 나쁘다”는 단편적인 논리로는 성매매 산업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없다. 성매매 종사자, 성구매자, 고용주 및 알선자, 주변 상권 상인, 성매매 종사자의 가족, 정치인 그리고 국가까지. 애초에 성매매 산업은 국가와 국가 구성원의 이해관계와 함께 성장했다. 그런 존재를 편협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통제하려는 시도는 애초에 실현 가능한 것이 아니다. 단순히 성매매 ‘피해자’를 구원하겠다는 일방적인 해결 방식으로는 그들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개미면 안 되나?
근절, 착취, 보호. 이 전략이 이 자체가 옳지 않기 때문이라 절대 볼 수 없다. 남성우위적 성별화된 사회경제적 토대의 산물인 성매매 산업으로 여성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매매 산업의 근절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착취와 이에 대한 보호는 계속 해서 논의되어야만 한다. 문제는 성매매 여성의 인권이 “피해자로 구성되어야만 보호되는 인권" 32에 국한된다는 점이다. 보호는 피해자로 구성될 때 이루어지고, 착취는 인정된다. 앞에서 계속 언급한 것처럼 성매매 종사자는 단순히 ‘피해자’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성매매 산업을 입체적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면 당연히 성매매 종사자 또한 입체적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단순히 ‘영혼이 파괴된 피해자’가 아니다. 그들은 피해자 이전에 사람이다. 사람이라는 의미는 인권을 가졌다는 것이고, 인권은 조건부가 아니어야 한다.
개미의 흐름
‘성매매 여성도 사람이다.’, ‘성매매 여성도 인권을 가진 존재이다.’는 말은 어쩌면 낯설게 느껴진다. 근절, 착취, 보호에 대한 논의가 우선시되어 정작 그 대상자들의 권리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왔다. 되려 성매매를 미화, 찬성한다는 의미로 변질되어 받아들여지기까지 했다. 계속 강조하듯 이 권리는 성매매 산업이 유지되어야 할 권리가 아니다. 성매매 종사자들의 권리이며, ‘범죄자’와 ‘피해자’이기 전에 ‘보편적 사회 구성원 중 하나’라는 인식을 토대로 그들을 대우하자는 의미이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사자들은 지금까지 무엇을 말해왔는가.
앞에서 언급했듯 2002년 군산의 성매매 종사자들이 화재로 사망한 두 사건은 「성매매특별법」의 배경이 됐다. 이중으로 잠긴 건물에서 감금과 착취가 이어지다 잠금장치로 인해 화재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끝을 맺은 성매매 종사자들의 이야기가 퍼지며 성매매 여성착취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러나 계속 언급하듯 성매매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성매매특별법」에는 큰 맹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성매매 ‘피해자’만이 「성매매특별법」의 보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다시 말해, ‘비자발적’인 성판매를 증명한 이들만이 ‘보호’라는 이름의 ‘처벌 예외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외 ‘자발적’인 성매매 ‘판매자’는 처벌 대상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는 성매매 종사자 여성들에게 즉각적인 영향을 주었다.
2008년 10월 31일과 11월 1일, 장안동 안마시술소의 여성 종업원 두 명이 잇따라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31일에 고인이 된 여성 종업원의 경우, 경찰 단속으로 영업 중단된 안마시술소에서 근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고인의 방에서는 경찰의 집중 단속을 원망하는 내용의 메모가 발견됐다. 뒤이어 고인이 된 여성 종업원은 종이티슈 박스에 “(경찰이) 좀 기다려주지 왜 이렇게 단속을 서두르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확인된다. 고인은 경찰의 단속으로 근무하던 업소가 폐업하여 생활고를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
성매매 산업 밖의 국가와 단체는 성매매 종사자가 「성매매특별법」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되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성매매 집결지에 대한 단속을 골자로 하는 「성매매특별법」의 시행은 성매매 종사자의 생계를 위협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성매매 산업으로 인해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여성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성매매특별법」이 되려 성매매 종사자들을 ‘피해자’와 ‘판매자’로 나누어 처벌 여부를 결정하여 성매매 종사자를 향한 또 다른 형태의 위협으로 작동하며 그 결과 이에 반발하는 ‘성노동자’ 집단이 등장했다. 아니, 원래도 존재했으나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성노동자운동은 역설적이게도 "성판매 여성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제정된 성매매방지법으로 인해 촉발됐다. 2004년 9월 23일,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자 정부는 집창촌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단속에 돌입했다. 언론은 연일 '불 꺼진 홍등가'를 대서특필하며 성매매특별법의 효과를 점쳤고, 새로운 법이 과연 성매매를 '없앨' 수 있을지 여부는 전 국민적인 관심사가 됐다. 그러나 집창촌을 중심으로 한 단속은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던 사람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 '사람들'에는 집창촌의 업주들, 주변 상인들, 성구매자 남성들뿐만 아니라 성매매방 지법에서 '성매매피해여성'으로 규정한 성판매 여성들도 포함됐다. 33
이에 2004년 9월부터 성매매특별법에 반대하는 시위가 연일 일어났다. 9월 23일,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집창촌(미아리 텍사스 34)의 성매매 종사자 여성 500여 명이 생계 보장 및 유예기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것을 시작으로 집창촌 성판매 여성들의 시위가 전국적으로 퍼져갔다. 각 지역에서 산발적인 시위가 이어졌으며, 마침내 10월 7일, 전국 12개 지역에서 모인 3,000여 명이 국회 앞에서 생존권 보장과 「성매매특별법」의 폐지를 주장했다. 이후 11월 1일 전국 17개 집창촌의 성판매 여성을 대표하는 '한터전국여종사자연맹'이 출범했다. 집창촌 성판매 여성들의 시위는 10월 7일, 10월 19일, 11월 11일 세 차례에 걸쳐 국회 앞에서 대규모연대시위 이후 73일 동안의 국회 앞 릴레이 단식농성, 삭발 시위, 소복 농성 등 한 여연 임원진 중심의 소규모 장기 농성으로 전환했다. 또한, 2005년 '세계여성행진' 참여, '세계여성학대회' 참석 및 발표 등 활동의 범위 와 방식을 다변화하기도 했다. 35
이러한 움직임은 성매매를 ‘성노동’으로 개념화하려는 운동으로 이어졌다. '여성의 피해'를 강조하는 반성매매운동 진영은 성매매 '근절'을 주장했고, '생존권'을 주장하는 성노동운동 진영은 성매매의 '합법화' 혹은 '비범죄화'를 주장했다. 여성들 간의 분열과 대립으로 보이는 성매매를 둘러싼 논쟁과 투쟁들은, 성매매가 결코 단순하게 이해될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36
‘성노동(Sex Work)은 단순히 어떤 종류의 노동이라는 뜻을 지닌 용어가 아니다. ‘노동’이란, 합법적인 산업의 구조 안에서 수행되는 일이자, 그 자체로 신성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고 인식해온 사회에서 ‘성노동’이라는 단어는 가치를 부여해서는 안 되는 일에 노동으로서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으로 여겨져 더욱 경계의 대상이 됐다. ‘성노동’이라는 명칭의 사용은 노동이 좋은 것, 재미있는 것이라거나 심지어 해롭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며, 노동이 본질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성노동을 노동권의 관점에서 파악하려는 노력이 노동 그 자체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를 함의하려는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를 옹호하려는 것도, 더 크고 수익성 있는 성산업을 옹호하려는 것도 아니다. 37성노동자들의 ‘성노동은 노동(Sex Work is work)’이라는 주장은 권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2005년 8월 평택 소재 집창촌 성매매 종사자들이 독자적으로 결성한 ‘민주성노동자연대’는 성매매를 성노동으로 재규정하며, 반성매매운동이 성매매에 부가된 도덕적 낙인을 지우고 기업화된 성매매의 메커니즘을 드러내기 위해 매춘을 매매춘으로, 매매춘을 성매매로 고쳐 부를 것을 주장했다면, 성노동자운동은 성을 파는 여성들의 행위성 및 그녀들의 계급적 위치를 드러내기 위해 '성노동', '성노동자'라 명할 것이라 선언했다. 명명하기(naming)는 한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주체/대상을 재정의하여 주체/대상을 재구성함과 동시에 그 사회의 이데올로기와 사회구조의 모순을 폭로하는 정치적 행위이다. 그들은 ‘성매매피해여성’이라는 칭호가 “성노동의 현장에서 성노동자들이 주체가 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거부한다.” 38
성노동자라는 명명은 이런 의미를 가진다. 성매매 종사자를 위해 만들어진 「성매매특별법」이 되려 릴레이 단식농성, 삭발 시위, 소복 농성 등을 낳으며 성노동자운동을 촉발시킨 것은 「성매매특별법」이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민성노련은 더 나아가 성매매를 성적 자기결정권의 자기결정권의 차원으로 “돈을 주고 성을 사고 안 사고는 성인들의 자기성적결정권에 관한 것으로 국가가 개입할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39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서 초점을 맞춰야 하는 부분은 ‘국가가 개입할 성격의 문제’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성매매를 다루는 태도가 성매매 종사자에게 어떤 영향을, 얼마나 미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개미굴을 막는 사람들
각 국가 별로 채택한 성매매 모델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금지주의(panelization, 불법화), 부분적 금지주의(neo-abolitionism, 노르딕 모델-수요 차단을 위한 구매자 처벌-), 국가규제주의(legalization, 합법화), 비범죄화(decriminalization, 규제 철폐)가 그것이다.
먼저, 한국, 중국, 러시아 등이 해당되는 금지주의는 성매매를 둘러싼 성매매 종사자, 성구매자, 지역 슬럼화와 같은 반복되는 부정적 영향의 프랙탈 구조를 근절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성매매를 범죄로 규정하면서 성매매와 관련된 모든 이, 즉 판매자와 구매자, 알선자 등 모두를 처벌한다. 한국의 경우, 2004년 제정된 「성매매처벌법」을 제정하면서 기존의 「윤락행위등방지법」과는 달리 ‘성매매피해자’라는 개념을 새롭게 도입하고 있다. 현행법은 성매매여성과 관련하여 성매매범죄자와 성매매피해자로 양분하여 전자에 대해서만 형사처벌을 가하는 이원적 입법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성매매를 한 경우에 있어서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형사처벌의 대상인 범죄자가 아니라 피해자로서 보호의대상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은 성매매피해자의 인권과 권리보호의 측면에서 볼 때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40그러나 여기서 이원적 입법주의 하에 ‘일정한 요건’을 채워야 ‘성매매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할 경우 ‘성판매자’가 되어 처벌대상으로 여겨진다. 또한 성매매특별법의 성매매 종사자 보호 제도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구별 기준으로서 작용한다. 그 기준에서 탈락한 ‘성판매자’의 탄압 명분으로 작동되는 모순적 상황은 지속적으로 문제시 됐다. 해당 사례로 2014년 티켓다방에서 근무하던 20대 여성이 6층에서 투신해 사망한 사건 41, 2016년 40대 여성이 함정수사 과정에서 3층에서 투신 사건과 성매매피해자성을 재단하는 금지주의는 42성매매여성에 대하여 성매매피해자로써의 인정 여부를 검토해 보기에 앞서 성매매사범의 일종으로 파악하여 범죄자로 취급하는 원인으로서 작동하고 있다는 실질적 폐해가 존재한다. 이런 폐해의 근본적인 기저에는 현행법상의 규정이 지나치게 피해자성을 협소하게 규정하기에 발생한다. 「성매매특별법」의 ‘성매매피해자’ 규정이 일반범죄피해자에 비해 넓은 피해자 개념을 인정한다고 평가한다고 하나, 다양한 사유와 경로로 성매매에 유입되는 여성들이 복합적으로 겪는 물리적, 경제적, 사회심리적 피해가 그 규범 내에서 명확히 재단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해석론 및 입법론적 문제점이 금지주의에 대한 반발을 낳고 있다.
아일랜드, 캐나다 등이 채택하고 있는 성매매 수요차단 모델(노르딕 또는 스웨덴 모델)이라고도 불리는 부분적 금지주의(이후 노르딕 모델로 칭함)는 금지주의의 성매매 피해여성의 인권보호에 관하여 미흡한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대부분의 국내 성매매단체가 표방하고 있는 모델이다. 사람의 성을 수단화·상품화하지 않는 것은 우리 공동체가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에 43 성의 수단화, 상품화를 목적으로 하는 성매매는 금지되어야 하며, 차별과 낙인, 인권침해를 감수해야 하는 성매매여성의 인권보호를 위하여 현재의 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스웨덴이 최초로 노르딕 모델을 발굴하며 제정하게 된 과정은 다음과 같다. 19세기 후반 당시 스웨덴은 성매매 종사자를 성병 감염원으로 여기며 관리 및 통제(regulation)했다. 그러나 성매매를 “여성에 대한 폭력”의 문제로 인식하고, 성판매 여성을 남성의 욕구와 사회구조적인 폭력에 대한 피해자로 인식하게 되면서 성매매 관련 법률제정을 시도하게 됐다. 이에 1919년 관리정책을 폐지하고 성판매와 성구매는 불처벌하되 성매매와 관련된 문제들, 곧 제3자에 의한 알선과 착취, 광고, 호객행위 등만 처벌하는 폐지정책(abolition)을 제정했다. 44 이 정책 또한 1970년대부터 반대를 직면하였는데, 젠더 불평등에 대한 담론이 활성화되며 스웨덴 내에서 성매매는 복지국가의 불완전함을 나타내는 증거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성매매가 존재하는 한 시민들이 충분히 평등하지 않다는 인식이 형성된 것이다. 45이에 1977년 대도시 말뫼(Malmö)에서 복지 실험이 이루어졌고, 같은 년도 스웨덴 중앙정부에서 〈성매매 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성매매 비범죄화와 성구매자 처벌 정책이 떠올랐으나, 기존의 성매매 폐지정책은 유지됐다. 46
이후 성매매정책에 관하여 1982년부터 50개가 넘는 성매매 관련 법안이 제출되었는데, 1983년부터 1993년까지 성매매범죄화에 대한 50여개 입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는데 대부분 구매자만을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하였다. 47 1993년 설치된 <여성폭력 특별위원회>의 성구매자 징역 처벌을 내용으로 하는 여성폭력방지법안 또한 제안 48되었고, 법안의 방향성에 대하여 첨예하게 대립한 끝에 결국 성구매자 처벌을 내용으로 하는 법안〈Punter 49 law성서비스구매자법〉이 통과됐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세계 최초로 노르딕 모델이 탄생하면서 스웨덴은 젠더 평등과 도덕성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뿐만 아니라, 스웨덴은 노르딕 모델을 수출하기 위해 논문, 영화 등의 관련 문서를 제작하며 세미나, 워크숍 등을 기반으로 담론 형성을 위해 노력했다. 이런 영향으로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캐나다 등이 성구매자 처벌을 기반으로 하는 노르딕 모델을 제정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제정된 노르딕 모델은 성구매자를 처벌하여 수요를 차단하는 방법으로 성매매 산업을 근절하고자 한다. ‘성판매자’를 처벌하지 않음으로써 성매매 종사자의 생존권과 인권을 보장한다고 여겨지기에 도적 차원에서 이상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단순히 수요 차단만을 바라보고 국내에 노르딕 모델을 도입하기에는 짚어보아야만 하는 부분이 있다.
먼저, 성매매 산업의 발전 과정에서 큰 차이가 존재한다. 노르딕 모델은 스웨덴과 같이 완전한 사회복지국가 내에서보호되지 않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전략으로 파악된다. 즉, 성매매 유입동기가 ‘돈’에 있지않는 사회형태에 보다 유효한 전략인 것이다. 만일 여성의 성매매 동기가 다른 사회에서처럼 ‘돈’으로부터 출발한다면, 편면적 처벌입법의 합의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매우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스웨덴의 구매금지법 입법이 가능했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그 사회구성이 단일민족적 특성이 강하여 이주민자가 그리 많지 않아 인신매매 문제가 여러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지 않고, ▲성매매 시장규모 역시 매우 한정되어 있으며, 남성들의 성매매 구매율 역시 상당히 낮은 사회문화적 환경, 그리고 ▲수준 높은 인권의식 및 성평등한 제도 환경 등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50
반면, 한국의 경우 앞에서 언급했듯 ‘국가가 허락한’ 성매매였다. 단일민족적 특성이 강하다는 공통점은 존재하지만, 국내 성매매 시장 규모는 약 30조 원에 달해 시장규모가 거대하고 51, 여성가족부의 2021년 여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남성 중 42.1%가 성구매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인신매매의 경우 개선의 필요한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미국 국무부의 인신매매 보고서(Trafficking in Persons Report)에서 한국은 2021년도까지 20년 연속 스웨덴과 같은 등급인 1등급을 받았으나, 2022년부터 그 아래 등급인 2등급 52으로 강등됐다(U.S. Department of State, 2022: 328-331). 보고서 내 2등급은 ‘미국의 인신매매 및 폭력 피해자 보호법(Trafficking VictimsProtection Act, TVPA)’의 최소 기준을 모두 충족하지는 못했으나 인신매매범죄의 억제를 위해 노력을 지속하는 수준을 의미한다. 2등급으로 분류된 이유에 대하여 성매매 문제와 이주노동자 강제노동을 들었는데, 이에 대한 근거로 다음을 제시했다. 2020년에 비해 인신매매 관련 기소 건수가 감소된 점, 외국인 성매매 피해자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점, 그리고 성매매 피해자들을 적절한 조사와 서비스 없이 강제 추방시킨 것이 이유이다. 또한, 정부에서 피해자 식별 지침을 적절히 활용하지 않은 점과 법원에서 인신매매 범죄자 대부분에게 벌금, 집행유예 또는 1년 미만의 징역형 등 낮은 수준의 제재를 가한 점도 원인으로 지목됐다(U.S. Department of State, 2022: 328). 53 54마지막으로, 한국의 성불평등지수(GII)는 2022년 191개 국가 중 4위를 차지한 스웨덴과 달리 15위를 기록해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다.
앞에서 언급한 스웨덴의 특성과 높은 여성고용률, 성별 임금 격차 축소 등은 결합하여 ‘공급 차단’을 이루어내었고, 이는 성산업 저발전으로 이어졌다. 또한, 젠더 평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운 사민당 정부, 의회의 40% 이상을 차지한 여성의원과 급진주의 여성운동의 연대, 국민의 압도적 지지가 존재했다.
그러나 한국은 어떠한가. 한국전쟁 이후 베이비 붐을 흡수하지 못한 일자리 시장으로, 저임금과 빈곤으로, 인신매매로 인해 ‘충분한 공급’이 제공되었고, 외환위기 등의 경제 타격으로 국가의 우선순위가 경제 회복이 되면서 젠더 평등과 같은 사회적 인권의식 구성이 불가능했다. 되려 외화벌이 및 경제성장을 위해 성매매 산업을 묵인함으로써 독려했다.
짚어야할 부분은 노르딕 모델 도입 국가와 한국의 차이만이 아니다. 노르딕 모델의 실효성 또한 살펴보아야 한다. 노르딕 모델의 기반인 <Punter law성서비스구매자법>가 제정된 이후로 일부 정부 보고서가 이 법에 대한 평가를 시행했다. 그렇지만 이중 어느 보고서에서도 스웨덴에서 매춘 수치가 줄었다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거리의 매춘은 줄었지만, 그렇다고 여성들이 일하기를 그만두었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서는 곤란하다. 이 법이 통과된 이후로 거리 매춘은 조건이 나빠졌고, 그에 따라 이들 중 일부는 다른 장소 혹은 다른 형태의 성노동으로 전환했다. 마약 중독자들을 포함해서 다른 형태의 일이나 다른 장소로 갈 가능성이 없어 거리에 남은 사람들은 더 열악한 조건에 놓이게 됐다. 대부분의 '착한' 고객들도 거리를 떠나 성적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 ‘보다 덜 눈에 띄는 방식’을 택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인터넷이나 다른 국가로 성매매 원정을 가는 것 말이다. 또한, ‘착한’ 손님의 이탈과 함께 성매매 종사자들은 성매매 종사자들에게 폭력적이거나 위험한 방식으로 성적 서비스를 구매하는 ‘나쁜’ 고객들이 증가했다고 증언한다. 이들은 콘돔 사용을 거부하거나, 손님이 줄어들기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요구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손님이 적어지면서 당연히 가격이 내려가 더 수준 높은 서비스, 많은 노동시간, 이는 국가의 개입이 진행 중인 용주골의 인터뷰에서도 확인된다.
인터뷰어 A씨, C씨에게 손님(성구매자)의 용주골 폐쇄에 대한 반응을 물었을 때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손님들에게 물으니 단골 손님들도 성구매를 그만두지 않고 평택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어차피 그간 그랬던 것처럼 변종 업소가 생길 텐데 없애서 뭐하냐는 반응이다. ”여길 없앤다고 이런 ‘문화’가 없어지지는 않을 텐데. 굳이? 싶다.“라 답했다.”
C씨는 “여기가 없어진다 한들 차피 다른 방식으로 성매매를 할 거다. 변종 업소가 훨씬 (규모가) 심한데 그런 데는 단속을 안 하고 여기를 건드리는 게 이해가 안 간다.”라는 손님의 응답을 전하며 이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용주골이 속한 한국이 노르딕 모델 하에 있지는 않으나 이는 모델의 문제가 아닌 ‘수요 차단’에서 오는 문제이다. 이는 성구매를 원하는 사람이 적어지면 성판매를 원하는 사람이 적어진다는, 즉 ‘수요 감소가 시장의 조정으로 연결된다‘는 가설의 오류에서 온다. 그러나 상상해보라. 사람들이 커피를 먹지 않기 시작한다. 곧바로 스타벅스와 이디야, 폴바셋이 사라질까? 분명 가격을 내리면서 경쟁하거나, 커피 대신 다른 종류의 음료를 만들며 새로운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성매매 시장에 접해보면, 성적 서비스 가격 하락과 더 ’나쁜‘ 서비스의 제공을 요하게 될 것을 예상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사라진 손님들을 충당하기 위해 더 심한 경쟁에 참여해야 하고, 이는 ’나쁜‘ 손님과 ’나쁜‘ 서비스를 낳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수요 차단’의 효과를 믿는 노르딕 모델과 금지주의 모델 모두 ‘제대로’ 작동하고 있으나, 성매매 종사자들의 탈성매매가 아니라 더 이들을 더 가난하고, 불안정하고, 위험하게 만들고 있는 이유이다. 이는 스웨덴 정부의 반인신매매 부서장 앤 마틴Ann Martin도 이 사실을 인정했다.
“물론 나는 성구매 금지법이 성매매prostitution 55여성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또한 우리가 법을 통해 보려고 했던 효과의 일부다. 밖에 나가 성을 파는 것이 예전만큼 쉬워져서는 안 된다.” 56
‘수요 근절’은 판매자를 더 심한 경쟁으로 들이밀고, 가난하게 만들며, 성매매가 아닌 선택지가 없는 이들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고, 고객과의 싸움에서 힘을 잃게 만든다. 다시 말해, 나쁜 것들이 더 나빠지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앤 마틴Ann Martin이 증언하였듯, 법을 제정한 이들은 이를 예상했다. 이 ‘나쁜 것’들이 성매매 종사자들의 생존권과 직결되어 악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고서도 시행한 것이다.
나쁘고, 나쁘고, 나쁜 것들 사이에서. 나쁜 것들을 낳는 ‘정말로 나쁜 것’들에 의해서. 사회에서 유일하게 ‘나쁜 것’으로 여겨지는 이들. 그들의 이름은, 어쩔 때는 창녀, 매춘부. 또는, ‘성노동자’.
개미에게 우호적인
'수요 근절'이라는 공통분모 아래서 두 가지 모델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어질 두 모델은 이와 달리 성판매를 ‘노동’으로 본다. 살펴보기에 앞서, 다음 모델들이 앞의 모델과 달리 성매매 종사자의 입장에서 아주 긍정적이거나 도움이 되며, 결점이 없다는 의미로 서술하지 않았음을 먼저 알린다. 이렇게 짚고 넘어가는 이유는 보통 이 두 모델들이 특정 집단에게 아주 호의적이거나, 호의적이기 위해 성매매 산업의 폐해에 관심이 없다는 오해를 받기 때문이다.
국가규제주의(legalization, 합법화)는 성매매를 적법한 산업이자 경제활동으로 인정하고 있다. 단순 ‘합법’이 아니라, 국가규제주의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성매매를 국가의 규제 하에 두어 통제하고자 한다. 국가가 성산업을 제도의 영역 안에 넣어서 법적 규제를 통해 범죄, 공공질서 등을 관리하겠다는 의미이다. 이를 위해 성매매 산업을 다른 산업과 구분하여 성매매에만 적용되는 특정한 규제들을 만들어낸다. 57네덜란드,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이 채택하였는데, 뉴질랜드 사례를 통해 더욱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네덜란드는 2000년 10월 1일 매춘업소 금지를 해제하면서 합법화의 시작을 알렸다. 성매매업소 및 종사자에 대한 허가증제(라이센싱)을 도입하여 성매 매업소 및 종사자는 신분증을 소지하여야 하고, 자치단체에 등록하도록 하였다. 대상자들은 세금의 의무를 지고, 영업조건과 환경 준수 여부에 대해 자치단체가 규제권을 가지며, 영업시간은 일정하게 제한하였다. 58 이러한 내용의 합법화의 목표는 다음과 같았다.
1. 자발적인 성매매자에 대한 착취 금지 및 통제
2. 강제적 성매매 금지 및 처벌
3. 성적 학대로부터 미성년자의 보호
4. 성판매 여성의 지위 보호
5. 성매매와 범죄와의 연계 차단
6. 불법 체류 오국인들에 의한 성매매 유입의 감소
목표는 실현되었을까. 성매매합법화 이후 네덜란드 법무부의 과학적 조사 및 문서센터(Scientific Research and Documentation Centre of the Ministry of Justice: WODC)는 2002년, 2007년 그리고 2015년에 성산업의 실태를 진단하는 평가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를 통해 네덜란드 성매매 합법화 문제점을 살펴볼 수 있다.
2007년 보고서는 네덜란드 정부가 성매매를 합법화하며 제시한 여섯 가지 목표를 어느 정도 충족하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작성되었다. 59 보고서에 따르면, 3번을 제외하고는 목표 달성에 성공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 첫 번째 목표인 성매매의 통제와 규제에 관해서는 성산업이 여전히 커플클럽, 사우나, 마사지업소, 거리성매매 등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두 번째 목표인 비자발적 성매매와 성매매 착취금지와 관련해서 비자발적 성매매의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결과가 제시되었다. 즉, 종사자들의 비자발성의 개념 정의가 어렵고, 그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비자발성인지를 판단하기 곤란하다는 것이다. 세 번째 목표인 18세 미만의 미성년자 고용의 철폐는 거의 달성하였으며, 이는 경찰이 허가증을 받은 성매매업소를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조사를 벌인 것이 주효하였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반대로 성매매업소 허가증을 받지 않은 경우나 거리형 성매매인 경우 미성년자가 어느 정도 일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파악을 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네 번째 목표인 성매매 여성의 법적 지위를 보호하는 것은 현저한 개선이 보이지 않았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오히려 성판매 여성의 정서적인 면은 더욱 나빠졌고, 성매 매업소를 떠나고 싶은 희망자들 중 단지 약 6%만이 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다섯 번째 목표인 성매매산업과 그 주변의 범죄와의 연결고리를 차단한다는 전략은 결과를 통계적으로 제시하기 어렵다는 부정적 평가가 내려졌다. 이는 자치단체가 형사상 범죄 및 세금체납 등의 문제 등 법적 조치를 이행하지 않는 성매매업소의 면허발급을 거부할 수 있는 명확한 법적 권한을 담은 행정당국감사법 (Public Administration Probity Screening Act)이 아직 제정되지 못하였기 때문으로 나타났다. 여섯 번째로 성매매 산업에 불법이민자 등의 종사를 감소시키겠다는 목표는 통계적으로는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이 역시 명확한 판단을 유보하였다. 조사대상인 허가증을 받은 성매매업소에 종사하는 여성은 법적으로 허가증을 받을 수 있는 네덜란드출신이거나 EEA(유럽경제지역) 국가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보고서는 성매매 종사자 대부분 네덜란드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EEA(유럽경제지역) 국가 출신들이라는 점에서 성노동 직업을 목적으로 네덜란드에 유입되는 종사자들이 늘어나는 문제점을 발견했다. 60
물론 네덜란드의 사례가 한국과 완전히 일치하리라 생각할 수는 없다. 성산업 형태와 규모, 불법이민자, 국민성 등 경제산업적으로도, 사회문화적으로도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두 번째 목표에서 살펴볼 수 있는 ‘비자발적 성매매의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모호성.
“이 여성이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했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그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형태의 자발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기결정권은 개인에게 달려있지 않다. 그 성매매에서의 자기결정권의 행사를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은 한 사회가 성매매 여성이 실질적으로 자유롭게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최소한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여성이 성매매로 유입되지는 않을 정도의 사회적 안전망을 갖춘 사회이고, 여성이 비교적 자유롭게 언제, 어느 조건으로, 그리고 어떠한 방식으로 성매매를 할지를 결정할 수 있으며, 언제든지 그의 선택을 바꿀 수 있음이 민·형사법적으로 어느 수준 이상 보장 가능하다고 전제되어야 한다. 한 사회에서 이러한 전 제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경우 성매매 결정이 개인의 자유로운 결정의 산물로 볼 수 없으며, 자발성과 강제성의 경계가 매우 모호하여진다. 그러한 사회에서의 성매매는 형식적으로는 자기결정에 기초할 수 있을지라도, 실질적으로 보면 자기결정에 기초하지 않은 강제성매매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에서 자발성이 성매매 피해의 기준으로 적합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61
이미 많은 연구에서 여성들의 한국 성매매 산업 유입 요인에 대해 밝혔다. 빈곤 62, 가출 63,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64, 인신매매 65등이 대표적 원인이다. 2011년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전국 성매매 피해자 지원 시설에 입소한 여성 4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성매매피해여성의 정신 건강 및 지원 욕구 조사 66’라고 연구에서 정의했다. 또한, 김창군 교수는 ‘가벌적인 행위양태의 숫자를 감소시킬 목적으로 일정한 행위 양태의 불법내용을 법정책적으로 달리 평가하여 당해 행위양태를 더 이상 제재하지 않거나 혹은 가볍게 제재하는 절차 67’로 한다. 임웅 교수는 ‘종래 범죄로 취급되던 일정한 인간행태에 관하여 형사정 책상의 변화가 옴으로써 국가형벌권(sttatliche Strafugnis) 행사의 범위를 축소시킬 의도로 일정한 형사제재 규정을 사실상 적용하지 않거나 형사제재를 보다 가볍게 하려는 모든 시도 68’로 정의한다. 이와 같이 관점에 따라 정의는 다르게 이루어지는데, 본고에서는 유럽평의회 보고서의 ‘일정한 행위태양에 대한 반작용으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형사제도의 권한이 그 특수행위와 관련하여 철회되는 절차 69’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비범죄화 모델의 목표는 성판매자가 낙인과 처벌의 걱정 없이 자유롭게 성적 서비스를 판매할 수 있도록 산업 전체를 ‘비범죄화’하는 것이다. 이들은 성판매자에 대한 폭력을 발생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성판매자 처벌과 낙인이라고 본다. 따라서 성판매를 ‘노동’으로 규정하고 국가 규제를 철폐하면, 성판매자의 삶과 건강에 대한 위협 역시 방지할 수 있다고 본다.
거의 유일한 사례 중 하나인 뉴질랜드의 경우 비범죄화 모델 과정은 다음과 같다. 비범죄화 이전에도 성판매와 성구매 행위 자체는 처벌 대상이 아니었다. 다만 업소 운영, 성매매를 통한 수익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과 성매매 알선을 처벌하는 조항을 「형법」에 두어 제3자의 활동을 금지하였고, 「마사지업소법」으로 호객행위(soliciting)를 금지하는 조항을 두었다. 업소 운영이 불법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성판매자는 마사지 업소에서 성매매를 했고, 결국 1978년에 이를 규제하기 위해 「마사지업소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모든 마사지업소가 등록증(license)를 받도록 하고, 약물 혹은 성매매와 관련된 범죄이력이 있는 사람을 고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마사지업소법」은 또한 해당 업소에 일하는 사람들의 정보를 기록해 각 업소에서 약물이나 성매매 관련 범죄 경력이 있는 ‘마사지사’가 없는지 확인했다. 70
성판매자에 대한 경찰의 단속은 주로 호객행위 금지 조항에 기반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힐리·베나치·리드(Healy, Bennachie & Reed, 2010: 45)는 경찰이 ‘공공장소에서의 호객행위’ 단속을 이유로 길거리나 업소에서 일하는 성판매자에 대해 잠복수사를 실시함으로써, 이들을 오히려 더 열악한 상황으로 몰아갔다고 설명한다.[footnote] ibid. [/footnote] 성매매와 관련한 범죄이력이 성판매자 신상정보에 등록된 경우 이들은 약 10년간 마사지 업소에 취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호객행위 금지와 「마사지업소법」이 실질적으로 성판매자를 범죄화하는 결과를 낳음으로써 이들에 대한 착취를 지속시키고 건강을 위협한다는 비판이 뉴질랜드성판매자연합(New Zealand Prostitutes’ Collecive, NZPC)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다. 그리고 이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마련된 「성매매개혁법」 역시 ‘성노동’의 모든 영역을 ‘비범죄화’한다는 측면을 강조하는 방향을 취했다. 71가 72 2003년에 법이 제정된 뉴질랜드와 2022년 제정되어 아직 관련 자료가 부족한 벨기에밖에 없기 때문이고, 뉴질랜드 또한 「성매매개혁법」에서 업소 점검 조항, 성판매 의무규정, 처벌 조항 등 등을 제시하고 있기에 ‘국가규제주의’의 스펙트럼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며, 비범죄화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국가규제주의로 분류되는 독일 또한 비범죄화 과정을 밟았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73그러나 최초로 전면 비범죄화를 도입한 국가인 것은 사실이며, 비범죄화가 도입되는 과도기적 혼란이기에 비범죄화 국가로 분류했음을 밝혀둔다.
뉴질랜드가 비범죄화 모델 대부분의 자료를 차지하고, ‘거의’ 유일하기에 비범죄화 모델과 뉴질랜드 사례가 혼용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뉴질랜드가 비범죄화 전환 후 겪은 문제점이 비범죄화 모델이기에 나타난 것이 아닐 수 있으며, 되려 범죄화의 잔재가 드러난 경우일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함을 짚어 둔다. 아벨·피츠제럴드·브랙턴(Abel, Fitzgerald & Brunton, 2009)이 뉴질랜드 5개 지역에서 성노동자 수 변화에 대해 조사한 결과 거의 변화가 없는 것(little impact)으로 나타나 비범죄화 이후 성노동자 수가 급증할 것이란 많은 우려를 뒤집었다. 74 하지만 미국 국무부의 인신매매 보고서가 지속적으로 성착취 목적의 인신매매와 소수 민족과 LGBTGIA+, 이주민 등 취약층 보호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는 것과 같은 문제는 이어지고 있다 75. 또한, 아벨·피츠제럴드·브랙턴(Abel, Fitzgerald & Brunton, 2007)의 다른 연구에서 실시한 ‘지난 1년간 일하는 동안 겪은 부정적 사건’ 조사(Adverse experiences whilst working in the last 12 months)에 따르면 응답자(766명)의 3퍼센트는 지난 1년간 고객에게 성폭행을 당한 적(Been raped by a client)이 있으며, 67.9%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76같은 주제로 한 인터뷰에서 디(Dee)는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경찰서에 가기 더 쉬워진 것 같지만, 내가 갈 거라 생각하지는 않아요. 어떤 일이 벌어지냐에 따라 달렸지만. 내 말은, 그런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아무런 일도. 당신도 알겠지만, 음, (...) 내가 말했듯이, 나쁜 일이 무엇이냐에 달렸죠, 당신도 알듯이. 지금까지 저는 운이 좋았어요. 귀찮은 일이 되겠죠? 그게 나쁘게 풀릴지, 잘 풀릴지, 내 방식대로 풀릴 수 있을지 그리고 우선 내 이름을 신문에서 숨길 수 있을지, 알죠? 정말 기분이 나쁠 것 같아... 왜냐하면 사람들이 “아, 나 저 사람 알아. 저 이름 알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내가 어떤 일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봐, 내가 맞았어. 내가 제대로 들었어. 봐, 내가 창녀일 줄 알았어.'라고 할 수도 있고요. 77
뉴질랜드에서 보여지는 개선 사항에도 불구하고 비범죄화가 가지는 의의는 크다. 2014년 뉴질랜드에서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던 성노동자가 성희롱을 일삼은 업주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해서 승리했는데,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성노동자들은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처럼 성희롱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 성노동자에게도 다른 노동자와 똑같이 인권이 있다.” 78
그래, 인권이 있다. 의의는 여기서 나온다.
성매매에 대한 논쟁은 오랫동안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반성매매(또는 성착취) 입장이냐, 성노동론자냐’라는 식의 구도로 입장을 묻는 질문이 반복되었고, ‘성매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논의할 때면 금지주의와 노르딕 모델, 합법화, 비범죄화 중 하나의 모델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처럼 논의되기도 했다. 그 와중에 ‘성노동’이라는 개념은 여러모로 논쟁의 대상이었다. ‘성노동’이라는 개념은 성매매에 ‘노동’이라는 단어를 붙임으로써 성을 사고파는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인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처럼 여겨졌고, 성착취의 문제를 가리는 전략이라며 비판받았다. 더구나 ‘노동’이란, 합법적인 산업의 구조 안에서 수행되는 일이자, 그 자체로 신성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고 인식해온 사회에서 ‘성노동’이라는 단어는 가치를 부여해서는 안 되는 일에 노동으로서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으로 여겨져 더욱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성매매를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성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노동자로 인정되어서는 안 되었고, 오직 피해자로서 인정될 때만이 최소한의 사법적, 제도적 구제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애초에 성노동이라는 단어는 성노동자 당사자에게서 나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성노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포주의 입장을 대변하는 행위처럼 치부되기도 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섹슈얼리티 통제와 성노동자를 향한 오랜 낙인에 맞서기 위해 성노동이 다른 노동보다 더 긍정적이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이야기하거나, 의도적으로 성노동에 대한 만족감과 자긍심을 강조하는 경향도 있었다. 이러한 양극단의 논쟁 속에서 각자가 처한 사회경제적 상황과 위치, 성산업의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의 상황에 놓인 성노동자들의 경험과 증언은 맥락이 편집되거나 편향된 방식으로 각각의 주장에 동원되고는 했다. 성매매는 무거운 생각과 깊은 감정을 유발한다. 성을 판매해본 적이 없거나 이를 상징적 용어로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매춘을 생각한다는 것은 노동·남성성·계급·신체가 무엇인지, 전형적인 악행과 처벌은 무엇이며 누가 무엇을 보호하는지, 공동체에서 산다는 것과 그 경계 밖으로 배제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우리를 이끄는 피뢰침 같다. 79
개미가 왔다간 자리
「성매매특별법」 재정 이후 그 반동으로 한국 성매매 산업은 그 유형이 변화하여 집결지와 같은 전통형 성매매는 현저히 줄어들고 룸살롱·안마방과 같은 겸업형 성매매와 SNS, 랜덤채팅 앱 등을 활용한 온라인 성매매까지 변종되어 집결성은 낮아지고, 인터넷 활용도는 높아져 교묘해짐과 동시에 접근성이 높아지고 확산됐다. 점점 더 은밀해지는 성산업의 변화의 끝자락에서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공공연히 눈에 띄게 남아있는 현장이 바로 성매매 집결지다. 가장 명백하게 가시적인 장소이기에 성매매 집결지는 성산업의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다.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다는 뜻은 이곳에서 종사하는 이들이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이들이라는 의미이다. 성매매 종사자들에게 성매매 집결지는 삶터이자 일터이다. 대부분의 종사자들이 연령대가 높은 편이기 때문에 10년 이상 장기간 지낸 경우가 많고, 업소 내에서 의식주 모든 것을 해결한다. 집결지는 이들에게 만남의 장소이자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기반이 되고, 이를 통해 조직적으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 는 기반이다. 이들의 발화에서 파주시의 용주골의 폐쇄 시도는 아무 설명 없이 하루아침에 일자리와 집을 빼앗길 위기로 묘사 된다. 용주골은 용주골 사람들에게 삶이 담긴 공간이지만, 파주시에게는 지워야 할 오점이자 주위 지역을 낙후 시킬 수 있는 혐오시설 및 기피시설이다. 용주골 철거가 다른 파주시나 경기도의 은밀한, 그래서 용주골이 사라져도 그대로 유지되거나 더 커질, 변종 성산업과 달리 다른 오래된 성매매 집결지의 폐쇄라는 성과는 큰 상징성을 가질 것이다. 용주골 철거가 성산업 근절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은 인천 옐로하우스 완전 철거 이후, 일부 업소들이 인천의 ‘여인숙 골목’, 평택 등 다른 집결지로 이동 하거나 소위 ‘오피’라고 칭하는, 오피스텔 내에서 행해지는 성매매로 그 형태를 바꿔 유지되고 있는 실황을 통해 가능하다. 80
용주골이 폐쇄된다면 어떤 변화가 생겨날 것인가. 파주시가 여성친화도시로 탈바꿈될까? 아니면 성산업 규모가 축소될까? 여성들이 더 나은 삶을 살게 될까? 웃기게 들리겠지만 내가 울 것은 확실하다. 필자의 다른 기사를 봤다면 알겠지만 좁고 언덕과 계단을 오르고 올라야 있는 쥐꼬리만한 자취방보다 용주골분들이 내어준 숙소가 더 아늑했다. 용주골 밥은 맛있었고, 정말로 호박전은 내가 인생에서 먹은 음식 중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고, 생일도 그곳에서 보냈다. 건물주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자취방이 허물어지든 날아가버리든 상관없다. 어차피 떠날 곳이기 때문이다. 몸 뉠 곳만 있다면 벌레도 많고 좁아터져서 당장 내일이라도 떠나고 싶다. 그런데 용주골은 다시 돌아올 공간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당장 달려갈 공간. ‘언니’들이 도움을 청하면 바로 경의중앙선을 타고 파주역으로 간다. 낮에는 역에서 다시 버스를 탔고, 버스가 끊긴 새벽에는 ‘삼촌’이 차를 끌고 데리러 와줬다. 그럼 삼삼오오 모여 그 차를 타고 용주골까지 가곤 했다. 그런 용주골은 확실히 사람이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그 무엇도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용주골이 폐쇄되어봤자 사라지는 것은 ‘용주골’이라는 이름뿐이다. 용주골의 흔적이 향하는 그 모든 공간이 용주골이 될 것이다. 용주골이라는 자리는 사회가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자리는 만들어졌고, 그 자리는 메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 존재는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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