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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보기/2022 가을겨울, 83호<현현; 사람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부지(不知)가 부재(不在)가 되지 않게.

by 중앙문화 2022. 12. 27.

2022 가을겨울 83호 <현현; 사람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수습위원 곽경은

 

 

 

“우리 학교는 왜 이렇게 경사진 곳에 있어?”

 

                                                                                                “에스컬레이터 타면 되니까 괜찮아.”

 

“진짜 에스컬레이터 없었으면 학교 어떻게 다니나 몰라.”

                                   

 

“공강이라 시간도 남는데 빼광[각주:1] 갈래?”

                                                                                              “청룡연못 벤치에 앉아 있는 것도 좋고.”

 

 

  캠퍼스 내 건물 간 이동 시간을 줄여주는 에스컬레이터. 캠퍼스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중앙마루와 청룡연못. 이 모든 것은 학교를 다니는 학생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당신은 일상에서 어느 순간 이곳이 불편하게 느껴진 적 없는가? 가만히 ‘서’ 있으면 이동할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는 휠체어를 옮길 수 없다. 잠시 숨 돌리기 위해 찾은 청룡 연못은 바위와 계단을 걸어 내려가야만 비로소 벤치에 앉아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이곳은 정말로 모두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맞을까?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 받을 권리를 가진다.”[각주:2] 

 

  교육은 헌법에서 명시하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당연한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국가는 누구에게나 충분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교육 여건을 개선했고, 갈수록 높아지는 교육열로 인해 대학 진학률은 매해 증가했다. 그리고 2021년, 고등학교의 무상교육이 전면 시행되고[각주:3]그 해 고등교육기관으로의 진학률은 73.7%를 기록했다.[각주:4]그러나 높은 진학률이 반드시 평등한 교육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민국은 OECD 국가 중 최고 대학 진 학률을 보이지만,[각주:5] 장애인의 대학 진학률은 이에 절반도 미치지 못한다. 절반이 무슨 말인가. 2022년 우리나라 특수교육대상 학생 중 대학에 진학한 학생은 20%가 채 되지 않는다.[각주:6] 비장애인의 대학 진학률이 70%를 웃돌 때, 장애인의 70%는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같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더라도 장애학생은 10명 중 단 2명만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다. 8명은 대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이 마련한 좁은 입학의 문을 지나지 못했다. 멀리 눈 돌릴 필요 없이 우리 학교를 보자. 중앙대학교는 2022학년도 수시 모집에서 학생부 종합-고른기회전형을 통해 단 8명의 대상자를 모집했다.[각주:7] 이는 전체 신입학 모집인원[각주:8]의 0.16%에 불과하다. 대학은 ‘고른 기회’를 말하며 열려 있는 대학의 문을 강조한다. 설령 그 문이 바늘구멍만 할지라도 열려 있음에 눈멀어 있다. 입학처의 문을 두드리는 8명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2명의 입학에 만족하는 대학. 이러한 현실을 눈앞에 두고 우리는 과연 평등을 말할 수 있을까?

 

 

우리의 대학은 팬데믹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현재 중앙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 대부분은 비대면 학사일 때의 생활이 더 익숙할 것이다. 특히 비대면 학사로 전환이 이루어지고 입학한 20, 21, 22학번에게 대면 학사는 새로움 그 자체이다. 줌(ZOOM) 에서만 보았던 동기를 강의실에서 만나고 캠퍼스를 거니는 경험은 익숙지 않은 즐거움이 된다. 3년 만에 돌아온 캠퍼스에서 그간의 차이가 가장 크게 와닿는 것으로 ‘학습 방식’과 직접 느끼는 ‘캠퍼스 라이프’를 꼽을 수 있겠다.

 

  코로나19 비대면 수업으로 인해 화두가 된 학습권 침해는 대학생 2,697명의 등록금 반환 소송으로 이어졌다.[각주:9]비록 1심 패소에 그쳤으나 이는 비대면으로 인한 학습의 질 저하를 예리하게 지적했다. 장애학생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수업은 장애인의 고질적인 학습권 침해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올렸다. 지난 2020년 6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장애학생을 배제하는 온라인 강의의 개선을 요구했다.[각주:10] 시각장애인인 전 중앙대학교 장애인권위원회 위원장 정승원 씨(사회학과, 19학번)는 “갑작스러운 팬데믹으로 학습 체계가 바뀌었다”며 “줌, PDF를 비롯한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는 방식이 정립돼 있지 않아서 학습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고려대학교 교수자를 위한 온라인 강의 가이드라인은 청각장애학생이 수강하는 강의에서는 유튜브 자동생성 자막을 이용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유튜브 자동생성 자막의 경우, 발화자의 발음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어 강의에 적합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비대면으로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 제약은 줄어들었지만 온라인 수업으로 발생하는 정보 획득의 어려움을 학교가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비대면 학사가 예상보다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 장애학생의 수업 지원에 차질이 생기기도 했다. 중앙대학교 장애학생지원센터는 “서울 캠퍼스에서는 대체로 수업 도우미 지원이 원활한 편이나, 비대면으로 전환 후 외국어 과목과 이공계열 과목의 수업 도우미 모집에 어려움이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렇듯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시작된 비대면 학사에서 화두가 된 쟁점을 ‘학습권 보장’이라고 한다면, 전면 대면 학사로 복귀한 지금은 다시 ‘교내 이동권 보장’에 목소리 높일 때가 되었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캠퍼스에 주인이 돌아왔으니 캠퍼스 내 이동과 시설 이용이 편리한 지 주목해야 한다. 지난해 12월, 전장연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 △장애인 활동 지원 △장애인 권리 예산 반영을 촉구하며 지하철 시위를 전개했다.[각주:11] 대중교통 장애인 이동 시설 미흡을 지적하며 진행된 출근길 시위는 대학 내 장애학생의 이동권 보장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대면 학사에서는 학생이 강의를 듣기 위해 직접 학교에 오면서 캠퍼스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리적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최소화하기 위해 장애 학생의 이동권, 생활권 개선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환경, 포기할 수 없는 배리어프리

 

▲ 「중앙대학교 서울 캠퍼스 맵」. 중앙대학교 입학처

 

  이동권이 중요해진 현재, 학생들은 어떻게 중앙대학교에서 이동하고 있을까? 주황색 화살표를 따라 정문에서부터 후문까지 학교를 한 바퀴 둘러보자. 정문의 중앙광장을 지나 중앙마루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중앙도서관을 거쳐서 310관 엘리베이터를 통해 후문에 도착했다. 이 짧은 여정에서 우리는 평지와 오르막, 약 20개의 계단과 1번의 에스컬레이터, 그리고 1번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다양한 지형과 수단 을 통해 학교를 지나왔다.

 

  가장 먼저 마주한 중앙마루의 계단은 아무래도 다리를 다쳤다면 걸어가기 힘들어 보인다. 그렇다면 104관 엘리베이터를 통해 위로 올라가자. 바로 앞에 마주치게 될 에스컬레이터는 2022년 3월 완공되어 정문에서 중앙도서관으로 편하게 이동하는 데 공헌했다. 많은 학생이 에스컬레이터가 생긴 이후 운행이 종료되는 시간이 아니면 정문과 후문을 오갈 때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한다. 올해 처음 캠퍼스에 온 강소 연 씨(영어영문학과, 22학번)는 에스컬레이터 없을 때 어떻게 계단을 이용했을지 상상할 수도 없다라고 말한다. 중앙도서관 앞 에스컬레이터는 완공된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았다. 부재(不在)를 생각하기 힘든 에스컬레이터지만 누군가는 이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자동화된 계단 모양의 장치는 바퀴 달린 휠체어가 진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승원 씨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인은 에스컬레이터를 활용하기보다 102관과 103관을 연결하는 포탈(건물 내 엘리베이터)을 주로 이용한다며 처음에는 본인도 혼자서 계단이 오르내리는 타이밍을 맞추기 힘들어서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이동할 수 있는 대상에 제한이 있는 에스컬레이터는 배리어프리 시설이 될 수 없다.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포탈은 건물 안 여러 대의 승강기를 이용하여 다른 건물의 입구로 갈 수 있다. 승강기를 사용하러 가는 건물 내부는 이동에 방해가 되는 가파른 경사가 없기에 이동의 제약이 비교적 적다. 하지만, 현재 중앙대학교는 모든 건물에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101관(영신관)은 중앙대학 교의 역사를 담고 있는 건물이지만 그만큼 건물의 노후화도 상당 부분 진행되어 승강기 설치가 이루어지 지 않았다. 영신관은 입학처를 비롯한 여러 학교 행정부서와 대학교회가 있으나, 승강기가 없어 시설 이 용에 불편함을 자아내고 있다. 또한 건물 밖에서 건물 안으로 곧장 진입하는 승강기는 203관(서라벌홀) 이 유일해 휠체어를 이용자는 건물 간 이동에 상당 시간을 소요하게 된다.

 

  강의실 점자 명판 설치 여부도 마찬가지인 실정이다. 경영경제대학과 사회과학대학, 인문대학 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310관과 303관을 제외한 건물에는 강의실에 점자 명판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건물 내부 승강기에는 점자 버튼이 있어 강의실이 있는 해당 층까지 도착할 수 있다. 그러나 강의실을 찾아갈 수 없다면 그곳은 배리어프리하지 않다.

 

 

▲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배리어프리 지도」. 중앙대학교 장애인권위원회

 

  공간의 장벽을 없애자는 배리어프리에서 환경을 떼어 놓고 생각하기란 어렵다. 그런 점에서 서달산 중턱부터 정상까지의 경사면에 위치한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에는 더욱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100% 완벽한 배리어프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캠퍼스 부지가 가진 환경적 배리어를 극복해야 한다. 학교가 위치한 물리적 공간이 배리어프리와 거리가 먼 만큼 건물 간, 건물 내에서 세부적인 배리어프리의 실현이 중요하다. 정 씨는 건물 사이를 오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증설하고, 점자 버튼이나 시설을 꾸준히 유지 보수할 필요가 있다며 건물 진입로의 경사로와 건물 간 이동할 수 있는 포탈이 물리적 장벽을 낮추는 데 한몫했다고 말했다. 배리어프리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환경이 그래서 어쩔 수 없다”라고 배리어프리를 포기하는 건 변명에 불과하다.

 

 

지레짐작으로 어긋나는 소통?  필요한 것은 이해!

 

  65대 총학생회 선거는 대면 학사의 재개와 함께 ‘학생자치의 부활’이라는 기대로 올 11월의 뜨거운 감자였다. 당월 14일 인권복지위원회와 장애인권위원회는 각 단과대 선거운동본부에 <인권질의서>를 발송 했다.[각주:12] 장애인권 - 시설 관련질문에서 모든 선거운동본부는 경사로 설치 및 확충을 언급했다. 제65대 서울 캠퍼스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당시 그린 선거운동본부(이하 그린 선본)는 교내 배리어프리하지 않다고 생각한 지점과 개선 방안을 묻는 질문에 “정문에서 중문으로 가는 경로가 배리어프리하지 않다”며 “중앙마루에 경사로, 혹은 엘리베이터와 같은 이동 보조 시설 설치를 추진하겠다”라고 답했다.

 

  이후, 18일에 실시된 총학생회 선거 합동공청회에 참여한 전 장애인권위원회장 정승원 씨는 경사로 설치에 관해 중앙마루에 경사로를 설치하는 것은 경사로 이용 주체인 장애학생의 수요와 물리적 가능성 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별표 1] 편의시설의 구조·재질 등에 관한 세부 기준 (제2조 제1항 관련)에 따르면 경사로의 기울기는 1/12 이하로 설치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중앙마루에 휠체어가 이용하기 편리할 만큼의 완만한 1m 경사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12m만큼의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는 총학생회가 장애학생의 실수요를 조사하지 않은 채 경사로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은 비장애인의 시각이라 지적했다. “경사로의 주요 이용 주체인 장애학생은 중앙마루에서 중문으로 이동하기보다 건물 간 이동이 편리한 102관과 105관 사이 포탈(승강기)을 주로 이용한다”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중앙대학교 장애학생지원센터 (이하 센터)의 진진주 전문연구원은 “장애학생의 리프트와 경사로 이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위험성이 승강기를 이용할 때보다 크기 때문에 설치하지 않았다”며 “장애학생이 이용이 편리한 승강기 사용을 더 선호한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사실은 장애인권 관련 공약을 내건 학내 선거운 동본부와 장애학생의 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더불어 그린 선본은 경사로 설치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질문에 경사로 설치가 가능하다는 외부 업체의 확인을 받았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장애학생이 이용하는 시설은 사설 업체가 직접 그의 설계와 시공을 진행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교내 장애인권위원회가 시설물 설치에 관한 민원을 접수하면 센터 내부 간담회 이후, 센터의 시설팀이 업체에 시설물 설치를 의뢰하는 과정을 거친다. 선거운동본부에서 배리어프리 시설물 설치 가능 여부에 대해 소통할 대상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정 씨는 “학교와 총학생회에서 장애인권위원회(이하 장인위)와 인권위원회의 지위와 역할을 제대로 인지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2020년 2월, 장인 위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서명 운동을 통해 마침내 총학생회 산하의 정식 특별자치기구로 출범했다. 현재 장인위는 장애인권대학생네트워크와 연대하여 배리어프리 시설과 인식, 특수교육법과 고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고 있다. 그는 “주체적인 장인위의 활동을 위해서는 장인위의 자치성이 인정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성과로만 장인위의 활동을 평가한다면 그 존재 이유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라 비판했다. 이어 “장애인권위원회가 인권복지위원회의 인권위원회와 같은 특정 기구의 산하 국으로 존속된다면 장인위의 자체적 활동과 재정에 제약이 가해질 것”이라며 장인위의 독립적 지위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애학생이 학교 본부와 직접 소통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이야기했으며, 학교 본부는 장애학생 지원에 대한 모든 것을 장애학생지원센터에 일임한다고 덧붙였다. 정리하자면, 장애학생과 학교는 장애학생지원센터를 가운데 두고 소통하는 것이다. 당사자의 요구와 필요가 직접 학교에 전달되지 못하니, 정책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총학생회와 학교 학생 지원팀에서 장애인권위원회의 입지와 역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 실속 있는 소통을 통해 서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중앙대학교는 어디까지 왔나

 

  학교와 학생이 소통하는 징검다리이자 장애학생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장애학생지원센터를 알아보자. 장애학생지원센터는 장애학생들이 대학 생활에 어려움이 없도록 상담을 통해 수업, 생활, 취업과 관련된 도움을 제공하는 교내 센터이다. 학업 지원으로는 강의 대필, 속기 지원 제도가 있다. 나아가 생활 지원으로는 기숙사 우선 배정 제도와 이동 도우미 지원제도를 통해 학생의 대학 생활 전반에 지원을 제공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센터는 학생과직접 소통한다는 점에서 그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재학 중 센터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정 씨는 학생들과 연구원이 모인 ‘cauable’ (오픈 채팅방)과 개인 상담을 통해 센터와 학생 간의 즉각적인 소통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SNS를 통해 멘토링 프로그램과 회사 인턴 공지를 비롯한 다양한 근로 정보를 제공받기도 한다. 센터는 장애학생의 대학 재학은 물론이고, 졸업 후 진로 결정 의 과정까지 다양한 지원을 제공한다. 또한 전문연구원과의 대면 개별 상담을 통해 라포(rapport)를 형성한다.[각주:13] 전문연구원은 지속적인 대면 상담을 통해 친근하고 학생이 의지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는 장애학생지원센터의 다양한 지원 제도 중 “특히 수업 도우미 제도 중 근로장학생의 강의 지원이 큰 도움이 되었다”며 “SNS를 통해 학습 도우미 모집 공고와 현황을 공유받아 학습 지원 정보를 실시간으로 획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시각장애로 인해 현저히 수강하기 어려운 회계 과목은[각주:14] 특별지원위원회[각주:15]에 소명을 통해 다른 과목으로 대체 수강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한 해가 지나면 장애학생지원센터는 매년 실시하는 서비스 이용만족도 조사를 통해 피드백의 과정을 거치면서 다음 해의 지원에 결과를 반영한다.

 

  교육부에서는 2020년, 장애학생의 안정적인 고등교육권 확보와 개선을 위해 「고등교육법」 제2조[각주:16]에 따라 전국 343개 대학의 423개 캠퍼스의 「2020 장애 대학생 교육복지지원 실태평가」를 진행하였다.[각주:17] 3월부터 12월까지 각 대학이 제출한 ①선발 ②교수·학습 ③ 시설 및 설비 3개 영역에 대한 자체 평가보고 서를 근거로 서면 평가와 현장방문평가, 종합평가 3단계로 평가를 실시하였다. ‘최우수’, ‘우수’, ‘보통’, ‘개선요망’의 네 등급 중 중앙대학교 서울 캠퍼스는 ‘최우수’, 안성 캠퍼스는 ‘우수’로 평가되었다. 423개 의 캠퍼스 중 단 39개의 캠퍼스만 최우수 등급으로 평가받았다. 평가상으로는 장애학생에 대한 교육, 인력, 예산적 지원이 충분히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은 물고기는 잡을 수 없이 구멍이 숭숭 뚫린 그물처럼 장애학생이 일상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세심하게 해소하지는 못했다.

 

 

지극히 당연한, 지극히 일상의

 

  2022년 여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각주:18] 3화 방영분 중 한 등장인물이 이준호 (강태오 분)에게 우영우(박은빈 분)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지금 봉사하는 중이구나!”라고 말한다.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는 이준호의 옆, 우영우는 근무 중이라는 이준호의 말에도 ‘봉사’라고 해석하는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봉사란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쓴다는 의미이다. 이준호와 우영우는 함께 ‘일’을 하러 나온 것이지, 이준호가 자신의 힘을 바쳐 우영우를 위해 ‘봉사’하러 나온 것이 아니다. 보통 변호사가 의뢰인을 만나는 과정에서 변호사 개인을 향한 송무팀 직원의 헌신이 필요하지는 않으니까. 이외에도 드라마에서는 여러 차례 우영우를 오해하는 일이 발생한다. ‘변호사’ 우영우로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보다 ‘장애인’ 우영우로 바라보고 원치 않은 도움의 손길을 뻗고는 한다.

 

  그러나 타자에 의해 도움받는 존재로 규정된 우영우는 타인의 동정심이 필요하지 않다. 이는 드라마 밖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동정심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배려는 되려 불편이 된다. 정승원 씨는 진정한 의미의 배려에 대해 당연하게 일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봉사와 시혜가 아닌 일상이다. 허나, 이 말이 장애인 특별전형이나 배리어프리 시설이 필요 없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같은 제도와 시설이야말로 장애인이 일상을 누릴 수 있게 돕는 디딤돌이 된다. 우리 사회는 구성원이 누리는 권리가 배려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이 될 때까지 움직여야 한다. 틀에 박혀 있던 체계를 밖으로 꺼내 천천히 바꾸어 나가야 한다. 사회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외친다. 학교와 직장에서는 의무적으로 장애인식개선교육을 실시하고, 철마다 캠페인을 진행하지만, 일회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인식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하루아침에 개선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직접 나를 둘러싼 환경을 바꾸어야 비로소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 제목을 다시 읽어보자. 부지(不知) 부재(不在)가 되지 않게. 내가 타인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그의 존재를 모른 척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일상에서 느끼는 불편함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부당함에 목소리 내자. 무지를 방패 삼지 말자. 타인이 필요로 하는 것을 홀로 짐작하지 말고 소통을 통해 이해하자. 이 모든 것이 ‘존재’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1. ‘빼빼로 광장’의 줄임말이며, 중앙대학교의 중앙마루를 일컫는다 [본문으로]
  2. 대한민국헌법 제31조 1항 [본문으로]
  3. 초ㆍ중등교육법 제10조의2 [본문으로]
  4. e-나라지표 교육부 『교육통계분석자료집』 취학률 및 진학률 [본문으로]
  5.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에서 2019년 발표한 ‘청년층 대학 진학률’에서 한국은 69.3%로 1위를 차지했다. OECD 평균 ‘청년층 대학 진학률’은 2020년 기준, 45.5%이다. [본문으로]
  6. 보건복지부 「2021년 장애인 등록 현황」에서 등록 장애인 수는 약 264만 명이다. 교육부 「2022년 특수교육 통계」에 따르면 특수교육대상자는 약 10만 3천 명이다. 이는 특수교육대상자 통계를 시작한 이후로 처음 10만 명을 넘긴 수치이다. 고교졸업자 대상으로 직업교육과정 ‘전공과’를 포함 한 진학률은 56.2%이나, 이를 제외한 대학·전문대학 진학률은 20%이다. 이 중 발달장애인의 진학률이 약 10.4%로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였 다. 2022학년도 대학 전체 모집인원은 약 34만 명으로, 전체 대학 모집인원 중 특수교육 대상자의 진학률은 약 5.9%이다. [본문으로]
  7. 중앙대학교 「2022학년도 수시 모집요강」에서 고른기회전형을 통해 서울 캠퍼스에 6명, 안성 캠퍼스에 2명을 선발했다. 고른기회전형은 기회균등 형(농어촌학생/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장애인 등 대상자/특성화고졸재직자를 선발하는 전형으로 학생부 종합 전형에만 포함되는 전형이ek. [본문으로]
  8. 중앙대학교 2022학년도 전체 신입학 모집인원 수는 4,987명으로, 정원 내 모집인원은 2020학년도 미충원 이월인원 40명 포함, 정원 외 모집인원 중 재외국민(87명)은 제외한 인원이다. [본문으로]
  9.  법률신문뉴스, “[판결] "코로나19 비대면 수업으로 학습권 침해"… 대학생들, 등록금 반환 소송 냈지만 '패소"”, 2022.9.1., 이용경. [본문으로]
  10. 비마이너, “온라인 강의에서 소외당하는 장애인 대학생들 ‘학습권 보장’ 촉구”, 2020.6.4., 박승원. [본문으로]
  11. 뉴스원 포토, “구호 외치는 전장연”, 2022.12.5., 박지혜. [본문으로]
  12. <인권질의서>는 △장애인권 △성평등 △기타 인권침해 사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제65대 예술대학 학생회 선거운동본부, 제52 대 의과대학 학생회 선거운동본부 <가온>, 제35대 자연과학대학 학생회 선거운동본부 <아름>, 제58대 통일공대 학생회 선거운동본부 , 제65대 총학생회 선거운동본부 <그린>에 발송되었다. [본문으로]
  13. 라포(rapport)란 주로 두 사람 사이의 상호신뢰관계를 나타내는 심리학 용어로, 일반적으로는 두사람의 인간사이에서 마음이 통하고, 따 뜻한 공감이 있으며 감정교류가 잘 되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14. 중앙대학교의 필수 교양 ‘앙트레프레너십 시대의 회계’의 수강은 졸업 요건에 포함된다. [본문으로]
  15. 장애학생 지원에 관한 최고 의결 기구 [본문으로]
  16. 「고등교육법」 제2조(학교의 종류) 고등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다음 각 호의 학교를 둔다. 1. 대학 2. 산업대학 3. 교육대학 4. 전문대학 5. 방송대학, 통신대학, 방송통신대학 및 사이버대학(이하 “원격대학”이라 한다) 6. 기술대학 7. 각종학교 [본문으로]
  17. 「장애 대학생 교육복지지원 실태평가」는 2008년 제정된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13조 제2항에 따라 3년마다 실시한다. 2020 년에는 전국 348개 대학의 428개 캠퍼스 중 343개 대학의 423개 캠퍼스 (98.8%)가 평가에 참여하였다. [본문으로]
  18.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신입 변호사 우영우(박은빈 분)의 대형 로펌 생존기를 다룬 드라마. 방송사 ENA와 OTT 서비스 (seezen, NETFLIX)에서 방영되었다. 17.5%의 최고시청률을 기록하며, 일명 극 중 우영우가 친구 동그라미와 나누는 인사법을 따 라 하는 ‘우영우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화제가 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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