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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보기/2022 가을겨울, 83호<현현; 사람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가난한 시간, 가만한 빈곤

by 중앙문화 2022. 12. 26.

[편집자 주] 가만하다. ‘움직임 따위가 그다지 드러나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은은한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는 ‘빈곤’을 떠올릴 때 허물어져 가는 집 혹은 거리에 나앉은 빈자의 상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빈곤은 가장 보통의 모습을 하고 당신의 일상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의심하라. 당신의 시간까지도.

수습위원 정상원, 부편집장 김가윤, 수습위원 김혜림, 인포그래픽 김가윤

 

2022년 11월 22일.

오전 7시 40분. 서울 소재 대학 재학생 심현근(25) 씨의 하루는 ‘더 자고 싶은 욕구’와의 사투로 시작된다. 6시간 남짓 그나마도 ‘자다 깨다’를 반복한 몸을 애써 일으켜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금세 출퇴근 인구가 밀집해 그의 지각을 부추긴다. 대충 모자를 눌러쓴 뒤 사과를 한 입 베어 문다. 그에게 잘 차려진 아침 식사는 그림의 떡이다. 걸어야 한다. 걷지 않으면 지각이다.

오전 8시.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위치한 한 빌라 단지에 거주 중인 심 씨는 근로지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초겨울 아침 공기가 제법 쌀쌀하지만 이미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출퇴근 인구가 많은 지역에 거주 중인 터라 용산발 버스에는 승객이 가득하다. 그 틈을 비집고 버스에 올라야 한다. 수많은 가방, 누군가의 구둣발이 때로는 그의 몸을 건드리지만 이미 아침 출근길이 선사하는 ‘신경 긁기 공격’에 충분히 단련된 그다.

오전 9시. 담당 근로지에 가까스로 도착한 심현근 씨는 짐을 내려놓기 무섭게 커피부터 만든다. 소위 말하는 ‘막내일’이라며 해맑게 설명한다. 그는 인쇄기와 파쇄기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휴게실에 커피 믹스와 각종 간식을 채우며 분주히 움직인다. 우편물 배달도 그의 몫이다. 근로지 담당 우편물을 학교를 돌아다니며 수거하고 일일이 수령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이쯤 되면 비몽사몽 했던 심 씨의 정신은 뚜렷해진 지 오래다. 국가 근로 장학생인 그는 “그래도 병행 중인 다른 아르바이트들에 비하면 근로지의 업무 강도는 낮은 편”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오전 11시 50분. “운이 좋네요. 빵을 사 먹을 시간이 있어요.” 근로가 무려 10분이나 일찍 끝났다며 그는 웃어 보인다. 12시에 시작하는 수업 전 인근 빵집에서 샌드위치를 먹을 기회는 드물다. 허기를 달래지 못하면 오늘 하루 끼니를 때울 시간은 저녁 시간 말고는 없다. 급하게 집어 든 샌드위치를 입에 문 채 수업이 있는 교실로 향한다. 이제부터 오후 네 시까지는 수업을 들어야 한다.

오후 4시 10분.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그는 보광동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수업을 마치면 학교에서 황급히 출발해 40분 거리의 보광동에 도착해야 한다. 오늘 하루는 강행군의 연속이다. 쉴 틈 없이 그는 교실을 빠져나온다. 지하철 역사로 가는 길, 편의점에서 다시 삼각김밥을 하나 집어 든다. 샌드위치만 먹은 터라 허기가 가시질 않는다. 샌드위치와 삼각김밥만 먹었을 뿐인데 그의 핸드폰에는 “출금 총 7,200원”과 십만 원이 넘지 않는 잔액 안내 문자가 도착했다. “그래도 진로를 위해 하는 일이니까요. 제 또래 집단만 보더라도 저보다 열심히 살고 있잖아요? ”

오후 7시 30분. 심현근 씨는 봉사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향한다. 제대로 된 첫 끼를 먹기 위해서다. 이미 가족들은 식사를 마친 지 오래다. 이미 주변은 어둑어둑하다. 가로등 몇몇이 점등된 채 심 씨를 반기고 있었다. 그런 그가 첫 ‘집밥’을 다 먹은 시각은 8시 30분.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팀플’ 일정과 밀린 과제를 해야 한다. 그렇게 심 씨는 새벽 1시가 넘어 침대로 향했다.

 

 

프롤로그: 2022년 11월 25일. 한남동 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한남동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으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어요. 오늘도 아르바이트 중에 제 또래 친구들이 몰려왔어요. 동기들 생각도 나고 해서 유심히 지켜봤는데 친구들 열 명 각자 먹고 싶은 거를 다 따로 하나씩 고르더라고요. 내 친구들은 쿠폰 하나 가지고 나눠 먹는데... 그런 사람들을 보고 별별 생각이 다 드는 저를 보면서 정말 제가 물질적으로든 시간적으로든 여유가 없는지 새삼 깨달았어요. 그런 저에게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사는 거라고 스스로 위로라도 하지 않으면 더 힘들 것 같았어요.”

 

 

‘갓생(GOD生)’, 신의 삶.

신의 하루는 어떤 모습일까. 세세한 장면을 상상하기는 어려워도 완벽하고 철저한 시간표로 구성돼 있을 것 같다. 인간이 흉내 내는 갓생도 별반 다르지 않다. 목표를 꾸준히 실천하거나 일을 미루지 않고 끝내는 삶을 살았을 때 “오늘도 갓생 살았다”며 자신을 도닥인다. 성취감이라는 자극은 청년을 움직인 동력에서 점점 그들을 옭아매는 족쇄로 변해갔다.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감당하는 일종의 과업이 돼버린 것. 그렇게 갓생은 무한 경쟁 사회의 전유물이 되어 청년들에게 시간 빈곤(time-poor)을 야기한다.


시간 빈곤: 빈곤의 새로운 장을 열며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다면 당신은 얼마를 지불할 것인가? 그 값을 기꺼이 치를 수 있는가, 아니면 통장 잔고를 확인한 뒤 조심스레 가격을 제안할 것인가?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은 똑같다. 하루 24시간. 하지만 이 안에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각자에 달렸다.

게임을 하나 해보자. 당신은 평범한 직장인이고 시간을 살 수 있는 천만 원의 게임머니를 가지고 있다.

Q1. 당신은 현재 경기도 외곽에 있는 허름한 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직장은 서울 변두리에 있다. 정시 출근을 위해서는 6시 반에 집을 나가 1시간 30분 동안 광역버스를 탄 뒤 지하철로 또 1시간을 이동해야 한다. 출근길 내내 빽빽한 사람들 사이 서 있어야 하는 건 물론이다. 그러나 직장 근처에 오피스텔 방을 구한다면 출근 시간을 20분으로 단축할 수 있다. 당신은 무엇을 고를 것인가?

 

  A) 현재 집에서 통근한다. (금액: 0원)
  B) 서울 내 오피스텔을 구한다. (금액: 700만 원)

Q2. 당신은 학자금을 대출받았다. 빚을 갚기 위해 졸업과 동시에 직장을 구했다. 그러나 월급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며 대출금을 탕감하기엔 빠듯해 부업을 하기로 결심한다. 퇴근 후 8시 반에 집에 도착해 저녁을 먹으면 9시 반이 된다. 10시부터는 온라인 홍보 아르바이트를 한다. 일을 마치면 새벽 1시. 다음 날 아침 6시에 일어나기 위해 잘 준비한다. 오늘 하루 주어진 자유 시간은 저녁 식사 후 단 30분뿐이다. 이때 상환의 기회가 주어진다. 처음부터 학자금 대출은 없던 일이 된다.

 

  A) 현재 신분 유지하기 (금액: 0원)
  B) 신분 상승하기 (금액: 800만 원)

만약 당신이 두 질문 모두에서 B를 선택했다면, 주어진 1,000만 원을 초과해 파산한다. 만약 처음부터 게임머니가 더 많았더라면 당신의 삶은 어떻게 변화할까. 단순히 집을 사고 빚을 갚는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통근에 드는 왕복 5시간과 부업을 하는 3시간, 총 8시간을 벌게 될 것이다. 현실에서는 플레이어마다 시간을 살(buy) 수 있는 돈이 다르게 주어진다. 그리고 그 금액에 따라 사는(live) 모습이 달라진다. 당신은 얼마의 시간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20대 대학생 시간 빈곤 실태 설문조사

 실제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시간이 모자라 허덕이고 있을까. <중앙문화>는 서울권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학생 시간 빈곤 실태’를 알아보기 위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대상: 20대 서울 소재 대학 재적생
기간: 2022.11.15~2022.11.18.(4일간)
방법: 구글 설문지를 통한 온라인 설문(‘에브리타임’, 학과(부)별 단체 공지 방에 안내)
문항: ▲성별 ▲연령 ▲통학 여부 ▲소득분위 ▲사적 이전 ▲아르바이트 여부 등과 ▲주관적 계층 인식 ▲물리적 시간 ▲체감 시간 흐름
총응답자 수: 110명
성별: 여성 76명(69.1%), 남성 33명(30%), 기타 1명
입학 연도: 19년 22.7%, 20년 16.4%, 21년 23.6%, 22년 15.5%
소득분위(한국장학지원재단 학자금지원구간 기준): 10분위 32.7%, 9분위 11.8%, 8분위 8.2%, 모름 21.8%

응답자의 52.7%가 8분위 이상 가구에 집중된 것은 서울 주요 대학 고소득 가구 학생 쏠림 현상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2019년 대학 재학생 중 국가장학금 지급 비율이 낮은 상위 7개 대학은 ▲한국외대 ▲경희대 ▲서강대 ▲성균관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순으로 모두 서울 소재 대학이었다. 국가장학금 지급 비율이 낮다는 것은 해당 학교에 소득분위 9분위와 10분위 학생이 밀집해 있음을 의미한다. 해당 학교들은 전국 대학 평균 국가장학금 지급 비율인 54%보다 낮은 평균 22%의 지급 비율을 기록했다.


 

 

응답으로 재구성한 20대 K-대학생의 하루

 총 110명의 응답을 종합해 가상의 K-대학생의 하루를 재구성해봤다.

 

 전체 응답자 110명의 응답일 기준 전날 평균 수면 시간은 약 6.23시간이었다. 이는 세계보건기구 (WHO)의 권장 수면시간인 7~9시간보다도 적다. 대학 수업 및 기타 학업에는 6.3시간을 사용했고 교제, 여가 활동에는 그보다 적은 4.9시간을 투자했다. 개인 관리와 자기계발에도 3.6시간을 할애했다. 심현근 씨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5시간 30분을 근로 및 봉사 시간으로 활용했고 7시간 30분을 수업과 공부를 하는 데 보냈다.

 

 응답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었던 시간(통제 가능한 시간)’이 하루 약 3.2시간이었다고 답했다. 이에 본지는 ‘24시간을 활용하는 방식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질문했다. 결과는 5점 만점 기준 평균 2.6점. 응답자 대다수가 ‘보통(3점)’보다 낮은 만족도를 보였다. ‘스스로 게으르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서도 평균적으로 약 2.6점에 머물렀다.[각주:1] 그 외에도 전체 응답자들이 ‘시간으로 인해 느끼는 스트레스 혹은 압박감’은 평균 3.6점으로 중간값 3점보다 0.6점 높았다. ‘체감 시간 흐름’에 대해선 평균 약 4.2점을 기록했다. 대부분 하루가 너무나도 빠르게 흘러간다고 생각했다는 뜻이다. 통계 결과를 종합하면 현재 한국의 20대 대학생들은 시간 사용에 대해 전반적으로 만족하지 못하면 서 대체로 본인을 게으르다고 여기는 상태다. 응답자 A씨(22)는 “해야 할 일은 많은데 결국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미 보낸 시간에 대해 자주 자책한다”고 말했다.

 

 

① 통학생이 자취생보다 시간이 없을 것이다?

 먼저 ‘통학 여부’가 개인의 시간 체감과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봤다. 응답자 중 대학 재학을 위해 본가에서 통학하는 학생은 총 37명으로 전체 응답자의 33.6% 수준이었다. 비통학 학생들은 총 73명(66.4%)이었다. 두 집단에서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이동 시간이었다.

본가에서 통학하는 학생이 대학에 다니기 위해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약 96분이었다. 기타 이동시간까지 포함하면 이는 약 144분으로 증가한다. 통학생 대다수가 하루의 10분의 1을 이동하며 보낸 셈이다. 반면 통학을 하지 않는 학생들의 교통수단 이용 시간은 약 55분이었다. 그 외 이동 시간을 포함해도 96분이었다. 즉 통학하지 않는 학생들은 통학생보다 48분을 매일 절약할 수 있었다.

 

 통학하며 대학에 다니는 B씨(24)는 겉으로 보이는 수치 이상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출퇴근 시간에 이동한다면 사람들과 부딪히고 지하철에 밀려 타며 진이 다 빠진 상태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면서 “통학 과정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다른 시간에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 한 적도 있다”고 답했다. 통학 학생들의 한 달 생활비는 평균 약 40만 원. 이중 교통비 지출액이 가장 크다고 답한 비율은 11%였다. 이는 비통학 학생 응답자(1.3%)보다 약 10배 높은 수치다.

 

 한편 본가 통학생과 자취생 간에 △삶의 질 수준 △체감 시간 흐름 △시간에 대한 압박은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각주:2]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는 C씨는 그 이유로 생활 유지를 꼽았다. 그는 “자취를 하게 되면 이동시간이 크게 절약되지만 그만큼 다른 가사 일에 시간을 쓰게 된다”며 “가사 일과 학업 아르바이트를 병행해 피곤함을 느낄 때가 많다”고 전했다. 자취생 중 생활비 목적으로 아르바이트 혹은 근로 활동 등 수입이 되는 일을 하는 학생들은 약 72%로 본가 통학생보다 약 15%P 높았다.

 

 

② 알바를 안 하면 삶의 만족도가 높을 것이다?

 ‘노동 여부’에 따른 응답 차이도 비교했다. 전체 응답자 중 생활비 목적으로 아르바이트 혹은 근로 활동 등을 하는 학생들은 총 76명. 전체 응답자의 약 69%를 차지했다. 응답자의 대다수인 66명이 시간제 노동을 하고 있었다. 그 외 불안정 노동 4명, 전일제 노동 2명, 잘 모른다 2명 순으로 응답이 높았다. 이들의 일주일 평균 근로 시간은 약 14.4시간이었다. 노동하지 않는 학생들에 비해 약 14시간의 시간 손실이 발생한다는 의미다[각주:3].

 

 한편 노동 중인 학생의 평균 가구 소득분위는 ‘잘 모른다’고 답한 16명을 제외하면 약 7.1분위였다. ‘가구 경제 상태에 대해 만족하십니까[각주:4]’라는 질문에는 약 3.1점의 만족도를 보였다. 노동하지 않는 학생들의 소득 분위(8.3분위)보다 1.2분위 낮고 경제 만족도(3.7점)보다 0.6점 낮은 수치다.

 

 이는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하는 학생들이 평균적으로 가구 소득분위가 더 낮은 경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노동을 하는 학생들은 가구 경제 상태에 대해서도 다른 학생들에 비해 낮은 만족도를 보였다. 가구 소득분위가 대학생의 아르바이트 혹은 근로 등 노동을 매개해 이들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더 부족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노동 학생의 한 달 생활비는 평균 약 63만 원을 기록했다. 응답자 중 56.7%가 생활비 전액을 스스로 부담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을 한 달 생활비가 90만 원 이상이면서 수입 활동을 하지 않는 집단[각주:5]과 비교해봤다. 두 집단이 자기 의지에 따라 통제할 수 있던 시간은 약 1.8배가량 차이 났다. 100% 생활비를 부담하는 노동 학생이 통제 가능한 시간은 2시간 42분. 반면 노동을 하지 않으면서 생활비 사용이 월 90만 원 이상인 이들은 5시간 6분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었다. 똑같은 24시간이 주어졌음에도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2시간 24분이나 차이 난 것이다.

 

 이는 시간 사용에 대한 각 집단의 만족도와 시간에 대한 압박감에서도 격차를 유발했다. 생활비를 본인 부담하는 학생은 하루 시간 사용에 대한 만족도는 2.5점이었던 반면 생활비를 직접 벌지 않는 고생활비 집단의 시간 사용 만족도는 3.2점이었다. 시간에 대한 압박감은 각각 3.75점, 3.2점으로 노동중인 집단이 약 0.5점 더 스트레스를 받았다. 즉 자신의 생활비를 직접 충당해야 하는 생계형 노동 학생들이 만족도가 더 낮고 스트레스도 더 많이 받는다는 것. 이들은 근소한 차이로 본인들이 더 게으르다고 생각하기도 했다[각주:6]. 이와 관련해 카페 아르바이트와 과외 아르바이트 두 건을 병행 중인 김유진(22) 씨는 “일을 많이 하니까 주변에서는 갓생을 산다고 오해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노동은 단순히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행위일 뿐 발전이나 성장을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근로 장학 활동과 카페, 아이스크림 가게 아르바이트를 병행 중인 심현근(25) 씨도 “과거와 달리 취업 준비 시기가 다가오며 아르바 이트하는 시간을 열심히 살았다고 느끼지 않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는 “진로를 위해 시간을 보내야 시간을 잘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③ 소득 분위가 낮을수록 시간에 대한 압박을 많이 받을 것이다?

 가구 소득분위 9, 10분위와 1, 3분위에 해당하는 학생들의 설문 결과만 따로 분석했다. 고소득분위 대비 저소득분위는 체감 시간 흐름이 0.2점 높았고, 향후 경제적 계층 수준에 대한 기대치는 0.5점 낮았다. 다시 말해 소득분위가 낮은 학생들은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른다고 느끼며 본인의 경제적 계층 수준을 더 낮게 예상했다는 것[각주:7]. 하지만 설문조사 설계 당시의 예상과 다르게 시간에 대한 체감 차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두 집단 모두 시간 사용 만족도(2.5점)와 시간 압박감(3.6점)이 동일했다. 이는 앞에서 분석한 결과와 마찬가지로 시간 사용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며 압박감을 느끼는 전방위적 세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괴짜 통계 QUIZ

 

1. 식사, 개인위생, 외출준비 등 개인 관리에서 생물학적 성별에 따른 시간 차이가 발생했을까?
  예 / 아니오

2. 노동하지 않으면서 90만 원 이상의 생활비를 사용하는 집단이 식비 다음으로 지출을 많이 한 항목은?
  1. 교통비 2. 자기 계발비 3. 술값 및 유흥비 4. 쇼핑비

▶ 1번
 : 예
해설 : 개인 관리 시간(식사, 개인위생, 외출준비)에서는 생물학적 성별에 따른 결과 차이가 확인됐다. 평균적으로 남성은 개인 관리 시간에 평균 약 144분을 투자한 반면 여성은 약 162분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이 남성보다 개인 관리 시간으로 하루 평균 약 18분을 더 투자하고 있다는 것이다.

▶ 2번
 : 4번
해설 : 노동하지 않으면서 90만 원 이상의 생활비를 사용하는 집단은 식비 다음으로 쇼핑비에 생활비를 많이 지출했다. 이는 해당 집단 응답자 중 40%에 이르는 수치다.

 

 

SNS를 타고 전파된 갓생 바이러스

 

2019.11.~2022.11. '욜로(초록색)'와 '갓생(빨간색)' 검색량 추이(왼쪽)와 조회수 543만 회를 넘긴 갓생 브이로거의 유튜브 영상(오른쪽). 네이버 데이터랩(왼쪽)과 유튜브 채널 'deemd 딤디' 캡처(오른쪽).

 한때 ‘욜로(You Only Live Once)[각주:8]’를 외치며 인생을 즐기자던 청년들은 언제부터 완벽한 삶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을까? 네이버 검색량 분석 시스템 ‘데이터랩’을 통해 갓생과 욜로의 검색량을 비교했다. 2020년을 기점으로 갓생 검색량이 꾸준히 증가하며 이듬해 10월에는 욜로의 검색량을 앞질렀다[각주:9]. 같은 시기 유튜브에는 ‘갓생 브이로그’가 우후죽순 올라왔다. 구독자 96만 명 규모의 유명 채널은 영상 하나의 조회수가 500만 회를 넘기기도 했다[각주:10]. 해당 영상에는 “문제집 두 권 끝내는 장면 볼 때마다 동기 부여된다”, “열심히 살고 싶을 때 이 영상 보면 자기계발서를 보는 것보다 효과적이다”와 같은 댓글이 달려 있다.

 

 점차 갓생은 트렌드를 넘어 일상이 됐다. 대표적인 갓생 활동으로 꼽히는 ‘미라클 모닝(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과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을 인스타그램에서 검색하자, 해시태그 수가 각각 169.1만, 391.2만 개에 달했다. 갓생 인증용 앱들은 100만 번 이상 다운로드됐다[각주:11]. 목표 인증 앱 ‘투두메이트’의 열성 이용자였던 김유진 씨는 나아가 공부 인증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운영하기까지 했다.

 

 이를 통해 갓생의 핵심은 ‘남에게 보이는 것’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평소 인스타그램을 즐겨하는 신현준(25) 씨는 최근 들어 운동과 공부 관련 인증 게시물을 자주 접한다고 말했다. 그런 게시물을 볼 때마다 “나는 핸드폰 보며 쉬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살고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고 전했다. 김 씨도 매일 ‘공스타그램(공부 인증을 올리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챙겨 본다. 처음에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닮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들을 보면서 나태한 하루를 돌아보고 내일의 전의를 다질 수 있었다. 그러나 반성이 자책으로 이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공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공부 인증 사진. 인스타그램 a__piece.of 캡처.

 “(공스타그램을 보면) 저는 아직 제자리걸음이라는 불안함, 하루를 알차게 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조바심이 느껴져요.”

 

 김 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다른 사람의 갓생을 지켜보는 것이 때로는 괴롭다며 이같이 말했다. 반대로 본인의 목표를 계속해서 인증해 보이는 것 또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성실했던 어제와 불성실한 오늘의 괴리감이 그를 옥죄였다. 하지만 김 씨는 “이 마저도 해내지 않는다면 드높은 취업시장의 문턱을 넘을 수 없을 것”이라며 자신을 채찍질했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타인의 갓생은 그 삶을 목격하는 이들로부터 시시각각 멀어져 간다. 기록으로 남은 지난 삶의 흔적은 그 뒤를 바짝 추격해 온다. 청년들은 숨 돌릴 틈 없이 앞만 보고 맹목적으로 달리게 된다. 그렇게 자기만족에서 출발한 갓생은 자기 착취의 늪에 닻을 내린다.

 

 

에필로그: 2022년 12월 14일. 편집실에서.

 취재원들이 생각하는 갓생이란 무엇인지 물었다. 공통으로 돌아온 답은 “방해 요소 없이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삶”이었다. 심현근 씨는 자기 계발을, 김유진 씨는 공부 시간을 만족스러운 하루의 척도로 꼽았다. 물론 이들이 말하는 갓생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통학으로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하거나 아르바이트로 체력을 소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지 못한 이유가 단순히 개인의 게으름 때문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보다는 본질적으로 시간 빈곤의 구조를 깨달아야 한다.

 

 또한 갓생의 의미를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전지전능한 신(GOD)이 아니다. 예기치 못한 변수로 계획이 틀어지고, 통제할 수 없는 시간에 대안을 찾아 나서는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 갓생이 아니라고 부정 당했던 당신의 분주한 일과는 인터넷을 타고 누군가의 갓생 지침서가 됐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동경하는 ‘갓생러[각주:12]’의 찬란한 전시장 뒤에 간신히 버티는 어느 청년이 있을지도 모른다.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버텨왔을 당신처럼 말이다.


 *구글 드라이브를 통해 PDF 판형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drive.google.com/file/d/1RXMNEP5HoCWVKlMLkF_HwrxrGWmThUa7/view?usp=sharing 

 

2022-83회.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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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점(매우 게으르다)~5점(매우 성실하다) [본문으로]
  2. 통학생은 삶의 질 수준 3.2점, 체감 시간 흐름 4.1점, 시간에 대한 압박 3.5점을 기록했다. 자취생은 각각 3.1점, 4.2점, 3.6점을 기록했다. 자취생이 통학생보다 시간에 대한 압박과 삶의 질 하락을 조금 더 느끼고 있었다. [본문으로]
  3. 여기서 시간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말한다. [본문으로]
  4. 1점(매우 불만족)~5점(매우 만족) [본문으로]
  5. 이들은 전체 응답자 110명 중 5명(4.5%)이었다. 생활비 응답 구간은 △30만 원 미만 △30만 원 이상 60만 원 미만 △60만 원 이상 90만 원 미만 △90만 원 이상 120만 원 미만 △120만 원 이상 150만 원 미만 △150만 원 이상으로 설계됐다. 본문에서는 이중 상위 3개 집단을 ‘고생활비’ 집단으로 추려 비교했다. [본문으로]
  6. 설문에서 생활비 전액을 스스로 충당하는 노동 학생들은 ‘본인이 게으르다고 생각하십니까’ 문항에 평균 2.9점으로 답했다. 이는 노동을 하지 않으면서 생활비로 90만 원 이상을 사용하는 집단보다 0.1점 수준 더 게으르다고 응답한 것과 같은 값이다. [본문으로]
  7. 가구 소득분위 9, 10분위에 해당하는 학생들의 체감 시간 흐름은 4.2점이었다. 이들은 향후 본인의 기대 계층(최저1~최고10) 수준으로 평균 약 6.8로 응답했다. 가구 소득분위 1, 3분위에 해당하는 학생들의 경우 체감 시간 흐름은 4.4점으로 더 높았고, 향후 경제적 계층 수준에 대한 기대치도 6.3으로 9, 10분위 대비 0.5점 낮게 응답했다. [본문으로]
  8. “당신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한다”는 뜻으로, 현재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는 태도. [본문으로]
  9. ‘갓생’ 검색량은 2022년 4월 최정점을 찍었다가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2022.04.18.)되며 거리두기가 완화되자 잠시 주춤했다. [본문으로]
  10. 해당 채널이 2019년에 올린 영상들의 평균 조회수는 10~30만 회 정도였다. [본문으로]
  11. 매일 할 일을 완수하고 이를 인증하는 ‘투두메이트’와 정해진 운동량을 달성하고 결과를 공유하는 ‘런데이’의 자사 발표에 따르면 두 앱 모두 100만 번 넘게 다운로드됐다. 목표(챌린지)를 정해두고 실패 시 벌금을 내는 ‘챌린저스’는 누적 챌린지 수 380만 회를 넘겼다고 밝혔다. 세 가지 앱의 공통점은 2020년 주목받기 시작해 2021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는 것이다 [본문으로]
  12. 갓생’에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er’을 붙인 것으로 갓생을 사는 사람을 뜻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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