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사회연대 김윤영
그의 이야기
''저는 송국현입니다. 저는 24세 때 넘어져 뇌출혈로 장애가 생겼습니다. 말을 할 수 없고 오른쪽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살아갈 방법이 없어서 25세 때 시설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27년을 살았습니다. 지금 나이가 53세입니다.”
지난 2014년 4월 10일. 국민연금공단 앞에선 송국현 씨는 이렇게 본인을 소개했다. 그의 인생 절반이 넘는 27년을 그는 시설에서 생활했다. 그는 자립생활을 위해 지난 해 10월,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나왔다.
“그러나 가장 힘들었던 것은 첫 번째 밥을 먹는 문제였습니다. 쌀통에 쌀을 씻어 통을 들어야 하는데, 팔에 힘이 없어사 들 수 없었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혼자서는 목욕을 할 수 없습니다. 혼자서는 양치질을 잘 할 수 없습니다. 빨래도 흔자서는 어렵습니다. 물건을 사는 데도 혼자서는 사기가 어렵고, 사람들에게부딪히면 넘어지기 일쑤고, 휠체어를 타야하지만 밀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밥 먹는 것부터 생활하는 것까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가고 싶은곳에 가고 싶습니다. 야학에 가서 공부하고 싶습니다. 꽃구경도 가고 싶습니다. 동료들을 만나러 가고 싶습니다. 모임에서 나들이를 갈 때도 같이 가고. 싶습니다.”
일상생활을 위해 그에게는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나 장애인의 생활을 돕는 '활동보조인은 장애 1급과 2급에게만 지원된다. 그는 장애 3급이었다. 송국현 씨와 동료들은 이 날 국민연금 공단에서 〈장애등급제 폐지와 긴급지원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등급 폐지와 필요한 이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것, 송국현 씨에 대한 긴급지원을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연금공단은 언어장애가 심해 말을 할 수 없는 송국현 씨에게 ‘혼자 면담에 들어오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변했다. 면담을 거부한 것이다. 3일 뒤인 13일, 그의 집엔 불이 났고, 그는 전신에 3도 화상을 입 고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탈출할 수 없었던 침대로부터 문까지의 거리는 고작 5미터. 불이 난 뒤 이웃이 문을 열고 사람이 있나 확인했지만 그는 이 소리에 대답할 수 없었다. 언어장애가 심했기 때문이다.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가 필요하다
빈민ㆍ장애인단체를 중심으로 180여개의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하고 있는 <장애등급제ㆍ부양의무제폐지공동행동>은 장애등급제ㆍ부양의무제폐지를요구하며 지난 2012년 8월 21일부터 광화문역 지하보도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이제 올 여름이면 농성2년이 된다. 우리의 요구는 낙인의 사슬, 장애등급제폐지와 빈곤의 사슬, 부양의무제를 폐지하라는 것이다.
낙인의 사슬, 장애등급제
현행 장애인복지법은 장애 정도에 따른 장애등급[2]을 매겨 장애인 등록증을 발급하고 있다. 장애등급제의 역사는 1981년으로 거슬러 간다.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제정되었다. 1988년에는 전국적으로 장애인등록제도가 시행되었는데, 이는 1989년 '장애인복지법’ 전면개정을 통해 일본과 같은 방식으로장애등급제가 제도화된 것이다. 보건복지부 소관으로 기존 병의원에서 등급을 받을 수 있었던 장애등급제는 2011년 4월부터 등급판정업무가 국민연금공단으로 이관되었다. 장애등급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로는 장애등급을 매기는 것 자체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조장하고, 인간의신체에 등급을 부과하는 반인권적 처사라는 것이다. 장애등급은 비장애인의 신체를 기준으로 장애정도를 측정하며 활동의 ‘모자람’만을 평가한다. 두 번째로는 장애등급을 통해 의료적 기준만으로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행정편의적인 방식이다 장애의 종료, 생활환경, 필요한 활동에 따라 다른서비스가 보장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등급으로 획일화된 숫자’를 기준으로 서비스 제공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현 장애판정기준은 장애인의 서비스 필요도에 부응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사회서비스의 절대기준으로 작동해왔다.
장애등급제의 문제는 2010년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법제화와 장애연금제도 시행을 앞두고 장애등급심사 전면 확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활동지원서비스 신청 기준을 1,2급으로 제한한 뒤 1,2급 장애인의 장애등급을 대폭 하락시키는 평가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즉, 정부는 장애판정기준에 따라 얼마든지 1급장애인을 줄일 수도 늘릴 수도 있다. 언제든지 등급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 은 장애인의 삶을 위협하는 큰 공포다.
빈곤의 사슬, 부양의무제
부양의무제의 정확한 명칭은 부양의무자기준’이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기준의 하나로, 부양의무자에게 일정수준 이상의 소득 및재산이 있을 시 수급권을 제한하거나 박탈할 수 있다. 부양의무자는 ‘1촌 내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로 자녀, 부모나 그들과 현재 혼인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및 현재 나의 배우자를 포괄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근간이 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전국민에게 최저생계비를 권리로써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최저생계비’ 이하로 살아가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 이것을 권리로써 보장하는 것이 기초생활보장법의 취지다. 그러나 현재 800만의 빈곤층 중 기초생활수급자는 단 130만명 정도이며 기초생활보장법의 사각지대는 410만명에 달한다. 이 중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수급권을 박탈당한 이들은 117만명이다.
부양의무자기준의 문제점은 크게 세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로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이들의 빈곤현실이 매우 처참하다는 것이다. 2013년 61세 이상 노인의 기초생활수급 신청 탈락 원인의 40%가 부양의부지기준’ 때문이다.[3] 이들의 대부분은 인제 부양받지 못함 것으로 추정한다.
두 번째는 부양의부자기준은 가난한 이들과 그 가족들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부양의부자기준은 '간주부양비’ 부과를 통한 수급권 제한, 혹은 수급권을 박탈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부양의무자에게 일정정도의 재산이나 소득이 있을 시 실제 부양여부와 무관하게 ‘간주부양비’ 부과를 통해 수급자의 현금급여를 삭감하거나 수급권을 박탈할 수 있다. 이는 가족부양의 원칙을 과잉 적용하는 것이다. 법상에는 ‘부양의무자가 있으나 부양받을 수 없는 경우'를 명시하고, 대통령령으로 그 기준을 정하고 있지만 이는 매우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최근 몇 년 사이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졌고, 수급자의 규모는 큰 폭으로 하락해 왔다.[4] 이러한 것은 결국 복지의 책임을 가난한 이들과 그의 가난한 가족들에게 떠넘기는 결과를 낳는다. 2012년 1월부터 7월까지 부양 의무자기준 때문에 수급에서 탈락한 이들은 1만 3117명이었는데, 이들 부양의무자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233만원이었다. 이는 전체 가구 평균소득 345만원의 67%에 불과하다. 평균보다 가난한 이들에게 복지의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문제점은 빈곤과 복지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에 관한 것이다. 부양의부자 기준은 가난의 책임을 개인과 가족에게 떠넘기고 있다. 기초생활보장법은 IMF라는 폭풍 이후 그에 대한 반성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를 대신해 온 ‘생활보호법'은 공공부조에서 근로능력자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빈곤의 책임을 게으름. 나태함으로 돌려왔다면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한 것이다. 그러나 부양의무자기준은 이 취지를 제한하고 있다. 빈곤을 개인의 책임, 가족의 책임으로 돌리는 부양의무자기준이 잔존한다면 우리 모두는 빈곤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농성 634일, 우리가 만난 죽음들
2010년 10월, 건설 일용직으로 일하던 가난한 아버지가 장애를 갖게 된 아들의 수급권을 위해 자살했다. 같은 해 마지막 날.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서류 상이혼 처리를 하고 1인 수급비로 함께 생활하던 노부부가 자살했다. 2011년 4월,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수급권을 받지 못하던 김씨 할머나가 폐결핵 치료를받지 못하고 병원을 오가다 거리에서 객사했다. 7월, 남해 노인요양시설 에서 생활하던 70대 노인과 청주의 70대 노인, 부양의무자의 소득으로 인해 수급탈락 통보 받고 자녀에게 부담이 되는 것을 고민하다 자살했다. 2012년 2월, 양산의 지체장애 남성 자녀 소득으로 수급 탈락하자 집에 불을 내 자살했고,7월엔 거제의 이씨 할머니가 사위 소득으로 수급탈락하자 시청 앞에서 음독자살했다. 9월 서울의 한 노인은 치매부인의 기초생활수급 탈락을 염려해 투신했다. 10월 장애가 있던 파주의 두 남매가 활동보조인도 없이 둘만 남아 있던 집에 화재가 나 사망했다. 같은 달 활동보조인이 퇴근한 시간 김주영 씨는 흘로 방에남아 있다 화재로 사망했다.직접 신고하고, 불은 10분만에 진화되었지만 혼자 움직일 수 없었던 김주영 씨를 화마는 집어삼켰다. 11월 부양의부자기준으로수급권 조차 없던 할머니와 손주가 촛불로 추위를 녹이다 화재로 사망했다. 2013년 5월,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수급조차 받지 못하던 돈의동 쪽방 주민의시신이 방에서 발견되었다. 7월, 장애등급 조정으로 수급탈락을 우려한 의정부의 박진영 씨가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기 잃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2013년 9월, 신장투석환자였던 부산의 한 아버지는 딸의 취업으로 인한 수급탈락통보를 받고 딸에게 병원비를 부담시킬 수 없어 자살했다 올해 1월, 아버지의 유산 때문에 수급신청에서 탈락하고 단칸방에서 홀로 지내던 김00(36세, 뇌병변1급) 씨는 원효대교에서 몸을 던졌다. 빙판에 넘어져 일자리를 잃은 송파의 세모녀가, 부양의무자기준 때 문에 수급신청에서 탈락한 뒤 홀로 생을 마감한 울산의 한 노동자가, 그리고 송국현 씨가 우리 곁을 떠나갔다.
생각만해도 숨이 막히는 죽음의 연속이었다. 가난하고 차별받는 이들에게 죽음은 언제나 근거리에 있었다. 적지 않았거나 알려지지 않은 죽음들의 무게를 생각해야 한다. 농성 634일째 여전히 대답이 없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공약은 실종상태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 시기 장애등급제 폐지를 약속했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대로 장애등급을 폐지하고, 그래서 송국현 씨가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을수 있었더라면 그는 여전히 우리의 곁에 남아 있지 않을까. 박근혜 정부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장애인 종합판정 도구’를 새롭게 개발하겠다고 하고 있다. 이는 ‘등급이 아니라 필요한 서비스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요구와 다르며, 신체에 대한 판정을 지속한다는 점에서 핵심 요구를 반영하지 않는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초생활보장제도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기초법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당선 이후 대통령 인수위원회는 ‘수급자들이 복지를 독점하고 있다’는 거짓 선전을 하거나 기초 생활보장제도 취지에는 맞지 않지만 근로능력자를 제외해야한다’는 등의 망발을 서슴치 않더니 현재 새누리당을 통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내용은 사각지대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쪼개고 해체하는 안이다.
장애인의 신체에 등급을 부과하지 않으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을까? 그렇지 않다 현재도 장애등급과 별개로 각 복지서비스에 대한 판정체계가 존재하며, 장애인의 신체에 대한 의료적 접근만으로 장애인을 ‘등록’하고 서비스를 '제한’하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희귀한 경우다. 송국현 씨의 죽음을 기억하라. 장애 3급이기 때문에 타인의 도움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판단해 활동보조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한 그는 일상생활이 아닌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없었다.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면 부정수급이 증폭하고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예산이 늘어날까? 그렇지 않다. 부정수급은 범죄행위로 감시의 대상이 되어야하는 것은 맞지만 현재 우리나라 복지의 문제는 부정수급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방치된 사각지대다. 거대한 복지 사각지대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서 부정수급만 운운하는 것은 빈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해체하려는 주장에 가깝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다음 날, 동대문구 창신동 쪽방지역에 방문해 직접 만든 도시락을 어르신들에게 나누어주며 ‘어르신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노라 약속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복지3법’은 복지파괴 3법이 되었다 기초연금 공약 파기, 장애인공약 파기, 빈곤복지 공약 파기. 자신의 약속조차지키지 않고, 가난한 이들과 대화한번 하지 않는 현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극복해야만 할까?
가난하고 차별받는 이들의 죽음을 직시해야한다
하루 44명이 자살로 목숨을 잃는다. 이들 중 20%, 5명 중 1명은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에 이른다. 10대를 제외한 전 연령에서 자살충동원인 중 압도적인 1위는 경제적 어려움이다.[5] ‘죄송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떠난 송파 세모녀의 죽음 앞에 우리가 느껴야 하는 것은 슬픔을 넘어선 분노와 행동이다. 가난하고차별받는 이들의 죽음은 정치적이며 사회적이다. 반대로 이들의 생존 역시 그러할 것이다. 가난하고 차별받는 이들의 삶이 건강하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 때, 우리 모두는 빈곤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1] 2014년 5월 16일 기준
[2]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별표1 “장애인의 장애등급표”에 규정되어 있다. 장애의 종류에 따라 크게 신체적 장애와 정신적 장애로 나뉜다. 신체적 장애는 다시 외부신체기관ㆍ내부기관의 장애로, 정신적 장애는 정신지체ㆍ정신장애ㆍ발달장애로 니뉘는데, 세목별 장애등급은 다음과 같다. 지체 장애인의 경우 1절단장애는 1~6급, 관절장애는 4~6급, 지체기능장애는 1~6급, 신체변형 등의 잘애는 급으로 분류된다. 2중추신경의 손상으로 인한 복합적 장애인과 3시력장애ㆍ시야결손장애에 해당하는 시각장애인은 각각 1~6급으로 분류된다. 4청각장애인의 경우 청력이 손실된 사람은 2〜6급, 평형장애는 3~5급으로 분류되고 5언어장애인은 3~4급으로 분류된다. 내부기관의 장애 가운데 신장장애인은 2ㆍ5 급, 심장장애인은 1~3ㆍ5급, 호흡기장애인은 1~3급. 간장애인은1~3ㆍ5 급, 안명장애인은 2~4급, 장루 및 요루장애인은 2〜5급, 간질장애인은 2~4급으로 각각 분류된다. 정신적 장애는 정신지체인, 발달장애인(자폐증)ㆍ정신장애인 모두 1~3급으로 분류된다. 기타 중복된 장애의 경우, 같은 등급에 2 이상의 중복장애가 있으면 1등급 위의 등급으로 하고, 서로 다른 등급에2 이상의 중복장애가 있을 때는 주된 장애등급보다 1등급 위의 등급으로 조정할 수 있다. 지체장애와 뇌병변장애, 정신지체장애와 발달장애가 중복될 때, 장애부위가 동일하거나 장애 성격이 중복되어 중복장애로 합산 판정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 때는 중복장애로 인정되지 않는다. 위의 모든 등급은 단계가 낮을수록 장애 정도가 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장애등급 [障碍等級] (두산백과))
[3] 2013년 국정감사, 김성주의원
[4] 2009년 157만-> 2010년 155만->2011년 147만->2012년 139만->2013년 8월 129만명 (출처: eᅳ나라지표. 만자리 이하 반올림)
[5] 자살충동원인, 2012, 국회예산정책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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