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휴학 안했냐?”
“휴학하려고 했는데 학교 망하기 전에 졸업하려고.”
"수업도 자꾸 줄고 학생들도 없어지는데 좀 늦으면 중간에 공중분해될 것 같아”
학교가 망하기 전에 졸업하자는 말, 요즘 안성캠퍼스 학생들 사이에 괴담처럼 도는 이야기이다. 휴학을 하고 자유로운 대학생활은 사치인 학교, 오직 졸업해서 빨리 학교를 떠나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린 학교. 그게 안성캠퍼스의 현 주소이다. 서울캠퍼스에서 일어나는 여러 소식들을 언론과 매체를 통해 들으면 서울캠퍼스의 상황 역시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이 많이 들지만, 안성캠퍼스는중앙대의 철저히 버려진 카드였다 그리고 나는 그 버려진 카드로서 대학 생활 4년을살았다. 내가 앞으로 할 이야기는 안성캠퍼스 학생으로서 지난 몇 년간 학교가 지키지 못한 희망찬 약속들과 그로 인한 피해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나는 학교가 축하한다는 화환과 함께 보냈던 팸플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팸플렛에는 중앙의 가족이 된 것을 축하한다는 글과 함께 중앙대학교의 청사진이 실려 있었다. 팸플렛에 따르면, 안성캠퍼스는 조만간 서울 근교로 이전할 계획이었다. 서울 근교라는 지리적 이점보다 나를 설레게만들었던 것은 학교가 더 나은 시설과 교육환경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처음 입학하고 마주하게 된 안성캠퍼스는 시설도 열악하고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학교 측의 약속처럼 신 캠퍼스에서 대부분의 학창시절을 보내게 될 우리는 좋은 교육을 제공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마음은 온통장밋빛이었디-.
하지만, 캠퍼스 이전에 관한 소식은 구체화된 방안은커녕 무성한 소문으로만 들려왔다. 매 학기 개강총회마다 교수님들께서 “이번 학기만큼은 캠퍼스 이전에진전이 있어 좋은 소식들이 들렸으면 좋겠다. 우리도 힘써보겠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안성캠퍼스 이전문제는 학생들과 교수들의 희망이었지만 사실 정확한내막은 아무도 몰랐다. 그만큼 안성캠퍼스 이전에 관한 모든 정보는 학생들에게 마치 연예인 사생활 이야기만큼이나 언론과 출처 없는 소문으로만 들을 수 있었다. 분명, 캠퍼스 이전의 당사자는 우리 학생들인데. 학교 측은 캠퍼스 이전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학생들에게 단 한 번도 의견을 묻지 않았고. 진행산안에대해 일언반구의 언급도 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학교의 약속만을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학교의 장대한 2018년 계획에 따라, 선택과 집중의 대상이 된 일부 서울 캠퍼스 학과들에 시설투자와 장학금 확충이 일어나는 동안, 선택과 집중에서 배제된안성캠퍼스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시설과 학습 기자재가 열악해 학생들의 불만이 굉장히 높았지만, 학교 측은 지속적으로 신 캠퍼스에 대한 청사진을 꺼내며곧 떠날 캠퍼스이니 조금만 참고 버티라고 학생들을 달랬다. 그러던 와중, 2011년 중앙인에 <버려진 안성캠퍼스>라는 기획의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낙후된 시설들을 방치하는 학교 측의 태도에 분노한 학생들은 학생총회 참석 등을 통해 학교에 적극 항의하였 다. 학생들은 이와 더불어 구조조정 피해자인 안성캠퍼스 학생들 의 권익보호와 전임교원이 부족한 학과의 교수인원 확충 등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통해 학교는 안성캠퍼스의 일부 노후된 시설들을 보완하였지만, 서울캠퍼스에 준하는 안성캠퍼스 투자에 대한 약속과 폐과된 학생들 수업권보장, 신캠퍼스 추진계획에 대한 확답에는 불응하였다. 캠퍼스를 이동하면 좋은 교육을 받게 해주겠다는 뜬구름 같은 약속만이 학교가 학생들에게 해준 전부였다.
캠퍼스 이전과 관련된 모든 소식을 학교 측의 설명이 아니라 뉴스를 통해 접했듯이 안성캠퍼스매각 실패와 캠퍼스 이전 무산 역시 뉴스를 통해 전해 들었다. 학생들은 이제 안성캠퍼스에 어떻게든 투자와 지원이 일어나겠지라는 생각에 다시 한번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학교의 생각은 달랐다. 학교는 본분교 통합을통해 구조조정을 단행하겠다는 계획을 새로 꺼내들었다. 이 과정에서 안성캠퍼스와 서울캠퍼스에서 겹치는 학과는 전부 통폐합 되었다. 물론 폐지된 학과는모두 인성캠퍼스의 유사학과들이었다. 특히 2011년도 안성캠퍼스 경영경제계열 학생들은 새로운 모집단위 신입생으로 입학한지 1년 만에 선배도, 후배도 없이 공중분해 되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전과나 이후 수업권 보장에 대해 일언반구의 약속도 히지 않았다. 늘 그랬듯 학과 구조조정은 오직 일방적인 통보에의해 진행되었다. 군휴학 등의 문제로 입학한지 4년 이후에나 대학졸업을 하게 되는 남학생들은 특히 불안해했다. 졸업할 때까지 보장해주겠다는 수업권은이미 폐과된 외국어대학의 전례를 보았을 때 입학 후 4년이 지나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 학생들은 조용히 자퇴와 반수를 선택하거나, 다른 학교로 편입이나 재입학을 해 학교를 떠났다. 폐과된 학과의 동아리들 역시 신입생을 받지 못하거나, 더 이상 유지할 인원이 남지 않아명맥이 끊겼다. 학생들은 자신의 학과만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학창시절의 추억마저 잃어버린 것이다.
또다른 피해자는 예술대학생들이었다. 안성캠퍼스에 가장 큰 학생 비중을 차지하는 예술대학은, 안성캠퍼스와 서울캠퍼스 통합 직전 법적으로 캠퍼스 간 정원수 이동이 불가능한 것을 이유로, 폐과된 학과들의 정원을 예술대학에 강제 배정하였다. 학생들에게 어떠한 설명도, 어떠한 동의도 구하지 않은 조치였다. 실제 산업디자인 학과의 2012년도 산업디자인과 학생 수는 50명으로 기존의 23명에서 2배 이상으로 증가하였고, 예술대학의 다른 전공들 역시 2배가 넘는학생들을 받았다. 분반이나 학생 수가 증가한 것에 대한 대책이나 지원 없이 기존의 정원보다 넘치는 수의 학생을 배정받은 학과들은 수업시수, 기자재 등의측면에서 준비 되지 않은 채 너무 많은 신입생을 받아 학과 운영에 혼선을 겪기도 했다. 한편 그렇게 2년이 지난 지금, 2015년도 예술대학의 신입생 인원은다시 감축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무줄 늘리듯 학생 수를 늘였다 줄였다 하는 행위는 학교가 학생들의 안정된 교육환경이나 수업의 질보다는 단기적인 학생 정원조정을 통한 이익에 관심이 더 많다는 짓을 방증한다.
캠퍼스 이전이 무산되고, 캠퍼스 통합이란 명목 하에 칼바람처럼 구조조정이 이루어진지 벌써 2년, 남겨진 안성캠퍼스 학생들은 구조조정의 피해를 고스란히감내해야만 했다. 다년간의 구조조 정으로 외국어대학, 경영경제계열. 사회과학계열이 사라지고. 예술대학과 생활과학대 등 소수의 전공만이 남은 안성캠퍼스는 텅텅 비어버렸다. 서울 캠퍼스에는 공간부족으로 학생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하지만, 안성캠퍼스는 유령도시가 되었다. 외국어대학 건물은 남아있지만, 종종 그 곳에서 교양수업이 열릴 뿐 그 건물에 외국어대학생들은 없다. 예술대학 건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들 역시 유령이 나올 것처럼 한적하다. 남겨진 학생들은 이름뿐인 종합대학의 건물들에서 학교가 참 쓸쓸해졌다고 말하며 조용히 학교를 다닌다. 정말 많은 신입생이 들어오고, 많은 학생들로 왁자지낄했던 추억 속 안성캠퍼스는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점점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고 시골에 남은 사람들처럼 우리는 등교시간, 점심시간, 방과 후언제 어느 곳에 가도 학생들의 빈자리를 느낀다.
캠퍼스 공동화는 단순히 우리의 외로움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캠퍼스 공동화는 결국 학생들의 수업권 위협으로 다가왔다. 부족해진 학생 수로 인해 교양과목 과목자체가 많이 개설되지 않고, 그마저도 양 캠퍼스에 분산되어있는 전공을 고려해서 시간표를 짜면 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다. 이렇게 어렵게 신청한 과목들 역시 학교에서 적용한 폐강 기준에 미달되면 가차없이 폐강 된다. 학생 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상황에서 교양과목들의 폐강 기준을 서울캠퍼스와동일한 기준으로 적용하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졸업을 위해 채워야 할 교양과목 이수조차 어려워졌다.
학교 측은 안성캠퍼스 학생들에게 구조조정 이후의 남겨진 학생들의 수업권 보장을 약속하였다 하지만, 학교는 이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았다. 현재 많은 수의학생들이 과의 학년별 부분 이전, 혹은 현장실습명목으로 서울수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양캠퍼스를 이동하며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학교에 서는 안성캠퍼스 학생들이 서울 캠퍼스에서 들을 수 있는 학점의 수를 제한하거나, 교양과목은 안성에만 수강해야하는 규칙 등을 고수해 학생들이 시간표를 짜고 수업을 듣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학생들의 통학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많은 수의 학생들이 양캠퍼스를 이동하며 수업을 듣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학교는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주지 않았다. 물론 학교에서 인성캠퍼스 거주 학생들을 중심으로 일부 학생들에게 서울 수업 통학버스 제공이라는 혜택을 제공하였지만,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학생의 수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고 이 역시 운행시간이 적어 실효성이 부족하다. 또한 안성에 살지 않는 학생들도 대다수 캠퍼스 이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학교는 이들의 사정을 배려할 정도로 이해심이 깊지는 않았다.
정말 슬픈 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학교는 자기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변명한다는 것이다. 학교는 서울캠퍼스 이전은 안성캠퍼스 학생들이 원한 일이며, 어떤어려움도 감내하고도 캠퍼스 이동을 요구하였던 것은 안성캠퍼스 학생들이었다고 주장한다. 사실이다. 안성캠퍼스 학생들은 매우 민주적으로 이 결정에 수긍하였다. 학교는 전혀 강요하지 않았다. 학교는 안성캠퍼스 학과들에게 학생들을 2년씩 나누어 서울캠퍼스에 수업을 개설하는 것을 권유하였고 학과의 의견을존중하겠다고 했다. 물론 이러한 제안 속에 학과의 캠퍼스 이동은 무조건적으로 학과 내부의 결정이며, 서울 수업에 필요한 어떠한 시설이나 기자재 등의 확충을 요구할 수 없다는 전제 조건이 붙었다. 학교는 많은 학과들이 탐내고 있는 서울캠퍼스 강의실을 안성캠퍼스에 선심 쓰듯 제공하였다. 그리고 학생들은이런 불편을 감내하고라도 서울에 가서 수업을 듣겠다고 수긍하였다.
학생들이 부당하고 불리한 조건 속에서 서울캠퍼스 수업 개설을 강행한데에는 뼈아픈 속사정이 있다. 신캠퍼스가 무산되고 무수히 많은 학과들이 폐과되어가는 것을 지켜본 안성캠퍼스 학생들은 '무조건 서울에 우리 과 자리 하나 만드는게 정답’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다. 우리 학과가안성 캠퍼스에 남으면 남을수록 앞으로 학과의 미래가 불투명한 것은 물론, 후배들이 안성캠퍼스가 완전히 공동화되는 최악의 상황에서 수업권조차 보장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또 다시 현실에 불만이 있어도 감내한다. 행여 수업권문제를 가지고 학교에 불만을 표출하면, 우리 과만 안성캠퍼스에 남아 도태되고 피해를 보게 될까봐 누구하나 캠퍼스 간 수업 이동으로 인한 불편에 대해 문제제기하지 못한다. 안성캠퍼스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 대부분은 이러한 상황에 불만이 많지만, 조용히,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나는 4년 동안 중앙대학교에 다녔다. 등록금을 성실하게 낸 학생이었고. 무엇보다도 내 전공공부에 모든 열과 성을 다하고 싶었던 학생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학창시절 내내 나에겐 ‘우리 학교’가 없었다. 대학교 입학할 때 보았던 왁자지껄한 캠퍼스는 이제 음산하고 텅텅 비어버린 조용한 캠퍼스가 되었고, 졸업기준을 채우기 위해 오전오후 안성과 서울 양캠퍼스를 가로지르며 수업 을 들어야했던 나에게 대학캠퍼스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단과학원의 강의실 같은 곳이되어버렸다. 교양학점을 다 채우지 못할까봐 걱정을 하게 되고, 내가 듣고 싶은 전공을 선택하는 것은 4년 내내 나에게 사치에 불과했다. 그렇게 4년을 희생과 기다림으로 일관했던 나와 내 친구들은 학교의 헛된 약속을 뒤로 하고 이제 곧 학교를 떠나 졸업생이 되지만, 나는 학교가 했던 장밋빛 약속들이 지켜지는지 꼭 두 눈 뜨고 지켜볼 것이다. (안 지킬 것을 알기에) 우리의 희생은 후배들을 위한 것이었다는데, 정말 우리 후배들이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는지, 제대로수업은 받고 다니는지, 더 이상 안성캠퍼스라고 차별을 받진 않는지 후배들에게 묻고 물어 확인할 것이다. 갈기갈기 찢어진 나의 대학생활은 구조조정의 직접피해 당사자인 우리 동기들 그리고 선후배들로 족하다.
'지난호보기 > 2014 봄여름, 66호 <대학을 밟지 마시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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