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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보기/2019 봄여름, 76호 <남겨진 목소리>

제주 영리병원 사태, ‘의료’의 목적은 돈벌이가 아니다.

by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 2020. 7. 27.

 

2019년 2월 11일 '제주영리병원 철회 및 공공병원 전환촉구 결의대회'에서 삭발하는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뉴스클레임

안태진 중앙대 졸업생

 

제주도에 영리병원이 생길 뻔했다. 2018년 12월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국내 첫 영리병원인 제주녹지국제병원 개설을 허가했다. 2019년 5월인 현재, 영리병원 추진이 가로막힌 이유는 허가 후 약 4개월 뒤 제주도가 이를 다시 취소했기 때문이다. 개설허가 후 3개월 이내에 개원해야 한다는 의료법[각주:1] 어겼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병원의 개원이 늦어진 것도, 도지사 스스로 허가 취소 결정을 내린 데에도 영리병원을 둘러싼 정치적 맥락이 작용했다. 

관련 시민단체의 반응이 가장 빨랐다. 박근혜 정부 시절 사회 의료민영화 반대를 외치며 모였던 '의료민영화저지범국민운동본부'는 제주녹지병원의 개설이 허가된 후 '제주영리병원 철회 및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로 재출범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같은 의료인 모임부터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외 다수의 노동조합 등 99개의 단체가 모인 범국본은 2월 11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철야 노숙농성을 시작해 20여일 넘게 지속했다. 범국본은 또한 5차례에 걸쳐 제주 원정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영리법원=영리법원병원

Ⓒ매일경제

돈 안버는 병원도 있나? 한국에서 영리병원 반대를 외치면 돌아오는 답변이다. 미국보다는 의료비가 저렴하다고는 해도 병원에 갈 때마다 엄연히 돈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큰 병에라도 걸리면 치료비와 간병비 폭탄이 두려워 10가구당 9가구[각주:2]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해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은 의료법 상 의사와 국가, 비영리법인만이 병원을 세울 수 있다[각주:3]. 또한 같은 법 시행령에 따르면 장례식장 등 부대사업을 포함한 의료업을 할 때 법인은 공중위생에 이바지해야 하며, 영리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논란이 되고 있는 영리병원은 다시말해 영리법인이 설립한 병원이기에 의료법 상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의료법 상 영리병원이 불법이라면 제주도의 녹지병원은 어떻게 허가받은 것일까? 두 가지 특별법이 있기에 가능하다. 영리병원에 대한 논란은 2002년 경제자유구역의지정및운영에관한법률(이하 '경제자유구역법')이 제정된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외국인 투자촉진을 목적으로 하는 이 법 제23조에 따르면 외국인 또는 외국인이 의료업을 목적으로 한 '상법상 법인'은 외국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다. 제정 당시에 위 의료기관은 내국인을 대상으로 의료업과 약업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2004년 내국인 대상 의료행위 금지 조항이 빠지면서 경제자유구역[각주:4]에서 영리병원이 완전히 허용됐다. 제주도의 경우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하 '제주 특별법') 제307조를 통해 외국인이 설립한 법인의 경우 도지사의 허가를 받아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도록 했다.여기서 법인의 종류는 도조례로 위임했는데, 조례에서는 위 법인 을 상사회사의 설립조건을 따른 주식회사와 유한회사로 규정했다. 따라서 현재 7개의 경제자유구역 지정구역과 제주도에서 외국(법)인에 의한 영리병원 추진이 가능한 것이다.

 

결국 환자의 건강문제

비영리법인과 영리법인의 가장 큰 차이는 투자와 이익배분에 있다. 비영리법인은 설립목적 범위 내에서 운영해야 하고, 이윤이 발생해도 외부로 가져갈 수 없다. 또한 기부나 매수 등으로 이익이 생겨도 목적사업과 맞는지 주무관청의 감독을 받기도 한다. 이와달리 영리법인은 말 그대로 투자자의 사익을 위해 영리를 사회 추구하고 그로부터 생긴 이익을 배분할 수 있다. 병원이 영리법인이라는 것은 의료행위가 아닌 수익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의료행위로도 이익을 쫒을 가능성이 열리는 일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견해가 갈린다. 의료를 상품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병원도 상품을 판매하여 이윤을 얻는 일반 회사와 같은 형태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또한 이익을 추구하는 일을 터부시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오히려 적자에 허덕이는 현재의 병원을 벗어나 더 많은 투자로 의료의 질이 높아지고, 치료와 회복을 넘어선 서비스를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세계 최고의 의료진과 최신 장비, 아직 상용화가 되지 않은 의약품으로 중증도가 높을 질환이나 희귀 질병도 치료하고, 쉐프가 개개인의 상태를 고려해 만드는 식사를 먹으며 마사지와 네일케어 같은 힐링 뷰티 서비스도 한 번에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상상해보면 영리병원의 허용은 합리적 선택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런 병원을 운영하는 목적이 환자건강이 아니라 이윤 추구와 배당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의사 인건비의 폭등으로 인한 의료비의 상승과 주요병원 인력 쏠림 현상, 병원에서 의료기기와 제약사업까지 할 수 있게 되면서 수익추구를 위해 과잉진료, 무리한 시술 권유도 가능해진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영리병원이 존재하지 않고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운영하는 현재에도 이 같은 문제를 찾아볼 수 있다.의료기기업체가 의사들에게 불법 로비를 벌이며 영업을 해온 사실[각주:5]이 드러나기도 하고, 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진료의 경우 같은 행위여도 병원별로 가격차이가 7.5배[각주:6]이상 나기도 한다. 병원 운영이 목적이 제한되어 있는 조건에서도 수익 증대를 위한 시도는 다방면으로 이루어진다. 문제는 이런 행태가 환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운영 목적이 수익 증대를 통한 배당이라면 병원의 시스템 전체가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까에 맞춰질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영리병원이 도입된 미국의 경우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을 비교하는 연구자료가 축적된 상태다. 1980년부터 2001년까지 이에 대한 149편의 연구를 분석한 로스나우(2003)[각주:7]에 따르면 의료의 질에서 비영리법인이 더 우수하다고 평가한 논문이 5배이상 많으며, 접근도나 효율성, 사회공헌도 비영리법인이 우세하다.

 

 

국민건강보험 체계를 흔드는 영리병원

한국 상황에서 영리병원의 여파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국민건강보험 의무가입제와 당연지정 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무가입제는 모든 국민은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는 뜻이고, 당연지정제란 모든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지정 의료기관으로 정해져있다는 말이다. 현재 병원에서 환자가 일부 본인부담금[각주:8]을 내면, 나머지 금액은 진료비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청구된다. 의료서비스 당 가격(수가)[각주:9]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진료받은 행위별로 진료비가 지불되는 행위별 수가제도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

Ⓒ건강한 세상, 더 큰 연대를 위한 보건의료학생 매듭, 의료민영화 대응 자료집 2009

만약 당연지정제가 폐지되어 병원이 국민건강보험 체계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정해진 가격표가 없기 때문에 의료기관은 자의적으로 진료비를 책정해 전액을 환자에게 부과할 수 있다. 미국에서 민간보험이 없는 환자들이 치명적인 의료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현재 경제자유구역법과 제주특별법에 따르면 아래와 같은 조항이 존재해 해당 의료기관은 건강보험적용대상이 아니다.

경제자유구역법 제23조제5항
제1항 및 제2항에 따라 개설된 외국의료기관 또는 외국인전용 약국은 「국민건강보험법」 제42조제1항에도 불구하고 같은 법에 따른
요양기관으로 보지 아니한다. 
제주특별법 제307조제4항

외국의료기관은 「국민건강보험법」 제42조제1항에 따른 요양기관과 「의료급여법」 제9조 제1항에 따른 의료급여기관으로 보지 아니한다.

국민건강보험 적용대상이 아닌 병원이 생긴다면 건강보험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조건이 생긴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제주도와 경제자유구역에 외국(법)인이 만든 영리병원이 생긴다고 가정하자. 막대한 비용을 들여 유명세가 있는 의사를 영입하고 병실을 호텔처럼 꾸미 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한다면 돈이 많거나 치료가 절박한 사람들이 영리병원으로 향할 수있 다. 그렇다면 영리병원에 맞는 민간보험 시장이 생기고 영리병원의 성장세만큼 많은 사람들이 민간보험을 택하게 된다. 병원의 의료비가 비싸니 자연히 보험비도 비싸지고, 민간보험에 든 사람들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더 많은 영리병원이 생긴다고 가정하면, 모든 사람이 국민건강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한 현행제도에 대한 비판 여론이 생길 수밖에 없다.

민간보험은 보장률이나 질병에 따라 보험비가 달라진다. 하지만 건강보험은 소득에 비례해 보험비가 책정되고, 얼마를 냈던 간에 동등한 혜택을 받는다. 영리병원의 보편화와 건강보험 의무가입제가 폐지되어 스스로 의료비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 건강보험을 탈퇴하면 사실상 국 민건강보험은 재정여건 상 제 기능을 하기 어려워진다. 건강보험이 축소될수록 민간보험의 시 장장악력이높아지고,비용을높일수있는여지도커진다.결국 민간보험에가입한사람과돈이없어가입하지못하는사람모두 높은 의료비를 감당해야 한다.

제주 녹지병원은 외국인 전용? 수백억대 소송전 예고돼

영리병원에 대한 무수한 우려에 대응하듯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내국인 진료를 금지하는 조건으로 녹지병원을 허가했다. 그런데 의료법 제15조에 따르면 의료기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다면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 제주도는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에 녹지국제병원이 내국인 진료를 거부하더라도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받았다는 입장이다. 

녹지병원은 지난 2월 내국인 진료 제한을 풀어달라는 행정소송을 낸 바 있다. 실제로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도 '한국 국적자가 녹지병원에 진료받으러 갔다가 거부당해 의료법 위반으 로 고발하고, 법원에서 위법이라는 판단을 내린다면, 진료대상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각주:10]고 밝히기도 했다. 아무리 조건부 허가를 한다고 해도 내국인대상 병원이 될 여지가 충분한 것이다.

제주도는 지난 4월 녹지국제병원의 개설 허가를 취소했다. 녹지병원이 정당한 사유없이 허가 후 3개월 내에 개업하지 않았다는 것이 취소 이유다. 녹지그룹은 행정소송 제기가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녹지그룹은 병원운영을 포기하고 고용했던 직원 50여명도 모두 해고조치 했다. 그리고 850억원의 손실액을 주장하며 책임을 제주도에 돌렸다.

녹지그룹은 3월 열린 청문에서 "녹지는 제주도와 JDC(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영리병원 투자계약을 체결한 외국인 투자자"라고 주장했다. 제주도가 헬스케어타운에 투자하는 녹지제주에 병원 건설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원희룡제주도지사는 2015년 4 월 도의회에서 "사실은 그쪽(녹지그룹)에서 애로사항을 이야기했는데도 이것(녹지병원 설립)은 제주도, JDC 등 사업주체의 입장에서 거의 강요하다시피해서 지금까지 진행돼 온 상황"[각주:11]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JDC는 국토교통부 산하의 국가 공기업이다. 다시말해 제주녹지의 말이 사실이라면 제주영리병원은 제주도지사와 행정부의 기획인 것이다.

 

의료는 경제성장의 도구가될수없다.

영리병원과 같이 의료로 돈을 벌겠다는 기획은 정권을 막론하고 추진됐다.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개설의 물꼬를 튼 것은 김대중 정부이며, 내국인 진료를 제한한다는 규정을 개정한 것은 노무현 정부다. 노무현 정부는 또한 의료를 산업으로 규정하고 각종 규제 완화 계획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영리병원 허용, 자회사 설립 허용 등을 주요 추진과제로 세웠다. '현 정권 하에서 영리병원 추진은 없다'던 문재인 정부도 5월 22일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전략'을 발표하며 의료민영화 정책 추진에 불을 붙이고 있다.

김대중 정권에서 처음 영리병원을 추진하려던 이유는 외국인 투자 활성화였다. 2014년 내국인 진료제한 조건이 해제된 이유도 외국인 투자 유치를 더욱 독려하기 위함이었다. 노무현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는 의료산업 육성 정책은 사회 의료를 신성장동력으로 삼아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다. 결국 논점은 의료를 경제성장의 도구로 볼 수 있냐로 돌아온다. 물론 기술개발에 따른 변화를 의료부문에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산업과 달리 의료분야는 사람의 생명과 직관되므로, 목적이 환자 건강에 맞춰져야 한다. 따라서 기술 도입과 규제 완화 등의 제도정책 추진에 있어도 일관되게 국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우선으로 섬세하게 결정해야 한다. 의료를 단순 산업으로 보고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삼는 정책이 견제되어야 하는 이유다.

 

제주녹지병원 공공병원 전환과 경제자유구역법 개정해야

제주녹지병원 문제의 해결은 그래서 중요하다. 녹지병원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만 낭비하고 취소됐다. 일각에서는 녹지병원을 제주도와 정부가 인수해 공공병원화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녹지국제병원이 위치한 서귀포 시가 응급 2차 의료취약지로 분류되며 병원급 의료기관 의료접근성과 응급실의 접근 불가 인구 비율도 매우 낮기 때문[각주:12]이다. 녹지병원이 이미 건물까지 완공돼 있으므로 비용을 보전해 인수하여 지역 공공의료기관으로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이와 더불어 경제자유구역법과 제주특별법의 영리병원설립 관련 조항 폐기도 필요하다. 아무리 법적으로 외국인에 의한 설립만 가능하다고 해도 법망을 피해 우회투자를 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제주 녹지병원도 국내 병원에 의한 우회투자 의혹을 강하게 제기받기도 했다[각주:13]. 더 이상 의료의 목적을 영리로 두려는 시도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제주영리병원의 진행 상황과 관련 법안의 영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1. 1 의료법 제64조제1항 [본문으로]
  2. 2 국민건강보험공단 산하 건강보험정책연구원(2017) [본문으로]
  3. 3 의료법 제33조 [본문으로]
  4. 4 경제자유구역지정구역:인천, 부산진해, 광양만권, 황해, 대구경북, 동해안권, 충북 [본문으로]
  5. 5 연다혜, 「부당거래 이득은 업체와 의사에...부담은 국민 몫」, 뉴스타파, 2019.1.23. [본문으로]
  6. 6 감사원, '의료 서비스 관리실태 감사결과'(2015) [본문으로]
  7. 7 Vaillancourt Rosenau P, Linder SH. 'Two Decades of Research Comparing For-Profit and Nonprofit Health Provider Performance in the United States.' Social Science Quarterly; 2003:84(2): 219 -241 [본문으로]
  8. 8 본인부담비율(외래진료, 동지역, 일반환자 기준) 상급종합병원:진찰료비용의 100% + 나머지 요양급여비용의 60% 종합병원: 요양급여비용총액의 50% 병원급: 요양급여비용총액의 40% 의원급: 가격대 별로 다름 예) 25.000원초과, 30,000원이하시 요양급여비용총액의 20% [본문으로]
  9. 수가금액=상대가치점수(업무량, 진료비용, 위험도)x유형별 점수당 단가(환산지수). [본문으로]
  10. 10 「제주 영리병원 내국인 진료 막을 수 있나」, 매일경제, 2018.12.06 [본문으로]
  11. 11 「"영리병원, 제주도가 강요하다시피해 진행".. 제주지사 과거 발언 재조명」, 뉴시스, 2018.12.10 [본문으로]
  12. 12 제주특별자치도 보건의료발전계획 수립 연구, 한국보건산업진흥원, 2016 [본문으로]
  13. 13 최나영, '소송 끝에 공개된 녹지국제병원 사업계획서 분석해 보니',매일노동뉴스, 2019,03,1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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