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선
2019년 대한민국을 관통한 버닝썬 게이트를 통해 우리는 클럽 약물 강간과고객과 클럽, 경찰들 간의 유착관계, 약물 강간 범죄를 불법 촬영하는 디지털 성범죄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몸과 성을 폭압적으로 거래하는 강간 문화의 정황들을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강간문화의 주축이 되고 있는 클럽에 대한 분석과 더불어 이러한 강간 문화가 가동하는 메커니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메커니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클럽 버닝썬의 약물 강간사건의 정황들에 대해 살펴봅시다. 디스패치에서 취재한 클럽 임직원들의 단체 카톡방 메시지들을 통해 이는 보다 명료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물 좋은 여성 게스트를 소위 ‘물게(물 좋은 게스트)’라는 성적 은어를 통해 지칭하며 부킹 담당 MD가 이 여성들을 VIP룸 고객에게 데려가 주면 두 당 돈을 받게 되는 구조인 것입니다. 술에 취해 정신이 없는 여성고객을 ‘골뱅이’이라고 부르며 VIP 룸에서 일어나는 성행위를 불법 카메라로 찍어서 임직원들 간에 공유, 유출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또한 ‘물뽕’이라 불리는 GHB라는 중추신경을 마비시키는 무색·무취·무미의 마약을 알코올과 섞어 여성에게 복용시켜 정신을 잃게 할 수 있기에 남성들 간에 이 약물은 여성 강간제로 상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클럽이나 클럽과 연계된 호텔 화장실에서 마약에 취해 사지의 힘이 풀린 사람들에 대한 증언들 남성 두 명에 의해 부축되어서 나오는 정신을 잃은 여성에 대한 목격 등-이 나오고 있었으며 클럽에서 고용한 여성 직원이 마약의 주된 공급처라고 알려졌습니다.
GHB가 강간물뽕으로 거래되는 이유는 중추신경 마비제 성분의 이 마약이 알코올과 섞이는 순간 뇌에 강한 쇼크를 주어 정신을 잃게 하거나 기억을 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수용성 물질이기에 6시간 이후에는 소변으로 배출되어 하루가 지나면 검출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특성이 있기 때문에 뒤늦게나마 강간을 인지한 여성들이 이를 신고하고 법적으로 고발할 수 있는 가능성조차 삭제해버릴 수 있습니다.
클럽은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성’이라는 포획물을 사냥하는 남성연대의 무대이며 이 포획물을 VVIP들에게 제물처럼 갖다 바치는 클럽 MD와 직원들의 조직적 협업-물게로 지칭된 여성에게 접근하는 일반 타 남성 고객들의 접근을 막고 VVIP 룸으로 그 여성을 들어가게 만드는 치밀한 작업-, 그리고 클럽의 VVIP 고객들에게 중추신경마비 마약(GHB)이라는 효과적 사냥무기인 강간제 공급을 통해 여성의 성은 남성 약탈경제의 교환물로 손쉽게 거래되고 있습니다. GHB의 사용을 통한 클럽 약물강간은 여성들을 저항 불가능한 상태에 놓이게 할 뿐만 아니라 강간의 기억을 피해자의 의식에서 송두리째 지워버리고 약물강간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게 한다는 점에서 조직적이며 주도면밀한 차원의 증거인멸 작업이자 지속적인 클럽 강간산업의 유지를 실현하는 핵심 아이템이라 볼 수 있습니다. 2월 13일 MBC 뉴스데스크 취재 보도에 따르면 버닝썬 클럽의 직원들이 약물에 취해 정신을 잃은 여성의 나신 사진들을 거의 2주에 한 번꼴로 클럽의 VIP 고객들에게 전송하며 "VIP 고객이 여성을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물뽕을 먹여 세팅해놨으니 어서 맛보러 오라"며 조직적 차원에서 여성약물강간을 클럽의 호객행위로 이용하였다고 합니다. 더구나 클럽과 경찰의 부당거래를 통한 유착관계는 약물강간을 인지한 여성들의 희미한 기억의 조각에 대한 진술의 진실성을 증거불충분이나 기소불가능을 이유로 폐기하거나 그들의 진술이 효과적으로 반영된 강간사건의 수사 자체가 제대로 진행될 수 없도록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습니다. GHB 약물사용과 경찰 유착관계는 피해자 여성들의 진술의 가치 값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체계적으로 무력화시키고 있습니다.
언어학자 오스틴에 따르면 무언가를 말하는 ‘발화행위’, 예를 들어 피해자 여성이 ‘내가 그 클럽에서 약물강간을 당한 것 같아요’라는 발화행위는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는 것뿐만이 아니 라 우리에게 그 사실이 일어났다는 일종의 증언이자 경고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발화수반행위’를 동반합니다. 문제는 GHB 약물은 해당 사태에 대한 피해자의 기억을 대부분 앗아가기에 피해자 여성의 진술이 증언으로서 지니는 진실성의 가치와 온전성의 여부에 균열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불확실하거나 불완전한 진술로 치부하여 그의 발화수반행위를 무력화시킵니다.
또한 “내가 그 클럽에서 약물강간을 당한 것 같아요”라는 발화행위가 피해 사태에 대한 증언으로서 설사 진실성을 인정받는다 하더라도 경찰과 클럽이 서로 유착되어있다면 이 사건의 가해자들을 철저히 수사하고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실질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발화효과 행위’는 제대로 가동될 수 없게 됩니다. 이로써 클럽 약물강간 사태는 제대로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확인 불가능한 익명의 여성개인이 겪은 클럽의 괴담이나 썰-클럽에 가서 놀다가 눈을 떠보니 모텔에서 낯선 남자 여러 명과 함께 깨어났다는 것-처럼 조각조각 파편화되어 부유하여 마치 불특정 개인의 특수하고 불운한 케이스나 소문으로 다뤄져 왔습니다. 하지만 클럽약물강간은 각종 언론사의 취재를 통해 그 조직적 정황과 피해사실과 증언들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기에 여성들은 이것이 더 이상 한 개인의 예외적이며 특수한 케이스로 고립된 채 다뤄질 것이 아니라, 이때껏 여성의 몸을 불법으로 거래해온 클럽과 이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남성고객들, 약물판매와 클럽강간문화라는 강간산업을 묵인, 보위, 방치해온 경찰과 사법체계에 대한 전면적 규탄시위, 남근카르텔 규탄시위, 버닝썬 게이트 규탄시위의 조직을 통해 남성문화 전반에 관한 여성들의 분노와 정치적 집단행동을 벌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마치 불법촬영 카메라 범죄가 특수한 여성 개인들의 원자화되고 고립된 케이스라고 치부하던 것을 넘어 이것이 하나의 거대한 디지털 성범죄 문화의 구조적 산업으로 생산, 공유, 방조되어왔음을 깨닫고 많은 여성들이 불법촬영 규탄시위로 집단적으로 대응해온 메커니즘과 비슷합니다.
클럽, 욕망과 소비력의 비균질적 공간
그렇다면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이 클럽이라는 곳은 어떠한 공간일까요? 클럽이라는 공간은 춤과 음악, 술, 심야의 많은 사람과의 만남이 가능하기에 개인들 간의 사회적 거리가 일 시적으로 좁혀질 수 있으며 상호 유혹과 관능적 시선 교환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또한 사회적 코드들에 의해 경직되어있던 신체 에너지를 춤을 통해 역동적으로 발산하며 즐거움과 해 방감, 새로운 몸의 감각을 느낄 수 있기도 하지요.
제가 분석하기에 클럽이란 장소는 모든 요소가 균일한 고도 위에 배치된 균질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성별과 외모, 경제적 소비력, 욕망의 방향성이란 다각적 축에 의해 비균일한 방식으로 고도의 선이 그려진, 위계적 굴곡과 심층의 비균질적 공간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시말해 댄스 스탠딩 플로어와 이를 둘러싼 테이블, 그리고 폐쇄적 프라이빗 룸으로 구분된 클럽의 공간은 고객들의 성별과 외모, 욕망의 방향성, 경제적 소비력에 의해 위계적으로 배치, 분리된 채 가동되고 있습니다.
클럽에서 여성들은 외모와 몸매, 옷, 나이에 의해 입장에서부터 엄격한 기준에 의해 품평되고 판정되며 그들과 욕망의 방향성이 전혀 다른 남성들과의 만남은 불쾌한 접촉과 충돌을 양산하기도 합니다. 때론 클럽에서 여성들은 자신들의 신체 자원이 지닌 심미성을 한껏 뽐내며 남성들과의 상호유혹과 시선 교환을 통해 자신이 과연 욕망할 만한 몸을 지닌 자인가를 확인받거나 성적 이끌림을 충족시키기도 하고 춤을 통해 스스로의 관능성과 자신감, 해방감을 얻기도 합니다.
신물질주의 관점에서 한국사회의 클럽이란 공간은 다각적 요소 간의 위계적 배치에 의해 조성된 일종의 특정한 조합체(아상블라주, assemblage)라고 분석해볼 수 있습니다. 흥겨운 음악과 춤, 술, 많은 여성과 남성들, 화려한 조명과 적당한 조도의 어둠의 공간, 사회적 거리의 단축 가능성, 다양한 욕망의 방향성과 감각적 몸의 부상, 해방감과 자기과시, 사회적 코드로부터의 일탈의 욕구와 같은 다각적 요소들이 남성중심주의 문화라는 구심점에 의해 빨려 들어가기 시작할 때 위와 같은 다양하고 이질적인 요소들은 남성욕망경제를 최대한 실현시키는 방식으로 위계적이며 폭압적으로 배치되게 되는 것이죠.
그리하여 여성 고객들에게 클럽 입장료가 무료이거나 저렴한 이유, 혹은 남성의 마음에 든 상대라는 의미로 음료를 선사받는 클럽에서의 유혹의 관례들 모두는 젊은 여성의 몸이 소위 클럽의 강간산업을 가동하는, 남성 고객들을 위한 잠재적 자연자원으로 착취, 동원될 수 있기에 이루어지는 전략적 장치들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이러 한 클럽문화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요?
남성약탈경제에 의해 오염되지 않는 클럽문화가 가능하려면 앞서 명시되었던 다각적 요소들이 남근욕망중심주의로부터 온전히 탈주한 채 재결합하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가부장제 시스템의 붕괴가 요청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은 지금, 여기의 부조리를 타파하는 절박한 시대정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부장제 시스템 내에 면면히 흐르는 강간문화의 기원은 무엇일까요?
강간문화의 기원
우리는 강간문화를 공고히 하는 ‘남성연대(male bonding)’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분석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타이거에 따르면 야생동물을 먹이로 포획하고자 익힌 집단사냥의 기술은 남성들 간의 긴밀한 유대관계의 규율과 연대감을 발전시켰고 이는 자연과 여성, 공동체에 대한 강력한 지배자이자 약탈자로서의 ‘남성-사냥꾼 모델’의 원형을 탄생시켰습니다(Tiger, Men in group(1969)).
다시 말해 남성들은 집단적 연대를 통해 포획물 취득이라는 일종의 성취를 함께 경험하고 맛본 집단이자 포획물 분배규칙을 결정짓는 남성연대 내의 위계적 서열관계를 철저히 내면화하고 복종한 자들이기 합니다. 남성-사냥꾼 모델로서의 인간은 포획과 살상의 무기를 통해 비인간동물을 사냥할 뿐만 아니라 다른 공동체도 약탈하고 정복하며 그 집단의 여성과 어린이를 노예화함으로써 약탈경제를 통한 이득을 성취해 나갔습니다. 피셔에 따르면 야생동물의 사육을 통해 그들의 생식활동과 주기를 강제적으로 조정, 관리하는 목축업의 출현은 집단 내 여성의 재생산활동에 대한 관리와 타집단 여성에 대한 납치강간을 통한 부계 사유재산 강화제도와 밀접한 연관을 맺습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집필한 마리아 미즈는 이러한 비생산적이고 약탈적인 경제양식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착취관계를 가능케 하는 조건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남성 연대체에 의한 약탈경제는 “자율적인 인간 생산자를 타인을 위한 생산, 즉 이득창출의 조건으로 변형시키는 것, 또는 그들을 타인을 위한 자연자원으로 규정하는 것입니다(마리아 미즈,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예를 들어 버닝썬 클럽 약물강간사건 의혹의 전말은 클럽의 여성 고객들을 VVIP 남성 고객들을 위한 포획물로 취급하고 여성고객들의 신체와 성을 클럽 수익 창출의 핵심수단이자 자원으로 조직적이며 불법적인 방식으로 약탈하고 착취해왔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버닝썬을 비롯한 클럽의 약물강간 사태야말로 남성 연대체에 의한 약탈경제의 표본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불법촬영 공유문화는 여성의 신체와 성을 남성 연대체의 유희와 쾌락, 결집의 수단 이자 포획물로 삼는, 소위 강한 남자인증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진짜 사나이들의 연대라는 문화-군대나 조직문화, 남성또래문화- 속에서 여성에 대한 음담패설과 성적 대상화는 ‘누가 진짜 남자가 아닌가?’라는 질문의 표적에 자신이 아닌 다른 자들-여성과 사회적 약자들-을 소환하고 조롱, 모욕함으로써 자신은 남성성 규범에서 결코 열외되지 않는 특권적 존재임을 확증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에 반기를 드는 이들은 남성연대에서 축출되거나 진짜 남자도 아닌 존재로 낙점되어 그룹 내에서 비하,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요. 카메라를 이용하여 여성의 성과 신체 이미지를 갈취하고 능욕하며 일상 속 모든 여성에게 공포감과 성적 굴복감을 주입하여 남근 연대의 강자성을 각인시키는 것입니다.
불법촬영물에 대한 보다 용이한 접근권-영상좌표나 품번등-을 둘러싼 남성멤버들 간의 요청과 친목, 상호정보 공유는 불법으로 채굴한 여성의 신체 이미지가 일종의 남근 다발체들의 연대와 상호원조를 위한 교환수단으로 이용됨을 알 수 있습니다. 불법 카메라를 통해 찍는 자들은 인식-시선주체로서 여성의 육체성과 물질성을 끊임없이 평가하고 포박하여 그것을 남성의 욕망 아래 온전히 종속시킬 수 있는 권능을 지닌 존재로서 기능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클럽 내 여성 고객의 몸과 성이 이러한 방식으로 약탈되는 것이 허용, 묵인될 수 있는 역사적, 이론적 기반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저의 논문, <가부장제친족구조 분석을 통한 인공 임신중절담론 재고찰>에 따라 가부장제 사회구조 속 여성의 몸과 성(sexuality)의 위상에 대한 탐구와 더불어 그러한 위계적이며 불평등한 담론의 원천(origin)에 대해 날카롭게 규명해보고자 합니다.
구조주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Léi-strauss)는 <친족의 기본 구조>라는 책을 통해 아버지나 남자 형제들에 의한 친족 내 여성에 대한 성적 소비-족내혼이나 근친상간-는 금지되는 대신 그들에 의해 여성들은 ‘족외혼’이란 결혼제도를 통해 다른 집단의 남성들에게로 증여, 양도되는 교환물, 즉 ‘선물(present)’(루빈(2015), 일탈)로서 소통된다고 주장하였지요. 다시 말해 여성은 결혼을 통해 가부장제 사회구조의 남성들 간의 교환물, 선물로 증여되는 가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성교환’이 사회를 구성하는 가부장적 친족 집단 간의 정치·경제·문화적, 감성적 결속과 연대, 상호 원조와 확장뿐만 아니라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 의미경제의 전수와 강화를 가능케 하는 열쇠로 작용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선물 증여의 의미는 교환 파트너들, 즉 남성 연대체 간의 신뢰관계와 상호원조의 드라마를 가능케 하며 이때 여성은 선물 증여행위의 교환물이나 화폐로서 기능할 뿐이지요. 버닝썬 클럽의 각종 불법행위들이 지속적으로 가동되고 묵인될 수 있었던 그 기반에는 클럽과 경찰 간의 유착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는 돈이나 여성의 성과 같은 선물증여를 통해 교환 파트너들 간의 특별한 유대관계와 상호원조의 연대감이 형성되며 이러한 선물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또 다른 선물-약물강간수사의 내사종결, 피해자의 주요증거물 훼손, 분실 등-로 보답하겠다는 의지, 끈끈한 유대관계의 승인을 의미한다는 것이지요(윤지선(2018). 이러한 지속적 선물증여를 통해 클럽-VVIP 남성고객-경찰이라는 남성연대는 굳건한 카르텔을 형성하며 클럽에서 여성의 성과 몸을 불법적으로 포획하고 탈취하는 대상, 교환물로 공공연히 취급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여성교환 경제 프레임을 통해 현재에도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여성을 표적으로 한 친족들의 명예살인(honor killing)의 메커니즘에 대해 분석함으로써 가부장제 사회 내 ‘여성’이라는 기호의 의미경제에 대해 논의하려고 합니다. 미혼이거나 기혼인 딸들과 누이들이 성적으로 흠결이 있거나 방종하다는 최소한의 심증 또는 강간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친족 내 구성원인 아버지와 오빠, 삼촌들이 직접 나서서 ‘그들의 딸이자 누이’인 여성들을 불태우거나 구타해서 죽이는 것이 바로 친족에 의한 여성 살해범죄, 소위 명예살인입니다.
이는 가부장적 친족 구조 내에 성적으로 부정한 여성인 딸, 누이 등이 있을 경우 그들은 여성교환 경제시스템에서 상호교환 수단선물-으로서의 가치를 잃게 됩니다. ‘정결한 내 딸을 너의 아들과 결혼시키는 대신, 정결한 너의 딸과 누이들은 나와 나의 아들들과 결혼시킬 수 있다’라는 여성교환 경제의 원리에 입각한다면, 이는 부정한 여성을 둔 가족의 구성원인 남성들-아버지나 남자 형제들-은 외부의 가치 있는 여성 교환물-처녀, 가부장제에 순응하는 정결한 여성-을 소유하고 맞교환하는 권리 자체가 박탈당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아버지와 남자 형제들은 직접 나서서 교환 불가치의 상품-가부장제의 불량품으로 전락-이 돼버린 딸이나 누이를 철저하고 공개적인 방식으로 수거·폐기·제거함으로써 (현실적·잠재적) 가부장으로서의 자신들의 상호교환수단 권리-순결하고 정결한 여성을 소유할 권리-를 원천적으로 재복구하고 균열이 일어난 가부장제 시스템을 다시 보수하고 가동시키고자 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지요 (윤지선(2018)).
강간문화의 메커니즘
이제 우리는 강간문화를 가동시키는 메커니즘에 대한 분석을 이어나가고자 합니다. 첫째, 클럽에 가서 약물강간을 당한 여성들의 피해사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많은 이들은 “클럽 가 면 그럴 줄 알고 간 거 아니냐”라고 답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 대답은 참으로 흥미로운 분석을 가능케 하는데요. 우리 사회는 강간이나 성추행의 피해를 입은 여성들에게 너는 그 상황에 대해 온전히 무지하지 않았기에 완벽한 피해자라 할 수 없다는 2차 가해를 당연한 듯 실행합니다.
다시 말해 온전히 무지하지 않은 여성은 성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온전히 순수하지 않음을 전제하는 주장으로 여성에게 있어 특정 사실에 대한 앎의 여부는 피해사실의 동의 여부와 연관되어 있다고 오인하는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 ‘비공개 촬영회’라는 이름을 달고 여성 모델의 신체를 추행, 강압적·암묵적 노출을 요구했던 사건에 대한 논쟁의 핵심 쟁점이 여성 모델의 ‘무지’ 여부와 정도라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해당 여성 모델이 노출의 수위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는가의 여부와 그러한 노출 촬영에 대한 인지 이후에 참여한 촬영 횟수와 빈도에 관한 논쟁은 무지하지 않는 여성이란 곧 남성 폭압적 시나리오에 동의한 적극적 행위자(agent)라는 낙인과 연관된 것입니다. 하지만 남성 중심적 사회구조 내 해당 여성에게 주어진 앎의 정도-불공정 계약서, 촬영에 대한 대략적 수위인지, 카메라의 개수 등-란 지극히 미미하거나 언제든지 기만될 여지가 있습니다. 또한 이는 늘 남성 폭력의 전체적·특권적 조망에서 열외된 방식으로 주어질 뿐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인지 여부가 피해 유무의 절대적 판단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클럽에서의 유희와 춤, 관능과 해방의 분위기에 대해 부분적으로 안다는 것이 과연 클럽 내 약물강간, 성추행에 동의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는지 반문하고 싶습니다. 사실상 클럽 내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약물강간범죄의 메커니즘에 대해 온전히 인지하고 있는 여성들이 없었기에 그렇게도 많은 여성 피해자들이 양산되었던 반면, VIP 남성 고객들은 이러한 남성약탈경제의 구 조를 주기적인 클럽 홍보 메시지나 클럽문화 안에서 완벽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온전한 가해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강간의 피해자가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여성이 있었던 장소와 시간대, 입었던 옷, 평소의 행실이나 정결성 여부, 성격, 직업, 혼인 여부 등이 강간의 촉발 원인이거나 강간의 진위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남성이 특정 장소에서 폭행을 당했을 때 우리는 그 사건의 촉발 원인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태도와 의도, 폭력성 등에 초점을 맞추고 남성 폭행 피해자의 평소의 행실이나 의복 차림, 성격, 직업 등이 사건 안에서 거론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에 그런 것일까요?
윤김지영 선생님의 <메갈리아> 논문에서 나온 ‘내사와 투사’ 개념을 기반으로 이를 분석하고자 합니다. 내사란 introjection으로 외부의 감정이나 생각, 사건들의 요인을 자신의 내 부에서 찾고자 하는 심리작용을 뜻하며 주로 여성의 심리메커니즘에 적용됩니다. 여성들은 일상적으로 이러한 introjection, 즉 외부의 것들을 자신의 내부로 내던지는 내적 투사의 심리적 기제에 길들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클럽에서 성폭력을 당한 여성 피해자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여성과 주위의 사람들은 여성의 의사와는 무과하게 성폭력을 행사한 가해자라는 외부적 요인에 초점을 두는 것을 넘어서, 오히려 그러한 사건이 일어난 요인을 해당 여성의 내부-평소 행동반경이나 태도, 있었던 시간대, 옷차림, 진한 화장여부, 술 복용여부 등에서 찾으려고 하는 내적 투사의 심리적 기제 틀 안에서 이 문제를 접근하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여성 피해자는 그 사건의 원인을 스스로의 부주의함으로 돌리고 자책을 하거나 자신에 대한 가혹한 판단이 두려워 피해사실을 외부에 제대로 알리지 못하며 침묵하게 됩니다. 이에 반해 남성 가해자들은 스스로가 저지른 성적 폭력행위를 결코 자신의 탓이 아닌, 해당 피해여성이 촉발한 것으로 돌립니다. 남성들은 자신의 내적 감정과 생각, 욕망을 밖으로 표출하고 드러내는 pro-jection, 외적 투사, 즉 내부의 것을 외부로 내던지는 투사의 심리적 기제에 길들어 있습니다. 이 투사의 심리적 기제는 주로 남성들에게 일어나는 심리적 방어기제로서, 라틴어 어원을 분석해 본다면 pro-는 ‘앞으로’, jectio는 ‘내던지다’라는 뜻이 있는데 이는 자신의 내부에 있는 불안이나 충동, 잡념, 부정적 감정, 욕망, 욕구의 원인을 자신의 외부에 있는 대상-환경, 주변인물, 사회적 약자들-들에게 투사하여 내던짐으로써 스스로의 잘못과 허약함을 외부의 원인과 탓으로 돌리거나 내적 정념, 욕망, 충동들을 외적으로 가감 없이 표출하는 성향을 일컫습니다.
또한 남성들은 자신의 내밀한 성적 욕망을 거리낌 없이 외부로 내던지는데 이는 음담패설이나 직접적 행동, 욕설, 공격적 몸짓 등으로 이어지며 자신의 성호르몬을 외부로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하고 분비해내는 것을 남성다움의 상징이라 여기고 이러한 남성 중심적 문화에 사회는 상당히 관대한 편입니다. 따라서 성폭력을 행사한 남성 가해자들은 자신의 내밀한 성적 욕망의 촉발 원인은 여성이라는 외부요소에 의해 자극되어 나온 것이라고 변명하는데, 스스로의 범죄행위의 원인은 자신의 내부(공격성, 여성혐오, 열등감)가 아닌 외부요소 (그 당시의 여성의 태도, 품행, 웃음, 옷차림, 심리적 의존성, 취약성 등)에 투사하여 내던져 버리는 pro-jection의 심리적 작용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됩니다.
이러한 성별에 따른 무의식적 심리적 기제를 뒤틀어버리는 것이 바로 여성들이 자유롭게 바깥으로 이동하여 내적으로 욕망하는 것을 자본을 통해 거리낌 없이 소유하고(베스킨라빈스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서 마신 뒤) 화장실에서 그간 먹고 마신 그들의 내부 분비물을 외부로 배출하고 클럽에서 몸의 관능성과 해방감의 감각을 만끽하고 호텔이나 자취방에서 연인과 내밀한 성욕과 성애를 자연스fp 드러내고 분출합니다. 이때껏 여성들은 항시 외부의 것을 안으로 받아들이고 감내하고 참아내며 영원히 intro-jection, 즉 내적 투사만을 감당해야 할 수동적 존재들이여야 했는데, 감히 남성들처럼 욕망을 자유로이 표출하고 활보하며 사회문화적으로 pro-jection의 위상에 도달하게 되었다는 것에 일부 남성들은 격노하고 견딜 수 없어 합니다. 클럽 약물강간의 피해 여성들에게 ‘클럽에 자주 다니는 여성들은 원래 그런 애들이기에 당해도 싸다’라는 반응이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이 분석될 수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버닝썬 클럽의 남성 직원들은 클럽의 VIP 룸이나 화장실에 불법카메라를 설치하여 일상 안에서 pro-jection을 수행하는 여성들을 성적으로 능욕하고 비난, 욕설하며 그 들의 능동적 행위들의 가치를 온전히 무효화하며 남성약탈경제의 교환물로 전락시킴으로써 보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클럽약물강간범죄는 명백히 여성혐오범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데카르트의 남성 인식주체 코기토야말로 이러한 외적 투사의 원형모델이라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라는 남성 인식주체는 자신의 내부에 일렁이는 다양한 의욕과 의심, 이해와 욕망, 기대와 사유의 불안정성을 자신의 내부가 아닌 외부라는 감각세계, 이를 둘러싼 이들, 심지어는 그 세계를 만든 신까지 의심의 판정소에 회부하기 때문이죠. 나, 즉 코기토가 거짓된 지식을 참이라고 여기는 원인은 나의 내적 인식의 오류로부터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외부 감각세계의 오류이자 기만에 의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여성이 한 남성을 성폭력가해자라고 지목하고 증언하는 순간 수많은 남성들이 대동단결하여 그 해당남성의 무고함을 변호하며 그 여성이야말로 무고한 자를 고발한 무고죄로 처벌하여야 한다고 드높여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안희정이나 조덕제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남성들의 집단적 무고죄 주장은 성폭력으로 고소당한 이 불확정적 위기의 국면에서 남성들은 해답과 진리를 찾고자 데카르트적 코기토(Cogito)-'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사유양식을 철저히 전개해 나갑니다.
이 남성 주체는 이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불확실한 지식과 미리 전제된 진리조차 그 기반에서부터 끊임없이 의구함으로써 가장 확실한 지식에 이르고자 하는 데카르트적 주체(cogito)로 변모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남성주체를 더없이 낯설고 불명료한 세계로 표상화된 여성에 대해 펼치는 철저한 의구과정을 통해 구축·확립된 ‘페니스-코기토’, 즉 페니스- 사유주체라는 개념으로 정의하고자 합니다.
수잔 브라운밀러의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성은 ‘강간’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배우는 것만으로도 남성과 여성 간의 불균등한 권력관계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말이죠. 여성은 어릴 적부터 여자아이들은 강간을 당하는 취약한 몸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부모의 말속에서, 친척들의 지나친 염려 속에서, 미디어 속의 위험에 빠진 유약한 여자의 모습들에서 감지하게 됩니다. 수잔 브라운 밀러는 읽는 법을 배우기 전에 여성들은 피해자의 정신 상태를 주입받는다고 합니다. 동화는 유독 어린 소녀에게만 닥치는 듯한 재앙과 모호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합니다. “커다란 늑대는 어두운 숲속에서 숨어 호시탐탐 작고 여린 소녀를 먹잇감으로 바라본다. 늑대의 큰 눈, 큰 손, 큰 이빨. 그것은 너를 더 잘 보려고, 너를 더 잘 붙잡으려고, 너를 잡아먹으려고 그러지, 아가야라고 늑대가 외친다” 밀러는 빨간모자 소녀 우화를 수동적이고 유약한 어린 소녀를 둘러싼 무시무시한 짐승의 세계를 다룬 강간우화라고 해석합니다.
브라운 밀러는 남성이 사회를 통제하고 여성을 지배하기 위한 주요한 수단으로 강간을 활용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강간에 대한 공포가 모든 여성의 삶을 통제하는 권력수단으로 활용되어 여성 스스로가 안전한 시간과 공간대로의 행동반경을 축소하고 스스로의 행동을 자기검열하는 동시에 미디어에서는 끊임없이 여성을 성적 공격에 취약한 존재로 반복 재현해 냄으로써 그것이 만들어내는 공포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바로 강간문화인 것입니다.
페미니즘적 상상력으로 여성에 의한 섹슈얼한 감각과 환상의 지대를 새로이 탐구하고 발굴해내지 않는다면 현재의 섹슈얼리티와 성적 판타지들은 여전히 남성욕망경제의 회로 안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찾으려는 빈곤함과 척박함, 지난함을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성의 성을 폭압적으로 성취해내는 것이 가장 섹슈얼한 성애로 형식화된 포르노그래피와 골뱅이, 클럽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업로드되는 불법촬영 약물강간범죄영상들 간에는 원천적인 질적 차이가 아닌, 정도의 차이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소라넷, 일베, 디지털 성범죄영상, 클럽약물강간, 성접대 엔터테인먼트, 성매매 산업, 미성년 여성 성착취, 직장 내 성추행, 데이트 강간은 여성의 신체에 가하는 남근 다발체들의 다면적 폭압정치라는 점에서 ‘강간문화’라는 하나의 궤로 끼워집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여성의 몸을 수단화하고 거래하는 남성약탈경제를 비판하고 이러한 강간문화를 방조, 묵인해온 남성 연대체의 민낯을 폭로하고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하는 문화의 지층 자체를 시위와 관련 입법 청원, 여론 활동을 통해 전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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