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호보기/2018 봄여름, 74호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라>

여성을 위한 병원은 없다

by 중앙문화 2020. 4. 15.

<74호> 2018년 봄여름

편집위원 타서

  꽉 끼는 바지를 입을 때, 허리를 펴고 꼿꼿이 앉을 때, 생리가 끝나갈 즈음엔 항상 음부가 아팠다. 아픈 게 정상인지, 왜 아픈 건지 몰랐다. 물론 소음순을 잘라 통증과 불편함을 없애주는 수술이 있는 지도 몰랐다. 문제인지 모르는데 해결책을 찾는 건 불가능하니까. 한 외국인 유튜버[각주:1]를 통해 소음순절제수술[각주:2]이라는 걸 처음 접했다. 흔히 말하는소중이에 칼을 대는 게 무서웠지만 수술을 해야겠다고 맘먹었다.

 

구석으로 몰아넣기

  소음순절제수술에 관한 정보를 찾을수록 수술을 해야겠다는 의지는 꺾여갔다. 정보가 너무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모순적으로해야겠다는 강박도 생겨났다. 사람들의 평가 때문이었다. 인터넷에서 여성의 성기를 평가하는 일은 쉽게 찾아볼 수 있었지만 여성의 성기를 직접적인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용어를 접해본 경험은 적었다. 정보와 후기를 알아보려 관련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 기대와 다르게 쏟아져 나온 글들은 남초 커뮤니티의불고기 보지라는 단어로 가득했다. 불고기 보지는 크거나 검은 소음순을 비하하는 말이다. 주로섹스를 많이 하면 불고기 보지가 되고 아무도 성관계를 해주지 않아 남자들한테 따먹히고 싶어 한다라는 식의 희화화였다. 약하면 불고기 보지를 가진 애인에 대한 고민상담부터 심하면 불고기 보지로 농담 따먹기를 하는 글까지 있었다. 오십보백보다. 넘쳐나는 혐오들을 보다보니 내 성기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내가 보지를 가지고 있다는 자체로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상황이 수치스러워졌다. 여기서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불편함을 핑계 삼아 미용을 목적으로성형을 해야겠다는 압박을 느낀 게. 그리고 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쁜 보지를 가져야 한다고 강박을 느끼면서도나는 미용을 위해 하는 게 아니라 불편해서 하는 거니까 괜찮아라고 자위했다. 이렇게 나는 나의 문제를 점점 더 보이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 해결하게 됐다.

 

산부인과도 마찬가지다

  여성혐오로 뒤덮인 소음순에 대한 이야기는 나도 모르게 나와 여성들의 성기를 평가하게 만들었고, 이는 죄책감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나를 움츠러들게 하는 건 인터넷상에서 행해지는 사람들의 품평질이 다가 아니었다. 불고기 보지라는 단어만 없을 뿐, 소음순절제수술을 홍보하는 산부인과의 방식도 여느 여성혐오적인 사고방식과 다르지 않았다.

 

▲ⓒ리벨로산부인과

  강남에 위치한 대형 산부인과의 소음순절제수술 광고이다. 소음순의 겉모습을 보고 상처받은 트라우마를 성형으로 극복한다는 논리와 야동 배우의 성기와 애인의 성기를 비교하는 칭찬 모두 여성을 위한 이야기는 아니다.

  또 다른 광고에서는 이쁜이수술[각주:3]을 받고 성매매하는 남편을 붙잡을 수 있었다고 홍보한다.

  광고의 끝자락에 작게 써있는이 만화는 픽션입니다라는 문구는 힘이 없다. 허구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사실적이기 때문이다. 더욱 힘이 빠지는 이유는 이 만화가 어느 남초 커뮤니티의 유머가 아닌 산부인과의 광고이기 때문이다. 여성을 위해야 할 병원은 남성중심적 가치관을 답습한다. 남성적 시각에서 여성이 스스로를 옥죄도록 돕는다.

“소음순은 날개이자 꽃잎”, “아름다운 핑크빛”, “꽃이 피기 전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포미즈여성병원
▲ⓒ참산부인과

  특정 산부인과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소음순절제수술 광고는 하나도 빠짐없이 미적인 것을 강조한다. 수술을 하면 음부가 얼마나 예뻐지는지에 대한 광고는 기본이다. ‘늘어진소음순은 비정상이라거나 성경험이 많으면 소음순이 변형된다는 남성중심적 시각을 그대로 반영하는 문구도 많다. 어느 병원도 통증이 줄어든다거나 생활에서의 불편이 감소한다는 효과를 강조하지 않는다. 산부인과 역시 형태만 다를 뿐 인터넷 남초 카페(혹은 굳이 남초 카페가 아니더라도)와 같은 이야기를 한다. 소음순의 생김새와 남성의 욕구에 맞추어정상비정상을 규정한다. 그러나 스스로 생활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외형이 어떻건 정상적인 소음순이다.

 

산부인과는 누굴 위한 공간인가?

  산부인과의 정의는임신·해산·신생아 및 부인병을 다루는 의술의 한 분과. 또는 그 부문의 병을 진료하는 곳이다. , 크게 출산을 다루는 산과와 생식기 질환을 다루는 부인과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산과; 임산부와 재생산의 공간

  임신과 분만은 한 여성의 문제를 넘어서 가정의 문제, 국가의 문제이다. 이는 전쟁 이후부터 지금까지 정부의 출산정책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정부는 아이가 많을 때는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둘도 많다라고 홍보했다가 이제 아이가 너무 적어지자아이는 미래를 위한 가장 아름다운 선물입니다라며 출산을 장려하고 있다. 지난 2016, 행정자치부가 공개한대한민국 출산지도와 임신·출산 진료비 지원 확대 역시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다.

  출산은 공적인 영역이다. 그러나 정부의 출산정책은 주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다. 저출생[각주:4]의 원인과 해결이 여성에게만 있다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정책의 잘잘못 여부와는 상관없이 산과는 공적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산과는여성의 출산 문제를 다룬다기보다국가의 출산 문제를 다룬다. 산과가 공적영역이라는 점을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문제는 출생에 대한 책임이 지나치게 여성에게 돌아간다는 점 그리고 산부인과의 역할이 산과에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반면, 여성의 생식기 문제는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사적화된다. 산부인과에서는 비가임기로 추정되는 여성 혹은 임신을 할 나이가 아니라고 추정되는 여성에게 시선이 쏠린다. ‘왜 산부인과에 온 거지? 임신도 하지 않았을 텐데’, ‘저 나이에 임신을 했나?’라는 의문 가득한 시선이다. 다른 환자들이 아니라 병원으로부터 외부인 취급을 받기도 한다. ‘굴욕의자라고 일컬어지는 의자에 앉기 민망해 할 때, 의사는이래서 처녀들은 안 된다니까라고 핀잔을 준다. 임산부와 그의 보호자들 사이에서 임산부가 아닌 여성은 잘못된 곳에 있는 것 마냥 움츠러든다. 그렇게 산부인과는 임신한 여성만의 공간, 혹은 재생산에 관한 공간으로 한정된다.

 

부인과;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공간

  산과에 밀려 안 그래도 설자리가 좁은부인과는 그 좁은 영역마저 여성을 위해 기능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산부인과는 부인과를 경시하고 하고, 부인과를 주로 다루는 병원은 자연스럽게 산부인과가 아니라 일종의 미용성형병원처럼 변질되기도 한다. 전자건 후자건 모두 가부장적인 시선을 답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자궁경부암 검사는 만20세 이상 여성이라면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무료검진대상자이니 병원으로 와달라는 우편을 받고 지역의 유명한 산부인과로 갔다. 본관 11, 신관 13층짜리 규모의 보건복지부가 인증한 산부인과였다. 병원에서는 어이없게도처녀라는 이유로 검사를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다. 성경험이 없기에 발병확률이 낮다는 단순한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처녀막이 손상된다는 터무니없는 이유 때문이었다. 질염검사 역시 같은 이유로 거절당했다. 평소 처녀막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왔던 터라 처녀막이 찢어지는 건 상관없다고 수차례 이야기했지만 의사와 간호사는 계속해서 설득했다. 특히 의사는처녀막 없으면 나중에 신랑이랑 어떡하려고 그래. 처녀막이 없어지면 그 때 받아요라고 말했다. 나 자신도 나의 처녀막을 이렇게 신성시해본 적은 없었다.

잠시, 처녀막 신화

처녀막을 소중히 하는 여성이 있나? 여성 자신의 신체를 위해서 처녀막을 소중히 하는 여성은 없다. 처녀막을 소중히 한다면 그 이유는 남성이나 타인의 평가를 걱정해서일 뿐이다. 처녀막은 순결성을 증명할 수 있다는 점 외에는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처녀막이 순결성을 증명하지도 않는다. 모든 여성이 처녀막을 가지는 것이 아니며 격한 운동으로 인해 파열되기도 하고 성관계 후에도 처녀막이 파열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 질주름일 뿐인 처녀막은 처녀성을 증명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처녀막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여성에게만 순결을 강조하고 억압하기 위해서이다. 여성은 문란한 여성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남성을 만족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통제할 수밖에 없다.

 

  소음순절제수술은이쁜이수술’, ‘처녀막재생수술과 함께 세트처럼 묶여져 있다. 소음순절제수술을 받으러 가서 처녀막재생수술도 제안 받았다는 후기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수술은 모두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 더 나아가 재생산한다. 지극히 정상인 여성의 성기임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욕구에 맞추어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성형을 권한다. “성관계 경험이 적은 것처럼 보여야 한다”, “성교통을 해소할 수 있다”, “처녀막을 소중히 해야 한다” 등의 말은 결국남성이 좋아하는 성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부인과는 여성 전문기관이라는 권위를 등에 업고 있다. 때문에 여성에게 더욱 강력한 코르셋을 씌울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평소 타인의 시선에 맞춰 나의 신체를 문제 삼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나조차도 권위자인 의사의 말에 결국 겁을 먹고 돌아섰다. 산부인과에서조차 여성은 자신의 성기를 자신의 시각이 아닌 남성의 시각에 갇혀 바라보길 강요받는다. ‘성 생활을 잘 하고 있는 것인지’, ‘질 건강이 어떠한지’, ‘감염은 없는지등의 질문은 갈 곳을 잃는다.

 

여성을 위한 병원

  여성의 걱정거리를 다룰 수 없다면, 그럼 도대체 산부인과는 무엇을 하는 공간이란 말인가? 산부인과가 국가의 이데올로기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만을 재생산하는 장소라면, 과연 여성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나중에 예약 잡을 때 그 수술이라고 말해주세요.”, “?”, “그 수술이요, 소음순~” 소음순절제수술 상담을 받고 난 후 직원은 나에게 속삭이듯 작게 말했다. 바로 옆에 부인을 따라온 남성 보호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끝까지 남성의 눈치를 보는 산부인과, 그곳은 남성중심적 시각이 장악하고 있는 공간이다.

  사실 산부인과뿐만 아니라 의료계 전반에서 여성의 시각은 지워져있다. “남자가 흉통을 호소하면 심장내과 전문의에게 보내지지만, 여자가 흉통을 호소하면 정신과 전문의에게 보내진다”. 여성의 문제를 기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 나약함으로 치부하는 의료계의 현실을 나타내는 우스갯소리다. 대부분의 의학 교과서가 남성이 통증을 호소하는 양상을 정상으로 기술하기 때문이다.[각주:5] 여성은 남성보다 히스테릭한 존재라고 보는 의료계의 시선도 하나의 원인이다.

  산부인과에서조차 여성주의적인 관점이 사라진다면 여성은 어디에서 온전히 설 수 있을까. 남성주의적인 의료계에 여성과 약자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시작은 산부인과가 되어야 한다. 다른 어떤 병원보다 여성의 시각이 필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산부인과가 환자에게서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를 벗겨내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

“생활에 불편함이 없다면 굳이 소음순을 잘라내지 않아도 돼요”, “처녀막은 의료적 의미가 없는 질주름일 뿐이에요

언젠가는 이런 말을 해주는 의사를 만날 수 있길 바란다.

  1. ‘Tracy Kiss’라는 이름의 유튜버로 소음순절제수술을 받은 후 잘린 살점으로 보석을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닌다. 수술 후기와 수술에 관한 포스팅이 있으니 관심이 있으면 찾아 보길 추천한다. [본문으로]
  2. 소음부절제수술이란 소음순의 모양과 크기를 교정하는 수술이다. [본문으로]
  3. 질축소수술을 칭하는 말로 성기에 대한 평가를 내포한다. [본문으로]
  4. ‘저출산’은 임산부가 아이를 낳는 출산의 횟수가 적다는 의미로 여성에게 책임이 있는 것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다. 반면 ‘저출산’은 신생아 출생률 감소를 의미한다. 이효상, “김해영“‘저출산;대신 ’저출생‘으로” 법 개정안 발의“, 경향신문, 2017.12.17 [본문으로]
  5. 같은 질병임에도 여성과 남성이 증상이 다른데 의학 교과서는 남성의 증상을 정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배동미, “[동영상 뉴스]여성은 아파도 남성중심적 진단 받는다”, 경향신문, 2018-05-08 [본문으로]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