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신현욱
서울권 대학 몇 곳에서 총여학생회(이하 총여) 폐지를 위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려오던 때였다. 대학가에 분 총여 폐지의 바람은 생각보다 빨리 중앙대학교에 도달했다. “총여 체제 전환 및 특별기구 개편에 관한 논의 및 의결.” 안성캠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 1) 일주일 전에 공고된 안건이었다.
수백 명 이상의 연서를 받아 총여 폐지 총투표를 진행한 타 대학들의 사례와 비교했을 때, 전학대회에 곧장 상정된 안건은 꽤나 파격적이었다. 총여를 중심으로 조직된 폐지에 대한 반대 움직임은 없었다. 총여 폐지 안건의 발의자가 다름 아닌 총여였기 때문이다. 확대운영위원회(이하 확운위 2)를 거쳐 전학대회에 상정된 안건은 재적 대표자 89명 중 78명의 압도적인 찬성을 얻어 가결됐다. 잡음도 있었다. 문예창작학과 대표자들은 안건 상정 과정에서 총학생회장이 회칙을 위배했으며, 의결 전 충분한 의견수렴이 없었다며 항의했다. 하지만 절차적 문제에 대한 재심의/재의결 안건은 부결되었고, 문예창작학과 대표자들은 전학대회 도중 단체 퇴장했다.
그렇게 안성캠 총여는 안건이 모든 학생에게 공개 된 지 일주일 만에 폐지되었다. 낯익은 모습이다. 4년 전 똑같은 과정을 거쳐 서울캠 총여가 폐지됐다. 최소한의 제반도 없이 신설된 서울캠 성평위는 여전히 구조적인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4년 후인 지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안성캠 총여는 폐지 흐름에 따라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사라졌다.
숫자는 불평등을 보여주지 않는다
강기림 전 총여학생회장은 총여 개편의 근거로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여남 대학진학률 변화와 중앙대학교 안성캠 여남 학생 비율을 제시했다.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현저히 낮던 과거에 비해 최근에는 남학생과 비슷한 수준이 되었으니, 여학생만을 위한 기구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다른 근거는 총여를 폐지한 타 대학들의 사례였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대학들이 총여를 폐지하거나 성평등위원회(이하 성평위)로 전환하는 추세라고 주장했다.
총여의 주장대로라면 여성은 학내에서 더 이상 소수자가 아니다. 2018년 한국의 여남 대학 진학률이 비슷한 수준에 도달했고, 안성캠의 경우에도 2018년 기준 여학생 비율이 51%, 남학생의 비율 49%로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수치는 실질적인 성평등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학 내 성폭력은 수십 년 전부터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미투운동으로 교수, 학생에 의한 성폭력 고발이 학내를 휩쓸었던 수개월 전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학과 단톡방 내 성희롱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으며, 학교 여자 화장실에서 불법촬영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대학이라는 공간은 여전히 여성혐오적이다.
학내 여남 비율이 엇비슷해졌다고 할지라도, 학생 대표자들은 남학생이 대부분이다. 부학생회장이 여학생인 온 총학생회를 제외한 근 5년 간 서울캠 총학생회장단은 모두 남학생이었다. 안성 캠퍼스 또한 근 5년간 4명의 총학생회장이 남학생이었다. 학내에서 발언권과 의사결정권을 쥐고 있는 대표자들은 대부분 남학생들인 것이다. 여학생들은 대학에서 여전히 과소대표 되고 있다. 그런 여학생들의 권익 증진을 위해 만들어진 기구가 바로 총여다. 총여는 지극히 남성 중심적인 학내에서 여학생들의 목소리를 학내 정치에 반영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로서 존재했다.
여학생을 대상으로 한 차별과 범죄는 총여가 출범하기 시작한 시대보다 그 수법이 더욱 다양해졌다. 총여의 필요성은 절대 축소되지 않았다. 여학생들의 약자성을 부정하고 그들을 대표하는 유일한 기구의 폐지를 발의하고도 “총여의 목적과 역사성을 깊이 존중한다”는 총여의 주장에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모두를 위한 성평위’에 여학생은 없다
총여의 성평위 전환이 결정된 이후, 총여는 논란을 의식한 듯 긴 입장문을 발표했다. 입장문에 따르면, 총여의 성평위 전환은 “(여성이 아닌) 또 다른 소수자는 없는가”라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총여가 출범하던 시대에는 ‘양성’이라는 협소한 성 개념 안에서 여성이 약자로 존재했으나, 이제는 더 많은 소수자 집단이 생겨났기에 이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논지다.
하지만 총여가 말하는 ‘더 많은 소수자’에 여학생은 없다. 총여는 입장문에서 “여학생의 권리 증진을 위한 조직이 소수자 인권 보호를 위한 조직과 별개로 존재해야 한다면, 남학생의 권리증진을 위한 조직”도 별도로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남 대학진학률을 근거로 여성의 소수자성을 부정한 것에 이어, 소수자로서의 여학생의 정체성을 남학생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한 것이다.
또한 총여학생회장은 “총여에 관해 말할 때 성 대결의 양상을 보이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총여학생회장이 말한 ‘성대결’은 ‘여학생은 약자가 아니기에 대표자기구가 필요하지 않다’는 ‘남성’의 주장과 총여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여성’ 간 논쟁을 일컫는 것으로, 대표적인 백래시다. 여성의 소수자성을 부정하는 남성들의 주장이 거세지는 현 상황은 총여의 필요성을 역설할 뿐임에도 불구하고, 총여학생회장은 이를 개편의 이유로 내세웠다. “학내 성폭력 문제는 성별을 떠나 학생 전체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마찬가지다. 학내 성폭력 피해자의 대다수가 여성이고, 가해자의 대다수가 남성인 상황에서 ‘모두’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는 말은 결국 아무도 대변하지 않겠다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여학생조차 소수자로 인지하지 못하는 총여가 더 많은 소수자를 포용하겠다고 개편을 주장했다. 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결핍된 채로, 기구의 이름과 속성의 변화만으로 ‘더 많은 소수자를 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총여학생회장의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
성평위도 반대하는 성평위 전환
강기림 전 총여학생회장은 서울캠 성평위를 안성캠 총여가 나아가야 할 ‘롤 모델’로 제시했다. K교수 파면을 위한 공동행동, 불법카메라 조사 사업 등 올 해 서울캠 성평위가 진행했던 사업들을 나열하며, 서울캠 성평위가 안성캠 총여보다 폭 넓은 사업을 진행하고 있음을 주장했다. “(성평위가) 발언권도 없고 할 수 있는 일이 적은 게 아니라, 전체기구를 통해서 더 큰 일을 행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는 총여의 주장대로, 과연 성평위는 총여에 비해 더 많은 소수자들을 대변하여 보다 폭넓은 활동을 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총여가 좇고자했던 서울캠 성평위는 개편 이후 수년째 구조적인 문제를 겪고 있다. 독립적인 대표자기구인 총여와 달리, 성평위는 총학생회 산하의 특별기구다. 따라서 총여가 성평위로 개편될 경우, 단위 대표자는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 3)나 전학대회 등 주요한 결정이 내려지는 자리에서 의결권과 발언권을 박탈당한다. 이는 단순한 권한 축소 이상을 의미한다. 박지수 성평위원장은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예방 및 해결하기 위한 안건 자체가 상정되기 어렵다. 힘겹게 안건이 상정되더라도 여성주의적 감수성이 있는 대표자의 유무에 따라 안건의 의결 여부를 가늠해야하는 현실에 환멸을 느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성평위로의 개편은 대표자기구로서의 지위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권한의 퇴보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은 사라진 서울캠 여학생 휴게실은 총여의 권한 축소가 초래하는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2016년 서울캠 학생회관이 철거됨에 따라 학생회관을 이용하던 단위들은 모두 교양학관으로 이전했으나, 여학생 휴게실은 어떠한 공간도 배정받지 못했다. 공간조정 회의에 참여한 대표자들이 여학생 휴게실을 다른 여남 공용 휴게실과 동일한 공간으로 인식해 별도의 공간 배정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간 배정 논의에는 시설팀과 학생 대표자인 동아리연합회장, 총학생회장이 참석했다. 성평위는 총학생회 산하 기구기에 공간 배정과 관련된 논의에 직접 참여할 수 없었다. 문제를 뒤늦게 인지한 성평위는 총학생회를 통해 여학생 휴게실의 공간 보장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고, 여학생 휴게실은 결국 공간을 배정받지 못했다. 총여학생회장이 학생 대표자로서 공간배정 논의에 참여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다.
나아가 총학생회나 총여와 같은 대표자기구는 활동과 예산, 인사의 독립성 등이 학칙에 명시되어 있고, 이를 보장 받는다. 하지만 총여가 총학생회 산하 성평위로 개편되면 단위 대표자가 선출직에서 임명직으로 바뀐다. 선출직일 경우 총여학생회원들이 후보자들의 공약 등을 보고 대표자를 직접 뽑을 수 있지만, 임명직일 경우 중운위의 동의를 받아 총학생회장이 대표자를 임명하는 것이다. 이는 기구의 대표자성이 희석됨을 의미한다. 여학생들이 위임한 권리를 지니는 총여가 회원을 대변해 문제제기를 하던 것에 반해, 성평위의 경우 대표자성의 부재로 인해 학교나 학생사회에 적극적인 요구를 하기 어려워진다. 총학생회의 성격과 감수성에 따라 성평위의 입지가 줄어들 위험 또한 존재한다.
예산 확보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성평위는 다른 총학생회 산하기구와 마찬가지로 한 학기 사업 계획을 작성한 이후 그에 맞는 돈을 총학생회로부터 할당받는다. 총여가 매년 총학생회비에서 배분받는 예산의 비율이 학칙에 명시되어 있는 것과 대비된다. 총학생회가 예산의 분배권을 쥐고 있다는 점에서 성평위의 예산에 대한 독립성과 자율성은 훼손된다. 예산안을 제출해 그 때 그 때 예산을 받는 방식으로는 예산의 안정적이고 탄력적인 운영이 어렵다는 측면에서도 큰 차이를 갖는다.
총여가 개편되어야 한다면, 꼭 총학생회 산하 특별기구의 형태여야 한다는 법은 없다. 성평위로 전환된 이후 겪는 여러 문제들을 고려해 성평위의 독립성을 보장해주거나, 여타 특기구와는 다른 성격을 부여하는 등 여러 형태를 상상해볼 수 있다. 총여 폐지 이후 신설된 고려대학교 여학생위원회의 경우, ‘특별기구로서 총학생회장단과 중앙집행위원회로부터 독립적인 위상을 보장받는 상설기구’임이 학칙에 명시되어있다. 4이에 따라 대표는 내부 운영위원회에서 선출된다. 배분받는 예산의 비율 또한 학칙에 명시되어 있기에 자율적인 예산 운영이 가능하다.
이러한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장이 차단된 상태에서 숙고 없이 개편된 총여는 수년간 제기되어 온 문제를 그대로 안고 출발하게 되었다. 박지수 성평위원장은 “안성캠 총여의 성평위 전환은 여성과 소수자가 설 자리를 축소시켰다는 점에서 퇴보”라며, “스스로 폐지를 선언한 안성캠퍼스 총여학생회장이 같은 대표자로서 무척이나 부끄럽다”고 비판했다. 전학대회에서 서울캠 성평위의 현 상황을 언급하며 우려를 표하는 의견이 있었으나, 총학생회장과 총여학생회장은 이에 대한 별다른 답변 없이 바로 의결을 진행했다. 안성캠 총여는 눈앞에 닥친 구조적인 변화에 대해 최소한의 고민도 하지 않았다. ‘성평위가 더 많은 소수자를 대변할 것’이라는 총여의 바람이 공허한 이유다.
회칙을 위배한 의결 과정
문제가 된 것은 총여의 터무니없는 개편 근거뿐만이 아니다. 총학생회는 확운위와 전학대회 과정에서 수차례 회칙을 위반했다. 문예창작학과 조지민 학생회장은 “전학대회 논의 및 의결 안건은 논의 이전에 의결의 타당성을 짚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총학생회장이 확운위 소집 날짜를 지키지 않았고, 확운위 안건을 사전에 공고하지 않았으며, 전학대회 사전에 학생회칙 개정(안) 5을 공고하지 않음으로써 회칙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총여 폐지에 대한 안건은 10월 18일 확운위에서 논의된 바 있다. 학생회칙 22조 4항에 따르면, 총학생회장은 확운위 개최 10일 전 양식을 준수하여 일시와 장소를 공고해야 한다. 하지만 총학생회장은 확운위의 일시와 장소를 개최 8일 전인 10월 12일에 공고했다. 또한 학생회칙 제 25조 1항에 따라 확운위 3일 전까지 안건을 확정하여 공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안건을 회의가 시작되고 나서야 공개했다.
나아가 총학생회장은 전학대회 3일 전에 학생회칙 개정(안)을 공고하지 않았다. 이 문제의 경우 회칙을 찬찬히 뜯어보며 해석해야한다. 학생대표자기구의 폐지 및 신설에 관한 조항은 현재 학생회칙에 없다.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학생대표자기구의 신설 및 폐지는 학생회칙 개정을 동반해야 한다. 안성캠의 경우 학생회칙 개정안의 발의 및 의결 권한은 확운위에는 있고, 전학대회에는 없다. 하지만 재적인원이 40명 남짓한 확운위에서 학칙개정만으로 대표자기구를 없애기에는 무리가 있다. 따라서 안성캠 확운위는 전학대회에 그 결정을 넘기기로 의결했다. 학생회칙 개정에 대한 권한이 없는 전학대회에 학생회칙 개정안이 올라온 이유다.
문예창작학과 학생회장의 문제제기에 총학생회장은 해당 안건은 학생회칙 개정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총여 개편은 관련 조항을 삭제하고 성평위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학생회칙 개정을 동반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2018학년도 2학기 전학대회 자료집에는 총여 폐지 관련 안건이 ‘총여 체제 전환 및 특별기구 개편에 관한 논의 및 학생회칙 개정(안) 논의 및 의결’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학생회칙 25조 1항 가호에 따라, 학생회칙 개정안의 경우에는 개회 3일 전에 개정(안)을 함께 공고해야 한다. 확운위가 총여 폐지 안건에 대한 논의를 전학대회에 넘긴 이상, 전학대회에 회칙 개정안을 상정하려면 개회 3일 전에 회칙 개정(안)을 공고해야 하는 것이다. 전학대회에 상정된 안건에 학생회칙 개정안이 있었음에도, 그리고 총학생회장이 이를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총학생회장은 학생회칙 개정(안)을 안건과 함께 공고하지 않았다.
회칙 위배에 대한 문제제기에 총학생회장은 “(전학대회는) 정당성, 타당성보다는 다양한 논의를 하고 의결하는 자리”이며, “(확운위 소집 날짜를) 하루 이틀 지키지 않았다고 민주적 절차에 위배되는 것이냐”라고 반문했다. 사전에 안건이나 학생회칙 개정(안)을 공고해야 함이 회칙에까지 명시되어 있는 이유는 대표자들이 회의 전에 해당 안건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고, 필요할 경우 소속 단과대나 학과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다. 모든 회의 정당성과 타당성은 회칙을 준수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최소한으로 규정한 민주적 절차조차 지켜지지 않은 전학대회의 정당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절차적 문제를 인정하지 않던 총학생회장은 회의 도중 “문예창작학과 대표의 말도 타당한 논리가 있다”며, 확운위에 대한 재심의 및 재의결 요구권이 전학대회에 있음을 들어 확운위 의결사항을 재심의, 재의결 해는 것에 대한 의결을 진행했다. 해당 안건은 부결되었고, 절차적 문제를 지적한 문예창작학과 대표들은 “정당성이 없는 의결에 참여할 수 없다”며 단체로 퇴장했다. 재심의, 재의결 안건이 부결됨에 따라 절차적 문제는 해소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총학생회장은 확운위와 전학대회를 여는 과정에서 이미 회칙을 위배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회칙을 위배했으니 확운위를 재심의해야 한다‘는 안에 대한 의결을 진행하고, 심지어 안건이 부결된 것은 대표자들이 회칙에 의거한 절차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총학생회는 아직까지도 확운위와 전학대회 과정에서 발생한 절차적 문제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최소한의 의견수렴도 없었다
안성캠 총여 폐지 과정에는 최소한의 의견수렴도 없었다. 총여 폐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 동국대학교의 경우, 총여 폐지에 대한 학생 총투표가 진행됐다. 6동국대학교 총대의원회는 총투표 전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 대토론회를 열었으며, 총여는 여학생총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안성캠 총여의 경우, 2012년도에 폐지된 서울캠 총여와 마찬가지로 전학대회에서의 의결을 거쳐 폐지되었다. 다른 안건도 아닌 학생대표기구를 폐지하는 안건이 대표자들만의 논의로 가결된 것이다.
안성캠 학생회칙에는 전학대회에 학생대표기구의 폐지에 대한 권한이 명시되어있지 않다. 그러나 학생회칙 11조 2항에 따르면, 전학대회보다 상위의결기구인 학생총회만이 총학생회장단에 대한 유일한 탄핵소추권을 가진다. 전학대회에서 만장일치로 동의하더라도 총학생회장단의 탄핵 소추안을 의결할 수 없는 것이다. 학생대표기구를 폐지하는 일은 학생 대표를 탄핵하는 일보다 중대한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총여 폐지에 대한 안건은 응당 최고의사결정 기구인 학생총회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총학생회장은 학생총회를 열어야 하지 않냐는 문제 제기에 ‘학생총회는 일정 인원 이상의 요구가 있어야 개회할 수 있기에’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안성캠 학생회칙 제3장 10조 2항에 따르면, 회 내부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여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 총학생회장이 직권으로 학생총회를 소집할 수 있다. 학생총회를 소집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총학생회장은 편리성을 근거로 모든 학생들이 모여 사안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해버렸다.
또한 해당 안건은 학생들의 최소한의 동의와 연서조차 없이 상정되었다. 안성캠 학생회칙 19조 2항에 따르면, 총여학생회장단의 탄핵소추안인 경우 전학대회의 회원 1/3 이상의 동의 또는 해당 학생대표자선거 단위 유권자 1/3 이상의 연서를 통해서만 상정할 수 있다. 즉, 다른 안건과는 달리 탄핵소추안의 경우 일반적인 안건보다 중대한 사안이기에, 안건을 상정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절차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탄핵보다 신중히 논의되어야 할 총여의 폐지는 총여의 발의만으로 안건이 상정되었다. 회칙에 대표자기구의 폐지에 대한 내용이 없는 이유는 대표자기구를 폐지하는 일이 흔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총학생회는 사안의 중요성에 대해 심고 없이 최소한의 절차만으로 안건을 상정했다.
‘총여 폐지를 이렇게 쉽게 진행할 수 있냐’는 참관인들의 이의제기에 총학생회장은 ‘그러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사전에 총여 체제 개편을 위한 간담회를 연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사전 간담회는 총학생회와 총여의 면피용 행사에 불과했다. 간담회에 대한 공지가 전학대회 전날 밤에서야 각 학과의 단체 채팅방에 올라왔으며, 공식적으로는 간담회 당일, 시작 두 시간 반 전에 총여 페이스북을 통해 공지되었기 때문이다. “학생대표자가 아닌 학생들의 의견을 듣고자 한다”는 간담회의 목적이 무색하게도, 결국 간담회 당일에는 총학생회 구성원을 포함하여 18명의 학생들밖에 참석하지 않았다. 충분한 의견수렴이 이루어졌을 리 없다.
전학대회 안건상정에서부터 총여 폐지 안건이 가결되기까지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길은 여러 갈래로 열려있었다. 그러나 총여와 총학생회는 대표자들끼리 폐지 여부를 결정하기로 하고, 형식적인 사전 간담회를 개최하고, 학생들의 연서나 동의 없이 직권으로 안건을 상정함으로써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차단했다. 안성캠 총여는 그렇게 총여의 발의와 대표자들의 의결만으로, 그 어떤 대학의 총여보다도 쉽게 사라졌다.
졸속 폐지는 “총여의 문제가 아닌, 전공 대표자들의 문제”
‘총여 폐지 절차가 충분한 정보 제공 없이 너무 급하게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학생의 질문에 총여학생회장은 “총여의 문제가 아닌, 대표자들의 문제”라고 답했다. 총여의 폐지에 대한 논의는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에서 이전부터 이루어지고 있었고, 이를 단과대 및 학과생들에게 전달하지 않은 것은 대표자들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총여 개편은) 학생회칙을 개정하는 일이기에 대표자들끼리 결정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중운위원이 각 단과대와 학생들에게 회의 내용을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해당 발언은 총여학생회장 스스로가 총여의 자주성을 포기했음을 드러낸다. 총여가 폐지 및 개편과 같은 중대한 논의를 가장 먼저 나누어야 할 대상은 중운위원이 아닌 총여학생회원이다. 총여는 개편을 고민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폐지 안건이 상정된 전학대회가 열릴 때까지 회원들과 의견을 나눌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며, 어떠한 공지조차 하지 않았다. 여학생총회를 소집하는 것은 고사하고 간담회조차 형식적으로 진행했다. 총여의 운명은 학생 대표자들에게 맡겨졌고, 여학생들은 회원으로서의 어떠한 권리도 행사하지 못한 채 총여를 잃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신설된 성평위
그렇게 총여가 폐지되고 성평위가 신설되었다. 그러나 졸속으로 만들어진 성평위가 제 역할을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총학생회가 전학대회 당일 학칙 개정(안)을 가져오지 않았기에, 학칙 개정은 전학대회 4일 뒤에 열린 확운위에서 진행되었다. 이에 따라 총여는 학칙 개정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학칙 상에만 존재하는 기구가 되었다. 졸속으로 총여를 개편한 총학생회가 향후 성평위의 운영에 대한 숙고를 했을 리가 만무했다. 학칙 개정은 총여 관련 조항을 모두 삭제하고, 특기구 관련 조항에 성평위 조항 한 두 줄을 추가하는 데 그쳤다. 전학대회에서 의결한대로 인권복지위원회(이하 인복위)는 학생복지위원회로 개편되었고, “성평위는 본 회의 회원의 성평등 및 인권에 관한 업무를 총괄한다”는 조항이 신설되며 성평위는 학내 성평등 및 인권업무를 전담하는 기구가 되었다. 성평위는 성, 젠더구조에 있어서 약자인 여성과 성소수자들을 위한 지원을 하고 사업을 진행하는 공동체다. 사회적 약자가 아니더라도 보장받아야 하는 기본적인 인권과 복지에 대한 사업을 진행하는 인복위와는 차이를 갖는다. 그러나 총여는 줄곧 여학생들만을 위한 총여가 아닌 ‘모두를 위한 성평위’를 만들겠다고 주장했고, 그들이 고안해 낸 모호한 성격의 성평위의 업무는 인복위의 업무와 겹칠 수밖에 없었다
어떠한 제반사항도 마련되지 않았지만, 성평위를 이끌어가기 위한 TFT조차 구성되지 않았다. 총여 회칙을 개편한 성평위 회칙 제정 과정도 없었다. 총여가 폐지되고 곧이어 선거기간에 돌입함에 따라 허울뿐인 성평위의 문제들은 고스란히 다음 총학생회로 넘어갔다. 총여가 폐지된 순간부터 다음 총학생회가 성평위를 꾸리고, 제반사항을 마련한 뒤 실질적인 업무를 진행할 수 있게 되는 시기까지 학내 소수자들을 보호하고 대변할 공동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에게는 총여가 필요하다
서울캠 법학관 지하 1층에 배부된 여성주의 교지 <녹지>40여 권이 쓰레기통에 버려진 채 발견되었다. 성평위 출신 여학생 후보자로 구성된 사회과학대 ‘Step’ 선본의 홍보물에는 저열한 문구가 적혔다. 작년 정치국제학과 여성주의 소모임 <참페미>의 자보가 훼손된 데 이어, 얼마 전에는 <참페미>의 성평등 도서관 안내문이 훼손됐다. 동아리 내 성폭력 피해자는 고발 이후 동아리원으로부터 2차 가해를 당했으며, 10년에 걸쳐 학생들에게 성폭력을 가해온 K교수의 만행이 고발되었다. 얼마 전에는 피해자의 고발로 응용통계학과 내에서 발생한 성폭력과 학과 내 여성혐오적인 분위기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안성캠 후문에서 학생에 의한 불법촬영이 발각됐다. 모두 학내에서 근 2년 사이에 발생한 일이다.
일련의 사건들은 대학이 얼마나 여성혐오적이고 남성중심적인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전학대회에 참석한 백여 명의 대표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표자들은 입을 모아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발화할 수 있도록 총여를 성평위로 개편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여자라고 의자 못 든다는 말 같은 건 용납할 수 없다. MT에 가서 음료수박스도 내가 들었다”, “(성폭력의) 초점이 너무 여자에게만 맞춰져 있는 것 같다”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이제껏 단과대 운영위원회나 총학생회장단에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기에 여학생 대표자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반박이 쏟아졌다. 총학생회장은 “‘여자는 총학생회장에 출마할 수 없다’라는 조건이 있어서 남자만 나온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총학생회장의 주장은 여남 대학진학률이 비슷해졌기에 성평등이 이루어졌다는 총여학생회장의 주장과 맞닿아있다. 평등해 보이는 규정과 엇비슷해 보이는 대학 진학률은 대학 곳곳에 뿌리내린 권력구조를 보여주지 않는다. 성평등은 단순히 MT장소에서 누가 음료수 박스를 드냐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의사결정권을 독점하고 있으며, 누가 학내에서 발생하는 성범죄의 가해자이며, 실행되는 정책들이 누구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가의 문제다. 기울어진 대학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소수자인 여성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총여다. 그렇기에 소수자들의 권익을 위해 존재하는 기구가 다수결에 의해 폐지된 현 상황은 굉장히 모순적이다.
총여가 폐지된 전학대회는 역설적으로 총여의 필요성을 증명하는 듯 했다. 총여학생회원인 여학생에게는 논의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여남이 평등해졌다’는 발언조차 권력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대표자들의 손에 총여가 폐지됐다. 중앙대의 소수자 정치는, 성정치는 어디까지 퇴보할 수 있을까. 소수자의 권익이 보장되지 않는 대학에서 우리는, 안녕할 수 있을까.
- 전체학생대표자회의는 각 단위 학생 대표자들로 이루어진 의사 결정 기구다. [본문으로]
- 확대운영위원회는 각 단위 학생회장으로 이루어진 의사 결정 기구다. [본문으로]
- 총학생회의 상설적인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총학생회장단과 각 단과대학 학생회장, 동아리연합회장, 생활관자치 회장으로 구성한다. [본문으로]
- 그러나 고려대 여성위원회장은 중운위원이 될 수 없으며, 전학대회에 제출된 안건이 여성위원회와 관련이 있다고 인정되었을 때에 한정하여 전학대회 대의원직을 신청할 수 있다. 전학대회 재적 구성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 구성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만 대의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본문으로]
- ‘학생회칙 개정안’과 학생회칙 개정(안)’은 회칙상 그 쓰임이 다르다. 학생회칙 개정안은 학생회칙을 개정하는 안건 자체를 뜻한다. 학생회칙 개정(안)은 개정안이 상정되면 같이 공고하는 것으로서, 신구문대조표의 ‘신’에 해당한다. [본문으로]
- 총투표를 진행했다고 해서 절차적인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성균관대 총여는 10년 만에 입후보 희망자가 나왔지만, 중운위에서 총여 회칙이 정당성이 없다는 이유로 선거를 열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에 총여가 유실된 회칙을 전학대회에 제출했으나, 회칙 재개정이 필요하니 중운위에 위임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어 총투표가 진행됐고 폐지가 가결됐다. 동국대의 경우 총여 폐지 찬반 총투표를 요구하는 정회원 500명의 서명이 모여 총투표가 진행됐다. 그러나 500명이 정회원인지 확인하는 심의과정이 없었으며, 학교 측에서 정회원 발의자 명단을 공식적으로 전달받기 전에 총투표 실시를 공고했고, 폐지가 가결됐다. 이에 여학생총회가 열리고 300명의 서명을 받아 투표에 이의제기를 했으나 기각 되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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