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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가을겨울, 89호 <틈새>/사회

'좋아요' 나라의 주인공

by 중앙문화 2026. 1. 6.

 

 

 

2025 가을겨울 89호 <'좋아요' 나라의 주인공>

 

'좋아요' 나라의 주인공

 

수습위원 조우리

 

 

나를 본 사람은 몇 명인가요?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의 ‘좋아요’가 예전보다 절반으로 줄었다. 비슷한 장소, 비슷한 각도, 똑같은 필터로 찍은 사진을 올렸는데도 받은 ‘좋아요’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사진 속의 나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사진 속 내 자신을 바라보는 나는 알 수 없는 불안으로 흔들렸다. 분명 하루를 잘 보냈는데, ‘좋아요’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근데 언제부터 이런 단순한 숫자로 나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게 되었을까?

 

 우리에게 SNS상의 좋아요는 단순한 클릭이 아니다. SNS 속 보이는 반응이 많으면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것처럼 느껴지고,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를 받게 되면 덜 중요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SNS 안에서 ‘나’의 존재는 스스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과 반응 속에서 끊임없이 바뀌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피드를 올릴 때마다 누가 봤는지, 얼마나 눌렀는지를 확인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며 인정받으려고 한다.

 

 인스타그램의 ‘좋아요’와 같은 소셜 피드백은 어느새 개인의 존재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의 반응이 많으면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듯한 안정감을 느끼지만, 그렇지 않으면 타인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 같아 고립감과 불안을 경험한다. 현재 우리에게 ‘좋아요’와 ‘팔로워’ 수가 개인 영향력의 기준이 되고, 그 숫자가 많을수록 사회적으로 승인과 이어지는 것과 같다.

 

 

▲인스타그램의 좋아요를 계속해서 확인하는 드라마‘셀러브리티’주인공. ©Netflix

 

 

오늘도 연출 중 입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남에게 ‘보이는 나’를 의식하며 산다. 사진 한 장을 올릴 때도, 일상의 짧은 문장을 쓸 때도 머릿속에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시선이 함께 있다. 플랫폼 속 타인의 반응이 늘면 기분이 좋아지고, 줄면 괜히 마음이 불안해진다. SNS는 분명 자유롭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타인의 반응에 따라 나의 기분과 존재감이 흔들리는 불안한 무대이기도 하다.

 

 이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연출을 한다.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에서 보이는 방식에 맞춰 꾸미고, 자신을 포장하며 유행하는 행동과 물건을 따라 한다. 진짜 나보다 잘 살고 있어 보이는 나를 만드는 일이 하나의 일상이 되어버린다.

 

 

▲ 중앙대학교 학생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실제 SNS에 피로해한다는 사실을 알수 있었다.

 

 

 밖으로는 늘 행복해 보여야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점점 공허함이 쌓인다. ‘이건 진짜 내 모습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좋아요’가 주는 짧은 안도감을 포기하지 못하는 우리들. 그렇게 끊임없이 자아를 평가하고, 비교하며 자신을 스스로 소모해 간다.

 

 

▲ SNS에서 느끼는 불안과 부정적인 감정을 호소하는 재학생.

 

 

 피드를 새로 고칠수록 더 자극적인 콘텐츠가 눈앞에 펼쳐지고, 타인의 완벽한 하루는 내 불안의 기준이 된다. 결국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정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며 숫자와 반응 속에서 이를 확인하려고 한다. SNS는 이처럼 사람들의 심리적 불안을 더 깊이 파고든다.

 

 우리는 플랫폼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연출해야 한다. 진짜 나보다 더 완벽해 보이는 나를 만들어야 살아남는 사회. 이 속에서 점점 더 피로해져 간다.

 

 

우울한 앨리스들

 오늘날 SNS는 단순한 미디어를 넘어섰다. 우리의 감정 상태를 학습하고 예측하는 정교한 시스템으로 발전했다. 내가 무엇에 시선이 멈추고, 어떤 게시물에 반응하는지를 포착하며, 나 자신보다 먼저 나의 마음을 예측한다. 우리는 마치 대본이 짜인 드라마 속 배우처럼 정해진 게시물과 광고로 인해 웃고 질투하는 반응을 연출한다. 한때 소통과 공유의 도구라 불렸던 SNS는 이제 우리의 감정을 규정하고 통제 [각주:1] 하는 주체가 된 것이다.

 

 타인의 필터링된 일상과 과장된 행복의 연출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왜 나만 이렇지?"라는 질문이 무의식적인 습관이 되어간다. 그리고 이는 타인과 우리를 비교의 늪으로 몰아넣으며 우울감으로 이어지게 된다.

 

 

▲ SNS 사용빈도와 우울증의 연관성. ©중앙일보

 

 

 현재 우리의 내면은 타인의 피드백으로 끊임없이 검증받는 상태에 놓여 있다. 기계가 우리의 반응을 계산하고 감정의 흐름을 예측하는 시대에 우리는 점점 스스로 느끼는 방식, 즉 인간으로서 가장 근본적인 감각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 기쁨과 불안 그리고 설렘과 같은 감정마저 알고리즘이 조종하는 SNS 속에서, 인간은 점차 이상한 나라를 헤매는 앨리스처럼 길을 잃어가고 있다.

 

 

감정의 시장, SNS 자본주의

 

 사실 소셜 미디어는 표현의 자유와 소통의 공간이라는 이상적인 옷을 입고 등장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작동하는 메커니즘은 자유롭기는커녕, 불평등한 시장의 논리를 따른다. ‘좋아요’와 ‘팔로워’는 실상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개인의 사회적 영향력과 타인의 인정을 대변하는 자본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한 자본의 축적이 곧 사회적 성공과 연결되는 순간, 우리의 감정은 더 이상 개안의 사적인 영역에 머물지 않고 시장의 상품으로 변모한다. SNS를 통해 느끼는 좌절감과 무기력과 같은 부정적 감정은 사실 더 이상 개인의 사소한 문제가 아닌 디지털 속 SNS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구조의 그림자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서 SNS 자본주의란 개인의 감정, 관계, 인정 욕구가 자본의 논리 속에서 거래되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를 말한다. 기존 자본주의[각주:2]와 달리, SNS 자본주의는 이용자의 감정과 시선을 새로운 자원으로 삼는다. 소셜미디어 안에서 사람들의 좋아요, 댓글, 팔로워 수는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영향력을 수치화한 가상 자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소셜네트워크 플랫폼은 이러한 반응을 수집해 광고·추천 알고리즘에 활용하고, 이용자의 시간을 ‘상품’으로 만들어 수익을 창출하게 된다.

 

 우리는 자유로운 이용자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데이터를 제공하고 감정을 생산하는 개체가 된다. 이처럼 SNS는 소통의 공간을 넘어, 사람들의 감정이 소비되고 경쟁이 재생산되는 감정의 시장으로 작동하여 ‘누가 더 주목받는가?’에 집착하게 만든다.

 

▲다양한 SNS 어플과 플랫폼.

 

 

그러면 감정은 얼마입니까?

 소셜 미디어가 정보 접근성과 인간관계를 확장하는 순기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서는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을 고착화시킨다. SNS가 겉으로 보기에 자유로운 표현의 장을 표방하지만, 그 본질은 사람들의 시선이 거래되는 시장이고, 소셜네트워크 플랫폼 내의 ‘좋아요’는 바로 시장에서 유통되는 감정의 통화(Currency) [각주:3] 라고 할 수있다.

 

 이 통화의 작동 원리는 간단하다. 플랫폼은 이용자의 게시물에 대한 관심과 반응, 즉 좋아요와 댓글 같은 상호작용을 데이터로 수집하고, 이를 광고와 추천 시스템을 통해 실제적 수익으로 전환한다. SNS 이용 시간과 자아존중감 연구[각주:4]에서 플랫폼 시장이 사용자들을 오래 붙잡아 두고(이용 시간) 더 많은 감정적 반응(참여도)을 유도할수록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한다고 말한다.

 

 또한 SNS 플랫폼은 단순히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알고리즘을 통해 어떤 콘텐츠를 노출시키고 어떤 반응을 유도할지 결정함으로써 이용자의 행동과 감정까지 영향을 끼친다. 특히 인스타그램과 같은 시각 중심의 플랫폼은 알고리즘을 통해 특정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노출시키고, 사용자를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에 맞추어 연출하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단순히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알고리즘 통치성[각주:5]을 통해 이용자의 행동과 감정까지 규율하고 통제하며 불평등한 구조를 형성해 간다.

 

 결국 그 안에서 우리의 감정 변화와 일상은 기업의 수익 구조를 굴리는 연료로 재가공되어 버린다. 타인의 인정이 곧 디지털 자본으로 환원되는 이 구조 속, ‘좋아요’는 개인의 심리 현상을 넘어 개인의 자아를 포섭하고 이용하려는 시스템의 핵심적인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그리고 이 메커니즘은 디지털 속 사람들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양면적인 SNS 나라

 물론 SNS가 전적으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SNS는 정보 접근의 문턱을 낮추고, 누구나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론장의 기능을 수행해 왔다. #아이스버킷챌린지, #교사시위, #등록금인상반대와 같은 해시태그 캠페인들은 기존 언론이 포착하지 못했던 현실을 드러내며, 사회 변화를 이끌어온 대표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이와 같이 누군가의 개인적인 고백이 온라인을 통해 확산되고, 그것이 연대로 확장되는 과정은 SNS가 가진 민주적 힘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 SNS에서 확산된 유명인들의 ‘아이스버킷’챌린지. ©MBC
 
 

 하지만 참여와 공론의 장으로서의 SNS조차 상업적 알고리즘의 논리 속에서 쉽게 왜곡될 수 있다. 실제로 사회적 이슈나 유행을 표방한 챌린지가 하나의 유행 콘텐츠로 가공되고, 공감과 애도마저 유행하는 물건처럼 변모하기도 한다.

한 예시로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16개월 입양아 정인이를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은 ‘정인아 미안해[각주:6]’ 챌린지를 시작했다. 그러나 일부 업체들은 이 해시태그를 마케팅 수단으로 삼아, ‘정인아 미안해’ 문구가 새겨진 가방, 휴대폰 케이스와 티셔츠 등을 홍보 및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수익금의 용도는 언급이 없었고, 일부 음식점들도 추모 해시태그를 홍보 게시물에 무분별하게 첨부하며 논란을 키웠다. 결국 ‘애도조차 상품이 되는가?’라는 비판이 쏟아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SNS 속 애도의 감정이 진정한 공감이 아니라 조회 수와 매출을 높이기 위한 상업적 도구로 전락하기도 한다.

 

 더불어 2019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버드박스 챌린지’는 넷플릭스 영화 <버드 박스>의 한 장면을 모방해 눈을 가리고 일상생활을 수행하는 모습을 촬영·공유하는 유행으로 번졌다. 처음에는 단순한 놀이처럼 보였지만, 일부 이용자들이 눈을 가린 채 운전하거나 도로를 건너다 실제 사고로 이어지는 등 위험한 사례가 발생했다. 심지어 미국 경찰이 “자신과 타인 모두 다칠 수 있다”라며 공식 경고문을 낼 정도였다.

 

 

▲ 실제 SNS에서 유행한 버드박스챌린지.  ©연합뉴스

 

 

 SNS는 겉으로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참여와 공론의 장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에서는 알고리즘의 논리가 유행과 방향을 교묘히 조정해 나간다. 사용자가 자유롭게 소통한다고 믿는 순간조차 알고리즘은 이미 어떤 감정이 더 오래 머물고, 어떤 의견이 더 널리 퍼질지를 계산한다. 결국 SNS는 자유의 공론장을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감정이 상품으로 소비되고 타인의 인정이 자본으로 작동하는 시장인 것이다.

 

 SNS 속 '좋아요'와 조회 수를 향한 욕망은 다시 플랫폼의 알고리즘에 의해 증폭되고, 자극적인 콘텐츠일수록 더 많은 추천을 받으며 더 많은 사람에게 노출된다. 이용자들은 자신이 그 안에서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상 시스템이 설계한 반응의 루프 속에서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SNS는 이렇게 공감과 유대의 공간인 동시에, 인간의 감정과 행동을 포장해 거래하는 거대한 시장처럼 작동한다.

 

 

‘좋아요’ 나라에서 깨어나기

 SNS는 자유로운 의견 교환과 공론의 장이다.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의견을 크게 말할 수 있으며,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남긴 반응과 스크롤 패턴은 곧 알고리즘의 먹이가 되고, 이를 섭취한 알고리즘은 우리의 감정을 예측하여 사회의 유행과 선택을 선동하고 결정한다.

 

 따라서 바람직한 SNS 이용을 위해 먼저 윤리적 감시와 투명한 알고리즘이 시행되어야 한다. 플랫폼은 데이터의 수집과 활용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져야 하고, 이용자 개인에게는 자신의 이용 흔적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그것이 이 세계를 정당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장치일 것이다.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가 하트 여왕의 부당한 재판 앞에서 “그저 카드일 뿐이에요!”라며 외쳤던 것처럼, 우리도 SNS 속 숨겨진 자본주의 논리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 현재 개인이 경험하는 피로와 불안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SNS 자본주의 시스템의 영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제도적 장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결국 건강한 SNS 사용은 개인의 선택과 실천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좋아요 같은 시각적 숫자에 덜 집착하고, 자신의 일상에 조금 더 집중하거나 SNS 알림을 잠시 꺼두는 디지털 디톡스[각주:7]는 그중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우리가 SNS를 비교의 무대가 아니라 표현의 공간으로 되돌리고, 피드의 유행이 아닌 나만의 언어로 하루를 기록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조금씩 그 깊은 토끼굴에서 빠져나올 수 있지 않을까?

 
 

 

토끼굴을 지나며

 내가 정말 귀 기울여야 할 것은 타인의 반응이 아니라 내 안의 목소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 있었다. 그때부터 좋아요 숫자가 하루의 기분을 좌우하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는 누가 봤는지, 몇 명이 눌렀는지에 따라 수시로 기분이 바뀌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흔들림이 점점 사라져갔다.

 

 매일 같이 열던 SNS를 잠시 닫고, 팔로워 수를 신경 쓰지 않았으며, 좋아요 수를 숨기기로 했다. 이건 세상과 단절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내 마음이 다시 숨 쉴 수 있도록 만든 선택이었다. 그리고 사진을 올리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존재했고, 굳이 연출하지 않아도 하루는 잘 흘러갔다. 결국 이러한 작은 실천들이 비교의 늪에서 나를 천천히 건져냈고, 돌이켜보면 그것이 작지만 확실한 회복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속 비교의 습관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SNS는 끊임없이 우리를 경쟁하게 만들고, 누군가의 완벽한 하루를 기준으로 삼게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나의 하루가 괜히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그렇게 작동하도록 설계된 구조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을 지나치게 탓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좌절은 이 시스템 안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반응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는 끝없이 새로 고쳐지는 피드 속에서 비교의 늪과 좌절의 숲을 지나며 때때로 길을 잃는다. 그럼에도 타인의 시선에 덜 매이고 조금은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가는 연습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나는 이런 연습이 차곡차곡 쌓일 때, 비로소 이 피로한 세상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낼 힘이 생기리라 믿는다. 지금 우리는 마치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주인공처럼 낯선 길을 헤매고 있지만, 결국엔 스스로의 중심을 찾아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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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경제, “SNS는 다 거짓말 같아요”…20대 직장인 한숨 쉰 까닭, 2023.07.12, 김세린 [본문으로]
  2. 예전의 산업 자본주의는 노동력과 생산물을 교환의 단위로 삼았다. [본문으로]
  3. 통화(currency)는 재화 및 서비스를 교환할 때 사용되는 공식적 교환 수단이자 가치 단위를 의미한다. [본문으로]
  4. SNS 사용 시간이 현대인들의 삶의 만족도와 자아존중감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는데, SNS 헤비유저 집단은 라이트 유저에 비해 자존감 저하를 경험한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SNS이용시간이 삶의 만족도와 자아존중감에 미치는 영향」, 2023, 제23권 제3호. [본문으로]
  5. 알고리즘의 통치성이란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을 자동으로 조종하고 관리하는 힘을 의미한다.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정보와 구조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 통제되는 것이다. [본문으로]
  6. 아동학대 피해 아동 정인이를 추모하며, 사회 전체가 아동 보호의 책임을 자각하도록 만든 시민 주도의 온라인 캠페인이다. [본문으로]
  7. 디지털 디톡스는 전자기기 사용을 자제하는 기간을 말하는데, 일부 Z세대가 스마트폰 스크린에 지친 탓에 정신건강을 위해 이를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과도한 디지털 노출이 집중력 저하와 불면증과 즉각적 대응에 대한 스트레스, 물리적인 사회생활 등에 문제가 됨을 인지하고 스스로 디지털 생활에 제한을 두고자 한다는 것을 말한다. (한국경제, 2023.07.1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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