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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호 86호 <닻; ( )에 닿다>/대학

진짜 우리 찾기: 현대 사회에서 '우리'의 의미

by 중앙문화 2024. 8. 4.

2024 봄여름 86호 <닻; ()에 닿다>

 

 

수습위원 고다연

 

 

 지난 5월 21일, 중앙대학교 학생들이 잠실야구장으로 향했다. 중앙대학교가 두산베어스의 잠실 홈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행사인 미라클데이는 행사 전부터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경기장에는 두산베어스, 상대 팀이었던 SSG랜더스말고도 각자의 구단을 응원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다양한 유니폼을 갖춰 입은 사람들은 두산베어스가 자신이 좋아하는 구단이 아니더라도 두산베어스의 홈경기를 함께 응원했다. 필자 또한 두산베어스의 열렬한 팬은 아니지만, 이날만큼은 뜨거운 응원의 목소리에 열기를 더했다. 친구들 중 '두산베어스'의 팬이 많기도 했고, 중앙대학교의 재단이 '두산'이었기에 상대 팀이었던 SSG랜더스보다는 심리적 거리감이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 중앙대학교 학생을 환영하는 전광판 사진. 본인촬영.

 

 이는 ‘미라클데이’에서만 보이는 일은 아니다. 평소 특별히 좋아하거나 응원하던 팀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상황에 따라 기꺼이 자신의 열정을 보태고는 한다. 중앙대학교 농구부 경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중앙대학교 학생들은 중앙대학교의 농구부가 ‘우리’ 학교의 농구부이기 때문에 응원하며, 타 학교의 농구부보다 자신이 속한 학교의 농구부를 응원하는 이유는 소속 학교 농구부에 대한 엄청난 관심보다는 자신이 소속된 집단에 있는 또 다른 집단이라는 것에 더 가깝다.

 

 새 학기의 설렘이 한창이던 3월 19일, 필자는 중앙대학교와 동국대학교의 농구부 경기를 관람했다. 중앙대학 교의 홈 경기였기에 체육관 안에 있던 중앙대학교 학생들은 모두 중앙대학교 농구부를 응원했다. ‘중앙대학교 소속’이라는 공통점이 그 이유였다. 중앙대학교 농구부의 승리를 응원하며 공통된 감정을 공유했다.

 

▲ 중앙대학교와 동국대학교의 농구 경기. 본인촬영.

 

 단시간 동안 같은 소속의 사람들을 열렬히 응원하고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과 고양된 감정을 공유하는 현상은 비단 학교 차원에서 마련하는 스포츠 경기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학교에서 조금 더 넓혀 '국가'라는 범위에서 바라보면 이는 더 큰 형태로 나타난다. 올해 있었던 카타르 아시안컵부터 시작해, 2022 카타르 월드컵,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국민인 우리는 한마음 한뜻으로 '대한민국'을 응원했다. 도쿄올림픽의 여자배구, 카타르 월드컵의 축구 조별 예선 경기에서 마음 졸이며 중계를 지켜보던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대한민국을 향한 국민들의 응원은 올해 있을 파리 올림픽으로도 이어진다. 응원하는 이유는 하나.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체성이란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각주:1]라는 뜻이다. 정체성에서 비롯한 소속감은 연쇄적으로 다시 우리에게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강화시킨다. 이러한 국민 정체성은 한 국가의 구성원들이 '국민임'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방식 혹은 스스로를 규정하는 자기 인식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각주:2]

 

 정체성은 내가 다른 사람과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갖고 어느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느냐의 문제다. 이는 사회적 관계와 우연적 요소에 영향을 받으면서 변화한다.[각주:3] 즉 어떤 집단에 속해있다는 것은 그 집단에 소속된 이 들에게 특정한 정체성을 부여하며, 그 정체성을 가진 이들은 같은 정체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그러한 동질감으로 그 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게 되고, 이는 다시 내가 그 집단에 소속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하는 것이다. 정체성의 형성과 소속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굴레에 있다.

 

 생각해 보면 일상생활에서 '우리'라는 단어는 쉽게 사용된다. 우리나라, 우리 학교, 우리 학과, 우리 집 등 자신 이 속한 다양한 집단에 ‘우리’라는 단어를 붙인다. 또한 어떤 이와 단둘이 이야기하는 상황에서도 그와 나를 통칭하여 부를 때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필자 또한 아무런 자각 없이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한다.

 

 '우리'의 사전적 의미는 ‘말하는 이가 자기보다 높지 아니한 사람을 상대하여 어떤 대상이 자기와 친밀한 관계임을 나타낼 때 쓰는 말' [각주:4]이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높지 아니한 사람'을 상대한다는 것은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이에게 '우리'라는 단어를 붙이기에 다소 모호해 보인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자신보다 높은 지위에 속한 사람들이 있는 집단에 속해있을 때는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사전의 예시로 나와 있는 '우리 엄마'만 하더라도 엄마는 나보다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이다. 즉 '우리'라는 것이 지위의 동질성에서 기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와 지위 사이에서 생긴 의문과 함께 우리가 직접 ‘우리’라고 칭하는 집단 중 많은 집단이 소속감보다는 내 몸이 속해 있는 ‘소속’ 자체에 집중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필자부터도 대한민국을 우리나라, 중앙대학교를 우리 학교라고 칭하지만 쉽게 ‘우리’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에 비해 이 집단에서 느끼는 소속감 자체는 크지 않다고 느낀다. 특히 코로나 이후 ‘언택트 사회’가 강조되며 ‘사람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비대면 방식을 선호하는 사회적, 경제적 현상’이 나타났다. 그 결과 전국 만20~65세 이하의 성인 남녀 1,03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40.7%가 코로나 블루를 경험했다는 응답으로 이어졌다. 이 중 ‘외출 및 모임 자제로 인한 사회적 고립감’이 32.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2019~2021년 대학생 휴학 증가

 

 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이탈로 이어진다. 실제로 코로나19 전에 비해 코로나19 이후 휴학 계획이 있는 학생들의 비율이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에 휴학 경험이 있는 4년제 학생의 비율은 54.3%였으나 2020년에는 55.9%, 2021년도에는 56.7%로 연평균 1.2%의 증가세를 보였다. 계속해서 증가하는 대학생의 학업 중단율의 원인이 대학 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과 공동체 의식의 결여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각주:5] 이는 반수, 혹은 편입을 준비하기 위해 휴학을 하는 학생들도 6.9%에서 7.6%로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반수, 혹은 편입의 고민은 현재 다니고 있는 대학에 대한 불만족에서 시작한다. 불만족의 이유는 2020년 교육 연구 평가기관인 유웨이가 대학생 738명을 대상으로 행한 온라인 조사결과를 통해 알아볼 수 있다. 이 조사결과에 따르면 반수 결정의 가장 큰 요인은 지난해 입시 결과에 대한 아쉬움36.6%,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수업으로 재학 중인 대학에 대한 소속감 저하가 34.3%의 응답률을 기록했다.

 

 소속감의 저하는 소속집단으로부터의 이탈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러나 소속집단에서 이탈한 이들은 그대로 이탈된 상태로 존재하지 않고, 다시 다른 집단의 소속원이 되려고 한다. 우리가 끊임없이 소속되고자 하는 이유는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의 이론에서 알 수 있다. 그는 인간은 누구나 사회 집단에 소속되고 수용되고자 하는 애정과 소속의 욕구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원시 시대부터 생존을 위해 무리를 이뤘던 인간의 자연적인 욕구인 것이다. 현대에서는 반수와 편입, 더 나아가 취업과 이직 등이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은 왜 소속감보다는 '소속'에 집중을 하는 것일까. 어떠한 지위에 집중해 뜻을 설명하는 '우리'의 사전적 의미는 더 이상 우리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현대사회의 소속과 소속감, 그리고 나아가 진짜 우리의 의미가 무엇인지 찾아보자.

 

 

우리를 찾아서

 수많은 소속 집단은 규모와 상관없이 '우리'라는 단어가 붙는다. 중앙대학교 학생들이 가장 많이 '우리'라고 부르는 집단은 바로 중앙대학교일 것이다.

 

 

학교 속으로

 

 학교는 대표적인 사회화 기관이다. 사회화란 '인간의 상호 작용 과정이자 인간이 사회의 한 성원으로 생활하도록 기성세대에 동화되는 일'[각주:6]이라는 의미가 있다.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집단에 소속되기에 필요한 지식과 역할, 규범 등을 학교를 통해 배우게 된다. 우리가 거쳐왔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생각해 보자. 내가 속한 학교를 진정으로 우리학교라고 느끼는 것은 나와 같은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과 얼마나 친밀한 상호작용을 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상호작용을 하지 않더라도, 그저 내가 그 집단에 속했다는 이유로 우리라는 호칭을 붙이곤 한다. 그리고 지금의 대학교는 그 대표적인 예로 여겨지는 공간 중 하나이다.

 

 이전 교육과정과 달리 대학교는 개인의 선택이 강조된다. 대학 입학 후에는 수강 신청부터 학교에서의 전반적인 생활 모두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고등학생 때까지는 모두 크게 '학교-학원-집'이라는 비슷한 생활방식을 공유했지만, 대학생들은 개인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물론 패턴화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모든 대학생의 생활이라고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고등학생 때처럼 일반화된 선택을 따라가기를 원한다.

 

 그 예시 중 하나가 바로 다 전공의 선택이다. 자신의 흥미에 맞는 다 전공을 선택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일반적으로 취업이 잘 되는 과로 인식되는 학과를 선택한다. 대학생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서도 다 전공에 대한 글을 검색하면 인문대나 사회과학대 학생들은 경영학과 혹은 경제학과로의 복수전공 신청을 추천하는 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경영학과, 경제학과는 우리 학교가 아닌 모든 학교에서 다 전공으로 인기가 많은 전공 중 하나이다. 대다수의 대학생이 보편적인 대학생들의 선택을 따라가는 것이다.

 

▲ 학과 복수 신청에 관한 에브리타임 게시글. ⓒ에브리타임

 

 다 전공의 선택 말고도 대학생이 된 이들은 자기 삶의 다양한 부분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선택의 자유가 적었던 초, , 고와 달리 대학교에서는 거의 모든 것을 직접 선택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부분 대학생의 선택은 온전한 개인의 결정이라 보기는 어렵다. 기존 선배들의 패턴을 따라가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는 대학생의 덕목이자 가장 중요한 목표로 여겨지는 취업 성공을 위해서다. 자신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확신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자신의 선택이 미래의 취업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큰 부담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이미 누군가가 보장해 놓은 길의 패턴을 따라가려 한다. 어떠한 결과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그 결과를 온전히 부담하는 것보다, 이미 어느 정도의 결과가 보장된 선택을 하는 것이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은 취업만을 위한 통로가 아니다. 대학은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청년에게 자신에 대한 의미를 찾는 공간으로 기능해야 한다. 그렇기에 대학에서는 소속감을 형성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각주:7]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선택을 따라가기만 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의미 부여를 어렵게 만들고 자연스럽게 소속감의 저하로 이어진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Jourard는 '역할관계'에 치중한 현대인의 모습을 통해 작금의 사회가 가진 병폐를 보여준다. 현대인은 역할 자체를, 이를 행사하는 자아를 가진 인간보다 더 중시하게 됐다. , 자신이 희망하는 모습이 되기 위하여 자신 본연의 자아에 집중하기보다는 직업에서 요구하는 역할을 이행하는 데에 더 집중하는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원치 않는 고독으로 이어진다.[각주:8] 코로나19 이후 상황은 더 심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제한적인 환경에서 교수 및 동료와의 상호작용이 학업 스트레스 관리로 겪는 어려움이 진로 확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각주:9]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은 학문을 배우는 곳보다는 '취업'을 위한 요소 중 하나라는 인식이 강하다. 202210월 한국대학신문의 조사에 따르면, 대학에 진학한 이유로 '취업에 유리한 조건 획득'3년 연속 51%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또한 대학생 989명을 대상으로 '행복지수&스트레스 지수'를 조사한 결과 가장 큰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취업'이 지목됐다. 대학생에게 취업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목표이다. 취업이 목적이자 목표가 된 시점에서 취업의 성공은 곧 자신의 의미가 된다. 진로의 불확실성은 소속감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결과로 이어진다.

 

 

지금 우리 학교는

 

 우리나라의 우울증 환자가 2023년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 이 중 20대 여성이 121,534명으로 전체의 12.1%의 비율을 차지했다. 2022년 우울증 진료 인원의 성별은 여성이 674,555명으로, 남성보다 2배 이상이 많았으며, 연령 중 20대가 185,942명으로 최다였다. 특히 20대 여성 우울증 환자는 201857,969명에서 5년간 2.1배가 늘었다. 가장 가파르게 환자 수가 늘어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감정이나 날씨, 음주 등에 영향을 많이 받는 여성 호르몬과 우리나라 20대가 겪는 스트레스 요인이 겹친 것을 원인으로 분석했다. 또한 코로나19에서 원인을 찾기도 하였다. 현재 20대 여성의 상당수가 고등학교 시절 코로나19를 겪었다. 관계 맺기 수요가 가장 큰 청소년 시기,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관계가 단절됐고, 그로 인해 다소 간접적이고 피상적인 SNS를 통한 관계 맺기는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했다. 나아가 이는 상대적 빈곤감과 고립감과 함께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2022년 서울대학교 대학 생활문화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종식 선언이 된 이후 우울과 불안, 학업에 대한 고민이 늘어났다. 특히 여성의 경우 2018년에 비하여 우울을 호소하는 비율이 2배 이상 증가였으며, 남성의 경우 학업에 대해 고민하는 비율이 2배 이상 증가했다. 종식 선언이 내려졌지만, 우리의 일상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 대학생이 우울감을 느끼는 이유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 ⓒ 한경 잡앤조이.

 

 이러한 청년층 우울의 문제는 최근 전남대학교 유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으로 다시 화두에 올랐다. 22전남대 근황이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은 해당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알몸으로 자전거를 타는 현장이 목격되고 이틀 뒤인 24, 그는 전남대학교 기숙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되었다. 경찰 조사의 과정에서 그는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고 전에도 우울증 증세를 보여 학내 상담센터를 예약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 사건 이후 전남대학교 국제학생회와 전남대 외국 유학생공동체에서 "모든 학생이 접근할 수 있는 정신 건강 지원 제도를 마련하라"는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특히 전남대 유학생들은 이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대학원생 및 유학생들의 열악한 연구 환경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의 부재를 지목했다.

 

 201610만 명이던 외국인 유학생들은 꾸준히 상승해 2023년에는 20만 명을 돌파했다. 이에 따라 정신질환으로 상담하는 외국인 유학생은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적절한 대응조치를 하기엔 미흡한 대응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라는 관계 속에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집단의 부재는 우울을 비롯한 정신 질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유학생들은 익숙한 소속 집단에서 벗어나 완전히 다른 문화적 특성을 가진 소속집단으로 편입된 상태이다. 한 국가 내에서의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의 진학과 같은 소속집단의 변화와는 또 다르다. 환경과 언어와 문화가 모두 달라진 새로운 집단에서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새롭게 소속된 집단인 대학교에서 진정으로 자신이 어떤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존재함을 느껴야 한다. 소속된 공간에서 소속감을 느낄 때 곧 그 집단은 진정한 '우리'가 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그러나 현재 대학교가 유학생들에게 그러한 공간의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는 유학생들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대학에 다니는 재학생 누구나 겪고 있는, 혹은 겪을 수 있는 문제이다. 대한민국에서 대학교는 학생들에게 단순히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일 뿐,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느껴야 할 안정을 보장한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구성원이 느끼는 우울감은 개인의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 결국 집단 전체로 확장되어 집단 전체의 우울을 야기한다. 이는 개인의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학교와 직장, 국가와 같은 집단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집단은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까? 이에 대한 명확한 학술적인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의견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나에게 진짜 우리는 어디였나

 

 그동안 소속되었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돌아보며 어떤 공간에서 가장 소속감을 느꼈는지 생각해 본다면 고등학교를 꼽을 수 있겠다. 물론 고등학교를 입학했을 때부터 우리학교라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필자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2020년은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3월부터 5월까지 모든 수업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됐다. 이론 수업은 물론, 실기 수업[각주:10]도 모두 zoom 화상회의로 이루어졌다. 매일 집에서 모니터 앞에 앉아 보내는 수업 시간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생각을 들지 않게 했다.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인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학교에서 소외감을 느꼈을 때는, 본격적인 등교를 시작한 6월부터였다.

 

 등교 전까지는 반에 있는 친구들이 다들 모르는 사이일 것으로 생각했다. 전국의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선발해 사는 지역이 각기 다르며, 5월까지는 모두가 제대로 학교에 다니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막상 가게 된 학교에는 이미 삼삼오오 친해진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나와 이미 서로 친해진 이들의 모습을 비교하며, 과연 내가 이 학교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졌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그 사이에서 느끼는 소외감을 이겨낼 수 없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을까. 함께 실기 수업을 듣는[각주:11] 친구 2명이 말을 걸어주었고, 이를 시작으로 다른 파트에 있는 친구들과도 안면을 텄다. 그리고 그중에서 마음에 맞는 친구들도 만나게 됐다. 나 또한 하나의 집단에 속하게 된 것이다. 집단의 구성원과 친밀함을 느낄 수 있게 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교실 속에서 소속감을 느끼게 되었다. 교실은 6월 첫날 등교했을 때와 달라진 것이 없이 그대로이다. 그러나 변화된 친구들과의 관계는 교실에서의 소속감을 느끼게 했다.

 

 친구들과 교실에서 느낀 소속감을 넘어, 학과 자체에 소속감을 느끼게 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매년 열리는 문학제는 학과의 가장 큰,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중요한 행사이다. 2학년 학생이라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에 강제성을 지녔다고도 볼 수 있지만, 문학제를 통해 친구들과 학과에 더욱 강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비대면에 익숙했던 일상에, 처음으로 함께 즐길 수 있는 활동다운 활동이었다. 이 행사를 통해 우리 학교의 문예창작과 학생이라는 인식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전시를 위해 늦은 시간까지 함께 남아있던 친구들과도 잊을 수 없는 유대감을 쌓았다. 구성원들 사이에서의 소속감에서 확장해 '문예창작과 학생'이라는 정체성 인식을 통해 학과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1년 후, 학과에 대한 소속감은 학교 자체에 대한 소속감으로 확장됐다. 삼 년간 동고동락한 선생님들과도 친밀감이 높아지며 드디어 '우리' 학교로 부를 수 있게 됐다. 실기 과목의 비중이 더욱 높아지는 입시 기간 동안 실기 선생님이 담임을 맡게 되며 담임 선생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학교생활과 입시에 대해 오랜 시간 소통한 담당 실기 선생님과는 학교를 졸업한 지금도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이다. 이러한 선생님들과의 친밀한 관계는 가장 힘든 시기였던 고등학교 3학년 때 정신적인 위로가 되는 동시에, 내가 이 학교에 소속된 '학생'이라는 정체성을 인식할 수 있게 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3년 동안 느꼈던 소속감은 결국 구성원에게 느끼는 친밀감과 함께 '나'라는 존재에 대해 인식할 수 있다는 것에서 비롯했다. 대학생이 된 지금은 고등학생 때만큼의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앞서 말했듯, 대학교는 처음으로 자율성이 주어지는 공간이다. 그러나 강제성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 사회의 학생들에게 갑자기 주어진 자유는 안정감이 아닌 오히려 불안함을 가져오기도 한다. 자유가 부담이자 불안이 된 경험은 대학생이 된 첫 여름방학에 필자에게도 찾아왔다.

 

 고등학생 때 방학은 '대학 입학'이라는 목표를 위해 정진하는 시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방학은 학원에서 종일 공부할 수 있는 기간, 학교에서는 실기 수업을 들어야 하는 기간일 뿐이었다. 그러나 대학생이 맞이한 방학에는 어떠한 것도 강제되지 않았다. 처음으로 맞는 '학원 없는 방학'인 것이다. 언어 공부, 아르바이트, 대외 활동, 공모전, 휴식 이 모든 것은 선택이다. 원한다면 학교와 관련된 활동은 일절 하지 않아도 좋다. 이러한 자유는 오히려 '중앙대학교 학생'이라는 인식을 무뎌지게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과 담당 실기 선생님처럼 가까운 어른도 존재하지 않는다. 방학 동안 자연스럽게 중앙대학교의 일원으로서 느끼는 소속감이 약화됐다.

 

 개인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분명 누구나 한 번쯤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으로 생각한다. 구성원과의 친밀감 역시 소속감을 고취하는 데 필요하다. 하지만 소속원에게 가장 불안함을 주는 것은 자신이 정말 그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이 인식되지 않을 때이다. 개인이 어떠한 집단에 소속되어 있음을 통해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집단이 구성원의 소속감을 고취해야 한다. 집단 속에서의 활동을 통해 그들에게 안심할 수 있는 '우리'의 공간이라는 인식을 제공해야 한다. 단순히 나의 몸이 집단에 들어가 있는 소속만으로는 부족하다. 결국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우리'는 내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다. <인간 무리>의 저자 마크 모펫은 집단을 이루는 인간의 속성을 '사회성'이라고 규정하며 사회가 생명체의 자연스러운 욕구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즉 인간은 집단을 이룸으로써 타인과 소통할 때 정체성을 유지하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집단이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며,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현대인들은 계속해서 자신이 소속된 집단을 우리라고 지칭하며, '우리' 속에 편입되고자 하는 것이다. 청소년기와 청년기의 과도기에 있는 대학은 사회로 나아가는 발판과도 같다. 앞으로 만날 다양한 우리의 첫걸음에 선 대학이 우리 대학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떤 활동이든 핵심은 학생들이 타인과 같은 집단에 속해있다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음과 동시에 그 안에서 자신만의 특별함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대학교에 속한 수많은 개인에게 모두 자신의 특별함을 찾아주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렇기에 대학교는 '우리' 속에 속해있음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을 통해 학생이 스스로 자신의 의미를 찾고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단순히 타인과 공통된 집단에 소속되어있음을 느낄 때에도 인간은 자연스럽게 타인과 구별되는 자신을 인식하고자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을 하나의 스펙과 기능이 아닌 진정으로 내가 소속된 집단인 공간으로 느낄 때 대학교가 진정한 '우리' 대학교가 될 수 있다.

 

 중앙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소속감을 부여하기 위해 대표적으로 5월에 있었던 LUCAUS 청룡오름과 같은 축제를 기획한다. 또한 단과대 별 체육대회와 봄 축제, '너랑나랑 찰떡궁합'과 같은 학생 교류 행사, 필자가 참여했던 행사인 미라클데이 등의 행사도 있다. 행사에 참여하는 우리는 이를 체감하지 못하고 지나갔을 수 있지만, 학교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율로 느슨해진 소속감을 조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1년 동안 대학교를 다니며 느낀 건 대학교라는 기관 그 자체는 안정감을 주는 기관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앙대학교 학생이라는 사실보다는 나 또한 대다수의 또래가 소속된 '대학생'에 속해있다는 사실에서 더 큰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다. 학교라는 집단에서 친밀감을 크게 느끼지 못하더라도, 공통된 집단 속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 안정감을 가져다줬다. 아직 우리는 소속감이라는 마음보다는 소속했다는 사실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비슷한 연령대가 소속되어 있는 보편적인 집단에 '소속'되었다는 것은 결국 내가 소외된 존재가 아님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우리'의 개념은 집단 자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위의 높고 낮음은 더욱 무의미하다. 내가 어떤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공간이 어떻고, 집단의 지위가 얼마나 높은지는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핵심은 '그곳에 소속되어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다.

 

 우리를 통해 '자신이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있음을 인지'할 수 있다. 어떤 대상에 '우리'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내가 소외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일종의 신분증이다. 이것이 현대인들이 자신이 속한 대상에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이다. 이제 우리는 사전적 의미의 우리에서 벗어나, 집단이라는 경계에서 벗어나 진짜 우리를 찾아야 한다. 나의 소속 앞에 우리를 붙이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 중앙대학교가 '우리 대학'이 될 수 있게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한 공간에 앉아 있을 공간을 마련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주변에 소외를 느끼는 '나'는 없는지, 이들에게 안정을 줄 수 있는 '우리'의 공간이 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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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김정아. (2023). 대학생의 코로나19 전후 대학 생활 적응, 자살 생각 및 상담 실태에 관한 비교 연구. 청소년시설 환경, 21(4), 103 11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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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Jeongha Yoon. (2021). 비수도권 대학생의 소속감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대학생 특성 및 대학 초기 경험 탐색. 한국 교육학 연구, 27(3), 289-314. 10.29318/KER.27.3.11 [본문으로]
  8. 이상로,and 이형득. "행동변화를 위한 소집단활동으로서의 ENCOUNTER운동." 學生指導硏究 4.1 (1971): 30-4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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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필자는 예술고등학교를 진학했다. [본문으로]
  11. 1학년 때에는 11명씩 4파트로 구성해 실기 수업을 들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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