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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보기/2022 가을겨울, 83호<현현; 사람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당신 곁의 커뮤니티

by 중앙문화 2022. 12. 26.

2022 가을겨울 83호 <현현; 사람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편집장 김민지 부편집장 김가윤 수습위원 김세원

 

  중문 씨는 일어나자마자 초점도 맞지 않는 눈으로 휴대폰을 확인한다. 밤사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확인하는 것은 현대인의 미덕! 아니나 다를까 학교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이하 에타)’의 알림이 두둑이 쌓여 있다. ‘대외 활동 스펙 없이 대기업 합격한 후기’. 쳇, 웃기고 있군. ‘당신은 따봉도치[각주:1]와 눈을 마주쳤습니다’. 이건 공감 눌러 줘야지. ‘팩트) 붕어빵 논란은 이게 맞음’. 어? 무슨 논란? 중문 씨는 홀린 듯 게시글에 들어간다. 글쓴이는 자신의 논리력을 한껏 뽐내는 어투로 사건의 개요를 설명한다. 있어 보이는 사진과 통계는 덤이다. 중문 씨는 작년에도 비슷한 논란이 일던 걸 기억해 낸다. 에타에도 철이 있다. 가슴팍을 파고드는 시린 바람이 불면 붕어빵 논란이 제철이다. 수십 명이 달라붙어 팥붕(팥 붕어빵)이 맞네, 슈붕(슈크림 붕어빵)이 맞네 설전을 벌이고 있다. 실제 싸움판이었다면 누구 하나 살아나가지 못할 정도로 치열하다. 어떤 댓글에는 혀를 끌끌 찼다가, 어떤 댓글에는 고개를 가만 끄덕인다. 평소 온화한 편에 속하는 중문 씨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말이 있다. “그냥 붕어빵 먹는 xx들이 이해가 안 됨.” 면전에 대고 모욕을 들은 기분이다. 떨리는 손가락을 진정시키며 답 댓글을 단다. “네가 뭘 알아.”

 

 수업을 듣기 위해 중문 씨는 학교로 향한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에게 붕어빵 얘기를 건넨다. 돌아오는 무심한 대답. “그게 뭔데?” 붕어빵 논란도 모르다니,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인가 싶다. 수업을 마친 중문 씨는 카페로 출근한다.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도 논란에 관해 묻는다. “그거 커뮤니티에서 종일 시끄럽더라.” 마침내 중문 씨가 바라던 대답이 나온다. 동료가 말한 커뮤니티를 바로 확인해 본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아무리 열심히 검색해도 ‘팥붕 파’가 보이지 않는다. 슈붕이 완전히 점령하고 있었다. 다른 커뮤니티를 검색한다. 이곳은 팥붕의 본거지다. 슈붕에 대한 극렬한 거부와 혐오가 난무한다. 중문 씨는 머리를 식힐 겸 포털사이트 메인에 걸린 뉴스를 훑는다. ‘아이돌 A군 한 마디에 불붙은 ‘슈붕 vs 팥붕’ 논쟁’. 뉴스 기사는 방금 커뮤니티에서 봤던 말들을 인용했다. 뉴스 댓글 창에서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주장들이 오가고 있다.

 

 

국내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 정보.

 이중 당신이 아는 이름은 얼마나 있는가[각주:2]? 감히 추측해보자면 못해도 하나 이상은 들어봤을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각주:3]’ 는 처음 등장했을 당시만 해도 하위문화라는 인식이 강했다. 이용자가 아닌 사람들은 ‘그들만의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다. 그러나 생활 기반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커뮤니티는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스며들었다[각주:4]. 특히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커뮤니티를 대하는 사회의 온도가 크게 달라졌다. 언론은 여론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출입처[각주:5] 삼았으며 정치인은 유권자의 목소리를 듣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과 유행의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사실 초기 커뮤니티는 연구 자료를 공유하기 위한 공간이었다[각주:6]. 그러다 PC 통신[각주:7]이 개발되면서 관심 분야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사이버 동호회를 만들었다. 그렇게 점차 취미를 나누고, 고민을 상담하는 등 우리가 익히 아는 커뮤니티의 모습으로 발전했다. 2000년대 들어 많은 PC 통신 동호회들이 인터넷으로 넘어갔다. 디지털카메라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1999), 게임 커뮤니티 ‘루리웹’(2000), 자동차 커뮤 니티 ‘보배드림’(2000)이 이때 생겨났다. 이런 유명 사이트들은 커뮤니티의 황금기를 주도하며 오늘까지 맥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게임, 스포츠, 취미 등 본래의 설립 목적에서 활동 영역을 넓혀 관계 교류의 장으로 진화했다.

 

 

사회에 커뮤니티가 있다면 대학엔 에브리타임이 있다

 사회의 커뮤니티는 그 종류가 여러 가지이지만 대학의 커뮤니티는 특히 에브리타임(이하 에타)의 영향력이 크다[각주:8]. 에타는 전국 397개 캠퍼스를 아우르고 누적 가입자 수가 596만 명에 달한다[각주:9]. 에타도 주제별로 여러 게시판이 나뉜다는 점에서 여타 사회 커뮤니티와 유사하다. 전공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학과 게시판’, 사회 현안을 다루는 ‘시사·이슈 게시판’, ‘자유 게시판’ 등이 있다. 마치 디시인사이드와 그 안의 여러 갤러리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그러나 해당 학교의 재학생임을 인증해야만 에타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폐쇄적이다. 또한 시간표 작성, 강의 평가 확인, 학교 정보 공유 등 유용성에 초점을 둔 기능이 있어 상호작용이 주를 이루는 사회 커뮤니티와 다르다.

 

중앙대 에브리타임 이용자 7인 기본 정보.

 

  <중앙문화>는 에타 및 인스타그램 공개 모집으로 만난 7명의 중앙대학교 재적생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①‘코로나 학번[각주:10]인 학생과 아닌 학생, ②커뮤니티 관여도(에타의 커뮤니티적 기능을 이용하는지)에 따라 고관여자(高關與子)와 저관여자(低關與子)로 구분했다. 에타를 정보 확인 용도로만 이용하는 학생은 저관여자로, ‘핫게시판[각주:11]’과 ‘자유게시판’을 중점적으로 이용하는 학생은 고관여자로 분류했다.

중앙대 에브리타임 이용자 분류.

  <중앙문화>는 이들에게 대면 및 전화 질의를 통해 △에타 이용 정도 △코로나19 이후 에타에 대한 인식 변화 △에타의 여론 형성 기능에 관해 물었다.

 

 

 

에타로 본 커뮤니티 특성

 취재 결과 입학 연도, 커뮤니티 관여도에 상관 없이 모두가 입을 모아 공통으로 이야기한 부분이 있었다. ①이제는 에타가 어엿한 소통 창구로 자리매김했다는 점 ②같은 입장을 보인 의견이 여럿일 때 여론이라 생각한다는 점 ③이용자들이 익명 뒤 거침없이 말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자식

 에타의 이용률과 위상에 변곡점이 된 계기를 꼽으라면 단연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학사로의 전환’이다. 2020년 3월을 기점으로 강의실에서 듣던 수업이 e-class로 옮겨가고, 복도에서 만나던 친구들을 카카오톡 친구 목록이나 에타 게시판에서 마주치게 됐다. 대면으로 진행되던 많은 일들이 온라인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에타의 영향력은 어떻게 변했을까? 각 집단의 학생들에게 코로나19를 전후로 에타를 바라보는 주변 시선이 어땠는지 물었다.

 

  A씨(18학번)는 “코로나 전의 에타는 사람들이 그리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는 커뮤니티 같았다” 고 말했다. 그렇기에 이용자도 적은 편이었고, 애초에 대면 행사가 주를 이루다 보니 에타를 쓸 이유도 없었다. 학내에 일이 생기면 얼굴을 마주하는 주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지금은 조그만 일들도 크게 여론화되는데,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던 A씨는 코로나19 이후 에타를 보는 학생들의 인식이 변했다고 느꼈다. 과거엔 사람들이 스스로 에타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밝히길 꺼렸다면 이제는 많이 자연스러워졌다는 것이다. 

 

 반면 B씨(19학번)는 코로나19가 시작되기 1년 전에도 에타가 활성화돼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를 전후로 이용률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에타를 인식하는 학생들의 분위기가 바뀐 것 같다고 밝혔다. “당시(코로나19 전)엔 에타를 언급하는 걸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다”던 B씨는 학기 초 시간표를 공유하기 위한 목적을 제외하고선 친구들과 에타에 관해 이야기 나눠본 적이 없다. 코로나19 이후 대학에 입학한 F씨(22학번)와 그의 친구들은 에타를 정보 확인용으로만 이용했다. 축제 무대 라인업과 관련된 글이 에타에 올라오면 “그 글 봤냐”면서 친구들과 해당 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였다. 하지만 2022년 2학기부터 수업이 전면 대면으로 바뀌자 이용률이 현저히 줄었다며 “굳이 게시판에 들어가서 글을 찾아보지 않고 바로 친구에게 물어보게 됐다”고 말했다.

 

 

② 다수는 여론이다(?/!)

 학생들 사이에서 코로나19 이후 에타를 이용하고 언급하는 데 자연스러워졌다는 반응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그 안에서 어떤 글을 읽고 신뢰했을까?

 

 B씨는 “글의 빈도, 즉 찬반이 나뉘는 의제에서 한쪽의 글이 압도적으로 많을 때, 그게(많은 쪽 의견이) 옳은 것 같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2021년 에타에서 시작된 연서명으로 성평등위원회가 폐지됐던 당시를 회상하며 “그 시간대 에타에 접속해 있는 사람이면 다 알 정도로 새로운 글이 계속 올라오고 핫게시판이 관련 내용으로 뒤덮여” 있어 큰 사건이 일어났음을 짐작했다고 했다.

 

 “찬반 투표를 할 때, 내가 어떤 생각으로 표를 던지는지보다 다른 사람들이 안건에 동의할 것 같은지에 대한 추측이 더 강력하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A씨는 특정 의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기 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민감한 주제일수록 다른 사람의 의견을 확인하기조차 어려웠다. 반면 에타라는 온라인 공간을 통해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저 사람도 나랑 비슷하게 생각하네’라는 의견 확인 과정을 거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③ 익명은 필터를 삭제한다

 모든 응답자를 아우르는 또 하나의 공통된 의견은 에타 내에서 사람들이 말을 정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과격한 표현이 남발하는 원인으로 하나같이 ‘익명성’을 꼽았다.

 

 C씨(21학번)는 에타에 “감정 소모를 하고 싶은 사람, 맥락이 맞든 맞지 않든 간에 욕을 해야 스트레스가 풀린다면서 글을 막 쓰는 사람들이 있다”며 본인의 학과 게시판만 해도 고충을 털어놓는 글에 “내 알 바가 아니”라는 댓글이 많다고 했다. 이어 “막상 강의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리 거칠지 않은데 에타에서는 유독 표현이 거침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에타가) 서로 얼굴이 보이지 않고 누가 누구인지 모르는 공간이다 보니 평소라면 굳이 뱉지 않을 말들을 거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실제 사회와 에타가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며 익명의 공간에서 극단적인 의견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아무런 제약 없이 전부 익명이다 보니 사람들이 거르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의 정도가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B씨)”, “학생사회에서 정치에 대한 토론과 논쟁이 더 진지하게 이루어져야 하지만 에타는 그 환경상 진정성보다는 선정성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 누가 더 설득력 있는 논거를 제시하는지보다 수사적이고 화려하게 글을 쓰는지에 따라 여론이 움직인다.(G씨, 21학번)”와 같은 의견들이 있었다.

 

 에타에서 비롯되는 익명성 뒤 필터 없는 말들은 실제 학생과 학내 분위기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E씨(19학번)는 행사나 강의가 열릴 때 에타를 살피는 문화가 있다며 실제로 “대면에서 목소리를 내기 전 에타 반응부터 신경 쓴다”고 말했다. 축제에서 공연한 후 에타에서 비난의 글이 올라올까 전전긍긍하는 사람을 본 적 있다고도 덧붙였다. 이를 두고 E씨는 “익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창구가 생기면서 불편한 진실이나 불필요한 질타를 마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라 짚었다.

 

 

몸집을 키우는 에타‘발’ 여론

 익명의 힘을 빌려 때로 과격한 표현이 오가는 에타는 비대면 학사를 거치며 몸집을 키워 왔다. 그 영향력을 알아보기 위해 에타가 실제 학교 및 학생들에게 영향을 준 사건을 떠올려보라고 했다. 답변은 △FOC[각주:12] 성평등아카이브 무산과 페미니스트 총궐기(2019년) △성평등위원회 폐지(2021년) △기타납입금 △대통령 선거 등 다양했다.

 

 A씨는 에타가 학생 사회에 영향을 준 사건으로 성평위 폐지[각주:13]를 꼽았다. 그는 성평위가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어떤 곳인지조차 모르다가 주위 친구들이 ‘확대운영위원회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알려줘서 처음 접했다. B씨도 “심심해서 에타에 들어갔는데 성평위를 폐지해야 한다는 글이 엄청나게 올라왔다”면서 그 모습을 보고 라이브 방송까지 시청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에타의 담론이 성평위 폐지에 얼마나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는지 묻자 두 사람 모두 최소 70~80%는 될 것이라 답했다. A씨는 “성평위를 몰랐던 사람도 의견이 한쪽으로 형성된 상태에서 (성평위 폐지 여론을) 접했으니 폐지 여론을 따라갔을 것”이라 설명했다. 또 “만약 에타가 아닌 곳에서 (성평위 폐지) 소식을 접했다면 스스로 온전히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본인이 잘 모르는 사안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쏠려 있다고 느끼면 그에 동조하게 된다며 “(에타에서는) 내가 직접 생각하는 시간이 없어지는 기분”이라 표현했다.

 

 반면 E씨는 “에타가 행사한 영향력 자체는 크지 않은 것 같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보다는 “에타를 신뢰하는 학생 대표자들의 무지한 태도가 문제”라 지적했다. “학생 대표자는 학생들의 의견을 정당한 방식으로 듣고 영향력을 타당하게 행사해야 하죠.” 하지만 성평위 폐지 당시 E씨 눈에 비친 대표자들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E씨는 “에타를 통해 여론을 수렴하기로 합의한 적도 없는데 (에타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태도는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에타에서 모인 의견이 중앙대 학생 사회의 의견을 잘 반영하는지 모르겠다”며 여론을 수집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창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C씨는 군 복무 시절 에타에서 2019년 중앙대 ‘페미니스트 총궐기[각주:14]’ 사진을 접했다. 그는 “(사진을 접했을 당시) 성별 갈등이 가장 심했던 때”였다며 “사진을 본 남학생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했다. 이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지속해서 (총궐기) 사진을 업로드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미뤄 보았을 때 해당 사진이 처음 게재된 곳이 에타였기 때문에 큰 파장을 일으킨 것 같다고 설명했다.

 

 D씨(18학번)는 페미니스트 총궐기가 있기 전 FOC 사업이 무산된 때를 언급했다. 당시 FOC 사업을 두고 설왕설래가 있었으나 에타의 주된 여론은 강경 반대였다. D씨는 “무산을 주장하는 움직임에 불을 붙인 건 에타였다”고 말했다. 학교 플랫폼 중 가장 접근성과 참여도가 높고, 학내 의제를 전달하는 주요 수단으로 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특정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가 대학생 다수의 여론처럼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과대 대표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F씨는 학기 초마다 회자하는 기타납입금을 언급했다. “새내기 시절에 등록금 고지서가 나오자 기타납입금을 납부하지 말라는 글이 새내기게시판에 올라왔다”며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돈을 내면 이상한 사람이 될까 봐 납부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게시글 뿐만 아니라 댓글로도 기타납입금을 만류하는 내용이 여럿 있어 “선배들 대부분의 입장이 그렇다고 생각했다”며 자신보다 학교를 오래 다닌 사람이 하는 말이니 신뢰했다고 밝혔다. F씨는 자신과 비슷한 이유로 기타납입금을 납부하지 않은 학생들이 많을 것 같다며 “더 알아보고 결정하면 좋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한편 기타납입금은 학내 미디어센터에 소속되지 않고 독립 편집권을 가진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와 <녹지>가 학생당 1,250원씩 납부받아 연 2회 책을 발행하는 데 사용한다.

 

 

CEO부터 대통령까지 들었다 놨다

국내 커뮤니티 지표. 주간 조선

더 큰 물로 나가 보자. 에브리타임이 학교 하나를 들썩거리게 만들었다면 사회 커뮤니티는 기업, 심지어는 한 나라를 들었다 놓기도 한다. 커뮤니티에서 출발해 사회 전반으로 논의가 확장된 사례는 손에 14) 중대신문. 주간 조선. 꼽을 수 없이 많지만, <중앙문화>는 그중 3가지를 소개해 보려 한다. 국내 첫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한 2020년부터 올해까지 커뮤니티의 파급력을 실감할 수 있는 사례를 해마다 한 개씩 선정했다.

 

 

[2020 게시판] 코로나19와 혐중[각주:15] 정서

 

 “우리 오늘 짱깨집 갈까?”

 

 짱깨는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이런 표현을 쓰는 걸 볼 때면 우리 안에 피어나는 질문 하나가 있다. “저 사람들은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 쓰는 건가?” 이 어원에 관해서는 중국인의 일본어 발음인 ‘챵코로’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한국식으로 발음한 짱꼴라에서 기원했다는 설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유래가 있지만 속어일 뿐, 처음부터 특별한 비속어는 아니었다[각주:16]. 하지만 대부분 짱깨라는 단어를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 중국인을 지칭하던 단순한 속어에 반중[각주:17] 정서가 섞이면서 지금의 단어가 되었다.

 

 중국 우한에서 처음 감염이 시작된 코로나19는 2020년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팬데믹을 가져왔다. 우한에서 처음 시작되었기에 대다수 사람은 이를 ‘우한 폐렴’이라고 지칭했으나 WHO가 같은 해 1월 30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명명했다. 지역 혐오, 나아가서는 국가에 대한 혐오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뉴욕 쌍둥이 빌딩에서 일어났던 테러 사건 또한 같은 이유로 ‘9.11 테러’라는 날짜로 기억한다. 참사 피해자들이 느낄 수 있는 부담감과 상처의 기억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WHO의 가당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한 폐렴이라 부르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그러면 여기서 또 피어나는 질문 둘. 우리는 우한 폐렴이라는 단어를 어디서 어떻게 답습했는가?

 

 

2020년 온라인 인종차별 관련 긍정・부정 게시글 수. 국가인권위원회.

 지난 세기 ‘짱깨’라는 단어가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서 구전으로 이어졌다면, ‘우한 폐렴’은 21세기의 구전을 담당하는 커뮤니티를 통해 전해졌다. 개인의 의견은 커뮤니티에서 쉽게 가시화되고 공감을 얻으며 여론이 된다. 그리고 그걸 본 다른 사람들이 여론을 답습한다. 남초 커뮤니티 ‘에펨코리아’에서 ‘우한 폐렴’을 검색하면 나오는 게시물의 개수는 2022년 12월 5일을 기준으로 만 여개가 넘어간다. 기사가 작성된 시점인 12월 5일까지도 우한 폐렴을 언급한 글이 올라와 있다[각주:18].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온라인 인종차별 키워드 상위 5개 중 코로나19 관련 단어가 3개나 있었다. 그해 1과 2월에는 ‘중국 우한 폐렴’, ‘중국인 입국 금지’를 언급한 인종차별 관련 부정적 게시글이 약 10만 개에 달했다[각주:19].

 

 코로나19 이후로 중국 관련 키워드의 언급 또한 늘어났다. 에펨코리아 내에서 ‘조선족[각주:20]’을 언급한 게시물 수는 국내 첫 감염자 발생일(2021.01.20.)을 기준으로 2년 전에는 2,640개, 2년 후에는 8,260개로 무려 4배가량 차이 났다[각주:21]. 다음 카페 '여성시대'에서도 같은 값으로 검색했을 때 게시물 수가 약 2배 차이 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각주:22]. 이처럼 중국과 관련한 언급량이 증가할수록 부정적 언급 비중이 높아진다는 국가인권위의 조사 결과도 있다[각주:23].

 

 온라인 커뮤니티는 익명성과 자율성이 보장된 공간이다. 또한 참여자 모두에게 편리한 접근성과 공평한 참여를 보장한다. 바로 이 지점이 오늘날 커뮤니티 내 혐오 정서 발달에 기여했다. 가까운 이웃 주민이던 중국은 △사드 배치에 따른 경제 보복 △코로나19 △동북공정 등의 문제를 거치며 일부 사람들에게서 멀어져 버렸다. 하지만 편견을 바탕으로 한 혐오의 확산은 장기적으로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다음 카페 '여성시대' 중국인 유학생 검색 결과. 여성시대 캡처.

 혐오가 ‘무턱대고’ 이뤄지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영향력 있는 혐오 뒤엔 여러 이유와 설명이 따라붙는다. 위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듯 ‘더럽다’, ‘시끄럽다’와 같은 증언이 중국인 혐오를 정당화한다. 일부 중국인의 오프라인에서의 언행은 혐오의 근거가 돼 온라인에서 회자하고, 온라인에서 힘을 얻은 혐오는 오프라인에서 중국인을 차별할 이유를 만들어준다. 중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끝없는 혐오의 굴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 주변의 중국인이 마주한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올 3월부터 중앙대학교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한 20대 A씨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온라인에서 혐오 표현을 들어 본 적 있냐고 묻자 A씨는 “셀 수 없이 많다”고 운을 뗐다. 주된 주제는 올림픽 한복 논쟁, 예능 프로그램 표절 등이라 밝혔다. 그는 “다른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코로나19와 관련해 길을 걷다가도 이유 없이 욕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며 “한국인에게 구타당하는 중국인도 봤다”고 했다. 교내에도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무시하는 학생들이 있고 타 대학 축제에 갔을 때는 시끄럽다며 떠들지 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전했다.

 

 실제 경험담을 통해, 중국 혐오가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익명의 남용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사람들은 개인의 행동을 근거 삼아 마치 집단에 속한 모두가 공유하는 특성인 것처럼 지레짐작하곤 한다. 그러나 개인의 행동을 보는 시각에 처음부터 색안경이 씌워져 있다면 그 논리를 객관적이라 할 수 있을까? 일부만 보고 전체를 유추하며 ‘통계적으로 그럴 것’이라 여길 수 있을까? 사람들은 이 일이 얼마나 위험하고 잘못됐는지 알면서도 커뮤니티에서 형성된 여론에 올라타 쉽게 일반화의 오류[각주:24]를 범한다. 코로나19로 대면 만남이 제한되면서 온라인이 거의 유일한 소통 창구 역할을 수행하자 혐오가 구체화하고 실재하게 됐다.

 

 

[2021 게시판] ‘요만큼’의 남성 혐오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를 통해 54개 언론사가 2021년 1월 1일부터 2021년 5월 31일까지 보도한 기사를 '남혐'으로 분석한 워드 클라우드. 기자협회보.

 이례적인 폭염 말고도 2021년을 뜨겁게 달군 주역은 또 있었다. 이른바 ‘집게손가락 논란’이었다. 젠더 갈등과 이대녀-이대남[각주:25] 담론의 촉발점이기도 하다. 시작은 2021년 5월 1일에 올라온 ‘GS25’의 이벤트 홍보물이었다. 해당 홍보물에는 검지와 엄지손가락을 뻗어 소시지를 집는 일러스트가 삽입되었다.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손가락 동작을 두고 “‘메갈리아’에서 사용된 남성 혐오 표현”이라며 문제 삼았다.

 

 메갈리아[각주:26]는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메르스갤러리’를 일컫는 말이다. 한국 사회 내에 퍼져있는 여성 혐오를 미러링[각주:27] 방식으로 저격하며 △소라넷 불법 촬영물 공유 △강남역 살인사건 공론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표현이 과격하다는 이유로 일각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런 메갈리아의 로고와 집게손가락의 모양새가 유사하다는 게 이번 논란의 원인이었다.

 

 

집게손가락 논란에 휩싸인 GS25의 홍보물. GS리테일.

 에펨코리아, ‘보배드림’, 디시인사이드 야구갤러리 등 남초 커뮤니티는 불쾌감을 드러내며 기업을 향해 항의를 쏟아냈다. GS25 측은 문제의 손가락 이미지를 삭제한 뒤 홍보물을 재차 업로드했다. 하지만 항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고 불매 운동으로 번졌다. 홍보물을 제작한 디자이너는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기존에 다운받아 놓은 소스를 가져왔을 뿐, 어떤 의도도 없었다”며 해명했지만 끝내 징계받았다. 추가로 마케팅팀장은 부서가 이동되었고, 조윤성 GS리테일 사장은 직책에서 물러났다.

 

 이후 스타벅스, 카카오뱅크 등 기업체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부, 경찰청 등 공공기관도 비슷한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대부분 조직은 연관된 콘텐츠를 삭제하거나 디자인을 변경했고 사과문을 게시했다. 상품 판매를 중단하거나 배포된 홍보물을 회수하는 경우도 있었다. 매일 같이 새로운 논란이 떠오르면 불매 조짐에 지레 겁을 먹은 조직들이 선제적으로 검열에 나섰다. 

 

 

집게손가락 논란에 휘말린 조직.(2021년 상반기 위주)

 마녀사냥식 문제 제기가 반복되면서 피해도 속출했다. 용산 전쟁기념관의 포토존(2013년)은 남초 커뮤니티가 문제의 근거로 내세운 메갈리아(2015년)가 생기기도 전에 설치한 것이었다. 하지만 잇단 항의에 기념관 측은 포토존을 철수하기로 했다. 스브스뉴스 PD 겸 방송인 재재가 시상식에서 초콜릿을 집어 먹는 퍼포먼스를 수행하다 집게손가락을 썼다는 이유로 방송 출연 중단 청원, 광고 하차 문의가 쇄도하기도 했다.

 

 집게손가락이 담긴 콘텐츠들은 속속들이 삭제되었지만 남초 커뮤니티는 충분한 사과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불매를 지속했다. 그런가 하면 끝도 없는 논란 점화에 피로감을 느낀다는 의견도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여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강경 조처를 한 기업을 역 불매하자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결과적으로 기업과 기관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를 눈치 싸움을 벌인 셈이었다[각주:28].

 

 

[2022 게시판] 제20대 ‘커뮤니티 대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가 대선후보 당시 올린 커뮤니티 인사 영상. 유튜브 채널 '재명이네 소극장' 캡처

 지난 20대 대선은 온라인 커뮤니티가 발화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시작은 에펨코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무야홍(무조건 야당 후보는 홍준표)’ 열풍이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대선후보 당시 여성가족부와 관련해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요구사항을 대폭 수용했다. 열화와 같은 지지에도 불구하고 대선 후보로 선출된 사람은 홍 시장이 아닌 정치 샛별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이 때문에 후보 경선 직후, 윤 대통령에 대한 남초 커뮤니티의 시선은 싸늘했다. 설상가상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당 대표와의 불협화음은 이대남들이 등을 돌리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각주:29].

 

 이에 윤 대통령은 반페미니즘 노선을 공고히 하며 돌아선 ‘펨심(에펨코리아의 민심)’을 사로잡기 위해 애썼다. △병사 월급 200만 원 △여성가족부 폐지 등 7자·5자 공약을 자신의 SNS에 게시했다. 마찰음이 큰 두 번의 갈등을 극적으로 봉합하며 이 전 대표와의 원팀을 강조했다. 그러자 남초 커뮤니티는 “석열이 형”이라 화답하며 지지를 선언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도 대선후보로 지낼 당시 커뮤니티 관리에 공을 들였다. 친민주당 성향이 강한 ‘클리앙’, 보배드림, 디시인사이드 이재명갤러리에 글을 직접 올리는가 하면, 적진인 에펨코리아에도 용감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보수 청년 남성층을 의식한 듯, 페미니즘을 비난하는 논조의 글을 SNS에 공유하며 “읽어보자”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젊은 여성들의 반발심을 샀고 후보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각종 리스크까지 더해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오명이 씌워졌다.

 

 갈피를 잃은 2030 여성들이 캐스팅 보트로 떠 오르자 이대남에게만 쏠려있던 정치권의 눈길이 돌아갔다. 이재명 대표는 여성시대, ‘인스티즈’, ‘더쿠’ 등 여초 커뮤니티에 인사를 올리는 강수를 뒀다. 유튜브 채널 ‘재명이네 소극장’에는 커뮤니티의 규모와 주제를 가리지 않고 투표를 호소하는 영상을 올렸다. 그러자 유력 대선 후보들의 반페미니즘 공약 대결로 절망에 휩싸였던 청년 여성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절박한 심정으로 이재명을 뽑는다는 ‘절박재명’ 밈[각주:30]이 유행했다. 이렇게 대선 직전 결집한 2030 여성들은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역대 최소 표차(0.73%P)라는 놀라운 투표 결과를 낳았다.

 

 대선이 끝난 뒤에도 정치 담론은 커뮤니티 내에서 끊임없이 생산되었다. 이재명을 지지했던 2030 여성들은 ‘개딸[각주:31]’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본격적으로 행보에 나섰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소외된 젊은 여성들이 민주당이라는 거대 정당을 쥐락펴락하는 세력으로 등판한 것. 오프라인 집회에 참여하거나, 정치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등 모든 행위가 커뮤니티 내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졌다. 이들의 목소리를 등에 업은 이 의원은 당대표직까지 오르며 꺾이지 않는 기세를 자랑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지금까지 커뮤니티가 보편 담론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학내외 사례를 통해 살펴봤다. 이제는 ‘왜’라는 질문에 대답할 차례다. 왜 사람들은 커뮤니티에 열광하는가? 그리고 왜 커뮤니티에서 파생된 담론은 극단적인가?

 

 먼저 ①인간의 본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교양 수업을 듣는다고 가정해 보자.

 

강의실에는 이름도, 전공도 모르는 수강생들이 가득하다. 초면의 타과생이 옆자리에 앉아 있다. 당신은 그의 단편적인 정보를 보고 신상을 유추할 것이다.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노트북, 긴장이 역력한 얼굴, 숫자 ‘22’가 큼직하게 박힌 과잠. 당신은 그가 신입생이라고 확신한다.

 뇌라는 메모리 카드는 용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하루에 마주하는 수천 가지의 데이터 중 저장할 만한 것을 선별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이미 확립된 분류법에 따라 나누는 것. 위의 이야기처럼, 본인만의 기준에 따라 습득한 데이터를 분류한다. 이 과정을 ‘범주화’라고 하는데, 모든 정보를 일일이 구별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인지적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뇌를 구동하기 위한 전력이 적게 든다는 뜻이다. 이처럼 모든 인간은 ‘인지적 구두쇠[각주:32]’다.

 

팀플을 위한 조를 꾸렸다. 당신은 조원 A의 가방에 달린 열쇠고리를 알아본다. 당신이 열렬히 사랑하는 아이돌의 굿즈다. 갑자기 A에 친근감이 솟구친다. 당장이라도 아는 척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당신은 그에게 말을 건다. 새로 나온 앨범부터 라이벌 그룹까지 이야기를 나눈다. 라이벌 그룹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에 당신은 맞장구를 친다.

 기준에 따라 분류된 데이터들은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구분된다[각주:33]. 위에서 같은 팬덤을 반가워했듯, 한번 내집단 구성원으로 인식하면 ‘우리는 하나’라고 생각한다[각주:34].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다. 이용자들은 같은 관심 분야를 가진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이는 자연스럽게 소속감으로 연결된다. 애정이 커질 수록 커뮤니티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커뮤니티의 영광이 곧 자신의 영광이라 믿기 때문이다[각주:35].

 

회의 날, A를 포함해 두 명에게 연락이 닿지 않는다. 다른 조원이 그들을 강하게 비난한다. 당신은 A를 옹호하고 싶어진다. 그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둘러댄다. 그러자 조장이 반기를 든다. 자신은 두 사람을 알고 지냈으며 과거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주장한다. 그 말을 들은 당신은 오히려 조장에 대한 불신이 솟구친다. 그는 팀플을 하는 내내 편파적으로 행동했다. 이번에도 조장의 주관적인 의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팔은 안으로 굽는다. 내집단에 대해서는 편애를, 외집단에 대해서는 배척을 한다. 위의 가정 속에서 A는 당신의 내집단이다. 라이벌 그룹과 그의 팬덤, 조장은 외집단에 해당한다. 집단을 가르는 경계가 짙어지면 ‘집단 극화’가 발생한다. 구성원들의 성향과 태도가 편중되면서 전체의 특성도 한쪽으로 치우친다. 사람들이 커뮤니티에 동화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각주:36].

 

 

침묵이라는 나선에 매몰된 공론장

픽사베이

 가상의 상황을 통해 사람들이 커뮤니티에 빠져드는 배경을 이해했다. 이제 ②커뮤니티의 특성에 비추어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담론 구조를 파헤쳐 보겠다.

 

 커뮤니티는 일종의 우물이다. 높이 쌓아 올린 벽은 이용자들의 시야를 좁힌다. 같은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사람들끼리 의견을 주고받는다 한들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이다. 이를 ‘울림방 현상(에코 체임버)’라고 한다. 여기에 알고리즘과 같은 맞춤형 필터[각주:37]까지 더하면 우물의 벽은 더욱 견고해진다. 나아가 인터넷은 익명이라는 가면으로 개개인의 고유한 속성을 감춘다[각주:38]. 익명성을 등에 업은 이용자는 사회의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각주:39]. 수면 밑에 잠들어 있던 잠재적 갈등이 두둥실 떠오른다.

 

 이는 뉴스 소비 양상에 영향을 미친다. ‘적대적 미디어 지각’은 성향에 따라 즐겨 보는 뉴스가 다른 원인을 설명한다. 개인의 이념이 뚜렷할수록 뉴스의 논조가 중립적이더라도 (뉴스가) 상대 진영에 편향돼 있다고 믿는다. 자신의 논리에 반대되는 ‘적대적인’ 뉴스는 공정하지 않고, 믿을 수 없다며 회피한다. 진영을 집단으로 치환해 생각할 수도 있다[각주:40]. 내집단에 대한 애착이 강할수록 외집단의 말을 불신하며 들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종전의 가정에서 당신이 조장의 말을 불신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커뮤니티 이용자는 점점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각주:41].

 

 

포털 뉴스 댓글을 읽는 목적에 대한 응답 결과. 한국언론진흥재단.

 커뮤니티를 비롯한 인터넷에서 ‘여론이라 여기는 것’은 보통 소수의 ‘의견 지도자(오피니언 리더)[각주:42]’의 목소리에서 출발한다. 커뮤니티와 유사한 여론 형성 구조를 가진 포털 뉴스 댓글 창을 통해 그 생태계를 알아보자. 포털사이트에서 뉴스를 이용하는 사람 중 댓글을 남기는 비율(6.8%)은 100명 중 7명꼴이다. 이는 뉴스를 볼 때 댓글까지 챙겨 읽는 인원(61.7%)의 9분의 1에 해당한다[각주:43]. 댓글을 가장 많이 다는 상위 10%가 전체 댓글의 7할 이상을 작성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각주:44].

 

 그렇다면 이렇게 일부가 남긴 댓글의 영향력은 어떨까?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18년에 진행한 ‘포털 뉴스서비스 및 댓글에 대한 인터넷 이용자 인식 조사’에서 응답자의 84%가 ‘타인의 생각이 궁금해서’ 댓글을 읽는다고 답했다. 그 외에도 ‘추가 정보를 얻기 위해(58.4%)’, ‘이슈를 어떻게 해석할지 고민돼서 (55.8%)’라는 이유에 과반이 넘게 동의했다[각주:45]. 댓글이 뉴스를 읽는 사람의 생각에 ‘영향을 준다’는 응답자는 55%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응답의 약 4배에 달했다[각주:46]. 즉 여론을 만드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영향력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는 것.

 

 이렇게 선봉대에 선 이들이 여론을 장악하는 사이 침묵의 나선[각주:47]이 만들어진다. 소수 의견은 힘을 잃어가고, 침묵을 택하는 사람은 늘어난다. 개중에는 자신의 의견을 바꿔 다수 의견에 편승하기도 한다. 그렇게 확증 편향[각주:48]의 탑이 완성된다. 한때 대안 공론장으로 떠올랐던 인터넷은 소통과 민주주의의 걸림돌이 된다[각주:49].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혐오와 분열, 갈등과 불통의 강을 건너고 있다[각주:50].

 

 

커뮤니티의 확성기가 된 언론

집게손가락 논란, 남혐 단어 등 안티 페미니즘 담론이 유통되는 경로. 경향신문.

 전문가들은 단순 트롤링[각주:51]에 그쳤을 일을 키운 데에는 언론의 책임도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커뮤니티 의견들을 검증도 없이 무분별하게 확산시켰다는 것.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는 집게손가락 논란을 두고 “젠더 갈등이라는 프레임이 중립적 시각에서 평등한 권리를 가진 두 주체 간에 의견이 대립하는 것처럼 상상하게 만든다”고 했다[각주:52]. 이정연 한겨레 젠더팀장은 “특정 성별이 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를 하는 데 성공하고, 실제 정부나 기업이 이들의 비상식적인 요구를 들 어준다”며 이를 두고 “(특정 성별에) 승리의 경험, 효능감을 준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과연 무엇으로부터의 승리냐”며 비판했다.

 

 

언론의 커뮤니티 인용 분류.

 실제로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를 활용하여 코로나19 대유행 전후, 언론의 커뮤니티 인용 건수를 살펴봤다[각주:53]. 분석 결과,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전인 2019년에는 약 3천 번의 인용이 있었다. 하지만 유행 최절정기에 이른 2021년에는 2배에 달하는 6천 대를 기록했다. 커뮤니티 의견을 실은 기사는 주로 ①사회적 이슈(코로나19, 주식 열풍, 우크라이나 침공 등) ②정치적 이슈(대선 후보 논란, 개딸 현상, 여성가족부 폐지 등) ③논란 및 가십(챗봇 이루다 사태, 집게손가락 논란, 학폭 미투 등) ④일반 사건사고(아동 학대, 쿠팡 화재 등) 분야에 해당했다[각주:54]. 이중 상당수는 커뮤니티 발 의제에서 출발해 사회 전반적인 논의로 확대된 사례였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언론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커뮤니티는 어느 때보다 큰 부피를 차지하며 우리 곁에 서 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무관심하거나 그어 놓은 선 안으로 침범하지 말라 할 수 없게 되었다. 다시 중앙대 학생들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들은 커뮤니티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F씨는 “영향력 있는 매체가 가지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어떤 일을 홍보하거나 소식을 빨리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에타의 유용성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B씨는 자신이 이용하는 블라인드(직장인 커뮤니티)에 대해 “평소라면 쉽게 접하지 못했을 회사 직원의 소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C씨는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가 사라진 뒤로 어떤 이슈가 화제인지 알기 어려워졌다며 “사람들이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할 때 커뮤니티가 유용하다고 했다.

 

 이처럼 자유로운 발언을 가능하게 해주는 ‘익명성’과 시공간의 제약이 적은 ‘유비쿼터스[각주:55]’의 이점도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익명의 탈이 폭력을 정당화하진 않았는지, 과도한 자유가 되레 무기가 되진 않았는지, 온라인이라는 무제약적 공간 속 무분별한 언행을 일삼진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E씨는 “누구나 자기 생각을 인정받을 수 있는 집단이 필요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만큼 집단의 성격도 다양할 것”이라며 “자신의 집단에서 시작된 생각을 발전시켜 타인으로 확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G씨는 “온라인 커뮤니티만큼이나 자유로운 공론장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특정 주제에 대해서 각자의 입장을 밝히고 상호 검토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는 커뮤니티의 순기능이 잘 발휘되길 바란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렇다, 커뮤니티를 만들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혐오와 비방으로 가득한 곳을 만들겠어!”란 악의를 품고 활동을 시작했을 가능성은 적다. 그럼에도 결과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갔다면, 그 상황을 두고 “난 의도하지 않았어!”라며 손 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본래 권리에 주어지는 응당한 의무가, 자유에 따르는 마땅한 책임이 있는 법이다.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다. 가장 자유로운 공간에는 그만큼의 무거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 공간을 누비는 사람들은 화면 저편에 나와 같은 사람의 존재를 기억하고 존중해야 한다. 의도적으로라도 상대의 목소리에 귀와 마음을 열고, 침묵하는 이들의 목소리도 들으려 노력하면 된다.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자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인 언론은 자신의 파급력이 어디에 닿길 바라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공간 자체가 안전하고 평등한 곳이 될 수 있도록 기술적으로 보완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단호히 대처하는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언젠가는 커뮤니티가 우리들의 가장 자유로운 놀이터가 되어 모두가 다치지 않고 뛰어놀 수 있길 바란다.


*구글 드라이브를 통해 PDF 판형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drive.google.com/file/d/1RXMNEP5HoCWVKlMLkF_HwrxrGWmThUa7/view?usp=sharing 

 

2022-83회.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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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따봉 고슴도치’의 준말. 엄지를 척 올리고 있는 고슴도치 사진이 있는 게시글에 “따봉도치야 고마워”라고 말하면 행운이 온다는 인터넷상의 놀이. 에브리타임에서는 시험 기간마다 관련 게시글이 올라오며, 천 개가 넘는 공감과 댓글이 달리곤 한다 [본문으로]
  2. 사이트 방문자 수는 웹사이트 데이터 분석업체 시밀러웹을 통해 도출했으며, 2022년 10월 한 달 기준이다. 방문자 수를 알 수 없는 포털사이트 카페(디젤매니아, 여성시대)는 가입자 수로 대체했다. 블라인드의 경우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방문자 수를 포함했다 [본문으로]
  3. ’ 관심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형성된 가상의 공동체. 본래 커뮤니티(Community)는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공동 사회’를 일컫는 말로 ①공간적 개념(지역)와 ②심리적 개념(소속감)를 모두 아우른다. ‘중문 씨 이야기’에서는 전통적 커뮤니티가 아닌 온라인 커뮤니티가 등장한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①물리적인 공간이 아닌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발생하며 ②혈연·지연·학연처럼 오프라인 중심이 아니라 온라인상에서 관계를 맺는다. 두산백과. [본문으로]
  4. 전소현·나건, 「디지털 사회에서 온라인 커뮤니티 유저그룹의 집단문화현상 사례분석」, 2013, 디자인지식저널, 25호, 377-386쪽 [본문으로]
  5. 기자가 취재를 담당하는 구역. 보통 경찰서, 국회 등의 공공기관과 기업 내 취재를 위한 공간을 별도로 마련해 두기도 한다. [본문으로]
  6. 70년대 초 미국에서 연구 자료를 공유하기 위해 ‘온라인 커뮤니티’가 처음 만들어졌다. 배소영·여민선, 「온라인 커뮤니티 특성이 여가관여 및 온라인 커뮤니티 만족에 미치는 영향」, 2016, 관광레저연구, 28(2), 5-25쪽 [본문으로]
  7. 통신 회선을 통해 개인용 컴퓨터를 사업자 컴퓨터에 연결함으로써 제공되는 서비스. 대표적인 국내 PC 통신 업체는 천리안, 나우누리, 하이텔, 유니텔 등이 있다. 90년대 전후로 PC 통신 온라인 동호회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다.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IT 용어사전. [본문으로]
  8. 서울대 ‘스누라이프’, 고려대 ‘고파스’, 연세대 ‘세연넷’ 등 학교 자체 커뮤니티의 영향력이 큰 경우도 있다. 이외에도 ‘캠퍼스픽’, 페이스북 ‘00학교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지와 같은 플랫폼도 존재한다. [본문으로]
  9. 에브리타임 홈페이지, 2022.12.11. 접속 [본문으로]
  10.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 이후 대학에 입학한 20학번, 21학번, 22학번을 지칭한다. [본문으로]
  11. 공감 10개 이상을 받은 게시물은 자동으로 핫(Hot)게시물로 선정되며 이를 모아놓은 곳이 핫게시판이다. [본문으로]
  12. FOC(Feminism Organization in CAU)는 '중앙대 내 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한 조직 위원회'로, 학내에 성평등 문화를 확산하고 성폭력, 혐오 발언 사건에 신속한 대응을 함으로써 학생 사회 내부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고, 피해자와 연대하기 위해 기획됐다. [본문으로]
  13. 2021년 9월 에타를 중심으로 ‘성평등위원회 폐지에 대한 연서명(총학생회 국으로의 조정)’이 제안되었다. 이는 406인의 연서명을 받아 학과 단위 학생대표자가 참여하는 확대운영위원회 의결안건으로 채택되었다. 10월 8일 열린 21-2 확운위에서 해당 안건은 출석 인원 101명 중 찬성 59명, 반대 21명, 기권 21명, 무효 15명으로 원안 통과됐다. 중앙문화, “[속보] 서울캠퍼스 성평위 폐지… 학생 상정안 가결돼”, 2021.10.09. [본문으로]
  14. 2019년 5월 30일 학내 반페미니즘 분위기와 총학생회의 FOC 사업 중단에 반대하기 위해 열린 집회. 중대신문 [본문으로]
  15. 중국을 미워하고 싫어한다는 의미로 중국을 적대시하는 것을 넘어 미워하고 꺼리며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본문으로]
  16. 국립국어원 홈페이지, “온라인가나다 상세보기('장궤', '짱꼴라')” 2022.12.07. 접속. [본문으로]
  17. 중국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한국 국민들이 중국에 느끼는 적대적인 감정이다. [본문으로]
  18. 에펨코리아, ‘우한 폐렴’ 검색 결과, 2022.12.07. 접속. [본문으로]
  19. 인종차별 발언과 함께 언급된 상위 5개 키워드 중 ‘바이러스(1위)’, ‘마스크(3위’, ‘코로나바이러스(5위)’가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코로나19와 혐오의 팬데믹』, 2020. [본문으로]
  20. 조선족은 중국으로 이주한 한민족과 그 후손이지만, 한국 미디어의 부정적인 묘사와 자극적인 사건의 보도로 인해 혐오의 대상이 돼왔다. 중앙문화, “반중(反中), 똑바로 바라보기”, 2022.07.01., 문민기 [본문으로]
  21. 구글에서 ‘에펨코리아’와 ‘조선족’을 필수 검색어로 지정하여 2018.01.20.~2020.01.19.의 검색 결과 수와 2020.01.20.~2022.01.20의 검색 결과 수를 비교했다. [본문으로]
  22. 여성시대에서 2018.01.20.~2020.01.19.와 2020.01.20.~2022.01.20.로 기간을 설정한 뒤 ‘조선족’을 검색했다. 각각 1,579개와 3,261개의 결괏값이 나왔다. [본문으로]
  23. 국가인권위원회, 『코로나29와 혐오의 팬데믹』, 2020. 9 [본문으로]
  24. 몇 가지 사례나 경험만을 가지고 그 전체 또는 전체의 속성을 섣불리 단정 짓거나 판단하는 데서 생기는 오류. 우리말샘 [본문으로]
  25. 주로 언론에서 ‘20대 여성(이대녀)’과 ‘20대 남성(이대남)’을 줄여 부르는 말. [본문으로]
  26. 메갈리아 역사의 시작은 메르스가 창궐한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온라인상에는 의심 증상이 있었음에도 격리를 거부한 여성이 바이러스를 전파했다는 루머가 퍼졌다.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진 뒤에도 해당 여성을 향한 질타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러자 이전까지는 메르스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던 메르스 갤러리에서 한국 여성을 향한 혐오를 비판하는 글이 잇따라 게시되었다.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사용했던 주된 방식이 미러링이었다. 기존 한국 사회에서 사용되던 여성 혐오적 표현을 남성에 빗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모습들이,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이 전복된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는 노르웨이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과 유사하다고 하여 해당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자신을 ‘메갈리안’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미러링 개념을 직접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소설로 꼽히며, 이를 패러디한 연극의 이름도 <미러링>이다. [본문으로]
  27. 상대방의 상황을 거울처럼 모방함으로써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는 행위 [본문으로]
  28. 이와 유사하게 ‘오조오억’, ‘허버허버’, ‘웅앵웅’ 등 인터넷에서 발생한 신조어들이 남혐 프레임을 뒤집어쓴 전례도 있었다. 남초 커뮤니티는 해당 단어들이 남성을 비하하는 뜻을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는 정확한 유래를 알 수 없고, 매스미디어에서도 두루 사용하는 유행어에 가까웠다. 카카오톡은 관련 단어가 들어간 이모티콘을 판매 중단시켰고, 요기요와 잡플래닛은 각각 금칙어로 설정했다. 단어를 사용한 여성 유명인을 향해 칼날을 겨누기도 했다. 여성 BJ는 사과 영상을 올린 뒤 자숙의 시간을 가졌다. 여성 방송인은 계속되는 악성 댓글에 자신의 SNS를 비공개로 바꿨다. 여성 운동선수에 대해서는 메달을 반납하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바른 연애 길잡이>와 <이두나!> 등 해당 단어를 언급한 웹툰들은 맥락을 불문하고 별점 테러를 받았다. 생계의 문제가 걸린 작가들은 만화를 수정하고 사과문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본문으로]
  29. 에펨코리아는 청년 정치인에 불과했던 이준석을 당 대표로 키워내며 ‘이대남’의 본거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본문으로]
  30.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짤 또는 유행어. [본문으로]
  31.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아빠가 딸을 친근하게 부르는 표현이다 [본문으로]
  32. 이를 자동적 사고(휴리스틱)이라 한다. 인간의 사고방식은 ①자동적 사고와 ②통제된 사고로 나뉜다. 자동적 사고는 본능에 따른 것이고, 통제된 사고는 의식과 이성의 산물이다. 윤선길, 『휴리스틱과 설득』, 2015. [본문으로]
  33. 이처럼 특정 기준에 따라 자신을 비롯한 사람들을 분류하는 것을 ‘사회적 분류화’라고 한다. 그 결과로서 내집단과 외집단이 가려진다. 자신이 속해 있거나 속하고 싶은 집단을 ‘내집단’, 내집단을 제외한 집단을 ‘외집단’이라 한다. [본문으로]
  34. 자신을 비롯해 같은 특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인식하는 것을 ‘자기 범주화’라고 한다. [본문으로]
  35. 사회 정체성 이론에서는 내집단 구성원들의 소속감이 강할수록 집단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고 설명한다. 박유진·김재휘, 「사이버 커뮤니티의 몰입과 정체성이 친커뮤니티행동 및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2006,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보, 19, 41-77쪽. ‘사회 정체성’이란 사회 집단에 소속되어 있을 때 인지할 수 있는 정체성을 말한다.특정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것을 인지하는 정도를 ‘집단 동일시’라 한다. 권형일, 「사회정체성이론, 조직동일시, 그리고 팀동일시」, 2011, 한국스포츠산업경영학회지, 16(5), 67-77쪽 [본문으로]
  36. 주간조선, “[2022 커뮤니티 보고서] 20대男 ‘에펨코리아’, 진보 20대女 ‘더쿠’”, 2022.09.21., 김효정∙조윤정. [본문으로]
  37. 맞춤형 정보에 둘러싸여 갇히는 것을 필터버블이라고 한다. 한국정보신기술협회. 2019 ICT 시사상식 [본문으로]
  38. 개인의 고유한 속성이 가려지거나 덜 중요해지는 것을 ‘탈개인화’라고 한다 [본문으로]
  39. 사회의 규범에서 벗어나는 것을 ‘탈규범화’라고 한다. [본문으로]
  40. 김경모·이승수·김상정. 「정파적 수용자의 적대적 매체 지각과 뉴스 미디어 리터러시」, 2016, 커뮤니케이션 이론, 12(3), 4-48쪽 [본문으로]
  41. 이를 동종애 원칙(호모필리)이라고 한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많아지면서 폐쇄적인 네트워크가 견고해지는 것을 말한다. 안민호, 「SNS는 얼마나 동종애적인가?」, 2014, 한국방송학보, 28(5), 111-149쪽. 인간은 기본적으로 나와 유사한 것(동종)을 이질적인 것(이종)보다 선호한다. 안민호, 『불통에 대한 이해』, 2014. [본문으로]
  42. 집단 내에서 타인에게 강한 영향을 주는 사람을 일컫는 말. [본문으로]
  43.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수용자 조사』, 2021. [본문으로]
  44. SBS, “[사실은] ‘0.03%가 30% 차지’... 포털 뉴스 댓글은 여론인가?”, 2021.01.04., 박원경. [본문으로]
  45. 한국언론진흥재단, 『포털 뉴스서비스 및 댓글에 대한 인터넷 이용자 인식 조사』, 2018. [본문으로]
  46. 해당 질문에 대한 응답은 ‘영향을 준다(55%)’, ‘영향을 주지 않는다(14%)’, ‘어느 쪽도 아니다(31%)’로 구성됐다. 한국리서치, 『여론 속 의 여론-뉴스기사 댓글에 대한 인식』, 2022. [본문으로]
  47. 침묵의 나선 이론은 여론 형성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이 소수일 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침묵하는 현상을 설명한다. 강준만. 『선샤인 지식노트』, 2008. [본문으로]
  48. 자신의 신념에 들어맞는 정보만 추구하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는 인지적 편향. 두산백과 [본문으로]
  49. 인터넷의 특성이 공론에 적합하다는 낙관적인 견해도 있다. 인터넷의 익명성은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하며, 상호작용성은 일 대 다수의 소통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다양한 의견이 교환된다는 것. 최동성·최성은·최용준. 「인터넷 포털뉴스 댓글의 여론형성 과정과 특성에 관한 연구』, 2008, 정치커뮤니케이션연구, 8, 309-356쪽. [본문으로]
  50. 한겨레21, “혐오는 어떻게 정당성을 얻나[혐오의 민낯]”, 2022.10.02., 김민정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본문으로]
  51. 분노를 유발하기 위해 도발하는 행위. [본문으로]
  52. 경향신문, “미러링을 무력화하고 안티 페미코인을 등장시킨 ‘백래시’”, 2021.05.18., 오경민·최민지. [본문으로]
  53. 2019.01.01.~2022.06.30.까지 6개월 단위로 인용 건수를 조사했으며, 일간지 10곳(경향신문, 국민일보, 내일신문, 동아일보, 문화일 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과 방송사 5곳(KBS, MBC, OBS, SBS, YTN)을 대상으로 했다. ‘커뮤니 티'라는 단어 필수 조건으로, ‘커뮤니티 이용자', ‘커뮤니티 사용자', ‘커뮤니티 유저' ‘커뮤니티 회원', ‘여초 커뮤니티', ‘남초 커뮤니티', ‘온 라인 커뮤니티'는 추가 조건으로 설정하여 분석했다. [본문으로]
  54. 특정 개인에 대한 의혹 및 논란은 목록에서 배제했다. 이중 본지는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담론이 역의제 설정(SNS 등지에서 일반 공중이 발화했던 의제를 대중매체에서 중시하며 다루는 현상) 이어졌으며, 사회 전반에 걸쳐 다층적 논의가 전개된 사례 몇 가지를 꼽아 다뤘다. 인과관계가 명백한 범죄 및 사건, 흥행과 유행에 따른 한시적 현상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했다. [본문으로]
  55.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로, 이용자가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접속할 수 있는 컴퓨터 네트워크 환경. 두산백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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