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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좋아요', 갈등 '싫어요', 행동 '안 해요!'

by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 2021. 2. 1.

2013년 가을겨울 〈멀리 하기엔 너무도 가까운〉 중앙대학교 55대 '좋아요' 총학생회의 선본 시절 공약집이 놓여 있다. 

중앙문화 편집부

4월 11일, 서울캠퍼스 대운동장에 2,000명의 의혈 학우가 모였다. 다들 열띤 마음으로 모였지만, 총회가 성사될 거라고 굳게 믿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보란 듯이 총회가 성사되자 대운동장에 모인 군중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이윽고 교육여건 개선, 국가장학금 2유형 미지급 사태에 대한 해결 촉구, 구조조정 마스터플랜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학우들의 목소리가 대운동장을 가득 매웠다. 안건 발제 후 투표가 진행되었고, 개표 결과 4개의 안건 모두 압도적인 찬성률로 가결됐다. 총학생회는 가결된 안건과 요구안을 본부에 전달했다. 7년 만에 성사된 학생총회는 이렇게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처럼 보였다.

 

중앙대 학생들이 대운동장 계단에 줄지어 모여 앉아 있다. 앞에 꽂힌 학과의 깃발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달라진 것은 없다.

  회칙상 학생총회는 ‘총학생회의 활동에 관한 최고 의결권’을 가진다(회칙 2장 9조). ‘회원 전체에게 관련된 중대한 사항을 토의, 결정’할 권한이 학생총회에 있다(회칙 2장 10조). 회칙대로 4.11 학생총회에서는 학교 본부에 대한 학생들의 요구사안을 토의·결정했다. 물론 학생총회가 성사되는 그 자체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압도적인 찬성률로 통과된 안건들이 곧바로 반영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총회는 전체 학우들의 의견을 확인하고 총학생회 활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정당성을 확보한 총학생회의 요구안을 어떻게 본부에게 전달하고 관철해 내는가, 이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2학기 전학대회 자료집에 따르면 학생총회에서 의결된 안건들 중 제대로 실현된 것은 거의 없다. 국가장학금 및 등록금, 교육여건 개선, 정보공개 및 학생 참여 보장 등 무엇도 속 시원하게 해결된 것이 없다. '미래를 위한 정책적인 결정을 했다.’ 국가장학금 2 유형 탈락에 따른 상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총학생회에 대한 본부의 답변이었다. ‘강의실을 개 보수하고 사용률을 높이겠지만 한계가 있다. 310관 완공 시 자연히 해결될 것이다.’ 쾌적한 강의실에서 수업받게 교육 여건을 개선하라는 요구에 대한 답변이었다. ‘반영하겠다.’, ‘ 개선하겠다.' 대부분의 답변이 이렇게 원론적인 수준에 그쳤다. 단 하나 ‘속 시원한’ 답이 있다면 구조조정에 학생 참여를 보장하라는 요구에 대한 것이었다. ‘학문단위 구조조정을 강행했다.’

  좋아요 총학생회(이하 ‘좋아요’)는 뛰어난 일처리 능력으로 7년만에 학생총회를 성사시켰다. 동원 가능한 홍보수단을 모두 이용해 적극적으로 총회 소식을 알려냈다. 칼바람이 살을 에는 늦은 꽃샘추위에 2,000여 학우들이 군집했어도 질서를 잘 유지해 안전사고 없이 총회를 마치기도 했다. 그러나 좋아요 총학생회는 거기까지였다. 일처리는 뛰어났지만 철학과 진심이 없었다. 총회에서 결정된 요구안이 거의 반영되지 못했는데도 후속 대응은 극히 미비했다. 2학기 전학대회 당시 한 학생대표자가 학생총회 안건의 구체적인 진행 결과에 대해 묻자 이재욱 총학생회장은 '국가 장학금 건에 대해 학교본부에 자료를 요청했지만 받지 못했다’며 ‘죄송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질문자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해달라고 부탁하자 총학생회장은 ‘예산 시기가 맞지 않으므로 (이번 총학에서는) 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리고 ‘자료조사를 확실히 해서 다음 총학에게 넘기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총학생회는 학생총회 성사 이후 학교 측에 내용을 전달한 것 외에 적극적인 행동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학생총회 이후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총회를 성사시킨 의미가 없다.

  학생총회 성사는 출마 당시부터 ‘좋아요’의 주요 공약이었다. 2학기 전학대회 당시 총학생회장은 "총학생회보다 중앙운영위원회, 전학대회 그리고 학생총회가 점점 더 강력해지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인의 신념은 중요하지 않다"며 “학생들과 함께 공통된 신념을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난간에 현수막이 붙어 있다. "잠깐! 독도 침탈 야욕의 일본제품 구매는 다시 한 번만 생각해 주세요. -55대 총학생회"라고 적혀 있고 왼쪽에는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이, 오른쪽에는 안중근 의사의 사진이 인쇄됐다.

 

오락가락 총학생회

'국정원 사태에 관련한 서울캠퍼스 총학생회 입장표명’에서 ‘좋아요’의 이런 태도를 잘 볼 수 있다. 서울대를 시작으로 몇몇 대학들이 국정원 사태에 대한 시국선언을 발표하자 온라인 커뮤니티 〈중앙인〉에서도 중앙대의 시국선언에 대한 논쟁이 일었다. 그러자 ‘좋아요’는 ‘학생들의 의견수렴을 거치지 못했으니 시국선언을 유보하겠다’며 '중운위도 전체 학생의 대표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며칠 뒤 '좋아요’는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투표를 실시했다. 7월 3일부터 5일까지 진행된 투표는 결국 투표율 미달로 무산되었다. 전학대회에서 총학생회장은 ‘총학생회와 중운위는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책투표를 실시했다고 답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좋아요’는 총학생회 차원의 신념보다 전체 학생들의 의견 수렴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자체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학내 곳곳에 55대 총학생회의 명의로 걸린 ‘애국 플래카드’는 누구의 동의도 거치지 않은 것이었다. 플래카드는 태극기와 유관순 초상을 양 옆에 걸고 ‘태극기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라는 문구와 일본 제품을 사용하지 말자는 정치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 플래카드는 11월 18일 현재까지 여전히 붙어있다. 정치적인 것을 넘어 '국제정치적’인 수준의 문구지만 '좋아요’는 중운위나 전체 학생들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시국 선언을 주저하던 때의 논리와 반대되는 것이었다. ‘좋아요’가 학우들의 의견 반영 없이 입장을 내놓은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구조조정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구조조정에 학생 참여를 보장할 것을 요구하며 본관을 점거한 지 5일째 되던 6월 18일은 이사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학문단위 재조정안을 의결하기로 계획돼 있었다. 이에 공대위는 법정 투쟁을 준비하기 위해 본관 점거를 해제할 계획이었다. 이사회에서 학문단위 재조정안이 통과되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대위가 한창 점거 해제를 준비하던 그때, 이재욱 총학생회장이 중앙인에 글을 올렸다. “더 이상 계속되는 점거는 여러분들이 주장하는 대화와 소통이 아닙니다.” 그는 “이제 점잖은 모습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제대로 된 테이블에서 당당히 이야기하자”며 "본관 점거가 계속된다면 여러분들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 일이 있기 얼마 전 중운위는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총학생회장을 포함해 각 단과대 학생회장들이 의견을 모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재욱 총학생회장은 단독으로 본관 점거 해제를 요구했다. 의견수렴은 없었다. ‘총학생회보다 중운위가 더 강력한 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던 이재욱 총학생회장이 중운위에서 합의된 내용에 반하는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입장은 ‘소통’을 통해 결정하고, 공대위에 반대하는 입장은 단독으로 결정하는 이중적인 처사였다. 이처럼 ‘소통’의 논리는 사안과 시기에 따라 모양을 달리했다.

 

적극적이고 행동력 있는 '좋아요'?

  ‘좋아요’가 '진짜 소통’을 말했다면 권리를 침해당하는 학생 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위해 행동했어야 한다. ‘좋아요’는 '늘 중앙인 옆에 있는 총학생회를 모토로 소통에 힘쓰겠다'고 외쳤지만 정작 학우들의 근본적 권리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2013년도 학문단위 구조조정 상황에서 ‘좋아요’는 ‘해당 학과의 입장 정리가 먼저’라는 이유로 뒤늦게 공대위에 참여했다. 공대위에서 총학생회는 특별한 역할은 맡지 않고 명의만 올리는 수준이었다. 2학기 전학 대회에서 구조조정에 대한 총학의 입장을 묻는 정태영 비교 민속학과 회장의 질문에 이재욱 총학생회장은 ‘학교가 강행한 부분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지속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구조 조정은 현재 진행 중이다. 후속조치 또한 여전히 논의 중이다. 하지만 총학생회장은 '구조조정 후속조치에 대해서는 해당 학과 학생들이 가장 직접적으로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사실상 관여를 하지 못했다’고 발을 뺐다.

  학문단위 구조조정으로 인한 학생권리 침해는 공간 문제로 확장된다. 내년부터 안성캠퍼스에서 서울캠퍼스로 360여 명이 이전하기 때문이다. 원래도 ‘콩나물 강의실’로 인한 교육 여건이 열악했는데 더욱 비좁아질 것이다. 하지만 학교본부는 이에 대해 ‘310관 완공 시 자연히 해결될 것’이라는 주장만 하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310관이 완공되기까지 2년이 넘게 남았다. 남은 기간 동안 통제되는 건물들의 대체공간도 현재 명확하게 마련돼 있지 않다. 여기에 대해 이재욱 총학생회장은 전학대회에서 ‘학교에서 (불편을) 참아달라고 부탁했다’며 ‘학생들이 어느 정도의 불편을 감내할 부분도 필요하다’ 고 말했다. 그래야 학교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확인해 강의실 시용률을 높이겠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좋아요는 ‘적극적이고 행동력 있는 모습을 보여줄 계획'이라던 초기의 다짐과 다르게 학생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했다고 보기는 힘들어 보인다.

서울캠 55대 총학생회 후보자 시절의 '좋아요' 총학생회 사진이다. 중대신문에서 그들은 "행동하는 총학생회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지키지도 못할 공약 싫어요,지킬 수 있는 공약 좋아요?

  ‘좋아요’ 총학생회는 임기 동안 학내에서 주도적으로 의제를 설정하지 못했다. 본래 공약으로 내세운 ‘학교 발전계획의 학생 참여 보장’, ‘교육 여건 개선’, ‘청소, 방호 노동자 휴게시설 확충’ 등 어떤 방면에서도 먼저 행동하지 않았다. 다른 단위가 나서면 그제야 이름만 올리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좋아요’가 〈55대 총학생회 선거 정책자료집〉에서 가장 먼저 제시한 문구는 “지키지도 못할 공약 싫어요, 지킬 수 있는 공약 좋아요”이다. 임기 동안 ‘소통’을 내세워 비난을 피하고, 학교와의 갈등을 피하는 ‘좋아요’가 지킬 수 있는 공약은 간식 배부나 문화사업 같은 사업뿐이다. 지킬 수 있는 공약의 범위는 누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다. 이는 총학이 얼마나 행동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좋아요’는 학생들의 권리침해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지킬 수 있는 공약의 범위를 한정시켰다. 아무래도 그들의 1년에 ‘좋아요’를 눌러주는 일을 망설일 수밖에 없는 까닭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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