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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호 85호 <모자이크: 잊고 있던 조각들>/사회

그 모든 기준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정상가족'이라는 픽션

by 중앙문화 2024. 2. 5.

2023 가을겨울 85호 〈모자이크: 잊고 있던 조각들〉

 

 

편집위원 손수민 


 정상적인 학교생활, 정상적인 인간관계, 정상적인 연애, 정상적인 취업 준비, 정상적인 일자리, 정상적인 출산 시기, 정상적인 은퇴 시기, 정상적인 삶 ···

 평생을 살아가며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의 앞엔 ‘정상적인’이라는 말이 붙는다. 그리고 정상적인 게 꼭 ‘좋은 것’이기도 하다. 그럼 ‘정상’에서 벗어나 ‘비정상’으로 분류되면 안 좋은 걸까? 그리고 도대체 ‘정상’은 누가 정하는 걸까?

‘정상적인 가족’

 한국에서 정상적인 가족은 뭘까. 아늑한 집에서 남성과 여성, 그리고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그림을 말하는 건가. 그럼, 나머지는 비정상인가.

 사회에서 정상적이지 않다고 분류되는 가족은 다양하다. 이혼가족, 사별가족, 미혼모가족, 한부모가족, 동성커플, 트랜스젠더의 가족, 입양가족, 다문화가족, 비혼동거커플, 딩크가족까지. 어째서 사회는 이들을 비정상가족이라고 말할까. 가족을 구분한 기준은 또 무엇일까. 

 


‘정상가족’은 어떻게 뇌리에 박혔는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이 가족은 정상, 저 가족은 비정상’이라고 구분한 건 아닐 거다. 그럼 ‘정상가족’이라는 개념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걸까. 또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의 뇌 속에 자리 잡게된 걸까. 

▲ 왕가네 식구들 표지. 디지털 KBS.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즐겨 보던 드라마를 생각해 보자. 단란한 대가족이 출연하는 주말연속극이 바로 떠오른다. 2012년에 방영된 <넝쿨째 굴러온 당신>, 2013년의 <왕가네 식구들>, 2014년의 <가족끼리 왜 이래>···. 

 당시 KBS 2TV의 주말연속극은 최대 시청률 40%대를 돌파했을 정도로 ‘방영만 하면 인기’였다. 각 드라마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르지만, 캐릭터 설정은 대강 비슷하다. 이성애적인 사랑을 기반으로 한 부부들만이 존재하며 항상 대가족을 등장시켜 가족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혼남·이혼녀 캐릭터도 등장하지만, 대개 쓸쓸하고 상처받은 캐릭터로 묘사된다. 이들에게 이혼이란 하늘이 무너질 일이다. 비혼출산 경험에 대해서는 더더욱 꽁꽁 숨겨야 하고, 입양아는 가족의 비밀 열쇠를 쥔 인물이 된다.[각주:1] 2010년대에 흥행했던 드라마의 캐릭터 설정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우리가 자라오면서 접한 미디어 속 가족은 다소 한정된 형태라는 건 분명하다. 

  단순히 TV 속 이야기가 아니다. ‘노애미’, ‘노애비’. 일명 ‘패드립’으로 불리는 대한민국 최고의 욕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을 거다. 현실이 아니라 일부 커뮤니티나 게임 채팅에서라도 말이다. 낱말 별로 분리해 보면 ‘no’+’애미’이다. 패드립은 의미와 상관없이 상대방을 공격할 목적으로 쓰이곤 하지만, 이 욕이 아직까지 사용된다는 건 '엄마가 없다' 또는 '아빠가 없다'는 사실이 한국에서 크나큰 치부임을 보여준다. 또한 '엄마가 없는 자' 또는 '아빠가 없는 자'를 비판받아 마땅한 대상으로 여긴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정상가족은 있다.’라고 생각하며 가족의 형태를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한 건 아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그 개념을 주입했다. 어쩌면 우리에겐 희소식일 수도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은 아직 존재하기 때문이다. 

 

 

편견은 소리 소문 없이 존재하기에
: 매스꺼운 말. 말. 말. 


  공기가 있기에 우리는 숨을 쉰다. 하지만 숨을 쉴 때마다 공기의 존재를 인식하진 않는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위이기에 뇌에서 굳이 인식하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숨을 쉬는 거다. 편견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 전반에는 가족 형태에 대한 무수한 편견이 널려있지만 우리는 인식하지 못한다. 인식하지 못하고 자연스레 생각하기에 더욱 문제의식을 가지기 어렵다. 우리가 생존하는 데에 있어 공기는 꼭 필요한 존재이지만, 편견은 반대로 누군가의 생존을 해친다. 어쩌면 편견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채 매일같이 마시고 있는, 하지만 존재 자체로 나쁜 미세먼지 같은 것이 아닐까. 

 미세먼지는 다음과 같은 로 표출되어 사회를 뿌옇게 만든다.

“동성부부 사이에서 나온 애가 불쌍해.”

  흔히들 쉽게 할 수 있는 생각이다. 이들이 동성 부부 사이의 아이를 불쌍하게 여기는 이유는 ‘동성부부의 아이는 세상을 살아가기 더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여기서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당연히 부모의 성별이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아이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가족의 ‘형태’가 아니라 가족관계의 ‘질’이다. 2014년 390쌍의 호주 동성 커플 가정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동성부부의 아이가 이성부부의 아동보다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시선에 노출되는 정도가 높고, 노출 정도가 높을수록 아이의 정서 상태가 불안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는 문제의 원인을 동성부부에서 찾지 않고, 부모의 성별과 무관하게 사회가 주는 부정적 시선이 문제임을 밝혔다.[각주:2] 부모가 동성인 사실은 아이가 성장하는 데에 걸림돌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2016년 미국에서 시행된 동성부부와 이성부부의 아동 비교 연구는 각 아동이 건강, 정서, 스트레스 대처법, 학습 동기의 항목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결과를 도출했다.[각주:3] 즉, 아이를 어렵게 만드는 건 동성부부가 아니라 편견에서 비롯한 차별이다.

 아직 법적으로 동성혼이 허용되지 않은 한국이라 할지라도 동성 간의 결합 의지를 막을 수는 없다. 따라서 동성부부의 아이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동성혼에 반대할 것이 아니라 동성커플에 대한 우리의 시선부터 고쳐나갈 필요가 있다. 진정 건강한 사회는 차별 없는 세상에서 부모의 성별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 사회라는 사실은 분명하니 말이다. 

“동성혼을 허용하면 출생율은 더 떨어질거야”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동성혼을 반대하며 꺼내는 주장이다. 2018년 동성애반대집회에서 최기학 목사는 동성애가 합법화되면 가뜩이나 저출산인 현상황이 더 심각해질 것이란 주장을 펼쳤다.[각주:4] 물론 최근 이에 반박하는 의견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동성혼’과 ‘출생률 저하’ 간의 인과관계를 믿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짚고 넘어가야 할 소지가 충분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위 주장은 터무니없는 얘기이다. 한국의 출생률이 하강 곡선을 그리는 이유엔 수많은 요소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동성혼은 출생률 저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먼저 임신·출산·육아를 희망하는 동성 커플이 존재한다. 2023년 여름, 언론을 뜨겁게 달궜던 국내 첫 레즈비언 부부의 출산 소식처럼 말이다.[각주:5] 또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할 일이 없는 것처럼 동성과의 결혼을 금지당한 동성애자가 이성과 결혼해 출산까지 할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즉, 동성혼과 출생률 저하는 전혀 관련이 없다. 따라서 동성혼을 반대하는 근거로 출생률 저하를 얘기하는 것은 엉뚱한 곳에서 출생율 감소 요인을 찾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동성혼을 반대하기 위한 근거 없는 주장이다. 

“그래도 엄마 아빠가 다 있어야 애가 똑바로 크지. 나는 애를 걱정해주는거야.”

▲ 결혼(왼쪽)과 출산(오른쪽). 픽사베이.



 결혼 의지와 출산 의지는 같지 않다. 특히나 한국에서는 이 둘을 같은 범주로 보는 관점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결혼 의지와 출산 의지를 일직선상에서 보면 안 된다. 엄밀히 말해 결혼 의지는 ‘배우자’를 찾고자 하는 것이고 출산 의지는 ‘자식’을 낳고자 하는 것이다. 결혼은 상대의 경제력 또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 중 하나지만, 비혼출산은 오직 나의 능력만을 판단해도 된다는 점에서 다르기도 하다.

  현대사회에서 결혼은 이전에 비해 그 의미가 확장됐다. 원래 결혼이란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결합이었지만, 지금의 결혼은 ‘경제공동체’로의 성격이 강하다. 심지어 이젠 여러 ‘결혼정보회사’들이 나의 상황과 원하는 조건에 맞게 배우자를 연결해 주고 있다. 과거에 중매쟁이가 암암리에 해주던 행위가 이젠 기업들의 가치 창출 수단이 된 거다. 뿐만 아니라 결혼 전 서로의 경제력을 확인하는 것은 필수 절차가 되지 않았는가. 결혼의 경제공동체적 특성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이 당연해진 분위기 속에서 ‘결혼적령기’의 남녀에게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됐다. 

 ‘비혼출산’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등장했다. 결혼을 사랑의 집합체로 보는 관점에서 누군가는 사랑하는 대상을 찾는 노력이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동시에 자식은 낳고 싶어 한다. 또 결혼을 경제공동체로 보는 관점에서도 누군가는 타인과 경제력을 합치는 노력 없이 혼자서 자식을 낳고자 하는 의지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비혼출산은 많은 비판을 받는다. 대표적으로, 비혼출산자들이 ‘자기결정권’을 남발하여 본인이 원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출산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착각’에 빠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출산할 권리를 행사한 것일 뿐이다. 즉, 자기결정권을 ‘남발’한 것이 아니라 ‘행사’했다고 봐야 한다. 

 또 동성혼과 같은 맥락으로 비혼출산자 아래에서 태어난 아이가 불쌍하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러한 비판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다. ‘결혼하지 않은 개인이 혼자 낳은 아이’=’불행하다’는 도식이 성립되는 사회에서 어떤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겠는가. 

사실 비혼출산은 ‘자기결정권 남발’과 ‘아이 걱정’ 외에 논의해야 할 수많은 논제가 남아있다. 

 

1. 정자 기증과 매매의 윤리문제[각주:6]
2. 정자 매매 시장 활성화로 인한 가난한 자 착취 및 우생학과의 연결 가능성
3. 출생아의 생물학적 ‘부’의 지위를 어떻게 인정해야하는가
4. 출생아가 자신의 생물학적 ‘부’를 알 권리에 대해 어떻게 바라볼것인가


 현재 한국에서 비혼여성의 단독 출산은 불법이 아니다. 2020년 보건복지부는 한국에서 비혼 상태로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하는 것이 불법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생명윤리법’은 임신을 위한 체외수정 시술 시 '시술 대상자의 배우자가 있는 경우'에 배우자 서면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배우자가 없는 경우'는 서면동의가 필요 없기 때문에 불법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각주:7]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실질적으로 비혼여성이 단독으로 출산하기는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산부인과학회'의 '보조생식술 윤리 지침'에 따르면, 체외수정 시술은 원칙적으로 사실혼을 포함한 ‘부부’ 관계에서 시행돼야 한다. 이에 여성 혼자 산부인과에 찾아가면 병원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대답은 “저희로선 불가능합니다.”가 끝이다. 물론 위에 나열한 것처럼 현재 비혼출산과 관련해 해결해야 할 논제들이 남아있기에 섣불리 비혼출산을 활성화하는 것은 고심해 볼 문제이다. 그러나 국가에서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지 않은 비혼출산을 ‘산부인과학회’ 측에서 임의로 단정해 규제하는 것은 명백한 문제이다.[각주:8] 윤리 지침을 근거로 비혼출산에 대한 논의를 사전에 차단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비혼출산에 대한 논의는 제자리걸음만 걷고 있다. 비혼출산을 단순히 ‘문제 행위’가 아니라 ‘활발한 논의가 필요한 주제’로의 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비혼출산'의 윤리적 문제와 별개로 이미 한국엔 비혼출생아가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2020년 기준 한국의 ‘비혼출생률’은 약 2%이다.[각주:9] 이 비혼출생률에는 방송인 사유리와 같은 비혼출산자의 아이[각주:10]뿐만 아니라 사실혼 부부·동거 부부의 자녀도 포함된 수치이다. 전체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과 상관없이 비혼출산자의 아이가 존재하기에 지켜야 한다. 그러니 지금 우리에겐 비혼출산자와 아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이혼가정 있을 수 있지. 근데 솔직히 내 남편으로는 싫더라.”

 <영혼이 강한 아이로 키워라.>, <부모 역할 훈련>, <부모의 말, 아이의 뇌> ···

온라인 서점 ‘부모 교육’ 분야의 베스트셀러 책들이다. 책마다 소개하는 방법은 달라도 목적은 같다. 바로 아이를 ‘똑바로 키우는 것’이다. 아이가 똑바로 크는 것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아이가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내면이 단단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럼 만약 부모님이 이혼해 한 사람이 아이를 양육하면 아이는 똑바로 클 수 없을까? 

▲ 1994-2022 연도별 총 이혼건수 추이. 통계청.



 현재 한국에는 수많은 이혼가정이 존재한다. 1994년에 65,000건이었던 이혼건수가 2022년엔 93,200건이다. 1998년부터 2021년까지의 이혼건수가 모두 100,000건을 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2022년은 비교적 이혼건수가 적은 해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큰 차이가 난다. 이혼율이 증가함과 동시에 이혼한 남녀에 대한 편협한 시각들도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추세이다. ‘요즘 세상에 이혼이 뭐 별거라고.’, ‘서로 안 맞으면 할 수도 있지.’라며 말이다. 하지만 이혼부부 사이의 ‘아이’에 대해서는 어떨까. 

▲ ‘이혼가정’ 입력 결과. 구글.[각주:11] 


 구글 검색창에 ‘이혼가정’을 입력해 봤다. ‘이혼가정’의 연관검색어로 ‘이혼가정 자녀 특징’, ‘이혼가정 여자 특징’, ‘이혼가정 남자 특징’이 등장한다. 해당 연관검색어를 눌러 상위에 뜬 글을 훑어보면 대체로 이혼가정의 자녀‘들’은 성격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고, 이 사실은 ‘사이언스’라며 확정 짓는다.

 이미 많이들 알고 있는 개념으로 ‘낙인찍기’가 있다. 벗어나기 어려운 부정적 평가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각주:12] 해당 연관검색어들은 우리 사회가 이혼가정 자녀에게 가지고 있는 편견을 대놓고 보여준다. 편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혼가정의 자녀는 비 이혼가정의 자녀와는 다른 부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둘째, 이혼가정의 자녀 중엔 우울증 환자가 많을 것이다. 셋째, 이혼가정 자녀의 성별에 따라 다른 특징을 가질 것이다.  

 아이가 부모의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부모는 어렸을 때부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자신을 돌봐주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와 모 중 한 명이 없기 때문에 이들이 ‘화목한 가정의 자녀와는 다르게’ 성격적 결여를 가질 것이라는 예측은 잘못됐다. 부와 모 중 한 명의 양육자와 자식이 끈끈한 관계를 맺기 어려울 거라 지레짐작하고 아이가 똑바로 크지 않을 거라 단정 짓는 건 편견에서 비롯된 일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에겐 상처일 수 있는 부모의 이혼을 잣대로 편견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편견은 이혼을 숨겨야 하는 약점으로 만든다. 

 이외에도 다양한 가족들은 다양한 말들로 편견을 마주한다. 아래와 같은 말들로 말이다.

트렌스젠더의 가족에겐 "도대체 애를 어떻게 키웠길래."
비혼동거커플에겐 "금방 깨질 관계인가 봐."
입양가족에겐 "그래도 진짜 내 배 아파 낳은 애랑은 다르지."
딩크가족에겐 "그래도 결혼을 했으면 애는 한 번 낳아야지."
다문화가족에겐 “왜 굳이 한국에서 사는 거야.”

 아직도 가족구성원을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는 개인이 많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말들이다. 한국에서 이런 말들은 생소하지 않다. ‘편견’이 ‘말’을 만들었고, 이 말이 직접적인 ‘차별’로 돌아온 거다. 

 김성윤 교수(사회학과)는 “대다수 사람들이 (사회에서 정한)정상가족의 범주 안에서 사회적 압력을 느끼게 된다. 이 압력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나 어떤 가족이 되어야 하는지와 같은 심리적 강박을 만든다”라며 ‘정상성’이 사회의 표준이 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상상해야 하는 현시점에서 획일화된 가족의 형태만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거다.

 편견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필요한 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내가 누군가의 가족을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여러 이유를 갖다 붙이며 가족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내뱉은 미세먼지가 비정상이라고 칭해지는 가족의 숨통을 옥죄이고 있진 않은지 말이다. 

 

 

법이면 다야? 
: 가족을 가족이라 부르지 못하고… 


 조선시대엔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 있었다면, 대한민국엔 가족을 가족이라 부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 안에서 ‘비정상’으로 분류되는 가족들 앞에는 법과 제도라는 또 다른 벽이 이들을 가로막고 있다. 어쩌면 편견이라는 벽보다 더 두껍고 단단하게 말이다. 

① 가족이 될 권리조차 없는 한국의 동성부부


 우리나라에서 '가족'이란 법적으로 다음과 같은 정의를 가진다.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정의)>
1. “가족”이라 함은 혼인 · 혈연 · 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를 말한다.
2. “가정”이라 함은 가족구성원이 생계 또는 주거를 함께 하는 생활공동체로서 구성원의 일상적인 부양 · 양육 · 보호 · 교육 등이 이루어지는 생활 단위를 말한다.


 한국에서 법적으로 정의하는 가족은 혼인, 혈연, 입양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성과 결혼하거나 자녀를 가지는 방법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동성이라면, 적어도 한국에선 법적 결속력을 가진 관계가 될 수 없다. 서로 ‘사랑’을 기반으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성부부와 다를 바가 없지만, ‘성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법에 부딪히는 거다.

▲ 국가별 동성혼에 대한 견해. ‘동성 커플의 권리에 대해 생각할 때, 다음 중 개인 의견과 가까운 것은 무엇입니까?’의 질문에 대한 30개 국가 국민의 답변이다. (1)남색: 동성 커플은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어야 한다. (2)하늘색: 동성 커플은 법적 인정을 받을 수 있어야 하지만 결혼은 안 된다. (3)회색: 잘 모름 (4)보라색: 법적으로 동성혼을 인정하는 것을 허용하면 안 된다. ⓒ입소스.



 '동성혼을 합법화해야 한다'에 동의한 한국인 응답자 비율은 35%이다. 반면 30개 국가의 평균 동의율은 56%라는 점에서 한국은 동성혼을 보수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각주:13] 이러한 배경에서 법제화되지 않은 동성혼은 동성부부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법적으로 혼인신고를 한 이성 신혼부부는 ‘주거 혜택’을 받지만 막 가정을 꾸린 동성부부는 받지 못한다. 다음은 신혼부부가 거주지를 구할 때 받는 혜택들이다.

 

신혼부부 특별공급 일정 자격요건을 충족하는 신혼부부에게 우선적으로 주택을 공급해 주는 제도. 법적 지침상 건설업체에선 주택건설 공급량의 18% 내외를 신혼부부 특별공급으로 제공해야 한다. 
신혼부부 전세자금대출 일정 자격요건을 충족하는 신혼부부에게 전세자금을 낮은 이자율로 대출해 주는 제도.
신혼부부 주택구입자금대출 일정 자격요건을 충족하는 신혼부부에게 주택 구입 자금을 대출해 주는 제도. 


 이외에 신혼부부 대상 행복주택, 신혼부부 임차보증금 지원 등의 혜택도 있다. 제도마다 자격요건은 상이하지만 분명한 건 7년 이내의 신혼부부는 주거 문제를 해결할 여러 가지 길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정 자격요건은 둘째 치고 동성 부부는 결혼을 해도 법이 정의하는 ‘신혼부부’에 들지 못한다. 주거 혜택을 받는다는 건 의식주 중 하나인 주를 해결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경제적 이득을 얻는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즉, 동성부부와 이성부부는 결혼생활의 시작부터 경제적 격차가 발생한다. 동성부부와 이성부부의 자산, 거주지역, 원하는 거주 방식(전세, 매매, 월세)이 모두 같더라도 주거 해결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성 신혼부부는 위의 주거 혜택들을 받으며 주거 비용을 줄이고, 청약 당첨률을 높이는 동안 동성부부는 해당 사항이 없어 살 집을 ‘알아서 잘’ 구해야 한다.

 

의료법 제24조의2 
①의사 · 치과의사 또는 한의사는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수술 등을 하는 경우, 환자(환자가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경우 환자의 법정대리인)에게 설명하고 서면으로 동의를 구해야 한다.


 문제는 경제적 격차에서 끝나지 않는다. 똑같은 가족임에도 그 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가족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에서 제약을 받는다. 수술이 필요한 상황에서 환자의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경우엔 상관이 없지만, 만약 의사결정능력이 없다면 동성배우자는 법적 가족이 아니기에 수술동의서를 작성할 수 없다.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국가에서 정한 ‘진짜 가족’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동성부부에게 치명적인 걸림돌로 작용한 것이다. 

② 결혼을 원하지 않는 이성커플


법이라는 벽에 부딪히는 건 동성부부만이 아니다. '결혼을 원하지 않는' 이성커플에게도 해당된다. 앞서 살펴봤듯이 결혼이라는 제도는 결혼당사자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준다. 하지만 이는 개인의 생계와 직결되기 때문에 그저 ‘받으면 좋고 안 받으면 그만’인 제도가 아니다. 

 한국에는 ‘사실혼 관계’가 존재하기에 두 이성이 결혼하지 않았다고 해서 부부가 아닌 건 아니다. 하지만 이 둘에게 결혼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불리하게 작용해 결국 법적 혼인신고를 한다면, 이는 개인의 자율적인 선택으로 결혼한 것이 아니라 법에 의해 강제로 결혼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2021년도 가족과 출산 보고서’[각주:14]에 따르면 동거나 사실혼 상태의 남녀 응답자 28.3%가 정부 지원 혜택에 제한을 겪었다고 답했다. 또 2023년 4월, 경향신문의 한 기사에서 동거 관계를 유지하다가 현실에 굴복하고 결혼하여 법적 가족이 된 부부의 사례가 소개되기도 했다.[각주:15] 결혼해서 (+)가 될 수는 있어도, 안 한다고 (-)가 되면 안 된다. 

 

 

빠르게 뛰는 개인과 제자리걸음인 국가

▲ 2019-2021 가족관 비교.



  그럼 현재 가족에 대한 국민인식은 어떨까. 2021년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각주:16]에 따르면 ‘법적인 혼인·혈연으로 연결돼야만 가족이다’ 라는 항목에 51.1%가 동의했다. 2년 전인 2019년엔 동일 항목의 동의가 67.3%로, 혼인이나 혈연 만을 가족의 조건으로 여긴 국민이 지금보다 16.2% 포인트나 많았다. 

▲ 2012-2020 가족관 중 결혼 문화 변화 추이.



 또 '2020년 사회조사 결과'[각주:17]는 국민의 약 30%가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답했고, ‘남녀가 꼭 결혼하지 않아도 함께 살 수 있다’는 문항에는 60% 가까이 동의했다. 8년 전인 2012년의 응답과는 확연히 달라진 인식을 볼 수 있다. 

 응답자 비율의 변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질 수 있고, 통계 결과가 사회의 모든 부분을 설명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과거와 비교했을 때, 사람들이 새롭게 등장하는 가족의 형태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과 개인의 가족관이 빠르게 진보하고 있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건강한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는 거다.

 그럼에도 국가는 빠르게 뛰는 개인을 지켜만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럴 시간이 없다. 함께 뛰지는 못할지언정, 적어도 발걸음 정도는 서둘러야 한다. 

 

 

가장 필요한 것은.
: ‘가족법’의 진보 


 앞에서 살펴봤듯이 현재 법적 가족이란 혼인, 혈연, 입양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고 여기에 잘못된 부분은 없다. 다만 법에 의해 가족이 될 수 없어 소외되는 개인이 존재하기에 가족의 법적 정의는 확장돼야 한다. 법의 보호를 받는 가족의 영역이 확대될 수 있도록 말이다. 확장의 방식은 두 가지다. 바로 동성혼의 법제화와 혼인을 하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는 법을 만드는 것이다. 후자는 생활동반자법으로 잘 알려져 있어 이후 글에서도 생활동반자법이라 지칭한다.

① 부부가 되게 해주세요: 동성혼


동성혼은 말 그대로 성별이 같은 두 사람 간의 결혼을 인정하는 법이다. 2023년 기준 동성혼을 허용하는 국가는 총 34개이다.[각주:18] 이 34개의 국가에서 동성혼을 허용한 궁극적인 이유는 결혼할 권리를 박탈당한 동성커플에게 권리를 부여해 주기 위해서이다. 

 동성혼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이유는 바로 ‘사회적인 합의’이다. 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4차 TV 토론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모두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동성혼을 반대하기도 했다.[각주:19] 2001년 최초로 동성혼을 허용한 네덜란드는 하원 찬성 109-반대 33, 상원 찬성 49-반대 26의 투표로 동성혼이 통과됐다. 2017년 독일은 동성혼에 대한 연방하원의 표결에서 찬성 62.4%, 반대 35.9%의 결과로 동성혼이 통과됐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해서 의사결정 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찬반 비율이 의미하는 것은 동성혼에 찬성한 국회의원이 더 많았다는 것 외에도 과반수 이상의 국민들이 동성혼에 찬성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즉, 동성혼을 허용한 국가들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동성혼 법제화를 진행했다는 거다. 

 그럼, 현재 한국에서 동성혼 합법화의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2022년 12월, 국회도서관에서 '동성애에 대한 법률적 고찰과 비판' 토론회가 열렸다. 전문가가 모여 동성애를 하나의 문제 행위로 진단하고, 동성애와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했을 때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들이 동성혼을 문제로 여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동성결혼이 기존 헌법에서 이야기하는 혼인제도와 기존의 가족관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기존의 가족관이 바뀌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과거부터 대한민국이 '가족'에 대해 특히나 보수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아버지의 말 한마디면 꼼짝도 못 하는 시대를 거쳤으며, 아들이 없으면 집에 자식이 없는 취급을 받곤 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가치관도 함께 변화한다. 원래 가족법 안에 동성혼이 없었으니, 앞으로도 없는 게 맞다는 것은 동성혼 반대의 적절한 이유가 될 수 없다. 이외에도 국내 종교계의 반발, 특정 이념에 대한 편향성 등 동성혼을 반대하는 여러 이유들이 존재한다. 개인 간의 사랑을 이루고 싶다는, 더 넓게는 가족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신의 이름으로 반대할 수 있는 걸까. 또 과연 이 욕망을 하나의 잘못된 이념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 걸까.

 동성혼을 허용하고 있는 국가라고 해서 법제화 과정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이 국가들도 많은 반대 세력의 방해를 받고 종교 단체의 탄압을 겪었다. 어쩌면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동성혼에 대한 논의를 계속해서 이어가야 하고, 언젠가는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② 가족이 되게 해주세요: 생활동반자법


 생활동반자법은 함께 생활을 동반하고 있는 성인 두 명이 서로 법적 보호자의 권리를 갖는 법이다. 생활동반자법의 가장 대표적인 시행에는 프랑스의 ‘PACS(시민연대계약)’가 있다. 공동생활을 위해 이성 또는 동성의 성년자 2명이 PACS 관계를 맺고 나면 국가에서 발급하는 증명서에 PACS 여부가 기록되고 파트너로서의 법적 권리와 의무를 지게 된다. 

 

  결혼 PACS 동거
재산권 법정 부부재산제 적용 각자 취득한 재산은 각자의 것, 공동 소유로 간주하지 않고 ‘추정’[각주:20] 완전히 독립적인 각자의 재산
거주권 거주지가 본인 명의더라도 배우자의 동의가 있어야 처분 가능 물질적 부양 의무에서 파생된 거주권만 보장 1년 이상 동거한 경우 거주권 보장
소득세 공동 납세 혜택 각자 소득 신고 및 세금 납부


 PACS는 쉽게 말해 동거와 결혼 그 중간 수준의 권리를 갖게 되며, 동거 관계를 계약의 형태로 인정한 것이 특징이다. 각 관계 별로 인정되는 권리 범위 중 몇 가지만 비교해 보면 위의 표[각주:21]와 같다. 프랑스의 PACS는 대표적인 사례일 뿐 무조건 본받아야 하는 해답은 아니다. 또한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은 더더욱 아니다. 이 모든 것과 별개로 생활동반자법이 우리나라에서 필요하기에 논의를 진행하고 시행 중인 국가의 사례를 확인해야 한다. 
 
 한국에서 생활동반자법이 시행됐을 때 우려되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동성 룸메이트’가 주택 분양에서 이득을 얻기 위해 일시적으로 계약을 맺을 ‘악용의 여지가 있다’는 거다. 한국에는 신혼부부를 위한 다양한 주거 혜택이 존재하는데, 만약 생활동반자 관계가 생기면 이들 또한 주거 혜택의 고려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동성이 앞으로 생활을 함께하기로 약속하는 계약을 맺어 법적으로 생활동반자 관계가 됐다면 이들은 더 이상 '동성 룸메이트'가 아니다. 따라서 설령 이들이 주택 분양에서 이득을 얻기 위해 생활동반자 관계가 됐다 해도, 이를 악용이라고 할 수 없다. 주택 분양에서 이득을 얻고자 혼인을 한 두 명의 이성을 나무랄 수 없는 것과 같다. 뿐만 아니라 꼭 혼인신고를 한 이성애 가족만이 주택 분양에서 혜택을 받아야 하는지도 의문으로 남는다. 신혼부부와 생활동반자 관계 모두 새로운 가족을 형성한 건 같은데, 생활동반자 관계의 두 명이 주거 혜택을 받는 것만 악용이라는 것은 각자에게 다른 잣대를 들이미는 것과 같다.

 일부는 생활동반자법이 결국 동성혼을 실질적으로 인정하는 것과 같다며 반대하기도 한다. 2023년 6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그 법안(생활동반자법)이 마치 동성혼이 아니라 1인 가구에 대한 것인 양 핵심을 피해가는 건 국민을 속이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각주:22] 하지만 동성커플의 입장에서 동성부부로서 인정받는 것과 생활동반자 관계로 인정받는 것은 엄밀히 다른 얘기이다. 비록 생활동반자 관계를 인정받는다고 해도, 이들은 부부로서의 권리와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생활동반자법과 동성혼 법제화가 결코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없다. 

 생활동반자법이 제정된다면 이용할 주체는 비단 동성커플만이 아니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이성커플, 연인관계는 아니지만 서로의 보호자가 되고 싶은 두 성인도 생활동반자 관계를 맺을 것이다. 새롭게 가족이 될 권리를 부여한다는 면에서 생활동반자법은 반드시 필요한 법안이다. 한국에서 생활동반자법은 2014년에 본격적으로 논의된 이후, 9년이 지난 2023년 4월에서야 발의됐다.[각주:23] 이후 6월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처음으로 상정돼 한차례 논의가 진행됐다.

 동성혼 법제화와 생활동반자법의 시행은 곧 국가가 모든 이들에게 ‘선택지’를 준다는 말과 같다. 개인은 결혼을 할지 말지, 가족을 이룰지 말지에 대해 주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는 결혼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또는 가족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개인이 존재한다. 여부가 아닌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진정한 국가의 역할이라 볼 수 없다. 물론 동성혼과 생활동반자법의 법제화가 당장 이루어져야 한다는 건 아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법제화 이전에 사회적 합의의 진행은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는 개인들의 인식 변화만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생활동반자법이 발의된 지금, 또다시 9년이 흘러가게 두면 안 된다. 열린 시각으로 새로운 가족법안을 바라보며 지속해서 논의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호적에서 파버린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이 이젠 옛말이 됐다. 호주제가 2008년에 폐지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혈연관계를 끊기 위해 호적을 '파버리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호적'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 호적이 가족관계등록부로 대체됐듯이, 가족법 역시 시간이 흐르며 진화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선을 긋지 않고 ‘지우는’ 한국을 꿈꾸며


 국가는 개인의 가족관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꼭 법과 제도를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국가가 먼저 다양한 가족 형태에 친화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 〈딩동댕 유치원〉 이지현 PD와 출연진. 쿠키뉴스.



 위 사진에는 EBS 〈딩동댕 유치원〉의 이지현 PD와 프로그램 속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전통적인’, 그리고 ‘평범’한 캐릭터만 넣지 않았다. 신체장애가 있어 휠체어를 타는 ‘하늘이’와 다문화 가정인 ‘마리’를 등장시키며 장애 아동과 다문화 가정 아동을 둘러싼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는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체육을 좋아하는 소녀 ‘하리’와 문학을 좋아하는 소년 ‘조아’까지 등장시키며 기존의 성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시도도 한다. 

 이지현 PD는 "장애가 있는 아이는 우울할 것 같다는 편견을 깨고자 ‘하늘이’를 '인싸'로 설정했다. 다문화 배경을 가진 아이들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있어 ‘마리’에게 더 말이 많고 적극적인 성격을 부여했다."고 말하며 어린아이들에게도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함을 강조했다.[각주:24]

 대한민국의 공영방송사인 'EBS'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다양성을 강조했다는 것은 국가도 가족관 확장에 맞춰가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제 남은 건 국가가 그어놓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선을 국가가 지우는 것이다. 이미 EBS에서 ‘시도’는 이루어졌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는 말이 있다. 앞으로 미디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이러한 시도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그 모든 기준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사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동성혼, 생활동반자 관계, 비혼출산의 문제는 장기적으로 보면 새 발의 피이다. 김성윤 교수는 "가족의 범위와 권리 보장에는 더 많은 과제와 중대한 의제들이 남아있다."며,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가족이 점차 늘고 있어 앞으로 ‘반려동물과 사람’이라는 가족구성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논의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더불어 다가올 포스트 휴먼 시대에 반려로봇과의 공존 가능성을 언급하며, 현재의 전통적 가족제도를 빨리 허물 것을 주장했다.

 이에 덧붙여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현존하는 모든 형태의 가족이 존중받고 있어야 낯선 형태의 가족도 존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동성부부, 비혼출산자, 이혼가정, 뿐만 아니라 입양가족, 딩크가족, 다문화가족, 트렌스젠더의 가족이 이미 차별받고 있다면, 앞으로 마주할 또 다른 낯선 형태의 가족은 더 큰 차별을 감내해야만 한다.

 무엇이든 순기능이 있으면 역기능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정상과 비정상도 마찬가지이다. 한 개념에 ‘정상’이라는 기준이 존재하면 ‘비정상’은 기필코 존재한다. 그러니 가족을 볼 때 ‘정상’과 ‘비정상’‘평범’과 ‘특이’라는 말 자체를 빼고 봐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정상가족, 평범한 가족, 보통 가족이라고 얘기했던 가족은 사실 정상, 평범, 보통이 아니라 그저 ‘전통적인’ 가족일 뿐이다.

그래서 ‘비정상가족’은 없다. 그래서 ‘정상가족’도 없다. 
형태가 어떻든 모든 가족은 ‘그냥… 가족’ 일뿐이다.   

 


 

*구글 드라이브를 통해 PDF 판형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drive.google.com/file/d/1UCTelQnoSxrDFlmTqK6xtc-6_YX3q60W/view?usp=sharing

 


 

  1. 예외적으로 2022년에 방영된 KBS 2TV 드라마 <현재는 아름다워>에선 인물의 입양 사실을 숨기지 않고 밝힘으로써 건강한 자아와 바람직한 가족 관계의 형성을 보여줬다. [본문으로]
  2. 동아사이언스, "동성 커플의 자녀, 가정에서 행복감 느낄까", 2016.05.10. 박진영. [본문으로]
  3. Bos, H. M., Knox, J. R., van Rijn-van Gelderen, L., & Gartrell, N. K. 「Same-Sex and Different-Sex Parent Households and Child Health Outcomes: Findings from the National Survey of Children's Health.」, 2016, Journal of Developmental & Behavioral Pediatrics, 37, 179-187. [본문으로]
  4. 미디어오늘, "동성애반대집회 “동성결혼, 저출산 심화”", 2018.07.14. 장슬기. [본문으로]
  5. 국내 최초로 임신 사실을 공개한 김규진(31)·김세연(34) 동성 부부가 2023년 8월 30일 득녀했다. [본문으로]
  6. 한겨레, "‘비혼출산’ OECD 평균 40%인데…한국은 왜 2%?", 2023.04.10. 서원희. [본문으로]
  7. 연합뉴스, “한국에선 비혼 임신 불법?…정부 "비혼자 체외수정 불법 아냐", 2020.11.18. 신재우·김서영. [본문으로]
  8. 2022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보조생식술 윤리지침' 개정을 수용하지 않은 '산부인과학회'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서울신문, "“한국선 비혼 출산 불가”...산부인과학회, 윤리지침 개정 권고 불수용", 2022.09.30. 신융아. [본문으로]
  9. 2020년 기준 OECD 국가의 평균 비혼출생률은 40%이다. 한겨례, “‘비혼출산’ OECD 평균 40%인데…한국은 왜 2%?”, 2023.04.10. 서원희. [본문으로]
  10. 2020년 11월 방송인 사유리는 일본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출산했다. [본문으로]
  11. 구글의 알고리즘 기반 검색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입력한 결과이다. [본문으로]
  1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본문으로]
  13. 10년 전인 2013년의 동의율은 26%였다는 점에서, 한국도 성소수자에 관한 인식이 개선됐다고 볼 수 있다. [본문으로]
  14.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본문으로]
  15. 경향신문, "“무슨 관계시죠?” 물음에 머뭇거리는 ‘가족’", 2023.04.16. 정희완. [본문으로]
  16. 여성가족부. [본문으로]
  17. 통계청. [본문으로]
  18. 2024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에스토니아에서도 동성혼이 허용되기 때문에 해가 바뀌면 35개가 된다. [본문으로]
  19. 뉴시스, "동성애 찬반 이유 보니 ··· '합의 부재'부터 '하나님의 뜻'까지", 2017.04.27. 이재우. [본문으로]
  20. PACS 관계의 두 성인은 취득한 재산을 함께 갖는 것으로 여기지만, 자기 명의의 재산을 처분할 때 상대방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 반면 혼인 관계의 두 성인은 각자 취득한 재산이 완전한 공동소유가 되어 자기 명의의 재산을 처분할 때도 배우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본문으로]
  21. 위의 재산권과 거주권은 결합 해소 이후의 권리 내용이다. 서울경제, "[지브러리] 동거보다는 가까운 결혼보다는 먼 그 이름, 'PACS'", 2022.05.03. 이채홍. [본문으로]
  22. 동아일보, "한동훈 “생활동반자법?…동성혼 추진이면 국민 속이지 말고 하라”", 2023.06.21. 박태근. [본문으로]
  23. 2023년 4월 26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발의했다. [본문으로]
  24. 쿠키뉴스, "“장애인·다문화 섞인 ‘딩동댕 유치원’, 우리 사회 지향점”", 2022.05.21. 이은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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