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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호 85호 <모자이크: 잊고 있던 조각들>/사회

放(내쫓을 방)구석: 구석으로 내쫓긴 자들

by 중앙문화 2024. 2. 4.

2023 가을겨울 85호 <모자이크: 잊고 있던 조각들>

 

 

편집위원 김예진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자꾸 집으로 도망가게 돼요. 역시 난 안 되는구나 역시, 역시 난 안 돼."[각주:1] 

"다음 날 눈을 안 떴으면 좋겠어요. 모든 의욕이 없으니까, 희망도 없고‥"[각주:2]

 

 

누구나 슬럼프[각주:3]에 빠질 때 떠올릴 수 있는 생각들이다. 하지만 두 번째 인용 글은 6개월 이상 방 안에서 고립 생활을 한 ‘은둔형 외톨이’의 인터뷰 내용이다. 고립과 은둔. ‘잠깐이겠지’ 했던 슬럼프가 장기화하면 누구나 진단받을 수 있는, 이름 없는 병명이다. 이처럼 고립·은둔 청년과 우울증을 겪는 청년을 나눌 수 있는 경계선은 모호하다. 둘 사이의 거리는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은 거리이다.

 

 

하루하루 그저 살아 내고 싶은 존재 ‘은둔형 외톨이’

 

 

그들이 은둔과 고립을 택한 원인은 거창하지 않다.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년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원인에는 ‘취업이 잘되지 않아서(35%)’, ‘인간관계가 잘되지 않아서(10%)’, ‘학업의 중단으로(7.9%)’, ‘대학 진학의 실패(1.5%)’ 등 다양하다.[각주:4]

취업에 성공했다고 완전히 안전해진 것이 아니다. 사회에 나온 후에도 업무가 나와 맞지 않는 경우, 직장 내 괴롭힘 등 어떤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고립을 택한 자들도 있다. 개개인의 복합적인 감정으로 곪아버린 마음이 그들을 집 안으로 고립시키고 장기간 은둔하게 만든다. 

 

특히 경쟁의 아이콘인 한국 사회는 은둔을 ‘핑계’ 또는 ‘나약함’으로 보며 방치하기 쉽다.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과정은 앞서 제시한 통계처럼 절대 대단하지 않다. 슬럼프 원인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청년기에 입시, 취업이라는 인생의 큰 굴곡점을 만나면서 겪는 심리적 어려움으로 서서히 세상과 나를 분리해 나갈 뿐이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나만큼은 그럴 일 없다고, 적어도 내 주변에는 없다고 말한다면 위험하다. 당장 중앙대학교만 봐도 심상치 않다.

 

중앙대학교 학생들 심리 상태. 학교생활상담센터.

 

본교 학교생활 상담센터가 발표한 ‘2022 학생 생활 연구 부록 표[각주:5]에 따르면, 학생들은 ‘외로움(23.2%)’, ‘불안감 (15.44%)’, ‘분노 (23.32%)’, ‘우울감 (37.89%)’로, 적지 않은 수가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각주:6]

 

문제는, 은둔 증상과 감기는 그 경계가 모호하지만 ‘먹으면 바로 낫는’ 약이 없다. 2023 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립·은둔 청년 중 18.5%는 정신과 약을 복용 중이라고 밝혔다.[각주:7]립·은둔 청년이 주로 느끼는 감정인 ‘무기력함’과 ‘불안감’은 정신질환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정이 지속되고 불안감을 회피할 곳을 찾다가 도착한 곳은 ‘온라인’이다. 은둔 청년 대부분은 오프라인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기에 주로 컴퓨터 화면 속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이는 개인의 성장과 사고 방향성을 왜곡시킬 뿐만 아니라 현실감각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올해 발생한 신림동, 서현역, 정유정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관계가 단절된 사람들의 범죄 위험성은 높다. 물론 은둔형 외톨이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들의 왜곡된 생각이 끔찍한 범죄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회가 각별히 관리해야 함은 분명하다.

 

 

결국 미래를 위해 해야 하는 일

 

 

그들을 구제해야 하는 이유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청년 고립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크게 경제 비용(비경제활동, 직무 성과 저하, 비출산), 정책 비용(국민기초생활보장, 실업급여 등), 건강 비용(질병, 조기사망, 작업 손실)으로 나뉜다. 올해 8월 청년재단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립된 34만 명(2019년 통계청 사회조사, 3.1%)의 청년을 구제하지 않을 시 발생하는 비용은 연간 약 7.5조 원이다. 고립 청년은 취직한 이후에도 대체로 결근, 이직으로 경제활동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집과 회사만을 반복하며 관계를 단절시킨다. 이는 가족 형성까지도 어렵게 만들어 저출산 문제 등 또 다른 사회의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청년 고립의 사회적 비용 추계 결과. 청년재단.

 

청년 재단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립 청년 비율이 약 4%가 늘어나면 연간 약 16조 9천억 원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반대로 고립 청년 비율이 1%만 감소해도 사회적 비용은 4조 8천억 원까지 줄어든다. 따라서 정부에서 고립 청년을 대상으로 지원사업을 시행할 시 단기 비용은 증가할지라도 1인당 연간 약 2천 2백만 원 상당의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즉 고립·은둔 청년 지원사업에 1인당 300만 원을 지원한다면 총 5,400억(18만명)을 투자하여 4조 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립된 청년에게 들이는 비용은 미래에 대한 투자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효율성을 고민할 이유가 없다. 청년은 국가의 미래를 담당하는 주요 인력으로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다. 무궁한 성장 잠재력을 지닌 청년들이 국가로부터 더 높은 수준의 지원과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국가 경제 발전을 이끌 의무가 있다. 청년이 숨어버리는 순간 국가의 미래는 없다. 

 

당연히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람’이다. 취약계층에 있는 청년을 보호해야 하는 건 국가의 의무이다. 하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는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들이 어렵게 문을 두드렸을 때 받는 상처는 다시 방문을 닫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단법인 청년재단에 따르면 은둔, 고립 경험이 있는 청년 403명 중 237명(59%)이 “은둔·고립을 중단하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은둔·고립 상태로 돌아간 적이 있다”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재고립을 택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바깥세상 적응에 실패하고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세상에 나온 기간이 1년 미만의 기간이라 답한 비율이 40.3%를 차지하였고 1년 이상 ~ 2년 미만이 35.5%로 그다음을 이었다. 75.8% 청년들이 고작 2년도 못 채우고 다시 세상과의 단절을 택한 것이다.  

 

이 문제는 장기전이다. 얼마나 단기에 찾아내는지, 그리고 찾아내고 난 이후의 재고립을 막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두 가지 숙제이다. 

 

 

이제서야 본격적인 구제 신호탄을 쏜 대한민국

 

 

지금 이 숙제는 어디까지 수행됐을까.

 

올해 중순까지만 해도 은둔형 외톨이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정의가 없어 안정적인 제도를 마련하기 어려웠다.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도 없어 전국에 몇 명이 고립되어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나마 지자체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이루어진 지원만 있었다. 지역은 예산 규모가 작기에 그 규모가 한정적이다.  

 

서울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청년 기본 조례를 제정하고 독립적인 청년정책을 추진하면서 정부보다 한 걸음 더 앞섰다고 평가 받아 왔다. 올해 서울시에 거주 중인 청년들 중 고립·은둔 청년은 약 13만 명이다. 그 중 서울시는 538명을 지원하였다.[각주:8] 0.41%이다.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고립·은둔 청년을 지원하는 서울시조차 단 0.41%를 지원했다. 지역 예산의 한계이다. 서울시는 24년도에 800명 정도로 지원 규모를 확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물론 정부는 이를 도외시하고 있지는 않는다. 윤석열 정부는 고립 청년과 은둔 청년을 공식적으로 정의하며 ‘청년 복지 5대 과제’를 발표했다. 은둔형 외톨이에서 고립·은둔 청년으로 구체화 된 순간이다. 정부는 고립 청년을 ‘타인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없거나 요청하기 어려운 청년’으로 정의하고, 은둔 청년은 ‘방이나 집 등 제한된 장소에 머물면서 타인 및 사회와의 관계 및 교류가 거의 없는 청년’으로 정의했다. 비로소 은둔자들의 존재가 정부 차원의 복지 정책 대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는 ‘약자 복지 강화’라는 목적을 내세우며 소득·일자리·돌봄 서비스 지원 범위에, 저소득층·노인·장애인 뿐만 아니라 청년까지 포함했다.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2024년 청년 관련 예산은 올해 대비 무려 43%가 늘어난 3,309억 원으로, 청년들을 보다 촘촘하고 두텁게 보호하겠다는 취지를 드러냈다. 

 

 

‘청년 5대’ 과제 시작. 고립 청년 52만 명?

 

 

 

청년 복지 5대 과제. 보건복지부.

 

 

 

 

3,309억 원 중 고립·은둔 청년을 위한 예산은 13억 900만 원이다. 이 예산으로 4개의 광역시, 도에서 고립·은둔 청년 혹은 가족 중 960명을 선정해 지원 프로그램을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가 밝힌 고립·은둔 청년은 52만 명이다.

 

보건복지부가 전국의 고립·은둔 청년 수를 52만 명으로 추산한 근거는 무엇일까?

 

고립&middot;은둔 청년 실태조사. 보건복지부.

 

 

올해 7월, 보건복지부는 청년 5,000명을 대상으로 약 한 달가량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일반적인 통계조사는 난수를 추출하고 선정된 사람에게 직접 연락하여 통계를 산출한다. 하지만 이번 설문조사는 고립·은둔 청년의 특성을 고려해 온라인 설문조사로 진행됐다. 이 경우 표본집단이 전체 집단을 대표하는지에 의문이 생긴다. 

 

우리나라는 청년기본법에 따라 만 19세 이상 만 34세 이하를 청년으로 본다. 각 기관마다 추정하는 청년 수는 조금씩 다르지만,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23년 청년 인구 수는 10,440 천명이다. 이 중 5,000명은 전체 청년 인구 수의 약 0.05%밖에 되지 않는다. 이 작은 수치의 표본 집단으로 전체 집단을 추정하기엔 대표성을 띠지 못한다. 처음 추산하는 실태조사인 만큼 몇 명의 고립·은둔 청년을 놓쳤을지는 미지수이다.

 

고립된 청년이 몇 명인지 정확하게 셀 방법, 정말 없을까? 독거노인의 경우, 주민등록상 동거자 유무와 관계없이 혼자 거주 중인 65세 이상의 노인을 전수조사한다. 개개인의 상황을 파악한 후 중점돌봄군, 일반돌봄군, 특화서비스 대상, 사후관리 대상으로 나눈 뒤 각 돌봄군에 맞춰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전국 자치구마다 설치된 노인복지관을 통해 담당 사회복지사를 지정받아 한 달에 한 번 방문상담까지 받을 수 있다. 

 

고립·은둔 청년은 방 밖을 두려워하기에 스스로 외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거동이 불편해서 직접 도움을 청하기 어려운 독거노인과 어쩌면 비슷한 상황이다. 정책을 시행하기에 앞서 필요한 대상자들이 소외당하는 일이 없도록 정확한 통계수치가 필요한 실정이다.

  

앞으로 있을 실태조사는 더욱 신중하고 정확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다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도 길뿐더러 그 사이 청년들은 중장년층이 되어 가고 있을 것이다. 다시 오는 기회는 없다.  

 

 

서울이 800명인데 전국에서 고작 960명?

 

 

일단 국가가 발표한 ‘52만 명’이라는 수치를 믿어보기로 하고 다음 논의를 이어가 보자. 청년 5대 과제로 선정하고 처음으로 발표한 복지 대상자 수는 ‘960명’. 앞서 말했지만, 서울시가 24년도에 지원하는 800명보다 160명 더 많다. 5대 과제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다. 13억으로 960명, 정말 최선일까?

 

정부의 이런 소극적인 태도는 서울 외 지역에 거주 중인 청년들의 소외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통계청 장래 인구 추계에 따르면 서울시에 거주 중인 청년은 총 2,257천명으로, 전체 청년 인구의 약 20%가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 남은 80% 중 고립, 은둔 생활을 택한 청년 수는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정부 정책은 이들을 모두 포괄한 규모여야 한다. 당장 서울시와 비교해도 단 100명 정도밖에 지원 규모가 차이 나지 않는다. 지방에 고립되어 있는 청년들은 더욱 소외 되기 쉬운 상황이다. 

 

 

준비된 정책은 있지만, 신청은 알아서?

 

 

예산이 얼마만큼 할당되느냐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다음으로 짚어야 할 문제가 바로 예산 대비 ‘효율성’이다. 고립·은둔 청년이 새로운 정책 대상으로 발굴된 이상, 이들에게 알맞은 복지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 정부는 현재 상태를 벗어나고 싶다는 당사자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고,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 청년에게 적용해야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다시 말해 의지가 있는 청년들은 ‘알아서’ 신청하라는 것이다. 방 안에서만 지내는 청년들이 의지를 갖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처음엔 그저 회피였고, 조금 지나니 편해졌고, 나중엔 고통스러웠지만 그땐 이미 너무 늦어버렸죠. 

더 이상 제 의지로는 방에서 나갈 수 없었어요.”

 

의지가 있다고 대화도 힘들어하는 이들이 정부에 바로 도움 요청을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걸 안다고 말한 장 씨는 5년 전에 멈춰 있는 본인을 믿지 못해 변한 세상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고 고백했다.[각주:9]물론 해당 정책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본인 외 가족들 및 주변인들까지도 신청 대리인의 범위를 늘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청년이기에 그들을 구제할 가족이나 주변 사람이 항상 있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은둔 청년은 가족을 마주치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심지어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은둔의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방에 있는 시간이 좋아서 은둔을 택한 것이 아니다.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유일한 공간인 것이다. 

 

은둔생활을 3~4년 지낸 최지권 씨에 따르면, 그는 핸드폰 번호를 바꾸고 모든 SNS 활동을 탈퇴한 후, 마치 죽은 사람처럼 살았다고 전했다. 사회생활 공백기가 길어지면서 가족과의 불화 역시 심했다고 말했다. 불화가 심해 부모님이 계실 때 얼굴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가지 않았고, 그저 방 안에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각주:10]

 

방법은 ‘찾아내는 것’밖에 없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공급자 중심이 아닌 ‘이용자 중심’의 전달체계이다. 

세상 밖을 두려워하며 탈고립하는 방법을 모르는 고립·은둔 청년에게는 사회가 직접 나서야 한다. 즉 선제적 예방에 많은 예산을 들여야 한다. 프로그램의 취지가 좋아도 서비스 대상자에게 전달되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 

 

 

똑똑, 거기 누구 없나요?

 

 

우리나라에서 ‘찾아가는’ 시도가 전무했던 건 아니다. 2015년 서울시가 최초로 ‘찾동 사업’을 추진했다. 당시 박원순 시장은 복지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사업을 추진했다. 복지 대상자가 직접 신청해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낳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동 주민센터 차원에서 찾아 나서는 ‘발굴주의’[각주:11] 도입한 것이다.

동사무소 전 직원이 ‘우리동네주무관’이 되어 구역별로 주민들을 전담하고, 각 동사무소에서 복지플래너와 방문간호사라는 이름으로 동네 모든 65세, 50세 도래자, 영유아 가정, 빈곤 위기 가정을 찾아가 대상자의 욕구에 맞는 맞춤형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사업 결과, 복지 전담 공무원 1인당 복지대상자(기초생활수급권자, 차상위계층) 수가 289명에서 126명으로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또한 공무원들이 지역 사정에 밝아지면서 복지 사각지대에 있던 6만 4,943가구를 발굴할 수 있었고 이후, 총 229억 원을 지원하는 등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전문 인력의 인건비 대비 방문 건수가 너무 적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오세훈 시장은 선별 복지로 전환했다. 대상자 범위를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찾동’ 사업은 ‘동행센터’로 체제를 개편하고 위기가구 방문에 중점을 둬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위기가구’는 한부모가구, 조손 가구, 가정폭력 피해 가구 등을 포함한다. 

 

한 번의 시행착오로 범위를 좁혀나가면 고립과 은둔 청년은 계속해서 배제될 뿐이다. 독거노인처럼 단순히 전력 사용량이 적어서, 경제활동이 적어서 접근하기에는 소외되는 청년 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 청년이 있는 가구는 51.3%이며 이 중 부모와 동거하는 가구는 40.6%이다.[각주:12]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안에서 고립된 청년을 국가는 온전히 가족 재량으로 맡기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편적 복지는 고립·은둔 청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기존 ‘찾동 사업'이 받은 비판들에 대응하고자 범위를 좁힐 게 아니라 비효율성을 보완할 수 있는 관리·감독 체계를 만들어 내면 된다. 고립·은둔 청년은 여전히 깊숙한 방 안에서 구제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용기 내 방문을 열었을 때 서 있어야 하는 건, 국가

 

  • 먼저 두드려주세요

 

첫 번째로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일본은 한국보다 한참 전부터 ‘히키코모리’ 관련 문제가 불거졌다. 10대 청소년들은 왕따, 입시경쟁 과열 등의 이유로 집 안에서만 생활하게 됐다. 심지어 경기침체까지 맞물리며 당시 청소년들은 중장년층이 될 때까지 벗어나지 못한 채 부모님의 연금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8050’이라 불리는 이 문제는 일본 사회의 심각한 골칫거리이다. 

 

19년 6월 일본에서 관련 문제가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아버지가 경제적 활동도 하지 않고 집에서 게임만 하는 아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놀란 일본은 시급히 지원책을 내놓았다. 중장년 히키코모리가 집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취직 관련 지원책을 낸 것이다.[각주:13]이 일이 가까운 나라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이라고만 생각이 드는가? 혹은 너무 극단적이라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전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역시 고립·은둔 청년 문제가 빠르게 해결되지 않는 한, 같은 길을 걸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견된 일을 바로잡지 않으면 그대로 일어날 뿐이다. 

 

2023년 복지부에서 진행한 실태조사에서 고립·은둔 청년이라 답한 청년 중 55.7%가 ‘탈고립’을 희망하고 있다. 앞서 ‘찾동 사업’에서 언급했듯이 혼자 살아가는 은둔 청년이 사회로 나올 수 있는 기회를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누군가 본인들을 찾아와 주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또한 국내 은둔 청년의 촘촘한 발굴을 위해 AI를 활용한 방식 역시 고안해 볼 가치가 있다. 올해 정부에서는 노인을 대상으로 AI 전화 상담 기술을 적용했다. AI가 전체 청년 인구를 대상으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하고 고립·은둔 청년을 찾아내는 방식이다.[각주:14]

 

이러한 기술의 적용 대상을 청년까지 확장해 찾아내는 것이 복지 정책의 첫 단계이다. 이를 통해 복지 사각지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점은 공공기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민간기관 역시 국가에서 발굴한 고립·은둔 청년을 상담하고 사례관리, 나아가 사후관리까지 전문적으로 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 믿을 수 있게 해주세요

두 번째는전문성을 키워야 한다. 고립·은둔 청년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관리하는 인력과 인프라가 마련되어야 한다. 고령화 문제를 오래전부터 겪은 우리나라는 노인복지관, 시니어 클럽, 대한노인회 취업지원센터, 종합사회복지관, 노인복지센터, 지역문화원, 지자체 전담기관 등 전문성을 갖춘 기관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청년’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온통청년’이라는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웹사이트만 뜰 뿐이다.

 

다행히 이번 정부가 시범사업으로 4개 지역에 (가칭)‘청년 미래센터’를 설치하고 각 센터당 전담 인력을 8명씩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탈고립의 유일한 통로인 센터가 처음 등장하는 만큼 그 기능과 역할의 방향성을 잘 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 고립, 은둔을 택하는 주요 원인인 ‘정서’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

 

영국은 국가의 책임 아래 외로움 부를 신설하고 외로움 담당 장관을 두고 있다. 사회적 단절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매일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건강에 해롭다는 연구에 따른 것이다. 그만큼 영국에서는 ‘외로움’이라는 정서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보고 있다. 이에 외로움 담당 장관은 외로움 관련 전략을 마련하고 폭넓은 연구와 통계화 작업을 주도하며 사람들을 연결하는 사회단체 등에 자금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각주:15]

 

보건복지부에서 이 모든 것을 다루기에는 다뤄야 하는 복지 대상이 너무나도 많아 ‘청년’에만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관련 부처를 신설해서 전문 인력들이 집중적으로 고립·은둔 청년 문제를 다룰 수 있다면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속적인 관리, 감독, 연구를 위해 전문 인력은 필수이다. 센터에 찾아온 은둔 청년들이 전문적인 프로그램으로 다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 ‘나’를 봐주세요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 많은 선진국에서는 니트족이 고립, 은둔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선제적인 과제로 니트족과 관련한 지원 정책을 내고 있다. 우리나라는 6개월 이내에 구직했던 이력이 없는 청년을 대상으로 단기, 중장기 프로그램으로 나눠 일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각주:16]

 

하지만 구직을 단념하게 된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EU의 경우, 니트족을 1) 전통적인 실업자 2) 가사와 가족돌봄, 질병이나 장애로 인한 니트족 3) 능력부족이나 의욕 저하, 사회부적응으로 인한 니트족  4) 더 좋은 기회를 얻기 위해  노력 중인 니트족으로 구분해 각 상황에 맞는 지원 프로그램을 운용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구직단념청년을 유형화해 특성별로 맞춤화된 도움을 주는 과정이 없다.  취업 의지가 있는데 취업을 못 하는 것과 취업 의지가 없어 취업을 안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후자일수록 상황에 맞는 다른 접근을 제공해야 한다. 일괄적인 솔루션은 문제 해결 없이 세금만 낭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진 지금, 관련 정책의 방향성을 신중히 고민해야 할 때이다. 앞서 제시한 세 가지 방향성 중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접근성’이다. ‘적극적으로 찾아내는 것’이다. 나오기 힘든 그들을 찾아내야 한다. 

 

 

누구나 넘어질 수 있다. 일으켜 세워주는 다정한 사회가 되기를 

 

 

프란츠카프카의 ‘변신’ 속 주인공인 그레고르는 어느 날 자신이 벌레로 변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사람은 없었고 힘들게 문을 열고 나간 그레고르의 모습을 본 지배인은 도망친다. 그는 계속 다가가려  발버둥 치지만 부모님 역시 그레고르를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어머니는 그의 방을 찾아와 벌레의 형상을 보고 실신하고 아버지는 벌레로 변한 자식을 이해하지 못한 채, 벌레에게 사과를 던져 심한 상처까지 입힌다.

 

그레고르의 이 모습은 마치 방 안에서 가족을 포함한 모든 관계와 단절된 채 불안감에 휩싸여있는 고립·은둔 청년과 닮았다. 여기서 우리는 알아야 한다. 고립을 택하고 은둔 생활을 하는 이들은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우리 사회의 새로운 취약계층이라는 것을. 통상적으로 취약계층은 소득이 낮거나 일자리가 안정적이지 않은 사람들로만 접근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사회적 자본이 부족한 사람들, 다시 말해 유의미한 타인과의 관계가 없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지지체계가 없는 청년들도 취약계층으로 받아들이고 도움을 줘야 한다. 즉, 국가의 보호가 절실히 필요한 약한 존재이다. 국가만이 아닌 우리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또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그들을 향한 눈길과 손길이다. 누구나 뛰다가 넘어질 수 있고, 아파서 바로 일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그게 내가 되기도 한다.  인간관계에 지쳐서, 취업에 실패해서 ‘나는 안되나 보다’ 좌절하고 집 안으로 숨어든 이야기의 주인공은 누구나 될 수 있다. 취업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만 전한 채 홀연히 사라진 친구, 언젠가부터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 다양한 감정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이웃에 대한 섬세한 배려와 관심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나의 내면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슬럼프야’, ‘이러다 말겠지’, ‘뭐 다시 괜찮아지지 않겠어?’라는 말로 나의 감정을 방치하기보다는 전문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고민을 공유하면서 잘 다독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변신’ 속 그레고르는 결국 죽음이라는 비극을 맞이한다. 더 이상 그레고르가 나오지 않도록 다정한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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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BC NEWS, “2030 우울증 ‘심각’ 청년 정신건강 실태는?”, 2023.12.05, 박소희 [본문으로]
  2. MBC NEWS, “이들은 왜 은둔에 들어갔나?.. 배신당하고 버려진 느낌”, 2023.08.30, 박소희 [본문으로]
  3.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저조한 상태가 길게 계속되는 일 [본문으로]
  4. 머니투데이, “고립·은둔 청년 규모 약 51만 6000명 추정”, 2023.11.03, 신재은 [본문으로]
  5. 학생생활상담센터는 재학생 25,24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응답한 1571명의 응답수를 통계내었다. [본문으로]
  6. 이는 설문조사 응답수를 토대로 매우 그렇다와 그렇다를 택한 학우들의 비율을 평균낸 후 합한 값이다. [본문으로]
  7. 경향신문, “고립·은둔 청년, 청년 인구의 5% 약51만6000명 추산”, 2023.09.19, 김향미 [본문으로]
  8. 이지헌, 2023.11.21 서울시, 내년 고립·은둔 청년 지원 800명으로 확대 [본문으로]
  9. 시사저널, “내 의지로는 방에서 나갈 수 없었어요 청년들이 ‘고립’되고 있다”, 2023.06.02, 박나영, 이원석 [본문으로]
  10. 노컷뉴스, “은둔형 외톨이 3년, 가족 볼까봐 화장실도 참던 나”, 2023.08.31, 김현정 [본문으로]
  11. 주로 사회사업이나 복지서비스 분야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특정한 지역이나 사회에서 어떤 종류의 문제를 발견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서비스나 지원을 제공하는 접근 방식 [본문으로]
  12. 김승연 외 5인, 2022년 서울복지실태조사, 2022, 서울연구원 [본문으로]
  13. 김광희, [한국의 청년 실업과 히키코모리 문제: 일본의 중장년 히키코모리와 8050 문제를 중심으로] ,2020, 무역연구, 3호, p5 [본문으로]
  14. AI가 '복지 사각지대'를 찾아낼 수 있을까 (daum.net) [본문으로]
  15. 중앙일보, “영국 ‘외로움 담당 장관’ 생겼다”, 2018.01.18, 김성탁 [본문으로]
  16. 프로그램은 밀착상담, 사례 관리. 자신감 회복, 진로탐색, 취업역량 강화로 이루어져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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