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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호 85호 <모자이크: 잊고 있던 조각들>/대학

영화 <브루클린>(2016)으로 보는 ‘동반자’의 의미 -중앙대학교 내 유학생들을 위한 시네마 레터-

by 중앙문화 2024. 2. 4.

2023 가을겨울 85호 <모자이크: 잊고 있던 조각들>

 

 

수습위원 김연희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결심해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이 사랑하던 모든 사람들, 당신이 몸담고 있던 익숙하고 아름다운 도시의 풍경들, 능숙한 말과 쌓아온 추억들을 모두 남겨두고 생경한 어딘가에 떨어져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 <브루클린>(2016)은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주인공 에일리스가 뉴욕 브루클린으로 떠나며 겪는 향수와 적응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에일리스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그녀가 타지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방황, 부적응의 정서를 담백하게 담아낸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녀가 고향인 아일랜드를 떠나기로 마음먹은 이유다. 에일리스는 마을에 딱 하나 있는 식료품점에서 파트타임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마을이 워낙 폐쇄적이고 좁은 탓일까. 사장의 불친절한 태도에도 가게 안에는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원치 않는 가십들은 입에서 입으로 금세 마을 전체에 공유된다. 바라지 않는 곳에서 바라지 않는 일을 하던 에일리스, 자신의 능력을 펼칠 기회조차 없는 삶에 점점 싫증을 느낀다. 자아실현과 성장욕, 그것이 그녀로 하여금 새로운 세상으로 훌쩍 떠나기를 결심케 한 강력한 동기가 됐다.

 

 에일리스는 그저 잘 가공된 영화 속 캐릭터 중 하나가 아니다. 기존의 익숙하고 편안한 생활을 포기하면서까지 중앙대학교로 와, 또 다른 성장에 삶을 걸어 보기로 한 수많은 에일리스가 우리 주변에 살고 있다. 바로 ‘유학생’이다. 2022년 기준 중앙대학교 총 재학생 23,075명 중 외국인 학생 수는 3,454명으로, 유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15%에 달한다.[각주:1]

 

 

새로운 삶으로의 출항

 

▲ 아일랜드에서 브루클린으로 떠나는 배를 탄 에일리스. 영화 <브루클린> 캡처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했던가. 난생처음 고향을 떠나는 배에 오른 에일리스. 그녀의 새로운 시작은 출발부터 순탄치 않다. 기상악화와 뱃멀미가 겹치고, 설상가상으로 옆 칸 승객들이 공용 화장실을 잠가버린 탓에 끔찍한 하룻밤을 보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늘 악재만 있으란 법은 없는 것일까. 다행히 선실 룸메이트로 먼저 아일랜드를 떠나 브루클린에 정착한 ‘선배 이주자' 여성을 만난다. 냉소적이고 세련되어 보이지만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그녀는, 배에서의 좌충우돌로 정신이 없는 에일리스에게 뉴욕에 도착하면 해야 할 것들을 일러 준다.

 

“처음에는 오래 걸리지만, 나중에는 금방 받게 될 거야”

 

 아일랜드에서 브루클린까지 편지가 오는 데에 오래 걸리냐는 에일리스의 질문에 돌아온 그녀의 대답이다. 처음에는 타지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지독한 향수병을 겪는 탓에 편지가 도착하기까지 오래 걸리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나중에는 그곳에서의 생활이 너무 즐거워져 더 이상 편지를 기다리지 않게 된다는 의미다. 에일리스가 언젠가는 브루클린에 잘 적응하게 될 것임을 암시하는 동시에, 그녀의 희망찬 미래를 응원하는 말이다.

 

 험난한 항해 끝에 마침내 도착한 브루클린. 그러나 여태 살았던 아일랜드의 마을에서와는 너무 다른 생활에 그녀는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떠들기를 좋아하고 가십을 즐기는 하숙집 사람들과는 어색함을 느끼며 잘 어울리지 못하고, 아일랜드에서의 숙맥 같은 성격은 고객을 상대로 붙임성 좋게 스몰 토크를 해야 하는 백화점 일과 잘 맞지 않는다. 백화점에서 고객 응대를 하다 갑작스레 표정이 굳어지며 울먹이는 장면은 유학생이라면 공감할 만한 감정, 일상이 된 막막함과 극복할 자신이 없는 막연함을 와닿게 풀어낸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것 자체가 난관의 연속이다.

 

▲ 언니에게서 온 편지를 읽고 흐느끼는 에일리스. 영화 <브루클린> 캡처.

 

 마찬가지로 에일리스가 언니에게서 온 편지를 읽으며 흐느끼는 장면은 생경한 곳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느낄 수 있는 고단함을 가장 잘 드러낸 장면으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애틋한 공감을 자아낸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낯설고 두려워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지만 외로움도 슬픔도 견뎌내야만 한다. 견디다 보면 언젠가는 익숙해질 테니까. 우리 대학 유학생들도 모두 한 번쯤은 겪었을, 어쩌면 겪고 있을 ‘견딤의 시간’이다. 점점 커져가는 고향, 가족, 친구에 대한 향수병은 말 그대로 병처럼 전신에 퍼져 그녀를 슬픔에 빠트린다.

 

 지금부터 시작할 유학생의 이야기에는 에일리스의 것과 마찬가지로 타향살이에서 느끼게 되는 다양한 고충들이 담겨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단순히 ‘향수’라는 말로는 다 담지 못할 수많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함께 얽혀 있다.

 

 중앙대학교에 재학 중인 유학생 A씨를 만나 봤다.

 

유학 생활을 하면서 여러 어려움을 겪었죠. 수업 시간에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팀플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주변 유학생 친구들에게서도 비슷한 고충을 자주 전해 들어요. 일단 기본적으로 유학생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외국인들은 무임승차 할 거다, 열심히 안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대놓고 차별을 하는 건 아니지만, 지나가는 말로 ‘얘는 어차피 외국인이니까 기대도 안 한다’는 식의 말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한번은 수업에서 발표 주제를 정해야 하는 일이 있었어요. 원하는 주제에 손을 들어서 함께 손을 든 사람끼리 한 조가 되는 방식이었는데, 유학생 친구와 한국인 학생 두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한국 학생이 자신의 짝이 유학생인 걸 알고 순간 급하게 챕터를 바꾸더라고요. 물론 단순히 챕터가 마음에 들지 않아 바꾼 것일지도 모르지만, 당시 그 한국인 학생의 제스처나 행동을 봤을 때 유학생인 친구와 같은 팀을 하기 싫어서 바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3학년인 지금까지 여러 번 겪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심지어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수님들도 조를 배정하실 때 “유학생 팀은 결과물이 안 좋으니까 흩트려 놔야 한다” 혹은 “너네는 흩트려 놓으면 묻어가려고 하니 모아 놓아야 한다”고 단정 짓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런데 저희도 무임승차 하는 유학생들과 같은 팀을 하고 싶진 않거든요. 저도 열심히 하는 한국 학생들과 함께 좋은 결과물을 내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기회가 오지 않아요.

 

유학생들은 불성실할 거라는 인식이 전혀 근거 없다고는 할 수 없겠죠. 하지만 많은 유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집에 돌아오면 자신의 언어로 강의 내용을 하나하나 번역해 자율 학습을 하면서 최대한 수업에 따라가려고 노력합니다. 과제를 할 때도 마찬가지죠. 유학생이라는 이유로 전부 묶어 ‘열심히 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라 판단하는 건 선입견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인 학생들 중에도 무임승차를 하는 사람이 있듯이, 유학생 중에서도 똑같이 무임 승차하려는 사람이 일부 있는 거니까요. 하지만 이해는 돼요. 제가 한국 학생이었어도 언어가 다른 유학생과 같은 조가 된다면 부담이 되긴 할 것 같거든요. 그래도 속상한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에일리스가 그랬듯 유학생들도 분명 향수나 생소함, 서투름 같은 정서적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유학생 당사자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이야기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같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시선’이라는 보다 실재적이고 복잡한 차원의 문제였다. 영화가 생략하고 있는 현실이 있었다. 유학생들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준비, 자아실현, 성장 등 각자의 이유로 멀고 낯선 이곳, 중앙대학교로 건너왔을 것이다. 그러나 언어적 어려움, 특정 국가에 대한 고정 관념, 국가 체제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 등은 이들에게 배움의 과정마저도 순탄치 않게 만든다. 수업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 유학 생활에는 충분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막상 그들을 반기는 학내 구성원을 찾기는 힘들다. 그들이 유학 생활에서 겪는 첫 경험은 어쩌면 따가운 시선일지도 모르겠다.

 

 

3,454명의 에일리스에게 필요한 것, 우선은 ‘동반자’

 

 성장은 혼자서만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 막 도착한 낯선 땅에서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에일리스가 브루클린에 적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토니와의 만남이었다. 에일리스와 토니는 무도회에서 처음 만난다. 에일리스를 지켜보던 이탈리아계 남자 토니는 첫 만남부터 그녀에게 강한 호감을 드러내고, 토니의 열렬한 구애 끝에 그들은 연인 관계가 된다. 에일리스가 고향의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의 내용에도 점차 토니의 이야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져간다. 토니는 에일리스의 삶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걱정이나 불안 없이 편안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의 존재가 그녀의 향수를 점점 무디게 해주고, 낯설게만 보이던 세상을 점차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줬다. 토니의 등장을 분기점으로 에일리스의 생활은 점차 밝고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에일리스의 굳어있던 표정도 점점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변화한다. 에일리스는 그제야 비로소, 영화 내내 하지 못했던 '행복'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다. 

 

▲ 데이트하는 에일리스와 토니. 영화 <브루클린> 캡처.
 

 토니는 이전까지 에일리스가 마주했던 인물들과 무엇이 달랐을까? 토니가 에일리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에일리스의 말을 그저 가만히 들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데이트를 한 날, 에일리스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토니 앞에서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그동안 마음속에만 품고 있던 이야기를 한참이나 떠들었다. 낯을 많이 가리는 소심한 성격처럼만 보였던 에일리스가 토니 앞에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이야기하는 발랄한 소녀가 된 것이다.

 

 눈을 마주하고, 반갑게 인사하고, 나의 말을 성심껏 들어주는 사람의 존재는 어렵게만 느껴지던 낯선 세상에도 금새 적응할 수 있도록 해준다. 매년 늘어나는 우리 학교의 유학생들, 그들에게도 ‘동반자'가 되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사실 한국인 학생들과 잘 어울리는 유학생 친구들이 많이 없는 것 같아요. 저도 (한국 학생들보다는) 같은 유학생 친구들과 더 친하기도 하고요. 물론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결국엔 같은 유학생들끼리 모이게 된달까요. 2학년 때 학과 엠티를 갔었는데, 그때 같이 갔던 유학생 선배에게 엠티에 온 이유를 물어봤더니 한국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어서 왔다고 대답했어요. 그런데 정작 한국 친구들과는 떨어져서 유학생들끼리 모여 있었죠. 그리고 같이 있던 유학생 친구들이 저에게 던진 질문이, ‘너는 한국어도 잘하고 한국 사람들이 하는 술 게임도 잘 알고 있는데 왜 그 사람들과 어울려서 같이 놀지 않는 거니? 한국 사람들 사이에 가서 껴 있지, 왜 우리랑 있어?’ 였어요. 저는 다른 유학생 친구들에 비해 비교적 한국어가 능숙하고 한국 문화를 조금 더 잘 알고 있는 편이어서, 그들 입장에서는 제가 한국 학생들과 어울리기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유학생들 대부분은 술 게임은 물론이고 언어도 서투니까, 스스로가 한국인들 사이에 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또 유학생들이 한국 학생들과 어울리기 힘든 이유가, 한국인들과 친해지려면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그램 DM과 같은 연락망이 있어야 해요. 한국인들은 그렇게 연락을 이어 나가면서 친목을 다지곤 하잖아요. 그런데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그게 쉽지 않아요. 일단 카카오톡 아이디를 개설하려면 핸드폰 번호가 있어야 해요. 그런데 비자 문제, 외교 문제 때문에 일어나는 절차상의 어려움 때문에 신학기 초반에 그런 연락망 확보가 잘되지 않아서 친해질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는 것 같아요. 특히 중국인 유학생들에게는 국가 특성상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SNS가 굉장히 낯설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해서 친구와 DM을 나누는 상황을 생각해 내는 데까지도 도달하질 못하는 것 같아요.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분명히 있는데, 여러 가지 절차상의 문제로 가로막히는 경우가 많죠. 유학생들끼리도 나를 도와줄 수 있거나 친해질 수 있는 한국 사람이 있으면 너무 좋겠다고는 늘 말해요.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못 하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안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건 드문 것 같습니다. 못 하는 경우가 훨씬 많죠.

 

 우리에게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들이 유학생들에게는 생소할 수밖에 없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급급한 유학생들에게 또 한번 더해지는 고립감은 그들을 부적응의 굴레 속으로 한 발짝 더 밀어넣는다.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영역의 사람들과 어울리고 소통해보고자 시작한 유학 생활이다. 유학을 결심할 적 설레는 마음으로 꿈꿨던 이상과는 달리, 유학생들끼리 모여 고립되고야 마는 상황은 대학 사회 내에서 그들을 철저히 소외시킨다. 유학 생활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인터뷰 속 유학생들은 한국인 학생들에게 다가오고 싶어 한다. 우리와 어울려 살아가고 싶어 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같은 중앙대학교의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그들에게 건네줄 수 있는 것은, 편견 어린 시선이나 배제가 아닌 한 번의 미소와 친절이다. 그들과 같은 사회에 살고 있는 한 명의 학우로서, 우리는 어려움을 겪는 유학생들을 위해 작은 다정함을 발휘해 볼 수 있다. 그들과 선을 긋고 ‘우리와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배척은 자신도 모르게 행해진다. 국적을 논하기 전에 먼저 같은 학생으로서, 또 같은 인간으로서 그들에게 인간적인 태도로 한 발짝 다가가 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도 또 한 명의 토니가 될 수 있다. 우리가 그들의 동반자가 되기로 결심하는 순간, 한 사람의 세계를 비관과 부적응이 지배한 흑백 영화에서 아름다움과 생기가 넘치는 컬러 영화로 바꿔놓을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열쇠는 학교에

 

 에일리스에게 향수는 일종의 ‘부적응의 증상’으로 나타났다. 그렇기 때문에 향수는 적응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있었다. 새로운 세상에 잘 적응하지 못해 하루하루가 고되고 힘겹게 느껴질 때는 누구나 향수를 느낄 수밖에 없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시간이 지나도 점차 옅어질 뿐 사라지지 않겠지만, 그러한 마음이 너무 무거워 삶을 망가뜨릴 수 있다면 유학생에게 ‘적응’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앞서 언급한 ‘동반자 되어주기'는 분명 유학생의 적응을 도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유학생 개인과 그 주변 한국인 학생들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식 변화는 결국 집단적 인식의 변화로 이어지지만, 그 결과가 피부로 와닿을 만큼의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학교는 주도적으로 유학생들을 유치한 주체이며, 그들에게 가장 가까운 하나의 단위 사회이자, 그들이 고향을 떠나 타지로 오게 된 근본적인 계기다. 그렇다면 그들을 한 명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이상, 학교는 그들이 다른 요소에 구애받지 않고 정상적으로 공부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돕고 지원해야 할 의무가 있다. 미시적인 분절을 단걸음에 풀어낼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구조적인 시스템의 정비다. 유학생에게 시스템 차원의 개선을 제공할 수 있는 열쇠는 학교가 쥐고 있다.

 

 유학생이 내야 할 등록금은 매년 인상되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 재학생은 법적으로 일정 수치 이상의 등록금 인상이 제한되어 있어 과도한 등록금 폭탄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그러나 외국인 유학생은 정원 외 학생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이들을 위해 등록금을 규제할 수 있는 교육부 규정은 전무하다. 중대신문에 따르면 중앙대학교의 2022년 정원 외 외국인 유학생 등록금은 2012년 대비 무려 30%가량 인상되었다. 유학생 등록금은 2012년 대비 무려 30%가량 인상되었다. 2023년 올해도 정원 외 학생 등록금은 5% 인상되었다. [각주:2]

 

▲ 유학생들의 등록금이 매년 오르고 있다. 중대신문.

 

 더불어 유학생은 이미 재학생보다 훨씬 많은 금액의 등록금을 납부하고 있다. 유학생들의 등록금이 더 비싼 표면적 이유는 그럴듯하다. 유학생 대상 지원 사업이 한국인 학생들에 비해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각주:3]그렇기에 학교는 최소한 유학생들이 한국 학생들과 비슷한 수준의 학교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내는 등록금의 액수만큼 질 좋은 환경이 갖춰져 있을까?

 

제가 이번 학기부터 기숙사에 살게 되면서 여러 유학생 친구들을 새로 사귀었어요. 특히 처음 입학한 신입생 친구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까, 그 친구들이 겪는 여러 가지 문제들도 자주 목격했습니다. 유학생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크게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이 은행 업무, 금융 시스템, 부동산 시스템 같은 생활면에서의 문제들인 것 같아요. 생활에 있어서 꼭 필요한 부분이지만 체계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에요.

 

특히 중국은 금융권이 그렇게 활성화되어 있지 않고, 퀀텀 점프를 통해 바로 전자 결제로 넘어가는 시스템이에요. 그래서 중국인 유학생들에게는 은행, 카드에 대한 개념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저도 처음 한국에 와서 생각한 게, ‘왜 카드를 써야 하지?’ ‘왜 계좌이체를 하루에 30만 원밖에 못 하지?’ 하는 부분이었어요. 그리고 왜 카카오페이, 토스 같은 결제 어플들은 내가 바로 들어가서 돈을 쓸 수 있는 게 아니고 본인 인증을 하거나 은행 계좌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건지도 한동안 의문이었죠.

 

또 한국에 오면 가장 먼저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야 하는데, 유학생들의 경우에는 원래 살던 곳과 체계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본인 인증을 해야 하는 이유나 통장이나 카드의 존재 의미에 대해 잘 알지 못해요. 주민등록증이 있어야 본인 인증이 가능하고, 본인 인증을 해야 은행에 갈 수 있는데, 주민등록증이 왜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부터 애초에 잘 모르고 있죠.

 

주거 문제에 있어서도 어려움을 많이 겪어요. 유학생에게는 보증금을 말도 안 되게 비싸게 받거나, 방을 뺄 때 청소 비용이라고 하면서 100만 원, 200만 원씩 떼어가는 사기행위가 많아요. 관련 법령을 알고 있으면 내용 증명을 보내거나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텐데, 지금 유학생들에게는 그런 정보가 부족해요.

 

이렇게 어려운 점들을 겪거나 전해 들을 때면, 학교에 있는 기관이나 제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근데 당장 제가 알고 있는 유학생들을 위한 제도는 멘토링 프로그램 말고는 없어요. 멘토링 프로그램만 매년 공지가 오기 때문에 알고 있고, 다른 프로그램은 존재 자체를 들어본 적도 없고 잘 모릅니다. 다른 유학생 친구들도 마찬가지인 걸로 알고 있어요. 교내 e-class 시스템에 들어가 보면 ‘자살 예방 교육’이나 ‘사기 예방 교육’ 같은 것들은 있는데, 이런 생활적인 부분에 대한 교육은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게 사실이에요. 유학생을 위해 근본적으로 시스템이 다른 부분들에 대해 좀 더 알려주는 매뉴얼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유힉생의 적응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걸림돌은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정보의 부족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 부족 문제는 제도 자체가 부실한 탓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 학생들의 전반적인 학업 및 생활에 도움을 주는 기관인 '중앙대학교 국제처'는 유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행 중에 있다.

 
▲ ‘중앙대를 선택해야 하는 10가지 이유’ 포스터. 중앙대학교 국제처.
 
▲ ‘2023학년도 외국인 유학생 지원 온라인 프로그램’. 중앙대학교 국제처.
 

 인터뷰에서 필요하다고 언급된 프로그램들은 이미 마련되어, 국제처에서 게시한 ‘중앙대를 선택해야 하는 10가지 이유' 포스터에 소개되어 있었다. 학습 과정에서 필요한 언어적 능력을 길러주는 프로그램으로는 ‘국문교열서비스 CAKE’ 외에도 온라인 교육으로 진행되고 있는 ‘대학생의 글쓰기와 말하기'가 있다. 한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주는 범죄 예방 교육과 기초 질서 및 생활 필수 정보 안내 등도 진행되고 있었으며, 그 외에도 출입국 민원 대행 서비스, 유학생 전공교육 지원 프로그램 등 유학생이 생활 속에서 꼭 필요로 할법한 교육 서비스들이 갖춰져 있었다. 또 국제처에서 운영하는 국제학생대사 글램에서는 GCC(Global Community center, 원하는 언어를 수준별로 자유롭게 공부하고, 외국인 교환학생들과 한국인 재학생들을 직접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공간)를 통해 다양한 학생들과의 만남, 즉 ‘동반자’를 만들기 위한 창구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필요한 프로그램들이 속속들이 잘 준비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막상 우리가 들어본 유학생 당사자의 이야기는 달랐다. 유학생들은 그들을 도와줄 제도는 충분히 존재하지만, 정작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해당 제도들은 큰 보탬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프로그램이 얼마나 잘 준비되어 있는가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대상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고 있는지가 불투명하다면, 기존 프로그램들의 실효성 및 홍보 측면에서 면밀한 재점검이 필요할 것이다. 아무리 잘 짜인 프로그램도 실속이 없다면 그저 유명무실한 허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왜 프로그램이 존재함에도 그들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는지, 어떻게 하면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리고 활용도를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유학생을 위한 제도는 아직 더 개선될 여지가 있다. 다만 개선의 방향성은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기 전까지는 미처 알기 힘들다. 이미 유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여럿 존재하기에,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 어림짐작하기 쉽다. 그러나 학교가 또 하나의 ‘토니'가 되어 유학생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인다면, 그들이 진정 필요로 하는 실질적 도움을 하루빨리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 매뉴얼이나 자료 배포, 온라인 교육이 아닌, 학생들과 직접 소통하고 그들의 문제에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중앙대학교의 에일리스들을 위하여

 

 영화 <브루클린>이 그린 성장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반자와 적응이었다. 이는 사람과의 교류가 주는 변화의 힘을 시사한다. 절망 속에서도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소통하고 있다는 감각은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한다.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이 비로소 낯설고 두렵던 것들을 사랑스럽게 보이게, 이방인이 된 것처럼 느끼던 공간을 내 집처럼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여전히 대학 사회 속 유학생에게는 동반자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들의 소속 학교로서, 또 학우로서 그들이 이곳에서의 생활에 문제없이 적응하고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무관심한 눈으로 언뜻 봤을 때는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순간, 우리는 그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다. 단절을 메우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소통이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무관심은 서로에 대한 거리두기로 이어지고, 거리두기는 곧 몰이해로 귀결된다. 우리가 내디딜 수 있는 가장 첫걸음은 서로를 대면하고, 이야기하고, 들어주는 일이다.

 

 성장하고 사랑하며 삶의 새로운 페이지를 시작한 <브루클린>의 에일리스처럼, 이곳이 당신에게 또 하나의 집이 되었으면 한다.

 


*구글 드라이브를 통해 PDF 판형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drive.google.com/file/d/1UCTelQnoSxrDFlmTqK6xtc-6_YX3q60W/view?usp=sharing

 

85호 내지.pdf

 

 

  1. 중앙대학교 통계연보 [본문으로]
  2. 중대신문, "외국인 유학생 등록금 인상, 공정한가", 2023. 03. 13, 박주형 기자 [본문으로]
  3. 2)와 동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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