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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호 85호 <모자이크: 잊고 있던 조각들>/문화

봄의 온도

by 중앙문화 2024. 2. 2.

2023 가을겨울 85호 <모자이크: 잊고 있던 조각들>

 

부편집장 곽경은

봄은 어떤가요?     

 

 책이 나온 지금은 살을 에는 추위에 코 끝이 찡하게 시린 날이 한창이다. 거리마다 화려하던 크리스마스도 지나고 설레는 새해가 시작됐지만 어딜 가나 훈기 없는 공간은 영 익숙지 않다. 온기가 절실하다. 주머니에서 꺼낸 천원과 맞바꾼 붕어빵의 온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온기 말이다. 하지만 때때로 사람들은 얼음까지 단번에 녹이는 뜨거운 온기보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손에 쥐었을 때 시렵지 않을 정도의 온기를 찾곤 한다.

 

 겨울에 떠올리는 봄은 따뜻하다. 암전 같던 밤을 조금씩 밀어내고 따스한 햇살이 자리한다. 이에 화답하듯 발밑과 머리 위에서는 생명이 싹튼다. 생기, 희망, 행복 모두 봄을 나타낼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하지만 봄은 생각만큼 따뜻하진 않다. 

 

 겨우내 굳어있던 몸과 머리를 재가동할 시기가 왔다. 누구보다 빠르게 클릭해 잡은 과목들로 빼곡히 시간표를 채우며 시작하자. 매일 주어지는 새로운 과제들, 잘 이해하고 있는지 모를 수업, 남들 다 하는 동아리도 한두개, 때맞춰 신청한 공모전과 대외활동. 바깥의 눈은 다 녹은지 오래지만 나의 일상은 좀처럼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몸이 하나인 게 원망스럽지만 남들도 다 이렇게 산다고 하더라. 그러니 우는 소리 낼 수 없다. 앞서가지는 못할 망정 뒤쳐지지는 말아야지. 하다 보면 익숙해진 건지 무뎌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할만하다는 생각 혹은 착각이 든다. 언제부터인지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해본 기억이 까마득하다.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걱정이 뒤따른다.  안 되는 것도 되게 하고 안 괜찮은 것도 괜찮게 만들어야 한다. 실수의 두려움에 쉼이 어색한 강박을 더해 똘똘 뭉쳤다. 두려움과 강박의 뭉텅이가 남들의 눈에는 그저 멋모른 채 싹 틔울 준비를 마친 씨앗으로 보이나 보다. 

 

 “청춘이네, 청춘이야.” 

 

 청춘이라는 말로 포장하지만 차갑고 우울하고 어두운 날은 끊임없이, 그리고 예고 없이 찾아온다. 꽃샘추위처럼 말이다. 잠깐 날이 풀려 외투를 집어넣으면 어김없이 매서운 바람이 속을 파고든다. 청명[각주:1]에 찾아온 꽃샘추위의 바람은 소한[각주:2]에 내리 몰아치는 눈바람보다 날카롭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봄이 지난 다른 계절에는 봄의 따뜻한 햇빛만 기억날 뿐, 꽃샘추위의 날카로운 바람은 신기하게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4월의 진짜 온도는 8월에도, 12월에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해야 할 일은 많고 하고 싶은 일은 모르고 살았던 앰버의 봄

정해진 대로

 

 불의 원소 앰버는 부모님(버니와 신더)과 함께 식료품점(파이어 플레이스)을 운영한다. 버니와 신더는 젊은 시절 고향 ‘파이어랜드’를 떠나 난생 처음 발딛는 낯선 도시 ‘엘리멘트 시티’에 정착했다. ‘엘리멘트 시티’는 element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물, 불, 공기와 흙. 이 네 원소들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이다. 

 

▲엘리멘탈 스틸컷.

 

 모두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원소들 사이에서도 각자의 공간은 필요하다. 특히 불의 원소는 물과 공기, 흙 모두에게 썩 반가운 존재는 아니다. 물에 닿기만 해도 순식간에 끓여버리고 나무를 홀라당 태워버리기도 한다. 이 사회에서 불의 원소들은 소수자이기에, 엘리멘트 시티의 한 구석에 '파이어 타운'을 만들어 모여 산다. 외로운 불들을 결집한 '파이어타운', 그 중심에는 버니의 ‘파이어 플레이스’가 있다. 버니의 젊음과 평생을 바쳐 차린 파이어 플레이스는 그의 세월이자 자랑. 그런 공간을 이제는 딸과 함께 일구어 나간다니 아버지로서 더 바랄 것이 없다. 앰버도 자신을 의지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한다. 자기만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기대가 무거울 때도 있지만 하나뿐인 딸로서 당연한 일이라 여긴다. 

 

 연중 인기 있는 파이어 플레이스가 더 불타오르는 기간, ‘레드 닷 세일’ 행사를 앞두고 버니는 앰버에게 행사 진행을 일임한다. 무사히 끝내면 가업을 완전히 물려주리라 약속한다. 야호!  드디어 아버지께 정식으로 인정 받고 평생 동안 고대했던 가게 사장이 코앞이다. 그런데 앰버는 생각만큼 기뻐보이지 않는다. 보글. 혼자서 파이어 플레이스를 운영할 생각에 부담이 됐던 걸까? 앰버는 알아채지 못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열기가 올라온다. 

 

점화

 

 은근히 새어나오는 열기. 얼마 지나지 않아 앰버는 마음 속 열기를 알아채기 시작한다.

 

 앰버의 하루는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가게에서 시작해서 가게에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게 안은 언제나 북적이고 파이어타운 구석구석 배달을 다니느라 앰버의 몸은 열개라도 부족하다. 행사 기간을 맞아 들이닥친 손님들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제멋대로 흥정하고, 은근슬쩍 끼워넣고, 온 가게를 뛰어다닌다애써 유지하던 평정심은 결국 펑 터져버린다. 깨뜨린 유리를 모아 뜨거운 불길로 다시 붙여보지만 왜 화를 참을 수가 없는지는 이해하지 못한다. 레드 닷 세일 때문에 긴장해서 그렇다고 생각할 뿐이다. 파이어타운 최고의 인기 가게를 운영하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엘리멘탈 스틸컷.

 

 반면 시청 조사관으로 일하는 웨이드는 덜렁덜렁 어딘가 허술하다. 사건사고에 휘말리고 상사에게 깨져도 너털 웃음 한 번으로 털어내고 다시 길을 나선다. 그야말로 마음 흘러 가는 대로 사는 ‘물’ 그 자체이다. 앰버와는 조금도 비슷한 점을 찾아볼 수 없는 웨이드가 앰버의 마음에 불씨를 더한다

 

 레드 닷 세일로 잔뜩 몰린 주민들의 진상 행동에 앰버는 지하실에서 열불을 쏟아낸다. 강 반대편에서 누수를 점검하던 웨이드는 불길에 녹아버린 수도 파이프를 타고 앰버의 지하실로 빨려 들어간다. 부모님이 직접 폐가를 개조한 파이어플레이스는 지은지 30년이 넘었다. 한 눈에 봐도 여기저기 고칠 데가 많다. 웨이드는 파이어플레이스를 수도 파이프 기준 미달로 시청에 보고하려 한다. 둘의 첫만남으로 앰버의 일상은 뒤집히기 시작한다. 앰버는 아버지의 일생이자 앞으로 자신이 미래를 바쳐 일구어나갈 파이어플레이스가 부실 건물로 철거되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 

 

 버니 일생의 꿈이 파이어플레이스라는 말을 들은 웨이드는 앰버를 도와 철거를 막기 위해 함께 엘리멘트 시티를 누빈다. 정해진 미래가 주는 안정적인 일상과 가족의 행복이 최우선이던 앰버는 웨이드가 신기하기만 하다. 일을 하다가도 한 눈 팔면 옆길로 새고 눈치 보지 않고 남들이 다 안 될 거라 생각해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 뿐인가? 부끄러운지도 모르는지 울고 싶으면 참지 않고 운다. 불과 물, 원소의 성질만큼이나 다른 둘. 누군가 사랑은 ‘아무튼 희한해’로 시작한다고 했던가. 웨이드를 향해 커져가는 마음과 동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음 속 부글거림이 시작됐다. 

 

일시정지

 

마음 흘러 가는 대로 살아 본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앰버의 부글부글 끓던 마음은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감춰둔, 너무 꽁꽁 숨겨둔 나머지 자기조차 알지 못했던 본심이다. 웨이드의 집에 초대 받은 앰버는 깨진 물병을 이리저리 만져 금세 새로운 모양을 만들어 낸다. 매일같이 해오던 일인데 이날만큼은 손에 잡힌 유리의 질감이 생생하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웨이드의 가족들. 앰버가 재능을 인정받는 순간이었다.‘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었나?’단조로운 일상에서 수없이 느낀 기시감의 정체를 알아냈지만 막상 마주하니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런 속도 모른 채 자기 인생은 자기가 만드는 것이라 웨이드는 말한다. 가업과 꿈. 둘 사이의 결정이 웨이드에게는 쉬워보이지만 부모님의 하나뿐인 딸이자 그들의 자랑스러운’자식에게는 너무도 어렵다.“왜 남이 정한대로만 살려고 해?” 속 좋은 소리. 그간 가까워진 웨이드에게서 앰버는 다시 한 발짝 멀어진다. 앰버는 부모님이 자기에게 실망하는 것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방황한다. 한편으론 너무 늦은 시기에 방황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앞만 보고 달리던 앰버는 처음으로 잠시 멈춰선다. 

 

네 빛이 일렁일 때 

 

 가족과 꿈 사이에서 갈등하는 앰버를 그냥 둘 수는 없다. 앰버는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 유리로 비비스테리아의 모습을 재현한다.

 

 어떤 환경에서도 피어난다는 비비스테리아. 엘리멘트 시티에 사는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봐야 한다는 명물이지만 앰버는 평생토록 본 적이 없다. 불 원소가 비비스테리아를 태워버릴지도 모른다며 항상 관람을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비비스테리아의 모습을 앰버는 그저 유리로 이리저리 만들어보며 상상할 뿐이었다. 

 

 웨이드는 그런 앰버에게 비비스테리아를 보여주기 위해 전시장으로 데려간다. 전시장은 무너진지 오래, 꽃을 보기 위해서 앰버는 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각주:3]도움으로 공기가 든 물방울에 들어가 물 속을 탐방할 수 있게 된다. 무너진 잔해들을 피해 들어간 공간에는 오랫동안 방치되어 덩굴을 이룬 비비스테리아가 그들을 맞이한다. 물 안에서 봉우리로 잠들어 있던 비비스테리아는 앰버가 가까이 가자 그 빛에 일제히 꽃망울을 피운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하는 상황을 뚫어내고 기어코 물 속에서 불꽃을 피워낸다. 앰버에게 새로운 길을 시작할 용기가 생겼다. 기뻐하는 앰버의 모습에서 웨이드는 앰버만이 가진 빛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네 빛이 일렁일 때가 좋아”  앰버의 빛을 찾은 순간이다.

 

세상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앰버의 부글거리는 속마음이 끓는점을 넘어섰다. 하지만 끓는 마음을 내보일 곳은 여전히 찾지 못했다.  아버지의 등이 작아질수록 책임감이 커진다. 하루가 다르게 노쇠해지는 버니를 보며 앰버는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짓눌린다. 멋대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산다니 배부른 소리로 들린다. 그렇게 앰버는 버니와 신더에게 어떠한 내색도 않은 채 레드 닷 세일을 마무리한다. 그러나 꾹꾹 눌러 담은 마음도 한계에 다달았다. 레드 닷 세일 마지막 날, 그러니까 공식적으로 앰버가 파이어플레이스의 주인장이 되는 날 폭탄이 터진다. 버니 몰래 웨이드와 만나고 있는 사실이 들키고, 가게에 발생한 누수 사건이 앰버와 연관되어 있다는 말을 들은 버니는 앰버에게 실망감을 표한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아버지의 원망 섞인 눈빛을 본 앰버는 잘못된 일을 저지른 것 같다. 부끄러운 딸이 되었다. 

 

 와중에 파이어타운을 향해 조금씩 물이 새던 댐이 앰버의 복잡한 마음처럼 터지고 만다. 거친 물살이 파이어타운을 쑥대밭으로 헤집고 나자, 앰버는 처음으로 버니 앞에서 눈물을 보인다. 그리고 가게를 물려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직접 고백한다. 사랑하는 마음에‘자랑스러운 딸이 되겠다는 다짐이 오히려 앰버를 갉아 먹고 있었다. 앰버의 진심을 마주한 버니가 자신의 꿈은 가게가 아니라 앰버의 행복이라는 것을 전할 시간이다.

 

▲엘리멘탈 스틸컷.

 

 하루아침에 동네 최고 가게 파이어플레이스의 후계자가 없어지고 동네는 물바다가 되기도 했지만  일상은 여전하다. 바뀐 건 앰버의 마음 하나뿐. 파이어플레이스 후계자든 유리 공예 디자이너든 상관 없다. 세상은 어제와 같이 잘도 굴러간다. 

 

현실은 조금 다르겠지만

 

 엘리멘탈의 마지막은 앰버가 꿈을 향해 떠나는 장면에서 끝이 난다. 버니와 신더의 지지를 받고 아쉽지만 설레는 마음을 잔뜩 안고 길을 나서는 앰버. 현실의 우리는 종종 타인에게 응원 받지 못하기도 한다. 특히 부모님에게 지지 받지 못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더 큰 상처를 받는 상황을 내 의지로 막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니까. 하지만 영화에서 앰버는 ‘성공’으로 막을 내리지 않는다. 작품의 열린 결말이 우리에게 스크린 너머의 지평선을 꿈꾸게 만든다. 

 

 저 너머에는 어떤 모험이 우리를 기다릴까? 스크린에서 보여주는 앰버의 마지막 모습은 동시에 스크린 밖 그가 떠날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다. 떠난 여정에서 앰버가 순탄하게 꿈을 이룰지, 아니면 떠난 장소에서 유리 공예가 아닌 또 다른 꿈을 꿀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한 발짝 내딛은 앰버는 스크린을 넘어 우리의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청춘이 된다.

 

 

亂春 ; 어지러운 봄

심장의 고동소리에 귀 기울여

 

 

 <엘리멘탈>의 주인공 앰버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나 한국 청년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자식을 당신 인생의 선물이자 꿈으로 생각하는 부모님.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앞을 향해 쉼 없이 달리는 청춘.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과 헌신은 미안하지만 우리의 봄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2020년에 발매된 새소년의 노래 <난춘亂春>은 어지러운 봄을 노래한다. ‘어지럽다’는 말에서 새 생명이 싹트고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봄에 대한 어떤 설렘과 기대를 찾기는 어렵다.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는 생명이 시작되는 봄을 왜 설레는 계절로만 생각했을까?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일들은 예상을 벗어난다. 어떤 일을 새롭게 시작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생과 멸이 반복된다. 실제로 사계절 중에서 봄에 자살률이 가장 높다. 봄에 자살률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스프링 피크(Spring Peak)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니까

 

 계절적인 변화는 심리와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그중에서도 겨울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한 일조량, 즉 강해진 햇볕이 큰 영향을 준다고 한다.[각주:4] 계절은 착실히 따뜻해지지만 우리의 준비는 아직 멀었다. 그 얼마나 어지러운 봄인가. 이 복잡하고 다난한 과정 속에서 나를 잃지 않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마음을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갖는 것.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항상 놓치는 것이기도 하다. 나만을 위한 시간을 쓰기에는 청년들은 이미 빈곤한 시간 속에 살고 있다.‘갓생’이라는 이름 하에 청춘은 자기 착취를 자행한다.

 

 <난춘>은 3분 50초 동안 어지러운 봄 한복판에 서서 그대를 향해 어제에 대한 사랑, 오늘의 걱정, 그리고 우리의 내일을 노래한다. 

 

 

 한동안 <난춘>이 부르는 ‘그대’는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듣는 사람마다 ‘그대’가 다가오는 의미는 여럿이겠지만 필자에게 ‘그대’는 나 자신으로 다가왔다. 나의 작은 심장에 귀 기울일 때에로 시작하며 내 스스로의 마음에게 이야기를 건낸다. 당신에게 전해지는 숨과 꿈. 당신의 눈을 통해 사랑을 보고 그 마음 안에서 계절을 보낸다. 설령 세상이 바다 한 가운데의 파도보다 거칠게 내리치더라도 화자는 그대에게 부서지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혹여 밖의 바람에 추워질까 걱정 가득한 품을 내어주고 마침내 함께 ‘내일’로 가자고 약속한다. 소절마다 무한한 사랑이 묻어나는 가사가 다른 이가 아닌 나의 오늘에 전하는 말이라면 어떨까. 당장 스스로에게 괜찮다는 말을 하기 힘들다면 이 노래를 들어보는 것도 좋다.

 

봄의 가운데 선 당신에게 보냅니다

 

 봄을 마냥 따스한 계절이라 기억하고 있다면, 지금은 봄을 지나 다른 계절 속을 걷고 있는 중일 것이다. 봄의 시작인 4월은 따뜻한 날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청춘은, 그러니까 지나고 보면 한없이 따뜻했던 날들 뿐일 테지만 청춘의 가운데 서 있는 우리는 어쩌면 지금 겨울보다도 모진 추위를 견디고 있을지 모른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삶을 살아가는 모두가 힘들고 벅차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당신 앞의 괴롭고 고통스러운 날들이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지나갈 거라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당장이 막막한 나에게는 영 와닿지 않는 말이다. 다만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하든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남들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그들은 나의 4월을 살고 있지 않으니 위축되고 자책할 필요가 없다는 것. 나에 의한 삶이 아닌 남에 의해 ‘살아지는 삶’이 익숙해진 우리. 염세주의자로 유명한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삶을 회의적이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인생 자체가 고통’이라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인생에서를 잃지 않기를 갈망했다. ‘나’를 잃는 삶이야말로 무의미한 인생이라고 본 것이다. 

 

 지금 당신이 서있는 어지러운 봄이, 그러니까 정답이 보이지 않는 지금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따뜻하지 않다고 4월이 봄이 아닌 게 아닌 것처럼, 어지럽고 무너지는 지금이 당신과 당신의 청춘을 증명한다. 지금 당신에게 온몸을 불살라 봄을 증명하는 중이니 겁먹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을 보낸다.

봄의 시작에서 필자 올림

 

 


*구글 드라이브를 통해 PDF 판형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drive.google.com/file/d/1UCTelQnoSxrDFlmTqK6xtc-6_YX3q60W/view?usp=sharing

 

  1.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뜻으로 24절기 중 다섯 번째 절기이다. 음력 3월, 양력으로는 보통 4월 5일경으로 봄 농사를 준비하는 시기. [본문으로]
  2. 음력 12월, 양력으로는 1월 5일 무렵이다. 24절기 가운데 23번째 절기로 작은 추위라는 뜻을 가졌지만 실제 우리나라에서는 소한 무렵이 가장 추운 시기이다.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이다. [본문으로]
  3. 앰버는 웨이드 앰버가 물방울 안에서 숨을 쉴 수 있게  웨이드의 직장 상사이자 공기 원소인 게일이 물방울 안 공기를 불어넣어준다. [본문으로]
  4. 중앙일보,“찬란한 슬픔의 봄…극단적 선택 많아지는 ‘스프링 피크’는 왜, 2020.05.02, 황수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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