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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시간, 가만한 빈곤 [편집자 주] 가만하다. ‘움직임 따위가 그다지 드러나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은은한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는 ‘빈곤’을 떠올릴 때 허물어져 가는 집 혹은 거리에 나앉은 빈자의 상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빈곤은 가장 보통의 모습을 하고 당신의 일상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의심하라. 당신의 시간까지도. 수습위원 정상원, 부편집장 김가윤, 수습위원 김혜림, 인포그래픽 김가윤 2022년 11월 22일. 오전 7시 40분. 서울 소재 대학 재학생 심현근(25) 씨의 하루는 ‘더 자고 싶은 욕구’와의 사투로 시작된다. 6시간 남짓 그나마도 ‘자다 깨다’를 반복한 몸을 애써 일으켜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금세 출퇴근 인구가 밀집해 그의 지각을 부추긴다. 대충 모자를 눌러쓴 뒤 사과를 한 입 베어 문다. 그에.. 2022. 12. 26.
이 글이 전보가 된다면, 당신의 안녕을 묻고 싶다 허태준 의도적으로 분리되는 가치 최근 ‘MZ 세대의 직장 생활’이라는 제목의 영상 콘텐츠에서 출근 시간에 딱 맞춰 회사에 오는 신입사원 이야기를 봤다. 출근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하는 신입사원에게 대리급 직원이 핀잔을 주는 식의 내용이었는데, 대리급 직원이 ‘일찍 와서 일할 준비도 하고 주변 정리도 하는 게 어떠냐?’고 하면 신입사원이 능글맞게 ‘일찍 출근하면 일찍 가도 되냐?’고 맞받아치는 식이었다. 의도적으로 우습게 상황을 묘사한 영상과는 달리, 댓글에는 제법 진지한 토론의 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일찍 출근한다고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아무 문제없다”는 의견부터 “그래도 불편한 시선을 감수하면서까지 꿋꿋하게 맞춰서 출근할 이유가 있느냐”는 중립적인 의견도 있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달랐지만, 대부분.. 2022. 12. 26.
망한 세상에서 SF로 싸우는 법 작가 이경희 혹시 ‘사이버펑크(Cyberpunk)’라는 장르에 대해 아시는지? 모르신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금부터 설명할 예정이니까. 이래 봬도 나는 사이버펑크 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다. TRPG 의 제작자 마이크 폰드스미스에 따르면 사이버펑크 장르를 정의하는 것은 ‘분위기’ 그 자체다. 음습하고 어두운 거리, 오염된 대기와 폐기물의 산, 추적추적 내리는 빗방울, 기모노 홀로그램과 망가진 히라가나 네온사인, 빽빽하다 못해 미어터지는 초고층 빌딩, 첨단 기술와 자본에 지배당하는 하류층 사람들, 기계에 잠식된 인간성, 디지털 카우보이와 사이버 스페이스, 로큰롤과 반항 정신, 전자 마약과 불법 향정신성 의약품, 뉴웨이브 신비주의… 대충 이런 것들이 등장하는 미래가 사이버펑크인 셈이다. 2022년을 .. 2022. 12. 26.
당신 곁의 커뮤니티 편집장 김민지 부편집장 김가윤 수습위원 김세원 중문 씨는 일어나자마자 초점도 맞지 않는 눈으로 휴대폰을 확인한다. 밤사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확인하는 것은 현대인의 미덕! 아니나 다를까 학교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이하 에타)’의 알림이 두둑이 쌓여 있다. ‘대외 활동 스펙 없이 대기업 합격한 후기’. 쳇, 웃기고 있군. ‘당신은 따봉도치와 눈을 마주쳤습니다’. 이건 공감 눌러 줘야지. ‘팩트) 붕어빵 논란은 이게 맞음’. 어? 무슨 논란? 중문 씨는 홀린 듯 게시글에 들어간다. 글쓴이는 자신의 논리력을 한껏 뽐내는 어투로 사건의 개요를 설명한다. 있어 보이는 사진과 통계는 덤이다. 중문 씨는 작년에도 비슷한 논란이 일던 걸 기억해 낸다. 에타에도 철이 있다. 가슴팍을 파고드는 시린 바람이 불면 붕어.. 2022. 12. 26.
K라는 이름의 허상: K-콘텐츠 전성시대 부편집장 김가윤 편집위원 문휘진 인포그래픽 김가윤 2019년, 영화 이 개봉했다. 영화는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최고작품상)’을 수상하며 대기록의 서막을 올렸다(2019.05.25). 이듬해에는 서구 중심적이라며 매해 비난을 면치 못했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주요 부문을 휩쓸며 신드롬을 선언했다(2020.02.10). K-콘텐츠 성공 신화의 바통은 넷플릭스 드라마 이 이어받았다. 무려 83개국의 시청 순위 1위에 등극한 것이다(2021.10.02). 드라마계의 아카데미 시상식이라 불리는 프라임타임 에미상에 비영어권 작품 최초로 노미네이트된 데 이어 감독상까지 거머쥐었다(2022.09.13). 지난 6월 개봉한 영화 은 올해 칸영화제에서 감독상.. 2022. 12. 26.
그늘 도시, 그들 도시; 흑석동 이야기 편집장 김민지 수습위원 정상원 PART 1. 그들만의 리그, 재개발과 흑석동 ‘천하제일 일산, 천당 밑에 분당’ 그리고 ‘반포 옆에 서반포(흑석)’ 한때 흑석시장 골목에는 최루가스가 흩날렸다 리그 후반전, 서서히 드리우는 그늘 파이로 본 재개발 결국 재개발의 주인은, 철새는 떠날 수밖에 없다 PART 2. 그래서 흑석이 어떻게 된다고요? 아직 남은 시간이 많습니다 – 1구역 지상 49층, 지하 7층의 주상복합 – 2구역 떠나지 못한 사람들 – 9구역 무엇이 진실인가, 아니면 둘 다 진실인가 PART 3. ‘좋은 주거 공간’에의 반추 주거 공간의 브랜드화 홈, 스위트 홈 덮고 그 위에 다시 얹고 또 다시 살기 좋은 흑석을 만들기 위해선 PART 4. 내가 사랑했던 모든 흑석들에게 흑석 재개발 학생 인식도 .. 2022. 12. 26.
특수고용직 노동자, 그 일터를 들여다보다 수습위원 문휘진 “일한 만큼 돈 번다는 말, 우리도 공감하고 싶어요." 택배기사님께서 인터뷰 중 하신 말씀이다. 고등학교 사회문화 시간에 ‘4대보험은 의무 가입이고 산재보험 전액은 사업자가 부담한다’를 배운 다음 날, “택배 노동자, 과로사에도 산재 적용 안 돼…” 라는 뉴스 헤드라인을 보았다. 방금 배운 이론과 정반대의 현실을 마주한 나로서는 큰 충격이었다. 우선 복지국가인 우리나라에서 과로사가 발생했다는 사 실에 놀랐고, 회사 일로 사람이 죽었는데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것에 또 놀랐다. 이때부터 우리 집에 거의 매일 택배를 배달해주시는 기사님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택배기사는 일반적인 근로 형태가 아니라 위임이나 도급 형식으로 계약하여 일하는 특수고용 노동자에 속한다. 최근 택배기사 과로사.. 2022. 7. 5.
그곳; 우리가 있는 학교 편집장 문민기 부편집장 김민지 수습위원 장은진 2022. 7. 3.
우리가 우리가 되는 장, 중앙대생을 위한 커뮤니티 <청빠고>를 만나다 부편집장 김민지 익명성으로 꽁꽁 얼어붙은 에브리타임(이하 에타)만이 유일무이한 학내 커뮤니티였던 중앙대학교. 이곳에서 발생하는 혐오와 차별, 인권 침해는 늘 문제였지만 그 누구도 선뜻 해결하려 나서지 못했다. ‘글이 삭제되면 처벌할 수 없다’는 에타의 입장에 사용자들은 속수무책이었고, 결국 많은 이들이 등 돌린 가운데 고인 물이 되어 버렸다. 그러던 중 혜성처럼 등장한 온라인 커뮤니티 앱 ‘청빠고’. 중앙대생의, 중앙대생에 의한, 중앙대생을 위한 공론장의 탄생이었다. 2022년 1월 앱이 출시된 이후 줄곧 베일 뒤에 쌓여 있던 네 명의 청빠고 수호대를 중앙문화가 직접 만나보았다. 청빠고에 빠진 중앙문화 중앙문화: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고니맘: 안녕하세요, 저는 청빠고 디자.. 2022. 7. 3.
이곳; 중앙대 서울캠의 공간을 다시 생각하다 이곳;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의 공간을 다시 생각하다 - 마스터플랜 너머의 이야기 - 부편집장 김민지 2년 만에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의 문이 열린다.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만나 밥을 먹고, 공강 시간에 캠퍼스 곳곳을 누비며 놀 생각에 한껏 마음이 들뜬다. 하지만 역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학교 가는 길은 험난하다.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는 그 이름답게 흑석역과 상도역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어느 역에서 내려도 최소 15분은 걸어야 한다. 여느 ‘대학 입구 역’과 같이, 절대 캠퍼스 정문과 가까울 리 없다. 운 좋게도 오늘은 버스가 도착해 있어 버스를 탔다. 정문 정류장에서 내리면 앞에 보이는 건 도로와 사람, 건물 뿐이다. 푸른 중앙광장을 바라보며 저기 앉아 친구들과 피크닉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2022. 7.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