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신호 83호 <현현; 사람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전방 300m 앞, 커브길에 유의하십시오3

가난한 시간, 가만한 빈곤 [편집자 주] 가만하다. ‘움직임 따위가 그다지 드러나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은은한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는 ‘빈곤’을 떠올릴 때 허물어져 가는 집 혹은 거리에 나앉은 빈자의 상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빈곤은 가장 보통의 모습을 하고 당신의 일상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의심하라. 당신의 시간까지도. 수습위원 정상원, 부편집장 김가윤, 수습위원 김혜림, 인포그래픽 김가윤 2022년 11월 22일. 오전 7시 40분. 서울 소재 대학 재학생 심현근(25) 씨의 하루는 ‘더 자고 싶은 욕구’와의 사투로 시작된다. 6시간 남짓 그나마도 ‘자다 깨다’를 반복한 몸을 애써 일으켜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금세 출퇴근 인구가 밀집해 그의 지각을 부추긴다. 대충 모자를 눌러쓴 뒤 사과를 한 입 베어 문다. 그에.. 2022. 12. 26.
이 글이 전보가 된다면, 당신의 안녕을 묻고 싶다 허태준 의도적으로 분리되는 가치 최근 ‘MZ 세대의 직장 생활’이라는 제목의 영상 콘텐츠에서 출근 시간에 딱 맞춰 회사에 오는 신입사원 이야기를 봤다. 출근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하는 신입사원에게 대리급 직원이 핀잔을 주는 식의 내용이었는데, 대리급 직원이 ‘일찍 와서 일할 준비도 하고 주변 정리도 하는 게 어떠냐?’고 하면 신입사원이 능글맞게 ‘일찍 출근하면 일찍 가도 되냐?’고 맞받아치는 식이었다. 의도적으로 우습게 상황을 묘사한 영상과는 달리, 댓글에는 제법 진지한 토론의 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일찍 출근한다고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아무 문제없다”는 의견부터 “그래도 불편한 시선을 감수하면서까지 꿋꿋하게 맞춰서 출근할 이유가 있느냐”는 중립적인 의견도 있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달랐지만, 대부분.. 2022. 12. 26.
망한 세상에서 SF로 싸우는 법 작가 이경희 혹시 ‘사이버펑크(Cyberpunk)’라는 장르에 대해 아시는지? 모르신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금부터 설명할 예정이니까. 이래 봬도 나는 사이버펑크 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다. TRPG 의 제작자 마이크 폰드스미스에 따르면 사이버펑크 장르를 정의하는 것은 ‘분위기’ 그 자체다. 음습하고 어두운 거리, 오염된 대기와 폐기물의 산, 추적추적 내리는 빗방울, 기모노 홀로그램과 망가진 히라가나 네온사인, 빽빽하다 못해 미어터지는 초고층 빌딩, 첨단 기술와 자본에 지배당하는 하류층 사람들, 기계에 잠식된 인간성, 디지털 카우보이와 사이버 스페이스, 로큰롤과 반항 정신, 전자 마약과 불법 향정신성 의약품, 뉴웨이브 신비주의… 대충 이런 것들이 등장하는 미래가 사이버펑크인 셈이다. 2022년을 .. 2022. 1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