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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습위원 한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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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블로그 종려나무

시청에 있는 분향소에 다녀왔다. 국화를 놓고 잠시 묵념을 했다. 자원봉사자는 노란리본을 주며 세월호 피해자들에게 쓰고 싶은 말을 써달라고 했다. 무엇을 쓸까, 무슨 말을 해야 나아질 수 있을까, 고민했다. 다른 사람들이 쓴 것을 봤다. ‘미안하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나도 따라서 ‘미안하다’고 쓸까 했다. 차마 써지지 않았다. 쓸 수 없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썼다. 미안할 일들이 너무도 많기에, 그 말을 하는 것이 버거웠다. 언제까지나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분향소를 나오는 길, 머릿속에는 몇 달 전에 있었던 죽음들이 떠올랐다.

2014년 2월 18일 새벽은 내 삶에서 가장 길었던 새벽이었다. 잠이 오지 않아 페이스북을 켰다. 익숙한 학교의 이름이 보였다. 부산외대였다.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나에게 부산외대는 멀리 있는 곳이 아니었다. 끝내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내 친구의 친구도 있었고, 그곳에 가야 했지만 집안일 때문에 가지 못했던 나의 친구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일들은 과거의 일로 묻혔다. 언론에서도, SNS에서도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 그들의 죽음은 잊을 수 없는 상처였다. 상처를 통해 나는 이 땅에서 일어나는 죽음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무서웠다. 죽어가는 사람들은 너무도 많았다.
마우나리조트 참사 이후 불과 두 달 즈음 지났을 때였다. 서울 송파구에 살던 세 모녀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집세와 공과금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들의 유서에는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돈보다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당연한 사실이 그녀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다. 믿기지 않았다. 세상이 그녀들에게 미안해야 하는 것인데, 오히려 그녀들이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기며 스스로를 자책하며 세상을 떠나다니……. 도저히 그녀들의 죽음을 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녀들의 죽음을 오래 기억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부산외대의 죽음이 잊히듯 그녀들도 잊혀졌다. 그렇게 죽음을 겪고도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더 슬픈 것은, 아예 처음부터 기억되지 못했던 죽음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2014년 4월 19일, 3급 장애인 송국현 씨가 죽었다. 타인의 도움 없이는 걷는 게 힘든 송국현 씨는 집안에 불이 났지만 빠져나오지 못해 화상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심한 언어장애가 있어 주변에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송국현 씨는 3급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1급, 2급 장애인만 받을 수 있는 활동 지원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
송국현 씨 외에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죽음들은 너무 많다. 2012년 9월 이후 벌써 17명이나 사고로 죽은 현대제철의 하청 노동자도, 백혈병으로 죽은 146명의 삼성 반도체 노동자도, 무자비한 해고로 25명이나 스스로 세상을 떠난 쌍용자동차 노동자도, 해고와 강도 높은 노동으로 인해 괴로워하다 죽은 23명의 KT 노동자도, 30분내 배달이 법칙이던 피자집에서 일하며 무리하게 과속 배달을 하다 교통사고로 죽은 배달 아르바이트생도, 밀양 송전탑 건설 중단을 요구하며 자살하신 이치우 어르신과 유한숙 어르신의 죽음도……. 그렇게 잊혀지는 것 같았다. 세상은 너무 죽음들에 무관심했다.

그들의 죽음에 공감할 수 없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마우나리조트 참사 전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육체노동을 하지 않기에, 피자배달을 하지 않기에, 장애인이 아니기에, 나의 삶의 터전을 밀고 송전탑을 짓겠다고 하지 않기에, 그들의 죽음에 관심을 갖지 못하는 게 아니었을까. 혹은 그 죽음들의 뒤편에 있던 정치적인 것들을 생각하는 것이 귀찮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시선도 비슷하다. 세월호 피해자 중에 단원고 학생이 대부분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단원고 학생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반 승객들도 선원들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의 애도는 지나치게 단원고 학생들에게만 향하고 있었다. 아마 우리가 모두 학생의 신분을 거쳤고, 언젠가 자녀를 둘 부모가 될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우리의 반쪽짜리 애도 속에서 단원고 학생 외의 42명의 죽음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들이 되어가고 있다.

애도의 장 한가운데서 다른 죽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누가 죽었든, 얼마나 죽었든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 땅에 사람들이 죽는 원인은 분명히 존재한다. 비극은 안전보다 효율이 중요하다는 논리에서 시작되었다. 부실공사를 한 마우나리조트가 그랬고, 송전탑을 강행한 밀양이 그랬고, 노동 환경을 무시한 기업에서 그랬다. 세월호 참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제가 있던 배를 무리하게 개조해 수용능력을 초과한 승객과 화물을 태웠다. 애초에 세월호는 침몰 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운행되고 있었다.

세월호 이후 전국적으로 분향소가 생겼다. 방송국에선 예능방송을 방영하지 않았다. 수학여행과 대학축제가 취소됐다. 전국민이 다함께 애도했다. 하지만 세월호 이전에 죽은 이들을 위한 애도의 장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토록 많은 죽음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잊고 있었냐고. 우리가 애도를 조금 더 먼저 시작했다면, 우리가 계속해서 문제제기를 했다면, 세월호 같은 배가 운행되지 못하게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참사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애도는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는 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 물음 속에서 애도의 장은 계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몇몇의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으로 애도를 그만둬서는 안된다. 우리는 모두 세월호의 선장이다. 돈을 향해 달리는 기차에 우리도 일조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그저 하나의 비극으로만 마무리한다면 비극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비극을 잊는 것으로 비극이 일어나는 것에 동조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가 먼저 점점 사라지는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가져야 비극은 비로소 멈춘다. 그 시작은 모든 기억되지 못한 이름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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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민중의 소리

기억되지 못하는 이름들에 관한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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