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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민속학과 마지막 학생회장 이재진씨를 만나다

“솔직히 경쟁력이 없고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지 않는 학과 졸업생을 계속 만들어내서 뭐 하겠습니까” 기업가 출신의 박용성 전 이사장이 월간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6년 전 팔리지 않는 ‘상품’ 비인기 학과를 없앴다. 그 상품은 어쩌면 지금의 학생들에게는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을 비교민속학과, 아동·가족·청소년 복지 전공이다.

당시 학생들은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맞섰다. 그해에는 학생 2000명이 넘게 모인 학생총회가 성사되기도 했다. 학생총회에는 비교민속학과를 지망하던 새내기 이재진 씨도 있었다. 그는 학생총회도 대학본부를 막을 수 없을 것 같아 무서웠다. 마지막 발악이 될 것만 같았다. 새내기의 예상은 불행하게도 들어맞았다. 대학본부는 2000명 학생의 물음에 “구조조정이 일방적이지 그럼 쌍방적이냐”는 망언으로 답했고, 결국 구조조정은 강행되었다.

그로부터 6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는 구조조정이 남긴 상흔을 고스란히 안고 학교생활을 계속했다. 폐과 이후 본부는 폐과생에 일일이 전화해 전과를 권유했고 복수전공의 문턱을 낮추기도 했다. 같은 학과 선배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마지막까지 고집스레 학과를 지키던 막내 13학번들도 졸업을 했거나 앞두고 있다. 이제는 취업준비생이 된 이재진씨를 <중앙문화>가 직접 만났다. 2019년 그의 취업 면접이 있던 날에 멀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그와 2013년을 얘기했다.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저는 아시아문화학부 비교민속학과 13학번 졸업생 이재진입니다. 직전 학기 학생회장이자 아마도 마지막 학생회장입니다.

-다른 과를 선택하셨을 수도 있었을 텐데 당시 폐과 예정이던 비교민속학과를 선택하셨어요.

제가 민속학을 되게 좋아해요. 직접 쓴 논문들도 다 좋은 논문이라서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어요. 민속학 분야의 책은 최근에도 자주 사서 읽어요. 이 학문은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영역도 많아요. 1학년 때 수업 듣고 해야겠다 결심했죠.

– 비교민속학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질문이 쉽지 않네요. 이건 잘못 말하면 선배나 동기들한테 엄청나게 까이거든요. (웃음) 개인적인 차원에서 말씀드리자면, 민속학을 배우고 고향에 돌아가서 우리 동네나 지역을 바라보면 새롭게 보여요. 서울이란 도시를 바라봐도 새롭게 보이는 게 있어요. 골목 문화라든지 대학생 문화도 그렇고요. 민속은 인간의 창조성과 적응의 산물이거든요. 민속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한국 사회를 바라보면 재밌는 것들이 많아요. 민속학을 배우면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하게 돼요. 이런 학문을 배울 수 있었던 건 인생에서 행운이 아닐까 싶어요. 먹고 사는 데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 걸 떠나서요.

-13년에 대학본부가 비교민속학 폐과를 결정했어요. 구조조정은 어떻게 접하게 됐나요.

벌써 6년 전이네요. 입학한 지 2개월도 안 됐을 땐데, 중간고사 치기도 전이었던 것 같아요. 입학했는데 선배들이 서명을 받아야 한다며 같이 가자는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고 수업을 빼고 따라갔는데 학과가 폐과된다는 거예요. 그러더니 갑자기 또 시위를 한 대요. (웃음) 학교 앞에서 시위도 하고 교육청, 문화재청 앞에 가서 시위도 하고, 문화관광부 앞에 가서도 했어요.

ⓒ 비교민속학과 페이스북

하루는 학생들한테 서명을 받고 있었는데 고등학교 동기를 만났어요. ‘너 왜 이러고 있냐’라고 묻더라고요. ‘학교가 우리를 도와줘야 할 판에 우리 학과를 없애서 시위하고 있다’라고 답했어요. 왠지 되게 울고 싶었어요. 남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을 왜 우리 학과만 누리지 못하는 건지, 참 부끄럽고 숨고 싶었어요.

-구조조정 항의 차원의 총장실 점거도 있었다고 들었어요.

선배들이 총장실 점거를 했다고 카톡으로 알려줬어요. 한번 오래서 같이 밤을 새웠어요. 총장실이 정말 좋아요. (웃음) 다 대리석이에요. 본관(201관) 건물이 진짜 오래된 건물인데 내부는 좋더라고요. 다음날이 시험이었거든요. 중간고사였나 기말고사였나. 그냥 다들 밤새우면서 상자 깔고 공부했어요.

학과가 진짜 없어지는 지도 선배들이랑 얘기했어요. 사실 실감을 못 했어요. 이러다가 말겠지 했던 거죠. 학생들이 이렇게까지 하니까요. 교수님들도 같이 있었거든요. 그분들도 총장실 앞에서 언론이랑 인터뷰했어요. 교수님들까지도 이렇게 하는데 설마 없애겠냐 했었죠,

ⓒ민중의소리

-총장실 점거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총장실 점거는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는 거예요. 총장실 점거로 기사가 났고, 저희가 서명받으러 다녔으니까 학생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학생총회도 그렇게 했기 때문에 성사가 됐다고 생각해요.

-학생총회는 어땠나요.

대운동장 없어지기 전에 학생총회 했었죠. 저는 그냥 참가만 했어요. 선배들이 ‘이거는 몇 년 만에 하는 거고 매년 하지도 못하는 거다. 한번 가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갔어요. 제 기억으로는 축제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되게 새로운 행사잖아요. 대표자들이 자기소개도 하고, 입장식도 했어요. 학생회비 털어서 음식도 나눠줬어요. (웃음) 그런 게 좋았어요.

축제 분위기였다고 해서 제가 들뜬 건 아니었어요. 날씨도 우중충해서 저는 무서웠고 우울했어요. 우리가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 같았어요. 학교 측이 듣지도 않을 것 같았고요. 역시나 학생총회 끝나고 난 뒤에도, 대학본부에서는 최소한 면담을 하자는 말도 없었어요.

-학생총회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많은 학생이 모여야 하잖아요. 쉽지 않았을 텐데요.

학생총회가 성사됐던 이유는 공동의 위기감 때문인 것 같아요. 당시에 구조조정을 저희 과뿐만 아니라 사회복지학과도 같이 했잖아요. 간호대도 적십자 간호대랑 통합됐잖아요. 다 위기를 조금씩 느끼고 있었어요. 그런 얘기가 스멀스멀 나오고 있기도 했고요.

-학생들 사이에서 비판 여론도 있었겠어요.

중앙인에 저희를 조롱하는 글이 있었어요. 학생들이 폐과생 면담했다는 기사가 뜨면 댓글에 ‘○○학과로 전과시켜달라고 했겠네’, ‘○○학과 가고 싶어서 폐과될 거 알고 들어온 거 아니냐’ 화가 나더라고요. 결국에 제가 전과했냐, 저는 전과 안 했어요. 전과 안 한 학생들 꽤 많아요. 학부가 106명이었는데 폐과가 결정된 뒤에도 저희 과를 열한 명이 선택했어요. 선택률이 그 전보다 오히려 높았어요. 항상 내림세가 아니라 충분히 상황이 변하면 선택률도 높아질 수 있거든요.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데 3~4년 딱 보고 선택률 낮다며 폐과를 결정한 거죠. 그렇게 따지면 남는 학과가 몇 개가 되겠어요. 우리 학교가 경영전문대학이 될 것도 아니고요.

또 그런 비난도 있었어요. ‘솔직히 민속학과 성적 맞춰서 들어오지 않았느냐, 성적 맞춰서 제일 낮은 과 들어왔으면서 ○○학과 전과시켜주면 좋지 않냐’ 이런 글이었어요. 또 중앙인에 ○○학과 애들은 ‘그런 애들 들어오면 우리 학과 질 낮아진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는 마치 죄를 지은 것처럼 학교에 다녔어요. 저희 때문에 학교 경쟁력 떨어진다는 거예요. 학교 발전에 장애물 같다는 뉘앙스였어요. 사실 좀 많이 후회도 했어요. 중앙대에 내가 왜 왔을까 하고요.

-15년, 18년 구조조정 때도 ‘학생의 전공 선택권 보장’을 빌미로 구조조정을 했어요.

학생의 전공 선택권 강화라는 것이 말로는 좋아요. 좋은 말은 세상에 많아요. 그걸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하는지 따져봐야겠죠. 학교가 그런 좋은 말을 하는 의도가 결국에는 학교로서 효과적인 구조조정이라는 것이 2013년에 명백히 드러났고, 분명히 어떤 학과는 선택을 못 받을 테고 따라서 경쟁력이 떨어진다, 장래의 비전이 없다, 이렇게 분명히 이용될 거예요. 기준도 굉장히 모호해요. 몇 명이 선택하면 경쟁력이 없는 건가요. 자기 마음대로 하는 거예요. 원하는 대로.

– 그렇다면 대학본부는 왜 비교민속학과를 폐과한 걸까요.

저희 동기들은 거의 다 민속학과를 고등학교 때부터 가고 싶다고 해서 왔던 학생들이에요. 공청회에서 대학본부에 왜 우리 과 없어지냐고 물었어요. 그러니까 솔직히 ‘너희가 경쟁력이 없지 않냐. 지금 학과 충원율도 낮고 전공선택 비율도 낮으니 비전이 없다’고 답했어요. 학교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거예요.

항상 학교 축제 때마다 기분이 안 좋았어요. 학교 축제에 연예인 부르는데 수억 원이잖아요. 인당 4~5천만 들잖아요. 1년에 두 번 하면 몇억이에요. 그거 좀 줄이면 학과 살릴 수 있어요. 학교 축제를 하는 건 학교 경쟁력, 명예, 소문 때문이잖아요. 근데 우리한테는 이런 돈 받을 자격도 없다는 거고 우리는 비효율 그 자체라는 거죠. 저 사람들 부르는 건 인당 몇천만 원인데, 우리 학과 되살리는데 그렇게 많이 드나요. 이기적인 생각일 수도 있는데, 어디는 비효율적이고 효율적이라고 말하는 게 씁쓸하더라고요.

-그런데도 구조조정은 진행됐잖아요. 그럼 어떻게 학교는 학생들을 무시하고 구조조정을 이렇게까지 강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을 하시나요.

그때는 전 사회가 효율성을 외치는 시기였기 때문에 여론을 등에 업고 하지 않았나 싶어요. 중앙일보나 조선일보 같은 신문을 보잖아요. 학교 측 입장을 대변하는 신문도 많더라고요. ‘인구가 줄어들고 있으니까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학교가 너무 많고, 학과도 너무 많다. 청년실업률이 높은 건 쓸데없는 학과가 많아서 그렇다’ 이런 논의가 신문에 매우 많았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우리가 아무리 ‘우리 과 취업률 높다’고 말해도 안 들리는 거죠. 민속학과라는 말 듣자마자 ‘취업 안 될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해요. 이런 사회 분위기에 편승한 것도 있지 않나 생각을 해요.

-폐과 이후에 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졌다고 들었어요. 대표적인 예가 전과를 유도한 일이라고 들었어요.

제가 1학년일 때 2~3학년들한테 전과권을 줬어요. ○○학과로 다 전과했어요. 그분들이 나쁜 건가요. 아니거든요. 꼬드긴 거예요. 어느 날 같이 과실에서 얘기하던 선배가 안 보이는 거예요. 얘기를 들어보니 전과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사람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또 민속학과를 오고 싶어서 아시아문화학부에 왔는데 학과가 없어진다니까 선택하기가 꺼려지는 학생들도 있잖아요. 그런 학생들이 다른 학과로 빠졌어요. 저도 모르게 ‘쟤도 민속학과 하고 싶다고 했는데 이렇게 없어지니까 떠나네. 좀 서운하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런 학생들이 있어서 저도 혼란스러웠던 거죠. 근데 제가 서운해할 건 아닌 것 같아요. 그 사람들도 다 피해자예요. 기업 논리에 맞춰서 학교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겪지 않아도 될 혼란을 겪은 거예요. 그들도 사실 피해자들이죠.

-폐과생은 복수전공 우대도 있었다고 들었어요.

채찍을 휘둘렀으니 당근을 준 거죠. 학교 입장은 제가 몰라요. 어떤 생각에서 복수전공을 도와주겠다고 한 건지는 모르겠어요. 제 추측으로는 심화전공을 하게 되면 수업을 더 열어야 하잖아요. 민속학과 폐과시켰는데 한 명이 민속학과 심화전공 한다고 하면 어려운 과목들도 추가로 개설을 해줘야 하는 거죠. 복수전공 하면 폐과된 학과 학점 줄어들고 좋잖아요. 제 생각엔 그게 큰 것 같아요. 귀찮고 비효율적이니까.

-복수전공을 할 때 소외감을 느낀 적은 없나요.

복수전공 수업에서 저를 소개할 때가 되면은 다 처음부터 이야기해야 하는 거예요. 이러이러해서 없어졌고 학교는 이런 이유로 없앴고 막 설명을 해요. 그럼 저는 비효율적이고 취업도 안 되고 구조조정 대상이 돼서 없어진 학과 학생이 되는 거죠. 근데 어느 순간 눈치를 보고 있는 저 자신을 목격했을 때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했는데도 잘 안 되더라고요. 이런 이야기가 왜 나에게 생긴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과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2학년 때 그래도 학과 행사를 해보고 싶어서 답사 부장을 맡아서 답사를 진행했어요. 그리고 난 다음에 군대를 갔다 와서 보니 굉장히 암울한 시간이 흘렀더라고요. 학과 행사도 인원이 없으니까 사라졌더라고요. 그리고 학과 행사는 신입생 위주인 경우가 많잖아요. 저희는 신입생이 없으니까 그런 행사들도 없이 시간이 흘렀던 거예요.

1년에 한 번 답사하러 가는 데 답사를 일단 못 가게 됐어요. 답사가 민속학도로서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굉장히 좋은 자리예요. 저희가 일주일 동안 가서 그 마을에서 살 거든요. 인력이 정말 많이 필요한 행사거든요. 그것도 학과에 인력이 없어서였죠. 교수님들이랑 답사 가서 같이 윷놀이도 하고 정말 재밌게 놀았던 추억이 생각나더라고요. 인문대 회의에도 더는 참여하지 않고 있었어요.

-그 상황에서 학생회장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마지막 학기에 제가 학생회장을 하겠다고 했어요. 축제도 한번 나가봤어요. 마지막이라고 해서, 인문대 회의도 참석해봤는데 확실히 다른 학과보다는 활력이 떨어진 건 사실이에요. 솔직히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어요.

-축제 참여하셨다 하셨잖아요. 어떤 부스였나요.

2000년대 초중반에 보면 민속학과가 여는 씨름대회가 엄청 유명했어요. 현실적으로 못하니까 윷놀이 같은 거 하자고 했죠. 윷놀이로 보드게임 만들어서 했어요. 과실이 곧 없어지는 상황이어서 과실로 이행 시 짓기 대회도 했었어요. 학과 학생 구성원들에게 투표도 해서 1, 2등 나오면 공고도 했어요.

그리고 민속학과 과실을 엽서에 그려서 나눠줬어요. 제가 그런 거 좋아하거든요. (웃음) 부스에서 엽서를 나눠주면서 ‘이걸 왜 나눠주냐’고 물으면 ‘우리 과실 없어진다’ 이런 얘기 했어요. 학내 구성원들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한 거죠. 마무리는 잘해야겠다는 생각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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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역할은 정리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과실에 20년 된, 30년 된 책들이 있고 1999년도에 ‘날적이’라고 있었거든요. 학과 책상에 올려놓으면 방명록처럼 쓰는 게 있었어요. 모으니 총 10권 정도 되더라고요. 학과 사진도 200장 정도 있었어요. 그 외에도 엄청 오래된 기록, 오래된 책, 때 묻은 캠코더, 답사 때 썼던 물건, 답사 가서 녹취한 것, 민요 채집한 테이프를 정리했죠. 정리해서 상자에 담아서 가져왔고 학과 깃발도 가져왔어요. 청소도 한번 싹 하고요. 그런 거 했던 것 같아요.

-정리하면서 나온 물건들은 현재 어디에 있나요.

집에 가져놨어요. 차마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더라고요. 민속학과는 정말 끈끈했거든요. 저희 과가 작기도 하니까요. 끈끈했던 추억들이 사진이나 날적이에 남아있는 거죠. 그런 게 과실에 버려져 있는 걸 봤고, 그 정도로 우리 학과가 피폐해졌다고 생각도 들었어요. 보관을 제가 계속하기는 어려워요. 이사도 많이 다녀야 하고. 박물관에 넘기라는 사람도 있는데 아직은 그러지 않고 있죠. 아무래도 학교에 남겨두고 싶어요.

-지금은 과실 철거가 완료됐나요.

인문대 팀장님이랑 2019년 2월까지 중요한 거 다 빼고 철거하라는 얘기를 했었죠. 근데 지금도 안에 가구들을 안 뺐다고 하더라고요. 그 장소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결정을 안 해서 그런 것 같아요. 결정되면은 치우든지 하겠죠. (몇호인가요) 708호예요. 203관 708호가 저한테는 의미가 있는 공간이에요. 인스타 계정도 만들었어요. ‘203_708’치면은 저희 과실 사진 볼 수 있어요. 제가 만들었거든요.

-어떤 변화가 있어야 다시금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기본적으로는 학문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대학교 분위기가 조성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학교 운영의 핵심에 학생이 포함돼야 한다고 봐요. 학교 운영회의에 학생대표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해요. 총장이랑 대등한 위치는 아니더라도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해요. 총장님 이사장님과 똑같이 되는 건 어렵더라도 최소한 30%라도 의결권을 가지고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총장직선제가 돼도 정말 좋겠어요.

13년도에 최소한 학교가 ‘그냥 너희 학과 이렇게 충원율도 낮고 문제’라고 했을 때, 그럼 어떻게 우리가 상생할 수 있을까 얘기를 했더라면, 학과 이름을 바꿔보자 커리큘럼을 만들어보자, 산업이랑 연계할 수 있는 걸 찾아보자, 그런 얘기를 조금이라도 했다면 오히려 학교에 고마웠을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해서 비인기 학과는 맞으니까요. 그런 점이 못내 아쉽네요.

“우린 학교 발전의 걸림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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