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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레인보우 커넥션 프로젝트 연구원)

레인보우 커넥션 프로젝트는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보건과학과 역학연구실에서 진행하는 한국 성소수자 건강 연구 프로젝트다. 2016년부터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주자들의 건강에 대한 연구에 힘쓰고 있다. 더 자세한 정보는 레인보우 커넥션 프로젝트 홈페이지를 통해 알 수 있다. (https://www.rainbowconnection.kr/)

<트랜스젠더 그리고 의료적 트랜지션>
트랜스젠더의 정체성은 오랜 기간 정신장애로 여겨졌다. 1980년 미국정신의학회가 출판한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이하 DSM) 3판과 1990년 세계보건기구가 발간한 국제질병사인분류(International Statistic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and Related Health Problems, 이하 ICD) 10판에서 트랜스젠더 관련 진단명을 정신장애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성주체성장애’, ‘성전환증’과 같은 진단명은 출생 시 지정받은 성별에 순응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이유로 이미 사회적인 낙인을 가지고 살아가는 트랜스젠더에게 정신장애라는 추가적인 낙인을 덧씌웠다. 이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었고, 201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트랜스젠더 관련 진단명을 DSM과 ICD에서 수정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그림 1-1.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DSM)에서의 트랜스젠더 정체성 비병리화 과정

그림 1-2.
국제질병사인분류(ICD)에서의 트랜스젠더 정체성 비병리화 과정

동성애자의 정체성 역시 정신장애로 받아들여지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동성애는 40여 년 전인 1973년에 이미 DSM 2판에서 삭제되기로 결정되었고, 뒤이어 1992년 발간된 ICD 10판에서도 진단명이 수정되었다. 이에 따라 오늘날 동성애가 질병이라는 주장은 통용되지 않는다. 이처럼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의 정체성은 모두 과거에 DSM과 ICD에 등재되어 정신장애로 여겨졌지만, 그 이후 비병리화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하지만 차이점은 동성애에 대한 진단명이 2018년 현재 DSM과 ICD에서 완전히 삭제된 것에 반해, 트랜스젠더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트랜스젠더가 의학과 맺고 있는 간단치 않은 관계와 관련되어 있다. 트랜스젠더는 대부분 출생 시 지정받은 성별과 현재 자신이 인식하고 표현하는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아 성별 위화감(Gender dysphoria)을 느낀다. 성별 위화감은 단순히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 이러한 불일치로 인해 심적인 고통을 겪고, 직업 및 사회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을 말한다. 이를 해소하고 본인이 인지하는 성별 정체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트랜스젠더는 트랜지션(Transition)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옷차림이나 머리 스타일 등 외양을 바꾸고, 신분증 상의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또는 여성에서 남성으로 정정하며, 의료적 조치를 받아서 신체적으로 변화하는 것 등이 트랜지션에 해당한다.
트랜지션 중에서도 호르몬 조치나 성전환 수술 등의 의료적 조치를 의료적 트랜지션이라고 하는데, 통상적으로 정신과 진단–호르몬 요법-성전환 수술 순으로 진행된다. 정신과 진단은 당사자가 정신건강과 관련한 문제가 있는지 그리고 이후에 받게 될 의료적 트랜지션에 준비가 되어 있는지 등을 평가하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후에 받을 호르몬 요법이나 성전환 수술에 앞서 진행되어, 일종의 관문으로서 역할을 한다. 정신과 진단 이후 트랜스젠더는 본인이 인지하는 성별 정체성에 따른 신체적 외형을 가지기 위해 내분비 호르몬 투여를 하고, 이를 통해 체모와 근육량 등 신체적인 변화를 얻는다. 호르몬 조치는 의료진으로부터 생식능력 저하와 같은 신체적·심리적 변화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은 이후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 진행해야 한다. 호르몬 조치로 얻기 어려운 신체적 변화는 성전환 수술을 통해 가능하다. 성전환 수술에는 가슴 수술, 고환·정소/난소·자궁 제거 수술, 성기성형 수술, 안면성형 수술, 성대성형 수술 등이 포함된다.
트랜스젠더는 자신이 느끼는 성별 위화감의 정도, 개인을 둘러싼 상황과 조건, 건강 상태 등을 고려하여 어떤 의료적 조치를, 어느 수준으로 받을 것인지 결정한다. 따라서 모든 트랜스젠더가 같은 종류나 같은 수준의 의료적 조치를 받는 것은 아니며, 의료적 조치 없이도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트랜스젠더도 있다. 의료적 트랜지션을 필요로 하는 트랜스젠더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의료적 조치를 받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본인이 느끼는 성별위화감을 해소하기 위해서이다. 그뿐만 아니라, 법적인 성별을 남에서 여로 또는 여에서 남으로 바꿔 사회생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특히 출생 시 지정받은 성별이 남성인 트랜스여성의 경우에는 병역을 면제받기 위해서 의료적 트랜지션을 하기도 한다.

<의료적 트랜지션, 한국에서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트랜스젠더가 정신과 진단이나 호르몬 요법, 성전환 수술과 같은 의료적 트랜지션을 한국에서 얼마나, 어떻게 받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2018년에 출판된 국내 연구에 따르면, 총 278명의 참여자 중 정신과 진단을 받은 트랜스젠더는 91%, 과거에 호르몬을 받은 경험이 있거나 현재 호르몬 요법을 하는 이들은 응답자의 88%였다. 또한, 응답자의 42%가 넘는 참여자가 가슴, 고환정소/난소자궁제거, 성기성형, 안면성형, 성대성형 등의 성전환 수술 중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수술을 받았다고 보고했다.
이와 더불어 국내에서 의료적 트랜지션을 받으려고 하는 트랜스젠더가 여러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 역시 알 수 있었다. 전체 278명의 응답자 중 호르몬 조치를 받지 않은 51명 중 54.9%, 성전환 수술을 받지 않은 156명 중 78.2%가 비용에 대한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서 해당 의료적 조치를 받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그 외에도 의료적 트랜지션을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과 관련 지식을 갖춘 의료진이 부족해 트랜스젠더 응답자들은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했거나, 의료기관에 가더라도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이 있는 의료진으로부터 부정적인 경험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결과로 알 수 있듯이, 트랜스젠더는 다양한 장벽으로 인해 호르몬 조치나 성전환 수술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의료적 트랜지션을 받지 못하는 경우에는 법적인 절차를 거쳐 본인이 인식하는 성별로 바꾸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법적인 성별을 정정하지 않은 트랜스젠더는 출생 시 지정받은 성별이 표기된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숫자(남자는 1 또는 3, 여자는 2 또는 4)와 본인이 인식하고 표현하는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일자리를 얻을 때는 그 업무가 적성에 맞는지, 연봉이 어느 정도인지보다 성별이 표시된 주민등록증을 요구하는지, 내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을 받지는 않을지 등이 더 중요해진다. 많은 경우,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아도 되는 불안정한 일자리를 얻을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낮은 지위에 머무르게 된 트랜스젠더가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의 지지 없이 호르몬 요법이나 성전환 수술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모으는 것은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계속해서 의료적 트랜지션에 드는 비용을 마련하지 못하고, 또다시 법적 성별정정을 준비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을 통한 의료보장>

그림 2.
의료적 트랜지션에 대한 의료보장 부재 및 엄격한 법적 성별정정 요건으로 인한
악순환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트랜스젠더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법·제도적 수준에서 여러 가지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방안은,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의료적 트랜지션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해당 의료적 조치를 국가에서 국민건강보험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전 세계 118개국 중 32개국에서는 호르몬 조치와 성전환 수술을 모두 의료보험이나 공공의료체계와 같은 공적 자원으로 보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유럽의 많은 나라와 미국, 캐나다, 그리고 아시아에도 홍콩과 뉴질랜드가 포함되어 있다. 호르몬 조치와 성전환 수술 중 하나만 지원해주는 13개 국가까지 포함하면 45개국에서 트랜스젠더의 의료적 트랜지션을 공적 자원으로 보장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 호르몬 조치와 성전환 수술, 두 가지 모두 공적 자원으로 지원해주지 않는 나라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트랜스젠더 개인은 국내에서 호르몬 조치나 성전환 수술을 받는데 드는 비용을 본인이 온전히 부담하고 있다. 호르몬 조치의 경우 보통 20대 혹은 30대부터 투여한다고 가정하면, 20~30년 동안 장기적으로 2주 또는 4주에 한 번씩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성전환 수술의 경우에도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트랜스젠더 278명 중 성전환 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는 115명을 대상으로 수술 비용을 조사한 결과, 성기성형 수술에만 평균적으로 1,500만 원에서 2,000만 원 정도를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성기성형 수술뿐만 아니라 가슴 수술, 내부성기제거 수술 등을 포함하면 전체 성전환 수술 비용은 더 클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트랜스젠더의 호르몬 조치나 성전환 수술이 개인의 ‘성적 기호’에 따라 ‘선택’한 성별로 살아가기 위해 받는 ‘미용성형수술’로 여겨, 의료적 트랜지션을 국민건강보험으로 보장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의료적 트랜지션은 ‘성적 기호’가 아닌 트랜스젠더 개인 성별 정체성에 기반한 조치이며, 최근 의학 전문가들은 의료적 트랜지션이 트랜스젠더의 성별 위화감을 완화하는 데 있어서 매우 효과적이고 필요한 조치라는 점에 합의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출판된 여러 연구에서 호르몬 조치나 성전환 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의 건강과 삶의 질이 그 이전보다 향상된다는 결과가 축적되고 있다.
의료적 트랜지션이 트랜스젠더의 삶의 질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2010년에 출판한 체계적 문헌고찰과 메타분석 논문을 통해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다. 체계적 문헌고찰과 메타분석은, 특정 주제와 관련해서 출판된 모든 연구를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정리해서 서로 다른 연구에서 제시하는 양적인 효과 크기를 통계적으로 통합하는 방법을 가리킨다. 가령, 한 연구에서는 호르몬 요법을 받은 트랜스젠더에 비해 받지 않은 트랜스젠더의 정신건강이 2배 안 좋게 나타났고, 다른 연구에서는 1.3배 안 좋게 나타났다면 이러한 결과를 종합해서 하나의 효과 크기를 제시하는 연구를 말한다. 2010년 논문에서 총 28편의 논문을 검색해서 정리한 결과, 의료적 트랜지션을 받은 트랜스젠더 중 80%가 의료적 조치를 받기 이전보다 이후에 성별 위화감이 감소한 것은 물론, 전반적인 삶의 질이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또한 78%에서는 트랜스젠더는 불안이나 식이 장애, 자살 시도 등의 정신적 증상이 감소하고, 72%에서는 성 기능이 향상되었다.

<법적 성별정정 요건의 완화>
그림 2에 제시된 트랜스젠더가 경험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으로, 법적 성별정정 시 필수적으로 충족해야 하는 요건을 완화할 수 있다. 한국에서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정정은 대법원 가족관계등록예규 제435호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 1에 기반해 진행된다. 법적인 성별을 정정하기 위해서 법원에 제출해야 하는 여러 가지 서류 중에는 정신과 진단서와 성전환 수술을 한 의사의 소견서, 생식능력이 없음을 확인하는 의사의 진단서 등이 포함되어 있다. 많은 나라에서 트랜스젠더가 법적 성별을 바꾸고자 할 때 여러 가지 요건을 제시하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필수적으로 충족해야 하는 요건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엄격한 수준이라고 비판받고 있다.

“저도 사실 성전환 수술을 받기 이전에는 여자로 사는 데 큰 불만이 없었어요. 수술하지 않은 상태에서 호적을 바꿔 줬으면 성전환 수술을 못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왜냐면 호적을 바꾸려고 돈 쓰는 것보다 다른 곳에 돈 쓰고 싶기도 하고, 또 수술에 대한 기대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이제 와서 보면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을 하지만, 어쨌든 당시에는 얼마나 많이 바뀔지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어요.” (20대 트랜스여성 C)

「오롯한 당신」 중 51p 법적 성별정정 요건의 엄격함에 대해서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2018년에 출판된 단행본 「오롯한 당신 – 트랜스젠더, 차별과 건강」에 제시된 인용문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위 인용문은 출생 시 지정 성별이 남성이고, 본인이 인지하는 성별 정체성이 여성인 20대 트랜스여성 C의 이야기이다. 트랜스여성 C는 성전환 수술을 받기 전에도 여자로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고, 수술에 대한 기대도 낮았을 뿐만 아니라 수술을 하는데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만약 수술 없이도 법적 성별정정이 가능했더라면 수술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요건이 엄격한 것뿐만 아니라, 대법원 가족관계등록예규 제435호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은 대외적으로 구속력을 가지지 않는 행정규칙이기 때문에 개별 법원의 판단 기준에 따라 법적 성별정정이 허가가 결정되는 부분 역시 문제가 있다. 일례로, 2017년에는 처음으로 성기성형 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여성의 법적 성별정정을 허가한 판결이 2 나왔다.
트랜스남성의 경우에는 트랜스여성보다 상대적으로 성전환 수술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미 2013년에 성기성형 수술 없이 법적 성별정정이 받아들여진 전례가 있었다. 3


이에 반해 성전환 수술이 상대적으로 덜 어렵고 비용이 적게 든다는 이유 등으로 트랜스여성은 2017년까지 성전환 수술까지 받아야만 성별정정이 가능했다.

“A씨를 포함한 성별정정 요구자들은 반대의 성으로 확고한 정체성을 갖고 있고, 그들을 혼동스럽게 하는 것은 외부성기를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외부성기를 갖고 있지 않은 자에 대한 외부적 시각일 뿐 수술이 필수적은 아니다“

“이들의 외관이 일반적인 성별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데서 오는 일반인의 혼란감은 성전환자들이 외부성기를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성별정정이 되지 않음으로써 겪게 되는 사회적·인격적 고통에 비하면 당연히 감내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


“국가는 각 개인이 자신의 기본적인 정체성과 어긋난 형태로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닌 삶을 강요받도록 하면서까지 신분관계 체계를 경직되게 운영해선 안 될 것이다.”


– 성기성형 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여성의 첫 법적 성별정정 허가 결정문(2017.02.14) 중

2017년 성기성형 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여성의 법적 성별정정을 허가한 법원의 인식은 제시된 결정문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판결은 의료적 트랜지션을 하지 않고도 법적 성별정정이 가능하도록 하는 세계적인 움직임과도 일치하며, 한국 현실에서 충분히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특정 법원의 결정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후에 모든 법원에서 같은 결정을 내릴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일부 소수의 판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트랜스젠더가 완화된 요건으로도 법적인 성별을 정정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변화의 움직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림 2에 제시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방법으로, 의료적 트랜지션을 받고자 하는 트랜스젠더에게 의료보장을 제공하는 것과 함께 법적 성별을 정정하려고 할 때 반드시 의료적 트랜지션을 받지 않아도 되게끔 요건을 완화하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 두 가지 방법은 모두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따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서 이해할 수 있다. 첫 번째 방법은 의료적 트랜지션을 받고자 하는 트랜스젠더 개인의 건강권과 의료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의료적 트랜지션을 국가에서 건강보험으로 보장하는 것이며, 두 번째 방법은 의료적 트랜지션을 받길 원하지 않거나 개인의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서 지금이 아닌 나중에 받고자 하는 트랜스젠더가 의료적 조치를 받지 않아도 자기 결정에 따라 법적 성별을 바꿀 수 있도록 해서 사회생활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합리적인 조치이다.

<문화적으로 숙련된 보건의료 환경 구축>
국민건강보험을 통한 의료보장, 법적 성별정정의 요건 완화와 더불어, 트랜스젠더가 좀 더 인권 친화적이고 문화적으로 숙련된(Culturally competent) 보건의료 환경 속에서 의료적 트랜지션을 받는 것 역시 중요하다. 문화적 숙련도란, 의료진이 본인과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에게 문화적으로 적절한 돌봄과 진료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정규 의학교육 과정에서 성소수자, 특히 트랜스젠더의 의료적 트랜지션에 대한 교육이나 수련을 제공하지 않는다. 가정의학과나 산부인과, 비뇨기과 등 개별 학회에서도 트랜스젠더 진료와 관련한 수련이나 가이드라인 역시 부족한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트랜스젠더가 병원에서 마주하는 의사 또는 간호사가 의료적 트랜지션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갖추고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뿐만 아니라, 성소수자를 포함한 다양한 소수자에 대한 감수성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교육도 한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의료진 또한 사회에 내재해 있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트랜스젠더는 의료서비스를 제한적으로 이용하고, 이로 인해서 신체적·정신적 건강과 흡연이나 음주 등 건강 위해 행동 등 다양한 측면에서 건강 불평등을 경험할 수 있다. 트랜스젠더의 제한된 의료접근성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로 호르몬 조치를 제공하거나 성전환 수술을 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갖춘 의료진과 의료기관 자체가 부족해 병원에 가는 것 자체가 어렵다. 둘째로, 의료적 트랜지션이 아니더라도 트랜스젠더는 감기나 복통 또는 건강검진 등 일상적인 이유로 병원에 방문하는데, 이럴 때도 트랜스젠더는 차별을 받을까 봐 본인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다. 셋째로, 의료적 트랜지션을 받거나 일상적인 이유로 병원에 가서 본인의 정체성을 밝힌 이후에도 트랜스젠더는 의료진이나 병원 직원으로부터 차별을 겪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트랜스젠더는 본인이 미래에 겪을 수 있는 진료 거부 등과 같은 부정적인 경험을 예상해 병원 가는 것을 미루거나 아예 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중에서도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과 편견으로 인해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제한되는 점은 트랜스젠더 인구집단의 건강을 악화시킬 수 있는 주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아래 인용문은 의료적 트랜지션의 일환으로 안면성형수술을 받기 위해 성형외과에 찾아간 트랜스여성 A의 경험을 담고 있다. 트랜스여성 A는 의사에게 성별 정체성을 밝히고,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 여성적인 외형이 필요해서 성형수술을 하려고 왔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는 편견이 담긴 본인의 도덕적 기준에 따라서 A씨를 재단하고 비판했다.

“한번은 성형외과에 갔어요. 의사 선생님께 제가 트랜스젠더라는 걸 밝히고, 여성적인 외형을 가지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남자가 그걸 왜 해? 남자가 그러면 안 되지. 남자는 남자답게’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거예요. 나는 트랜스젠더고, 사회생활을 하려면 성형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20대 트랜스여성 A)

  • 「오롯한 당신」 중 169-170p 트랜스젠더가 경험할 수 있는 의료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트랜스젠더 친화적인 보건의료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 2017년 국내에서 수행된 <한국 트랜스젠더의 차별과 건강: 설문조사 기반 양적 연구>에 참여한 총 264명의 응답자 중 65.9%가 의료 서비스를 받을 때, 의료기관이나 의료진이 “성소수자 친화적인지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고 보고했다. 트랜스젠더가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보건의료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층적인 노력이 진행될 필요가 있다. 우선, 의료기관 차원에서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스티커를 붙이거나 성별을 구별하지 않는 성 중립 화장실이나 탈의실을 마련하는 등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지지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그림 3). 그뿐만 아니라, 트랜스젠더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의료진은 환자가 속해 있는 문화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갖춰야 한다. 또한, 환자가 사용하는 언어와 성적 행동을 판단하지 않고 모든 환자가 트랜스젠더가 아니라는 가정을 하지 않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와 더불어 트랜스젠더가 병원에서 마주하는 접수 담당자, 화장실 청소 직원 등 모든 직원에 대한 교육 역시 필요하다.

그림 3.
모두가 불편하지 않은 화장실(장소: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부설 살림의원)


<마무리 지으며…>
한국에서 트랜스젠더는 개인적으로 성별 위화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법적 성별정정이나 병역 면제 등 사회적인 요구로 인해서도 의료적 트랜지션을 받는다. 그러나 호르몬 조치나 성전환 수술과 같은 의료적 조치가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는 국내 환경에서 트랜스젠더는 그 비용으로 인해 경제적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의료적 트랜지션을 받았음을 증명해야 하는 엄격한 법적 성별정정 요건과 의료적 트랜지션을 제공하는 의료진 및 병원의 부족, 트랜스젠더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인식으로 인해 적절한 의료적 조치를 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국민건강보험을 통한 의료적 트랜지션의 의료보장, 법적 성별정정의 요건 완화와 더불어, 트랜스젠더가 좀 더 인권 친화적이고 문화적으로 숙련된 보건의료 환경 속에서 의료적 트랜지션을 받는 것은 트랜스젠더의 삶의 질과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주요한 요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도 이와 관련해 적극적인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시점이다.

참고문헌

1.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3rd ed.). 1980, Washington, DC: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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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Robles, R., Fresán, A., Vega-Ramírez, H., Cruz-Islas, J., Rodríguez-Pérez, V., Domínguez-Martínez, T., & Reed, G. M., Removing transgender identity from the classification of mental disorders: a Mexican field study for ICD-11. The Lancet Psychiatry, 2016. 3(9): p. 850-859.

5.        Reed, G. M., Drescher, J., Krueger, R. B., Atalla, E., Cochran, S. D., First, M. B., … & Briken, P., Disorders related to sexuality and gender identity in the ICD‐11: revising the ICD‐10 classification based on current scientific evidence, best clinical practices, and human rights considerations. World Psychiatry, 2016. 15(3): p. 205-221.

6.        박한희, 트랜스젠더정체성’의 비병리화 담론의 전개와 인권적 의의: 국제질병분류 제11판의 개정을 앞두고. 인권연구, 2018. 1(1): p. 151-200.

7.        Drescher, J., Queer diagnoses revisited: The past and future of homosexuality and gender diagnoses in DSM and ICD. International Review of Psychiatry, 2015. 27(5): p. 386-395.

8.        이호림, 이혜민, 윤정원, 박주영, 김승섭, 한국 트랜스젠더 의료접근성에 대한 시론. 보건사회연구, 2015. 35(4): p. 64-94.

9.        Coleman, E., Bockting, W., Botzer, M., Cohen-Kettenis, P., DeCuypere, G., Feldman, J., … & Monstrey, S., Standards of care for the health of transsexual, transgender, and gender-nonconforming people, version 7. International Journal of Transgenderism, 2012. 13(4): p. 165-232.

10.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Answers to your questions about transgender people, gender identity, and gender expression, 2011, Washington, DC: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11.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5th ed.). 2013, Washington, DC: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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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가 오롯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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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법률신문(2017.02.16). “[판결] 법원, ‘남→여’ 성기수술 안한 성전환자 성별정정 첫 허가.” https://m.lawtimes.co.kr/Content/Article?serial=108116
  3. 한겨레(2013.03.16). ”[단독] 법원, 성전환자 성기수술 안해도 성별 전환 첫 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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