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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웅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HK 연구교수)

 

출처: 조선일보

들어가며

2018년 11월 16일 자 조선일보에는 「건물주 집에 관 들고 가 喪服(상복) 집회… 과격해진 ‘맘상모’」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되었다. 기사에는 상복을 입은 채 마이크를 들고 종이에 쓰인 글을 소리 내어 읽는 한 중년 남성의 사진이 함께 실렸다. 기사의 내용은 이화여대 앞에서 조개구이집을 운영하는 박 모 씨(사진의 주인공)와 맘상모(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 모임) 회원 7명이 두 개의 관과 피 묻은 비단을 들고 건물주가 사는 강남의 한 아파트에 몰려와 성명서를 읽고 건물주 신상을 담은 비방 전단을 주민들에게 돌렸다는 것이다. 기사는 맘상모가 민변과 참여연대, 더불어민주당 등의 지원을 받고 있다면서, 익명의 중앙지방법원 집행관의 말을 빌려 “맘상모는 초법적 단체가 되었다”고 마무리 짓는다. 그런데 이 기사 어디에도 박 모 씨가 왜 이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전달하는 내용은 없다. 그가 읽은 성명서에 어느 정도 자초지종이 들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한 줄도 찾아볼 수 없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는 2015년 이후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그 이전에도 건물주와 세입자 간의 크고 작은 분쟁은 끊이지 않았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게 고조된 것은 여기에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이름이 붙은 뒤였다. 나 역시 이 무렵부터 젠트리피케이션 관련 논문과 책을 출간하기 시작했고, 현재까지도 다양한 언론, 시민사회 단체, 정부기관으로부터 인터뷰, 자문, 강연 등의 요청을 받고 있다. 이처럼 사회적관심이 일면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마련되어 시행되었고, 2018년 들어서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의 숙원이었던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몇몇 긍정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젠트리피케이션의 기세는 그다지 수그러드는 것 같지 않다. 서두에서 언급한 이대 조개구이집 사태와 같은 분쟁이 하루도 끊이지 않고 도시 전역에서 발생한다. 가로수길 우장창창,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 서촌 궁중족발 등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과거의 사례와 그 양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젠트리피케이션 시계는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개념, 이론, 유형

잘 알려진 것처럼 젠트리피케이션 개념은 20세기 중반에 영국에서 발명되었다. 도시사회학자 루스 글래스(Ruth Glass)는 런던 도심의 노동계급 주거지구에 중간계급이 유입되면서 발생하는 변화에 착안하여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를 고안하였다. 그는 이 말의 의미를 “중간계급 이주자들이 도심의 노동계급 지구에 침투하여 원주민들을 대체하고 지역의 경관을 업그레이드하는 현상”으로 정의했는데, 이는 결국 도시공간의 점유와 사용을 둘러싼 계급투쟁/계급지배 과정을 함의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함의는 이후 젠트리피케이션 논의의 발전에서 꾸준히 이어져 내려왔다. 도시연구자 피터 마르쿠제(Peter Marcuse)는 1999년에 “젠트리피케이션은 전문가, 관리자, 기술자, 신흥 부르주아지 등 고소득 가구가 노동계급 지역으로 이주해와 저소득 원주민을 비자발적으로 퇴거시키는 현상”이라고 정의했는데, 이는 비자발적 퇴거에 초점을 맞췄을 뿐, 계급투쟁에 대한 글래스의 강조를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의 계급적 성격은 두 개의 상반된 해석으로 이어진다. 하나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긍정적 해석으로서, 이 진영에 속하는 논자들은 경관의 업그레이드에 방점을 두고 도심 재활성화와 연결시킨다. 이들에 의하면 빈곤하고 낙후된 지역이 계급 혼합을 통해 문화적 다양성 증대, 주거환경 개선, 지역경제 활성화 및 경쟁력 강화의 혜택을 볼 수 있으므로 젠트리피케이션은 적극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선한 것이다. 반면 이에 대하여 비판적인 논자들은 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원주민 또는 세입자의 비자발적 퇴거를 중심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이해한다. 이들에 따르면 젠트리피케이션은 반드시 비자발적 퇴거를 초래한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직접적 퇴거일 수도 있지만, 임대료가 더 낮은 지역을 발견하지 못해 인상된 임대료를 감수하는 간접적 퇴거, 재개발이나 재건축에 따른 주거지/상업시설 파괴로 인한 퇴거 등 다양한 형태로 발생한다. 이후에 설명하겠지만 이러한 모순은 현재 한국에서 나타나는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 사이의 대립으로 그 형태를 드러낸다.

여기서 젠트리피케이션 이론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1980년대 벌어진 ‘공급-수요 논쟁’이다. 이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발생 원인을 두고 전개된논쟁이었다. 닐 스미스(Neil Smith)로 대표되는 공급측면 설명은 실제 임대료 수입과 잠재적 임대료 수입(재건축이나 개보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입) 간의 격차가 클 때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한다는 ‘임대료격차이론’을 주장한다.

반면 데이비드 레이(David Ley)를 중심으로 한 수요측면 설명은 젠트리피케이션이 탈산업화와 교외화의 상황에서 신중간계급이 교외의 중간계급 라이프스타일을 거부하고 도심생활의 진정성을 지향하면서 발생한다는 문화적 설명을 앞세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들 설명은 대립적이기보다 상호 보완적으로 볼 수 있다. 공급측면 설명이 “왜 발생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한다면, 수요측면 설명은 “어떻게 발생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러 나라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이 두 측면을 다 포함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역사적 발전을 설명한 이론으로는 스미스의 물결이론이 가장 영향력 있는 것으로 손꼽힌다. 그에 따르면 젠트리피케이션은 다음과 같은 세 차례의 물결을 타고 전개되었다 :

<제1의 물결(1950~70년대)>
낙후된 도심지역에 중간계급의 문화적 분파가 진입하여 자발적이고 국지적으로 건축환경을 개선하는 것. 이는 ‘고전적 젠트리피케이션’ 또는 ‘개척자 젠트리피케이션’ 등으로 불린다

<제2의 물결(1970~80년대)>
제1의 물결의 결과로 자본이 진입하여 젠트리피케이션이 한 번 일어난 곳에 재차 발생하는 단계. 이를 ‘재젠트리피케이션’이라 부르며, 제3의 물결로 이행하는 과도기로 볼 수 있다.

<제3의 물결(1990~현재)>
국가와 대자본의 공격적 개입을 통해 젠트리피케이션의 규모 및 범위가 크게 확장되는 단계로서, ‘슈퍼젠트리피케이션 (대자본이 침투하여 고급 아파트단지나 대형 쇼핑몰 등을 건설하는 것)’, ‘신축 젠트리피케이션 (정부와 자본의 주도로 나대지나 버려진 산업부지(brownfield)에 대규모 주택 및 상업지구를 건설하는 것)’ 등이 지배적 형태로 나타나며, ‘글로벌 젠트리피케이션 (글로벌 프랜차이즈나 부동산 자본의 이동 또는 글로벌 도시를 지향하는 국가의 정책에 추동되어 비서구권 도시에서 일어나는 젠트리피케이션)’, ‘상업 젠트리피케이션 (주거 건물이 아니라 상가 건물에서 발생하는 젠트리피케이션)’ 등 지리적, 부문적 확대가 활발하게 발생한다. 1

 

젠트리피케이션은 하나의 형태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유형을 지니며, 구체적 상황에서 다양한 변형태로 나타난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주요 유형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주거 젠트리피케이션(residential gentrification)>
주거지역/주거건물에서 발생하는 젠트리피케이션

<상업 젠트리피케이션(commercial gentrification)>
상가건물에서 발생하는 젠트리피케이션

<관광 젠트리피케이션(touristification / tourism gentrification)>
관광 또는 관광지화에 따른 젠트리피케이션

<농촌 젠트리피케이션(rural gentrification)>
국가의 개발정책 또는 도시 중간계급의 귀농으로 인하여 농촌 지역에서 발생하는 젠트리피케이션

이 중 주거 젠트리피케이션을 제외한 나머지 세 유형은 앞서 언급한 물결이론에 따르면 제3의 물결, 그중에서도 글로벌 젠트리피케이션의 하위 범주로 분류될 수 있다. 한국의 젠트리피케이션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유형은 상업 젠트리피케이션과 관광 젠트리피케이션이다. 물론 한국이라고 해서 주거 젠트리피케이션이 없지 않고, 문제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젠트리피케이션 논의는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에 대부분 집중되어 있다. 바로 이 점이 한국의 젠트리피케이션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젠트리피케이션의 특징

 

영미권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은 주거 젠트리피케이션을 지칭하는 용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말이 한국에 도입되는 과정에서 그것의 의미는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을 가리키는 말로 변화하였다. 한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의 일반적 정의는 “예술가와 자영업자들이 문화자본을 투입하여 낙후된 동네를 재생시키면 대자본이 침투하여 이들을 전치 시키는 현상”으로 정립되어 있다. 이와 다르게 정의되는 경우에도 ‘뜨는 동네’, ‘상권’, ‘자영업자’ 등의 핵심어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영미권과 한국 간의 이러한 차이는 용어의 대중화 과정에서 특정한 시공간에 위치하고 실천에 매개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이후 젠트리피케이션 개념의 확산을 주도한 행위자는 고학력의 젊고 정보에 밝은 예술가와 임차 상인 활동가들이었다. 이들은 학문적 개념으로만 사용되던 이 용어를 발굴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펴기 위한 목적에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싸이, 리쌍 등 연예인 소유 건물에서 발생한 건물주-임차 상인 분쟁이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이름으로 언론에 보도되면서 한국에서 이 말의 의미가 이렇게 굳어졌다.

 

앞서 한국 젠트리피케이션의 특징을 상업 젠트리피케이션과 관광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했는데, 이는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는 부문뿐아니라, 그 양상에서도 영미권의 주거 젠트리피케이션과 큰 차이를 나타낸다. 단적으로 한국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중간계급의 이주를 동반하지 않는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영미권 젠트리파이어1들이 도심의 낙후된 지역에 들어와 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반면, 한국의 젠트리파이어들은 주거지를 옮기기보다 낙후된 지역에 상권을 만들려는 관심이 일차적이다. 이는 장소의 가치가 빠르게 등락하는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착하지 않고 부유하는 젠트리파이어들은 장소의 가치증대를 변덕스러운 유동인구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과정에서 장소는 일시적 유행과 트렌드에 좌지우지되는 일회성 소비재로 전락하고 만다. 이에 덧붙여 주거 젠트리피케이션 논의의 미발달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언급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주거 젠트리피케이션이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2년마다 이사를 다녀야하는 세입자의 고통과 설움은 도시생활의 기본 사실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상가세입자와 달리 저항하거나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드물고, 과거와 같은 대규모 철거가 더는 벌어지지 않는 등의 이유로 주거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는 공론화되지 않아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문제를 의제화하려는 노력이 꾸준히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오래지 않아 주거 젠트리피케이션 논의도 수면 위로 떠 오를 것으로 기대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오늘날과 같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초래된 원인은 무엇일까? 이에 관해서는 수요요인, 투자요인, 문화요인, 정책요인의 네 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첫째, 수요요인은 흔히 IMF 사태라 불리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심화된 고용과 직업의 불안정성에서 찾을 수 있다. 대규모 정리해고와 고용축소가 만성화됨에 따라 자영업자가 양산되었고, 이는 상가건물 수요의 급격한 증가로 이어졌다. 자영업자의 수는 2002년 621만 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꾸준히 부침을 이어가다 2017년 현재 570만 명 이상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임대료 상승의 중요한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둘째, 투자요인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뉴타운 정책의 실패로 상징되는 서울 강북지역 아파트 경기의 퇴조현상이 나타났다. 이에 따라 유휴자본이 구도심의 상가 건물로 집중되었고, 상가건물의 수익성이 증가하면서 이러한 현상은 가속화되었다.

셋째, 문화요인은 고용감소에 따라 청년층이 자영업에 대거 진출하면서 중요한 요인으로 부상하였다. 청년 창업자들은 나이에 걸맞은 젊은 감각과 세련된 취향을 앞세워 낙후된 건축환경의 미적 개선을 주도하였다. 이들의 이러한 노력은 젠트리피케이션을 촉발하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마지막으로 정책요인은 중앙 및 지방정부의 도시재생정책과 관련이 있다. 창조도시 담론과 도시경쟁력 담론에 추동된 도시재생정책은 도심의 관광지화를 촉진하여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도하는 효과를 나타낸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다양한 이해관계가 결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동안의 연구를 종합해보면 젠트리피케이션은 다음의 여섯 주체가 결합 또는 협력하여 만들어내는 ‘사건’으로 나타난다. 이 중 가장 명백한 주체는건물주 또는 건물 소유를 통해 이익을 창출하려는 투기자본이다. 이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의 가장 직접적인 수혜자들로서 젠트리피케이션의 존재 이유를 형성한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만들고 조장하는 투기자본과 달리 낙후된 도심지역에 오랫동안 거주한 건물주 중에는 금전적 욕심이 적거나 지역공동체의 화합을 중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건물주들은 반드시 젠트리피케이션에 우호적이지 않다. 이들의 존재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순조로운 진행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바로 이 맥락에서 등장하는 것이 두 번째 주체, 기획부동산이다. 기획부동산은 거래량이 많아지고 거래 액수가 높을수록 이익이 커지기 때문에, 미온적인 건물주를 설득해 현재의 세입자를 내쫓고 임대료를 높이기 위해 사활을 건 노력을 한다.

 

기획부동산 못지않게 젠트리피케이션 유발에 앞장서는 주체로 권리금 업자들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젠트리피케이션 발생 가능지역에 식당이나 카페 등을 세우고 SNS 등을 통해 바람을 잡은 뒤 동네가 뜨면 거액의 권리금을 챙기고 떠난다. 이들 역시 젠트리피케이션 발생 여부에 따라 성패가 결정되기 때문에, 이를 일으키려 결사적으로 애쓴다.

다음은 대형 유통업체다. 이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을 주도한다고 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임대료 인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이들은 이른바 뜨는 동네에 입점하기 위해 천문학적 액수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그 지역 임대료 수준을 상향 평준화하고 기존 임차상인의 비자발적 퇴거를 부추기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다섯 번째는 핫플레이스를 찾아다니며 SNS로 전파하는 힙스터 관광객들, 그리고 한발 늦지만 보다 광범위한 전파력을 지닌 미디어다. 이들은 쉬지 않고 새로운 장소를 발굴하여 알림으로써 도시 공간이 일회성 소모품으로 소비되는데 일조한다.

마지막으로 중앙 및 지방정부를 들 수 있다. 이들은 도시재생 또는 지역 활성화 정책을 통해 지역상권을 붐업시키려 노력하는데, 이러한 노력은 대개 젠트리피케이션을 초래하는 방향으로 귀결된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와 대책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의 핵심은 당연히 임대료 인상으로 인한 주민과 소상공인의 비자발적 퇴거다. 동네의 주거환경이 개선되거나 상권이 활성화되면 그 혜택이 주민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쫓겨나는 역설은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의 핵심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초래되는 문제는 그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구도심 가난한 동네에서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들 동네는 대체로 수십 년간 형성된 지역공동체의 유대가 탄탄한 곳인 경우가 많다. 젠트리피케이션은 하루 아침에 이들 공동체를 산산이 갈라놓고 파괴한다. 갑작스러운 부의 유입은 주민 사이의 이해관계 충돌과 반목을 초래하며, 궁극적으로 주민의 대다수가 이주하고 상업지역으로 바뀌는 결과로 이어진다. 다른 곳으로 이주한 주민들은 수십년 동안 동네를 기반으로 축적한 문화자본과 사회적 자본을 송두리째 상실하는 이중 삼중의 손실을 경험한다.
동네에 남은 사람들은 관광지화에 따른 주거환경 악화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다. 소음, 악취, 쓰레기의 증가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사생활 침해, 그리고 근린편의시설의 전치(displacement)로 인한 생활상의 불편은 하루하루의 일상을 매우 힘겹게 만든다. 이와 아울러 젠트리피케이션은 동네가 개성을 상실하고 획일화됨으로써 상권조차 몰락하고 마는 이른바 문화적 백화(白化)현상을 초래한다. 지역 상권이 활성화됨으로써 발생한 젠트리피케이션이 임대료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해 대형 프랜차이즈나 유통업체밖에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결국 상권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지닌 또 다른 역설이라고 할 만하다.

이와 관련하여 젠트리피케이션은 상권의 급격한 부침을 야기한다. 앞서 논의한 것처럼 뜨는 동네의 유행 주기가 갈수록 짧아지면서 상권의 수명도 짧아지고 있다. 한 때 핫플레이스의 대명사로 불리던 경리단길은 불과 1~2년 만에 공실률 증가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의 속도는 불확실성을 증가시키고, 결국 지역과 업체 모두에게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다.

출처: MBC

이러한 여러 문제로 인해 2016년 이후 젠트리피케이션은 중대한 사회적 의제로 부상하였다. 정부기관과 시민사회단체 등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 대책을 광범위하게 모색했고, 해외 사례를 폭넓게 수집하면서 다양한 대안들을 마련하고 실험했다. 지금까지 각급 정부기관에서 젠트리피케이션 대책으로 시행된 정책에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제정, 주민참여기구 결성 및 상생협약 체결, 공공안심상가 운영, 지구단위계획을 통한 통제, 소상공인 지원정책 등이 있고, 추진되거나 논의 중인 대책으로는 개발신탁을 통한 자산화, 자율상권법, 과밀업종 제한정책, 상가건물 임대료 공개 시스템 등이 있다.
이러한 사실은 해외에서 만들어지고 실행된 대안들이 이제 대부분 도입되고 시행되거나 최소한 검토되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더 이상 세계 어딘가에 숨어서 발견되기만을 기다리는 혁신적 솔루션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시도할만한 것은 다 시도해보았고, 시도하지 못한 것은 그럴만한 사정이 있는 경우가 많다. 핵심은 이 모든 대책이 젠트리피케이션을 억누르는데 역부족이었다는 점이다. 아니, 그렇게 보인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사회의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는 백약이 무효인 난제로 나타난다.

그러나 조금 깊숙이 상황을 들여다보면 겉보기와는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개정을 둘러싼 난관에서 드러난 것처럼 젠트리피케이션에 이해를 가진 집단의 힘은 너무나 세다. 계약갱신기간을 현재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환산보증금제도가 그대로 남아 법 개정의 혜택을 볼 수 있는 자영업자의 숫자는 여전히 제한을 받게 되었다. 환산보증금이란 월세×100+보증금을 계산한 액수로서, 서울의 환산보증금 기준 금액은 현재 6억 1천만 원이다. 한마디로 이는 “부유한 자영업자는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의도를 지닌 제도다. 그러나 이는 임대료가 높은 서울 핵심 상권에서 영업하는 자영업자들의 상당수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뿐 아니라, 부유한 자영업자는 건물주와의 관계에서 약자가 아니라는 잘못된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들의 상대적 부가 건물주의 불합리한 임대료 인상이나 갑작스러운 퇴거 요구를 감당하도록 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나아가서 법 개정 과정에서 계약갱신기간 연장에 따른 건물주의 손실을 보전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었던 것을 상기하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풀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대책이 미비해서가 아니라 그것의 제대로 된 시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사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하나만 확실하게 개정해서 집행해도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의 상당 부분은 잡을 수 있다. 기존 법의 문제와 허점은 수없이 지적되었고, 어떻게 개정해야 하는지의 방안도 이미 축적되어 있다. 몰라서 못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의 집행을 담당한 정부기관의 태도를 보면 적지 않은 이중성이 엿보인다. 한편으로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 마련에 골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문제의 우선순위가 실제로는 그리 높지 않다는 심증이 드는 경우가 많다.

단적으로 정부가 과거의 국토개발계획을 대체한 새로운 방식으로 추진 중인 「도시재생 뉴딜」 정책의 사례를 보면, 젠트리피케이션 발생에 대한 잠재적 우려에 대해 상생협약활성화, 공공임대상가공급, 주민참여라는 세 가지 방안을 채택하고 있다. 이 셋의 공통점은 현장에서 이미 효과 없음이 검증된 대책들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굳이 이 세 가지를 채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효과는 없지만 손쉽게 할 수 있는 정책들로 생색만 내고 끝나려 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도시재생 뉴딜의 4대 정책목표

출처: 수정시원연구원

 

서구의 상업 젠트리피케이션

1960년대 이래 영미권을 비롯한 서구의 젠트리피케이션 논의는 주거 젠트리피케이션에 집중되어 전개되었다. 이는 주거 임대료가 상가 임대료의 수익 차로 인하여 자본이 주거시설에 몰렸기 때문이다. 서구사회의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은 199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가시화되었다. 이는 젠트리피케이션 제3의 물결의 한 양태로서, 상업자본의 집중, 국제화, 금융화를 통해 갭, 스타벅스, 이케아, 테스코 등의 글로벌 브랜드가 도심 곳곳에 다량의 토지를 고가로 임대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각국의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도시정책을 채택하고, 이에 따라 도시정책에 대한 금융의 침투 증가하면서 도시공간의 상업적 이용이 극적으로 증가하였다. 레스토랑, 쇼핑몰, 수변공원, 극장, 브랜드 네임 오피스 타워, 브랜드 네임 박물관, 관광지, 복합문화회관 등이 기존의 근린편의시설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도시의 경관이 바뀌어 나갔다.

 

이러한 지구적 변화의 결과로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이 주요 도시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뉴욕에서는 2011~16년 기간 동안 업체 수가 25% 증가했으나, 저소득 지역의 이민자 운영 업체 수는 도시 평균 폐업률(2%)의 두 배를 기록했다. 로어 맨해튼이나 브루클린 같은 젠트리피케이션 발생 지역에서 서점, 세탁소, 철물점 등의 근린상업시설이 패션 부티크, 은행, 대형 프랜차이즈 등으로 대체되는 현상이 극심하게 나타났다. 런던의 경우, 정보창의산업으로의 산업구조 변동에 따라 런던 동부의 구 공업지구가 복합용도지구로 변경되면서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이 촉발되었고, 그 결과 지역 소규모 상점의 대규모 전치가 발생했다. 파리에서는 2000년대 이후 마레(Marais) 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이 급격히 진행되면서, 2001~11년의 10년간 상가임대료가 6배 상승하였고, 2007~11년 사이의 업종 전환율은 40%에 달했다.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지역 기반 영세 자영업, 소규모 패션산업, 예술가 등이 글로벌 브랜드와 유통체인의 진입으로 쇼핑업체, 유기농 식품상점, 헬스&뷰티숍 등으로 대체되었다.

이들 도시에서도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은 비교적 최근에 발생한 문제이고, 여전히 젠트리피케이션 논의의 중심은 주거 젠트리피케이션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은 미비한 편이다. 뉴욕에서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인 SBJSA (Small Business Jobs Survival Act)가 1984년에 발의된 이래 현재까지 계류 중이다. 이를 지지하는 측에서는 10년 임대기간 보장, 분쟁시 제3자 중재, 재산세 전가 금지 등을 주장하고 있고, 반대하는 측에서는 장기임대 건물주에 세제 혜택 인센티브를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미니애폴리스에서는 민간기구 북동투자조합(NorthEast Investment Cooperative)이 결성되어 주민들이 공동으로 상가건물을 매입하고, 주민 소유 소상공업체에 임대하는 자산화 전략이 시행되고 있다. 파리에서는 근린업종 유지와 소형 상점보호를 목적으로 전체 도로의 16%(2007년 기준)를 보호상업가로로 지정하여 총 30,000여 개의 수공업/음식 관련 소규모 업체에 낮은 가격에 임대하고 있다.

이들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서구 사회에서도 이제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이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점이며,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리 효과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점이다.

 

나가며

영국의 문화이론가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는 “방문객은 아름다운 경관을 보고, 주민은 자기가 일하고 친구들이 있는 장소를 본다”고 말한 바 있다. 지역에 사는 주민들에게 경관은 부차적이다. 내가 사는 곳이 아름다운 곳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사는 데 큰 불편함은 없다.

그러나 지역을 상업화하려는 자본에 경관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경관이 삶에 앞서는 순간, 주민은 장소를 상실하게 된다. 젠트리피케이션, 그것도 관광지화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현재 한국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우리의 장소감을 ‘보고 사진 찍고 버리는’ 일회성 소비재로 변화시킨다. 이는 그 장소에서 살거나 직업활동하는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자기가 만든 장소에서 자기가 쫓겨나거나 남아있더라도 장소에서 소외되는 역설은 젠트리피케이션이 궁극적으로 계급투쟁이라는 인식을 재확인하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은 정치적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환상적 솔루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내가 암시한 바는 문제해결의 관건이 새로운 해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해법을 관철시킬 수 있는 힘을 갖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많은 사회문제와 마찬가지로 이 문제 역시 순조로운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해결을 막는 세력이 있고, 그들의 힘은 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의 극복을 단박에 이루려 하기 보다 긴 호흡으로 작은 승리들을 하나씩 달성해가는 현실주의적 전략을 취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젠트리피케이션 없는 도시는 가능한가?

참고:

  1. 스미스의 물결이론
태그:                                         

젠트리피케이션 없는 도시는 가능한가?”에 대한 5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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