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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하고 가세요!”

매 학기 초, 광활한 경영경제관 1층 로비를 가득 채우는 목소리가 있다. 선거관리위원회와 선거 후보자, 선거 운동본부원들의 구호이다. 교정을 울리는 이 목소리는 공허한 외침이 될 때가 많다. 60대 총학생회 ‘온’은 연장투표 끝에 55.82% 투표율을 기록하며 힘겹게 당선되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57, 58, 59대 총학생회 역시 연장투표 과정 끝에 당선되었으며, 작년 11월 경영경제대학 단과대 학생회 선거 또한 연장되어 54.72%의 투표율로 겨우 마감되었다. 학생을 대표하기 위해 존재하는 학생기구가 학생의 관심 밖에 있다.

정치적 무관심과 정치 혐오

‘정치적 무관심’은 요즘 활발히 진행되는 청와대 청원이나 지난 촛불 대선 등으로 볼 수 있는 일련의 시대 상황에서 철 지난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촛불 정국 전까지만 하더라도 기성의 정치는 정치적 무관심에 허덕였으며,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게 낮은 투표율이었다.

낮은 투표율의 실체를 알기 위해선 개인이 어떻게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투표하지 않는 행위는 대부분 정치와 자신을 괴리시키는 정치적 무관심에서 출발할 때가 많다. ‘정치는 내 영역이 아니라는 것’, ‘정치는 너무 골치 아픈 것이라는 것’, ‘정치판에서는 그놈이 그놈이라는 것’ 등 여러 이유로 스스로 정치적 고민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그중 정치적 무관심을 발생시키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정치에 대한 불신의 일상화를 꼽을 수 있다.

출처: “그들은 왜 투표를 거부할까”, <시사IN>, 2014년 6월 3일

 

선거관리위원회의 2014년 조사에 따르면, 투표할 생각이 없는 응답자 중 50.3%가량이 ‘투표를 해도 바뀌는 것이 없어서’라고 답변했다. 정치에 대한 낮은 효능감은 정치적 무관심으로 표출될 뿐만 아니라, 정치 혐오라는 감정으로 연결되곤 한다. 정치에 대한 무력감은 정치 전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요구하는 것들이 실제 정책으로 반영되지 않는 순간, ‘정치는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정치는 단지 분열감을 조장할 뿐이다’ 등의 사고로 이어지며 정치에 대한 환멸감과 혐오의 감정을 불러온다.

정치 혐오는 정치성을 띠는 것들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깨시민 코스프레’, ‘씹선비’, 등 정치적인 의견 표출 자체를 조롱하는 표현들이 빈번하게 쓰이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정치 혐오에 기반을 둔 이러한 단어들은 정치적 의견의 앞뒤 맥락을 간단히 지워버린다는 특성을 가진다. 제기된 문제들의 원인을 찾으려 논의를 끌어내기보다는 문제 제기 자체를 지적하며, 오히려 문제를 제기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다. 이런 단어들은 가볍게 소비되며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행위 자체를 터부시한다. 정치 혐오는 정치적인 것에 대해 단순히 ‘정파적’인 특성에만 집중하여 비난하는 태도이기 때문에 정치적 무관심을 정당화하며 방조한다. 정치적 무관심을 말하기 위해 정치 혐오를 논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현재 사회에 완벽히 들어맞지 않는 분석을 굳이 소개한 이유는, 이것이 현재의 학생 사회를 설명하는 데는 상당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촛불이 일었지만, 그 여파가 대학 안까지 미치지는 못했다. 총학생회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관한 질문에 대해 30.6%의 응답자들은 “학생기구에 관해 관심 없음”을, 34.7%는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답했다[1]. 부정적인 인식에 대한 근거로 66.7%의 응답자는 “불성실한 공약 이행, 기대감의 부재”를 뽑았다. 학생 기구에 대한 무기력감은 무관심으로 이어지기 쉽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무기력감은 무관심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무관심과 정치 혐오 역시, 학내 정치에서도 기성 정치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정치적 무관심과 혐오는 왜 이 사람이 왜 이 말을 하는지, 그것이 왜 문제인지,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억제한다.

우리는 왜 정치를 혐오하는가

과거 권위주의 정부 하의 학생 사회에는 분명한 동력이 있었다. 정부의 억압은 민주주의의 적으로 규정되었고 이에 저항하는 것이 대학생의 역할이었다. 학생 사회는 정부의 노골적인 불의에 저항하기 위해 연대했으며 광장에는 저항이 존재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형식적으로나마 자리를 잡아갔으며, 더 이상의 거악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받아들여진 현실에서 학생 사회는 과거와 비교하여 역동성을 잃어 갔다.

이에 더해 청년 취업난은 정치적 무관심을 더 심화시킨다. 취업률이 대학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 현실에서 대학가에는 세부 전공의 통폐합 등 기업의 수요-공급 원칙에 기반을 둔 기업화의 바람이 불었다. 두산 재단의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되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공동대책위원회[2]가 조직되었지만, 한편에서는 대학 기업화는 시대적 숙명이라는 여론 또한 존재했다. 함께 행동하기 힘들어졌다. 취업에 도움이 되는 것이면 ‘선(善)’이 되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학내 문제에 대해 고민할 지점을 잃어갔다.

시대적 상황 외에 구조적인 이유로도 학생들은 학내 사안에 대해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기 쉽다. 학생들은 짧게는 4년씩 학교에 다니고 졸업한다. 정치적 변화를 만드는 장기적인 담론을 지속하는 것이 자체가 어려울뿐더러,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기도 쉽지 않다. 학생들이 힘들게 정치적 변화를 끌어내더라도 그 변화의 실질적인 수혜자가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학생 기구의 비윤리적인 행정은 정치적 무관심을 강화한다. 최근 아시아문화학부 중국어문학전공 17년도 학생회장의 횡령 사건이 있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1년에도 300만 원가량의 학생회비가 개인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있었다[3]. 학생 기구의 비윤리적 사건은 학생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더욱 정당화한다.

 학생 사회가 자치로부터 멀어져 간 배경에는 외부적인 영향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학생들은 무비판적으로 정치 혐오의 자세를 습득하고 스스로 강화해 오기도 했다. 문화사회연구소 김성윤 소장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는 환상으로부터 정치 혐오가 시작된다고 말한다[4]. 우리는 어느 한 극단에 있는 경우, 중립성을 훼손한다고 믿는다.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견해를 밝히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판단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다른 쪽의 의견을 듣지 않는 반-다원주의적 행위이자 편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판단은 ‘쿨’하지 않은, 다만 ‘유별난’ 행위라고 규정될 뿐이다. 그리고 동시에 정치적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분란을 조장하고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이기 때문에 무의식 속에서 정치적 무관심과 혐오는 규범화되었다.

하지만 아무 의견도 내지 않는 행위는 정치적 중립이 아니다. 판단의 유보뿐이다. 정치적 이슈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판단을 보류하는 행위는 중립적인 행위로 포장되곤 한다. 판단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고민을 중단시킬 때, 다양한 정치적인 의견은 무시된다. 다원주의라는 이름 아래서, 당위를 판단하는 기초적인 행위를 단순히 나쁜 것이라고 치부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인 행위를 하지 않으려는 행위는 결국 자신 또는 주변의 불합리를 외면하는 것일 뿐이다.

탈정치화, 왜 문제인가?

탈정치화는 학생 스스로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무관심 속에서 당선된 학생 기구는 학생에 대한 책임 의식을 잃는다. 학생들이 학생 기구에 관심 두지 않기 때문에 학생 기구 역시 학생들에게 관심 가질 이유를 잃기 때문이다. 대표자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학생 기구는 학생들의 관심을 넘어서 특정 사안에 대해 가치판단을 할 수 없다. 학생 기구의 ‘대리인’으로서의 역할은 학생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대표성을 잃는 순간, 행동의 정당성과 추진력을 잃기 때문이다. 학생 기구에 대한 무관심은 학생 기구의 탈정치화를 가속하며, 결과적으로 그 역할을 축소한다.

현재 학생 기구의 모습은 대부분 복지와 소통에 관한 분야이다[5]. 정책 자료집의 세부공약 중 교육환경, 문화가 큰 틀에서 복지의 내용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학생 기구의 정치적 역량을 사용할 수 있는 학내사안에 대한 공약은 많지 않다. 그리고 실제로도 학생 기구는 졸업준비 행사, 중간고사 간식 사업, 음식점 제휴 등 복지 사업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많다. 복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학생기구의 역할이 복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부의 전공개방모집제도는 절차적 정당성을 잃었고, 전공 쏠림 등의 부작용은 실패한 광역화 모집제도 이후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런데도 학생 기구는 전공개방모집 제도에 대해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 본부에 전달하겠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는 데 그치고 있다. 학생 사회의 탈정치화는 학생 기구가 아무 정치적 행위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면죄부를 제공한다.

최근 국제물류학과에서 B 교수의 과거 성추행 사건에 대해서 퇴진 여부 논란이 있었다. 해당 학과 학생회에서는 여론 조사와 함께 교수진과 학생들 간 대화의 장을 개설했다. 그렇지만 결론적으로 교수 퇴진을 반대하는 소수의견이 있었으며, 해당 사건에 대한 추가적인 불만이 없다는 근거로 학생회는 교수에 대한 추가적인 징계를 요구하지 않았다. 해당 교수는 자신의 교수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언제든 다시 강단에 설 수 있는 상황이다. 대학교수의 제자 성추행은 전체 학생의 안전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이에 대해서 학생회는 교수의 영구적인 퇴출을 요구할 수 있는 당위가 있다.

별 탈 없이 임기를 마치고 싶어하는 보통의 학생 기구는 움직이기를 주저한다. 그리고는 ‘충분한 의견 수렴’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보인다. 하지만 학생 사회에서의 ‘충분한 의견’은 해석의 여지가 있는 단어이다. 그래서 학생 기구는 행동하기보다는 여론 수렴을 핑계로 행동하지 않을 때가 많다. 학생 기구는 의견 수렴을 근거로 행동하지 않기보다는 학생의 의견을 수렴하는 창구이자 학생을 대표하는 주체적인 대리인으로서 적극적으로 기능해야 한다. 스스로 역할을 축소하는 학생 기구는 결코 학생을 대표할 수 없으며, 학생 기구로서의 존재 이유를 잃는다.

 

▲ 중앙대 학생들의 시국선언 ©중앙문화

 

 지금의 현실에서 학생들이 탈정치화에 대해 명확한 문제의식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취업난은 학생들을 더욱 압박하는 한편, 학생 기구는 점점 제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정치화라는 것에서부터 멀어져 간다. 하지만, 정치적인 것에 거부감을 가지는 모습처럼 정치 혐오는 스스로 강화되는 지점도 있다. 학내가 탈정치화됨에 따라 중요한 정치적 사안은 묻히기 쉽다. 학생 기구는 찬반이 갈리는, 명확한 답이 보이지 않는 문제에 관해선 결정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 학생 기구는 학생의 의견을 모으고 이를 대변하는 기관에서, 학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립적’인 기관이 되어버렸다. 결국, 탈정치화는 학생 기구의 역할을 축소 시키는 동시에 학생 사회를 정치적 담론으로부터 소외시킨다.

그러나, 정치는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한다. 학내 정치화는 학내 여론 형성으로 이어지며, 학생 기구를 적극적으로 기능하게끔 만든다. 구조 내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은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 시스템에 의문을 던져야 한다. 시민의 교양에 대한 논의가 아닌, 당사자가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에서부터 비로소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탈정치화에 직접적인 피해를 당하는 것은 결국 학생이다. 학내 사안에서의 당사자가 학생인 상황에서, 우리는 주변의 이야기에 관심 가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정치적이기 때문에 회피하기보다는, 우리와 관련이 있는 것이고 따라서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볼 필요성이 있다. 탈정치화의 결말은 더는 학생들의 의견이 없어 학교 본부의 지시에 일률적으로 따르는 학교, 즉 학생이 없는 학교이다. 정치화의 시작은 내가 정치 혐오를 하고 있다는 것, 누군가의 외침에 귀를 막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있다. 인지하는 것으로부터 목소리가 생겨나고, 학생 기구가 움직인다.

[1] “대학생 스스로 진단한 학생기구”, <중대신문>, 2017년 11월 6일

[2] 공동대책위원회: 2015년 학교 본부의 일방적인 학사개편에 대항하여 구성된 학생의견수렴기구.

[3] “A학과 학생회장 학생회비 횡령 의혹”, <중대신문>, 2011년 4월 10일

[4] “정치적 의식 없는 청년들의 무의식”, <중앙문화> 58호, 김성윤

[5] 60대 총학생회선거 선거운동본부 기호 1번 ‘온’ 정책자료집

무관심 속의 학생 자치, 그 탈정치화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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