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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문화가 너무 깊이 자리 잡혀 있어 하루아침에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이 힘들다면 서로 나누어 보면 어떨까. 비건 한 사람 몫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채식을 해보면 어떨까. 이번 학기 중앙문화는 동물권을 지키기 위해 채식 릴레이를 실천했다. 비건의 삶은 어떤지 거만하게 체험하는 일회적 이벤트는 아니다. 중앙문화에 채식 문화가 자리 잡는 계기였으며 몇 구성원에겐 지속적인 채식주의자가 되는 첫 걸음이 되기도 했다. 이에 중앙문화는 일주일에 두 명씩 채식주의자가 되어 겪은 경험들을 공유한다. 독자 여러분도 중앙문화의 도전에 힘입어 조금씩 육식 습관을 덜어낼 수 있길 응원한다.


그래 한 번 해보지 뭐!

 편집위원 김윤진

 

16살 즈음 때까지만 해도 삼겹살을 먹지 않았다. 징그러워서였다. 다른 고기들까지 모두 먹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고기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다. 그 막연한 거부감은 거대한 구조에서 기인했던 것 같다. 불판 위에서 타고 있는 살덩어리가 어떻게 살아있는 돼지에서 왔는지 생각하면 끔찍했다. 그러나 동물이 살아가는 환경에 대해서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냥 털이 무성한, 흙에서 뒹굴었을 거 같은 그런 걸 먹는다는 게 징그럽다는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생각이었다.

 

채식주의를 실천하면서부터 한 동안 잊고 있던 고기에 대한 혐오를 다시 떠올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름 동물의 입장에서 느끼는 혐오감이었다. 채식주의를 릴레이 차원에서 일주일 실천해 보았는데 ‘사서’ 먹을 것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없었다. ‘삼겹살 무한리필’ 고깃집부터 장조림에 들어가는 소고기까지, 고기는 우리 삶 아주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그 많은 고기는 어디서 오는지 돌아보면 일상에서 숨겨진 공장에서 비밀스럽게 수많은 동물이 ‘고기’가 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동물로 태어나지 않은 걸 수도 있다. 애초에 고기로 태어나 고기로 길러지고 그렇게 죽는 걸 수도…

 

 

채식인의 권리

 

구성원들이 다 같은 경험을 했듯, 채식의 가장 난점은 메뉴 수가 적다는 것이다. 비건 식당이 늘어나고 채식인 사이에서 메뉴를 공유하는 움직임이 활발해 졌지만 그래도 아직 중앙대학교 주변에서 채식 메뉴를 찾아보기란 힘들다. 그래도 살이 쭉쭉 빠질 정도로 음식이 없는 건 절대 아니다. 흑석동에만 해도 ‘떡볶이’, ‘볶음밥’, ‘떡볶이 덮밥’, ‘샐러드’ 등 식사거리가 꽤 있다. 간단한 간식거리로는 ‘프링글스 오리지널’, ‘노브랜드 라면과자’, ‘노브랜드 초콜릿’, ‘해시브라운‘을 먹는다.

 

채식인에게 메뉴 선택권이 좁은 이유는 우리 사회 전반이 육식문화이기 때문이다. 채식을 하다보면 ‘이런 거에도 우유가?!’하고 깨닫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육식문화에 기생하는 데 변명거리가 되지 않는다. 적긴 하지만 분명히 비건 메뉴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비건 메뉴가 없다고 한들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편리성을 앞세워 동물의 생명권을 외면한다면 ‘비윤리적이며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이런 육식문화를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할지도 모르겠다. 계속해서 채식 메뉴를 찾으면 되니까. ‘윤식당 1‘ 방송을 보며 많은 외국인들이 “비건 메뉴는 없냐”는 질문을 했다. 한국 식당에서 같은 질문을 했다면 대다수는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비일상적인 한 개인의 질문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식당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요구하니 비건 메뉴가 생겨났다!(물론 완벽한 비건은 아니었지만.)

 

처음엔 ‘왜 불고기 파는 곳에 가서 비건 메뉴를 찾지? 스테이크 집 가서 고기 안 들어간 메뉴는 왜 만들지 않냐고 요청할 수는 없잖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채식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왜 채식인은 그들만의 음지로 숨어야 해?’ 채식인이 먹을 수 있는 다양한 메뉴는 채식식당 밖에서도 늘어나야 한다. 곳곳에 침투해서 사회 전반에 채식 문화가 뻗쳐야 한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해서 “고기는 빼고 주세요”,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은 없나요?” 요구해야 한다.

 

 

몸을 건강하게!

 

채식을 하면 살이 쪽쪽 빠진다, 영양소가 모두 충족되지 않는다는 걱정이 많다. 그러나 나는 그 반대의 경험을 했다. 채식을 하고난 후 내 몸에는 ‘생활패턴’이라는 게 생겨났다. 매일 같은 시간에 화장실에 가고 같은 시간에 배가 고프다. 시험기간이나 과제가 폭탄으로 밀려 며칠씩 밤을 샐 때도 건강했다. 일주일을 넘게 새벽 3시에 핫식스와 컵라면을 먹어도 군살이 찌지 않았고 피도 쌩쌩 잘 돌았다. 따로 운동을 하지 않아도 몸이 건강해진다.

 

단순히 경험적인 이야기만은 아니다. 많은 연구도 현대인의 고기 섭취가 건강하지 않다고 증명하고 있다. 미국 공중보건국장의 보고서는 유제품을 먹은 채식주의자들이 고기를 먹는 사람들에 비해 16퍼센트 낮은 콜레스테롤 수준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으며, 완전 채식주의자들은 29퍼센트 낮은 콜레스테롤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보고서는 콜레스테롤과 지방의 소비량을 줄이고, 정백하지 않은 곡물과 곡류 제품, 채소, 과일의 소비량을 늘릴 것을 권고하고 있다. 2

 

혹~시나 과학이 인간에게 고기가 꼭 필요하다고 말해도 ‘착취한’ 고기를 먹어도 된다는 당위는 없다. 인간의 ‘조금 더 건강한 삶’을 위해서 동물을 착취하고 강간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기 때문이다.

 

 

정신도 건강하게!

 

채식을 하면서 나는 나 자신과 동물들에게 덜 부끄럽게 일상을 살 수 있다. 나만 편하자고 외면해오던 동물권을 직시하면서 나는 비로소 육식에 대한 자기합리화를 멈췄다. 끓는 라면에 달걀 하나 풀 때의 찝찝함, 죄책감을 멈출 수 있다. 스스로 동물권을 생각해오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고기를 먹을 때 마냥 즐거운 사람일지라도 그냥 눈 한 번 딱 감고 ‘가시적인’ 고기만 일주일 보이콧 해본다면 생각보다 쉽게 동물권을 받아들이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사실 마음이 동물권을 밀어내던 이유는 논리 정연한 근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형용할 수 없는 불편함이 두려워서이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에 대해 잠시 더,

 

주변 사람들은 채식주의자를 대할 때 잘 해줘봐야 ‘배려’해준다. 배려라 함은 “나는 고기메뉴 먹을게, 너는 다른 거 먹어” 정도로, 채식주의자와 육식인 모두에게 메뉴 선택이 가능한 음식점에 데려가는 것이다. 그러나 채식주의는 선호, 그러니까 편식이 아니라 옳음을 실천하는 행위이다. 굳이 채식을 할 수 있는 여건에서 ‘나는 채식을 하지 않으니 고기를 먹겠어’라고 선택하는 태도는 마치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친구를 둔 인종차별주의자이다. 그러니, 채식주의자는 하나의 배려 대상이 아니다.

 

부끄러움을 느꼈다면 자기가 가능한 선에서 채식주의를 실천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채식주의를 실천하지 못 한다면 적어도 육식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종차별주의자임을 공고히 알린다는 문제도 있지만, 채식주의자인 타인을 적어도 ‘배려’하지 않는 행위이며 아직 육식을 하는 사람들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도록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SNS친구 중 한명이 평소 동물권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자신이 먹은 고기 사진을 자랑했다. 더욱 기만적인 포인트는 그 사진을 게시하며 ‘비건분들을 위해 사진은 뒤쪽으로 넘기다 보면 나온’다는 코멘트였다. 최소한 자랑은 하지 말자!

 

개고기를 먹고도 자랑을 하지 않는 이유는 사회적 비난이 두려워서이다. 그러나 아직 다른 고기를 먹는 데에는 비난과 비판이 뒤따르지 않는다. 언젠가 모든 동물에 대한 모든 착취가 부끄러운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생기길 기대한다.

 

 

지향이 중요하다

 

앞서 ‘그냥 눈 한 번 딱 감고 가시적인고기만 일주일 보이콧’하라고 제안한 건 채식을 쉽게 생각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채식주의는 여러 단계가 있다. 특정 고기만을 보이콧하는 단계부터 채소도 먹지 않고 과일만 먹는 단계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그 단계별로 이름을 붙인다면 그 틀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내가 ‘페스코 3’다이어터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먹은 고기 때문에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채식을 ‘지향’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최대한 비건을 지향하면서 나만의 타협점을 찾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고기는 먹는다고 타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고기?’라고 의아해 하겠지만 생각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고기는 많다. 라면 스프, 쌀국수의 육수, 각종 과자에 뿌려진 소스 등… 채식주의 관련 영상에서 ‘집에서 담그는 김치’를 타협점으로 삼는 사람을 보기도 했다.(김치 속에 젓갈이 들어가기 때문에 김치를 채식으로 볼 수 없다.)

 

채식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면 떡볶이를 먹을 때 치즈를 빼고, 쌀국수를 먹을 때 고기를 빼고, 라떼를 마실 때 휘핑크림을 빼고 주문해보자! 불필요한 달걀은 굳이 넣지 않도록 하고 꼭 필요할 때는 ‘방사유정란’을 구매하자!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을 땐 청포도를 얼려 먹어보자!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해 나가다보면 채식지향은 생각보다 “해 볼만 하다!”

 



나의 이중성

편집위원 조용주

 

한국보다 외국 문화를 좋아하고, 즐기는 나이기에 어릴 때부터 채식에 대한 관심은 많았다. 하지만 진심으로 채식에 공감해본 적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셀럽이 채식을 하면, “역시 누구누구는 천사야”, “힘들 텐데 진짜 대단하다” 등의 찬사를 내뱉는 게 다였다. 대학에 와서 소수자, 약자에 대해 배우고 활동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비참한 노동 현실에 대한 수업 후 먹는 학식에 고기가 적다고 불평했고, 여성 인권 신장 집회 후에 고기를 구워 먹으러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머릿속 수많은 약자와 소수자 중 동물이 자리할 곳은 없었다.

 

채식 릴레이를 시작하며 가장 두려웠던 것은 나의 이러한 모순이었다. 단순히 무지했다고 치부할 수는 없었다. 동물권에 관한 글과 채식하는 이들의 글을 봐도 대단하다-며 동물의 고통을 글쓴이의 대단한 민감함, 범 일반적 감수성 정도로 치환해버렸기 때문이다. 나의 이 모순은 채식 릴레이 둘째 날, 동생에 의해 강렬히 상기되었다.

 

늦게 일어나, 밥맛이 없었다. 채식을 하다 보니 집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은 먹을 수 없는 처지이기도 했다. 아쉬운 대로 식탁에 있는 사과를 집어먹는데, 동생이 대뜸 비웃으며 물어왔다. “사과는 먹을 수 있어? 거기에 뭐가 들어있을 줄 알고?” 웃어넘길 수 없었다. 제 딴에는 장난이었겠지만, 듣는 나로서는 꽤나 불쾌했다. 겨우 채식을 이틀 하는 나도 이런데, 평소 채식을 하는 분들은 어떨까, 싶었다. 순간 내 주변의 채식인들 앞에서 나의 언행은 어땠는지가 스쳐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초등학교 친구 ‘알리’가 떠올랐다.

 

문제의 사과. 아삭하고 맛있었다.

 

셋째 날부터는 다양한 식재료로 다양한 요리를 해 먹었다. 사진은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알리는 파키스탄인이었다. 나와 친구들은 덩치도 크고, 피부색도 달랐던 알리를 ‘놀리며‘ 친해졌다. 놀림은 덩치, 피부색이 아닌 알리의 식생활로 향했다. 무슬림인 알리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 4 놀림의 시작은 왜 고기를 먹지 않냐고 묻는 것이었다. “무슬림은 돼지고기만 안 먹는 거 아니야? 왜 안 먹어?“ ”야 이거 진짜 맛있는데~“ ”너 이슬람교 맞아?“와 같은 질문들이 난무했다. 친해질수록, 아니, 이방인이라는 알리의 정체성이 옅어질수록 놀림의 정도는 점점 심해졌다. ”알리, 너 지금 과자 먹는 거야?! 거기에 고기 들어가 있어!”하며 성분표 보여주기, 실제로 고기 성분이 없는 과자(감자 칩)를 먹을 때조차 큰 소리로 “그거는 먹어도 돼?”라며 무안을 주기. 이 같은 놀림은 한 친구의 도를 넘는 발언으로 선생님의 귀에 들어갔고, 중단되었다. “너희 가족, 집에서 몰래 치킨 시켜 먹는다며?”.

 

어떻게 지금까지 잊고 살아왔는지 수치스러울 정도로 무례한 질문들이다. 더욱이 내가 채식을 하다가 받은 무례한 질문을 통해서야 이런 폭력적 언사를 복기했다는 이기적인 모습에 더 창피하다. 그런데 그 이후에는 저런 질문을 하지 않았느냐고 스스로 물어보면, 그렇지 않았다. 나는 불과 몇 주 전에도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무슬림은 아니지만 동물권에 대해 고민하며 채식하는 친구에게, 알리에게 한 질문과 너무나도 닮아있는 질문을 했다.

 

채식릴레이가 끝난 후, 나는 여전히 고기를 먹고 있다. 하지만 더 적게 먹고자 한다. 또한 고기를 먹을 때 불편함을 느끼지 않음을 경계하고자 한다. 채식하는 친구에게 나의 말이 어떻게 느껴질지를 고민하며 발화한다. 동물권에 대해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스스로의 이중성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

편집위원 김지수

 

채식 릴레이 기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주변인 생각이 났다. 비거니즘은 모든 동물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살기를 바라는 삶의 양식으로, 단순히 동물성 식품을 섭취하지 않는 식습관을 의미하지 않는다.

 

비거니즘과 관련해 그분께 들은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는 우유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유의 경우 동물을 직접 살해하는 행위에서 비롯되지 않기에 동물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러나 인간들이 소의 젖인 우유에 대한 막대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강간 막대를 사용해 젖소들을 억지로 임신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은 이루어 말할 수 없었다.

 

충격은 잠시였다. 동물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은 머릿속에만 있었고, 행동으로 실천하지는 않았다. 그때의 충격을 상기하며 일주일간 채식 릴레이를 시작했다.

 

처음 채식을 시작할 때 어려움을 겪었던 점은 정보의 부족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음식에 들어간 고기만 안 먹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공부하면 할수록 일상 속에서 접하는 무수히 많은 식품에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과자나 음료를 고르는데도 제품 성분을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문제는 무수히 많은 제품의 성분 중 어떤 것이 동물성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음료에 자주 첨가되는 비타민 D3들을D3을 들 수 있다. 식물성 음료라고 생각되는 두유에도 비타민D3가비타민D3이 첨가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성분은 어류에 많은 비타민으로 동물성 성분이다. 처음에는 성분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비건 편의점 Wiki’라는 사이트를 알게 되며 어려움을 점차 줄여나갈 수 있었다. 사이트에는 각종 성분에 대한 정보 외에도 각종 체인음식점에서 먹을 서 있는 채식음식에 대한 소개도 있다.

 

두 번째로 겪은 어려움은 채식인들을 위한 선택지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채식 첫날은 친구와 약속이 있어 홍대를 방문했다. 한식, 중식, 일식 등 다양한 나라의 음식점들은 많았지만, 채식인을 위한 채식식당은 몇 곳 없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몇 군데를 찾아가기는 했지만, 서울의 중심가라고 하는 홍대에서도 이러한데 다른 곳의 사정은 어떠할지 불 보듯 뻔히 예상이 갔다. 특히 학기 중에는 학교에서 밥을 먹는 경우가 많은데 중앙대가 있는 흑석이나 상도의 경우 채식인을 위한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다. 나 같은 경우 채식 기간 중 달걀을 먹는 것은 허용하는 오보 채식을 했다. 그러나 학교 근처에 채식인이 맘 놓고 식사를 할 만한 곳은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 카레를 파는 카레 가게, 서브웨이 정도밖에 없었다.

 

홍대 비건 식당 까페 sun의 베지터블스튜와 제철채소토마토소스파스타

 

채식 릴레이를 하기 전에 채식은 실천하기 어려운 머나먼 일 같았다. 일주일간 채식을 하며, 그동안의 수많은 동물들을 착취하며 편하게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또한 고기 없이 사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채식 릴레이 이후 일상 속에서 고기를 먹는 행위를 점차 줄여나가고자 다짐했다. 채식 전에는 “채식 중에 고기가 먹고 싶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있었다. 그러나 채식을 하다 보니 고기를 먹고 싶어 생기는 어려움보다 고기가 없는 음식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 더 문제였다. 신념 적으로는 완전한 채식을 지향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밖에서 음식을 사 먹는 일이 많다 보니 고기를 아예 안 먹는 것은 어렵다. 지금은 일상 속에서 고기를 먹는 것을 점차 줄여나가려고 노력 중이다.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의 경우 선택지가 별로 없지만 되도록 직접적인 고기 소비는 지양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채식 릴레이 전에는 무한보충무한리필 고깃집에 종종 들렸는데, 최근에는 거의 가지 않는다. 오랫동안 갖고 왔던 육식습관을 한 번에 버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일상 속 작은 변화 하나하나가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라 믿는다.

 


조금 더 좋은 세상을 위하여

편집위원 김락현

 

 

채식을 시작하는 방법

 

처음 채식을 시작할 때는 먹을 것이 없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공포감이 있었다. 그래도 잠시이기는 하지만 무고한 동물을 괴롭히지 않으면서 살 수 있다는 즐거움과 살이 좀 빠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 아래에서 채식을 시작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평상시에 먹던 것 중에서 채식을 한다면 어떤 것들을 먹을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 하지만 원래 먹던 음식 중에는 채식주의자가 먹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원래 식단에서 채식한다면 살이 좀 빠지는 수준이 아니라 단식수행이 될 것 같았다. 결국, 채식을 위해서는 단순히 같은 식당에서 메뉴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전면적인 생활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처음 시작하는 채식은 힘들고 번거로우며 귀찮은 것이었다.

 

가장 먼저 먹을 것을 찾아본 곳은 학교 근처였다. 하지만 평상시 자주 찾던 편의점이나 학교 앞 식당에는 채식 음식이 거의 없었다. 먹을 것이 없는 것도 문제였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 들어있는 동물성 식품은 채식에 대한 의지를 무너뜨렸다.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음식에는 동물성 식품이 있었다. 선배가 건네준 사탕에는 젤라틴이 들어있었고, 절대 안전할 것으로 생각했던 양파 맛 감자 칩에는 우유가 들어있었다. 채식한다는 것은 단순히 감자탕에 들어있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었다. 항상 무엇을 먹는지 살피고 어떤 것을 먹을지 고민해야 했다. 이처럼 평상시에는 별로 의식하지 않던 것들이 문제로 떠오르자 당황했고 그냥 굶어버렸다. 이대로라면 동물의 고통을 줄이고 싶어서 시작한 채식 체험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끝날 것 같아서 무서웠다.

 

감자 칩에는 탈지분유가 들어있고, 기숙사 급식에는 밥과 단무지 빼고는 모든 메뉴에 동물성 식품이 들어가 있다. 감자 칩은 실수로 먹어버렸고, 카레라이스는 고기를 빼고 먹었다. 실수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음식을 구하는 방법을 바꿔보려고 했다. 직접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하거나 기숙사에서 제공하는 급식을 이용하려고 생각해보았으나 이조차 별로 실효성이 없었다. 만들어 먹으려고 해도 주방이 없고 급식이 제공되는 형태의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어서 요리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급식에 나오는 음식들은 밥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동물성 식품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마트에서 직접 사서 먹은 것은 씻으면 먹을 수 있는 과일 종류에 한정되었고, 급식에는 손도 댈 수 없었다.

 

 

채식이 억압받는 사회

 

이렇게 채식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메뉴 선택지는 한정적이고 그것이라도 얻기 위해서는 육식을 할 때보다 더 열심히 움직여야 했다. 좀 더 번화가에 살거나 개인적인 공간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보다는 채식을 실천하기 쉽겠지만 아쉽게도 필자의 사정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날마다 비슷한 것을 먹었고 그 음식들을 찾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여러 식당을 찾아다녀야 했고, 찾더라도 원래 있던 재료 중에서 어떤 것을 제해달라는 식으로 따로 부탁해야 했다. 심지어는 고기가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가격은 더 비싸다.

사회적으로도 채식은 유별난 것이다. 그래서 채식주의자가 다른 사람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는 불편하다. 메뉴에 대한 배려를 받으면 정말 다행이고(배려를 받든 안 받든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했다는 죄책감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아니더라도 ‘그러면 식물은 안 불쌍해?’라는 질문을 받지 않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이렇게 채식은 법적으로 금지하지 않았을 뿐이지 접근하거나 직접 해보기 매우 어려운 행동이다.

채식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생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자 한다는 점에서 보편타당한 신념이다. 인간의 윤리를 생각하면 당연히 추구해야 할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탄압받고 있다. 채식의 윤리성을 제하더라도 대한민국 헌법 제2장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채식과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겠다는 신념은 법적, 이성적, 도덕적인 모든 측면에서 봤을 때 절대 억압받아서는 안 된다. 채식을 실천하기는커녕 시도해보기도 어려운 한국의 상황과는 다르게 외국에서는 채식을 일상에서 접할 수 있다. 맥도날드와 버거킹같이 유명한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들은 비건이 먹을 수 있는 햄버거 세트를 제공하고 있으며 일반 가게에서도 채식 메뉴를 찾기 쉽다.

 

 

그럼에도 채식을 실천하면서

 

채식을 실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잘 먹기 위해서는 간편함이나 풍족함 돌 중 하나를 포기해야 했다. 카우버거의 해시 브라운은 수업 중간 중간 쉬는 시간에 챙겨먹기 좋았으며, 시간이 넉넉할 때는 이태원이나 합정동까지 식당을 찾아서 갔다. 간식으로는 사과나 탄산음료를 주로 먹었고, 평상시 식사로는 편의점이나 학교 앞 식당에서 해결했다. 돌솥비빔밥은 채소만으로도 훌륭한 한 끼 음식을 제공했고, 편의점에도 열심히 찾아보지 않아서 보이지 않았을 뿐 생각보다 먹을 것이 많았다. 이런 패턴이 익숙해지고 나서 식당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면 그 전보다 더 여유롭고 편하게 식사할 수 있었다. 먹는 방법이 간단한 것들 위주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의식적으로 끼니를 챙겨 먹다 보니 채식을 하기 전보다 끼니를 더 잘 챙겨 먹었고 채식 체험이 끝나고 나서는 오히려 몸이 더 부해진 느낌이었다.

 

카우버거 해시 브라운과, 합정동에 있는 채식 빵집

 

 

아무래도 동물성 식품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채식 음식은 육식 음식들보다 맛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전문점을 찾아다녀 본 결과 그렇지만도 않았다. 찾아서 다니는 것이 불편해서 그렇지 고기 같은 맛이 나거나 육식에서는 맛보지 못한 맛이 나기도 했다. 채식 한다는 것이 무조건 맛없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채식을 실천하면서 생긴 경험은 고통과 공포를 겪는 동물을 죽이거나 괴롭히지 않고 싶다는 신념을 이해하고 체화할 수 있도록 해줬다. 육식을 생활에서 제외하는 것만으로 대부분 식생활이 동물을 희생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동시에 자신의 몸집만 한 케이지에 갇혀 짧은 생을 살다가 미성년 상태로 죽는 닭이나 소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면서 채식을 하는 근거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채식에 대한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환경 안에서 채식을 직접 해봄으로써 너무 어렵다거나 맛이 없다거나 하는 편견을 깰 수 있었다.

 

 

채식 너머의 동물해방을 꿈꾸며

 

채식 체험이 끝나고 나서 더 실천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그것은 생활 전체에서 동물을 착취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 식생활만 동물들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채식하는 도중에 사용하던 지갑이 눈에 들어왔다. 외국 여행을 하던 도중에 좋은 소가죽으로 만들었다는 말을 산 것이었다. 내 이름이 박힌 이 지갑을 만들기 위해서 한 생명은 부모로부터 강제로 떨어져서 평생 고통과 공포를 느끼다가 죽었을 것이다.

 

먹고, 입고, 바르고, 노는 우리 생활 전반에서 동물은 잔혹하게 사용된다. 우리는 고통을 느끼는 동물들을 식품으로 만들기 위해서 강간하고 강제로 가둬서 고문하다가 다 크기도 전에 죽인다. 그에 못지않게 많은 동물의 털을 산채로 뽑고 가죽을 벗겨낸다. 이 과정에서 죽지 않는 동물들은 계속해서 이 과정을 겪기도 한다. 어떤 동물은 생김새나 특성이 특이하다는 이유로 원래 살던 곳에서 강제로 잡아 와서 그 동물의 습성에 적합하지 않은 곳에 가둬놓고 구경한다. 그 과정에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고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모든 생활이 노출된다. 개발단계에 있는 약품과 화장품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부작용을 알아보기 위해서 동물을 사용한다. 동물실험 과정에서 인간보다 몸집이 작고 면역이 약한 동물들은 대부분은 죽거나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다.

 

동물실험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는 마크

 

식생활뿐만이 아니라 모든 삶에서 동물을 착취하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을 표현하고 싶다. 식생활만큼은 아니겠지만 우리 일상의 많은 부분이 동물을 희생양 삼아서 풍부하고 간편하게 유지된다. 동물을 사용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에는 채식할 때 겪었던 것과 같은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약 같은 경우에는 필요한 경우 사용하지 않고 살기 어렵다. 하지만 동물원에 가지 않는다던가, 가죽이나 동물의 털로 만들어진 제품을 소비하지 않고 사는 것은 조금만 신경 쓴다면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많은 사람이 이와 같은 실천을 이어간다면 주변 환경도 따라서 변할 것이다. 약의 임상시험 같은 경우는 안전 때문에 사라지기 힘들겠지만, 옷이나 가방을 만들 때 동물의 가죽과 털의 사용량은 많이 줄어들 것이고 동물원은 많이 사라지거나 최대한 동물의 생리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를 가져오기 전에 불필요한 동물 착취를 제외하는 곳으로 지금의 사회가 변해야 한다. 너무 많은 부분이 동물을 착취하는 것에 기대고 있으며 동물의 고통을 재미나 필수적인 것으로 취급한다. 이 같은 현실이 먼저 바뀐다면 각 개인은 좀 더 넓은 선택지를 가지고 동물 착취를 지양할 수 있을 것이고 이에 좀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별다른 망설임이나 불편함 없이 다른 존재를 학대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채식릴레이 수기

참고:

  1. tvN에서 2017.03.24부터 2017.05.19까지 했던 예능방송으로 발리 근처의 섬에서 한식을 파는 내용이다.
  2. 피터싱어, 「동물해방」中 310p(미국 공중보건국장의 1988년 보고서), 2012
  3. ’다이어터라고 해서 달걀이나 우유를 먹을 때 맘 놓고 행복하게 먹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비건 5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 달걀, 유제품을 먹지 않는 식단이다.
  4. 흔히 무슬림이 돼지고기만 먹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이슬람식 도살 방식을 거친 할랄식품이 아닌 고기는 이슬람교에서 금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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