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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장 신현욱

 

어렸을 적 내 방에는 복도와 이어지는 작은 창문이 있었다. 자정이 조금 지나면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아빠의 구두소리가 들렸다. 그 발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이불을 꼭 움켜쥐었고, 긴장감에 사로잡혀 황급히 자는 척을 하곤 했다. 아빠는 매일 밤 술에 취해 귀가했다. 그 상태로 곱게 방에 들어가 잘지, 또 하나의 사건을 만들어낼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아빠가 겉옷을 벗다 말고 “불만 있냐”는 시비조로 엄마에게 말을 거는 순간, ‘아!’ 하는 탄식과 함께 이어폰을 찾아 귀에 꽂았다. 아빠가 선택한 그 날의 주제는 매일 달랐다. 외가에 대한 불만, 노후에 대한 걱정, 나와 동생의 미래에 대한 푸념……. 하루 종일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 대상이 필요했던 아빠는 엄마를 앉혀놓고 쉼 없이 역정을 냈다. 듣다 못 한 엄마가 방으로 들어가 버리면 아빠는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자식들이 깰까 어쩔 수 없이 아빠 앞으로 다시 끌려가 앉았다.

운이 나빠 집안이 난리가 나는 날엔 그저 문을 잠그고 이불 속에서 숨죽여 울었다. 울다 지쳐 잠이 들면 해가 밝아 있었다. 그럼 다시 교복을 챙겨 입고, 새벽의 사단을 견뎌낸 엄마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현관문을 나섰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어젯밤의 일에 대해 입을 꾹 닫고 각자의 하루를 시작했다. 별일 아니었다. 항상 그래왔으니.

용납 가능한 정도와 그렇지 않은 정도 사이에서 애매한 줄타기를 하다 삐끗한 적도 있었다. 어느 날 밤 아빠는 구구단을 못 외운다고 나와 동생에게 골프채로 매질을 했다. 나와 동생은 맞기가 싫어 구구단 종이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 지금도 못 외우는 구구단 12단, 13단을 공포에 질린 채로 아무리 쳐다본들 외워질 리 만무했다. 방에서는 동생의 허벅지에 꽂히는 둔탁한 골프채 소리가 들렸다. 동생이 내지르던 공포에 질린 비명, 그 소리를 들으며 몸서리치던 나, 옆에서 하염없이 울던 엄마만이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장면이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되어 오던 우리 가족에게 그날 밤이 ‘선을 넘은’ 하나의 큰 사건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우리는 원래 그랬듯이 누구도 그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그 밤’은 암묵적인 비밀이 됨과 동시에 없던 일이 되었다. 원래 엄하고 무서운 아빠가 한 일탈이었을 뿐, 폭력도 그 무엇도 아니었다.

 

피해 경험 말하기를 통한 치유의 과정

이런 우리 집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20여 년을 살았다. 아픈지도 몰랐던 아픈 기억을 끄집어낸 건 친구의 눈물이었다. 고등학교 때로 기억한다. 쉬는 시간에 나를 조용히 복도로 부른 친구는 눈물을 보이며 말했다. 술 취한 아빠가 집안에서 소리를 질러댔고 이를 말리는 가족들을 힘으로 밀쳤다고. 어디 말할 곳이 없다고. 힘든 수험생활 도중 집안의 말 못 할 사정으로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리고 어렸던 나는 어떻게 하면 진심으로 위로를 해줄 수 있을지 몰라 무작정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집도 그래”, “우리 아빠는 어쨌냐면……”

 

꽁꽁 숨겨왔던 나의 가정사를 풀어놓은 최초의 순간이었다. 그 날이 계기가 되어 비슷한 주제로 주변 친구들과 이야기 하면 할수록, ‘가부장 매뉴얼’이란 게 존재하나 싶을 정도로 같은 레퍼토리의 이야기가 각각의 가정에서 다른 방식으로 재연되고 있었다. 먹으라고 사 온 야식을 먹지 않으면 돌변해서 욕설을 내뱉는 아빠, 평소엔 멀쩡하다가 술만 마시면 다른 사람이 되어서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아빠……. 가족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가부장이 각자의 가정에 군림하고 있었다.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며 처음으로 깨달은 것은 내가 아파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아빠로 인해 아팠지만 어떠한 이유로 그 상처를 꽁꽁 숨겨왔다. 더 이상 폭력적인 아빠를 감추고 우리 집이 ‘정상적’이고 화목한 척할 필요 없다는 것, 아빠가 수십 년간 이어온 행태는 엄연한 폭력이고 우리 가족은 그 폭력의 피해자라는 것. 또 다른 가정폭력 피해자들과 서로의 피해 경험을 공유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깨달음이었다.

아빠는 매일 밤 술에 취해 엄마에게 화풀이하고, 소리를 지르고 테이블을 내리치며 온 가족을 위협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나와 내 동생을 골프채로 때렸다. 내가 이 모든 것을 폭력이라 명명하는 데는 왜 그리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까. 아빠의 행태가 가정폭력이라고 칭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이라 했을 때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주먹질하는 드라마 속 아빠와 우리 아빠는 엄연히 달랐다. 아빠는 우리 가족을 위해 회사에 일생을 바쳤고, 나를 위해 무엇이든 해주려고 했다.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나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일상적인 폭언과 정신적 학대는 그야말로 우리 가족의 일상이고 생활의 일부였다. 가끔씩 찾아오는 힘든 밤들을 제외하면 우리는 남들과 똑같이 ‘정상적’이고 행복한 가족이었다. 아빠는 우리 가족을 부양할 충분한 경제적인 능력이 있었고, 우리가 집안에서 뛰쳐나가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심한 폭력을 가하지 않았다. 어쩌면 맞지 않았기에 우리 가족은 지금까지 ‘정상 가족’인 척하며 그토록 애를 써가며 가정을 유지해왔는지도 모른다.

 

베일에 싸인 폭력

두 집 중 한 집에서 가정폭력이 발생한다. 그러나 가정 내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고, 너무나도 일상적이기에 폭력이라고 인지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다른 폭력들과 달리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개인의 ‘가정사’로 격하된다. 이에 따라 가정폭력은 사적인 문제로 치부되어 가정 밖에서의 문제 제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아빠가 한 번만 더 소란을 피우면 경찰에 신고하겠다던 내게 엄마는 “네 얼굴에 침 뱉기”라 했다. 가족은 무조건 소중하다는 생각, 혹은 어떤 일이 있어도 가족은 해체되면 안 된다는 가족 유지 이데올로기 1 속에서 가정폭력은 은폐되고 사적화된다. 가정폭력만큼 흔하지만 이상하리만큼 베일에 싸여있는 폭력이 또 어디 있을까.

 

▲가정폭력의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모습만을 강조하는 언론 보도와 드라마 속 장면들은 가정폭력의 범위를 제한한다. ⓒMBC

 

아직도 남편으로부터의 지속적이고 심각한 신체적 폭력을 당하는 여성들이 많다. 신체적 폭력은 항상 정신적, 언어적 폭력을 동반하기에 이들의 피해는 생존과 연결된 시급한 문제다. 그러나 가정폭력의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모습만을 강조하는 언론 보도와 드라마 속 장면들은 가정폭력의 범위를 제한한다. 가정폭력의 피해자로 하여금 자신의 가정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게 함으로써 폭력을 폭력으로 인지하고 피해 경험을 발화하는 것을 막는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그의 책 『아주 친밀한 폭력』에서 아내를 함부로 대하는 행동이 일반화되어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언어폭력과 같은 ‘사소한’ 폭력은 폭력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언어적인 폭력과 정서적 학대는 그 자체로서도 충분히 문제적이지만, 언제든지 신체적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절대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폭력이 일상화, 정상화됨에 따라 가정 내 폭력에 제동을 걸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결정타가 없는 한 폭력의 가해자와 한 지붕 아래 평생을 사는 일은 비일비재해진다. 일상적인 폭력에 익숙해지고 지쳐버려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나의 가정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계속 말해야 하는 이유

슬프게도, 피해 경험을 발화하고 폭력을 폭력이라 인지한 이후에도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가부장의 권위에 끊임없이 도전해 결국 승리를 쟁취해낸 동료 페미니스트들의 영웅담은 절대 내 이야기가 될 수 없었다.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감격스러운 순간, 동료들과 토론하고 글을 쓰며 도처에 깔린 차별의 견고함에 균열을 내던 순간, 내가 이 사회에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겠구나 싶던 순간 그리고 그 순간들이 모여 내가 이뤄낸 성장은 술에 취해 무서운 표정을 짓는 아빠 앞에 서면 먼지보다 못한 것이 되었다. 당차게 설치고 다니던 나는 아빠 앞에만 서면 그야말로 와르르 무너졌다. 아빠는 ‘그 밤’ 이후로 내게 폭언도 폭행도 일삼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아빠의 말에 조금이라도 반기를 들 때면 눈물부터 나왔다. 아빠가 평생을 쌓아온 가부장적 권력은 그만큼이나 공고했다.

나의 발화가 당장 우리 가정을 바꾸고 아빠에게 착취당하는 엄마를 구해낼 수는 없다는 사실은 가끔 나를 무력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내가 가정폭력 피해 경험을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느낀 해방감과 위로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경험이 우리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 그렇기에 사적인 공간에서 비밀스럽게 해결해내야만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자각은 문득문득 ‘그 밤’으로 돌아가 고통받던 나를 구제해 주었다.

 

가정폭력에서의 미투를 기대하며

올해 초 시작된 미투 운동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도 당했다”를 넘어선 “나도 고발한다”는 선언을 통해 성폭력 피해자들은 고발의 주체로 다시 섰다. 서로의 고발을 지지하는 연대의 과정은 성폭력의 책임이 명백하게 가해자에게 있으며, ‘사소한’ 폭력이란 없다는 명제를 공고히 했다. 절반이 넘는 가정에서 폭력이 자행되고 있으나 이에 대한 고발은 미미한 가정폭력에 필요한 것이 바로 ‘미투’가 아닐까. 피해 경험 말하기를 통해 일상 그 자체인 모든 가정폭력을 수면 위로 올리는 과정이 절실하다. 가정 내 문제는 더 이상 개인적이고 사적인 문제가 아니기에, 가정이라는 공간을 정치적인 공간으로 인지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고발될 수 없는 정도의 폭력이란 없다. ‘경미’하고 ‘사소’하다고 인지되는 폭력을 전혀 사소하지 않은 문제로 인지하는 과정이 거대하고 공고한 가부장제에 균열을 내는 첫 단계다.

새벽에 집 앞에 배달된 신문과 함께 퇴근하던 아빠를 뜬눈으로 기다리던 엄마, 제 분을 못 이겨 물건을 내던지며 소리 지르던 아빠, 그리고 한바탕 소동 이후 쏟아진 물건을 정리하던 엄마의 뒷모습을 질리도록 보고 자랐다. 가정을 부양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평생을 고통받는 아빠가 가여워 눈물을 흘리다가도 그의 폭력적인 모습에 분노에 치를 떨었고, 그렇게 복잡 미묘한 감정에 휘청거리는 동안 너무 빨리 철이 들어버렸다.

나는 단 한 번도 나만을 위해 발화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가정폭력의 가장 큰 희생양임에도 ‘정상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까지도 애쓰고 있는 엄마를 위해, 그리고 누구보다도 엉망진창인 거실을 문 하나 사이에 두고 소리도 못 내고 울음을 집어삼킨 기억을 품고 있는 수많은 딸들을 위해 나는 계속해서 말한다. 금이 가기 시작한 가부장제는 말하는 딸들과 아내들에 의해 전복되고 말 것이다.

*위 글의 제목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는 한국여성의전화의 여성폭력 인식개선 연중 캠페인 카피임을 밝힙니다.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참고:

  1. 정희진, 『아주 친밀한 폭력』, 교양인, 2016. 31쪽.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에 대한 12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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