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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총여학생회 폐지, 성평등위원회 신설, 그 이후를 상상하다.

안태진 편집장

폐지된 서울캠 총여학생회, 필요가 없어져서?

성폭력 사건의 해결과 대학 내 성평등을 위한 노력을 해왔던 서울캠총여학생회는 2014년 전학대회에서 폐지됐다. 수차례의 선거무산과 비대위체제로의 운영, 공석으로 유지된 끝에 결국 2011년 ‘우리’ 총여가 마지막이 된 것이다. 당시 총여학생회 폐지를 전학대회 안건으로 내건 ‘마스터키’ 총학생회의 논리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남여 평등이 상당부분 실현돼 여성 인권을 위한 독립기구는 필요 없고, ▲인권센터가 있으므로 나머지 역할은 총학산하기구에서 대체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먼저 여전히 대학 내에 성평등을 위한 독립 기구는 필요하다. 2013년 인권센터에 접수된 성폭력 사건 중 96%가 피해자는 여성, 가해자는 남성인 사건이다. 또한 2009년 진행된 ‘중앙대 재학생 성의식 및 성폭력 실태조사’결과 남학생의 경우 가해경험만 87.5%인 반면 여학생의 경우 피해경험만 79.7% 로 나타났다. 수치로만 단순화해 보아도 남성과 여성 사이에 불평등은 존재한다. 양 성간의 불평등을 넘어 성정체성이나 성적취향으로 인한 차별은 더욱 가시화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성과 관련된 담론은 줄어드는게 아니라 더 많이 늘어나고 다양해졌다. 대학 내에서 성 담론이 논의될 통로가 늘어나야하는 이유다.
두번째로 인권센터가 성폭력 사건의 처리에 더 전문성을 갖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이 학생자치의 영역 내에서 노력이 없었다면 성폭력 사건의 해결과 제도 성립은 어려웠다. 이는 연이어 성폭력이 발생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도, 그리고 앞으로도 적용된다. 학생 자치 스스로 충분한 비판과 성찰을 통해 공동체 문화를 개선해가고 현 제도의 미비한 부분도 보완해 나가야한다.

총여학생회가 폐지될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

총여학생회는 1975년 탄생 이후 줄곧 존폐논란에 시달려왔다. 아래 <표1>처럼 선거가 성사되지 않아 재선거를 진행하기도 했고 재선거마저 투표율 50%를 넘기지 못하거나 후보가 출마하지 않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된 경우도 많다.

총여에 대한 관심부족과 선거파행은 기층 단위의 부재로부터 기인한다. 총학생회가 <표2>와 같이 학과 학생회와 단과대 학생회라는 기층단위가 존재한다면, 총여학생회는 구체적인 단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총여학생회 회칙에 존재하는 기층단위를 찾자면 “여성으로서 발언하기를 원하는 한시적·비한시적 모임, 자치단위로 구성”되는 ‘여성연대협의회’를 들 수 있다. 한 마디로 의견을 가지고 있고 할 말이 있는 사람들이 주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그러나 구성이 모호해 대학 내에서 여성운동이 침체됨에 따라 점차 효력을 잃었다.
이외에 일부 학과나 단과대에서 여성국이나 여학생위원회가 존재하긴 했지만 모든 학과에 있는 것이 아니고 회칙 상 명시된 내용이 아니라서 일괄적이지 못했다. 한 때 모든 단과대와 학과에 여성기구를 세우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기계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폐기됐다. 당시 학생들은 수직적인 기구보다 수평적인 관계를 모색하기 위해 여성연대협의회를 택했다.

기층 단위가 부재할 경우 학우들과 일상적인 만남이 어렵고 선거나 행사의 홍보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성국, 여학생위원회의 부재와 더불어 여성연대협의회의 사문화가 총여학생회에 대한 관심부족에 크게 일조했다. 또한 중앙대 총여학생회 회칙에는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에 대한 조항이 없어 선거가 파행될 때마다 혼란을 겪었다. 이전 총여가 존재한 경우 선거가 무산돼도 이어서 재선거를 진행하고 공석을 메울 수 있지만 재선거도가 성사되지 않을 경우 방법이 없었다. 총학생회와 같이 단과대 학생회가 존재해 중앙운영위원회가 구성된다면 중운위 내에서 맡아서 진행할 수 있지만 기층 단위가 없어 그것도 불가능했다.
따라서 이전에는 관행상 중앙선관위 차원에서 비대위 구성을 돕는 등 총여 선거를 지원했다. 하지만 2013년 11월 선관위원장으로 선거를 진행한 ‘좋아요’ 총학생회 회장은 “중앙선관위의 권한이 아니다”는 이유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총여 선거는 공고조차 되지 않았다. 이듬해 4월 총여학생회는 폐지된다.

총여학생회를 ‘대체’하는 성평등위원회의 설립 ?

총여학생회를 폐지하는 대신 ‘마스터키’총학생회가 내세운 기구는 ‘성평등위원회’(이하 성평위)다. 그리고 현재 2대(SEE: REAL)를 맞은 성평위는 ‘대학 축제와 성’, ‘가족 다양성’ 과 같은 다양한 주제로 오픈세미나를 열고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젠더 관련 소식을 전하는 ‘젠더 늬우스’를 연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성평위가 총여를 온전히 대체하기에는 제도적인 한계가 많다. 총여학생회가 중앙대 전체 여학생의 투표를 통해 정당성을 얻는 독립적인 기구라면, 성평위는 총학생회 산하기구다. 물론 운영에 있어서 독립성이 보장되고 있다고는 하나 총학의 영향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이처럼 총여학생회와 성평등위원회는 제도적인 위상 자체가 다르다. 정재민 제 2대 SEE:REAL 성평등위원장은 이에대해 “총여와 같이 선출직이 아니다 보니, 활동의 정당성이나 발언권과 같은 힘이 확보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한계로 지적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99년도에도 성평위처럼 총학생회 산하에 ‘성정치위원회’가 있었다. 성정치위는 위원회라는 틀을 통해서 자치단위들을 만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나 학생회 내부에서 독자적인 위상을 갖기 어려웠고 공신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어 설립된 지 1년 만에 사라졌다.


현재 성평위는 다른 산하기구와 같이 자체적으로 인원을 충당하고 있지만 인원충원이 안될 경우 활동의 일관성 문제도 지적된다. 정재민 위원장은 “(인원)모집이 잘 안되면, 나중에 총학에서 임의로 성평위에 사람을 배치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여성주의를 잘 반영할 수 있을 지에 대해 걱정”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성평위가 주체적인 활동을 펼치는 곳이 아닌, 생리대를 나눠주고 하는 등의 일상적인 사업만 하는 기구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예산도 문제가 있다. 기존의 총여학생회는 학생회비의 일부분을 사전에 총학생회 등과 나눠갖고 운영했지만 성평위는 그렇지 않다. 정재민 위원장은 이에 대해 “회칙 상에서 성평위에 예산이 얼만큼 지원돼야 한다는 점이 명시돼 있지 않고, 총학생회에서 자율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총학의 성격에 따라, 성평위와 총학과의 관계에 따라 예산의 안정적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고 답했다.

독립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제도적 상상력이 필요해

지위, 예산, 지속성 등 모든 제도적인 면에서 성평위는 총여학생회의 대체기구가 될 수 없다. 총여가 폐지된 후 총학산하 기구로 편입된 것은 실질적인 지위의 축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평위의 활동이 총여의 활동보다 못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총여가 구성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서 성평위는 다채로운 활동으로 학내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총여가 가진 문제도 많다. 유권자가 생물학적인 여성에 한정돼 있는 한계가 있고 때로는 ‘캠퍼스 퀸 선발대회’처럼 목적에 반하는 활동을 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단체의 이름이 아니다.
초점은 ‘어떤 단체로, 어떤 활동’을 해서 ‘성을 매개로한 불평등을 개선할 것인가’에 맞춰져야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기본이 돼야하는 조건은 ‘독립성’이다. 성폭력 사건이나 공동체 문화에 대한 문제제기 등 예민한 사안을 지적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도 외압을 받지 않을 수 있는 독립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독립성이 갖춰지면 이전 총여학생회와 같은 딜레마에 빠진다. 학생들이 자치활동에 잘 참여하지 않는 대학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투표율 저하 등으로 존립자체에 위험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가능성을 열어 놓은 상태에서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 예로 ‘성균관대 문과대 여학생위원회’(이하 여학위)를 들 수 있다. 여학위는 문과대 학생회와 별개인 독립 기구로 매년 4월마다 전체 문과대 학우의 10% 이상의 서명을 모아 인준 받는다. 여학위가 필요하고 유지되기를 원한다는 내용의 서명이다. 예산은 문과대 학생회비 중 최대 10%의 지원금을 받아 운영한다.

여학위는 문과대뿐만 아니라 다른 단과대 성폭력 사건에 대한 자문도 받고 있으며, 여학생휴게실 관리와 축제기간에 부스를 운영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여학위와 같은 형태로 운영하면 학생회가 위원장을 임명하는 산하기구보다 훨씬 독립적이다. 또한 문과대 전체 학우의 서명으로 구성돼 정당성도 갖는다.
이처럼 우리는 다양한 방식의 자치기구를 상상할 수 있다. 성평등위원회의 독립화 혹은 성평위가 각 단과대 자치 조직개설을 지원하는 방식 등 형식은 무궁무진하다. 2000년대 총여학생회처럼 ‘예산자치제’를 도입해 여성주의, 성소수자 학회나 소모임에 예산을 지원해주며 자치조직을 키우는 플랫폼 역할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총여학생회가 학생대표자들 손으로 폐지됐지만 성평위가 다양하고 뜻 깊은 활동을 하고 있는 만큼 다시 학생자치에 기대를 걸어본다. 독립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제도적 상상력이 필요한 때이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총여학생회 폐지, 성평등위원회 신설, 그 이후를 상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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