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Flares Facebook 0 Twitter 0 Google+ 0 Email -- 0 Flares ×

홍주환(경제학부졸)

71호의 <커버스토리 : 공간>에 대한 평가를 쓰기 위해 컴퓨터를 켰다. ‘평가자로서 나름 객관적이고 타당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며 71호를 이리저리 넘기며 기사를 다시 읽었다. 그리고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객관적 입장을 견지할 수 없다고 말이다.

나는 중대신문의 기자였다. 나는 빨간 벽돌의 206관(학생문화관)에서 기사를 쓰고 회의를 하고 마감 날엔 밤을 새웠다. 2016년 1학기가 끝나자 나의 신문사 생활도 끝났다. 이후 여름방학, 중대신문을 포함한 미디어센터 내 언론이 모두 310관으로 이전했다. 경영경제대 학생인지라 310관의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며 신문사 편집국의 모습을 자주 마주쳤다.

하지만 이상하고 어색했다. 그곳은 내가 있던 신문사가 아닌 것 같았다. 분명 더 깔끔하고 현대적인데도 그랬다. 학생문화관에 있을 때는 종,종 선배들이 신문사 편집국을 오고 가는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에 나도 선배가 되면 간식을 사들고 편집국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310관의 편집국에는 그런 마음이 잘 생기지 않았다. 나의 중대신문은 빨간벽돌의 시멘트 냄새가 나고 장마철에는 비가 새던 ‘206관의 중대신문’이었다.

<커버스토리 : 공간>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남겼다. ‘공간이란 무엇일까?’ 공간이 단순히 ‘기능’이라면, 우리는 으리으리한 현대식 건물인 310관이 세워지고 낙후된 205관(학생회관), 학생문화관이 헐리는 것에 기뻐해야 한다. 하지만 사실 중앙대를 다녔다면, 학생회관의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 줄을 서고 동아리 실을 드나들었다면, 학생문화관의 우체국, 편의점을 다녀봤다면 아쉬움이 남게 된다. <공간, 기억들>에서 중앙동아리인 문학동인회, 손짓사랑, RCY, 날파람의 부원들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학생회관과 학생문화관은 단순히 기능이 아니었다. 그 곳은 기억의 누적이었다.

 

이제 다음 해면 205관인 학관이 사라집니다. 9개월 동안 익숙했던, 마음의 안식처였던 그 공간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5층에 정수기가 없어서 동기들과 웃으며 4층까지 내려가야 했던 일도,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5층까지 숨차게 올라가 동방에 쓰러지는 일도, 난방이 안 되어 동기와 옹기종기 이불을 덮고 있던 일도 이제 사라집니다. 이 일들을 당신과도 공유할 수 없게 됩니다.”

– <공간, 기억들> 손짓사랑의 이규원 씨 기사 중

 

이는 중앙문화에도 마찬가지다. 중앙문화는 결국 대학본부를 상대로 이기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71호에 실린 <우리는 왜 빨간벽돌에 남았나>, <중앙문화를 지지합니다> 등의 기사는 어떤 실질적 효용도 갖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기록들을 읽을 필요가 있다. 왜 중앙문화가 끝내 공간을 얻지 못했는지, 왜 그들은 이렇게 지면을 할애하면서까지 중앙문화의 공간을 요구하고 있는지, 또한 어차피 사라진 학생회관과 학생문화관을 왜 우리가 되새겨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억은 자연스럽게 이뤄지지 않는다. 기억은 노력하지 않으면 소실된다. 기억하기 위해선 노력해야 하고 악을 써야 한다. 특히나 잃어버렸음에도 기억해야 할 만큼 꼭 지키고 싶고 간직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에게 있는 법이다. <커버스토리 : 공간>은 우리가 이미 잃어버렸지만, 잊어버려서는 안 될 것들을 기억하려 노력하자고 말하고 있다.

<커버스토리 : 공간>은 단순히 310관의 편리성에 감탄하던 내게 공간에 대해 돌아보게 했다. 공간은 기능이 아니라 기억이라는 것. 학생들이 71호의 커버스토리를 읽어봤으면 좋겠다. 집이 ‘가족의 안식처’가 아니라 ‘투자의 대상’이 되는 시대에 ‘소중함’이란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장애학, 장애를 바라보는 새로운 사회적 관점>은 ‘장애학’이라는 생소한 주제를 다룬 만큼 글 문장마다 새로웠다. 장애인이라는 범주가 생긴 과정이나 그 범주의 억압성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사례를 제시해줘 어려울 수 있는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해가 쉬운만큼 깨달음도 즉각적이었다. 시각, 청각, 다리 등 여러 부문에서 장애가 일어나고 그들은 서로 분명 다른 존재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다른 그들’을 ‘같은 장애인’으로 묶어왔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인이라는 범주 용어 자체가 그들에게 폭력일 수 있음을 깨달았다.

다만 결론이 좀 아쉬웠다. 필자는 ‘장애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비장애인과 비장애인 중심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다소 편한 결론이 아닌가 싶었다. 어떤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할 때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와 ‘다 함께 노력해야 한다’라는 식의 방안은 물론 적용 가능하지만 진부한 면이 없지 않다. 구체적인 방안과 현실적인 대안들을 제시해줬으면 더 기사의 끝맺음이 개운했을 것 같다.

<운동권 A를 만나다>에서는 운동권이 하나의 낙인이 되어버린 대학의 현실을 운동권 A와의 인터뷰를 통해 우회적으로 보여줬다. 모든 정치적인 것을 배척하려 하는 대학과 학생 사회에 대한 풍자로 읽히기도 해 흥미로웠다.

다만 질문 중에 A와 관련된 개인적인 질문들도 적절히 섞여 들어가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 만약 그랬다면 그가 인간적으로도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인터뷰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쓰이고 읽힌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집중하지 않은 인터뷰는 결국 울림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기사는 A라는 사람을 알게 하는 글이기보다는 보편적인 운동권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글로 보였다.

기억, 노력, 기록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