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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X

편집위원 김고운

어렸을 때였다. 할머니가 신발장에 나타난 쥐를 때려죽였다. 야간 근무를 하는 아버지가 낮에 쥐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잔다고 걱정하던 터였다. 할머니는 죽은 쥐에게 원망의 말을 쏟아냈다. 너 때문에 우리 아들이 며칠 밤을 못 잤다고. 쥐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던가 안 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할머니가 쥐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쥐가 있으면 아버지가 잠을 못 자니까.
사실 잠을 못 자는 것은 생명을 박탈당하는 것에 비하면 정말 사소한 불편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는 그렇게 자라왔다. 인간의 사소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동물의 목숨을 희생시킬 수 있다고 너무나 당연하게 믿어왔다. 우리의 삼겹살 파티를 위해 돼지가 희생되어도 된다고 믿었고─아니 그들의 희생을 떠올리지조차 않았고─ 관례처럼 보도되는 멧돼지 출몰-사살 뉴스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아무도 고기 공장의 잔인한 동물 학대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고, 동물원 동물들이 학대당해 정신병에 걸려 있다고 말해주지 않았으며, 이곳이 ‘인간의 사회’가 아니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내가 차별주의자라니?

고기가 살아있는 돼지, 소, 닭이었음을 모르지 않았다. 구제역으로 돼지가 생매장되는 영상도 보았다. 축산 동물이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받는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 문제를 마주할 때면 안타깝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다였다. 내 일이 아니었고, ‘돼지=고기’라는 수식은, 그리고 육식은 당연했다.
그런데 그게 차별이란다. 동물을 먹고 이용하고 인간보다 덜 고려해도 된다고 믿는 게,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에서 ‘우리’의 범위를 좀 더 확장한 차별일 뿐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부터 내 일상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책을 찾아 읽었고, 동물보다 인간을 특별 대우할 정당한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 대부분이 동물 학대 시스템의 동조자이며 동물에 대한 차별과 여성 차별이 상당 부분 닮아있기에 고기를 먹으면서, 즉 동물을 차별하면서 여성 차별에 반대하는 것이 모순임을 알았다. 1 한마디로 내가 차별주의자임을 깨달았다.

삼겹살이 돼지로 보여요

시내를 걷다 보면 몇 걸음마다 고깃집, 치킨집이다. 무한리필 고깃집에는 요리사 복장을 하고 웃으며 어깨동무하고 있는 돼지와 소 캐릭터가 있다. 그리고 “맛없는 고기를 먹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따위의 문구가 쓰여있다. 그곳에서 고기를 팔고 구워 먹는 우리의 모습에는 중요한 맥락이 삭제되어 있다. 동물의 고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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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이 돼지로 보이고, 찜닭이 닭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순간까지 평생 괴로웠을 닭이 떠올랐다. 모든 게 불편해졌다. 우유에 그려진 행복한 얼룩소 그림이, 빙어낚시가 재미있었다고 좋아하는 친구가, 스테이크를 먹으려 식탁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드는 토끼 이모티콘이, 개들에게 싸움을 붙여 흥미를 유발하는 TV 프로그램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키우는 동물을 인형처럼 자랑하는 SNS 게시물들이 여성을 대상화하는 게시물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돼지 같다”, “닭대가리”라는 표현을, “병신년”처럼 약자를 비하하는 표현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돼지고기의 건강한 부위를 먹을 것을 권유하는 공익광고가 국가의 동물 학살 독려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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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돈자조금

 멧돼지가 마을에 출몰해 사살당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하지만 멧돼지가 출몰했다는 표현이 맞는 걸까? 멧돼지는 느닷없이 우리 세계에 출몰한 괴물이 아니라 원래 이 땅에 있었다. 인간이 그들의 서식지를 파괴하자 먹이를 찾으러 민가까지 내려올 뿐이다. 멧돼지를 죽이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에 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다. 멧돼지의 출몰과 그에 당연한 듯 뒤따르는 사살에는 멧돼지 또한 인간처럼 이 땅에 살아갈 자격이 있는 생명체라는 사실이 삭제되어 있다.
동물을 명명하는 태도 또한 그렇다. 젖소, 산란계,육계 같은 단어는 동물의 존재 목적이 우리가 먹을 우유, 달걀, 고기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각기 다른 성격과 삶의 궤적을 가진 개체는 말살된다. 동물은 인간에게 산출량과 사육 수 같은 숫자로만 남을 뿐이다.

  이렇듯 이 사회에는 ‘동물권 감수성’이 너무나 부족하다. 인권 감수성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다. 여성혐오적 광고에는 항의하는 세력이라도 있지만, 동물을 먹자는 광고에는 항의조차 할 수 없다. 동물에 관한 인간의 모든 태도가 의심스럽기 시작했다. 70년대에 이미 『동물해방』 등에서 논박되었던 내용을 사람들은 아직도 모른다. 몇십 년 동안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약육강식은 자연의 섭리 아닌가요?”, “그럼 식물은 왜 먹나요?”, “원래 그런 것 아닌가요?”…… 그 사람들을 탓하자는 게 아니다. 진실이 존재하나 볼 수 없는 사회다.

저 채식주의자 아니라니까요?!

처음엔 고기를 좀 줄여야겠다고만 생각했다. 조금 찜찜한 마음으로, 제육볶음은 먹지 않고 베이컨이 들어간 볶음밥은 먹었다. 치킨은 먹지 않고 육수가 들어간 냉면은 먹었다.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며 사람들에게 감자탕 말고 고기가 덜 들어간 메뉴를 먹자고 말했다. 몇 번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가 주변에 채식주의자로 알려져 있었다.
“아, 저 채식주의자는 아니고요. 그냥 고기를 줄이려 하고 있어요.”
항상 손사래를 쳤지만, 어떤 자리에서든 채식의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대답해야 했다. 말하면서 사실 자신이 없었다. 채식주의의 당위를 설명하는 나 자신이 채식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정곡을 찔렀다.
“그럼 왜 고기를 드시나요?”
“아니, 다들 고기 먹는데 저만 안 먹는다고 달라질 게 없잖아요……”
그렇게 변명하는 자리에도 어김없이 안주로 치킨이 올라와 있었다. 누군가 말했다.

“어떤 문제든 초석을 쌓는 사람이 필요한 거잖아요. 당장 지금 어떤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사실 페미니즘도 그렇고 모든 문제가 그래요. 황무지에서 작은 노력이 쌓이고 쌓여서 천천히 변화가 이루어지는 거죠.”
내 자기모순은 더 이상의 변명을 허용하지 않았다. 다 알면서도 식도락을 위해 진실을 외면해도 되는 걸까. 그럼 동물이 보기에, 여성주의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진보주의자들과 다름이 무엇일까. 결국 선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육식을 줄이는 길밖에 없었다.
먹을 때마다 고민하며, 가끔은 먹고 후회하기도 하며 줄여갔다.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저녁 메뉴를 고를 때 고민을 조금 더 해야 하지만, 인생의 낙이었던 버블티를 먹으러 가다 발길을 돌려야 했지만, 식당에 들어가 메뉴판을 보고 다시 나와야 할 때도 있지만, 그건 생각보다 사소한 노력이었다.

거부할 권리

채식인임을 밝히지 않는 이상 사람들은 모두가 고기를 먹을 것이라 간단히 가정한다. 성소수자라 밝히지 않는 이상 모두를 이성애자라고 생각하듯이 말이다.
돌이켜보면 초·중·고등학교에선 육식을 거의 강제한다. 도시락을 싸오면 된다지만 시간의 문제나 친구들 사이에서의 소외를 무시할 수는 없다. 대학도 비슷하다. 학생 복지를 목적으로 하는 학생식당에서조차도 채식주의자는 배제되어 있다. 생각해보면 법학관 학생식당의 그 많은 메뉴 중 제대로 된 채식 메뉴를 만드는 게 무리는 아닐 테다. 학과 행사에서 고깃집을 가는 일은 흔하다. 외부 행사에서 식사를 제공받으면 다 고기다.

채식인이 많은 나라에는 식당마다 채식 메뉴가 한두 개씩 있어 채식하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한국에도 채식 전문점이 없지 않지만 역부족이다. 흑석동엔 채식 전문점이 없다. 채식인이 먹을 수 있는 메뉴는 정말 한정되어 있다. 바다동물까지 먹는 나도 흑석동에 서 밥을 먹을 때면 비슷한 메뉴만 지겹도록 먹어야 한다. 바다동물이나 유제품, 달걀을 먹지 않는 사람들은 더 힘들 테다. 육식을 거부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 불편에 더해 채식인은 따가운 시선도 감수해야 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채식인의 존재를 불편하게 여기며, 어떻게든 채식인의 논리에서 허점을 찾아 공격하려 한다. 윤리적 이유로 채식한다는 선언을 고기를 먹는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느끼기 때문일까. 나는 자신을 채식주의자라고 선언한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채식을 지향한다는 사실이 알려질 때마다 수많은 질문 공세를 받아야 했다. 내게 질문한 사람의 대다수는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것이긴 했지만, 많은 채식인이 공격을 받는 일이 피곤해서 채식인임을 밝히기 꺼릴 정도로 그런 일은 빈번하다.

배려만으론 부족하다

다행히 내 주변에는 채식인을 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배려로만 끝나는 것이 어쩐지 찜찜하다. 내가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있는 식당에 함께 가서, 내 앞에서 제육볶음을 먹는 사람이 왠지 밉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은 고기를 먹어도 너무 먹는다. SNS에는 일상적으로 고기 사진이 올라온다. ‘1인 1닭’이라는 말이 유머로 사용된다. 모든 한국인이 한 달에 이틀만 1인 1닭을 해도 1억 마리가 넘는 닭이 도축되어야 한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한 사람이 닭 한 마리만 덜 먹어도 5천만여마리의 닭이 살 수 있다.
유제품도 그렇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시리얼에 우유를 자주 타먹었다. 우유나 두유나 내게는 비슷한 맛인데 말이다. 대부분의 카페 메뉴에는 우유가 들어간다. 카페에서 일하는 나는 매일 엄청난 수의 우유팩을 빈 곽으로 만들며 자기모순을 느낀다. 하루에만 몇십 개의 우유가 입고된다. 사람들은 별 고민 없이 우유가 들어간 제품을 먹는다. 딸기 빙수를 먹을지 치즈 빙수를 먹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치즈에 담긴소의 눈물은 안중에도 없을 것을 생각하면 어쩐지 슬픈 감정이 들곤 한다.
채식은 쉽게 채식인만의 관심사로 환원된다. 왜 육식이 나쁜지를 설명해도, “나는 고기를 먹을 테니 너는 열심히 채식해라”는 식이다. 자신이 가해자 집단에 속할 때는 어떻게 이리도 쉽게 눈을 감을 수 있을까. 동물 착취는 인간이 행하고 있고, 이를 멈출 수 있는 것 또한 인간뿐이다. 그런데도 육식주의 시스템의 공모자들이 자신과는 아무 관련 없는 일처럼 이야기할 때면 그들이 말하는 사회 정의와 소수자 문제는 대체 다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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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문학카페 36.5º

경계를 지을 수 없기에

실은 이 글을 쓰면서 스스로 부끄럽기도 하다. 가끔은 고기가 들어간 짜장면을 먹고, 학생식당에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없을 땐 고기반찬이 포함된 메뉴를 먹는다. 정말 가끔은 친구를 만나 스테이크를 먹는다. 육지동물을 덜 먹기 위해, 비슷하게 고통을 느끼는 바다동물을 더 먹는다. 채식하기 힘든 사회 구조를 탓하지만, 정말 하려고 하면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안다. 나는 가끔은 내 사소한 편리가 채식주의보다 중요한 사람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 완전한 비건 2이 된다면 윤리적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마트에서 먹을 것을 살 때면 남들보다 몇 바퀴를 더 돌면서 고민하게 된다. 동물복지 인증 마크가 붙은 달걀을 사려다가 멈칫한다. 노동자를 탄압하는 기업의 제품이다. 동물이 들어가지 않은 샐러드를 사려고 보면 일회용 포장이 두 겹 세 겹 되어 있다. 아메리카노에는 저 먼 나라 아동노동자의 눈물이 들어있지는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마트 안을 서성이다 보면, 아무것도 사면 안 되는데 그냥 아무거나 살까 싶기도 하다.
완벽한 윤리적 소비란 불가능하다. 아무리 철저한 비건이라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도덕적 혐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채식주의뿐만 아니라 그 무엇도, 여기까지는 비윤리적이고 여기부터는 윤리적이라고 경계를 지을 수 없다. 그렇지만 “모 아니면 도” 식은 곤란하다. 우리가 윤리적으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이, 윤리적으로 살기를 포기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거창한 이념이 필요한 게 아니다. 일상에서의 작은 실천이 필요하다. 제육볶음 대신에 콩고기를, 아이스크림 대신에 과일을, 라떼 대신에 아메리카노를 먹자는 이야기다. 우리의 편리를 위해 희생된 누군가를 잊지 않으며.

잡식동물의 딜레마

참고:

  1. <중앙문화> 70호, “인간만 평등하면 되나요?” 참고
  2. 고기는 물론 우유, 달걀 등 모든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 채식 혹은 채식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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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동물의 딜레마”에 대한 1개의 생각

  • 2018년 3월 31일 23:48
    고유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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