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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처

편집위원 이누리

※ A, B, C, 는 중간의 익명을 포함한 인터뷰들을 바탕으로 만든 가상의 인물이며,

인터뷰는 모두 사실임을 밝힙니다.

 

 

“학점이 잘 나오지 않으면 그냥 반수를 할까 싶어요.”

대학에 입학한지 2개월 남짓 된 16학번 새내기 A씨의 말이다. 그는 올해 정시로 중앙대학교 oo학과에 입학했다. 아니, 어쩌면 그의 소속은 oo학과가 아닐지도 모른다. 망설이던 A씨는 끝내 자신을 중앙대학교 oo대 소속이라고 소개했다.

“1년 후엔 다른 과에 가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멋쩍은 웃음 뒤로 당연한 듯 한숨이 따라붙었다. 그에게는 ‘광역대상 학생’이라는 꼬리표가 달려있다.

 

 

광역모집이 뭔데?

지금의 광역화 제도가 시작된 건 작년 2월 26일부터다. 2015년 첫 학기 개강을 사흘 앞두고 대학 본부는 “단과대 별로 모집인원을 광역화하여 선발하겠다.”는 대대적인 학사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적지 않은 학내구성원들은 허울만 좋지 학과 구조조정과 다를 바 없다며 반발했고, 뒤늦게 소통에 나선 본부는 약 두 달 뒤 본부/교수/학생 3주체로 이루어진 전체대표자 회의를 꾸렸다. 이 회의에서 논의를 거쳐 확정된 2016학년도 입학전형이 바로 ‘정시모집 광역화’다. 이는 정시로 선발된 신입생을 계열별로 모집한 뒤, 2학년 때 학과를 선택하게 하는 제도다. 이에 따라 지금의 16학번 광역 대상 학생들은 1학년 때의 학점을 기준으로 2학년 때 학과를 선택해야한다. 광역화 모집은 원래 정시에 한하여 추진되기로 했으나, 논의가 끝날 무렵 농어촌/재외국민/사회배려자 등의 정원 외 모집인원까지 대상에 포함됐다.

결국 올해 3월, ▲특성화학과(국제물류학과, 산업보안학과, 소프트웨어전공) ▲ 예체능계열 ▲사범•의•약•간호계열을 제외한 모든 단과대에서 총 600명 이상의 학생들이 광역모집으로 선발됐다. 이들은 합격자 조회 직전에 이루어졌던 설문조사를 토대로 임시학과(가전공)에 배정됐다. 이에 따라 해당 학생들은 자그마치 1년 동안 임시로 배정된 학과에서 수업을 듣고 성적을 받는다. 그렇게 받은 성적만이 2학년 때 자신의 학과를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 된다.

 

그러나, 정작 이 모집 전형으로 선발된 당사자 A씨는 이러한 사실들을 모르고 있었다. 모집요강에 적혀있던 ‘학칙개정에 따라 단과대학별로 광역모집 합니다’라는 문구를 입학 후에야 어렴풋이 떠올렸을 뿐이다. 합격의 순간에는 중앙대에서 내가 꿈꾸던 학문을 공부하게 되었다는 기쁨만으로 벅찼다. 무심코 지나쳤던 한 줄의 문장이 이렇게 커다란 내용을 담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2016년도 중앙대학교 모집요강에 적혀있던 문구. 광역모집에 대한 설명은 이 문장들이 전부다.
2016년도 중앙대학교 모집요강에 적혀있던 문구. 광역모집에 대한 설명은 이 문장들이 전부다.

 

“제가 다시 모집요강을 봤어요. 학생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더라고요. 아마 처음에 봤었더라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기도 했어요. 저 같은 사람이 많았는지 학생들이 모집요강에서 ‘광역모집’에 대한 문구를 보고도 그게 뭔지 몰라서 지식인에 물어본 경우가 많더라고요. 참고로 저는 입학식 날 성적순으로 강제배정 된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광역모집으로 입학한 역사학과 정다훈씨

 

“광역 모집을 한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정보가 없어서 학교에 전화를 한 적이 있어요. 정말 어이가 없는 게, 전화를 받은 사람이 오히려 ‘우리도 처음이다’ ‘입학하시면 알게 되지 않을까요?’ 라며 되묻더군요. 사기당한 건가 싶었어요.”

-광역모집으로 입학한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양지은씨

 

“재외국민 전형으로 들어왔어요. 모집요강에는 ‘전공 선택 관련내용은 추후 개정되는 학칙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문장 하나로만 설명이 돼있고 학과 배정에 관련된 정보가 전혀 없었어요. 모집 요강은 학생이 특정 대학에 지원할 때 꼭 알아야 할 정보가 다 들어 있어야 하는 문서잖아요. 미리 이런 사항들을 공지 받지 못해서 억울해요.”

-광역모집으로 입학한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K씨

 

 

인문대 소속 광역대상 학생인 B씨의 사정은 좀 다르다. 그는 애초에 다양한 학문을 접하기 위해 이 전형에 지원했다. 인문대 전반에 대한 학문을 공부하고 자신에게 맞는 학문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B씨는 합격자 조회 전에 의무적으로 해야 했던 전공별 선호도 조사를 기억해냈다. 해당 페이지에는 각 단과대에 소속된 학과들의 목록이 적혀있었다. B씨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입학 전 자신의 선호도에 따라 학과에 대한 순위를 매겨야 했다. 그 결과가 단순히 자신의 가전공을 배정하는 데에 쓰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합격 확인 창에서도 지망 조사가 가전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수업을 지망 순으로 조사해서 어떤 수업을 열 지 분석하기 위한 거라고 했어요. 이 조사를 통해 수요를 파악하면, 전공별로 수업을 얼마나 열어야 할지 분석하는 건 줄 알았죠. 제가 다양한 전공의 수업들을 들을 수 있겠구나 기대했어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전공탐색은 온전히 제 몫이 된 상황에서 제가 겪은 피해는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싶어요.”

-광역모집으로 입학한 인문대학 소속 J씨

 

“1지망부터 5지망까지 조사를 하더라고요. 당시에는 그게 어디에 쓰일지 몰랐죠. 어떤 목적으로 조사하는지 알려주지 않았거든요.”

-광역모집으로 입학한 경영학과 R씨

 

“당연히 전공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2학년 때 학과를 선택하는 줄 알았는데, 합격자 확인 전에 1순위부터 8순위까지 우선순위를 매겨야하는 거예요. 이게 뭐지 싶었죠. 입학하기는 사회과학대학으로 입학했는데 가배정이 됐다며 입학식에서는 학과를 찾아가야 하더라고요. 임시로 학과가 배정되었다는 걸 몰라서 선배들한테 자기 과를 물어보기도 하고……, 우왕좌왕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광역모집으로 입학한 정치국제학과 P씨

 

그들을 위한 ‘맞춤’ 교육

작년, 광역화 계획안을 처음 발표했을 당시 본부는 광역모집으로 선발된 학생들을 관리할 방안으로 ‘Academic Advisory System’ 을 포함한 몇 가지 1 제도를 제시한 바 있다. ‘Academic Advisory System’는 한 마디로 멘토링 시스템인데, 이에 따르면 교수 및 전문가들과 3학년으로 구성된 ‘Peer Advisor’는 광역모집으로 입학한 신입생들의 멘토가 되어 이들의 학교생활을 돕는다. 그러나 이 제도는 아무런 설명없이 사라졌다. 학사팀에 문의한 결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수업으로 ‘CAU 세미나’를 언급했다. ‘CAU 세미나’는 ‘Academic Advisory System’처럼 교수가 학생들의 멘토가 되어 이들의 대학생활 설계를 돕는 수업이다. 하지만 광역모집으로 입학한 학생들뿐 아니라 전체 신입생들이 듣는 수업이기 때문에 광역 대상 학생들을 위해 마련한 교육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대학본부가 마냥 손을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B씨처럼 다양한 학문을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수업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다빈치 교양 특강>이다. 이는 광역 모집된 학생들만 들을 수 있는 교양 수업으로, 일주일에 한번 2시간가량 유명 강사를 초빙해 특강을 진행한다. 매주 강사가 바뀌고, 강의 내용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성적을 따로 받지는 않고 Pass/Fail 시스템으로 평가가 이루어진다. 강의는 주로 인문학과 관련된 내용으로 채워지지만 학습 목표란에는 ‘광역 단위 신입생들이 자신의 삶과 전공 선택에 대해 깊이 있게 사유할 계기를 제공한다’는 문구가 버젓하게 적혀있다.

 

강의계획서에서 발췌한 의 학습목표
강의계획서에서 발췌한 <다빈치 교양특강>의 학습목표

 

 

 

“다빈치 교양특강이 전공탐색을 위해 마련한 강의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강의실에 300명 정도 되는 학생들이 앉아서 다른 과제를 하거나 졸고 있어요. 외부강사, 유명강사들이 와서 강의를 하시는데, 전공탐색을 위한 강의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듯해요. 지금까지 진행된 대부분의 강의내용은 인문학에 관한 내용이에요. 몇몇 친구들은 시간이 비효율적으로 쓰이는 것 같다며 드랍(수강포기)을 하기도 했어요.”

-광역모집으로 입학한 정치국제학과 H씨

 

“광역 대상 학생들은 다빈치특강을 듣는단 말이에요. 학교 입장에서는 학생들이 학부로 왔으니까 진로를 찾기 위해서 그런 강의를 한다고 하는데, 사실 시간대도 너무 애매하고, 외부에 보이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 강의 들으러 갔을 때는 어이가 없었어요. 대부분이 자거나 과제를 해요. 출석도 조교가 와서 자리 일일이 다 세어 보면서 체크하고요. 수업이라고 할 수가 없는 거죠. 제 친구 중에는 드랍한 애들도 많아요.”

-광역모집으로 입학한 정치국제학과 P씨

 

강의를 듣는 동안, B씨는 이게 어떻게 전공탐색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의문스러울 뿐이다. 꽤 괜찮은 수업이지만 강의내용을 아무리 곱씹어보아도 왜 광역 모집으로 입학한 학생들만 들어야 하는 건지 이해 할 수 없다. 한편, 다빈치 특강이 막바지로 흘러가는 가운데 멍한 표정의 A씨는 상념에 빠졌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무엇일지 고민하는 중이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그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견뎌봐야겠다고 다짐한다. 친구들은 ‘고4 생활 시작이냐’며 자조 섞인 농담을 던지기도 했지만 원하는 과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다.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제공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누구와 학점경쟁을 벌여야 하는지, 경쟁률은 또 얼마나 되는지 알 방법이 없어도 성적만 잘 받는다면, 1년 뒤엔 자신도 다른 수시 아이들처럼 즐거운 대학생활을 누릴 수 있을 터였다. 그래, 성적만 잘 받는다면 괜찮을 것이다. 지금의 불안한 마음은 그 때 가서 보상 받아도 늦지 않을 거라고 A씨는 열심히 자신을 다독여 본다.

 

“수시 친구들 시험 준비하는 거랑 정시 친구들 시험 준비하는 거랑 다를 수밖에 없어요. 수시 애들도 ‘야 너 광역이잖아 열심히 해’ 이러는데, 짜증나기도 하고, 1학기는 놀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는 거잖아요. 같이 입학한 사실이 분명한데, 대학에 입학해서도 전형으로 나뉘어서 다르게 대우받는 거 자체가 맘에 안 들어요.”

-광역모집으로 입학한 정치국제학과 P씨

 

 

“성적에 대한 부담이 상당히 크다는 게 제일 큰 차이겠죠. 다른 친구들은 학점이 아무리 낮아도 다른 과를 간다거나 자기 의지에 의해서 전과를 할 수 있는데, 저희는 그게 아니잖아요. 8명이 광역모집으로 들어왔는데 그 중 5명만 남고 3명은 다른 학과로 가야한대요. 저 같은 경우에는 인문대 내에서 역사학과 말곤 관심이 없어요. 3지망에는 어떤 학과를 썼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저한테 의미가 없는 조사였는데, 그런 과로 배정이 되면 저는 정말…… 대학생활 정말 힘들겠죠. 원하지 않는 과에 배정이 되면 전과를 하거나 재수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세월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광역모집으로 입학한 역사학과 정다훈씨

 

“어쩌면 광역 대상 학생들이 불안한 가장 큰 이유는 정보의 부족 때문이에요. 광역모집으로 입학했고, 상황이 이러니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학과를 선택하고 공부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요. 교무처장께 이메일로 확정안을 받은 게 불과 몇 주 전이에요. 그마저도 정원 외 학생들을 어떻게 배정할지 정확히 나온 건 없어요. 그래서 막연히 학점을 잘 따야지 결심할 뿐이죠. 대학까지 와서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게 가장 큰 공포에요.”

-광역모집으로 입학한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K씨

 

중간고사를 하루 앞둔 4월 19일, 김창일 교무처장이 광역 대상 학생들에게 보낸 메일 전문
중간고사를 하루 앞둔 4월 19일, 김창일 교무처장이 광역 대상 학생들에게 보낸 메일 전문

 

A씨가 애써 불안감을 지우는 동안, 같은 강의실에 앉아 있는 C씨는 이 순간에도 수시로 입학한 다른 친구들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그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일 당장 제출해야 하는 과제와 다음 달에 보는 시험인데, 과가 정해져 있는 친구들은 마음이 편해 보인다. 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그들은 자신들의 과를 잃을 일이 없을 테니 말이다.

사실 C씨의 경우에는 자신과 달리 광역 대상이 아닌 친구들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같이 수업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행정적인 문제였는지, 따로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수업이 겹치지 않아 두 달 간 수시로 들어온 친구들과 만난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런 게 학교가 말했던 맞춤 교육인지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수시 친구들과 격리당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얼굴도 잘 모르는 동기들과 문제를 공유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C씨가 느끼는 묘한 위화감은 나날이 커져만 간다.

 

“저희는 수시 애들과 정시 애들이 듣는 수업이 달라요. 정시 학생들은 수시학생들과 수업을 아예 다르게 듣는 거죠. 시간표가 짜여 나오는데 수시 학생들은 수시끼리 반배정이 되어있고 정시학생들은 정시끼리 반배정이 되어있더라고요. 제 경우에는 수강 정정 기간에 일부 수업을 바꿔서 우연히 수시학생들이 듣는 수업을 듣게 되었어요. 위화감을 느꼈죠.”

-광역모집으로 입학한 기계공학과 김찬우씨

 

 

“경영학부는 같은 반이지만 반 내에서 수시/정시 수업이 아예 달라요. 경영학과는 5개 반으로 나뉘는데, 반에 분포된 정시생은 열 댓 명 정도에요. 그런데도 수시생들과는 아예 수업이 겹치지 않아서 같은 반이지만 얼굴도 몰라요. 철저히 분리돼 있는 상태라 가배정된 과에 소속감을 느끼기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참고로 그 열 댓 명 되는 광역대상 학생 중 1/3은 반수 준비 중이에요. 경영학부 사무실에 전화해서 왜 수업에 학생들을 따로 배치했냐고 물어봤어요. 학번대로 자른 거라고만 이야기하더라고요. 광역모집 학생들은 학적 상 다른 학생들과 학번이 연결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요. 결국 그게 그거 인거죠.”

-광역모집으로 입학한 경영학부 조예지씨

 

 

자치활동은 사치에요

C씨가 임시로 배정된 학과는 특히 소모임과 학회, 학생회 활동이 활발하다. 선배들과 모여 부담 없이 자치활동을 하고 있는 수시 친구들이 부러웠던 그는 성적에 연연하며 불편하게 학과생활을 하느니, 차라리 조금이라도 즐기자는 생각에 결국 그나마 활동이 적은 학회에 들어갔다. 중앙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지만 시간을 많이 빼앗기면 공부하는 데 차질이 생길 테니 일단은 1년 뒤로 미뤄둔 상태다.

현재 그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곧 있을 학회의 엠티다. 기말고사 기간 역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학회 모임이 과제 제출일과 겹칠 때마다 꿋꿋하게 참석하곤 했지만 이번엔 아무래도 무리지 싶다. 이번에 시험을 잘 보아야 이 과에도, 사랑하는 학회에도 남을 수 있다. 같은 학회 활동을 하고 있는 C씨의 선배는 그에게 학회장 자리를 권하기도 해서 요새 부쩍 마음이 복잡하다. 물론 하고 싶다. 하지만 이 과에 남을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은 이상 섣불리 대답 할 순 없다. 구성원에게 민폐를 줄 바에 아무것도 안하는 게 나았을까. 야속한 마음을 달래며 C씨는 생각한다.

 

“동아리 활동 할 때 수시 애들과는 달리 소극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시간이 뺏기는 활동을 하게 될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아요. 성적관리를 해야 이 과에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죠.”

-광역모집으로 입학한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박정화씨

 

“학생회 집행부를 2학년 때부터 하더라고요. 학생회를 하고 싶은데도 학점이 될지 안 될지에 따라서 못하게 되는 거잖아요. 자유가 박탈당한 거죠.”

-광역모집으로 입학한 심리학과 K씨

 

“과 잠바 같은 경우, 얼떨결에 사기는 했는데, 내년에 또 사야하나?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야기하기도 해요. 이도 저도 아니게 될 때가 많죠. 지금은 우리 과 학생끼리 으쌰으쌰하는데, 나중에 누군가는 떠날테니까 연대감은 부족할 수밖에요.”

-광역모집으로 입학한 기계공학과 김찬우씨

 

계속되는 변명과 진정성 없는 사과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사회과학대 학생회가 주관했던 의견 수렴회, 총학생회가 주최했던 광역 모집단위 토론회에 참석한 2 김창일 교무처장의 말이다. 그는 광역모집으로 입학한 신입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도의 실패를 인정했다. 학생들이 지적했던 다빈치 교양 특강은 전공탐색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마련한 수업은 아니고, 인문학적 소양을 넓히기 위한 수업이라고 변명하기도 했다. 자리에 있던 학생들은 그렇다면 더더욱 광역 대상 학생들만 들을 수업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대학본부가 광역모집으로 입학한 학생들을 위해 어떤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지 본인들마저 모르는 눈치였다.

최근 이루어진 2차 토론회에서 본부는 17년도에는 광역화 모집을 잠정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밝히며 학생들이 그토록 원했던 구체적인(?) 방안을 들고 나왔다.

 

사진5

 

결국 단과대의 의견을 반영해 학과에 받을 수 있는 학생정원의 기준을 넓힐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전공 탐색 기회를 넓힐지, 광역모집으로 입학한 학생들이 일상에서 겪는 차별들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나타난 바가 전혀 없다. 본부가 보여준 일련의 태도가 학생의 처우는 생각하지 않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데 무리가 없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17년도에도 공과대학, 창의ICT공과대학의 경우엔 광역모집을 유지하고, 18년도에는 다시 재정비한 상태에서 광역모집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학생들 앞에서 연거푸 사과했던 모습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결과다.

 

“입학 전, 2월 17일에 가전공을 발표한다고 했다가 연기가 되었어요. 그리고 입학식까지 가전공 배정 발표가 계속해서 미루어지더라고요. 결국 1지망에 전부 가배정이 되었는데, 의문이 들어 입학처에 전화를 했어요. 학생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있어서 배정을 결심했다고 말했어요. 꿈을 찾게 해준다고, 다양한 진로를 탐색하게 해준다고 했는데, 저희는 대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되는 건가요?”

광역 모집으로 입학한 사회과학대 소속의 한 학생이 토론회 자리에서 했던 울음 섞인 물음이다. 대학본부는 이 물음에 대해 대답할 수 있을까? 아직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지난 5월 17일, 중앙대학교 공식커뮤니티 '중앙인'에 올라온 2016년도 제 8차 교무위원회 의결사항 안내
지난 5월 17일, 중앙대학교 공식커뮤니티 ‘중앙인’에 올라온 2016년도 제 8차 교무위원회 의결사항 안내

 

 

정비해서 실시한다는 말도 못 믿겠어요. 재정비를 한다해도 인기학과의 쏠림현상은 반드시 일어날 테고, 그에 대한 정원을 둔다면 어쨌든 원하지 않는 학과에 가는 학생이 생길 거잖아요. 그러면 광역모집의 취지도 잃게 되지 않을까요?”

-광역모집으로 입학한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박정화씨

 

위 의결사항을 살펴보면 꽤 많은 내용들이 적혀있지만 구체적인 방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학생들이 가장 크게 문제시하고 있는 위화감, 상대적 박탈감 등을 완화할 방안에 대해서도 아직 구체적으로 나온 것은 없다. 지난 토론회에서 김창일 교무처장은 이후에 16학번 광역 대상 학생 관리방안을 더 들고 나오겠다고 이야기했으나, 취재 결과 아직까지 구체화 된 바는 없다고 한다. 본부에 대한 학생들의 불신이 어쩌면 당연한 상황이다.

 

 

모두가 당사자다

“제가 당사자가 아니라고 말하면 안 되는 거 같아요. 저도 당사자에요. 저도 학교라는 같은 공간에서 강의를 듣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그 사람들이 불만을 갖는 사람들에 대해 저도 불만을 갖고 있고요. 결정적으로 중앙대라는 틀에 같이 묶여 있으면서 당사자가 아니라고 얘기하는 건 웃기잖아요. 당사자라고 생각해서 저도 많이 억울했어요. 억울한 마음이 가시지 않더라고요.”

-역사학과 4학년 과대표 김병선씨

 

당위적인 말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 당사자는 A씨, B씨, C씨 뿐 아니다. 광역모집으로 입학한 신입생들이 겪고 있는 문제는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다.

학생들의 선택에 의해 학과를 편성하게 된다면 인기학과와 비인기학과가 더욱 극명하게 나뉘기 마련이다. 인원이 쏠린 학과들은 강의정원이 불어날 수밖에 없고, 정원이 늘어도 공간여건은 그대로니 자연스레 강의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 실제로 가배정 인원이 많은 학과의 경우, 전공수업임에도 서서 수업을 들어야 할 정도의 대형 강의들이 개설되곤 했다. 강의를 맡은 한명의 교수가 100명이 넘는 학생들을 모두 관리하기란 쉽지 않다. 인원이 많아 조별과제조차 힘들다. 복수전공생, 타 학과 학생, 재수강이 필요한 타 학년 학생을 위한 여석은 그만큼 줄어든다. 줄어든 여석에 수강신청은 더욱 힘겨워 질 테다. 반면, 학생들에게 선택받지 못한 학과들은 존립자체를 위협 당하기 일쑤다. ‘학생들의 수요가 없으니 폐과를 결정했다.’ 지난 2013년 구조조정의 명분이었다. 또 반복 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먼 훗날, 사랑하는 학과를 잃는 건 앞서 보았던 광역 대상 학생들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17년도 광역모집안이 잠정적으로 폐지됐다. 말 그대로 ‘잠정적인’ 폐지다. 대학본부는 내후년에 몇 가지 내용을 다듬은 뒤, 광역화를 다시금 시행하겠다고 한다. 이제까지 발생한 문제들은 준비기간이 부족했던 탓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과연 마땅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아서, 세련된 안이 아니라서 벌어진 문제들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광역모집을 다른 방식으로 시행하고 있는 타 학교의 경우에도 한계는 분명 존재했다. 본질적인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는 당사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진6(대체)

 

 

 

광역으로 뽑힌 게 죄인가요?

참고:

  1. 이 외에도 인성교육 세미나와 ‘Rainbow System’이라는 스펙 관리 방안이 있었다.
  2. 사회과학대 의견수렴회, 광역모집단위 1차 2차 대토론회 모두 학생회의 주도로 이루어진 자리였다. 대학 본부가 광역모집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한 자리는 이제까지 일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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