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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1

객원편집위원 노치원

 

한국의 어른들이 편집증을 앓고 있다. 헬조센, 죽창, 금수저. 갑작스레 등장한 과격하고 젊은 인터넷 신조어들이 한 몫 했다. 청년층이 힘들다는 확실한 증거로 신조어들을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몇몇 보수 인사들은 못사는 북녘을 보라며 이곳은 헬(Hell)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단순한 불만 표출에 불과하다고 젊은이들의 탈정치성을 비판하는 지식인들도 있다. 각양각색이다. 자기만의 인과관계를 설정해서 특정한 현상을 바라보는 증상, 우리는 이를 편집증이라 부른다.

청년층보다 헬조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집단은 바로 기성세대다. 하지만 그 진지함에도 불구하고, 쏟아지는 해석들은 위의 인터넷 용어들이 놓인 다양한 맥락을 놓치고 있다. 가령 진보 진영에서는 한국이 지옥만큼 힘들다는 인식 하에 ‘헬조선’을 즐겨 차용한다.

하지만 한국이 ‘조선’으로 쓰이는 지점에서, ‘헬조선’의 사용 범위는 진보 진영의 기대를 배반한다. 즉, 모 정치인의 아들이 한국은 미개하다고 표현했던 맥락에서도 ‘헬조선’은 사용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죽창을 들자’는 사회적 구조에 대한 분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기존 운동권의 이미지를 희화화하는 유머코드가 내재한다. ‘금수저’와 ‘흙수저’ 역시 경제적인 계급에 대한 적대감보다는 자조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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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인터넷 신조어들은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된다. 위의 예시처럼 진보 진영의 기대를 배반하는 지점에서도 헬조선과 죽창은 등장한다.

 

사실 각양각색의 해석들은 어딘가 익숙해 보인다. 기존에 청년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가령 헬조선이 아닌데 헬조선이라고 징징댄다며 충고하는 보수 인사들의 발언은, 마음만 먹으면 대한민국 젊은이는 모든지 할 수 있다던 ‘실크세대 1‘와 ‘G20세대 2’를 떠올리게 한다. ‘청춘들이 너무나 힘드니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온다’는 주장은 ‘88만원 세대 3’, ‘삼포 세대 4’와 차이가 없다. ‘말만 헬조선이라 떠들지’로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이를 지적하는 건 ‘20대 개새끼론 5’의 연장선이다.

과격한 유행어를 청년 세대와 결부시키는 기성세대의 전략이 정치적으로 유효하냐는 점에도 회의적이다. 각종 통계 지표를 앞세워 헬조선을 얘기하는 뉴스는 전혀 신선하지 않을뿐더러, 청년들의 공감을 사기에도 버거워 보인다. 결국 우리가 헬조선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청년이 아닌, 오히려 기성세대의 정신 구조다. 정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상호간의 의사소통이다. 그렇다면 청년과는 상관없이 홀로 헬조선을 중얼거리는 어른들의 모습이야말로 탈정치적이다. 또한 맥락과 상관없이 동어반복한다는 점에서 탈역사적이기도 하다. 탈정치, 탈역사적이라는 말은 시간이 멈췄다는 말과 동의어다. 그렇다면 어른들의 시간은 어디서 멈춰버렸는가. 1960년대에 출생하여 1980년대에 대학생활을 했고 1990년대에 30대였던, 386세대 6의 시간으로 달력을 되넘긴다.

 

메아리치는 응답하라 1987”

87년 체제 7. 3저 호황과 88올림픽을 맞아 경제적 호황을 누리면서, 동시에 6월 민주항쟁을 이끌어 냈던 민주화의 쾌거를 이뤄냈던 시기다. 이른바 386세대는 경제와 정치의 영역에서 한 단계 진일보를 이뤄냈던, 한국사회에서 유래 없는 세대였다. 지금보다 경제적, 정치적으로도 낙후됐던 상황이었기에, 그들이 지금의 청년들을 이해하기란 더욱 쉽지 않다. 30년 후 헬조선을 외치는 청년들의 모습은 아마 지금의 장년층에게는 격세지감일 테다.

헬조선을 둘러싼 어른들의 각양각색 해석에는 87년 체제의 향수가 여전하다. “청년들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데 헬조선이 웬 말이냐”와 “헬조선 타령만 하지 말고 이제 청년들은 정치적으로 각성하라”는 식의 구호들은 경제적/정치적으로 성취를 이뤄냈던 87년 체제가 만들어낸 욕망이다. 낡아버린 어른들의 욕망을 경유하면, 정치적 진영에 따라 극단적으로 나뉘는 헬조선 담론들에서 교집합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바로 여전히 주체적인 선택이 가능하다는 환상이다. 대개 보수 진영은 청년 세대가 여전히 경제적인 영역에서 선택이 가능하다고 믿는 반면, 진보 진영은 정치적인 영역에서의 선택이 여전히 가능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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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치적 영역에서 성취가 여전히 가능하다고 믿는 어른들의 정신 구조가 헬조선 담론에 묻어 나온다. 그렇지 않을 경우, 청년들에 대한 시혜적 정책을 헬조선이라는 단어와 엮곤 한다. 대표적인 키워드가 청년 실업률이다. 하지만 이를 청년 언어를 분석하는 하나의 담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헬조선을 둘러싼 담론들이 신선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다. 한때 유행했던 ‘88만원 세대’와 ‘달관 세대’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대립항으로만 보이는 두 단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역시 주체적 선택이 가능하다는 환상이다.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는 주장은, 87년도의 민주 항쟁이 그랬듯이 너네 스스로 들고 일어나라며 청년들의 등을 떠민다. “저녁 있는 삶을 위해 자발적으로 비정규직과 계약직을 선택한 달관 세대”는 여전히 경제적으로 선택이 가능하니 노오오오오오력하라며 청년들의 어깨를 두드린다. ‘xx세대’에서 헬조선에 대한 각종 해석들까지, 어른들의 청년에 대한 시선은 식상하게도 바뀌지 않는다.

현재 청년들은 왜 선택이 불가능하냐며 반문한다면, 답변할 자료가 넘쳐 지면상 싣기 곤란할 지경이다. 97년 경제위기를 지나면서 강산이 바뀌었다. 87년 체제가 민주화를 필두로 하는 정치체제의 전환이라면, 97년 체제는 본격적인 경제 체제의 전환이다. 민영화, 노동의 유연화, 금융의 탈규제. 97년 이후에 나타나는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양상이다. 혹독한 경제 위기를 겪은 뒤에 한국 사회의 지상 과제는 이제 생존이 됐다. 87년도의 청년의 모습이 어쨌든, 먹고사니즘에 내몰린 지금의 청년들에게 굳이 푸를 청(靑)자를 강요하긴 힘들다.

결국 문제는 헬조선을 필두로 청년 의제를 설정하는 정치적 효과다. 각종 언론사들은 앞 다투어 오피니언 칸을 헬조선에 할애하며 청년들에 대해 떠든다. 여기에 거대 양당이 가세해서 청년 고용을 주장하며 그 근거로 헬조선 담론을 든다. 하지만 이를 헬조선 담론의 정치적 효과라고 말한다면, 참을 수 없는 정치의 가벼움이다. 기성세대의 욕망이 빚어낸 익숙한 청년상, 무언가 ‘청년스럽게’ 새로운 인터넷 용어들, 이에 걸맞은 시혜적인 정책. 이 삼박자 쿵짝을 청년 정치라고 말하기엔 어딘가 수상하다.

 

 

청년 세대의 균열

분명 헬조선 담론에서 정치적 효과를 가장 발휘하고 있는 부문은 청년 실업이다. 대개 헬조선을 다루는 기사는 청년 실업이 문제라며 비참하게 결론짓는다. 물론 청년 실업이 심각한 건 사실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반적인 4년제 대학교를 착실하게 다녔음에도 취직이 되지 않는 대학생들이 문제 8다. 학벌 사회에서 공부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던 확신 하에 책상 앞에서 엉덩이 싸움을 오랫동안 해온 그들이다. 이른바 ‘엄친아 9’를 유행시켰던 세대기도 하다. 몇 년 전만 해도 엄친아를 부러워하던 그들이 이제는 ‘금수저’를 외친다.

엄친아와 금수저의 차이는 무엇일까. 엄친아는 순전히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한 캐릭터다. 여기서 계급에 대한 인식은 드러나지 않는다. 부모 세대의 욕망을 충실히 반영하기 위해서 계급은 필연적으로 은폐되어야 한다. 많은 청년들이 엄친아라는 순전한 꿈을 안고 대학에 진학했지만 취업의 문은 좁았다. 학벌사회가 보장해주지 못한 대학생들이 분풀이를 할 수 있는 곳은, 결국 부모가 애써 감추려던 계급이다. 이른바 금수저 타령이다. ‘노오오오오오력’과 금수저 타령이 함께 출몰한 건 우연이 아니다. 학벌사회가 강조하던 ‘노력’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 현실에서 ‘노오오오오오력’이라는 희화화 표현이 탄생한 셈이다.

대개 진보 진영은 금수저 담론을 통해, 청년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며 현 정부와 여당을 비판한다. 이와 달리 몇몇 보수 매체들은 금수저 담론을 영리하게 이용한다. 정규직 기득권이 청년 세대에게 양보를 하지 않는다며, 노동자 계층 내부의 분열을 야기하는 프레임을 만들어낸다. 어찌됐건 두 진영 모두 청년들의 경제적 불평등을 전제로 각종 인터넷 신조어들을 추리하는 중이다. 하지만 학벌사회의 피해자들이 금수저와 노오오오력을 울부짖는 맥락을 대입할 때 이야기는 달라진다. 학벌사회의 피해자들은 청년 전체의 부분집합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학벌사회 내부의 청년들이 받은 모멸감’이 ‘청년 불평등’으로 치환되면서, 보편적인 문제는 이제 특정 세대의 문제가 된다. ‘1% vs 99%’가 아닌 ‘청년 vs 어른’의 프레임으로 분배 문제를 접근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위의 프레임은 현실이 됐다. 노동자 계층 내부에서 청년과 어른들의 파이 나눠먹기인 임금 피크제가 대표적인 예다. 물론 지난 9월 노사정협의회에서 합의한 사안은 임금피크제만이 아니다. 헬조선 담론이 각종 미디어에 도배되면서 청년 불평등을 떠드는 동안, 비정규직 고용 기한은 4년으로 확대됐고 정규직의 쉬운 해고가 보장됐다. 청년 일자리 보장이라는 미명 하에 말이다.

이 프레임 안에서 학벌사회의 외부에 위치하는 청년들은 ‘청년’으로 호명되지 않는다. 10년 전에 비해, 대학교졸 이상의 학력은 실업률이 증가했지만, 오히려 전문대 졸 학력의 실업률은 낮아졌다. 한국 사회에서 고졸은 일관적으로 실업률이 높았지만, 지난 2/4분기 대졸실업률은 고졸실업률을 넘어서기에 이르렀다. 10 즉, 최근 청년 실업률의 주인공은 학벌사회 내부에서 불안에 떠는 청년들이다. 이들 이외의 청년들은 취업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하청과 비정규직 문제와 같은 저질의 일자리와 고용 안정성이 그들에게는 문제다. 사실 이는 청년만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며, 새로운 현상이 아닌 한국사회의 고질적 증상이다.

쏟아지는 헬조선 담론은 청년 세대론을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대체 청년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라는 호기심의 결론은 결코 청년 세대가 균일한 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어른들은 청년에 왜 이렇게 집착하는가. 87년 체제 하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른들의 청년에 대한 호기심은 어떻게 유래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청년에 대한 이상한 호기심

87년 체제를 이끈 주역인 60년대 출생자의 80% 정도는 학력이 고졸 혹은 그 이하였다. 11 즉, 민주화를 이끈 386세대의 주요 구성원은 소수의 대학생들이다. 바로 이들이 현재 한국 사회의 담론을 이끄는 지식인 계층이다. 그들에게 청년이란 대학을 나와서 당당하게 정치적인 발언을 할 수 있거나, 혹은 화이트칼라로서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존재다. 사실 인터넷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유행한 헬조선이나 죽창, 금수저 같은 단어들을 서브컬쳐로서 분석하려는 노력은 미미하다. 그러기에 어른들은 아무래도 찜찜하다. ‘그래도 청년들이 쓰는 언어인데?’

20년 전과 달리 대부분의 청년들이 대학에 진학한다. 그 중에는 생계가 어려워 일을 병행할 수밖에 없는 대학생들도 있다. 물론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곧바로 생업에 뛰어드는 사람들 역시 청년이다. 그들이 헬조선을 외치는 이유는 청년만의 특별한 무언가 때문이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멸감이 인터넷 문화로서 표출된 셈이다. 정치적/경제적 영역에서 주체였던 80년대 대학생의 모습으로 균열적인 그들을 설명하긴 힘들다. 그럼에도 87년 체제가 빚어낸 주체적인 청년상은 끊임없이 헬조선 담론을 경유하면서 재생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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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청년세대’ 구성의 문화정치학」, 김선기, 2015)

▲각종 ‘xx세대는 청년 세대가 균일한 집단이 아님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헬조선 담론에서 ‘xx세대의 인식은 여전히 발견할 수 있다. 청년들의 언어를 분석한다는 핑계로 말이다.

 

물론 헬조선은 청년들이 만든 언어다. 문제는 헬조선 담론이 기존의 세대론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 즉 비평이 부재한 상황이다. 사실 청년 문화를 둘러싼 어른들의 촌극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십여 년 전까지도 유행했던 촌스러운 비평을 떠올려보자. 젊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인터넷이 전자민주주의를 실현시킨다던 이상적인 주장부터, 쓰레기 같은 공간이니 인터넷을 끄고 현실로 나오자고 권유하던 혐오론까지. 새로운 문화적 현상이 정치적으로 번역되는 순간, 이상하게도 기존의 주장이 덧씌워지는 마술은 오랜 관습이다.

청년에 대한 어른들의 오리엔탈리즘을 이해하기 힘들진 않다. ‘젊은 세대는 무언가 우리와는 다를 것이다’라는 기대. 어쩌면 한국 사회의 적폐에 대한 가능성을 찾으려는 어른들의 필사적인 노력일지도 모른다. 젊은 세대에게 모든 문제를 떠넘긴다는 비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청년들의 언어를 정치적으로 번역하려는 과정과 그 해답이 너무나 쉽고 식상하다. 청년 문화를 지금의 정치적 상황과 결부시킬 때, 일차적인 고민은 후자가 되어야 한다. 현재의 정치를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은 채, 청년 문화를 해석하면 식상한 세대론이 탄생하게 된다. 막연한 세대론 만큼 쉽고 무용한 해결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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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은 솔직한 편이다. 헬조선 담론의 실체를 스스로 폭로했으니 말이다.(사진 출처 : 뉴스1) 

 

청년들의 헬조센이나 어른들의 헬조센이나 별 다르지 않다

헬조선 타령은 젊은이들이 받은 좌편향 교육 탓이라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말했다. 그는 헬조선 담론의 실체를 스스로 폭로한 셈이다. 도무지 관련 없어 보이는 ‘헬조선’이라는 말이 ‘좌편향 교육’과 결합될 수 있는 연결 고리는 단 하나밖에 없다. ‘청년’이라는 실체 모를 집단이다. 반대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청년 실업에 대한 심각한 인식이 없다’며 김무성 대표를 비판했다. 결국 두 사람 모두 헬조선을 언급하지만 기존의 청년상을 동어반복하고 있다.

식상한 어른들의 시선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할까. 가장 효과적인 대답은 다음과 같다. 청년들의 헬조선이나 어른들의 헬조선이 별 다르지 않다는 것. 좌편향 교육을 받은 이들, 혹은 청년 실업에 허덕이는 이들에게만 헬조선이 아니다. 좌편향 교육의 혜택조차 못 받은 이들도, 취업을 한 비정규직도 헬조선을 외친다. 헬조선에서 가능성을 읽기 위해서는 청년 세대론부터의 탈출이 우선이다. 기존의 청년 세대론을 답습하는 순간, 헬조선 담론은 역설적이게도 헬조선을 말하지 못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던데, 청년을 알기 전에 그대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점검해보자. 헬조선이 그렇게 신기한 용어만은 아닐 테다.

‘헬조선’이 그렇게 궁금하세요?

참고:

  1. 인터넷과 대중문화를 기반으로 전 세계를 연결하는 새로운 실크로드를 열어나가는 젊은 세대를 뜻한다. 보수논객 변희재를 주도로 71년생 이하 젊은 리더들로 구성된 실크로드 CEO 포럼에서 따온 세대 명칭이다. 2009년, 조선일보의 ‘낡은 386은 가라. 20~30대 실크세대가 나간다’는 기사로 알려지게 된 용어다.
  2. 2011년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사에서 유래된 용어. 세계를 무대로 도전하는 창조적인 젊은 세대를 뜻한다.
  3. 우석훈. 박권일이 쓴 책 <88만 원 세대>에서 유래된 용어. 88만 원은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인 119만 원에 20대의 평균 소득 비율 74퍼센트를 곱해서 산출한 금액이다.
  4. 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한 젊은 세대를 일컫는 용어. 2011년 경향신문의 ‘복지국가를 말한다’라는 기획 기사에서 처음 사용된 신조어.
  5. 20대가 사회 참여는 하지 않고 스펙 쌓기에만 몰두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나온 일련의 청년세대담론을 통칭 (출처 : 「‘청년세대’ 구성의 문화정치학」, 김선기, 2015)
  6. 여기서 386세대는 단순히 민주화 운동만을 했던 집단에 한정하지 않는다. 동시대에 살면서 경제적 성취를 이뤄냈던 이들까지 포섭해서 386세대로 정의한다. 즉, 80년대를 겪으면서, 정치적/경제적 성취를 동시에 이뤄냈던 한국사회의 유래 없는 세대 전체를 말한다.
  7. 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출범한 87년 체제는 종속적 파시즘 내지 관료적 권위주의로 불렸던 억압적 정치 체제의 해체를 특징으로 한다. 완전하진 않지만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이뤄낸 반면, 경제체제의 경우는 61년 이후의 발전국가 모델을 이어갔다. 80년대 경우 발전국가 모델의 경제 성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다. – 「‘한국체제’ 논쟁을 다시 생각한다」, 손호철, 2009 참고)
  8. ‘엄마 친구 아들’의 준말. 엄마가 잔소리할 때 비교하는 자신의 친구의 아들은 항상 잘났다는 뜻으로 사용됨.
  9. 통계청 참고(경제활동인구조사 : 연령/교육정도별 실업률)
  10. 통계청 참고(e-나라지표 : 취학률 및 진학률) 80년대 중후반의 대학 진학률은 대체로 20%이다. 참고로 1987년의 대학 진학률이 23.2% 밖에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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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이 그렇게 궁금하세요?”에 대한 1개의 생각

  • 2018년 3월 31일 10:52
    고유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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