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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이뤄진 것은 하나도 없다”

-중앙대 성폭력 사건과 제도를 돌아보며

안태진 편집장
Ⓒ이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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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바르는 여학생들 잔뜩 오면 뭐하나’ 1

  중앙대학교 전 이사장의 발언이다. 2015학년도 지식경영학부 수시모집에 참여한 교수와 입학사정관들의 증언에 따르면 박용성 전 이사장은 ‘분 바르는 여학생’ 대신 ‘학교에 기부금을 낼 남성 지원자들을 많이 뽑으라’고 지시했다. 이에 이산호 입학처장은 ‘중앙인’을 통해 입시결과를 제시하며 입학 전형의 공정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결과와 무관하게 발언 그 자체가 문제다.

같은 날, 중앙대 교수가 학생에게 성폭력을 가했다는 기사 2가 외부언론에 보도됐다. 사건은 학생들과의 모임자리에서 일어났으며, 이를 접수한 인권센터는 교무팀에 징계요청서를 제출했다. 현재 해당 교수는 직위해제 된 상태로 징계 수위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12월에도 학내 성폭력 사건이 대두되 논란이 됐다. 2009년부터 3차례, 각기 다른 학생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교수가 사건이 밝혀진 이후에도 수업을 맡아서 진행했기 때문이다. 결국 해당 교수는 징계 없이 사표 처리되어 퇴직금과 연금 등의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었고, 사회적인 인식 또한 여.남 평등이라는 인식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마스터키 총학생회 2014 1학기 전학대회 자료집

  2014년 1학기 전학대회에서 ‘마스터키’ 총학생회가 제시한 총여학생회 특기구화 안건의 논리다. 이날 전학대회에서 총여학생회는 설립된 지 29년 만에 폐지됐다. 그러나 이후 벌어진 일련의 성폭력, 성차별 사태를 돌아봤을 때 과연 대학 내 성평등이 실현됐는지 의문이 든다.

물론 과거와 현재를 비교했을 때 분명히 차이는 있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역대 중앙대의 여성운동과 공론화된 성폭력사건을 제도의 변화를 중심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중앙대 내 대학언론과 외부언론 기사 등 접근 가능한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돼 한계가 있음을 미리 밝힌다.

또한 구체적인 사건의 정황과 피해자에 대한 내용은 최대한 언급하지 않았고 성희롱과 성폭행을 구분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고 판단해 모두 성폭력 3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현재의 제도가 갖춰지기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는 이유는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성에 대한 실마리를 얻기 위함이다. 본 기획이 좋은 길잡이가 됐으면 좋겠다.

 

1975 총여학생회의 설립- 가부장적 대학사회에서 여성의 권익옹호를 말하다.

  1970년대에는 전체 대학생의 25.4% 4만 여성일 정도로 여성은 교육에서 소외됐다. 남존여비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양적으로도 소수인 대학 내 여성들은 약자일 수밖에 없었다. 학생회장 등 대표자들 역시 대부분 남학생이었다. 이런 문화적 환경 속에서 처음으로 확인되는 중앙대 여학생 단체는 1967년 창간된 최초의 여성주의 교지 < 녹지>다. 녹지는 중앙대 여학생을 편집위원으로 두고 여성 필자의 글을 모아 내는 역할을 했다.

전체 학생을 대표하는 기구에 여학생부가 설치된 것은 1975년이다. 박정희 정권은 1975년 학도호국단을 부활시켜 총학생회를 대체한다. 당시 학도호국단의 집행국 중 여학생위원회가 생겼다. 하지만 대학의 좌익학생들을 색출하고 군대식 집단 훈련과 반공교육, 새마을 운동을 이끈 학도호국단의 역사를 볼 때 여학생위원회가 여성권익을 위해 활동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군부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화 투쟁의 물결이 대학을 휩쓸 당시에도 여학생들은 주변부로 밀려났다. 이에 학도호국단이 폐지되고 총학생회가 재건되는 흐름 속에서 여학생들은 독자적 노선을 추구한다. 1985년 중앙대에 제 1대 총여학생회가 생긴 것이다. 총여학생회는 ‘여성의 주체성 회복과 권익옹호’를 내걸고 출발했다.

 

1990년대 성폭력 학칙제정운동과 성과

  총여의 설립뿐만 아니라, 성폭력 사건에 대응한 학생들의 자치적인 해결 움직임도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1999년, 1년간 ‘공론화된’ 성폭력 사건만 3건이다. 성폭력 사건이 자주 발생하자 ‘학생회관 3층은 여학생들이 함부로 돌아다니기 어렵다’ 5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대학에는 성폭력에 관한 학칙도, 전담기구도 전무한 상태였다. 본부에 ‘여학생부’가 존재했지만 일부 행정적인 부분만 관여했다. 상담기구로는 95년도에 만들어진 ‘학생생활연구소’가 있었지만 정신건강, 취업 등 생활 전반을 대상으로 하는 기구의 특성 상 한계가 많았다. 사실상 총여학생회가 성폭력 상담과 신고를 접수할 수 있는 전담 통로였다. 그러나 관련 학칙이 없었기 때문에 가해자에 대한 사과문 요구 등이 최선이었고 대학 내에서 제도적 해결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따라서 90년대 총여학생회, 단과대 여학생위원회 등 여성기구들은 학칙과 전담기구 설립에 대한 목소리를 꾸준히 냈다. 99년 총학생회 산하에 구성된 성정치위원회는 ‘반성폭력 운동을 위한 모임’을 결성해 관련 제도 마련을 요구하기도 했다.

꾸준한 활동을 바탕으로 제 2캠퍼스 15대 총여학생회(‘당찬 여성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대학본부와 ‘성폭력 학칙 제정팀’을 꾸려 학칙 제정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총여는 성폭력 학칙 가안을 발표한 뒤 학우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토론회를 열었고 서울 소재 대학들과 함께 ‘성폭력 학칙 제정 연대회의’에 참여하기도 했다.

마침내 중앙대는 2001년에서야 ‘성희롱, 성폭력 예방 및 처리에 관한 규정’(이하 ‘규정’)을 마련한다. 규정은 학생생활연구소 내에 ‘성폭력상담실’을 신설해 신고 접수와 상담 등을 맡도록 했다. 또한 성폭력에 관한 심의·의결기구로 ‘성윤리위원회’를 구성하는 내용과 사건처리 절차를 명시했다.

 

기숙사 야유회 사건- 학생 자치규약(반성폭력 회칙)의 제정

  2003년 당시 대학사회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 사건이 있다. 바로 기숙사 야유회 사건 6이다. 2003년 10월 기숙사 관생 230여 명이 1박 2일로 야유회를 떠난다. 참여하지 않으면 벌점 5점이 부과되는 강제성을 띈 공식 행사였다.

행사는 군복을 입은 고학번들이 훈련소의 조교처럼 지도하며 ‘정신을 차리자!’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얼차려를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들은 ‘여기가 군대가 아닌 것이 아쉽다’는 말을 했고 동행한 학생지원처 직원은 ‘남학생들은 군대를 다녀와서 인내심이 있지만 여학생은 인내심이 부족하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계곡 물 속에서 남자가 여자를 업고 단어 맞추기, 벽돌 위에 최대한 많은 남녀 올라가기 등 신체접촉이 수반되는 게임을 진행했다. 전반적인 행사분위기에 불편함을 느낀 여학생들이 건의하자 기숙사 사감은 ‘뒷 이야기 할거면 다른데 가서 이야기하라’며 침묵을 요구한다.

이에 일주일 뒤 한 학생이 서울캠 17대 총여학생회에 사건을 신고했고, 총여와 학내 여성주의자들은 ‘기숙사 야유회 성폭력 사건 해결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구성한다. 비대위는 본 사건을 환경적 성폭력으로 규정하고 대자보를 부착했다.

사건이 외부 언론을 통해 보도 7되자 학생들은 신고자와 비대위를 맹목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한다. 남, 녀 기숙사 자치회는 ‘기숙사 수련회 왜곡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기숙사 공동위원회’(이하 ‘공동위’)를 구성하며 총여학생회에 명예실추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심지어 신고자의 신상이 공개돼 기숙사 방으로 협박전화가 걸려오거나 사이버 상에서는 총여를 향해 “창녀”, “미친 동성애자”, ‘닭대가리’ 등의 발언이 쏟아졌다.

당시 학생자치내에서는 성폭력과 관련한 회칙이 존재하지 않았고 경험도 부재한 상태였다. 따라서 비대위의 사건 해결은 능숙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사건은 유야무야로 처리 8됐다.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총여학생회는 성폭력의 개념 정의와 대책위원회 구성 등을 골자로 한 ‘반성폭력 회칙’을 작성했다. 총여는 초안을 당해 연도 전학대회의결에 맡기려 했으나 2003년 전학대회는 정족 수 부족으로 성사되지 않았다. 이듬해의 경우 회의는 성사됐으나 대표자들의 이탈로 정족 수 부족이 됐다. 결국 반성폭력 회칙은 만든지 2년만인 2005년 1학기 전학대회에서야 통과됐다.

 

K교수 성폭력 사건, 있는 규정도 못 지키는 대학본부. 우려는 현실로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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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력사건 은폐하는 박범훈 총장 사과하라!” 2007년 중앙대 개교기념식에서 학생들이 든 피켓 문구다. 당시 교수가 대학생에게 가해한 일명 “K교수 성폭력 사건”으로 중앙대는 떠들썩했다. 사건은 피해자 A씨가 대학본부에 탄원서를 보내며 알려졌다. A씨는 ‘성폭행이 있은 뒤 박사학위와 장학금을 미끼로 또 전화를 걸겠다고 말했고 앞으로 잘 해줄 테니 더 이상 없던 일로 무마하자는 태도에 분노했다’ 9 며 탄원서를 쓰게 된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사건의 해결은 순탄치 않았다. 본부는 2001년 만들어진 규정을 지키지 않고 2캠퍼스에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를 꾸렸다. 학칙에 없는 기구다. 피해자는 1캠, 가해자는 2캠 소속이었으므로 피해자 측 캠퍼스에서 사건을 관할해야한다는 원칙도 어겼다. 조사위는 전원 남성으로 구성됐고 피해자에게 성적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질문도 서슴치 않았다. 최소한의 보호 조치도 없었던 것이다.

탄원서 이후 K 교수는 사직, 사과문, 보상금을 약속하며 사실을 인정했지만 돌연 학과 게시판에 ‘허구와 음해에 맞서 반드시 진실을 밝히고 말 것’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결국 소속학과 전임교수들과 대학원총학생회가 본부에 진상규명을 요구함에 따라 1캠퍼스에 ‘성윤리위원회’(이하 윤리위)가 구성됐다. 사건이 공론화 된지 한 달 가까이 지난 후였다.

본부의 문제적인 태도는 계속됐다. 피해자는 조사위 과정에서 수치심을 주는 발언을 했던 인물을 ‘기피신청’했다. 윤리위 산하의 조사분과위원으로 다시 선정되는 일을 막아달라는 뜻이다. 기피신청은 규정에 있는 내용으로, 신고자의 의견에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되면 해당 위원을 교체해야한다. 그러나 윤리위는 행정절차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거절했고 1시간 반 동안 피해자와 실랑이를 벌인 끝에서야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큰 충격을 받고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또한 대학본부는 윤리위의 학생 인원 10을 멋대로 지정했다. 이 문제로 1차 윤리위회의에 학생들은 참석을 거부한다.. 2차 윤리위도 결론 없이 종결됐다. 본부는 K교수의 증거가 피해자가 제출한 CCTV에 반박돼 거짓으로 판명 됐지만 ‘K교수는 주장이 일관되고, 피해자라는 여성은 주장이 일관되지 않기에 사건 자체에 의문이 간다’ 11 며 회의를 종료했다. 결국 본부의 미온적 대처에 피해자는 K교수를 형사고발하기에 이른다.

이에 대학본부는 형사고발이 됐으므로 ‘할 만큼 했다’며 윤리위를 해산했다. 사실상 피해자에게 2차 가해만 남기고 손을 뗀 것이다. K교수는 학교의 방관 아래 2학기 대학원 수업을 진행하고 대자보와 인터넷 게시글에 대해 명예훼손 협박장을 보낸다.

 

Ⓒ중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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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또 다른 피해자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바뀐다. 피해자 측은 ‘먼저 성폭행사건을 탄원했던 학우가 학교당국은 물론 주변으로부터 의혹의 눈길을 받으면서 제 2의 고통을 겪는 것을 보고, K교수의 만행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12며 신고 경위를 밝혔다. 2차 신고로 다시 열린 성윤리위원회는 위 사건을 사실로 인정하고 총장에게 징계위원회 회부를 요청했다.

피해자를 고려하지 않는 태도는 징계위원회까지 이어졌다. 징계위원회는 위원명단도 사전에 밝히지 않은 상태로 진행됐다. 9명의 남성으로 이뤄진 징계위는 ‘교원징계위원회칙’에 제시되지 않은 ‘진정인’(피해자)의 최종진술을 위한 출석을 요구했다. 징계위원들은 피해자에게 2차가해의 우려가 있는 질문들을 던졌다. 이미 윤리위에서 조사가 완료된 내용이었다. 결국 지난한 과정을 거쳐 k교수는 해임됐다. 1차사건 발생 후 5개월 만이다. 그는 떠났지만 대학 구성원들이 해결해야할 과제는 산더미처럼 쌓였다.

 

반성폭력 규정 개정 – K교수 성폭력 사건 공동비대위의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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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비한 규정과 그마저도 지키지 않는 대학 관계자들 속에서 피해자의 편에서 사건 해결을 이끈 것은 학생이었다. 학생들은 ‘성폭력 사건 공동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구성해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비대위는 개교기념일 행사장에서 기습시위를 벌이고 ‘2만 의혈인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또한 온라인 서명운동과 총장 면담 등을 진행했다. K교수가 비대위의 게시물과 자보 등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위기도 있었지만 비대위는 본부의 대응이 잘못되거나 태도가 미진할 때마다 총장실 앞에서 징계위를 향한 침묵시위를 갖는 등의 방식으로 압박을 이어갔다. 사실상 비대위의 활동이 없었다면 K교수 해임은 요원했을 것이다.

K교수가 해임된 이후에도 비대위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활동 과정에서 비대위는 기존 규정의 문제를 느꼈다. 피해자에 대한 보호 조항이 미비하고 무엇보다 성폭력만을 담당하는 전담기구의 부재가 가장 큰 한계였다. 기존에 학생생활상담센터 내에 성폭력 상담소가 존재했지만 배치된 전문상담원도 없고, 공간도 독립되지 않은 실질적으로 이름뿐인 기구였다. 비대위는 대학본부와 ‘반성폭력학칙개정을 위한 심포지엄’을 개최하며 전문상담소 운영과 피해자 중심적인 학칙개정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이끌었다.

비대위와 본부는 규정 개정을 위해 ‘반성폭력 규정 개정안 심의위원회’를 만들기로 합의한다. 여기서 또 한 번 갈등이 발생한다. 심의위원 15명 중 보직교수가 4명으로 편성된 것에 대해 학생들이 반발한 것이다. 또한 본부는 전문 상담소의 필요성도 납득하지 못했다. 당시 학생지원처장은 ‘자주 발생하는 사건도 아닌데 이를 위해 재정적 인적 투자를 하여 독립적인 상담소를 설치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본다’ 13고 말했다.

그러나 교수, 학생, 본부 인사 14명으로 구성된 심의위는 4차에 걸친 회의를 통해 ▲부총장 직속 독립기구 신설(성폭력상담소) ▲상담교사의 상주 ▲성폭력 대책위원회를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도출한다. 개정안은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징계에 대한 내용도 세분화 했다.

그런데 본부는 ‘성폭력상담센터 독립화’를 수용할 수 없다며 심의위가 제출한 개정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학내에 공간이 없고, 독립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는 것이다. 본부의 이런 태도에 학생생활상담센터는 새로운 개정안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성폭력 상담센터는 독립화 되지 못하고 학생지원처 산하기구로 변경된다. 이에 이나영 당시 센터장은 “센터 독립화가 학교 여건상 불가능해 차선책으로 학생지원처 산하에 두는 것”이라며 “유동적이고 나름의 독립성을 가질 수 있다” 14고 했다.

개정안을 통해 센터는 별도의 상담공간을 갖추고 전문상담원과 행정조교를 갖게 됐다. 피해자 보호에 대한 내용도 보강되었다. 성폭력 상담센터는 ‘성평등상담소’로 명칭을 바꾸고 해당 내용을 포괄해 2009년 5월 공식 발표된다.

 

< 국내 최초 인권센터의 설립>

  2012년 성폭력상담소는 인권센터로 확장됐다. 성폭력 상담소에 인권상담소가 추가돼 종합적인 상담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는 국내 대학 최초다. 확장이유에 대해 제 1대 인권센터장 이나영 교수는 ‘성평등상담소에서 처리한 사건 중 33%가 인종차별, 노동 등 성과 무관한 문제였다’며 ‘포괄적으로 인권문제를 다루는 기구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또 학생지원처 산하에서 총장직속기구로 바뀌면서 독립성과 권위를 갖게 되었다. 이나영 센터장은 이에 대해 ‘사건을 보면 학생간의 문제도 있지만 교원과 학생, 외부인과 학생의 문제도 많기에 학생지원처 산하기관인 것은 부적합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더 가까이서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보고 체계가 복잡하고 처리 단계가 많아 어려움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인권센터는 2014년을 기준으로 인권상담소와 성폭력상담소에 전문 연구원과 행정지원인력이 각각 한 명씩 있다. 하지만 이들이 주 2일 안성캠, 주 3일 서울캠에서 근무하고 있고 양캠의 상담과 사건을 처리하기엔 인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제도적 개선이 더 필요한 이유다.

 

2012-2014-2015 끊이지 않는 성폭력 사건

   2012년 또 한 번 교수의 성폭력사건이 알려진다. 특히 이는 외부언론에 먼저 보도되고, 포털사이트 1위를 차지하면서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피해학생이 한 두 명이 아니었고, 10년 가까이 장기적으로 벌어진 일이여서 사안이 심각했다. 안성캠 총여학생회는 가해교수 A의 해임을 요구하며 성명서 발표와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인권센터는 조사를 거친 후 본부에 징계위원회 소집을 요청하며 ‘가장 엄한 중징계’를 권고했다. 결국 A는 해임됐다.

10년 가까이 성폭력을 가했지만 제재당하지 않았던 사실은, 대학 내의 권력의 위계와 피해사실을 토로할 수 없는 구조를 잘 보여준다. 2014년에 공론화된 사건도 마찬가지다. 역시 교수가 학생에게 가해한 권력형 성폭력이었다. 사건은 2009년부터 시작된다. 당시 피해학생은 성평등상담소를 찾았으나 B교수의 징계를 원하지 않아 마무리됐다. 2012년에 또 다른 학생이 인권센터에서 피해사실을 진술했고, B교수가 인정했음에도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역시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였다.

결국 B는 2014년 또 다른 성폭력을 저지른다. 이번에 피해자 측은 신고를 했고 가해자도 사건을 인정했다. 사건해결을 위해 꾸려진 성폭력 대책위원회는 3차례나 사건을 저지른 것을 고려해 대학본부에 중징계를 요청한다. 그런데 징계를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교원인사위원회 과정에서 B교수는 사직서를 제출했고 인사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였다. 사표를 통해 면직되면 해임이나 파면과 달리 퇴직금을 받을 수 있고, 재취업 등에서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본부는 사표수리를 ‘최선의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중징계를 내려도 해당교수가 불복하면 교육과학기술부 산하의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징계 수위를 낮추거나, 행정소송을 통해 학교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가해자 처벌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어 행정소송을 진행했을 때 승소가 어렵다 15 는 현실적 이해관계를 고려한다면, 사표수리 자체는 본부보다 학칙과 관련 법의 책임이 크다.

< 관련 동향>

  1. 경희대의 반성폭력 학칙 개정

  경희대는 2015년 4월 전국대학 최초로 성폭력 사건 조사 중 가해자의 사직/휴직을 막는 학칙개정안을 만들었다. ‘성폭력 가해자로 신고된 학생이나 교직원의 자퇴, 휴학, 퇴학, 사직, 휴가, 해임 등은 사건 종결 때까지 보류하거나 반려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해 경희대 총여학생회 ‘허들’은 8개 단과대 학생회와 간담회를 갖고 SNS 릴레이 캠페인, 부스사업을 통해 학칙 개정을 적극적으로 요구했다.

  1. 교육공무원법 개정안 발의

  지난 4월 정부는 성범죄 교원의 교직 배제 규정을 강화한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존에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에만 해당했던 ‘교육공무원의 임용결격 및 당연퇴직 사유’를 성인을 포함한 모든 성범죄로 확대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모든 성범죄로 파면·해임되거나 형 또는 치료감호를 선고받아 유죄가 확정된 교육공무원은 다시 교원으로 임용할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과정에 있다. 대학본부는 B교수의 가해사실을 파악한 것이 7월 16인데도 2학기에 학부, 석사 전공수업을 맡겼다. 사건이 외부언론을 통해 알려진 12월 초, 왜 강의를 중단하지 않고 사표를 수리했냐는 질문에 본부는 “인사위원회 뒤의 절차를 전부 마치기까지는 추가로 몇 주 이상 소요될 수 있다”며 “강의의 연결성이 부족해 학생들의 학습권을 심각히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17고 밝혔다. 이에 해당 과 학생회는 대자보를 통해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보호가 수업권보다 중요하다’ 며 ‘지금이라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사실을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지난 2007년 K교수 성폭력 사건 당시에도 대학본부는 사건이 드러난 이후에도 해당교수가 수업을 그대로 진행하게 관용한 바 있다. 결국 학생비대위가 나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보이콧을 제안했고 학생들의 수강취소로 수업은 취소됐다. 결국 같은 문제를 반복한 셈이다.

그리고 올해, 어김없이 교수가 학생에게 성폭력을 가한 사건이 다시 공론화 됐다. 이렇게 중앙대에는 매해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우리에게 알려지는 사건보다 드러나지 않은 사건들이 더 많을 것이다.

 

저절로 이루어 진 것은 없다. 결국은 더 많은 자치(自治)가 필요한 때

  지난 역사를 살펴보았을 때 알 수 있듯이 성폭력 관련 제도와 기구 설립의 배경에는 항상 학생들의 노력이 있어왔다. 사건이 공론화 될 때마다 총여학생회 등 여학생기구를 중심으로 대책위원회가 구성됐고 해결의지가 없는 본부를 압박했다. 학생들은 사건이 처리된 이후에도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알리고 오랜 시간이 걸려도 끈질기게 노력해 제도 개선을 일궈냈다. 현재의 캠퍼스가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면 그건 모두 과거에 열심히 노력해 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은 여전히 성폭력으로부터 100%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 대학 사회 내에서도 많은 권력관계가 존재하고 성폭력은 끊이지 않는다.  교수와 학생간의 권력의 차이도 있지만 학생사회도 남성과 여성, 선배와 후배, 이성애자와 성소수자 등으로 나뉘기 때문에 결코 단일한 집단이 아니다. 권력의 차이는 (성)폭력을 용이하게 만드는 기제로 작용한다. 최근 공론화된 일련의 성폭력 사건 역시 그렇다.

모두가 행복하고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대학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은 “이만하면 됐어”가 아니라 “아직도, 여전히, 그래서-”가 돼야한다. 지난 역사가 보여주듯 말이다.

“저절로 이뤄진 것은 하나도 없다” -중앙대 성폭력 사건과 제도를 돌아보며

참고:

  1. < 한겨레>, 「박용성 “분 바르는 여학생들 잔뜩 오면 뭐하나”」,2015.05.20
  2. < 조선일보>,「중앙대 교수 성추행 혐의로 징계위 회부」,2015.05.20
  3. ‘성을 매개로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함으로써, 개인 혹은 집단에 대해 신체적·심리적·사회적 고통을 야기하는 행위‘(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4. < 통계청>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2003.07
  5. < 중대신문>‘학생회관은 안전의 사각지대’ 99.09.01
  6. < 녹지>38집 ‘기숙사-다시 보는 기숙사 야유회 성폭력 사건’ 2004.02 발행
  7. < 한국대학신문> ‘중앙대, ‘성폭력’ 논란으로 내홍‘ 03.10.24
  8. < 녹지>39호 ‘반성폭력 회칙-희망의 빛이 되길 바라며’ 2005.08 발행
  9. < 대학원신문>‘학내 성폭행 고발 사건 발생’ 07.09.06
  10. ‘성희롱성폭력예방및처리에관한규정’ 제8조(구성) ⑤……학생위원을 위촉하는 경우 그 수를 2인으로 하되, 총학생회장 및 총여학생회장의 추천을 받아 위원장의 제청으로 총장이 위촉한다.(01.06.05)
  11. < 중앙문화> 54호 ‘닫힌 진실, k교수 성폭행 사건’ 2007.11 발행
  12. < 대학원신문> ‘K교수, 또 다른 성추행 혐의’ 07.12.11
  13. < 중대신문>‘성폭력 학칙개정, 아직도 지지부진’ 08.05.04 中 이찬욱 학생지원처장 인터뷰
  14. < 중대신문> ‘성폭력 규정 개정 도대체 언제 통과되나’ 09.04.07
  15. < 중대신문> ‘성추행이 지나간 자리는 고요했다’ 15.03.01
  16. < 녹지>‘중앙대 A교수는 어떻게 사표를 내게 되었을까’ 2015.04 발간
  17. < 중대신문>‘성추행 교수 버젓이 수업 진행해’ 14.12.08

“저절로 이뤄진 것은 하나도 없다” -중앙대 성폭력 사건과 제도를 돌아보며”에 대한 4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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