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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위원 김락현

 

그 어느 때보다 페미니즘이 큰 화두가 된 대선이었다. 후보들은 앞다투어 여성 정책을 내놓았고, 이에 대한 사람들의 논쟁 또한 뜨거웠다. 그동안 대선에서 가시화되지 않았던 성소수자에 대한 논의도 전면에 등장했다.

‘국민장인’ 유승민?

ⒸMBN

대선 기간 동안 유승민 후보의 딸, 유담 씨의 외모는 연일 화제였다. 네티즌들은 그녀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이며 유 후보에게 ‘국민장인’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었다. 언론 또한 가세해 유담 씨의 외모와 관련된 보도를 쏟아냈다. 낮은 지지율에 고전하던 유승민 캠프는 반등의 기회로 여기며 그녀를 선전도구로 적극 활용했다. 예시로 유 후보는 강연장에서 “걔(유담)는 남자친구가 없다”고 발언하였고, 이후 지지자를 대상으로 그녀와 함께 사진을 찍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 행사가 계속되는 와중에 유담 씨는 성추행을 당한다. 대중과 언론, 캠프 관계자들이 유담 씨를 소비하는 행태로 보아 예상할만한 일이었다. 유승민 캠프 측에서는 이번 사건이 계획적인 범죄일 확률이 높다고 보고, 경찰에 엄정 조사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본 행사를 마련하고, 그녀의 인기를 선거에 이용한 캠프의 반성은 없었다. 또한 언론은 가해자 남성의 특수성-조현병 환자이자 일베의 회원-만을 부각할 뿐, 그들의 옐로우 저널리즘이나 이러한 범죄가 일어나게 된 사회적 배경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여성성을 이용해서 세간의 집중을 받아보려는 행태와 공개된 장소에서 일어날 수 있을만큼 일상화된 성추행, 그리고 그 원인이 되는 성적 대상화의 단편을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혐오에 지지로 대답하는 사회

ⒸYTN

아마도 이번 대선에서 가장 많은 논란거리를 만든 후보는 홍준표일 것이다. 그는 공식 석상에서 여성과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 발언을 끊임없이 내뱉었다. 물론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반대편에서는 지지 세력도 계속해서 늘어났다.

홍준표 후보는 4월 18일 YTN과의 인터뷰에서 “설거지는 하늘이 정해준 여성의 일이다”라고 발언해 논란을 빚었다. 가사노동이 여성의 역할이라는 그의 시대착오적 발언은 성평등 공약을 쏟아내는 다른 주요 후보들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경쟁 후보들의 질타가 쏟아지자 홍준표 후보는 “내가 스트롱맨이라고 해서 세게 보이려고 그런 이야기를 했다”라며 “실제로 집에 가면 설거지를 한다”라며 웃어 보였다. 그가 말하는 ‘스트롱맨’이란 어떤 의미일까. 여성에게 집안일을 떠넘기고, 그것을 ‘하늘의 뜻’이라고 합리화하는 것이 스트롱맨인가. 홍준표 후보에게 바람직한 남성상이란 결국 ‘여성에게 강한 남성’인 셈이다.

더욱 문제가 된 것은 그의 자서전이었다. 홍준표 후보가 2005년 펴낸 에세이집 <나 돌아가고 싶다>의 한 대목에서 친구의 성폭행 모의를 돕기 위해 돼지 흥분제를 구해다 주었다는 내용이 발견된 것이다. 글 끝에 “장난삼아 한 일이지만 그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검사가 된 후에 비로소 알았다”라며 “다시 돌아가면 절대 그런 일에 가담하지 않을 것”이라 쓰긴 했지만, 그런 문장으로 수습될 리 만무했다. 강간 모의에 가담한 일을 흥미로운 모험담인 양 적어 놓은 그의 글에서 죄를 뉘우치는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대선 운동 기간 이 에세이가 문제 되자 홍준표 후보는 “잘못됐다면 사과한다.”,“다시 말하지만 45년 전 그 사건은 정말 국민에게 죄송하다. 다시 한번 사죄 말씀드린다”라며 잘못을 인정했다.

홍준표 후보의 발언들은 그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에게 여성은 하나의 동등한 개인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혐오 발언을 할수록 그의 지지율은 올라갔다. 홍준표 후보는 결국 24.03%의 표를 얻으며 2위를 차지했다. 소수자를 향한 혐오 발언을 일상적으로 내뱉는 사람이 수권정당의 후보로 출마하고, 심지어는 투표 결과 2위까지 오르는 현상은 결국 우리 사회에 팽배한 여성 혐오를 드러낸다.

 

“차별하진 않지만 반대한다”

Ⓒ닷페이스

문재인은 2월 16일,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될 것을 선언했다. ‘성 평등한 세상’,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약속했다. 지지자들은 환호했다. 그가 페미니스트로써 네 번째 약속을 말하려는 순간, 한 관중이 일어나 소리쳤다. “저는 여성이고 동성애자인데 제 인권을 반반으로 나눌 수 있습니까?” 문재인은 이 질문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관중은 일제히 “나중에”를 외쳤다. 그녀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

문재인의 대답은 4월 25일 대선 주자 토론회에서 들을 수 있었다. 문재인은 동성애를 반대하느냐는 홍준표의 질문에 “반대합니다. 그럼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그의 발언은 성소수자 차별을 승인하는 신호가 되었다. “나도 동성애를 반대한다”, “혐오스럽다”, “동성애 하는 건 좋은데 너네끼리 숨어서 해라” 같은 댓글이 각종 뉴스 포털과 SNS를 도배했다. “동성애는 에이즈를 퍼뜨린다” 같이 근거가 부족한 루머들도 판쳤다. 자기검열 하에 숨겨져 왔던 성소수자 혐오는 대선 유력 후보의 발언을 기점으로 거리낌 없이 표출되었다. 문재인 후보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이후 밝혔지만,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발언은 결국 그들을 향한 차별을 강화했다.

때마침 이때는 육군이 영내 동성애자 색출 조사를 벌이던 시점이었다. 육군은 함정수사를 통해 A 대위가 영외에서 동성 간 성관계를 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적 공간에서의 합의된 성관계였다. 문재인 후보는 육군의 비윤리적 수사를 비판하기는커녕 “군대 내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뜻이었다”고 해명하면서 관련 사건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발언은 곧 존재 자체의 부정이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성소수자들은 문재인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문제의 토론회 다음 날, 국회 계단 앞에서 열린 ‘문재인 국방안보 1000인 지지선언’ 기자회견에서 성소수자 인권단체 회원들은 발언에 항의하며 기습 시위를 벌였다. 무지개 깃발을 들고 문재인에게 걸어 간 성소수자 활동가는 경호원들에 의해 즉시 제지당했고, 집회 및 시위에 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다.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보장해 주기에는 사회적 합의가 덜 되었다”, “이명박근혜 때는 납작 엎드려 있더니 문재인이 만만하냐”, “정권교체가 우선이니 기다려라”와 같은 반응이 다수였다.

그러나 인권보다 정권교체가 앞설 수는 없다. 정권교체와 인권 보장은 양자택일이 아니다. 문재인의 ‘사람이 먼저인 세상’은 분명 성소수자의 인권을 포함해야 한다. 대통령은 사회적 합의를 기계적으로 반영하는 자리가 아니다. 대통령은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사회적 합의를 주도해 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JTBC의 대선 토론에서 심상정 후보는 성소수자를 위해 단 한 차례 사용할 수 있는 1분 찬스를 사용했다. 문재인 후보와 홍준표 후보의 ‘동성애 반대’ 발언을 반박하기 위함이었다. 심 후보는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를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성 정체성은 말 그대로 정체성이다. 저는 이성애자지만 성소수자의 인권과 자유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했다. 심 후보의 발언이 진보 진영의 표심을 끌기 위한 전략이었든 아니든 중요치 않다. 대선 토론에서 이 같은 발언이 등장했다는 사실 자체가 또 하나의 가능성이다.

19대 대선은 젠더 이슈가 그 여느 때보다 활발했던 선거다. 후보들의 여성 혐오, 성소수자 혐오 발언은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었다. 대선 주자들의 혐오 발언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우리 사회의 젠더 감수성을 방증한다. 그러나 후보들의 혐오 발언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이전의 선거에도 혐오 발언은 늘 있어 왔다. 달라진 것은 혐오 발언에 대한 반응이다. 여성 혐오, 성소수자 혐오 발언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번 대선에서 유독 뚜렷했다. 사회의 인식이 바뀌지 않았더라면 후보들의 언행에 대한 치열한 논박 역시 없었을 것이다. 나아가 후보들의 혐오 발언에 대한 문제제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담론을 형성하고, 나아가 기존의 젠더 질서에 균열을 낼 것이다.

대선, 젠더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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